Thursday, January 16, 2025

[코리안드림스토리] 북한 엘리트 외교관 출신 김동수 박사 1편 | 죽어도 안간다던 아내가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이유!?


[코리안드림스토리] 북한 엘리트 외교관 출신 김동수 박사 1편 | 죽어도 안간다던 아내가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이유!?

통일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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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24 views  Dec 8, 2024  #탈북민 #북한이탈주민 #탈북스토리
고향을 등지고 선을 넘어 온 자유를 향한 여정,
한반도 통일의 꿈을 꾸는 코리안드리머의 이야기
🩵코리안드림스토리🩵

북한 외교관의 삶과 탈북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긴박했던 탈북 과정에 대한 
북한 엘리트 출신 김동수 박사의 스토리를 들어보세요

[장미 1~3편 몰아보기] 북한 장마당 세대인 그녀가 한국의 경제력을 보며 충격받은 이유!


[장미 1~3편 몰아보기] 북한 장마당 세대인 그녀가 한국의 경제력을 보며 충격받은 이유!

대홍단 왕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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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04 views  Jul 2, 2024
북한 이과대학을 나온 수재 장미였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의 경제성장에 당황하며 겪게 되는 여러가지 사연들을 풀스토리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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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그냥 부석사까지 알고 살아본 본 최근까지 진짜 장미 같은 예 어
2020년에 한국으로 온 장민 씨를
소개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응단 왕감자 김수아 아 제가 이렇게
영상으로 보다 보니까 많이 까맣게 탔네요네 이번 여행을 좀 하고 와가지고 막 썬팅 한 것처럼 막
까맣게 탔습니다 공감이 넘치는 시청자분들은 아마 다 보실 거예요 이모가 저보다 훨씬 희다는 사실을네
오늘의 게시도 만만치 않습니다 벌써부터 치고 들네요네 우리 여러분들 다 아시죠 우리 장미양네 저희 사던
아가씨 길이기도 합니다 [음악] 가족이죠 그래서 우리 장미향이 어
오빠를 따라서 어머니와 동행하면서 여자 둘이서 압록강을 건너서 한국까지 왔거든요 2019년도 정말 코로나 착
직전에 정말로 우 장미의 이야기들을 오늘 들어보는
시간을 가질 건데요 장미의 소개부터 먼저네 안녕하세요 거침없는 장미입니다
저에 대해서는 익히 아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오늘 또 이렇게 모 채널에
어 사던 아가씨 자격으로 다시 참석을 했습니다 평시에는 그냥 둘이 야자
타임으로 막 들어가는데 오늘은 어쨌거나 우리 가족이 그 또 사도 나가시고 모니까 최소이 예의를
지키면서 오늘 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 그래서 우리
장씨가 북한에서 이과 대학을 다녔어요 정말 아무나 갈 수 없는 것이죠 그런
이과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가 한국으로 어디까지를 결심했다 이제 일반적이지
않거든요 그니까 저는 한국의 대한 동경을 늘 갖고 있었죠
드라마라지만 에서 살 때는 그렇기 때문에 그 사회에 대한 동경이 현실보다는 좀 더 한상 쪽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늘 동경하는 마음을 안고 살았다네 존경하는 마음을 안고 살다가
한국에으니 기회가 있어서 바로 잡았다 지금 그런죠 말씀인 거 같습니다
북한에서 이과 대학을 다녔다가 지금 현재 공부를 좀 하고 있잖아요 그 이과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할 때랑
한국에 와서 어 학원에서 공부를 보면서 뭐가 서로 달랐나 히 저는
대학교 공부할 때 힘들었죠 여기 와서 공부하는 거는 사실 그런 장기적이고
그런 공부는 아니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는 않아요 근데 그때보다
아무래도 머리가 많이 굳어지다 보니까 이해하는 거에 있어서는 당연히 제한적인 부분이 있죠음 그니까 새로
시작함에 있어서 어려움들이 좀 있었다 이런 거네요 그래도 뭐 대학교 다닐
그런 정도는 꿈이겠죠 아니 뭐은 아닌데 막 그렇게 어려운 보를 여태까지 해놓지 않아가지고 여기
한국에 와서는 어려웠던 시간은 없었던 거 같아요 제가 알기로는 여기 조카의
주경이가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어요 코를 했어요 그래서 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막 영어를 써서 보내면서
자기한테 한국으로 왔으면 좋겠다라는 의향을 보였는데 장서방이 어 머뭇머뭇
하더니 너만 거기 가서 잘 살아라 하고 왔어요 그래서 그때까지는 우리 저화도 아 안 오겠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 이모가 비정한 이모가 아 무슨 일로 북한에 있는 남자 친구를 데려오려 그러나 그 벌써 네가 여기
온 동안에 다른 여자 친구도 또 친했을 거야라고 하면서 그냥 서술을 팍팍 쳤죠 그냥 제가 어 그런데 근데
알아요 서술을 쳐야지 두부가 제 맛이 나는 거를 와 역시 오늘의 터고 만만치 않습니다 근데 오느 순간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는 거 그 주인공이 여기 있습니다 맞아요 제가 새언니한테 연락을 했거든요 오빠가
새언니를 만나러 갈 때 알았어요 근데 저는 안보 인사를 나누고 서로에 대한
리움을 나누는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돌아와 가지고 머뭇 머뭇거리면서
하는 말이 어 주경이가 우리 가족이 올 수 있으면 다 와라 하고 그런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너무 막 마음이 설레고 두근거리는
거예요 그니까 가고 안 가고를 떠나서 어쨌든 그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을
때 이상하게 심장 박동수가 빨라져요 근데 그때는 주경이 아고 장방의
사이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죠 그 음 아 그렇죠 당연히 새언니가 한국을 갔으니까 저희 오빠가 배신을
당한 거죠 새언니한테 어찌면 그래서 장리 씨가 오빠에게 뭐라고 말을 해서 오빠가 그럼 가자 어 그러니까 오빠가
와 가지고 머뭇머뭇 거리면서 하는 말이 다 오라고 한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막 이상하게 심장이 빨라지고 저도 정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오빠가 무슨 말을 했냐 저한테 그런게 궁금했죠 그 얘기를음 저희 또 부엌에서 나눠서 했어요 저희 집이 좀
크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아랫 방에 있었고 저랑 오빠랑 우방에 들어가서
얘기를 나누는데 저희 엄마가 쟤네 둘이서 뭐를 쑥덕 거리지는 생각을
하셔 가지고 우방에 따라 들어오신 거예요 또 저희가 자연스럽게 빠져 가지고 또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가
거실로 나왔다가 부엌으로 갔다가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다가 엄마를 따돌리면서 나중에는 그 긴 이야기를
부엌에서 했어요 부엌에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아 되게 미묘한
상황이었어요음 오빠는 당연히 나는 우리 가족 때문에 못 간다 내가 가장인 거를 네가 잘 알지 않느냐
가장이 어떻게 가정을 내팽겨치고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한국으로 갈
수가 있겠냐 이러면서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러면 다 같이 가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오라고 새언니도 제안을 했다면서라고 물어봤어요 근데 오빠가 그게 말이 그
어 환자 가는 것도 정말 어떻게 일이 전개될지 모르는 길인데 가족이 가다가
잡히면 우리는 그러면 끝장난다는 거예요 그리고 먹고 살기 힘들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우리는 그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오빠의 그 걱정이 굉장히 컸죠
오빠는 당연히 안 가는게 맞다고 생각을 했고 그리고 이상적으로 생각을
해 봤던 오빠의 생각이 맞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근데 저희 아들의
날림이 그런 정상적인 사과를 하도록 하지 못하게 했죠 가자 가야 한다
우리는 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한 7개월간 얘기를 나눴던 거 같아요
그리고 오빠가 정말로 갔다가 붙잡히면 어떡할 거냐 그런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를 그 예시로 생각을 해 봐라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때 내가
했던 말이 그러면 오빠가 먼저 가고 내가 엄마를 데리고 뒤를 따르면 되지
않냐라고 했고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나눴던 거 같아요 그다음에는 오빠가 다 계획을
했죠 아 이렇게 가면 좀 더 위험이 덜해지는 그게 어떤
방향이었고 먼저 가다 잡히면 우리가 어쨌든 북한에 집도 있고 돈도 좀
있으니까 오빠를 꺼내오는 방법이고 우리가 가다가 잡히면 오빠가 한국에서
오바하지 않은 방법이었어요 예 완전 치밀하게 작전을
하고 그렇게 하면 그나마 리스크를 좀 덜 수가 있으니까 한 방에 성공을
하지는 못할지라도 좀 마음이 안심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병운
사람들이랑 이게 생각하는게 보셔 저 다른 거 같긴 해요 저희는 떠나면 그냥 죽자 덕약 치고 나오는
것밖에는 알아야지 그러면 안 돼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나눴고 그러면이
사실을 새언니한테 알리자고 우리가 결정을 했어요 근데 그때 새언 가
알려준 전화번호가 있었어요 근데 오빠는 당연히 다시는 전화를 안 할 줄 알고 그 번호를 까먹었던 거예요
아 진 그니까 그 번호를 우리가 새 언니하고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한국 번호가 없었어요 아까 새언니 번호는
알고 있었는데이 새언니한테 전화를 하려면 중국 휴대폰을 갖고 있는 사람의
번호를 알아야 되는데 그 번호를 까먹었던 거예요 아 그러니까 그 중간자리 역할을 해줄 라인이 없구나
그게 없는 거예요 우리는 집이 한국하고 연결할 수 있는 수이 없죠
그래서 일을 어떻하면 좋냐 해가지고 제가 해산으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했어요 그래서 그때 회산 와서 나
해산으로 들어가서 전화했어요 아 정말 야 청진에서 해산까지 오기 쉽지
않은데 그때 걸머지고 그거는 쉽지 않지는 않았어요 나한테는 진짜
그러니까 저희 같은 경우는 여행 증명서를 발급받는 거에 있어서 되게 쉬웠어요 그니까 사람마다 경우가 좀
다른데 저희 같은 경우는 좀 쉬운 경우였고 평 향 이라든지 이런데 가는 거를 굉장히 힘들어했다는 분들이 사실
많이 있잖아요 근데 저희 경우는 아니었어요 예 마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어 가지고 거기까지
들어가는 거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는 그 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을 찾는게 문제였어요 그지 아 그니까
들어가는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산이라도 간다고 해서 나 중국하고 통화 좀 하게 해 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때 과연 누구한테 찾아가면 내가
전화 통화를 할음 할수 있지라고 그 후보의 이름을 쫙 쏘던 거 같아요 아
나름 예 그니까 이런 상세한 얘기는 제가 임모 채널에서 지금 처음으로
하는 거예요 예 건너뛰면서 얘기를 했거든 그래서 아이 사람은 좀 아닌
거 같아이 사람은 확실치가 않아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마지막 최종 후보가
한 명 있었어요 그래서 그 언니한테 전화를 했죠 언니 놀러 가도 되겠냐
예 그때 말 안 했어요 내가 너한테 중국 전화를 사용하려고 가고자 한다
이런 전화 말을 안 했죠 예 역시 언니 아무 생각 없이 그럼 난
너무 좋지 놀라와 막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해산으로 들어갔어요 근데 갔는데 언니한테 전화가 없는 거예요
예전에 중국 밀스를 했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당연히 전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언니가 중국 밀스를 그만 뒀더라 그요
그래서 전화번호를 다 폐기한 상황이었고 하지만 그 언니이 손으로
해가지고 다른 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분
집으로 가서 새언니랑 전화를 했죠 근데 그때 새 언니가 너무 어 너무
좋다라고 했는데 때 문제는 엄마의 건강이 되게 염려스러웠다 봐요 어떻게
올 거냐 이런 얘기도 했고 어머님은 괜찮냐 저희 엄마가 내절 중이 왔었기
때문에 한국까지 오는 거에 문제가 없냐 이런 저런 질문을 했던 거 같아요 저는이 가고자 마음 먹은
사람이니까 다 괜찮다 어 우리는 완전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제든 너희 부름에
다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했죠 예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으로 돌아와서 오빠랑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고 그때 새
언니가 했던 말이 저희 데리고 오는데 한 사람당 2천 불이 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가족이 오는데 6천 불이
든다는 얘기를 6천만 원 한국돈으로 6천만 원 예 그니까 6만 불 정도
네 그래서 그 정도의 구이 든다 그러면서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안심하고
그 브로커를 믿고 따라와도 좋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오빠가 그다음에는 막 공상의 나래를 펴는
거죠 야 가다가 일어나면 우리 한국에 있는 거 아니야 이거는 평양에 놀러가는 것보다 더 쉽네 이러면서
철이 살짝 없는 거죠 여기에 대한 얘기를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희 오빠랑 저랑 그때 막 들떠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를
않았는데 오빠가 강을 딱 건너면 체 언니가 마중하는 거야 오빠를 오빠
멜코 어을 탈출한 것을 환영합니다 막 이러면서 마중할 줄로 알고 있었어요
남들은 말이에 총알이 빗발치는 속으로 피을 흘림이 건너고 있는데 지금 낭만에 꽃길을 갈 생각을 하고 있
그러니까 아예 몰랐던 거예요 그래서 오빠가 나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오빠가 아무리 늦어도 3일 내에는
너한테 연락을 보내 줄거다 왜냐면 오빠는 건너가는데 메시가 비행기를 타
하 거기 한국까지가 시 해가지고 내가 아무리 늦어도 너한테는 3일 이내에
연락을 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얘기를 했어요 어 당연히 그게 맞는 거고 뭐
숫자로 계산을 해봐도 맞는 거고 예 그래서 오빠가 떠났는데 아유 우리
엄마는 평양에 놀러 가는 줄 알았 그렇지 엄마가 모르고 응 사돈 어머니 모르게 떠났다 하더라고 예 저희
엄마는 아무 생각 없었어요 오빠가 평양에 놀러 간다니까 친구 결혼 식이라서 간다 그렇게 뻥을 쳤던 거
같은데 아유 정말 감사하는 만약 그때 못만났으면 어머니가 얼마나 일생을
후회 하겠어 또 장사 방도 그러 지금 다 이렇게 그래도 그렇죠 그렇죠 아이고 어는 길에 정말 좀 험란한
시간이 있긴 했지만 다 와서 만날 운명이었나 보죠음 그러게 리 장미양
집에서 오빠가 먼저 떠났고 그리고 어머니를 딱 데리고 출발을 하잖아요 근데 그 재산이며 집이며 그거를
어떻게 다 남겨 그냥 두고 왔어요 어떻게 했어 왔는데 그때 굉장히 고민이 많았어요 그 이거를 팔아서 한
푼이라도 우리가 돈으로 바꿀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두고 떠날 것인가
생각이 많았었는데 처분하려면 처분할게 너무 많았어요 일단 뭐 집이 있었고
그리고 사업체가 있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뭐 빈 당에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건물이 있잖아요 근데 임대가
아니라 저희가 건물을 돈을 주고 샀었어요 그래서 북한에 건물도 있었던
거예요 근데 이런 것들을 팔기 시작하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어요
되게 복잡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기 양상 우리가
이거를 다 버리고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한 거 아예 그냥 미련없이 두고
떠나기로 했어요 예 그런 식으로 하나두개 미원을 두다 보면 오히려
발걸음이 무어지 나중에는 우리가 왜이기를 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단
말이에요 저는 한국을 너무 가고 싶었어요 왜냐면 해외 여행을 이렇게 다녀보는게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해 여행을 한 번도 못 가보다 보니까 그거에 대한 환상이 컸던 거죠
공부할 때 평형에 있으면서 아 나는 해외 이행을 가고 싶다라고 생각을 해봤다고 당연하죠 그러니까 오빠는
공부를 잘해 가지고 저기 베이징에 나갔던 적이 있어요 프로그램 경연
때문에 근데 저 같은 경우는 물론 국내에는 자유롭게 다니지만 해외 여행을 한 번도 못 나가 봤잖아요 데
오빠가 다녀와 가지고 하는 말이 야 베이징이 엄청 발전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 그 상상력이
나래가 치는 거죠 오빠 이야기를 듣고 예 저는 그런 공상적인 그런 부분도 굉장한
아이거든요 예 그래가지고 내가 뭐 외국에 간다면 뭐 내가 어쩐다 이런 가정법을 잘
써요 예 벌써 거기에가 있고네 마음이 항상가 있는 아이였던 거예요 근데
그럴 수가 없으니 항상 꿈만
꿨었다 그죠네 근데 오빠가 거기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니까 받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오빠는 안 가겠다고 나는 가고 싶고 나라도 좀 보내 줘 나라도 오빠 안 가겠으
나라도 나라도 좀 가자 근데 세원이 입장에서든 오빠 보고 싶어서 오라는
거지 내가 뭐예요 우리 주경도 대단한 거 같아요 내가 그렇게 말렸어요 정말 한 었고
나는 이모가 말렸다고 하는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거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적하고 또 우리
세대까지만 해도 여러분 북한의 남전 여비가 엄청 심했어요 그래서 과연 북한에서 익숙한 남자 더구나이 집은
제가 딱 한번 봤는데 너무 잘생기고 정말 상 남자였고 아 저 사람은 누군가의 정말 선에 의해서 저렇게
멋있게 성장한 집이 엄청난 그 부호라고 생각을 해 가지고 아 우리 학은 가당치 않아 그렇게 공주처럼
왕자 처럼 살던 사람이 여기 와서 타격을 받거나 어 경제적으로 이게 만약 안 된다라고 하면은 자괴감이
느끼고 저는 그런 자신감이 없어서 그만두라고 했는데 어 그래도 그걸 기고 이겨내고 데려와서 또 우리 장서
방도 너무 조공을 잘하고 요새는 정말 8년 차 임어 보다도 4년 차 우리
장서방 정말 저를 이렇게 저벅저벅 가리치는 거 보면서 야 정말 대단하고
우리 사던 어머니는 정말 큰 재산을 나오셨다고 어 너무 적당히 칭찬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런 때 칭찬해
보지 제가 칭찬을 해 그래서 처음에 해산에 도착했아요 브로커로 해가지고 해산에
어머니하고 도착하면서 그 같이 그 국경까지 다가올 때도 사실은 정말
탈북 멋지 않게 두근두근하는 순간이 두죠 그니까 그게 저는 여행 증명서를
뗐어요 근데 이게 엄마가 나이가 많다 보니까 엄마의 여행 증명서를 때기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그리고 엄마까지 여행 증명서를 떼면 일단 오빠는 한국에 간 상황이고 정확하게는 그때
라오스가 거기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국경을 넘었잖아요 그리고 나도
여행 증명서를 뗀 상황이고 엄마까지 떼면 이게 기록이 둘 수도 있단 말이에요 내가 북한의 전산화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위험천만한 일인 거예요 그래서 나는
엄마는 여행 증명서 없이 해상까지 들어가자고 생각을 했어요 혼자 들어가는 거는 굉장히 쉬웠는데 여행
중명사 없는 엄마를 데리고 들어가는게 너무너무 어렵더라고요 저희가 가다가 단속을 당했어요 그래서 엄마랑 같이
강제로 그 기차에서 내렸거든요 근데 어쨌든 나는 여행 증명서를 갖고
있으니까 뭔가 조금 개운하지 않는데 승무 안전원이라고 하거든요 승무
안전원 입장에서는 뭔가 개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여행 증명서를 갖고 있으니까 여행 증명서라고 국가가
네가 해상까지 들어가도 좋다라고 공식적으로 황하고 도장을 박아 준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뭐라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엄마는 여행 증명서가 없고 가족이 같이 동행을
하는 거니까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결정을 한게 어떤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고
그냥 엄마랑 저랑 기차에서 내려라 이렇게 여고를 했던 거예요 근데 제가
그냥 내려오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 그래도 그 위기를 대처했어야 어떤
말만한 남자가 한 명 있었어요 아 예 말많은 남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의 집이 배감 있가 응 배군도 배 도예요
배가에 그 사람이 집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뭐 얘기를 하는 와중에
들어보니까 뭐 해산으로 들어가는게 자기한테 일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얘기들이 오고 갔어요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서 제가 유심히 보고 있던 잘라 내리라는 말을 듣고 그 사람한테
찾아갔어요 같이 좀 내리자 그 그 사람도 당황스럽지 자기는 집까지 가려면 이제 기차를 타고 고장 더
가야 된단 말이에요 이씨가 당하 근데 내가 단 찾아가 가지고 우리 몰라요
생명 부지에 근데 저 좀 도와주세요 같이 저랑 내려줄 수 없을까요 이렇게
요구를 하니까 되게 놀랐던 거예요 그다음에 나는 딱 얘기를 했죠 뭐 지금 같이 내리면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돈을 받게 될거다 돈으로 꺼져야지 뭐 그런 상황에서는 이익의 호소를 해야 된단
말이에요 감정보다는 그 사람이 돈을 죽겠다니까 너무 좋다고 바로 내리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려가지고 얘기를 나눴어요 나는 여행 증명서가 있고 엄마는 여행 증명서가
없는 상황인데 우리 엄마를 회장까지 두려 보내 줄 수 있냐 같이 가면 당연히 좋겠지만 안 되는 경우는 따로
따라 가도 괜찮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 자기 두려 보해 줄 수 있다 어
그래 가지고 그때 50불을려고 했어요 어불도 사실 큰 거예요 큰 돈이지 그때 어불 큰 돈이에요 근데 내가
거기랑 뭘라 했냐면요 내가 그거에 딱 두 배 백구를 주고 거기에 핸드폰까지 주겠다라고 했어요 왜냐면 어차피
그때는 한국 핸드폰을 갖고 들어왔어야 되는데 나는 그냥 구경만 넘으면
핸드폰이 필요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러면 그 핸드폰을 버리는 니 그 사람한테 주는게 더 좋잖아요 그래서
내가 핸드폰까지 주겠다 어차피 심은 못 쓰더라도 단말기는 쓸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근데 제가 이사 13을 썼어요 평양 이사일 3이라고 비싼
핸드폰이었다 하니까이 사람이 완전 풍문을 하고 오버를 하는 거예요 어
당연히 나 드려 모줄 수 있 그람아요 너무나 큰금액을 했었 그리고
나도 그게 위험하다는 거를 알았지만 좀 더 우리 가는 그 길에 어
확실함을 부여하고 싶었던가 봐요 무 간다 무조건 가야 한다 예 어차피
가다가 잡히면 이돈 수도 못 할 거고 나는 좀 더 그렇게 돈을 퍼 주고라도
확실하게 해상까지 들어가고 싶었어요 우리 장미씨 마음 가 이렇습니다 지금
가라 뭐 하나 한다 그러면 얼마나 확실하게 역시 그 성격은 어디 가지
않네요 그래서 그 사람 따라 들어갔죠 그래서 해상까지 갔고 어 오빠하고
서식이 다와서 오빠랑식이 못 브로커 서식이 다 왔죠 그래갖고 그 들어가는
그때 한방이 펑펑 내렸어요 북한이 예 한방이 내렸는데 그때가 몇 월이
그때가 11월 17일 9년 11월 17일 이었어요 눈이 펑펑 내리는데
저는 되게 좋았어요 왜냐하면 축복처럼 느껴졌던 거예요 그 눈이 그니까
의미를 부여하게 타시죠 낭만이 아이콘이 그래서 아 우리가 가는 뒤를
축복해 주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눈이 내리면 그 압록강을 건는
때 발자국이 찍혀서 먹 꿨는데요 그거를 해산에 들어가서 알았어요 예 건너려고 하니까 안
된대요 그래 저 왜 안 되냐라고 물어봤더니 발자국이 찍혀서 지금은 건내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와 축복인
줄 알았던 눈이 이렇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래서 며칠 먹었겠네 며칠 먹었죠 근데 그때 4일 정도
묵었는데 한 열흘 정도 더 먹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럴 수가
없다 겠죠 왜냐면 가족이다 집을 떠났잖아 그리고네 어 머물러 있으면 안 좋지 예 오래
머무를수록 되게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안 된다 나는 당장 며칠내로이
압록강을 건너야겠다 빨리 대책을 마련해 달라라고 하니까 다른 브로커한
저희를 이관해 졌어요 오 그러면 우리 쪽에서는 못 건내 주겠다고 하니까
다른 쪽으로가 봐라 해가지고 다른 사람이랑 또 연결이 돼 가지고 그 사람한테 갔어요 그 사람은 뭐라고
할까 도강증이라고 하거든요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다가 그 무차별적으로 정 건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정말 우리 운명을 이런 불안정
속에 맡긴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처음에서 배타고 좀
안전하게 어느 정도 커버를 해 주는 건데 무작정 가겠다고 하니까이 방법밖에 없어라고 하면서 스스로
알아서 강을 건너야 되는 길을 선택하 했던 우리 장 근데 그 내가 보기에는
북한에서 이렇게 중국쪽으로 바라보면은 그 이렇게 방파제가 되게 높거든요 거기를 어떻게 그래도 어머니하고 같이
넘어올 수음 있었어요 좀 막 그렇게 높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 사람이 안내를 해줬어요 아 그래서 다행히
그래도 높지 않은 것 예 넘지 않은 것으로 넘었고 그리고 거기가 해산해
이게 딱 중심은 아니었는데 그 중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어요 예
아 그랬구나 그래 갖고 어쨌든 철조망이 해야 되는가 그런 것들이 다
두려워져 있는 그런 것이었어요 그데 다행이네 어떤 사람들 보면은 막 방파제를 넘으라고 그래가지고 몸이
올라가지 않아서 안을 쓰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는 그런 사람들은 해산 시내에서 넘은 사람들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막 하수구 같은 그런데 들어가다 보니까 이렇게 쓰레기가 막 걸려 있어서
넘어오지고죠 어지죠 그래도 그래도 어머니 모시고 그나마 다행이네 역시 우는 좋아
그래서 중국에 딱 넘어왔을 때 혹시 뭐 옷을 갈아입으라고 주던가 뭐 맞아요 졌었어요 우리가 딱 넘어왔는데
그래도 그 사람이랑 같이 넘었단 말이에요 그거 좋았어요 그 사람이 한국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었어 가지고
넘자마자 바로 연락을 내서 차가 왔어요이 차가 왔고 사람들이 거기
안에서 엄마랑 나랑 옷을 갈아입으라고 이런 패딩까지 주는 거예요 압록강을
건넜으나 하이가 다 젖어 있을 거 아니에요 체 언니가 그 그 사람들한테
얘기를 할 때 나이 키는 얘기를 했던 거 같아요 165고 그래서 좀 큰 멋이 왔는데 우리 엄마 키는 얘기를
안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아마 뭐 어림짐작으로 샀던 거 같은데 우리 엄마한테 크잖아요 그 이게 패딩이
작아서 채워지지가 않는 거예요 했어 편안치 않게 왔어요
불편하게 옷을 입고 왔어요 그래서 거기서 어 해산해 떠나서 바로
그다음에 어디로 갔죠 회사에서 떠나서 중국 장백기가 아 장백 예 장백 차를
타고 어쨌든 한번 길게 머물렀던 것이 있는데 그것이 청도 있어요 아
청도까지 바로가 그고 명을고 거기에서 청도에서 일주일
생활했고 거기에서 다시 차를 타고 권명은 당연히
지나겠지 잘 모르겠고 라오스 산을 넘었죠 라우스 산 넘을 때 힘들지
마은 없이 아팠는데 어떻게 그랬 근데 우리가 넘은 산이 어렵지가 않은
코스였던 거예요 걸어서 시간이었어요 아 진짜 예 근데 뭐 어떤 분들이
얘기를 들어보면 시간도 사실 짧은 코스고 막 몇 시간을 걸으셨다
하더라고요 아니 멀게 말할게 없이 우리는 온밤 저녁 8시부터는 새벽 시까지 걸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저
주경이 같은 경우에는 걷지를 못했어요 애가 관절염이 심해 가지고 그래서 다리 하나를 질질 끌면서 정말 많이
울면서 남았어 저희는 조금 쉬운 코스를 예 그래서 국 남민 수용서
고쳐서 한국까지 왔고 여기 와서 사랑하는 아드님과 함께 또 이렇게 행복하 마가 고살
있 북한에 있을 때 장사해 본 적 있어요 나는 장사는 안 해봤고 영상
제작을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프로덕션을 운영에는 봤죠 그니까 사업을 했네요 저처럼 꼴목 장사가
아니라 장사나 사업이나 비슷비슷하죠 어쨌든 제가 했던 일도 서비스 업이고
근데 기술 업종이 서비스 업이다 보니까 그래도 조금 한마디로 말해서
코대를 세우고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너을 해봤어요 노동을
해봤어요 아 아 진짜 어디서 어디서 제가 대학교 다닐 때 평양식 대학생들로
건설 조직하라는 그런 명령서가 하달이 됐어요 그래서 갑자기 공부를 하다가
건설자 끌려 나갔죠 근데 많이 해보지는 않았고 흉내를 낸 정도라고
말할 수 있는데 힘들더라고요 덩이는게 참 힘들어요 맞아 사든 어머니가 눈에 그러셨거든요 아이들 전에 물한방울 안
무치고 정말 금미 오기와 키운 내 새끼들이다음 장은 동을 경험을 안
했을 것 같았는데 대학교는 역시 대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었고 그리고
영천 동원이라는 것을 나가요 중학교 때 그래서 제가 농천 동화를 한번
나갔는데 농사일이 너무 힘든 거예요 그냥 고행이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었는데 막 손에 물집이지고 난리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엄마한테 가서
다시는 나 엉천 덩어 나가기 싫다라고 하니까 그때부터는 아마 더어 엄마가
예 를 빼 주셨고 그때부터는 쭉 일을 안 했어요 순이 말하는 노동이라는
일을 안 했고 대학교 가서는 그냥 물 나르는 정도 그러던 우리 장미 양이 한국에 와서 제일 처음 했던 알바가
뭐죠 수시집 알바 수시집 알바를 하면서 제일 기억이 남는게 뭐예요 어 되게 어려운 매료를 쓰고 합성어를
많이 사용했던 걸로 기억이나요 그래서 그 어렵게 변 합성어를 오빠한테 와서 사용해 보기도
했었고 오빠 이런 단어 알아 어 그러면 아이 이런 야 지금 생각도
안나요 카슬라 아 카슬라 카스랑 테라 주세요 이런 말이더라 이제는 기억도
안나요 다 까먹었어요 너무 어려운 단어들이 조합이라 기억도 안나요 저도
횟집에 처음에 갔는데 다대기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아이 다대기가 뭐지 다대기가 뭐예요 양념 양념을 거기
다대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와 다대기 다대기가 뭐지 하고 그냥 막 설레바리
고 그러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초밥집 알바를 열흘도 못 했어요음 많이 안 했네 그게 너무 힘든 거예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서빙이 아니더라고요 제가 와서 쭉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원래 그렇잖아요 우리가 하나원을 졸업하면 6개월 동안 일을 못 하게끔 해요 그냥 한국사에 대해서
저 더 잘 알라고 근데 제 마음이 그렇지가 않아 가지고 뭔가 하나라도
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그때 첫집 알바를 했었는데 그때 알았죠 아 일은
나랑은 안 맞는 일이구나 내가 잘해낼 수가 없는 일이구나 사실을 그때
알았었죠 예 히집 다니고 그리고 그 다음에 했던 일이 뭐였죠 그다음에
했던 일이 영상 제작 일이었어요음 그 영상 제작 일은 제가 북한에서 영상 제작기를 했었으니까 그쪽 전공을 살린
거고 그리고 그 이후에 했던 일이 영상 제작하는 조금 동떨어진 일이긴 했는데 어쨌든 마케팅 관련 일이었고
그 영상제작 관련 일을 하면서 북한 사회와 한국 사이에서 추구하는 것은 분명히 달랐을 텐데 그니까 저희가
북한에 있을 때 조직 생활을 많이 안 해 봤어요 그렇다 보니까 조직문화에
대해서 잘 몰라요 아무래도 한국 사회가 조직 생활이 좀 더 빡센 거 같아요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
보자면 한국은 굉장히 경쟁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잖아요 북한 같은 경우는
자본주의가 아니고 사회 주의다 보니까 막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요 예 그래서 나도 열심히 일 안
하고 저 사람도 열심히 일 안 하고 다같이 일 안 하는 그런 서인 거죠 그래서 예 시험시험해 이런 말을 많이
해요 이런 것만큼 벌수가 없으니까 없으니까 너무 빡세게 일하지 말고 시험시험해 템포 맞춰서 해 이런
분위기고 한국은 아니죠 나는 열심히 일하는 거 같은데 쟤는 열심히 일 안 하네 그러면 당연히 그 노임의 대해서
생각을 한번 해보고 예 뭐 불만을 표출을 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일할 수 있는 문화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쉽게 일할 수 있다는게 좀 가벼운 마음으로 이렇게
일할 수는 없었던 거 같아요 저도 정말 공감하는게 여기는 어쨌든 자본주의가 뭐 개인 이기주의가음 하다
보니까 정말 그 자기의 급여가 우리의 능력이네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거라서
다른 사람이 안 되면 내가 올라서는 어찌 보면 그러한 서바이벌 같기도 하고요죠
저도 힘들었어요 저도 한국에 올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한국이라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고 죽자 생존인 사이다라
생각을 했어요 근데 와 보니까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치열하지 않아요
그니까 당연히 이런 복지 같은게 잘되어 있어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아요 어찌
보면 자본주의 저원 점과 사회주의 좋은 점을 이렇게 뒤섞어 놓은 거
같아요 뭐 덴마크 그런 사회 민주주의 라고 하잖아요 거기는 굉장히 세금을
많이 떼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한테 복지로 베푸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차원에서는 당연히 그런 거를 좀 사회주의 적으로 보는 거고 그냥 자기
능력에 맞게 돈을 벌고 그리고 그런 세금도 똑같이 네고 이런 거는 좀 더
자본주의 쪽에 근접되어 아무리 북한에서 한국에 대해서 많이 드라마를
통해서 버고 봤고 이런 우리 장미 씨도 한국에 와서 생활적인 거라던가 음 교통을 있었어 그 어떤 어
시스템에 있어서 되게 어려움을 겪을 것 같은데 대중교통을 처음 이용했을
때 저는 그 배리는 거를 몰랐어요음 그니까 북한 같은 경우는 대중교
통님의 정거장마다 의무적으로 썼거든요 근데 여기는 만일에 내리겠다는 사람이
없고 타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딱 배를 눌러야만 세워 준단 말이에요 근데 저는 그거를
몰랐어요 그래 갖고 지금 다음 정류장이 저희 집인데
기사님 뭐하시는 거예요 저희 집에 세워 주셔야죠 기사님한테 기사님 저
아까 그 정류장에서 섰어야 됐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니까 아니 그러면 아가씨
배를 눌렀어야죠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죠 아 그래서 저 빨간 어
벨이 있구나 있었구나 그래서 알았죠 우리 북한 사람들은 그걸 스위치라고
하죠 빨간 스위치가 있었죠 오랜만에 북한하고 한국하고 다른
문화였고 제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나는 우리는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쓰고 당연히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사회에 대해서
이질감을 느낄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음 우리는 너무 비슷할 거야
드라마를 봤던 뭐 다 이해가 되고 그러니까 해 왔는데 여러 부분에서
차이나는게 몇 개가 있었어요 친구 관계도 그렇고 그냥 내가이 사회에 속
속해 있지 않는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냥 이방인이 느낌인 거예요 되게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고
했잖아요 되게 북한에서는 제가 공부를 많이 한 케이스예요 뭐 여러 가지
책도 많이 읽었고 부모님이 영향으로 그리고 대학교도 가대 학교 갔으니까
또 열심히 공부를 했겠죠 예 그래서 되게 저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리고 항상 열린 마음이었고 그 그쪽에서 나는 되게 생활로는
만족한 생활을 했던 거 같아요 아까 알바를 했었다고 했잖아요 어 서빙을
하러 가고자 하는데 사장님이 막았어요 장미 씨 가서 그 메뉴를 받지 말라는
거예요 주문을 받지 말래요 그래서 이유 이유를 물어봤더니 혹시 장미
씨가 사트리 쓰면 북한 사람이라는게 친하니까 그런 부분이 염려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아 이거 뭐지음 그니까 사람마다 생각하는게
달라요 근데 난 그분이 우려를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당연히 우려할 수 있는 부분이고 북한
사람들이 굉장히 소수였기 때문에 그분은 충분히 우려를 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을 하지만 그분의 입장보다는
당연히 나의 입장이 먼저잖아요 나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내가 누군가한테
가서 주문도 못 받는 아이가 되어 있거나 그러니까 나의 상태를 그 말이
딱 대변해 줬던 거 같아요 어 상처 해 보구나 어 그래서 아 뭐지 내가
누군가한테 가서 주문도 못 받는 아이가 되어 있네 오느새 그런 생각을 했었고 그리고 우리가 뭐 면접 같은
거를 여러 번 보잖아요 그러면 내가 북한에서 왔습니다 당연히 나의 얘기를
이렇게 듣다 보면 살짝 여기 한국 사람들이랑 말투가 달라요 사용하는
단어도 다르고 문법도 조금 다르겠죠 소에는 생각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어 근데 외국에서 오셨어요라고 항상
질문을 하셨고 나는 그때 당연히 뭐 외국이라고 뽕을 칠 도 있었겠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얘기를 했죠 그러면 들었던 얘기가 혹시 택시를 하나요음
택시 응 그 북한에 택시가 없다고 그렇게 들었어 가지고 자기가 물어봤다
나중에는 그렇게 질문을 해 주셨어요 그 택시라는 말이 외려아서 네가 이런
외려 아니냐라는 질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북한이라는 사회가 워낙에 거의
원시적인 사회로 여기에서 비춰지니 그 사회는 아마 택시도 모를
거야라는 선입 기원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또 아 내가 어쩌다 이런
질문을 받는 아이가 되었나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는게 많은 탈북민들 속에서 증언을 통해서
지금 사회에서 여러 가지 어 이런 데이터들이 돌아가고 있는데 장미
양처럼 평양에서 공부를 했고 평양을 진짜 제집 하들 듯 다녀다는 이런
사람들은 택시도 알고 정말 이제 무슨 말을 해도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음 있 저희처럼 시골에서 산 사람들은
전혀 택시를 타본 적이 없어요 그냥 먼발치에서 보고 아 저거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만 돈이 있는 사람들만
타는 거보다 나하고는 덩 떨어진 사람들이다 생각했고 이처럼 어 그러한
증언을 통해서 아마 어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좀 우리가 감안해야 되고서 그 만일
내가 네가 상대성 일원을 알아 그리고 요즘 새로 만들어진 브랜드인데 네가
루이비통이라는 걸 알아라고 질문을 했으면 저는 그 얘기에 상처를 안 받았을 것 같아요 당연히 그거는 모를
수도 있는 부분이고 브랜드라는 건 굉장히 많이 생겼다가 소멸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거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면 저희 자존심을 건질 수는 있었겠죠 근데 네가 가서 주문을 받지
마라 이런 얘기들은 확실히 나한테 타격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 당시에는
그래서 생각을 했죠 와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니까 내가 그때 느꼈던 여러 감정들은 주변에서 저는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아무래도 여기 오면 이방인이고 너희 위치는 네가
생각하는 거 이하로 떨어질 거야 어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런 경고들을
가볍게 무시했죠 괜찮아 나는 그쪽 나라에서도 잘 살았고 여기 와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을 했는데 왕따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런 말들이 익숙치가 않았어요 어쨌든 어 되게 낯설었어요 이모가 이해를
하실지 모르겠네 안타깝습니다 장의기를 들
음복 왔던 여기 와서여 사람들의 그런 헛된
발언으로 해서 정말 소외감을 느꼈고 어 상처를 받았다라고 하니까 아 정말
선배로서 어떻게 위어를 해줘야 될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데
그렇게 생각을 해야지 안 그러면 뭐 어떡할 건데 그래서 내가 장서방 데려오겠다고 할 때 좀이 이었던거
북한에서 부러운 거 없이 살던 친구가 [음악] 음정이 게는 자 할까 무서웠던 거지
근데 너무나도 잘 이겨내고 또 우리 사 어머니가 또 자식들을 지금도 잘 케어를 해주고 있어서 그나마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한국에 와서 제일 행복했던 거 만약 집 거부한다면 어떤 걸까요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당연히
비행기의 몸을 싫었을 때 제일 행복하지 않았나라고 생각을 하고 여기 와서는 정말 다사한 일들이 있었어요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행복한 거 같아요 정착기는 너무
정신이 없었고 지금은 좀 많이 행복한 거 같아요 제가 보는 장미에에서의
행복했던 순간은이 친구가 게임을 되게 잘해요 맞죠 게임할 때 나 게임 진짜
재밌게 잘하잖아요 카는 인터넷이 없잖아요 그래가지고 국구
인프라로 컴퓨터 스무대 연결해서 게임을 해요 예 그리고 내가 북한에 있을 때
PC 방을 자주 다녔
대연는 거의 리다 출근을 했던 거 같은데 정말 거기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죠 근데 대부분이 다 남자들이고 여자는 저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조금 북한에서 재미없는 시간들을 그
게임으로 보상 받으면서 보냈던 거 같아요 근데 지금 여기 한국에 왔어이 게임은 여기 와서는 당연히 막
20명씩 거기서는 아는 사람하고만 했다 면 여기는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는
거죠 그래가지고 뭐 중국 사람도 있고 일본 사람도 있고 영국 사람도 있고 다 있어요
어 어쨌든 재미있게 게임을 하고 있 근데 너무 빠져 있지는 않고 그렇죠
일하면서 간간히 하는데 제가 한 번씩 일 와볼 때마다 컴퓨터 원자는이 친구의 얼굴이 너무 흐뭇하고
만족스럽게 그래서 궁 그 커퓨터 그 게임에서 버니는 레벨이 어느 쯤인가요
그게 뭐 전설 불멸자 뭐 쭉 있어요 근데 어쨌든 그 가운데 레벨이에요 가운데 저희 오빠가 제일 상이 딱 그
아래 레벨이에요 아 진짜 장소 방이 근 게임을 많이 해서 받는 레벨인게
아니라 게임도 많이 하고 그만큼 승률이 높아야지 레벨이 올라가요 근데
저희 오빠는 그 두 가지를 다 했다 어 대지 못하는게 뭐야 

북한 이탈주민의 취업 전쟁 in 서울 | 장혁 크리에이터


북한 이탈주민의 취업 전쟁 in 서울 | 장혁 크리에이터

NEADEC 동북아개발협력연구소
===
Transcript


[음악]
사실 어 어떤 직업을 갖고 사느냐가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북한
이탈 주민에게서 이제 취업과 진로는
그냥 단순하게 어떤 빛나는 삶을
사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생존이냐
많냐 할 정도로 점유한 문제
하나입니다 어 보통 취업의 반대말을
우리가 생각할 때 실업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북한 사회 특성상
이런 적으로 실업은 없는 사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북한에서 사는 사람들이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편이고요 취업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살다고 온 사람들이네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되고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되고 또 취업한 이후에
그 취업을 지속적으로 끌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처음 살아가는이
세상에서 거의 거의 생존의 위협을
받는만큼 처해야 문제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러면 북한에서
거의 20대를 보내고 30대 이후에
삶을 살다가 오신 분들의 취업과
진로에 대해서 한번 짚어볼 시간인데요
우리가 보통 취업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 본인의 커리어라는
본인의 경력 그리고 본인의 자격 이런
것들을 준비하게 됩니다 일명 뭐
라이센스와 커리어 이런 것들을 잘
관리해서 연봉이 높고 유리하고 좋은
직업을 갖는데 쓰죠 하지만 북한에서
사 온 사람들의 특징상네 그들이 하고
있던 일과 대한민국에서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북한에서 과거
일했던 경력과네 전문가 자격이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북한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8년
정도 하고 대한민국에 입국을 했지만
사실상 그 8년의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고 있던 일이 다르기 때문에네
충분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네
it 상황이 그 정도이니 다른
직업들의 경력을 인정해 준다는 것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또한
북한에서네 전문가 직업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의사라 그가네 뭐 교사라 그가
이런 직업들이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라이센스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제
지인의 사례로 한번 설명을 해
드린다면네 북한에서 한의학을 전문하는
분이 있는데네 이분은 대한민국
입국에서 15년 동안을 면허가 없이
사실 돌파리 의사로 약을 지워주고
그런 일을 하셨대요 어찌 보면
불법적인 활동인데 그 어쩌다가
어쩌다가 국회의원의 그 병을 거쳐 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뭐 이렇게
쉽게 좀 더 가능성 있게 그 라이선스
같은 시험에 도전할 기회가 생겨서네
최근에는 한의사로 정식 인정을 받아
가지고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이렇듯
북한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에 와서 그
경력을 인정받기 상당히 어려운
환경입니다 또한 저희 어머님 같은
경우에도 북한에서 교사회를 10년
넘게 하셨는데네 대한민국에 와서 교사
사이를 못 한다고 불만을 품으셨던
적이 없으십니다 또한 그 유사한
사례로이 국문학을 전공한 많은 교사
출신들이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이제
북한과 남한의 언어의 차이로 인해서
실질적으로 교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고 그 건설 현장에 나가서
이제 그 배수가 늘리는 작업을 하시는
그런 분의 사례도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북한에서네 30 이후의 삶을 살다
오신 분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인정받지 못하고 본인의
경력을 단절되는 그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이로 인해서 북한이 될
주민들이네 취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 그러면 어린
시설에 대한민국에 입국한 젊은이들의
진로와 취업은 어떤지 한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네 북한에서 대한민국에
입국을 하게 되면 젊은 친구들의
경우에는 이제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
시스템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대한학교
불리는 것에 가서 보충적인 교육을
받습니다네 그런데 어 제가 대안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까
대부분의 의 여성들의 경우에는 간호사
직업을 원하고 남성의 경우에는 물리
치료사 직업을 원한다고 하더라고요
성별에 따라서 가야 되는 직업이
결정된 셈으로 그 직업에만 초점을
맞추고 전문적인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 사실 저는 이것에
대해서 별로 나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왜냐면 이렇게 그 전문성을 갖춘
직업은네 그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편견과 차별 없이 분야에서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분이거든요 자 그러면 대한학교 가지
않고네 대학을 진학해서 다양한
선택지를 가진 학생들의 취업의 사례를
한번 좀 들어 볼 건데요네 제
주변에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학과를 졸업해서 실질적으로 그 취업의
경쟁력을 충분히 갖춘 그런 사례들도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그 친구들이
취업을 못 하고 있습니다 어
실질적으로 정말로 좋은 직업 실내로
뭐 의사라 그가 사람들이 많이 원하는
금융권 그리고 뭐 이런데 취업한 몇
안 되는 그 친구들의 과거를 보면 그
친구들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경우가
많았고요 그 이후에 연고대를 졸업한
경우에도 취업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
가정을 목격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는 점은 북한 이탈 주민이
하이 스펙의 그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그들이 특례 입학이라는 것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사회가인지를
하고 그들의 재능에 대해서 네거티브를
먹인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런 부분은
북한 탈 주민들에게 이렇게 교육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주는 좋은 취지가
오히려 악용되는 사례로 받아들여
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그런 정치성을
활용해서네 대학 좋은 대학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내 취업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특별한 사례로 이제 북한 이탈
주민의 경우 이제 학업에 뛰어난
성적을 보이는 친구들이 간혹 있어요
이런 친구들은 이제 미국에 가서 내
박사까지 하고 오는 그런 좋은
경우들도 있는데요 문제는 한국사에
돌아와서 다시 취업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이유는요 북한이 주민의
특성상 이공개 석학이 거의 없고요
이문학 쪽에서 석박을 마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들은 다시 북한학이라는
이런 그들만의 정체성 때문에 그런
학문에 국한되게 되고 이런 학문의
특성상 취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걸로네 많이 목격이 됐습니다 이미
이사회 정착한지 10년이 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사에서
사회 구성원으로 제대로 살아가는데
대학만 안 조업해 충분하다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로 대학교 진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이제
탈북을 해서 처음으로 방콕에 있는
이민 수용소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민
수용소에 들어가면 이제 한국사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책 중에
하나가 이제 한국사의 직업 가이드라는
책이 있어요 어 북한에서 그 경험했던
몇 한대는 직업과 달리 대한민국에서
직업의 종은 100종이 넘고 훨씬
다양한 직업이 있는데 제 경우에 그
사례로 말씀드린다면 그때 여러 가지
직업 중에서 그래서 연봉이 얼마더라
뭐 이런 것들이 많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연봉이 제일
높은 직업을 보니까 막 이렇게 뭐
전기 기능사 아든 뭐 이런 직업이
눈에 많이 들어왔던 거 같아요 이렇듯
그 우리가 처음 사회로 들어올 때이
직업에 대한 준비의 정도가 어느 정도
필요한지 이런 것에 대한 고민보다는
좀 더 그 액수라 그가 좀 더 이렇게
화려해 보이는 직업 이런 것에 대한
그 접근이 좀 더 용이하게 그 생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 이탈 주민의
많은 문제들이 그리고 저희가 한하원
같은 경우에서 이제 사회 적은 교육을
받고 수려하기 전에 나름 그 성공한
정착 사례들을 이제 많이 보여 주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이제 뭐 귀농에
성공한 사례라 그가 이런 것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오신
분들의 특정상 이제 농민이라는 계층은
이제 국가가 의도적으로 그 성분을
벗어나지 못하게끔 이렇게 네거티브가
존재하는 그런 직업군이 그든 그러다
보니까 이제 기능한 사례 같은 것들을
많이 들려주면 그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뭐야 나 농사나 지우라는
거야 무슨 나는 좀 더 화려한 삶을
살려고 왔는데 나 뭐 염소 기르고 뭐
닭 기루 오일 기르고 이런 거 하기
싫어 이런 식으로 되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있어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직업 경쟁력이라는 거는 그
모두가 외면하는 곳에 가야지 경쟁력이
사실상 존재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대한민국 사회에 충분한 정보력이 없기
때문에 그것도 충분히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지만 때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제가 이제 한국에 정착한
이후에 직업 교육을 어 받으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고 저 같은 경우에는
이제 게임 개발자 그 직업 코스를
갔었던 적이 있는데 어 저 3일을
다니고 그만뒀습니다 가장 컸던 이유가
제가 3일 정도 다니고 보니까
주변에서 함께 공부하는 그 대한민국
친구들이 사실 it 대한 거의 배경이
없는 그런 친구들이라고 그래서 어
내가이 친구들하고 같이 공부할 수준은
아닌 거 같다라고 생각해서 내
도망치던 나왔는데 어 이런 식으로 그
막연한 직업 교육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개인의 영향에 맞춘 그런
직업 교육이이 추천이 돼야 되거든요
그런데 가장 아쉬웠던 점은 또 뭐냐면
우리에게 직업 상담을 해 주시는
분들이 이제 북한 이탈주민 뭐
재단이라 그가 남북 하나 센터 이런
데서 근무하시는 분들인데 어 그분들의
취업 사례가 결국에는 그분들은 그곳에
취업한 계 취업사례 전부였을 가능성도
크거든요 그러다 보니까네 상담을 할
수 있는 영향이라다는 그냥 본인이
알고 있다는 그런 베스트를 이제
어필하는 그런 가정으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런 현실적인
그런 상담이 진행되기 어려운 환경도
있습니다 자 그래서 지금 북카 이탈
주민의 취업을 어떤 각도로 접근해야
돼야 하는 문제인데 정말로 공부를
해야 되냐 취업을 해야 되냐 이런
것들이 가장 큰 갈림길에 놓여
있거든요 그래 사실 우리가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공부는 꾸준히 해야 되는
것 중에 하나인데 북한 이탈 주민의
그런 지원 시스템을 보면 이제 학교로
지나가게 된 경우 받게 되는 교육비
지원 혜택과 취업을 하게 되는 경우에
받게 되는 이제 그 취업 보수 수당에
관한 혜택이 극명하게 갈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공부를 하냐 취업을
하냐 이런 것에 대한 양자 태의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 이런
것으로 인해서 사실 학업에 그 꾸준히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 좋은
성과를 낸 분들이 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좀 더 북한이
주민 커뮤니티에서는 어 공부를 하는
것이 조금 뜬 그름 잡는 얘기다
현실성 있게 어 남들이 깊이하는
직업에 가서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이사의 일원으로서네 본인의
정체성도 찾고 자신감을 찾는데 좋은
대안 중에 하나다라는 떠오르는네 그런
현상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
훌륭한 사람을 살기 위해서 교육이네
그 무엇보다 중시돼야 된다는 것은네
분명한 사실이고요 지금 이런 정도로
편향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긴 하지만 그만큼 네
북한 이탈 주민들이 취업과 그 진로를
고민할 때 본인의 정체성과 이사의
경쟁력을 잘 고민을 하고 접근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어
최근 들어서 그 유튜브 같은 것도
많이 활성화되고네 북한 이탈 주민
여성들 중에서 이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고 과거에 비해서
본인 스스로 돈을 벌고네 경제적인
자유는 독립은 사실 그들이 정신적인
만족이라 그가 그 자존감을 높히는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분야에서 긍정적인 신호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 이탈주민 정착
20년 가까 역사가 이제는 계속되고
있고요 뭐 우사를 비롯해서네 변호사
이런 전문직들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런 긍정적인 신호들을
좋게 보고 있으면서 어 이제 서울시를
비롯한 많은 지자체들의 이런 관심과
응원이 지속되고 있으면에 우리 북한
이탈 주민들이 좀 더 좋은 직장에서
좀 더 지속적인 고용과네 이런 좋은
양질의 일자리를 접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북한 이탈주민이 말하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 | 장미(북한이탈주민)


북한 이탈주민이 말하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 | 장미(북한이탈주민)

NEADEC 동북아개발협력연구소

【장 미】 대한민국에 와서 핑크빛 인생이 열렸다


【장 미】 대한민국에 와서 핑크빛 인생이 열렸다

평양여자나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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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957 views  Jul 28, 2023  #평양 #평양부부 #나민희
채널에 가입하여 혜택을 누려보세요.
   / @평양여자나민희  

안녕하세요^^ 
평양여자 나민희입니다.

==
Transcript


[음악]
여러분 안녕하세요 나미미입니다 드디어 저희 채널에 장미 언니가
출연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라면이 채널에 출연해서 너무 기쁩니다
지금 감정이 살짝 격앙되어 있어요 사실 위니 씨가 평소에 이런 터는
아니거든요 근데 엄청 지금 실제 턴이랑 영상 찍을 때 턴이랑
극명하게 차이가나요 아 제가 이제 편집을 하면서 보니까 조금 확실히
다운되어 있으면 맞아요 편집할 때도 그렇고 또 완성된 영상도 보니까
밝아야 되겠다 아 맞아요 그래서
영상을 찍었는데 너무 영상이 쓸게 없는 거예요 저도 그때 생각했죠 아 이거 이거 촬영하는 분들이이 톤이
장난 아니구나이 정도의 텐션을 올리려면 어느만큼 열심히 촬영해야 되는지 잘 알겠더라구요 그때
언니 좀 초청하다가 좀 얘기를 좀 해봐라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진짜요 그래서 제가 이제 전화를 드렸었는데 그때 언니가 개인적인 사정이
그러다가 결국 드디어 이렇게 멋있습니다 너무 너무 반갑고 너무 좋아요
근데 정말 놀라웠던게 무조건 가자 언니가 막 적극이고 아슬아슬했죠 하마트만 못
할 뻔했습니다 여러분 코로나 딱 직전에 오셨잖아요
아마 아마 지금도 북한에서 그러고 있겠죠
코로나 이후로는 정말 언제 더 막막해졌잖아요 거의 불가능하죠 진짜 그때 아니었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언니랑 얘기를 할 수도 없고 우리 시청자분들이 언니를 알 수도 없었던 거예요 야 생각만 해도 너무나도
진짜 다행이다 진짜 운명이야라는 말을 많이 해요 그때
오지 않았더라면 세상의 역사에는 뭐 했었더라 이런 말은 없대요 뭐 그
사람이 죽지 않았더라면 뭐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많이 낙벌 내용이
승리했더라면 역사에는 그런 했더라면 없지만 그런 얘기를 자주 해요 만일
조금만 듣게 결정을 했더라면 [음악] 얼케가 늦게 전화를 했더라면 이런
얘기를 계속 하는 거죠 그러니까요 지금 이렇게 또 오셨으니까 그런 얘기도 정말 웃으면서 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고 그게 정말 궁금한데 그때 왜 그렇게까지 이제 무조건 가야 된다
오빠도 이제 그러셨는지 맞아요
옛날부터 한국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어요 옛날부터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거든요 전 한 푼 지워보지 못했어요 우리 엄마가 그 정도로 저희를 엄격하게 키우셨고
학교 그리고 공부하건 학교 학원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살다 보니까 내 삶이
없었어요 영화도 못 봤을걸요 북한 영화도 못 봤어요 그리고 대학교에 딱
갔는데 엄마가 그때부터는 자유를 주셨어요 이제는 성인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거 낙제를 맞아도 엄마가 뭐라고 안 하고
내가 뭐 무슨 짓을 하거든 엄마가 아예 상관을 안 하겠다 그랬어요
근데 그때 가서부터 이렇게 조금씩 한류에 물들기 시작했어요 오빠
친구가 한국 드라마를 적거든요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제가 제일 첫 번째로 본게
선이야 사기꾼이에요 저도 봤어요 봤어요 안재욱 나오는 거 맞아요
맞아요 거기서 제일 명대사 나오잖아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하고 있어요 그게
언제 때 대사를 사기꾼을
봤는데 사기꾼이랑 우리가 일반적으로 나쁜 이미지가 인식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그때 생각을 이게 패러다임이 전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때 사기꾼이
입장에서 그 드라마를 시청하니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거를 먹어 완전 한류에 빠졌죠 한류와 사랑을 하게 됐죠 그걸
시작으로 진짜 웃기게 해도 내가 멋진 영화를
많이 봤는데 두 번째로 봤던 영화가 태왕사신이었어요 배용준 씨가 나오는
드라마였는데 제가 그 드라마에 푹 빠졌던 거예요 그때 그
고려시나 전설이 막 나오면서 뭐 백룡 주자 그리고 현모 막 이런
것들이 나오잖아요 신화적인 여서랑 같이 결합해 가지고 시나리오가요
[음악] 단군에 대한 걸 다른 당근이 아니고 그 뭐야
땅을 넓혀가는 왕 있잖아요
내용이었어요 너무 재밌게 번거예요 근데 사실 제가 성향상 이게 로맨틱한 드라마를 별로
안 좋아해요 좀 더 스릴 있고 좀 더 극적인 드라마를 저하거든요 근데 제 취향하고 너무 딱
맞았던 거예요 그래서 그거까지 보고 결정을 했죠 결심을 했죠 아 이제부터
내 인생에 한류가 없으면 안 되겠구나 그때 운명을 직감했죠 나는 얘랑 앞으로 쭉
갈거다 진짜 그럴 정도가 됐죠 왜냐하면
영화가 아니면 따로 즐길거리가 있어야 돼요 근데 줄일거리가 사실 없었거든요 저희
여기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저희는 초대라고 하거든요 학과를 한게 학과를 서대라고 해요
서대를 다니러 이루어지는데 여자가 저 혼자 밖에 없었어요 너무너무
외로웠단 말이에요 맞아요 유일하게 내 친구가 되어준
뭔가가 바로 한류였어요 사실 오빠랑 같은 집에서 제가 반자가
생활을 했었거든요 또 오빠는 뭐 자기 친구들이 있으니까 오빠 얼굴을 같은 집에 살아도 거의 못 봐요
[음악] 우린 또 뭐 방이 각자 뭐 다르고 여러 개고 이렇게 하니까 그냥 오빠
왔어 이런 식으로 그냥 생활 공간이 아예 안 겹치는 거예요 그래서 말이
외로웠는데 그때 정말 한류가 든든한 친구가 되어졌어요
그러면서 막연하게 그런 생각은 해 보셨나요 한번 좀 가보고 싶다 그래서 할례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나한테
커지기 시작했죠 한류에 대한 관심이 막 커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라든지 이런 것보다는 사건에 집중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안 해 드라마를 보면서 마지막에 봤던 드라마가 펀치하고 그리고 미스터
션샤인인데 미스 선수였는데 거기를 정치적인 성향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지금이 저선이 그 옛날에 저선이랑 똑같구나 점점 드라마를 많이 보면 이제
스토리가 뻔해요 사랑스토리는 뻔하니까 그런 것보다는 좀 더 좀 더 우리한테
많은 메시지를 주는 드라마에 집중을 하게 되더라고요 보면서 생각을 하게 되지
계속 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애니메이션도 굉장히 많이 봤어요 여기서 보는 라푼젤이라든지
겨울왕국이라든지 북한은 겨울왕국의 얼음공주거든요 그리고 라푼젤이 라푼젤이에요 그리고
여기서 빙하기를 하거든요 아
그래요 그런 것들을 많이 접했어요 제가 말이 접하면서 와이 나라를 뜨고 싶다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단절했어요 그런 것들이 막 쌓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에 그러니까 제가 어릴적에는 몰랐지만 커서 보니까
차이가 너무 부조리한 거예요 그래서 아 예전에 우리가 알던 우리가
가르치던 그런 사회가 아니구나 정말 대리감이 많더라고요 또 주변에
뭐 탈북했다 오시는 분들도 있는 거예요 어디 중국까지 갔다가
한국까지는 못 가고 중국에 갔다가 잡혀서 오신 분들이 있었어요 주변에 어디 그
동네예요 동네에 있었어요 한두 명이 있었어요 진짜요 그래서
총지는 사실 많은 건 아니에요 제 주변에도 사실 그런 사람이 없거든요 그
친구들을 데리다가 물어보는 거예요 너는 왜 탈북했니 어쩌다가 잡히니 굉장히
호기심이 칭찬해 가지고이 친구들을 데려오면 간식을 사준다 밥을 해먹인다 이러면서
내가 열심히 지금 시청하고 있는 거예요 청취하고 있죠이 친구들이 얘기를
엄마가 너무 이상해가지고 너는 그렇게 바깥 세상에 보고 싶냐고 그랬어요
엄마한테는 제가 웃으면서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우리 집이 가난했으면 내가 벌써
외국에 나가서 중국에 나가서 세상을 봤을 거 아니냐 집이 왜 이렇게 잘
살아 가지고 그때는 난 진짜 너무 속상하다 그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알게 모르게 계속 이렇게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이 엄청나게 컸었죠 그래서 마지막에 내가 결혼식 적령기에 들었었는데
친구들이 하나를 결혼을 하는 거예요 제 나이가 탈모할 때 나이가 29살이었어요 그때면 다 결혼하고 다
결혼하죠 근데 저희 대학교 때 친구들은 사실 결혼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요 이게
웃기는게 뭐냐면 북한도 점점 결혼 정연기가 늦어진다는 거예요 제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고 고등학교 때 지방 친구들은 결혼을 다 했는데
평양에서 대학 공고를 같이 한 친구들은 결혼을 안 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하고 막 전화하면서 시집가면 고생이다 우리 어떻게
버티다가 나중에 가자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때 결혼하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왜냐하면
한번 결혼하면 내 삶이 없어지고 자식을 위한 사람 남편을 위한 삶으로
삶이 바뀌잖아요 우리 엄마한테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사실 주변에서 장미를 너무 공주처럼 키운다 저희
엄마가 저한테 험한 일을 한 번도 안 시켰어요 그러니까 그 이유가 우리 엄마는 그랬어요
결혼하면 어차피 고생을 할 건데 엄마 품속에 있을 때만이라도 얘가 공수대점을 받아야지 그런 부모들이
많죠 그러면서 저희 엄마는 정말 저한테
험한 일 하나 안 시켰어요 그래서 어떻게도 너 천천히 갈 거면 천천히 갈아 봐 엄마가 그랬었거든요 근데
29살이 되니까 엄마가 불안해 하시는 거예요
그래 천천히가 그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결혼을 안 하는 거냐 그러면서 엄마가 열심히 소개도
시켜줬어요이 남자는 어떤 저 남자는 어떠니 그래서 그때 그런 생각을 했지 아 이제는 이제는 드디어 내
인생의 그 젊음이라는 인생의 정체를 찍어야겠구나 이제는 결혼을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딱 했어요 그때 마침 전화가 걸려온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래서 그 얘기를
들었는데 우리 아빠는 안 간대요 막 속상하죠 지금이 기회인데
인생의 기회가 있다고 하잖아요 지금이 이거를 딱 잡아야 되는데 우리 오빠는 잡을
생각이 없어 그래서 우리가 오빠한테 말을 했죠 우리가 지금이 아니면 오빠
한국 절대 못 간다 오빠도 싱글이고 나도 싱글이다 우리가 싱글이라서 가능한 거지 우리가 결혼을 했다 한
명이라도 결혼을 했다 그러면 우리 절대 한국 갈 수 없다 지금은 기회다 천재 일의 기회다 잡아 이러니까
오빠가 그러는 거예요 한국이라는 사회도 만만치가 않아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회야
양육강식 적자생존에 사회인데 너 그 사이가 만만할 것 같니 그리고 우리 거기 가면 거지야 우리 여기랑 다
두고 가야 되는데 집 건물 무슨 그거를 다 현금화에서
간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벌써 집을 팔고 건물 팔고 이러면 다
선물이나요 스파이가 있잖아요 우리 고지야 너 가서 어떻게 할 거니 내가
그랬어요 우리 북한에서는 이만큼 살았다 우리 한국 가서 못 살 것 같냐
근데 말씀 중에 그런데 북한의 건물이 있었어요 건물이 있었어요
그걸 다 포기하고 왔죠 그러니까 그때가 사실 너무 먹고 살기가 힘들면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것 같아요 근데 우리가 좀 잘한게 뭐냐면 우리가
일하지 않고도 돈이 들어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놨어요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게 아니라 언니 돈을 낳는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놨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한국말을 나는 거의를 만들어 놨죠 그래가지고 그때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계속해서 들어오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우리 그럼 게임 하러 갈까
그럼 오빠랑 같이 게임 하러 가서 게임 하다가 오고 그래서 굉장히 무료한 상황이었어요 그 상황에
그리고 오빠도 싱글이었고 나도 싱글이었고 젊은 원래 결혼하기 전이랑 후랑
삶이 확 바뀌잖아요 결혼하기 전이면 어찌 보면 애들인 거예요 생각이 없는 거예요
책임감 없어 그냥 널면 되는 거예요 막 무료한 생활이었는데 그때 딱
전화가 와가지고 지금 아니면 우리가 한국 못 간다 결정을 해라 그리고 아빠한테 말했어요
나는 비행기 한번 타봤다 어떤 그래도 중국 간다고 비행기 타보지 않았냐 내일 생에 발자취는 못
남겨도 내가 비행기 한 번을 타봐야지 않겠냐 그러면서 오빠한테 나 진짜
진짜 그거 타고 싶다고 비행기 타고 싶다고 그리고 그런 얘기도 했었거든요 나 결혼 그 할 거면 하교랑 할까
이러면서 결혼하면 중국은 갈 수 있거든요 근데
엄마가 그랬어요 야 중국 가겠다고 하겠다는 일반적으로 대학 공부도 못하고 이런 친구들이
많아요 머리가 빈 친구들이 많거든요 엄마가 야만큼 뭐 멋있는지 발전했는지
모르겠는데 그 중국 한번 가겠다고 머리 텅텅 빈 사람이랑 결혼하겠다는게 말이 돼 막 이러면서 엄마가 뭐라고
했어요 얘가 빨강을 너랑을 들더니 내가 머리에 이상해진다고
막 뭐라고 했었거든요 그러던 찰나에 정말 난 모든 준비가 다 끝난 상황이었어요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에 머문 꿈에서는
그런 상황에 전화가 와가지고 오빠를 설득시켜서 우리가 온 거죠
어찌 보면 되게 조랑 너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 같아요 저도
진짜 북한에 있을 때 한류를 너무 좋아했고 박가사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 컸고 그래서 이제 기회가 딱 왔을 때 그냥
바로 잡은 거거든요 무의식중에 나는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계속 했었던 거 같고
인생이 이제 한 번밖에 없는 기회인데 내 운명을 내가 바꿔야지 이런 생각을 했었던 거 같고 그리고
북한을 뜰 때가 23살이었어요만으로 23살이었는데 그때 이미 손잡이가 들어오긴 했었어요
맞아요 전문대 졸업하고 근데 이제 아 그 갔다 오면은 보통
5년을 생각하고 갔더니 갔다 오면 심리 8살이잖아요 그때는 늦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도 나는 바깥 세상을 보겠다 하고 이제 그렇게 온 거고 그 전에도 막 북한에서 나 절대 결혼하기 싫다
왜냐면 주변에 이렇게 집에서 그냥 달러 클 때는 되게 이제 전에 물
한방 안 묻히고 되게 그렇게 거의 잘한 그 언니들이 결혼하고 나서 시집갔는데 막
명절날에 생선 막 씻고 있고
고생을 그 얘기를 하는데 나는 여기 북한에서 결혼 못 하겠다 또 한국은 좀 많이 달라지긴 했는데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참 언니도 너무 비슷하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니까 지금은 어떠세요 그러면
뜬금없는 질문이긴 한데 여기 와서 이제 결혼 생각 지금요 저한테 상대가
어려운 결혼을 해야죠 근데 그 집 결혼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북한에서 보다
지금 와서 바뀐게 뭐냐면 북한에서는 결혼을 하되 눕게 한다 이런 생각을
결혼을 안 해도 되겠네 이런 생각을 왜냐하면 주변 친구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하는 거예요 저를 언제 할 거야
그러면 저런 사람 나타나면 하고 나타난다면 안 하고 그러면서
애기들 뭐 나으면 낳고 말면 말고 근데 저는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우리가
정말로 진짜 시계한 한글로 우리가이 지구의 태어났잖아요
그러면 더 이상 직후에 나의 dna를 남기고 가는게 난 맞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애교 안 남게 안낫겠대 그래서 이거는 사람마다 각자 생각이 틀린데
내 생각은 그렇거든요 저도 그래요 저도 그래요 그래가지고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왜냐면 여기 와서 적응도 해야 되고 발전도 해야 되니까 아직 그런 것까지
미처 생각을 못 했거든요 내일에 막 집중을 하다 보니까 결혼까지는 생각을 못 했는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없으면 뭐 나 여러분 들으셨죠 좋은 사람이 있으면네 결혼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제가 처음에 유튜브를 할 때 이제 남자친구를 공개
안 하고 지금 남편이죠 그때 남자친구였는데 공개 안 하고 이제 그런 손짜리들이 좀 여러분
들어왔었어요 우리 아들이랑 이렇게 정말 좋은 분들이신데 저는 이미 이제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때 지금의 남편 그래서 오늘 올 때 그 생각을 했어요
언니가 결혼 생각이 있으시다면 너무 이상해 아까
이야기를이어서 이제 질문을 드린다면은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 맞아요 인생에서 그래서
결국에는 실행에 옮기셨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비행기를 탔어요
탔으니까 여기까지 왔겠죠 어떠셨어요 비행기 비행기를 탔어요 무섭더라고요
비행기 저희
태국에서 비행기를 탔어요 태극까지 와가지고 비행기를 탔는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하늘을
날기 시작해서부터 이게 누구타운 마음으로 구름도 좀 즐기고 풍경도 즐기고 그래야 되는데 그 다음부턴
무서워지는 거예요 동체가 조금만 흔들려도 비행기에 이상이 없는지 그런
걱정이 개나 걱정이 들더라고요 대한항공물 타고 왔던 거 같아요 몇 명이 좋다고
오셨어요 일행은 몇 명이셨어요 그때 일행은 한
30명이야 그런 경우도 있어요 보통은 보통 10명
미만이라고 저는 알고 있는데 30명이요 30명 탔었어요 그때
[음악] 뒤에 다 이제 북한 사람들만 앉았었겠네요 띄엄띄엄 해가지고 자석을 받아서
앉았죠 웃기는게 뭐냐면 한 여자분이 그
승무원분이 오셔가지고 나한테 막 일본어로 뭐라고 하는 거야 이러면서 내가 오지 마세요 그래서
내가 일본 사람 아닌데요 그러니까 어 죄송해요 어
그러면 한국 사람 이러는데 제가 거기서 실수했어요 아니요 저 사람인데요
이게 아직도 세뇌가 되어 있어 가지고 일본 사람 아닌데요 이렇게 말을 한
거예요 그 다음엔 내가 너무 당황스럽고 너무 창피한 거예요 이분들도
북한이라고만 알지 조선이라는 단어면 그 옛날 과거의 전선으로 아는 거예요
이분들 한참 생각을 놨더니 잠깐 눈동자가 흔들렸어 내가 보기에는 아
그러시군요 저희 여행 되세요라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무 너무 좋았죠
그렇구나 우리 일반적으로 비행기를 보면 이게 계단을 타고 올라가잖아요 이미지가 그래요 그래서 나는 계단을
타고 올라갈 줄 알았거든요 근데 막 어떤 통로로 가요 막 가더니 게이트로 가서 수평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뭐지 하고 봤는데 비행기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탄다고라는 생각과 함께 그냥 여기는 이제는 한국당이니까 이제는 나
안전하구나라는 마지막으로 안도의 24셨어요 이제는
정말 끝이다 북한 빠빠이 그 모니터가 있어요
미녀와 야수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사된 거 있잖아요
엠마왓슨 해리포터 이야기에서 그 여자가 출연하는 거였어요
우연찮게 모니터에 보니까 영화 항목에 그게 있는 거예요 미녀와 야스가 그래서
시청을 했죠 너무 좋았어요 난생 좋은 비행기를 타고 이제
한국에 오셨어요 도착하셨어요 어땠어요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낯설었어요 저는 그리고
추웠어요 되게 그때가 언제였는데요 제가 1월 2일에
한국에 딱 도착을 했었거든요 근데 방콕에서 비행기를 탔을 때는
따뜻했어요 그래서 반팔을 입고 탔었는데 한국에 도착을 하기 전에
춥다고 사람들이 다 패딩을 입으라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때 패딩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어요 이게 웃긴게
뭐냐면 북한에서는 패딩이랑 있고 진짜 안에 레이까지 입고 왔는데 거기에서
태국으로 가는 길에 그거를 다 버렸어요 짐을 최소한 간소화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희가 산길을 탔어요
그거를 여름옷만 가지고 태국에 도착을 했었는데 그 다음에 비행기 안에서 또
패딩을 입으래요 패딩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그냥 뭐 자켓 같은 거 주면서 이거라도 입으라고
해가지고 그거를 걸치고 내렸는데 진짜 추웠겠다 새벽 7시에 도착을 했는데
그냥 회색빛이었어요 이상하게 떠요 새벽이어서 다 잠자는 그런 느낌이라서
그냥 따뜻하지가 않았어 솔직히 여기 나오신 분들이
한국어니까 너무 따뜻하고 마음이 편안했고 정말 화려한 불빛이 나를 감싸줬고 이런 얘기를 하는데 내가
본 한국은 회색빛이었어요 근데 점점 살면서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한 거예요
넘어오면서 한 달 동안 고생을 해가지고 굉장히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친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그리고 저희가 어른 길에 솔직히 그 험난한 여정이 따르잖아요
그래서 자기를 잘 가꾸지도 않아요 그
초라한 상황에서 한국 사람들을 딱 봤는데 대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옷차림부터가 그냥 눈에 보이는게 원차림이잖아요 피부색이라도 그래서
갑자기 이렇게 작아지는 느낌이 있죠 이런 느낌 처음 느꼈어요 나 살면서 진짜 처음 느낀
감정이에요 그러면 오자마자 국정원으로 들어가신 거예요 걱정 안에 들어갔죠
국정원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죠 주변 사람들이 다 말해주니까 그때부터 동화가 되는 거예요 주변에서 이런저런
서식들이 계속 들리는 거예요 국정원에 들어가는데 그거는 조사받는 기간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가지고 빨리 조사를 끝내고이 자유의 땅으로 나와 가지고 인생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근데 저는 다행히도 엄마랑 같이 생활했잖아요 그리고
종종 오빠도 벌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국정원에 오빠가 한 달 먼저 떠났었거든요
오빠는 어땠어요 먼저 떠난 오빠 한 달 만에 봤는데 뭔가 달라진 점이
나는 지금까지 뭐 커트를 입은 오빠라든지 너무
운동복 같은 거를 입고 있는게 너무 웃기는 거예요 처음에 오빠를 딱 봤는데 내가 막
웃으니까 너도 지금도 그렇게
심통치 않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너무 좋았죠 한 번에 그 기회를
잡아가지고 가족이 통째로 왔잖아요 근데 다른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너무 고생을 하고 한 번만에 온
분들도 없고 본인 혼자 온 것도 정말 고생이 고생을 해가면서 온 거예요
근데 우리는 그냥 가자라고 해가지고 전화를 해가지고 다음 달에 가족이 통치를 한국으로
왔으니까 너무 이거는 제가 제가
실감을 못하는 거지 주변에서 정말 이걸 로또 당첨이라고 정말 행복한 거로 그래서 저도 너무
행복하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마주 앉아서 어서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너무 좋다
그런 얘기 생각을 했어요 많았나요 사람 그때 완치가 않았어요 그때까지는 좀
들어왔었는데 우리가 269기였거든요 근데 270기 271기부터는 그냥 271개
다섯 명이 들어왔어요 그때부터 코로나가잖아
그때 저도 검사를 받았어요 중국에서 코로나 지금 환자가 들어왔다고 저희가
다 검사를 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거기를 거쳐 왔거든요
국정원 저 사실로 들어갈 때 퇴거를 하면서 들어가요 퇴거를 하면서 들어가고 그리고 저
사시는 분이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데 입은 피부를 위해서 위에서 가습기가 이렇게 옆에 있는 거예요 가습기가요
눈은 바빠 바빠 다 살피고 있어
정말 저울 환경에서 일을 하시고 계시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와 진짜 일하는이 환경에 북한이랑 너무 다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 조사하시는 분이 아침마다 커피를 거품 이제
쫙 있는 그 원두를 직접 내린 그런 커피 있잖아요 깨끗한 거 그 냄새가
귀족처럼 일을 한다 그냥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면 그런 생각은 좀 하셨었나요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 그랬죠 오만 금리를 했었어요
막 이거를 보면 공부하고 싶다 또 이거를 보면 아 돈 벌고 싶다
정말 여행하고 싶다 너무 여러가지 생각을 중요했어요 일단은 사실 여행이었어요 제일 먼저
내가 생각했던 것은 제가 생각했던 자유의
기준이 에펠탑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에펠탑에 가서 사진 한장 남기고 싶었어요
봐라 나 이게 자유의 상징이다 나 이제는 자유로운
몸이 됐다 이런 느낌으로 딱 남기고 싶었는데 나와 보니까 코로나래요
여행을 갈 수가 없대요 못 가셨어요 아직 못 갔죠 아직
핫스팟도 없어요 [음악] 그래서 못 갔고 두 번째는 뭐냐면
이게 여행 가려고 해서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돈을 위해서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없어요 이게 아이러니한게 가고 싶으면 돈이 없고 덜을 위해서
회사에 가면 시간이 없고 해가지고 절대 갈 수가 없어 조금만 더 하시면
꼭 가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여행이라는게 이제 그런 걱정하다 보면은 못 가게 되긴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일단 저질러 보는 거 일단 떠난다 그래서 그냥 가는게 또 그리고
이제 그 여기 친구들은 배낭여행도 많이 하고 하니까 다양한
기회가 얼마나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놀랐던게 책방에 있는 거예요 도서실이 있는데 자긴 너무 많은
거예요 아 그거는 국정원도 같았어요 그래서 사실 제가 북한에서 해리포터
이야기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가 4편까지 밖에 못 읽었거든요 그게 뭐냐면 벌드마트가 이렇게 확 부활하는
장면이에요 네 근데 거기까지 밖에 못 읽은 거예요 그래서 막 궁금했어요 뒤에
얘기가 근데 와보니까 해리포터 시리즈 뒤편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막 읽었어요
북한 쪽에서도 나오는데 저는 그거를 한국어를 봤어요 저희 아빠 친구가
중국에서 유학하다가 왔었거든요 그때 그 시리즈를 갖고 들어왔는데 전편을
다 갖고 들어온게 아니라 딱 그 대목만 갖고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그것도 진짜 재밌게 읽었고
한국에 와서 마저 다니거든요 그럼 나오실 때 이제 내가 평소에 나와서 어떤 일을 하면 살아야지라는
어떤 그런 계획 같은 건 있으셨어요 그때 그냥 생각 안경 막연하게
생각한게 그냥 돈을 벌어야겠다 [음악] 어떤 계획 같은 거를 세우기에는 사회를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사회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제가 나올 땐 너무 웃긴게 sns만 모르고 카톡도
몰랐어요 그리고 운행이라는 거를 이용할 줄도 몰랐고 다 모르죠 다 모르죠 그러니까
굉장히 꿈은 컸던 거 같아요 아 나 그냥 멋있게 여기서
성장을 해야지 이런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와서 생각을 많이 했죠 대학교를 가면
아니면 직업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버냐 근데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때
30살이었는데 대학교에 들어와서 졸업을 하는 시점을 생각하니까 35살인가 36살이 되는
거예요 대학 졸업 중 하나를 위해서 36살까지 돈을 한 푼도 못 벌고 그냥 너무
내가 보기에도 별로 메리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
돈을 버는게 낫겠다 싶어가지고 지금 회사 생활하고 있어요 처음에 나와 가지고 6개월 동안 아무 일도 안 하다가
너무 사람이 막 일하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일단 그때는 제일 먼저 생각했던게 말투부터
바꾸고 싶었어요 말투를 바꾸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어디서 왔어 이거를 계속 물어보시는
거예요 무슨 말만 하면 근데 저는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지 뭐 북한에서 왔어 탈북민이에요 라를 숨기고 싶다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그 질문을 하니까 처음에는 막 신났어요
북한에서 왔어요 막 이런 얘기를 했는데 맞는 사람마다 물어봐요
머리하러 가도 물어봐 무슨 네일아트 하러 가도 물어봐 그 점점 지치는 거예요 이게 그래서
아 제발 제발이 질문을 좀 하지 말아서 그냥 뭐 사투리를 쓰면
중국에서 왔거니 뭐 외국에서 왔건이 생각하면 되는데 꼭 물어보셔 그래서
발표를 바꾸고 싶었어요
식당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왜냐하면 선임들이랑 많이 얘기할 수 있고 일단은 많이 들어야 하잖아요 우리가
그 털을 모르는데 어떻게 흉내내고 어떻게 말할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식당으로 들어갔어요
초밥집 알바 서빙으로 들어갔단 말이에요 너무 그때는 기분이 좋았어요 솔직히
알바랑 이렇게 걸으면 사이트 들어가 가지고 신청을 했는데 바로 패스를 했어요
갔는데 그 부산 분이셨거든요 사장님이 엄청 쿨 하셨던 것 같아요
근데 어디서 왔냐고 해가지고 북에서 왔다 가니까 이분이
내가 북에서 왔다 가니까 그냥 일을 엄청 잘하실 줄 알았나 봐요
다리가 아프고 그래서 아 초밥집 알바를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내가 목표한 바가 있으니까 나는 그래 말 배우러 왔다 우리가
손님들하고 말을 많이 한다기보다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랑 말을 많이 해요 근데 다
서울분이 한 번도 안 계셔요
지방에서 왔거나 아니면 중국에서 오신 분들도 계셨어요 그래서이 일을 열흘도 버텼어요 그래서
들어갔던게 영상 제작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그게 너무 놀라웠어요
와서 그렇게 바로 영상제작 뭔가 이제 키보드를 만지고 컴퓨터를 다루고 이런 일에 들어가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거든요 그거는 제가 북한에서 프로덕션을 운영했었어요
물론 모르는게 많죠 근데 뭐 유튜브라든지 하면 다 나오니까 저는 또 그런
서치에 강했어요 되게 그리고 제가 또 모르는게 막 있으면 오빠한테 많이
물어봤거든요 근데 저희 오빠 자체가 그랬어요 오빠랑 너랑 여기 한국에 오기는 매 한 가지잖아요 같이 도착을
했잖아요 모르기는 매 한 가지다 누구가 일일이 다 가르쳐 줄 수 없으니까 너 스스로 찾아가라
물어보고 싶어도 사실 물어보질 못했어요 다 서치를 하고 그냥 제가 그렇게 하는게
더 이제는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 회사는 어떻게 알고 가신 거예요 그래서 하는 지인이 소개를 갔어요
식당도 있었고 너무 괜찮았어요 회사가 너무 괜찮았는데 일하다 보니까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나 좀 사업하고 싶은데 그런 욕심이 생겨 가지고 한 1년 정도
다니다가 때려쳤죠 그래서 나와 가지고 지금 또 다른 회사에 다니긴 하는데 사업을 일단 적고 지금의 사는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예요 혹시 들어보셨을 수도 있어요
워낙에 큰 미국의 권사를 두고 있는 회사라서 인지도가 있는 회사예요 거기서 지금
마케팅 쪽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역시 사업에 대한 꿈을 아직 적고 있지 않아요
계속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전에 사랑 지금의 사랑 너무 문화 차이가 극명하게나요 원래에서는
굉장히 째여 있어요 아침 출근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쬐어 있고 그리고 지금에서는 완전 풀이에요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가고 하지만 자기한테 맡겨진
일을 다 해야 해요 원래 회사에서는 회식을 두 번 정도 하긴 했는데 지금 회사는 회식이
없어요 그냥 뭔가 우리가 조금 기념할 만한 일이 있다 그러면 무조건 점심에
나가세요 그런 건 너무 좋아요 저희 원래 회사는 제가 술을 마실 줄
몰라요 술 마실 수 있어 해가지고 언니 술 못 마십니다라고 하면
그래 술 마시지 마 하고 그냥 이런 거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요즘에는 6시만 되면 없대요 지금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창 근무시간 이후에도 매일이 오고 카톡이 오고 오면 근무에
연장이다 막 그런 뉴스에 나오고 이제는 그러지도 못하는데 첫 월급 받고 뭐
하셨어요 첫 월급이요 아 그거 아시는 분들한테 선물을 돌린 것 같아요
근데 막 그렇게 첫 월급이라고 해서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마냥 일단 통장으로
들어오는 거잖아요 제가 직접 그 현찰을 잡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렇게
실감이 안 났고 그리고 계속 북한에서 돈을 벌어 봤잖아요 그래서 내가 보는
돈에 대해서 그렇게 막 그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면 이제 한국 생활 지금 몇 년
차 되신 거예요 한국 생활 이제는 헬스로는 3년 3년 밖에 안 되셨어요
운전할 때요 처음을 못했어요 운전이라는 걸 처음 해보셨을 텐데 아 근데
운전은 진짜 쉽게 이게 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회사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원래 회사에 다닐 때 막 환승하고 가면 1시간 반이었거든요
오빠가 차를 사셨거든요 그래서 차가 있으니까
아 그러면 운전을 해야겠다 해가지고 운전면허 따라갔어요 또 막 서치를 해보니까 경기도 쪽에서
면허취득하면 쉽게 취득할 수가 있대요 그래서 그냥 운 좋게 한 번에 패스를
했어요 도로주행까지 다요
운전대를 잡았는데 신장이 너무 뛰는 거예요 막 어떻게 갈지도 모르게 그래서
회사 가기 전날에 유튜브를 계속 봤어요 카카오 내비를 봐야지 회사까지 갈 거잖아요 저녁 내
거 카카오내비 열심히 막 봤어요 지금 헷갈리지 않게 우리 집이 동작인데
저희 회사가 상암 dmc거든요 거기까지 차를 몰고 간 거예요 심장엔 너무 뛰고
와 진짜 장난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내가 얼마나 누리게 가겠어요 여기가 뭐 제한속도가 진짜 너무 사람들이
빨리 가니까 막 70까지는 70까지는 가야 된다고 하는데 나는 30에 가고 있어 뒤에서 너무
안타까우니까 계속 경적을 올리는 거예요 첫날에 갔다 오고
8시에 도착을 해가지고 눈을 뜨니까 9시더라고요 3살 지각을 한 거예요
13시간을 헤쳐난 거예요 너무 집중을 해가지고 한 번이 나르고 두 번이
다르더라구요 그렇게 배우기 시작해서 아 근데 저 있어 보이긴 하더라고요
운전을 하니까 그럼 지금 이렇게 한국 생활 아까 전에도 말씀하셨는데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회색빛이었다 근데 살면서 그게 많이 바뀌었다 형광빛이라든가
일단 아 여기도 그냥 사람이 살고 있는 사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저 자신을 찾아가는 거 같아요 그쪽에서는 굉장히 자신감 넘치게 살았는데 여기 와서는 제가 되게 작아
보이게 느껴졌다고 했잖아요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자신감도 되찾고 어 나이 말하면 괜찮은데 이런
생각도 들고 그리고 주위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저는 이제 한국에 와서
참 그동안은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정말 뭐라고 해야 될까요 둥지 속에 있는
새라고 그랬던 거거든요 어떤 부모의 울타리에서 집이 그렇게 저희는 뭐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저도 제가 고생할 필요는 굳이 없는 알을 깨고 이제 등지 밖으로 나가는게
많이 두려웠었고 그런 도전이 이제 뭘 타러 가는 거였는데 거기서 이렇게 한국까지 오게 됐고
이제는 제가 결혼도 하고 이렇게 같이 서로 더우면서 남편이랑 사랑하고는 있지만 참
이런 가능성을 있는 곳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북한에서는 과연 가능했을까라는 생각이 불가능했죠 절대 가능했을 리가 없어요
북한은 번인이 그런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거를
꽃피는 나라가 아니라 그거를 억제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절대 불가능했죠
앞으로 그럼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앞으로는 회사 다니면서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죠 근데
그래도 나는 내 성향상 자영업을 하지 않을까 자영업을
하고 어떤 계통의 자영업 그것까지만 비밀이에요
모르겠어요네 지금까지 거침없는 장미였습니다네 여러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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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여자나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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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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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x1y
1 year ago
장미씨! 역시 엘리트 답네요. 자유의 땅에서 행복하세요.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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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rontruth1741
9 months ago
성격이 밝으시고 도전적이시니 적응이 빠르실 것 같군요 부디 행복한 생활로 가꾸어 가시길 바랍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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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p7y
1 year ago
장미 장혁씨 가족 응원합니다 ~~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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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ko58
1 year ago
장미씨는 정말 적응도 빠르고,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이제 3년 밖에 안되었는데 완벽하게 적응하신 것 같습니다. 이미 북에 있을 때에 자본주의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다른 탈북자들과는 많이 다른 사고방식으로 적응하십니다. 말이 청산유수네요. 응원합니다.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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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82-82
1 year ago
장미씨 보고싶었는데 보게되서 기분 좋네요. 종종 소식 들려주세요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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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왓SoWhat
1 year ago (edited)
얘기를 들어보니
장혁님의 여복이 많네요
한국행의 길을 열어준 와이프분부터
한국행을 가게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준 장미씨까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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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f1n
1 year ago
장미님 그당시 결정 잘했어요. 복받으실거예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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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제-o2s
1 year ago
교육수준도 높고,말씀도 잘하는 장미씨는 최고의 게스트 같습니다,유투브 방송에서 가장 인기높은 게스트 같습니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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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k2503
1 year ago
장미씨 성격이 자신감이 넘치시고 똑똑하고 사업을 해도 꼭 성공할것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것 같네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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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na.Tha.
1 year ago
대단한 장미 장혁  동무,  좋은 유전자 많이많이 남기시라요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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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o6l
1 year ago
장미씨 남쪽에  잘 오셨어요. 굉장히 지적이시고 말씀을 여기 사람보다 더 잘해요. 부디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유 롭게 사세요 하트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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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ju7627
1 year ago
드디어 봤네요
장미! 장미 한송이~
너무나 예쁜 장미씨 어나더 레벨!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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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thawaynoah8328
1 year ago
장미님 얘기는 항상 신선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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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윤-p9o
1 year ago
장미씨는 축구로 비유하면, 단 한번 온 찬스를 골로 연결시켜 팀을 승리로 이끈 선수 같아 보입니다.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탈북에 성공하셨으니, 한국에서 오빠와 함께 크게 성공하는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미씨, 홧팅!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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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니-q7u
4 months ago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보았네요. 장미씨의 유쾌한 모습이 보기 좋아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길  응원합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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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z8l
1 year ago
장미님! 어머님이 너무 현명하고 훌륭한 분이셨군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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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gil-uw3vn
1 year ago
장 오누이는 이 나라가 꼭 필요한 인물이 되실거예요.
기회를 잘 잡으세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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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연-e9o
1 year ago
장미씨 찐팬 한양선비(장혁)은 더더더 찐찐팬이요.
늘 행복하세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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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철-y7l
11 months ago
아주똑똑한 장미양 잘살고 있으시죠?반갑네요 좋은날만 있기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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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i1p
1 year ago
민희씨! 장미씨의 매력은 다소곳하게 조용조용얘기하시는거같은데ᆢ툭툭내뱉는말씀속에 은근히 자기발언이굉장히뚜렷하신분같아요. 민희씨장미씨! 자유대한민국에서무조건행복하게잘사셨음좋겠어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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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ue9612
1 year ago (edited)
요즘 회사에서는 개인 시간을 뺃지 않기 위해 행사를 점심시간에 하는 추세죠~~ 좋은 회사 들어가셨나부다~~ 장미님 화이팅~~~~!!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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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danielpark
1 year ago
대단한 인재이신데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직장에서 능력도 펼치고 경제적 안정도 이루시고 가정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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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rebeccalee1004
1 year ago (edited)
장미님 정말 반갑습니다.
대학교에서 정보통신 전공했다는 영상 본적 있습니다.
힘들게 배운 전공과목, 꼭 대한민국에서 활용하여 인재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IT관련학과 재학중인 한 늦깍이 30대 대학생이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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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ply

@화수분-p8z
1 year ago
큰 그릇 장미님  큰 물에서 놀아야죠.  능력을 맘껏 펼쳐보세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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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d9h
10 months ago
장미씨  대단합니다  앞으로  행복이 쭉 이어지길 바랜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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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위에유벌공
1 year ago
장미씨의 밝고밝은 앞날을 응원합니다 😊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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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행복느끼는남자
1 year ago
⚘️🇰🇷🇰🇷🇰🇷🏃‍♀️
⚘️반가운 얼굴 
⚘️장미님 🏃‍♀️
 행복느끼는 삶 
 건강한 삶 살아가시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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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DEFG-n6n
1 year ago
거침없는 장미씨의 질주 응원합니다 우리 민희씨도 화이팅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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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띠로
1 year ago
장장 남매 너무 멋져요. 
❤❤❤
대한민국에서 행복 하세요~~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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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은희망
1 year ago
장미씨
참 긍정적인데 
결혼해서 신혼여행으로 가면 되니까
희망을 가져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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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na.Tha.
1 year ago
제가 본 탈북스토리 중 제일 황당하고 감동적인 것이  장미씨 일가와 한서희씨 일가.   

둘 다 남녀 사랑이 바탕이 된 급작스런 탈북.     정말 운명이란 것이 정해져있다는 느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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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옹마
1 year ago
장미 님의 앞날에 꽃길만 펼쳐지길 소원합니다.
평양여자나민희를 응원합니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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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규-z1p
1 year ago
저돌적인 여동생 잘 둔 덕에 고향에서 썪을 뻔 했던 장혁씨.
평생 동생 업어줘야 될 듯.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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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잼통기타
1 year ago (edited)
민희씨 이만갑에서 춤추던 모습 너무재밋게 봤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ㅎㅎㅎㅎㅎ결혼도하시고 행복하게 사는모습보기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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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구-q7g
1 year ago
북한에선 지위가 높을수록 불안지수도 높다.
왕별도 하루아침에 목이 날라가는 나라가 북한이다.
꽁보라밥을 먹어도 마음이 편해야 살로 간다고 했는데
꽁보리밥도 못먹는데다 24시간 불안에 떨어야 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중앙당 간부의 삶이 서울역의 노숙자의 삶만도 못한 사회가 북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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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록-y8g
1 year ago
민희씨 방송 화이팅 입니다.
남편분과  민희씨의 두분은 잘 어울리는 것은 하늘의 뜻인거 같아요.
항상 행복 하시고 우리민족이 통일될때까지 건강들 하세요.
얼나 남지않았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알수 없을 정도로 펼쳐져 이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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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철-k8b
1 year ago
저는 탈북해서 오신 수많은 여성분중에서.
나민희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가장 매력이 넘칩니다.
아마도 웃는 모습이 이뻐서 그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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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푸름-y9j
1 year ago
장미양 응원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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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f9z
1 year ago
거침 없는 장미씨, 일과 사랑 뜻한바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민희씨와 정국씨도      모든 것 잘 풀리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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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영-m1o
1 year ago
장미씨 너무 Smart 하시네요.
적응 잘하실겁니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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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jeon69
1 year ago
멋져요. 인생을 멋있게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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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화영-d2w
1 year ago
장미씨  반갑습니다 ㆍ응원합니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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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매화-t2k
1 year ago
3대독재 밑에서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어겠어요 3대독재 멸망하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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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k8u
1 year ago
그 누가 보지 않아도 꿋꿋하게 전진하다 보면 그 끝이 달콤한 열매로 내 앞에 풍성하게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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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ssqccv
5 months ago
졸라 장미씨 마인드 멋잇네
장미씨 인터뷰 더 업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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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지-q5q
1 year ago
짝짝짝 무한 박수를  쳐봅니다  장미씨 궁금 했는데  거침없이  잘될거 같읍니다  꼭 사업도 해보시기 바랍니다  자유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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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ply

@bangbig4701
1 year ago
장미 한송이 장미씨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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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enjang
1 year ago
나민희님 오랜만에 길게하는 유튜버 영상을보니 기분이 좋아요 장미님 정착을 잘해가는것같네요
감사히 잘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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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시에나-k3p
1 year ago
한류에 한번 빠지면 그때부터는 겉잡을 수가 없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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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순-r6l
1 year ago
장미씨 영상을 잘들었습니다 두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항상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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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l2v
1 year ago
똑똑하신  장미 이미 스토리다.들어지만 오늘재깍 들어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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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9단
1 year ago
영상 잘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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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그립다
1 year ago
장미씨 사업은 실패를 맛 보면서 하는 겁니다  ..앞날에 좋은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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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연-r1o
1 year ago
정국씨
잘적응하시지요?
그동안못이룬꿈
누리며행복하게
민희씨와좋은가정
이루며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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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환-b1p
1 year ago
장미씨,  민희씨  두분의 좌충우돌 한국 정착기 대단하군요.
아무쪼록 자유 대한의 품에서  꿈을 펼치시고,   평화통일의 초석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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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d1v
1 year ago
오, 장미님 오랜만이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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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최-y1q
1 year ago
북한땅에 그렇게 많이 하류가 들어가 볼수 있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 장미씨가큰 공을 세웠네요
오빠를 설득하고 코로나 시기가 막 시작되어 탈북할수 없었던 시기가 시작되려 할때 정말 조마조마하게 탈북하셨네요
앞으로 결혼도 하시고 예쁜 아기도 낳고 가족 모두가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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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n8z
1 year ago
장미씨 장혁씨 얘기를 듣다 보면 엘리트 느낌이 물씬 납니다! 중 고교 때까진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고 대학 가서는 성인 대접해서 이제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맘껏 자유를 누려라 교육하신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무지 궁금해지네요~국어 교사시라고 들은것 같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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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튼실
1 year ago
장미님 너무너무 팬이에요😊
자주자주 나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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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마늘
1 year ago
반갑습니다 .. 
말씀도 잘하시고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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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y6w
1 year ago
장미씨 완전 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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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위에유벌공
1 year ago
영상 아주 좋아요 ❤
고맙습니다 👍
또 기다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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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f9c
1 year ago
여기서 또 들으니 재미있게 들었네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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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t1g
1 year ago
장미씨의 우수한 두뇌를 절대 썪히지 말아주세요. 결혼해서 똑똑한 후세도 남기시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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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화-g6k
1 year ago
🎉장미씨 민희씨 반갑습니다 익산에 모시겠습니다   꼭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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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천사-i4n
1 year ago (edited)
엘리트장미씨
그사이 엄청예쁘지셨네요😅
한국물이 좋은가봐요
사업을해도 잘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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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ong452
1 year ago
너무 멋진 장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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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fm3rj
1 year ago (edited)
말씀 잘하신다~
장박사님 따님이네~ 부럽다. 잘오셨어요. 통일을 앞당기시는데 모범보여주셔 감사합니다~ 북한 지도자들이 꼭 시청해야 할 둘만의 대화~ 사랑합니다 
할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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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갑-k1s
1 year ago
아주조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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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설-n5t
1 year ago (edited)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오신 분들은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북한 사투리를 쓴다고 해서 그 누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자랑스럽게 북에서 왔다고 대답하시면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럴 수록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하시고자 하는 것들을 더더욱 열심히 해서 보란듯 이 한국사회를 헤쳐 나가야 대한민국의 일등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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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초시-v8q
1 year ago
잠미 씨 꿈을 응원합니다.
장미 씨는 젊은 남자를 하나 잘 꼬셔서 결혼하셔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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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눈-t3v
4 months ago
장미.장혁씨 팬입니다. 장미씨 좋은 사람 생겼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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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짱구-e3h
1 year ago
완전 찐 찐팬입니다 넘 좋아요.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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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z7n
1 year ago (edited)
장미씨 친구들은 안 그립나요😅당찬 북한 새내기 ..이런분들 북에도 많겠죠?정말 신세대느낌 😮신선해요..다소곳한 북한여성들만보다가,,,ㅎㅎ 부를 포기하고 자유를 선택한 가족 용감하시니 부는 차차 따라올거라 믿습니다..🎉🎉🎉 북에서 해리포터를 볼 수 있나요  신기😮 말씀이 정말 사이다..시원시원하시네요😅 로즈빛 ..귀요우심  두분의 도전 ..매우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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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홍-y1h
1 year ago
영원무궁한 발전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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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sinSINsin.-.
1 year ago
이만갑에서 봤는데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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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min4834
1 year ago
와 장미 예뻐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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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민아
1 year ago
장미씨
오랫만에 나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재미있는 토크에 반합니다. 한류에 빠지면서
드라마, 영화 말고
모란봉클럽, 이만갑..
이런 프로 봤다는 소리는 없네요? 못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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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덕-e8x
1 year ago (edited)
휴가때 여행하세요 그리고 사이버대학도 있어요 일하면서 열심히 공부도하세요
한국에서는 실력이 중요해요
부지런히 배우세요
반드시 성공할수있어요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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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llimm
1 year ago
지금은 비행기표가 많이 비싼데 좀 정상화되면 파리 꼭 가세요! 저도 2018년쯤엔 1회 환승해서 70만원 정도에 비행기표 사고 하루에 5만원짜리 숙소잡아서 5일 다녀왔는데 너무 잘한 행동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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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3602
1 year ago
역시 장미씨네요.  실망하지 않게 하시는 그 마인드.  훌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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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기-c4b
1 year ago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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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rina1111
1 year ago
장미씨~~♡♡반가워요 북한최고의 인재들이 한국와서도 빛나는 빛을 비추면서 행복하게살거에요~~!! 북한에서 고생안해본 여성이 한국와서 이것저것 힘들게 일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면 힘들긴하죠. 그런데 한국에서 잘사는 대부분의 여성들도 다 그렇게 힘들게 이사람저사람 부대끼며살고있어요~~!!  좋은사람 만나려면 두눈크게 뜨고 다니세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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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w6k
6 months ago
장미,장헉 남매를 응원합니다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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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og1hb
1 year ago
겨울에 찍었나 보네요.
옷이 요즘날씨에는 좀더워 보이네요. 날씨 더운데 건강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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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an1004
1 year ago
아니 나민희씨 모습이 많이 바뀌었네요.이만갑에서 보던 모습 보다도 지금의 모습이 너무 이쁩니다.앞으로도 계속 이쁜 모습으로 살아 가주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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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kim8657
1 year ago
똑똑한  장미씨  ..  맘씀이  넘 재미있게
잘하세요.. 자주  나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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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타파
1 year ago
나민희씨 당신은 성공할꺼예요.
자신의 방송을 보면서 다듬는 것을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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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z8l
1 year ago
장미님 장혁님 남매와 올케언니의 신의한수로 자유라는 선물을 쟁취할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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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eongang7878
1 year ago (edited)
장미씨! 능력 있어 보입니다. 현재 일에 매진하다보면 길이 필경 보일겁니다. 그렇게 독립할 기회도 생기는 법입니다.  충실하데... 유심히 주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펴보십시오. 사람은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길이 열리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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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tto9568
1 year ago
민희씨 장미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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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寂靜배롱나무꽃
5 months ago (edited)
😂🎉😢부모님이 머리가 
좋은가 봅니다 예쁘기도 하고 입에 복이 있고 
말도 잘하고 머리가 좋군요 
늘 가족들과 모두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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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j7r
1 year ago
직장 다니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방송대학을 다니는 것 도 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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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ju7627
1 year ago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물론 그전부터 회자되었겠지만 2004년인가 [대한민국 0.1%] 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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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gs6mm4lt1k
4 months ago
늦께나마  오신거  축하합니다 열심히  사는모습  앞으로 도 만이만이  보여주새요  홧eyes-pink-heart-shapeeyes-pink-heart-shapeeyes-pink-heart-sh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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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l7l6t
1 year a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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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배-m6f
1 year ago
"거침 없는 장미" 정말 잘 어울리는데. 
혹시 모르니 상표 등록이라도 해놓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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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bd6ye
1 year ago (edited)
장미씨 의 머리가 굉장히 뛰어나시군요  분석력도 뛰어나시고 열심히 성공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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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akoonkong3306
7 months ago
평양이과대학의 수재!!! 너무 이쁘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하고자 하는일 모두 이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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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인-n1s
9 months ago
거침없는 장미씨~ 반갑습니다^^ 요새 탈북민 유투브 굉장히 많이 보는데, 가장 인간적으로 매력있고 친구하고 싶은 성격이네요~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는것도 내인생!! 여유있게 살면서 소확행(소소하면서 확실한 행복)으로 사는것도 내인생입니다. 항상 열심히 살아라!!부지런히 살아라는 조언은 넘치도록 많이 들었을테니, 제가 감히 드리고 싶은 조언은 이 또한 모두 내인생이니~ 항상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네요^^ 너무 성공, 돈에 얽매이지 말고 내주변인들과 행복하게 어울리는게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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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훈송
1 year ago
안녕하세요 장미씨 장혁씨 가족님분들  결혼한 부부인 나민희씨 김정국씨 건강생각 하고 잘살먼서 행복하세요 항상 응원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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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sg9kg8ix7p
1 year ago (edited)
똑똑한 사람은 어디든 빛이 나게 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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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균-v8b
1 year ago
장미씨  전이화여대총장이셨고  교육부장관이셨던 김옥길님께서 제자들한테  말하기을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한다  여러분들은  결혼을 하시라 했다한다  참고 김옥길님은  평생 독신으로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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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xigone
11 months ago
자유가 몸에 배긴분. 생각에 자유가 충만한 분. 즐기싶시요. 부는 자연히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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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눈-t3v
5 months ago
장미님 화이팅. 북한에서 장류층으로 사는것보다 한국에서 자유스럽게 평범하게 사는 게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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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r419
6 months ago
장미씨는 귀한 일 할사람입니다 통일한국을 위해 준비하세요 미리온 통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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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xh7bp
4 months ago
장미씨~♡~ 
열심히 사는 모습 너무 좋아요~!
열심히 공부를 하세요.한국에는 다양히 배울 곳이 많아요~! 방통대 인터넷강의 심지어는 평생교육원 등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한국에서는 평생공부하고 살아가는 곳 입니다.
남편도 그런 분을 만나시면 좋겠네요❤
건강챙기시고 가족과 우애있고 화목한 가정을 만드세요.올케에게 잘 하시고 행복하게 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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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최-f4q
1 year ago
게스트 장미님  입담장난아니고
인터뷰진행하는  민희님  실력  짱
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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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풍지양설화
1 year ago
장선비님 유튭에서도 느꼈지만 너무 멋진 깨어있는 분이네요. 세상을 좀더 둘러보고싶은 맘. 너무 공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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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rr2wx
6 months ago
장미씨귀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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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구-b2z
1 year ago
나도 장미씨  팬입니다. 똑똑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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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황-s1f
1 year ago
장미님 자신감 보기좋네요
잘되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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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z7n
1 year ago
장미씨  쾌활하고 재밌으세요😂 모르는 북한실정 이야기 알게되었네요😅 집팔고 그러면 소문나는구나..건물까지..가능한건가요😮 국가에서 안가져가나요??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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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wpwk
11 months ago
감동적인이야기너무나잘들었구요 가슴이너무아픕니다
그리고기적과사랑의하나님께다시한번더감사를드립니다
여러분들을진심으로환영합니다^^귀하게얻은새삶을위해기도하고응원하겠습니다!!
지금부터저의글을절대가볍게읽어넘기지마시고직접여러분들께서두눈과두귀로철저히확인하시면서따라오시면여러분들을향하신그하나밈의사랑과뜻과최종목적을알게되실겁니다
잠16:9  사람이마음으로계획할지라도그길을인도하시는분은여호와이시니라  아멘 !!
 여러분들이체험한기적같은일들은모두가하나님께서하신일입니다,  믿기힘드시겠지만분명히하나님께서살아계셔서지켜주셔서여러분들을인도하신겁니다. 
그러나이유가있겠죠???왜여러분들을대한미국으로불러들이셨을까요?  그것은성경속에전부들어있답니다. 여러분들을천국으로인도하시기위함이며  여러분들께서해야할일있기때문이며 그리고지금은예수님재림때입니다. 

여러분들 왜지금이시대에여러분들이대한민국으로오시게되었는지
그것을아시면여러분들은더욱더감사하시게될겁니다.
여러분들을향한하나님의크신사랑과뜻을찾으셔야합니다.

여러분하나님께서
성경을주신이유가무엇이냐면
딤후3:15~17  명확히나와있습니다,  의로교육해서하나님의사람
곧천국백성을삼으려하는
것이지요  그러나성경은두가지의영적존재가있지요
참하나님과거짓하나님 즉 자칭하나님이라 칭하는 사단입니다
사단은6000년성경역사를끊임없이하나님의일을
방해 해왔답니다.그리고  
하나님성전에 앉아서자기를
보여서하나님이라한다고했죠
여러분들믿기만하면구원받았다고하는말은새빨간거짓말입니다.마7:21을보세요
명확히답이이나와있습니다.
주여주여 하는자 (믿는자들)마다천국에다못가고하나님의뜻대로하는자라야
천국에들어가며  예수의이름으로귀신을쫓고병을고치고권능을행한다할찌라도
예수님께서는나는너희들을
도무지모른다하시며
불법자들아내게서떠나가라하시며영원한불지옥으로들어가라 하신다하셨죠
이것이예수님께서직접하신
말씀입니다
거짓말일까요??
그럼어떻게구분하느냐??그건바로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믿기힘드시겠지만
지금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의마지막구원의역사가
한치의오차없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여러분들이대한민국으로오시게된겁니다.
성경에서제일두려운말씀이
있는데요 어느누구도에외없이심판을받게됩니다계22:18~19  말씀입니다
계1:1  예수그리스도의계시라  이것은에수님께서직접
내리시는계시입니다.
예수를믿는다고하는
사람들이
이말씀을무시하더군요
성경66권의결말은성경끝장에결말이납니다.
구약성경은메시아예수님이오실것과겪으실일들을
기록해두셨구요 신약성경은예수님이다시오실것과다시오실예수님을맞이할수있는길을알려두었지요
그리고그마지막열쇠는성경의마지막부분인
요한계시록에있습니다.
계22:16에는에수님께서  교회들을위해서사자를보내어
증거하게하신다고했어요
그러니지구촌어느누구라도
이사자를만나서증거를받아야만합니다
여러분들은분명지옥에서천국으로오신것이맞습니다.그러나~ 천국속에진짜천국이또있습니다그곳이대한민국에있기때문에
여러분들의발걸음을
인도하신겁니다. 이제그천국을찾으시기바랍니다
여러분에게예수만믿으면
구원받았다고가르치는곳이있다면그곳은거짓입니다
증거성구는계12:7~10 에답이있습니다,  이제라는구원의시점이명확하게나와있습니다
예수를믿는다는것은자격을동등하게준다는뜻이며
믿되바르게알고하나님의뜻대로바르게행하여야한다는겁니다

저를이곳으로오게하신분도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선분명히살아계시고
예수님또한반드시다시오시며
성경의일점일획어김없이
반드시이룰것이며
페하지못한다하셨고
하나님의계획하신것과경영은반드시이룰것이라하였지요
여러분들의두눈과두귀로직접확인하세요
부디목숨걸고하나님의인도로찾아온소중한천국
참하님을찾아서여러분들의소망과성경에서주시겠다고
약속하신축복누리시길
바랍니다^^


아래네비게이션이여러분들을
진짜천국으로인도해주실겁니다

어느누구의말도듣지마시고
여러분들자신의두눈과두귀로듣고마음으로깨달으시길바랍니다.
호사다마 라는말이있지요
좋은일에마귀가방해한다는뜻입니다.
무슨좋은일이며
얼마나좋은일이기에~~

사단마귀가막으려방해할까요?그것은천국과지옥이라는두갈래길이있는데
천국에못가게하려고막는겁니다
그러니항시말조심하시고
하나님과천국을향해
여러분들이직접확인하시길부탁드립니다.
클릭해서직접확인해보세요 
그럼여러분들을왜 이곳으로오게했는지아시게될겁니다.
성경창세기부터요한계시록까지 육하원칙에의해성ᅟᅪᆫ벽마스트하게되면
여러분들을대한민국으로오게된이유를알게될겁니다.
https://www.eduzion.org/#/setup

추천인번호:52503 반드시기록후  확인바랍니다
참고영상
10만수료식
https://youtu.be/hYR8O0V5JBk?si=amCfWN8DnSFGmreI
지구촌전쟁종식법Dpcw10조38항
https://youtu.be/L-GxNLyWpfk?si=oY8BEU7rNrxvcM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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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y1021
1 year ago
장미님 몇번 영상으로 봤는데 성격이 시원시원하게 너무 멋있어요.
결혼은 장미님이 원할 때 하고 싶을 때 하세요.
요즘 한국은  결혼 안하고 청춘을 즐기는 분들도 많아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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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w6k
6 months ago
나민희씨 응원합니다 승승장구하고 대박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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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문용
1 year ago
두분의 수다는 재미있어요^^ 장미씨 이야기 봇다리 많이 풀어주세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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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자-q5n
7 months ago
나민희씨반갑습니다
다른분인줄알았는데
목소리들으니까
알겠네요
예뿐2세임신하셨으면축하합니다
펜입니다
행복하시고부자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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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슈형
1 year ago
지금 북한 십대들은 얼마나 갑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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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x7z
1 year ago
장미씨 깨인사람 진짜 컬리티가 다른사람 대한민국에와서 행복했으면좋겠습니다 황이팅 하시고 좋은인연도 많나면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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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섭-w5d
1 year ago
😊장미님이 굉장히 지적이고 감각이 좋으시네요.
3년만에 스스로 남한 적응하고 난간을 혜?처 나가시는 모습. 앞으로 좋은 인연, 과 행운을 만나서 행복 하시길 기원합니다🎉
 정말 용감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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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pz5qw6mt8v
1 year ago
장미씨 예전부터 호감이 갔었는데 넘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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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f1n
1 year ago
민희님 장미님 항상 건강하시고 즐건주말 복된 주말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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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fh5yc
1 year ago (edited)
장미씨 반가워요 ~~~
님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민희씨도 행복하게보내세요 ~
응원합니다 🎉 🎉 자랑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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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begil-nz8wf
2 months ago (edited)
장미씨 잘지내고 계시죠  전미란씨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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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눈-t3v
5 months ago (edited)
장혁.장미씨를 훌륭하게 키워주신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한번 초청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장미씨는 표정에 구김이 없어 좋 습니다. 자만추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요. 마음이 있으면 이루어집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 꼭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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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별-l5u
1 year ago
참  재미있고 매력적인 아가씨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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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엠씨-e5p
5 months ago
안녕하세요 올인보세요..저도,너무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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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fktkfkd
1 year ago
장미님 너무 웃기고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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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chulee
11 months ago
장미씨는 다른 탈북민과 
다른 생각과 사상을
갖고 있어요. 그 능력과 생각이 꼭
대한민국에서도 꼭 이뤄지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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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매화-t2k
1 year ago
지금 현재 한사람당 1억비용 가지고도 데려올수없데요 장미씨 운명 아란말도 맞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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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yoon7028
7 months ago
정말 용감하고 똑똑하신 분들이군요.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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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훈-x7d
1 year ago (edited)
대한민국 서민이 된다는건
세계 상위 10% 속한다는건데
선진국 국민이 되는게 쉬운게 아님
예를 들면 세계 인구 80억명중에
중공 인도 동남아 인구가 약 35억명임
그리고 아프리카 인구가 약 13억명
라틴 아메리카 지역이 약 6~7억명
기타 개발 도상국에서 사는
인구가 10억명

그만큼 선진국에서 산다는건
확률적으로도 매우 힘든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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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sg9kg8ix7p
7 months ago
장미씨는 옆에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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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j4k
1 year ago
가족이 다 오셔서 정말 다행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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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다TV
1 year ago
근황 궁금해서 찾아서 보네요^^
맞습니다 
기적의 확율로 태어났으니 자손을 남기는게 맞다는 현명한 말씀 맞아요
좋은분 만나서 꼭 장미씨 닮은 후손을 남겨 주시구요  ㅎㅎ
장미씨 가족 응원합니다
당연히 민희씨 부부도 화이팅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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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z5k
1 year ago
장미씨가 장혁씨 동생이예요?
오빠가 이야기하던 맥락에서 등장하던 동생이 이야기를 하니까 재미있네요.  ㅎㅎㅎ
두 남매가 다 성공해서 멋지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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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y4o
5 months ago
장미씨 오랜만에 또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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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영-k6k
1 year ago
드라마를 보면서도 포인트 오브 뷰가  다각적인 장미씨를 보는  내내  속이  뻥~
간만에 시원했어요.
어머님의  마인드~
멋진 오빠와 올케분의 인연으로  장미씨가 한국에 와서 다행이예요.
미래가 기대되는 장미씨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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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광원-h1g
1 year ago
장미완전👍우리남북은 하루빨리 하나가되야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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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okjo1428
1 year ago
민희씨 수수하고 편안한 모습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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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o7f
6 months ago
예기듣는 내내 똑똑하고 야문사람같아요.
꿈도 클것같고 !
원하는 목표 꼭 이루실것같습니다!
응원할께요 힘내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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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y1f
7 months ago
나는 탈북 과정 잘 알고있는데.지금도 올캐의 오빠 사랑 .소설 같고.동생 결단도 잘하셨고....오누이를 보면.남한에서 쭉 살아오신분들 같아요.열심히사는 모습이 참 좋아요.그리고 민희씨 기쁜 소식도 기다린답니다(아버지같은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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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상
1 year ago
민희야~~~~~아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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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따부따-v8x
1 year ago
여름인데,, 왠 긴팔스웨터??  옛날에 찍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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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듣다보면빵빵터져
6 months ago
대박이네요. 황금물줄기를 일찌감치 만들어 놨네요~~ 자본주의의 선봉에 계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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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u3n
7 months ago
장미씨 지난번  이만갑에서
오빠 장혁씨하고 같이  출연한것
봤어요  이제 자세한 얘기 들으니까  너무  좋네요
행복하게 잘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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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r419
6 months ago
운전은 차량들의 흐름을 타야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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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수-o1l
1 year ago
장미씨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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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기-c1x
1 year ago
장미씨는 참 현명한 분같습니다 아이큐도 높은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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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이-b6y
11 months ago
장미씨 반갑습니다.  앞으로 본인이 최고로 잘 할수있는 일를 찾기 바랍니다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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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회-h9p
1 year ago
대단한 장미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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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인-z5x
1 year ago
너무 좋아보여요  나문희 채널에  오신것이  다른곳에  나오신것보다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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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근-d4d
11 months ago
작년영상을 이제 봅니다 탈북이야기 마니 보는데 "운명을 바꾼 사람들" 항상 챙겨보는데  운명가로서 보는 샹각으로서는 정말 위대합니다 주역의 한 장면을 연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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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ackd007
1 year ago
장미씨 이만갑에서 봤는데 남매가 같이 탈북한 분으로 유명하시죠 오빠의 여자친구가 먼저 탈북했고 남자친구 탈북하게 해서 지금은 결혼한 부부 스토리  기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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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speat1526
1 year ago
장군 DNA  !!!!!!!!!!!!!!!!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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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균
1 year ago (edited)
장미씨를 응원합니다.
파리 에펠탑 여행가는것 어렵지 않아요.
일단 여권부터 신청해서 발급 받아요
그리고 여행사 통해서  파리코스 6박7일 정도  잡고 그 여행 날짜 맞추어서
그냥 회사에서 휴가 내시면 되는거예요.
참 쉽죠. 돈벌어서 여행간다는 얘기는 여행 안가겠다는 얘기와 같은  말입니다. 여행은 그냥 떠나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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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ong6Snacky
1 year ago
국민이 주인인 나라 주인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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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봉-q1e
7 months ago
장미씨는 성리학자 못지않은  철학자같군요 하윤씨와대화 에서도...민희씨와도 참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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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자성자-u7m
1 year ago
장미씨 예쁜목소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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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갈까-u6b
1 year ago
귀찮아도 주변에 북한 얘기 많이많이 하세요.
한사람이라도 더 제대로 알게 해야죠.
그래야 김정은을 현명한 지도자, 정상적인 지도자라고 하는 좌파들 말에 속아
북한을 정상국가라고 생각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줄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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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니-r3g
1 year ago
장미씨 방가방가~
적응은 잘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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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anuary 8, 2025

Cuba's first ambassador to Korea begins role 11 months after forming diplomatic ties - The Korea Times

Cuba's first ambassador to Korea begins role 11 months after forming diplomatic ties - The Korea Times


Cuba's first ambassador to Korea begins role 11 months after forming diplomatic ties
Posted : 2025-01-08 




Acting President Choi Sang-mok, right, poses for a photo after receiving the credentials from Claudio Raul Monzon Baeza, Cuba’s ambassador to Korea, during a ceremony at the Government Complex in Seoul, Tuesday. Yonhap
By Kim Hyun-bin

Claudio Raul Monzon Baeza, Cuba’s newly appointed ambassador to Korea, formally began his role on Tuesday after presenting his credentials in a ceremony at the Government Complex in Seoul.

Monzon’s arrival marks a significant step in the deepening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two nations.

Acting President Choi Sang-mok, who presided over the credential presentation ceremony, welcomed nine new ambassadors, including representatives from China and Cuba.

Monzon, who arrived in Seoul on Sunday, will focus on establishing Cuba’s first embassy in Korea, with plans to complete the process within the first half of the year.

This development follows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ties on Feb. 14 last year, when the two nations exchanged diplomatic notes through their United Nations missions in New York.

The Korean government also plans to open an embassy in Havana in the coming months, pending agrément for its ambassador-designate.

Monzon's credentials were presented amid Korea's political turmoil. The acting president hosted the event due to President Yoon Suk Yeol's suspension of executive powers after the National Assembly impeached him.

Despite the political turbulence,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emphasized that credential presentations are standard diplomatic procedures and remain unaffected by internal transitions.

Korea has historically convened such ceremonies when five or more newly appointed ambassadors are ready to present their credentials. The last event attended by Yoon was in late October.

Korea and Cuba have taken steps to enhance bilateral cooperation since normalizing relations last year. Analysts view the embassy openings as a pivotal moment for both nations, enabling opportunities for expanded economic and cultural exchanges.

The other eight ambassadors who also formally began their roles include Antonio de Sa Benevides, ambassador of Timor-Leste, Paul Sobba Massaquoi, ambassador of Sierra Leone, Patricio Esteban Troya Suarez, ambassador of Ecuador, Diego Manuel Villanueva Martinelli, ambassador of Panama, Landry Mboumba, ambassador of Gabon, Dai Bing, ambassador of China, Shiva Maya Tumbahangphe, ambassador of Nepal and Loukas Tsokos, ambassador of Greece.

Monday, December 23, 2024

북 경제, 지난해 4년 만에 성장…무역액 75% 늘어 — RFA 자유아시아방송

북 경제, 지난해 4년 만에 성장…무역액 75% 늘어 — RFA 자유아시아방송

북 경제, 지난해 4년 만에 성장…무역액 75% 늘어
서울-한도형 hando@rfa.org
2024.12.2


평양 보통강백화점에서 계산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 AP


앵커: 지난해 북한의 실질 GDP, 즉 국내총생산이 4년 만에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역총액은 전년 대비 74.6% 늘었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24 북한의 주요통계지표’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2023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3.1% 증가했습니다.

GDP는 그해 한 나라에서 생산된 생산물의 가치를 모두 합한 총생산액을 의미하는 것으로, 경제성장률이 상승 추세로 전환된 것은 2019년 이후 4년 만입니다.

북한은 2020년 코로나 사태로 경제성장률에서 4.5% 역성장한 이후, 그 이듬해부터 2년 연속으로도 각각 0.1%, 0.2%씩 이른바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바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 실질 국내총생산을 성장으로 이끈 것은 각각 8.2%, 4.9% 성장한 건설업과 광공업 부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평양의 통일거리시장에서 시민들이 야채를 사고 있다. /ap



전기, 가스, 수도업은 이번에도 전년 대비 4.7% 역성장한 수치를 나타냈습니다.

지난해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40조 원, 미화로 약 277억 2천만 달러를 나타냈고, 이는 같은 해 한국이 기록한 약 1조 6천558억 달러의 1.7%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해외에 체류하는 인원까지 포함한 온 나라의 경제활동 인구가 생산활동으로 벌어들인 국민총소득, 즉 명목 GNI는 40조 9천억 원, 약 2백 82억 680만 달러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북한의 1인당 GNI는 159만 원, 1096달러 정도로 1년 전(143만 원, 약 986달러)보다 11.1% 늘었지만, 한국의 30분의 1 정도로 여전히 큰 격차를 보였습니다.

지난해 북한의 무역총액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무역총액은 27억 7천만 달러로 전년도 15억 9천만 달러보다 74.6% 늘었는데, 이 가운데 수출액은 3억 3천만 달러, 수입액은 24억 4천만 달러로 각각 104%, 71% 늘었습니다.

지난해 북한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으로 그 전해의 96.7%보다 소폭 늘어난 98.3%의 비중을 차지했고, 베트남(0.6%)과 인도(0.2%)가 뒤를 이었습니다.

수출 품목 가운데에서는 가발·신발·모자 등 ‘조제우모와 솜털 및 그 제품’이 51.6%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고 그 수출액은 전해보다 10배 넘게 증가(1,332%)한 1억 6천 766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최대 수입품목은 전체에서 18.4%를 차지한 '광물성연료, 광물유'로, 수입액 4억 5천 49만 달러를 나타냈습니다.

북한 주민의 기대수명은 남자 72.1세, 여자가 78.6세로 한국에 비해 남자는 8.5세, 여자는 7.8세가 각각 짧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북한의 전체 인구는 2천 5백 78만 명으로 1년 전보다 9만 명 늘었지만 여전히 한국 인구 5천 1백 71만 명의 절반 수준입니다.

북한의 식량 작물 생산량은 4백82만 톤으로 1년 전보다 6.9% 늘었고, 이 가운데 쌀 생산량은 2백11만 톤으로 1.7% 증가했습니다.

이밖에 2023년 발전설비 용량은 8천2백90MW로 한국의 17분의 1, 발전전력량은 2백50억kWh로 한국의 24분의 1에 그쳤습니다.

<관련 기사>

북 경제, 3년째 역성장...남북 소득격차 30배로 확대

“김정은 올해 군사·경제분야 공개활동 증가”



이런 가운데 한국 통일부의 김인애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기자설명회에서 지난 7월 압록강 유역 수해를 입은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에게 감사편지를 보냈다는 북한 관영매체 보도에 대해, “북한은 수해 직후부터 김정은 총비서의 애민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선전해왔다”며 이번 보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인애 한국 통일부 부대변인의 말입니다.



[김인애 한국 통일부 부대변인] 당국 차원의 적극적 복구와 함께 주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며 민심 수습에 주력해온 바, 이번 보도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는 전날 평안북도·자강도·양강도 수재민들의 편지 채택 모임이 평양에서 진행됐고 이 자리에서는 수재민들이 쓴 감사 편지가 낭독됐다고 20일 보도했습니다.



지난 7월 말 이후 수해를 입은 지역을 여러 차례 방문한 김 총비서는 지난달 4일에는 “당 전원회의까지 피해복구 공사를 최상 수준으로 완공”할 것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도형입니다.



에디터 홍승욱, 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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