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2, 2021

[사람꽃 피다] “우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 사람꽃, 피다 < 인물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사람꽃 피다] “우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 사람꽃, 피다 < 인물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우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기자명 이여원 기자
입력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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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현 머니투데이 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정창현 머니투데이 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북한바로알기’,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를 주제로 2019년부터 본지에 집필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사회를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짧게 보면 평화롭게 지내야 하고, 길게 보면 통일을 이뤄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고려가 신라와 발해를 통합한 후 천년 넘게 우리 민족은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남과 북의 분단 75년은 짧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과거 삼국시대나 남북국시대(신라와 발해) 때는 갈라져 있었지만 체제는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지금의 남과 북은 다르죠. 75년 넘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남과 북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만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다른 언어를 쓰는 영국과 프랑스보다도 차이가 더 크다고 봅니다.
이러한 차이를 좁히려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해야 하고,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지요.”

김정은 체제 출범 첫해인 2012년 1월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북한은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예고하고 이를 시행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왜 첫 개혁조치로 교육을 선택했는지

“개혁을 하려면 사람을 바꾸고,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북한의 고민이 있었다고 봅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북한은 전통적 우방인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개혁 개방된 중국과 러시아, 적대적이었던 자본주의권과 교류하고 무역해야 하는 새로운 국제환경에 직면합니다.

과거에는 사회주의 이론과 경제만 공부하면 됐지만 이제는 자본주의적 국제질서도 학습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내부적으로는 1990년대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었습니다. 체제 유지라는 급한 불을 끄느라 거의 20년 가까이 교육현대화나 새로운 환경에 맞는 교육내용에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세계는 정보기술에 기초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북한은 지식경제시대에 맞는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서 백년대계라고 하는 교육개혁을 우선 추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외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생활문화와 사고방식의 뚜렷한 변화는

“2000년대에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올 때 고려항공을 타면 중국, 중동, 동남아 등에 취업하기 위해 나가는 노동자들, 출장을 가는 공무원들, 중국 대학에 유학하기 위해 나가는 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었어요. 특히 중국 동북지방이나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는 식당 운영이나 무역을 위해 굉장히 많은 북한 사람들이 나와 있었지요. 그들은 자연스럽게 해외문화를 경험하게 되지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중국 도시를 보면서 자신들도 경제발전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세계적 추세’를 수용하고 적응하려고 하지요. 평양에 슈퍼마켓이 생기고, 패스트푸드점과 피자 등이 들어서는 현상들이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시대 들어 북한은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라 부르는 국영기업 개혁조치를 추진해왔는데, 북한경제 변화의 핵심은 분권화와 책임관리제라고 할 수 있나

“사회주의체제 수립이후 북한에는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와 집단주의 생활문화가 정착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운영방식이 1980년대에 들어서면 한계에 부딪히고, 점차 분권화와 책임제가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최악의 경제난을 겪으면서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지시하는 경제운영방식은 더 이상 지속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업과 집단의 독립채산제를 확대하고, 지방 분권화와 기업·협동농장의 책임관리제를 도입합니다. 책임관리제란 한마디로 말하면 기업과 협동농장, 개인에게 재량권과 권한을 더 많이 주는 대신, 그만큼 실적을 내야 하는 책임성을 부과한 것이지요.”

남북 간 실질적인 종교 교류는 북한의 종교정책 변화와 맞물려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북한의 인권정책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말씀을 좀 더 부연한다면

“북한은 사회주의 수립이후 ‘종교는 아편’이라고 규정하고 종교활동을 억압하고 탄압했습니다. 그런데 세대가 변화하면서 현재 북한의 3세대, 4세대들은 종교 자체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어려서부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물론을 교육받고, 사실상 김일성 주석을 신적인 존재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종교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가 없어요. 따라서 개인의 종교 선택의 권리까지 보장하는 포괄적인 인권정책이 자리 잡아야 실질적인 종교 교류나 활동이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 종교 교류가 인적교류나 종교상징물의 교환과 같은 외형적 교류를 넘어서 각 종교가 지니고 있는 종교적 영성의 교류로 발전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소통과 교류를 위해 북한사회의 이해가 필요하듯이 남북 종교교류를 위해서는 북한 내부의 종교적 기반을 좀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평양에서 만난 장충성당이나 봉수교회 관계자들은 ‘이제 젊은 세대들은 종교에 관심이 없어 신자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1990년대에 외부의 비판을 의식해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과거 신자들을 대대적으로 파악해 모집해 놓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의 종교시설에 가보면 젊은 층은 거의 없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 종교교류를 어떤 방식으로 추진해야 하고, 북한 내부에 새로운 ‘종교의 씨앗’을 뿌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지요.”

철저한 반공반북 인식에 기반한 시각부터 남과 북의 다름을 인정하고 만남과 교류를 통해 단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시각까지 북한을 바라보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북한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남쪽의 젊은 세대에게 최근 평양 사진을 보여주면 ‘어! 북쪽에도 스마트폰이 있네요’라는 반응을 보여요. 북한에서도 이미 전체 인구의 25% 이상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우리의 인식은 1990년대 심각한 식량난을 겪던 시기의 ‘북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지요. 북한에도 채팅, 게임, 온라인 상품구매 등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추세 수용’과 ‘실리 추구’라는 김정은시대의 변화된 모토가 세대교체와 맞물리면서 북한 사회 전반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어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북한은 ‘중국 통로’를 활용해 과거보다 더 활발하게 국제교류에 나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북정책을 보수적으로 전환할 것인지, 교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져갈 것인지는 계속 논쟁이 되겠지만 우선 변모되고 있는 북한의 인식과 생활문화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 층 사이에서 디지털문화가 정착되면서 최근 외부문화 유입을 차단하고, 통제하는 정책이 강해졌다고 하는데

“2000년대 후반부터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는 채팅이나 게임에 빠져 성적이 떨어지는 사례도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아직 국제인터넷망에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국가차원의 인트라넷체계가 갖춰져서 원격강의(온라인강의)나 원격진료, 화상회의 등이 이뤄지고, 전자상점(온라인쇼핑몰)도 여러 개 생겼습니다. 길찾기를 비롯해 다양한 스마트폰용 앱이 개발됐고, 조만간 카드결제, 모바일결제 시스템도 완비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셀카 보정 앱도 나왔더군요. 우리가 통일을 얘기하며 남북의 이질성을 많이 우려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적어도 정보기술분야에서는 세계적 추세를 수용해 남과 북의 젊은 세대가 거의 유사한 디지털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했고, 그만큼 이질성도 사라지고 있지요. 굉장히 흥미롭고 주목해야 할 변화라고 봅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정 소장은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 취재를 담당했다. 정 소장은 30여 차례 방북 기회를 통해 북한의 역사 문화유적을 둘러보며, 평양을 비롯해 개성, 남포, 금강산, 묘향산 지역은 5차례 이상씩 다녀왔다. 현재 터만 남은 상태인 개성교당의 복원에 대한 제언 등 정 소장과의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정창현 지음 / 역사인·값 29,000원

『북한 국보유적 기행』 책을 냈다. 북한의 변화를 읽자는 취지로 보면 되나

“크게 보면 그렇지요. 북한은 고구려벽화무덤과 개성역사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후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문화유산교류에 나서고, 해외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개성 만월대 발굴이나 문화유산 공동조사 등 남북교류가 막힌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와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왔어요. 그런데 정작 우리는 북한의 국보유적이나 보존유적에 대한 정확한 현황이나 최근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북한의 역사유적을 직접 답사한 경험과 최근 입수된 사진을 활용해 북한의 전체 국보유적을 소개하게 됐습니다.”


책을 통해 북한을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일단 사진과 그림을 650장 이상 넣었어요. 읽는 책이라기보다 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역사유적의 과거와 현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역사문화유산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교류를 할 수 있는 분야이고, 남과 북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지요. 교류를 하려면 먼저 알아야 하고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북한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종합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북한 국보유적 기행』이 총론이라면 앞으로는 각론을 쓰려고 합니다. 개성, 평양,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고려왕릉 등 직접 방문하고, 걸어봤던 도시나 명승지에 대해 하나씩 써보려고 합니다. 북한에는 아직 올레길, 둘레길, 탐승길 등과 같은 개념이 없어요. 평양성 둘레길, 개성도성 탐방길, 고려왕릉 답사길 등을 독자적으로 구상해 소개하면 북한 방문자들이 좀 더 깊이 있게 둘러볼 수 있고, 북한이 관광지를 확대하는데도 참고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2021년 1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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