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칼럼] 문재인의 대선 공약 가운데 가장 잘 지켜진 것은?
입력2021.12.27. 오전 5:03 수정2021.12.27. 오전 9:49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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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대비 국방비 2.4%에서 2.9%로
대북정책 공약 이행은 매우 저조해
2017년 10월 이뤄진 한-미 해군의 연합훈련에서 미국의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과 한국의 세종대왕함이 나란히 항해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wooksik@gmail.com
5개월 정도 임기가 남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내놓은 공약 가운데 가장 잘 지켜진 것이 무엇일까? 국방비 증액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4%에서 임기 내에 2.9%로 올리겠다고 했는데, 내년 국방비가 이에 근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 2022년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5~6위 정도로 평가될 것이 확실하다.
반면 가장 잘 지키지 못한 공약은 무엇일까? 대북정책이 될 것이다. 대선 때 내놓은 공약과 현재 상황을 비교하면 이러한 평가가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신경제지도 실행,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를 포함한 남북한 시장의 통합, 남북기본협정 체결, 북한 인권과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 남북한 사회·문화·체육 교류 활성화 등을 대북정책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국방비 증액 공약 달성과 대북정책 공약 이행률 저조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흔히 대북정책과 국방정책을 구분해서 바라보곤 한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면서도 강력한 한-미 동맹과 국방력 건설을 통해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고 유사시 승리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처럼 간주된다. 그러나 바로 이 상식이야말로 대북정책이 실패해온 가장 큰 이유이다.
단언컨대, 한반도 문제의 절반 이상은 군사 문제이다. ‘군사’ 정전협정에서부터 한-미 동맹, 북핵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평화적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움직임과 현상을 유지하려는 움직임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경쟁’이다. 주목할 점은 현상 유지와 현상 변경 사이의 경쟁은 세력들 사이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세력, 심지어 한 사람 내에서도 둘 사이의 경쟁은 존재한다. 대통령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가 그랬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핵심은 평화적인 현상 변경 추구였다. 부전의 맹세와 불가침 확약, 평화체제,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한반도, 군사적 신뢰구축과 단계적 군축 등에 대한 합의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실제 정책은 현상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에 맞춰졌다. 한-미 연합훈련의 지속적인 실시를 비롯한 한-미 동맹의 강화와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이 바로 그것들이다. 임기 막바지에 종전선언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한-미 동맹 강화와 군비증강 추세를 조절하지 않고 있는 것에서도 이러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유산은 군사력의 비약적인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출범 당시 세계 12위로 평가되었던 한국의 군사력은 작년과 올해 6위로 평가되었고, 내년에도 6위를 유지하거나 일본을 제치고 5위로 올라설 것이다.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 시기 이뤄진 강력한 국방력 건설을 전략적 부채가 아닌 전략적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대규모 국방비 투입에 힘입어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한 만큼, 차기 정부가 현존 군사력을 유지·관리하면서 군비증강을 자제한다면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이 증대될 수 있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예산도 늘려나갈 수 있다는 점도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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