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30, 2022

윤석열의 대북정책, 미국 네오콘의 향기가 짙게 묻어있다

윤석열의 대북정책, 미국 네오콘의 향기가 짙게 묻어있다
윤석열의 대북정책, 미국 네오콘의 향기가 짙게 묻어있다
입력2022.02.09. 오후 2:53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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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윤 후보의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을 읽고 (상)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월 8일자 미국의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을 읽어봤다. 이 매체는 외교 분야에서 미국의 유력 일간지들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버금갈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만큼 미국 정계와 학계는 윤 후보의 기고문을 유심히 보고 있을 게다.

하지만 윤 후보의 글은 한마디로 '함량미달'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서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에 한반도와 세계 평화의 동반자가 되어 달라고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만 것이다.

야당 후보로서 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윤 후보의 글에는 팩트와 논리는 거의 없고 왜곡과 모순으로 가득한 주장만이 난무한다. 몇 가지 내용을 보자.

그는 우선 "미국은 북한의 핵 위협과 인권 탄압 대응에 우선순위를 둔 반면에 문재인 정부는 대북 협력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남북 대화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분명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남북대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는 뒷전으로 미루고 남북 협력에만 몰두해온 것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한반도 비핵화 달성을 핵심적인 목표로 삼아왔다.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9.19 평양 정상회담 합의문을 읽어보면, 역대 그 어느 정상회담보다 비핵화 문제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대북정책에 있어서 미국과의 공조를 등한시 한 것이 아니라 한미워킹그룹을 만들자는 미국의 제안을 수용했다. 이로 인해 한미공조가 약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지나친 간섭의 통로를 열어줘 대북정책 자율성을 헤쳤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이에 따라 윤 후보의 비판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마이 웨이'를 고집했던 것이 아니라 '미국의 범위'에 갇혀 있었고, 미국이 일방적이고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였던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보수를 자임하는 윤 후보가 이를 지적할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윤 후보의 비핵화에 대한 철학도 미국의 네오콘의 생각과 너무나도 닮았다. 그는 한중간의 경제적 유대에도 불구하고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며, "중국 정부는 북한보다는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었다.

여기에 담긴 윤 후보의 입장은 한반도 비핵화에는 동의할 수 없고 북한의 비핵화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줄곧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때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기용돼 북미 협상을 결렬시킨 주역인 존 볼턴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비핵화의 대상은 북한이고 미국의 핵 태세에는 어떠한 변화도 주워서는 안 된다며 일방적인 비핵화를 밀어붙인 인물이다.

그가 주도해서 만든 이른바 '비핵화 정의 문서'가 그러했다. 그리고 이는 '하노이 노딜'로 이어지게 된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집권 초기에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혼용하다가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로 통일했다. 그리고 미국의 고위 관료는 한반도 비핵화가 "한반도 전체가 핵이 없는 지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윤 후보의 인식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비실용적이다. 혼선을 거쳐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라는 정명(正名)을 뒤집고 다시 '북한의 비핵화'를 고집하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고, 북한의 비핵화를 고집할수록 정작 비핵화는 더욱 멀어진다는 점에서 비실용적이다.

윤 후보의 비핵화 해법도 '고장 난 라디오' 소리를 다시 듣는 느낌이다. 그는 "북한의 진정성 있고 완전한 핵 신고가 신뢰 회복의 첫 조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많이 들어본 소리이다. 앞서 소개한 존 볼턴의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약속하자,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북한의 핵 신고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종전선언을 무산시킨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완전한 핵 신고는 상당한 수준의 신뢰가 구축되어야 가능하다. 이 점은 <뉴욕타임스>가 볼턴을 비판하면서 내놓은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미간에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 북한이 완전한 핵 신고를 하는 것은 미국에게 선제공격 목록을 제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는 2008년에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보면서 '백악관에서 쫓겨난 네오콘이 청와대로 취직한 것 같다'는 논평을 내놓은 바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주도했던 네오콘은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대외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대부분 물러났다.

이는 2007년과 2008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실용적으로 바뀐 결정적인 배경이었다. 북미대화와 6자회담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부시 행정부보다 더 강경한 대북정책을 고집하면서 천재일우의 기회는 유실되고 말았다.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을 비롯한 윤석열 후보의 말과 글에는 미국 네오콘의 향기가 짙게 묻어 있다. 다음 글에서 다룰 한미동맹과 중국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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