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ksik Cheong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에 대한 제 평가입니다.
"많은 사람이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체념도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말은 화려했지만 실천은 빈곤했다. 대북정책과 국방정책의 엇박자도 너무 심했다. 북한은 이미 달라졌는데 인도적 지원 제안이 남북관계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북한의 ‘역대급 환대’에서 ‘역대급 냉대’로 돌변 이유는
입력2022.05.07.
[표지이야기]역대급 환대에서 역대급 냉대로 돌변한 북한,
공식적인 남북대화 전두환 정권 이후 최장기간 중단
2018년 9월19일 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5·1경기장에서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무력 충돌은 없었지만, 한반도 평화는 멀어졌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문재인 정부 5년간의 한반도 평화정책에 대한 필자의 총평이다. 일단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지난 5년간 남북한의 무력 충돌은 없었다. 이는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결과물인 9·19 군사합의에 힘입은 바가 크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성과이자 윤석열 정부도 반드시 계승·발전시켜야 할 평화의 소중한 씨앗이다. 반면 앞으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도모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미국과 북한에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문재인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진영 논리를 떠나 문재인 정부의 유산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까닭이다.
군사력 열세를 핵으로 만회하려는 북한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의 평화정책은 대선 공약에서부터 ‘엇박자’를 잉태하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 대북정책 공약으로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신경제지도’ 실행,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남북기본협정 체결, 북한 인권과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 남북한 사회·문화·체육 교류 활성화 등을 내세웠다. 동시에 국방 공약으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4%에서 임기 내에 2.9%로 올리겠다고 했다. 결과는 어떨까? 코로나19와 이에 따른 민생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방비는 GDP 대비 2.9%에 근접했다. 반면 대북정책 공약은 거의 실현된 게 없다.
이런 ‘이행 불일치’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군사’ 정전협정부터 한-미 동맹, 북핵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문제의 절반 이상은 군사 문제이다. 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와 고도로 연결돼 있다. 북핵 문제의 진전 없이는 경제협력을 포함한 남북관계를 질적으로 발전시키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공언하고 실제로 추진한 남한의 대규모 군비증강과 북핵 해결은 어울리는 짝이 아니다. 군사력에서 한-미 동맹에 비해 압도적인 열세에 있는 북한으로서는 핵포기 이후 군사력 격차가 더 벌어질 거라고 판단할수록 전략적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
‘하노이 노딜’이 전부일까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 실현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이런 분석과 연관된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남북한의 군사력은 각각 세계 12위와 18위로 평가됐다. 그런데 2022년에는 6위와 30위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 평가에서 핵무기는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는 거꾸로 북한이 핵에 집착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비핵 군사력 열세를 핵과 그 운반수단인 미사일로 상쇄하겠다는 것이 북한 국방전략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이 여기에 매달릴수록 한반도 평화 실현도 어려워진다.
공식적인 남북대화가 전두환 정권 이후 가장 오랜 기간 중단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간혹 남북 정상들이 친서를 주고받았지만, 공식적인 대화는 2018년 12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북-미 대화도 2018년 10월 이후 자취를 감췄다. 대화가 사라진 자리엔 극심한 군비경쟁과 북한의 막말에 가까운 대남 비난, 그리고 안개가 자욱한 한반도의 앞날이 똬리를 틀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퇴임 3개월을 앞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이 성공했다면 북한 비핵화와 함께 북미·남북 관계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며 “하노이 노딜은 좋은 흐름을 타고 있던 북미·남북 대화를 멈추게 하고, 장기 교착 국면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하노이 노딜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을 말한다. 많은 전문가도 주장하는 것처럼 하노이 노딜이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악화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 악화는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 주되게 작용했다.
하노이 노딜 직후 한·미 양국은 연합훈련 재개를 발표했다. 연합훈련 중단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공개적으로 약속한 바였는데, 그 약속을 깬 셈이다. 그리고 4월부터는 F-35 전투기를 비롯한 남한의 첨단 무기 도입도 본격화됐다. 북한은 이 두 조치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단거리 발사체 시험발사로 응수하기 시작했다. 또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고안해낸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되는 비핵화’(FFVD)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FFVD는 북한이 핵은 물론이고 생화학무기와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 그리고 이중용도 프로그램도 폐기해야 한다는 요구를 담은 것이었다. 이러한 과도하고 일방적인 요구는 하노이 노딜의 중대한 원인이기도 했다.
2019년 10월15일 남북 국가대표팀이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2022년 월드컵 예선전을 치렀다.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와는 달리 ‘무관중’으로 경기가 열렸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중대 기로에서, 전작권 환수 집착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이상 징후가 드리워지던 시기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2019년 6월30일 남·북·미 정상들의 ‘판문점 번개팅’이 성사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한-미 연합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했고 김정은은 북-미 실무회담 개최 동의로 화답했다. 그 후 북한은 8월에 북-미 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로써 하노이 노딜의 충격을 딛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할 토대가 마련되는 듯했다.
그런데 북-미 실무회담이 있어야 할 ‘8월의 자리’를 한-미 연합훈련이 대신하고 말았다. 남한 국방부가 8월 초에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또 속았다고 판단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에 대한 낙담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를 향해 맹비난을 쏟아냈다.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된 다음날인 8월11일에 남한 국방부는 5년간 290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해 국방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국방 중기계획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한이 평화경제를 실현해 일본을 따라잡자는 취지로 연설했다. 그러자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막말을 퍼부으며 “남조선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만약 그해 8월에 연합훈련이 아니라 북-미 실무회담이 열렸다면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실무회담은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가능성이 컸다. 9월 들어 트럼프가 하노이 노딜의 숨은 주역인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경질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묻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왜 북-미 실무회담의 성공에 외교적인 힘을 집중하지 않고 한-미 연합훈련과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 계획을 발표했을까? 이 두 문제가 남북관계 악화에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점이 자명해진 이후에도 정부는 왜 같은 행동을 반복했을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집착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조건을 충족하려면 연합훈련도 계속하고 국방력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중대 기로에 서 있던 시기에 문재인 정부는 전작권 환수를 더 중시한 셈이다. 결과는 참담하다. 정작 전작권 환수는 이뤄지지 않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대화 부재와 사상 최악의 군비경쟁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편리하지만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이런 질문도 던져볼 수 있다. 2018년에 남한에 역대급 환대를 했던 북한은 왜 2019년부터는 역대급 냉대로 돌아섰을까? 2018년 4월 판문점과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선 이색적인 장면이 있었다. 북한군 수뇌부가 도열해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군 수뇌부는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 김정은에게 어떤 보고를 했을까? 미국 대통령이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한-미 연합훈련은 계속되고 남북 정상이 합의한 “단계적 군축” 추진은 고사하고 남한의 역대급 군비증강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 않았을까?
이런 분석이 북한을 옹호하고자 함이 아님은 물론이다. 북한의 최근 핵무력을 향한 폭주와 위협적인 언사는 큰 우려를 자아낸다. 동시에 북한의 이러한 언행은 “북한에만 몰두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문재인 정부 시기에 이뤄졌다. ‘북한은 원래 그렇다’거나 ‘북한에 속았다’는 말은 편리할 수는 있지만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짚는 데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체념도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말은 화려했지만 실천은 빈곤했다. 대북정책과 국방정책의 엇박자도 너무 심했다. 북한은 이미 달라졌는데 인도적 지원 제안이 남북관계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유념해야 할 점도 바로 이것들이다. 현 상황에선 대북 인도적 지원 제안보다 군사 문제에 전향적인 태도가 훨씬 효과적인 대북정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길 바란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천문학적인 국방비 투입에 힘입어 국방력이 크게 강화된 만큼 이제는 국방비 동결로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와 민생 구제에 힘써주길 바란다. 남북·북미 대화 재개의 가장 유력한 도구가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유예에 있다는 점도 직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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