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 평가와 정책 건의
[칼럼] 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
기자명 곽태환
입력 2022.08.2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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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미 이스턴 켄터키 대 명예교수)
현 한반도 주변정세는 2018년 봄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보다 더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문재인 시대는 지나고 윤석열 시대가 와 한반도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금년 2022년에 18번째 단·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무력시위’로, 남북관계의 앞날은 한치도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더욱이 북한이 2018년 4월 21일부터 금년 3월까지 4년간 장거리 탄도미사일 금지(red line)선을 준수해 오다가,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 무시정책(benign neglect)으로 미국의 새로운 ‘셈법’의 제안이 없자 북한이 금지선을 파기하였다. 현재 7차 핵실험 준비를 완료하고 적절한 시기만 보고 있다. 만약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한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디로 갈지 불안하기 만하다.
한편, 윤석열 정부 출범(5.10) 이후 11일 만에 서울에서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한미 두 정상이 한미동맹을 글로벌 포괄전략동맹으로 격상하였고 현재 ‘을지 자유의 방패’(UFS)로 명명하고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진행 중이라 한반도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몹시 염려스럽다.
윤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핵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은 제77회 광복절 경축사(8.15)에서 북핵문제와 관련한 ‘담대한 구상’을 제안하였다. 필자는 본 칼럼에서 윤 정부의 대북 제안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고 향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몇 가지 정책제안을 건의드리고자 한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 경제,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 취임사(5.10)에서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기본 틀을 제시한 것이다.
대북 경제지원 6개 핵심사업 제안내용은?
윤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테이블에 나오면 6개 분야에서 대북지원 사업을 실행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1)대규모 식량 공급 (2)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3)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4)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5)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6)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 등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유인하는 것이 핵심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이 실현되려면 먼저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보다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윤 정부의 대북 ‘담대한 구상’을 기획한 핵심인물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올 경우 초기 협상 과정부터 경제 지원 조치를 적극 강구한다는 점에서 과감한 제안”이라고 자평했다. 북한의 희토류, 광물 등 지하자원과 연계한 ‘한반도 자원, 식량 교환 프로그램’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또 북한이 '담대한 구상'에 호응할 경우 그 과정에서 유엔의 대북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북한의 안보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군사 및 정치부문 구상도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공감하는 바 크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을 어떻게 협상테이블로 유인하냐가 관건이다. 이에 대한 제안이 없어 향후 윤 정부는 이에 대해 많은 정책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 제안에 대해 8월 19일 김여정 당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보도를 통해 공개된 담화에서 김 부부장은 입에 담기도 힘든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윤 대통령을 비하하는 태도를 보였다.
‘담대한 구상’의 특징, 문제점 그리고 국제정치적 함의는?
윤 정부의 대북 '담대한 구상' 제안에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말 그대로 획기적이고 건설적인 면도 보인다. 또한 앞으로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국면도 있다. 그러면 담대한 구상의 특징과 문제점, 그리고 국제정치적 함의를 간단히 요약해 보자.
첫째,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서 전향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주장했던 ‘선 비핵화’ 주장을 일단 접고,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고 비핵화와 관련해 어느 정도 비핵화 조치에 진전을 보이면 북핵 협상의 진전에 따라 여러 가지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임을 적시하고 있다. 북한이 핵 포기 의지를 갖고 협상테이블에 나오면 협상과정에서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은 물론 적극적인 대북 경제지원과 일부 대북제재의 해제도 고려하겠다고 언급하고 있다. 보수정권 윤 정부의 이러한 제안은 정말 획기적이고 '담대한' 제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조건부 제안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진정성을 보이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윤 정부 내에 “실질적인 비핵화”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그 동안 북미 간 핵 협상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윤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주체가 되어 북핵 협상을 시도해 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보수정권인 윤 정부가 김정은 정권을 협상파트너로 인정하고 북한과 핵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런 자세는 보수정권인 윤 정부가 말 그대로 '담대한' 장기적 계획을 세워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않고 한미 간 상호협력 하에서 한국정부가 주체가 되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미 간에 이 문제를 놓고 해법모색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지는 향후 한미 간 조율과 협의가 남아있다,
셋째, 윤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대신에 '북한의 비핵화'나 북한의 '핵 포기'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다소 의아스럽긴 하지만 이것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북미 간 합의한 표현은 “조선(한)반도의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인데 ‘북한의 비핵화’ 주장을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핵 협상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더 첨언해서 미국은 북한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넷째, 윤 정부가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8.22-9.1)을 일주일 앞두고 대북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 것은 타이밍(timing)에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8월 22일부터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북한은 이 훈련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한미 양측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강화한다고 인식함에 따라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강 대 강’ 맞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북/북미문제를 총괄하는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이 '거부' 담화에서 보인 반응에서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8월 14일자 통일뉴스에 게재된 필자의 칼럼 '을지 자유의 방패: 한미 연합훈련이 남북/북미대화 재개의 독이 될 수도'를 참조하길 바란다.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담대한 구상'에서 밝힌 내용만으로는 북한이 거부할 것임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유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미 누차에 걸쳐 ‘안보 대 경제’ 맞교환은 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피포위 강박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지도부가 여기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해법이 ‘담대한 구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 동안 북한은 일관성 있게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해 왔다. 북한이 주장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체제 보장과 적대시 정책 철회이다.
윤 정부의 대북 '담대한 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제안과 차이가 있다.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은 MB의 대북정책의 전향적인 수정본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향후 윤 정부가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유인하기 위해 '담대한 구상'을 수정 보완하여 남북 간 신뢰구축을 기본목적으로 두고, 먼저 남북 간 대화분위기 조성을 위해 말 그대로 대화의 조건을 제시하면 남북 간 대화가 이뤄질 개연성이 높아질 것이다.
윤 정부 내 북한의 '실질 비핵화'에 대한 합의 필요
윤 대통령은 대북제안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 경제,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실질적인 비핵화'의 의미를 놓고 관계 부처 간 조율하고 합의가 필요하다. 특히 통일부와 외교부 간 “실질적인 비핵화”의 의미를 놓고 이견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권영세 통일부장관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8.17)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3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권 장관은, 북한의 비핵화 1단계는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고 여러 협력에 대한 시동을 거는” ‘초기 준비’ 단계, 2단계는 “핵 활동 동결·신고·검증, 일부 핵시설이나 프로그램 폐기”하는 ‘실질적 비핵화’ 단계, 그리고 3단계는 “핵물질 완전 폐기, 핵무기 외부 반출해서 해제”하는완전한 비핵화단계로 구분했다.
한편, 박진 외교장관은 “담대한 구상의 큰 틀은 실질적 비핵화 후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정치·경제·군사 분야에 필요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 나간다는 것”이라며 “일정 기간 중대 도발을 자제하면 기존 대북제재 ‘면제(exemption)’를 위해 미국 등 관련국들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또 “북한이 7차 핵실험 등 중대 도발을 감행한다면 우선 대량살상무기(WMD)생산·개발에 관여한 개인·기업 등을 우리만의 추가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 ‘실질적인 비핵화’를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대북제재 해제와 관련해 심층적인 논의를 하여야 한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8.17)에서 대북제재 유지 질문에 “우리는 북한이 근본적인 행동과 접근법에 변화를 줄 때까지,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 한 그러한 제재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15일 한국의 담대한 구상과 관련해 “미국도 비핵화 이전 대북제재 완화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안타깝게도 그 질문은 현시점에 전적으로 가설”이라 답했다. 따라서 향후 한미 간 조율도 필요하지만 윤 정부 내 부처 간 조율이 더 시급하다. 더욱이 윤 정부가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 비핵-평화체제 로드맵이 부처 간 검토를 걸쳐 합의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북한은 왜 '담대한 구상' 제안을 거부했는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 '담대한 구상' 제안에 대해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의 입을 통해 '거부' 입장을 밝혔다. 왜 거부했을까? 요약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실시 중인 현 시점에서 남과 북이 함께 대화할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윤 정부의 대북제안에 대해 전면 거부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북한이 요구하는 대화의 전제조건을 윤 정부가 완전히 무시하고 한반도의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비핵화란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한 불만과, 북한지도부가 인식하고 있는 북한의 핵 포기와 경제협력과 맞교환 제안도 비대칭적이며 더욱이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이 부재하여 북한은 전면거부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체제보장이 안된 상황에서 핵 포기를 원하지 않는 입장이다. 따라서 김여정의 담화에서 주요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이해하고 윤 정부는 그의 메시지를 재검토하여 북한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둘째,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에서 “세상에는 흥정할 것이 따로 있는 법,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 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 윤석열의 푸르청청한 꿈이고 희망이고 구상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천진스럽고 아직은 어리기는 어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라고 언급한 부분에 대한 일부 논객들은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과연 그런 해석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지를 재검토 해봐야 한다.
필자는 아직도 김정은 위원장이 제안한 조건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재고려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대화분위기 조성이 필요함을 한미 양국은 이해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두 개 전제 조건인 (1)대북 적대시 정책철회와 (2)북한체제 보장에 대해 한미 양국이 심각하게 고려할 것을 건의 드린다. 김정은 위원장과 그의 군부세력들은 이 두 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현시점에서 핵 포기를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필자의 칼럼, ‘현시점에서 북한이 핵 포기를 할 수 없는 이유는?’(브레이크 뉴스(8.23게재))을 참조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뤄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 서서 한번쯤 피포위 강박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지도부의 입장에서 한반도 문제 해법이 무엇인지를 고려해 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남북미 3국이 한반도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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