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을 열어가는 사람들 2 | 현대한국구술자료관 고도화연구 구술자료집 4
한성훈,송치욱,한동현 (엮은이),강종일,김영주,원기준,방용승,김경성진인진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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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대한국구술자료관 고도화 연구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구술자료집 시리즈 네 번째 권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실천해 온 다섯 분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소중한 기록이다. 각 인물의 삶과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가 분단을 넘어 평화와 상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혜를 전하고 있다.
목차
서문: 함께 쓰고 읽는 글
Ⅰ. 한반도 영세중립 통일방안 연구와 사회운동(구술: 강종일)
1. 일제 강점기에 보낸 어린 시절
2. 통역장교 시절 겪은 4·19 혁명과 5·16 쿠데타
3. 언론사 수습기자와 남베트남주재 미국 국제개발처(USAID) 근무
4. 외무공무원으로서 미얀마 근무
5. (주)대우에 이사로 입사해 리비아 벵가지에서 근무한 때
6. 학업과 미국 유학 준비
7.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한 미국과 조선의 관계에 대한 연구
8.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와 내용
9. 고종의 대미 외교와 영세중립정책
10. 조선의 영세중립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11. 해방 이후 한반도 영세중립운동이 갖는 의미
12. 귀국 이후 평화통일운동에 참여한 계기와 한반도중립화연구소 설립
13. 한반도의 통일과 영세중립 방안에 대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이해
14. 김용중 선생의 독립운동과 영세중립 통일을 위한 노력
15. 한반도중립화연구소의 활동
16. 정치사회 변동과 한반도의 영세중립 연구 흐름
17. 영세중립 방안에 대한 시민사회와 주변국의 인식
18. 한반도 비핵화와 영세중립 통일방안의 관계
19. 한반도 지정학과 영세중립화의 조건
20. 「한반도 중립화 헌장」 제정과 그 내용
21. 국제사회를 향한 한반도 영세중립을 위한 노력
22. 북한이 주장하는 스위스식 한반도 영세중립 방안
23. 북한의 스위스식 무장중립방안에 대한 평가
24. 국제사회의 다양한 영세중립국가
25. 한반도 영세중립 통일방안에 대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반응
26.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과 한반도 영세중립 통일방안의 내적 연관성
27. 한반도 영세중립통일과 동아시아 국제관계
28. 한반도 중립화와 한미동맹의 관계
29. 한반도의 평화협정 체결과 영세중립의 길
Ⅱ. 진정한 통일은 민간의 화해와 협력으로 이루어집니다(구술: 김영주)
1. 유년시절 감리교 전도사와의 만남
2. 신학대학에서 민주화운동 경험과 기독교농민회 활동
3.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조직과 NCC 활동
4. 인권과 통일문제에 대한 참여와 인식
5. 1993년 남북인간띠잇기대회 기획
6. 북한의 남한 교회 방문 실패와 북한 방문 경험
7. 감리회 활동과 남북평화재단 창립과 사업
8. 남북교류의 경험과 정부 독점 방식의 통일운동 방식에 대한 견해
9. 평화통일 희년선언의 의미
10. 향후 통일운동에 대한 전망과 역할
Ⅲ. 마음으로 주고 받는 남북한의 온정: 사랑의 연탄나눔운동(구술: 원기준)
1. 학창시절 공부와 신앙, 사회의식 형성
2. 농촌 봉사활동과 태백 탄광촌의 인연
3. 보안대의 간첩 조작과 고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구명 활동
4. 고문으로 만드는 간첩 조작과 하나님 앞에 선 신앙
5. 탄광 노동자들과 함께한 민주주의 사회운동
6. 탄광지역 노동조합 결성과 광업소 노동조건 개선, 성완희기념사업회 활동
7. 『광산노동자신문』 제작 과정과 노동자들의 변화
8.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과 노조탄압
9. 지역 광업소의 폐광과 석탄산업의 활로 모색
10.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사업과 북한 방문
11. 북한지역 연탄나눔 사업 추진 과정과 경과
12. 온정리 마을에서 연탄 하역작업으로 만난 북한 사람들
13. 북한 지역의 연탄 배송과 하역, 주민들에게 분배하는 방식
14. 생활밀착형 대북지원사업
15.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경험담
16. 학생들과 함께하는 평화나눔교육
17.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한 제재에 대한 단상
18. 따뜻한 한반도포럼과 남북협력사업의 활로 모색
19. 연변지역 조선족 동포 지원 협력사업과 북한의 임농복합사업
20. 남북교류의 다양한 방향과 지방정부 차원의 협력 사업
21. 남북교류가 가져오는 여러가지 변화의 가능성
22. 남북교류 분야의 전문성과 역할, 성격에 대하여
23.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이 남북교류협력에 끼친 영향과 평가
Ⅳ.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길: 시민사회운동은 이렇게(구술: 방용승)
1. 꿈을 꾸는 어린 시절과 5·18 광주
2. 전주대학교, 1987
3. 전북지역 청년노동운동
4. 노동자 통일운동과 분단 문제
5. 전북겨레하나 결성 과정
6. 남북교류협력과 민간 거버넌스
7. 여행협동조합 평화소풍에 대하여
8. 2017년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시범공연 응원단 조직
9. 3·1운동 100주년 기념 1000인 평화원탁회의
10. 청소년 평화통일교육과 청소년 기자단
11. 평화통일에 대한 전망과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
Ⅴ. 평화와 통일을 노래하는 불굴의 스포츠 아리랑(구술: 김경성)
1. 포천스포츠센터 설립과 중국에 꽌시를 만들었던 과정
2. 홍타스포츠센터 임대 및 운영의 과정
3. 북한 축구단과의 연결 과정
4. 리찬명과의 만남과 경평축구단 정신
5. 축구 지도를 통한 북한으로부터의 인정과 남북체육교류 계약
6. 북한의 핵실험과 남북 축구 교류
7. 북한 청소년 대표팀의 전국 순회와 이회택과 리찬명의 만남
8. 남북 축구 선수단의 끊임없는 교류와 균형적 교류에 관한 생각
9. 어린 선수들의 남북교류 의의와 마라톤, 탁구 합동 훈련
10. 북한과의 교류 매개체로서의 경험과 북한에서 단장으로 세웠던~?
11. 정부 차원에서의 교류 역기능
12. 북한이 바라보는 남한 정부의 모습, 그리고 한미워킹그룹
접기
책속에서
이 책은 시민사회에서 이룩한 남한과 북한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주제입니다. 책에 등장한 분들은 남다른 경험을 했고, 자신이 선택한 항로에서 감내해야 할 고통이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런고하니 이 분들은 살아온 길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고 흐트러짐 없이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가슴에 새겨 자신을 다스리는 심(心)이 굳건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죠.
구술 채록은 보물찾기와 같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그의 삶을 이야기로 듣는 것은 서사이지요. 자기 자신에 대한 서사이자 시대 앞에 내놓는 증언입니다. 한쪽으로 쏠림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편견을 두려워하지 않은 말입니다. 그럼에도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큰 실례일 겁니다. 고상한 작업이라 하더라도 사람에게는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속사정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남한의 정세에서 북한과 협력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과업은 아닙니다.
한 길을 가는 내면은 고독합니다. 처음부터 올곧은 흔적을 남기며 가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요. 친구와 선후배, 동료, 가족이 있어 쓸쓸함을 가끔 떨쳐버릴 수 있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고독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속사정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지요. 21세기 우리 역사가 그렇지 않습니까. 북녘땅을 보고 있자니, 이것만이 할 수 있거나 이렇게밖에 할 수 없을 때 더욱 착잡했을 겁니다. 절실함과 간절함으로 버티고 또 행자가 산방에서 수행하듯 묵묵히 지켜온 행보입니다.
〈서문: 함께 쓰고 읽는 글〉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한성훈 (엮은이)
연세대학교
최근작 : <평화·통일을 열어가는 사람들 2>,<평화·통일을 열어가는 사람들> … 총 2종 (모두보기)
송치욱 (엮은이)
인제대학교 인제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최근작 : <평화·통일을 열어가는 사람들 2>
한동현 (엮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자료관 전임연구원
최근작 : <주한 미 평화봉사단과 한국학의 길>,<평화·통일을 열어가는 사람들 2> … 총 2종 (모두보기)
강종일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회장
김영주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원기준
방용승
김경성
최근작 : <남북협력개론> … 총 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평화, 통일을 열어가는 사람들 2』는 현대한국구술자료관 고도화 연구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구술자료집 시리즈 네 번째 권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실천해 온 다섯 분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소중한 기록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회고나 전기가 아니라, 각 인물의 삶과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가 분단을 넘어 평화와 상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강종일 선생님의 구술에서는 한반도 영세중립화 통일 방안에 대한 연구와 실천 과정을 중심으로, 외교관과 연구자의 길을 걸으며 모색한 평화적 통일의 대안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고종의 대미 외교부터 현대 시민사회의 실천까지 아우르는 분석은 학문과 현실을 잇는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김영주 선생님은 신앙과 정의, 그리고 평화를 향한 실천을 통해 통일운동의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민주화운동에서 시작된 그의 활동은 종교를 넘어 민간 중심의 남북 화해와 협력으로 이어졌으며, “평화통일 희년선언” 등 상징적 실천을 통해 민간 외교의 의미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원기준 선생님의 증언은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을 중심으로, 남북이 마음을 나누는 생활 밀착형 협력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탄광 노동자로서, 고문 피해자로서, 그리고 대북 지원 활동가로서 그가 걸어온 길은 통일을 향한 또 하나의 대안적 모색이자 실천의 연대기라 할 수 있습니다.
방용승 선생님은 지역 기반의 평화운동과 청년 운동의 실천을 통해, 남북 교류와 시민사회의 연대를 강조하십니다. 협동조합, 평화교육, 대중참여형 기획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해 통일 담론의 일상화와 지역화를 시도해 오셨습니다.
이 책은 단지 개인의 삶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섯 분의 구술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운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로지르는 통찰을 얻으실 수 있으며, 실천적 지혜를 모은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통일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성찰하게 되실 것입니다. 접기
강종일의 구술 요약 (1.7 ~ 1.29)
7.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의 연구와 고종의 영세중립 삭제 확인
강종일은 57세의 나이로 하와이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4년 동안 학과 학생 대표를 맡으며 미국과 조선의 관계를 집중 연구하였다
8~10.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와 조선 영세중립의 역사적 전개 및 좌절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2006년 <고종의 대미 외교: 갈등·기대·좌절>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조선의 영세중립론은 1885년 3월 독일 공사관 부영사 허먼 버들러가 스위스 모델을 제안하고, 같은 해 12월 유길준이 벨기에를 모델로 한 <조선 중립론>을 저술하면서 본격화되었다
11~13. 해방 후 중립화 운동의 맥락과 귀국 후 연구소·협의회 설립
해방 이후 한반도 중립화 운동은 재미독립운동가 김용중 선생(1946년 최초 주장)과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김삼규 선생(1952년 망명 후 주장)에 의해 해외에서 주도되었다
1997년 귀국한 강종일은 경실련 통일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평화통일을 외치는 시민단체들이 구체적인 통일 방법론을 결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14~16. 김용중 선생의 구명 활동과 중립화 연구의 시대적 흐름
강종일은 평생 독재 정권에 반대하다가 용공분자로 몰려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1975년 미국에서 타계한 독립운동가 김용중 선생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기별 중립화 연구 흐름을 보면, 1960년대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론 하에서는 금기어였으나 장면 정권 시절 일시적으로 활성화되었고,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지하화되었다
17~21. 주변국의 인식과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한반도 중립화 헌장>
한반도 중립화의 장애물 중 국내 요인은 영세중립을 친북이나 용공으로 오해하여 "북한에 먹힌다"고 생각하는 보수 진영의 반대세력이며, 외적 요인은 한반도의 분단 유지와 주한미군을 통한 대중국 견제 등 각국의 국익을 위해 통일을 원치 않는 미·중·일·러 4대 강국의 태도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관련하여 강종일은 북한이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며, 핵무기와 중립화의 관계를 두 가지로 분석한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강종일과 한반도중립화연구소는 2010년 10월 21일, 미국 브래들리대 황인관 교수가 초안을 작성한 <한반도 중립화 헌장>을 제정·발표하였다
1단계: 남북관계 정상화 및 신뢰 회복 (평화체제 구축)
2단계: 남북 간 <한반도 중립화 공동합의문> 채택 및 불가침조약 협의
3단계: 남·북 및 주변 4개국 간의 <한반도 중립화 선언>과 국제조약 체결 (교차 승인 및 북미·북일 수교 포함)
4단계: 가칭 <민족통일 최고회의> 구성을 통한 통일헌법 및 선거법 제정, 총선거 실시
5단계: 중립화를 통한 통일국가 창립 (국호, 국기 등 변경 및 군사 통합)
22~29. 북한의 중립화 방안에 대한 평가와 스위스 모델 비교
강종일은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스위스식 무장중립을 원했다는 일본 조미연구소장 김명철 박사의 논문(<한반도 문제에 대한 김정일의 시각>, 2001) 내용을 인용하며, 북한이 남한보다 먼저 중립화 연구에 나섰음을 설명한다
국제법상 영세중립국으로는 스위스(1815년 파리조약 승인), 오스트리아(1955년 패전 후 4개국 점령 하에서 카를 레너 수상 등이 주도하여 영세중립 획득), 코스타리카(1948년 군대 해산 후 1983년 스스로 중립화 선언), 투르크메니스탄(1995년 유엔 총회 만장일치 승인), 바티칸(1929년 라테라노 조약) 등이 존재한다
강종일은 결론적으로 보수 진영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주둔이 통일의 걸림돌이 되는 부정적 측면이 있으나, 통일 초기 단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확인했던 것처럼 미군 주둔의 명분을 다자간 평화유지군 등으로 전환하여 보수층의 안보 불안을 완화하면서 단계적으로 중립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화적 해법을 제시한다
참고 파일: 위 요약은 제공해주신 의 도서 목차 구조와 구술 원문 텍스트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강종일의 구술 1.7–1.29는 크게 보면 <고종의 영세중립 외교 연구>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해방 이후 한반도 통일운동의 실천론으로 발전시킨 과정이다. 그는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미국과 조선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한반도 문제가 단순한 남북 내부 문제가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강대국 국제정치 속에서 형성된 문제임을 확인한다. 특히 1871년 신미양요부터 1905년 을사늑약까지의 미국 국무성 문서와 조선 주재 미국 공관 자료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읽으며, 조선이 미국을 믿을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파고든다. 그의 결론은 차갑다. 미국은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었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조선을 지켜주지 않았다.
그의 연구에서 중요한 출발점은 고종의 영세중립 정책이다. 강종일은 처음부터 영세중립을 연구하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고종의 대미 외교를 추적하다가 조선 말기 영세중립 구상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조선이 영세중립을 모색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정한론과 대륙침략 구상이 있었다. 중국은 일본의 조선 침략 가능성을 경계하며 미국과의 조약 체결을 권유했고, 고종은 미국을 통해 일본을 견제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요시다 쇼인의 사상, 이토 히로부미의 정책, 러일전쟁, 가쓰라–태프트 밀약, 영일동맹 등을 통해 조선 병합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강종일은 고종을 무능한 군주로만 보는 해석에 반대한다. 고종은 1904년 1월 조선의 영세중립을 선포했고, 이후 미국에 여러 차례 특사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찰스 니담, 이승만과 윤병구, 호머 헐버트, 파리 주재 공사, 호러스 알렌, 더글러스 스토리, 헤이그 특사 이상설·이준·이위종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에 일본의 침략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루스벨트 정부는 공식 외교문서가 아니라는 이유, 또는 이미 일본과 이해관계를 조정했다는 이유로 조선을 외면했다. 강종일은 이것을 미국의 중립이 아니라 사실상의 친일적 방조로 본다.
고종의 영세중립 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외부와 내부 양쪽에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 야욕과 미국의 비협조, 영국·러시아 등 강대국 질서의 변화가 결정적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조정이 친중파, 친일파, 친러파, 친미파로 분열되어 있었고, 국가적 단결이 약했다. 일본은 병합 이후 조선의 역사까지 왜곡했다. 하야시 다이스케가 조선사를 위만조선부터 시작하게 하여 단군조선을 삭제하고, 조선인을 사대주의적 민족으로 묘사했다는 대목에서 강종일은 식민지배가 군사·정치 지배만이 아니라 역사 인식의 지배였다고 본다.
해방 이후의 논의로 넘어가면, 강종일은 한반도 영세중립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김용중을 중요한 선구자로 든다. 김용중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해방 이후에는 분단을 막기 위해 영세중립 통일을 주장했다. 그는 여운형을 만났고,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방안을 모색했지만, 이승만 정권 아래서는 용공 인사로 몰려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강종일은 김용중의 유해 봉환 문제에도 관여했고, 그를 영세중립 통일운동의 중요한 계승 대상으로 본다.
강종일은 1997년 귀국 후 한반도 중립화 연구소를 만들고, 2001년에는 한반도 영세중립통일협의회를 창립했다. 그는 1961년 5·16 이후 약 40년 동안 영세중립 논의가 억압되었다고 보고 이를 <잃어버린 40년>이라 부른다. 4·19 직후에는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 같은 구호와 함께 중립화 논의가 활발했지만, 박정희 군사정권은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며 중립화론자들을 친북·용공 세력으로 몰았다. 사회대중당, 민자통, 조용수의 <민족일보> 등에서 중립화 논의가 있었으나 곧 탄압되었다.
그에게 영세중립은 남한의 연합제나 북한의 연방제를 대체하는 통일방안이 아니다. 그것은 통일 이후 국가의 외교적 지위, 즉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자주독립과 영토보전을 보장받는 국제적 장치다. 남북이 연합제든 연방제든 어떤 중간 단계를 거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외국군이 주둔하지 않고 어느 군사동맹에도 속하지 않는 영세중립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연방제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한 대목은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 그것은 남북이 평화적 중간 단계를 거쳐 통일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현실주의적으로 말한다. 북한이 핵을 100%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다만 한반도가 영세중립으로 가고, 미국의 위협이 줄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 단계적 비핵화는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 내부에서도 스위스식 무장중립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김정일이 스위스식 무장중립을 선호했다는 김명철의 글을 그는 중요하게 평가한다. 강종일은 영세중립이 반드시 비무장을 뜻하지 않는다고 본다. 스위스처럼 강한 방어력을 가진 무장중립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투르크메니스탄 등 영세중립국의 사례를 들며 한반도에도 적용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스위스는 강대국의 보장 속에서 영세중립을 인정받았고,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영·프·소 점령을 끝내는 조건으로 중립국이 되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유엔 결의를 통해 영세중립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한반도 역시 주변 4강의 보장과 유엔의 승인, 남북 불가침,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통해 중립화의 길로 갈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미동맹과 영세중립의 관계를 정면으로 다룬다. 일반적으로 동맹과 중립은 상충한다. 외국군 주둔도 중립국 원칙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단번에 끊어야 한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는 미군 철수에 대한 불안이 크기 때문에, 평화협정, 남북 신뢰구축, 주변국 보장, 단계적 동맹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대중이 김정일에게서 통일 후에도 미군 주둔 가능성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활용해, 중립화와 한미동맹 사이의 충돌을 완화할 수 있는 여지도 모색한다.
결론적으로 1.7–1.29의 핵심은 이것이다. 강종일에게 한반도 영세중립은 추상적 이상론이 아니다. 그것은 고종의 실패한 외교에서 배운 역사적 교훈이고, 해방 후 분단과 냉전 속에서 억압된 통일운동의 계승이며, 남북 평화체제와 동아시아 균형질서를 함께 겨냥한 전략이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다. 한반도가 어느 한 강대국 진영에 묶여 있는 한 평화는 불안정하다. 남북이 서로를 흡수나 붕괴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주변 4강이 한반도의 자주독립과 영토보전을 보장할 때, 비로소 전쟁 없는 통일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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