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8, 2024

북한 사회의 계급갈등 연구 1996. 서 재 진

 북한 사회의 계급갈등 연구

1996. 12

서 재 진

(연구위원)

 

民族統硏究院


○報告書民族統一研究院研究計劃依據自體研究結果

○收錄內容統一問題研究政策開發參考資料提供發行處意見音三反映

 

民族統一研究院資料調査室

서 문

이 연구는 계급이론적 시각에서 접근하여 북한사회의 계급구 조, 계급정책, 계급갈등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이 연구의 주장의 하나는 북한사회에 계급갈등이 사회갈등의 축이라는 점 이다. 북한은 원칙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이며, 사 회주의 사회는 이론적으로 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며 계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계급정책이 있을 리 없고 계급갈등이 라는 개념도 성립되지 않는다. 계급구조, 계급정책, 계급갈등 혹은 계급투쟁은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유효한 개념이자 현상인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런 기존의 이론적•원칙 적 사고를 넘어서고자 한다. 기존의 시각은 북한의 지배이데 을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북한 을 포함한 사회주의 사회를 계급갈등의 시각에서 접근할 때 사회갈등과 사회변화를 더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연구는 북한사회가 원칙상 사회주의를 표방함에도 불구 하고 실제로는 엄연히 적대적인 계급관계가 존재할 뿐더러 계급갈등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계급 갈등이 상존하기 때문에 북한사회는 항상 사회통합의 딜레마 에 시달리며 그 딜레마를 덮어두기 위하여 계급투쟁 정책을 고수해야 하며 그 계급투쟁 정책이란 엄격한 감시와 처벌의 정책이라는 점을 발견하였다.

북한사회에 계급갈등이 구조화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는 자본주의 사회가 계급갈등과 계급대립을 제도화하여 계급 갈등을 해소하고 계급타협을 이루어냄으로써 자본주의체제를 재생산하는데 반하여, 북한사회에서는 청산된 계급의 재생을 억압하는 계급투쟁 정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계급갈등을 해소할 정책적 소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계급갈등을 제도화하지 못하고 '계급투쟁화'시 키고 있는 것이 북한 계급문제의 요체이다. 앞으로 정치적 공간이 허용되면 심화되는 경제난과 상승작용하여 계급갈등 은內』燃의 단계에서 표면으로 분출하는 단계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 이 연구의 주장이다.

이 연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 사회에 관하여 귀중한 자료를 구술하여 준 많은 북한 귀순자 여러분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북한 사회의 숨겨진 사회 상을 밝혀내어 분석하는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 더욱 검증되어야 하고 더 깊은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 연구의 결과가 북한사회를 이해하고 통일정책을 수립하는데 조그마한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996년 12월

민족통일연구원

요  

이 보고서는 북한사회의 계급구조, 계급정책, 계급갈등을 분 석하였다. 연구의 주요 내용은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북한사회의 계급구조와 계급정책에는 계급갈 등을 촉발시킬 수 있는 구조적 잠재성이 크다는 점이며, 둘째

, 그러한 참재적 갈등구조가 사회주의권 붕괴, 경제난 심화 와 같은 위기적 상황에서 부분적이나마 표면으로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1. 북한사회의 계급갈등 연구의 중요성

자본주의는 계급갈등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할 것이라고 주 장한 맑스주의자들의 예측과는 달리, 계급갈등이 심화되어 체 제가 붕괴된 쪽은 오히려 사회주의이다.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 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대결 과정을 거쳐 붕괴하였다. 소련이나 동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게 된 배경의 하나는 계급정책의 모순과 계급갈등 때문이었다. 계급없는 사회로 선언되고 있는 사회주의가 오히려 자본주의보 다 계급적 갈등이 더욱 첨예하다. 서구의 많은 자본주의 사회 에서는 자본주의적 '착취'가 피착취자에 의해 동의되었으며, 자 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간에 계급타협을 이루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존하는 상태가 매우 오랜 기간동안 지속해 왔다. 

자본주의에서는 보수의 배당이 시장메카니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이루어지므로 보수체계의 투명성이 낮은 반 면에 사회주의체제는 보다 명확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에서는 보수의 배당이 당과 국가라는 보이는 손에 의하여 행해지므로 보수체계의 투명성이 높은 편이어서 불만의 대상이 명확하다.

따라서 북한사회의 계급갈등 연구는 북한사회의 갈등의 구조 를 이해하고 북한체제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과제가 된

다.

2. 북한사회의 계급갈등 생성 배경

북한 사회에 계급갈등의 동인이 구조적으로 잠재해 있는 까 닭은 산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후의 계급 정책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는 숙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6년 토지개혁시에 지주들이 몰락하였고 1958년에 완료된 농업협동 화, 상공업 국유화 과정에서 성장한 부농들, 거상들이 모두 몰 락하였으며, 산업의 사회주의적 개조에 대하여 불만의 소지가 있는 지식인들도 숙청되었다.

북한에서 계급갈등이 생성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의 계 급정책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과거의 '청산된 계급' 들 의 반항을 진압하기 위하여 계급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북한에 서 엄하게 운용되고 있는 감시와 처벌 제도의 존재이유가 무엇 인가? 엄하게 감시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저항할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체제의 계급정책이 계급갈등을 체제내로 제도화한 계급타협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북한의 계급정책은 계 급투쟁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계급정책은 노동계급인 아닌 다른 계급에 대한 소멸정책이다. 계급출신 성 분별 차별정책이 북한의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적대세력을 양산 하는 핵심적인 메카니즘이다. 그러나 북한은 현시점에서 기존 의 계급정책을 폐기할 수도 없고 더욱 강화할 수도 없는 딜레 마에 봉작해 있다.

3. 1990년대 북한사회에서 계급갈등이 심화된 배경

90년대 들어서 북한사회에서 계급갈등이 심화된 요인을 세가 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근원적인 요인은 경제난 때문이다. 북한당국에서 선전하는 내용과 인민대중의 실제 생활간에 엄청

난 괴리가 있다. 이러한 모순때문에 북한체제 자체의 정당성이 실추되고 있다. 둘째,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권력을 장악한 간부 흔이 휘귀한 생필품을 독점하기 때문에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 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경제난 심화가 야기시킨 사회혼란 때 문에 더욱 엄혹한 사회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어 당국으로 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4. 북한사회 계급갈등의 내용

북한사회에서 계급갈등의 본질은 인민대중들의 간부에 대한 적대감이다. 수령•당•대중은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라고 선 전되고 있는 북한에서 간부와 인민대중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당간부, 안전부, 보위부원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이 높다. 북한귀순자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하는 증언의 하나는 전쟁이 나면 안전원, 보위부원, 당간부부터 쏴죽이겠다는 것이다. 특히 안전원에 대한 원한이 크다고 한다. 매우 엄하게 다스리는 사 회에서 안전원에게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주민들은 간부에 대한 적대감을 직간접적으로 정치적인 행동으로 표출하고 있다. 주로 삐라나 낙서의 형태로 표출되 고 있다. 또한 공공재산을 절취하는 행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행위의 증가는 공공질서에 있어서의 도덕적 타락 으 그 0 1하는 0 것이며 전반적 결핍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기도 하

다.

현재 북한 사회에서 계급갈등은 주로 인민대중의 중간간부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으며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비판은 억제되고 있다. 그러나 간부들에 대한 비판은 곧 최고지도부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북한의 경제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계급갈등은 북한체제를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5. 북한사회 계급갈등의 전망

북한 사회에서 계급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 한사회에서 계급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은 경제난이 해소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계급적 문제가 분배의 문제라 고 볼 때 분배할 재화의 절대적 크기 자체가 적어질 때에는 분 배량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난이 심화되자 희소가치를 둘 러싼 생존투쟁이 심화되고 결과적으로 간부층과 인민대중간의 불평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간부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배급품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사회에 계급갈등을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은 북한주민들의 의식이 전반적으로 사적 자율화가 증가하는 방향 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암시장의 비중 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치적 측면에서 국가 및 지도 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 의식변화가 심화된다는 것은 곧 계급갈등이 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사회에서 계급갈등은 사회갈등의 핵심적인 축으로 발전 하고 있다. 

목 차

제I장 서 론 

1. 문제제기 

2. 계급의 개념 

제Il장 북한사회의 계급구조와 특권계급 11

1. 계급구조의 개념 11

2. 사회주의사회 특권계급의 기원 및 특징 

가. 사회주의사회 특권계급의 기원 

나. 사회주의사회 특권계급의 특징 19

3. 북한사회 계급구조의 변화와 특권계급의 형성 

가. 지주계급의 몰락과 농민계급의 해체   25

나. 개인상공인의 몰락과 숙청 41

다. 인텔리 계급의 숙청 

4. 북한사회 특권계급의 특징 63

제Ⅲ장 북한사회의 계급정책 68

1. 계급정책의 개념 • •••68

2. 북한사회 계급정책의 내용 •• 70

3. 북한사회 계급정책의 특징 . 

4. 서구자본주의 계급정책과의 비교  제IV장 북한사회의 계급갈등 

1. 계급갈등의 개념 

2. 계급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 100

가. 체제이념과 현실의 괴리 101

나. 간부의 독점과 불평등 심화 107

다. 계급질서의 정당성 문제 116

라. 가혹한 통제에 대한 공포와 원한 120

3. 계급갈등의 내용 124

가. 피지배계급의 지배계급에 대한 적대감 확산 124

나. '양반-상놈'의 갈등구도 129

4. 계급갈등의 표출양식 133

가. 소극적 체제저항의 증가 133

나. 일상생활형의 저항의 증가 137

5. 지배계급의 대응 141

가. 감시와 처벌의 강화 141

나. 간부의 관료주의 및 부정부패에 대한 단속 144

다. 계급노선으로부터 군중노선으로 이행 선전 . …146 라. 이데올로기 교육 강화: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 151

제V장 결 론 …155

  11  

 

제 I 장 서 론

1. 문제제기

맑스주의자들에 의하면 자본주의체제는 계급갈등이 심화되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하여 결국은 사회주의체제로 이행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맑스주의 입장에서 자본주의는 자본가계급 과 노동계급간의 제로섬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윤과 임금이 제 로섬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절대적 물적 조건이 아무리 향상되어도 적대계급에 대한 대립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본다. 자 본주의가 소멸될 때에만 노동자의 물질적 이익이 실현된다고 본 다. 맑스의 이러한 분석으로부터 맑스주의자들은 세 가지 '잘못 된' 결론을 주장하였다. 첫째, 단기적 물질적 이익에 관한 갈등은 사회조직의 형태에 관한 계급간의 갈등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둘째, 민주주의 (더 정확히 보통선거)는 계급투쟁을 허용하기 때 문에 자본주의는 억압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 의는 병존할 수 없는 상극적 제도라는 것이다. 셋째, 사회주의에 의 길은 경제적 위기에 두드러지며 혁명적 전복을 통해 이루어진 다는 것이다.1) 그러나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자본주의는 계급갈등을

 

1) Adam Przeworski, Capitalism and Social Democrac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p. 134.

제제내로 제도화하고 결국은 계급간의 타협을 이루어내는데 성공 하였다. 서구의 많은 나라들에서 자본주의적 '착취는 피착취자에 의해 동의되었으며,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간에 계급타협을 이루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존하는 상태가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지속해 왔다.

오히려 계급갈등이 심화되어 체제가 붕괴된 쪽은 사회주의이다.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대결 과정 을 거쳐 붕괴하였다. 소련이나 동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게 된 배경의 하나는 계급정책의 모순과 계급갈등 때문이었다. 지식인을 포함한 중간계급에 대한 정책적 딜레마 때 문에 사회주의 체제는 체제효율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영도계급 으로 선전되는 노동계급이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계급으로 전락하 였다. 

사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계급문제는 새로운 지배계급의 문제 이다. 질라스와 보스렌스키가2) 적절히 분석한대로 현실사회주의 에서는 과거의 착취계급인 자본가와 지주는 소멸했지만 새로운 지배계급이 형성되었고, 노동자는 여전히 착취당하는 계급으로 남아있다. 질라스에 의하면 집단적 소유로 되어 있는 국가재산

 

2) Milovan Djilas, The New Class: An Analysis the Communist System (New York: Praeger Publisher, 1957); Michael Voslensky, Nomenklatura: The Soviet Ruling Class (Garden City, New York: Doubleday & Company, 1984, Onginal German edition in 1980), 보 스렌스키 지음, 홍순호 역「노멘클라투라: 소련의 보이지 않는 권력」 (서울: 평민사, 1982).

을 실질적으로 통제하여 재화와 용역을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당관료들이야말로 생산수단에 대한 실질적인 소유자 이기 때문에 그들이 새로운 지배계급이라는 것이다. 또한 생산수 단에 대한 통제력이 없는 노동자들이야말로 자본주의체제에서와 하등의 차이가 없는 피지배계급이라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측면 에서 보면 사회주의 사회는 사회주의라기 보다는 국가자본주의라 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3) 사회주의 사회에서 계급갈등 이 심화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계급없는 사회로 선언되고 있는 사회주 의가 오히려 자본주의보다 계급적 갈등이 더욱 첨예하다는 점이 다. 파아킨은 보수체계에서 투명성이 높은 체제일수록 소외집단 의 정치의식이나 계급의식이 쉽게 성장한다고 주장하였다. 자본 주의에서는 보수체계의 투명성이 낮은 반면에 사회주의체제는 보 다 명확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에서는 보수의 배당이 보이지 않 는 손인 시장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당과 국가라는 보이는 손에 의하여 행해지므로 보수체계의 투명성이 높은 편이 다. 소외집단이 그들의 사회적 물질적 조건이 신계급의 정치적 결정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보다 불평등의 인식이 매우 첨예하기가 쉽다. 파아킨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수의 배당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 메 카니즘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수 배당의 주체가 누구인

 

3) Djilas, The New Class, P. 37.

지 어느 집단이지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시장이라는 것은 불특 정 다수에 의한 메카니즘이며 그것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은 지배 계급의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경제원칙의 소산이

다.4)

파아킨에 의하면 소련에서 물질적 생활수준의 차이에 대한 사 회적 인식의 정도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  들의 복지수준에 대하여, 그리고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 에 대하여 매우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보다 사회적 불평등의 정도가 심하지 않더라도 불평등 의식의 정 도는 더욱 심한 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의식을 고양하 기 위하여서는 운동조직이나 정당이 필수적이지만 사회주의에서 는 불평등에 대한 계급적 각성을 고양하는데 있어서 이데올로기

가 덜 필요하다.5) 사회주의 사회에서 계급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또 다른 요인은 부, 권력, 사회적 위신 등 다원화된 가치에 의하여 사회계층이 분 화된 자본주의와는 달리, 사회주의에서는 권력이라는 단일의 가 치에 의하여 사회가 층화되기 때문이다. 국가관료제 내에 영향력 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러시아 용어인 아파라치크(Apparatchik) 라는 개념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권력이 있

 

4) Frank Parkin, Class Inequality & Political Order: Social Stratification in Capitalist and Communist Societies (New York: Praeger Publisher, 1971), p. 163.

듬) Ibid., 163,

는 직위에 이르는 길은 공식적인 직위의 획득을 통해서만 이루어 진다.6) 즉 부, 권력, 사회적 위신의 다차원적 측면에 의하여 형성 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구조와는 달리, 사회주의 사회에서 계 층구조는 권력을 중심으로 일차원적으로 형성되어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에서는 경쟁의 장이 단일화되어 있기 때문에 경쟁이 더 욱 치열한 편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계급갈등이 더 심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사회 주의체제는 지배계급의 존재를 은닉해왔고 나아가 계급갈등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급갈등을 정당한 사회 적 문제로 인정하여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사회의 갈등이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던 까 닭은 사회과학자의 눈에 잘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갈등이 사회과학자들의 눈에 관찰되지 않았던 까닭은 사 회주의체제 자체가 서방 사회과학자의 시야에서 차단되어 있었음 은 물론이고, 사회주의 사회내에서도 사회갈등은 대체로 억압되 어 표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령, 사회주의권 사회학자의 눈에 사회갈등이 관찰 되더라도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의 차이는 갈등이 표출되고 있느냐 아 니면 억압되고 있느냐의 차이이다. 갈등이 억압되어 표출되지 않

 

6) Howard Davis and Richard Scase, Western Capitalism and State Socialism: an Introduction (Oxford: Basil Blackwell, 19%), 한상진 역,「체제비교의 사회학: 서구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서을: 느티나 무, 1990), p. 140.

았다고 해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억압되어 표출이 안될 수 록 갈등의 강도는 더욱 격렬해질 가능성이 있다. 갈등은 표출되 어야 갈등의 요인이 밝혀져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 한 이유 때문에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갑자기 폭발 적으로 붕괴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사회주의 사회의 계급갈등이 사회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실추시키고 결국은 체제를 붕괴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사회에서도 갈등이 사 회적 현상으로서 가시적으로 표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갈등이 존 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갈등이 엄격한 감시와 통제체제하에서 억압되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억압된 갈등들이 최 근에는 소극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표면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사회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불만 표출은 매우 엄격하게 다스려지기 때문에 표출되지 않지만 그 이하 간부 급 지배계급에 대해서는 불만의 표출이 증가하고 있다. 불만의 내용이 특정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특정개인의 불만이 아니라 지 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계급갈등의 구도로 나타나고 있다. 과 거 조선시대의 계급갈등의 축이었던 양반과 상민간의 대결구도가 북한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일반 인민들이 자신들을 상놈, 간부층들을 양반놈으로 지칭하여 인식하며, 양반-상놈간의 불평등을 문제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의 목적은 최근 북한 사회에서 경제난과 정치적 과도기 상황에서 심화되고 있는 계급갈등을 분석하는 것이다. 북한 사회 계급갈등의 근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계급갈등은 구체 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가? 북한에서 심화되고 있 는 계급갈등은 향후 북한체제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 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하여 계급갈등 이론의 시 각에서 접근한다.

2. 계급의 개념

문주스에 의하면 계급을 결정하는 결정요인은 생산영역에서의 생 산관계이다. 개인의 계급적 지위는 생산수단에 대하여 갖는 관계 에 의하여 결정된다. 즉, 생산영역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 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지배계급,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노 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는 사람들의 집단을 피지배계급 또는 노동 자계급 이라고 일컫는다.

계급의 개념은 흔히 일상생활에서는 자본가계급 또는 노동자 계급처럼 경제적 영역에서의 역할과 관련된 매우 좁은 의미로 사 용되기가 일쑤이지만, 맑스 이론의 전통에 있는 사회과학자들은 계급 개념을 매우 포괄적인 지배와 피지배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지배계급은富뿐만 아니라, 권력 및 사상과 이념, 나아가 국가 마저 지배하기 때문이다!)

 

7) Nicos Poulantzs, "On Social Class, Anthony Giddens and 북한 사회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갈등을 분석하는데 있 어서 계급과 계급갈등의 개념은 매우 유용하다. 자본주의 모순과 사회주의에로의 혁명적 변화를 분석하기 위한 맑스의 계급개념은 사회주의에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아이로니가 아닐 수 없다. 사회 주의 사회의 경우 생산수단에 대한 법적 소유권은 인민의 국가로 일컬어지는 국가에 있으며, 기업에 대한 통제권, 즉 경제적 소유 도 노동자들에게 속하지 않고 기업관리자 및 당관료들에게 속한 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에서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형태는 지배 계급의 사적 소유의 새로운 형태를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 의의 지배계급을 '새로운 부르조아지'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8)  맑스의 이론을 계승한 레닌은 계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 를 내렸다. “계급이란 역사적으로 채택된 사회적 생산체계 안에 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그들이 생산수단과 맺는 관계와 사회노 동조직안에서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즉 사회적 부 중에 서 그들이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몫의 획득방법과 그 크기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 인간들의 거대한 집단을 말한다. 계급이란 사회경제라는 한정된 구조안에서 자신이 점하고 있는 위치가 다 로기 때문에 타인의 노동을 착복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각 종 인간집단을 두고 쓰이는 말이다."9)

 

  David Held, eds., Classes, Power, and Conflict: Classical and Contemporary Debate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2), p. 101.

6) Ibid., Pt 103|

사회주의사회에서의 지배계급은 이러한 레닌의 정의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지배계급은 사회생산체계안에서 차지하는 우월한 지 위와 그 생산수단과의 관계 (그것을 자유로이 처분할 있는 권리), 사회노동조직 안에서의 감독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그들이 소유 하고 있는 사회적 부의 몫(매우 큰 몫)에 의해 사회주의사회의 다른 계급들과 구별되는 집단이다. 지도자 집단은 숨겨진 하나의 계급을 구성하고 있다. 이 계급이 사회생산체제 안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우월하며, 생산물을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고, 사회노동조 직안에서는 감독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소련사회의 지 배계급이다. 그들은 맑스-레닌주의적 기준에서 명백히 지배계급

을 형성한다.10)

사회주의 사회에 지배계급이 존재한다면 피지배계급도 존재한 다. 생산관계의 한 중요한 특징은 생산수단을 소유 또는 통제하 지 않는 인민대중을 노동자 계급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유사한 경제여건,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어 계급을 형성 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적 조건만으로는 계급을 형성하는데 충분 하지 않다. 노동자들은 생산관계에서 같은 처지에 있다고 해서 지배계급에 대하여 집단적 적대감을 가지지 않는다. 생산수단과 국가를 장악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관계, 그 관계를 재생하 기 위한 계급정책이 계급간의 갈등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

 

9) 보스렌스키,「노멘클라투라」, P. 33에서 재인용. 10) 위의 책,p, 34.

한다. 따라서 계급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급구조와 계급정 책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개념들이 이 글의 분석틀로 사용될 것이다.

이러한 개념톨에 의거하여 먼저 북한의 계급관계의 구조을 살 펴보고, 그 다음에 계급정책을 살펴볼 것이다. 그런 다음에 북한 사회의 계급갈등, 즉 피지배계급과 지배계급간의 갈등, 계급의식 과 계급행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북한의 계급구조와 계급정책에 대한 분석은 북한에서 계급갈등이 발생하 게 된 구조적 배경을 설명하게 될 것이다. 

제Ⅱ장 북한 사회의 계급구조와 특권계급

1. 계급구조의 개념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 및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의하여 주어 지는 생산영역에서의 권위관계 그 자체가 계급구조인 것은 아니 다. 그것은 좁은 의미의 계급구조의 개념에 불과하다. 계급구조 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관계의 구조인데 이것은 곧 지배 계급에 의한, 피지배계급에 대한 착취의 구조이다. 또한 계급구조 는 계급간 불평등의 구조이다. 계급간의 불평등은 계급간의 착취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다. 부유한 계급의 부가 가난한 계급에 대 한 박탈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부자계급이 가난한 계급을 착취한 것이다. 즉, 부자가 부자인 까닭은 가난한 계급을 희생하였기 때 문이라면 양자는 착취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착취의 개념은 전통적인 맑스의 이론에서 제시되었다. 어떤 계급이 다른 계급의 노동에 의하여 획득된 잉여가치를 독점 한다면 그것은 착취이다. 착취계급의 수입이 피착취계급의 노동 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 경우에 피착취계급의 가난과 착취 계급의 부 사에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발생하는 것이다.1) 사회주의 사회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레닌은 사회주의하에서는

 

1) Erik Olin Wright, Classes, (London: Verso, 1985), p. 65.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는 사라지리라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아무도 개인재산으로 공장, 기계, 토지 등의 생산수단을 점유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스렌스키가 잘 지적한 바와 같 이, 사회주의 계급관계도 착취의 관계이다. 소련 경제가 노멘클 라투라의 구성원들 개개인의 소유가 아닌 노멘클라투라 자체의 집단 소유 형태를 나타내는 한, 근로자들의 착취는 확실히 인간 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아닌, 국가에 의한 인간의 착취형태로 가 면을 쓰고 나타난다. 왜냐하면 집단횡령에는 확실히 개인적인 착취가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멘클라투리스 트들의 높은 수입이 어디서 오는 것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집이 며 휴양소, 관용 자동차들의 유지비는 어느 돈에서 나오는 것이 란 말인가? 잉여가치가 개별적으로 나뉘어지기 이전에 그것은 우선 노멘클라투라의 국가공유재산으로 통하므로 노멘클라투라의 어떤 구성원이 어떤 근로자를 착취하는지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러나 특정인물을 지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노멘클라투라 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로 규정되어지는 생산관계가 어떻게 구조 화되어 있느냐 하는 것은 사회구조의 핵심적인 토대를 형성한다. 口鬱근개 六- 느1- 이러한 측면을 하부구조 또는 토대라는 말로 표현했다. 결국 사회주의 사회의 계급구조도 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2) 보스랜스키 지음, 홍순호 역,「노멘클라투라: 소련의 보이지 않는 권력」 (서울: 평민사, 1981), P. 155.  

 

착취적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그것과 차 이가 없다. 사회주의 사회의 착취적 계급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계급없는 사회로 선언된 사회주의사회에서 어떻게 새로운 특권계 급이 형성되고 피지배계급은 어떻게 피착취계급으로 전략되었는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 사회에서 계급적 착취관계가 현 성된 과정을 살펴보기에 앞서 다른 사회주의 사회에서 지배계급 이 특권계급으로 군림하게 된 정치적 경제적 배경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사회주의사회 특권계급의 기원 및 특징

가. 사회주의사회 특권계급의 기원

사회주의 체제에서 특권계급이 등장하게 된 것은 혁명과정에 있어서 당의 전위적 역할에 관한 레닌의 이론과 실천에서 비롯되 었다. 당의 전위적 역할에 대한 레닌의 입장은 당시의 경제주의 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정립되었다. 경제주의자들은 사적 유물론 을 해석함에 있어서 노동자의 혁명적 의식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조건이 성숙해야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레닌은 노동자를 혁명적으로 의식화시키는 것은 사회적•경제적 조건이 아니라 당 의 전위적 역할이라고 보았다.3)

 

3) Ralf Miliband, Class Power and State Power (New York: Verso,

레닌은 자발적인 노동계급운동은 자연발생적인 상태로 방치되 면 결국은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게 되며 노동조합주의는 부르조아지가 노동자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노예화하는 수단이라 고 보았다.4)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더 좋은 조건에 팔기 위하여 투쟁을 하기는 하겠지만 노동자들의 운동은 어디까지나 부르조아 노동운동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혁명의식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5)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스스로는 사회주의적 의식을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에 혁명에의 의지는 단순히 사회적•경제적 조건에 의하 여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조직화되어야 한다고 보았 다. 사회적 조건이 혁명의 가능성은 만들겠지만 그 가능성을 현 실화하는 것은 조직화된 당이며 당만이 혁명적 의식의 원천이며 주도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6) 레닌은 당이 전위대, 조직자, 지도자, 이론가여야 하며 그러한 역할 없이는 노동자들이 부르조아사회의 지평을 넘을 수 없다고 보았다. 오직 당만이 사회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

 

1983), PP. 161 ~62; Leszek Kolakowski, Main Currents Marxism, 2-The Golden Ag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8), PP. 386, 3%.

4) V. I. Lenin, State and Revolution, Lenin's collected Works, vol. 5, p.

384; Kolakowski, Main Currents Marxism, 2-The Golden Age, P.

5) Kolakowski, Main Currents Marxism, 2-The Golden Age, P. 389.

6) pp 397~98,

문에 당은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독점적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았다고 당의 헤게모니에 대한 레닌의 사상은 자연히 사 회주의 사회에서 당의 지도적 역할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당은 공중보다는 공중의 이익, 요구, 욕구에 대하여 더 잘 알며 인민대 중은 너무 무식하기 때문에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며 당만이 과학적 지식에 기초하여 잘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 에서 레닌은 당 주도의 사회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부르고, 유토피아 사회주의 및 자생적인 노동자운동과 구별하였다.

이것은 결국 노동계급과 사회전체에 대한 당의 독재에 대한 이 데올로기적인 기초가 되었다.8) 10월혁명 이후에는 전시공산주의 체제의 형태로 급속히 일당 독재의 사회가 발전했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부터 레닌은 전위당의 역할을 핵심적인 것 으로 강조하였다. 레닌은 당의 배타적인 정치적 지도를 주장하였 다. 10월혁명으로 소비에트와 공존하던 임시정부가 저항없이 붕괴 됨에 따라 권력은 소비에트로 완전 이전되었지만 무너져버린 러시 아제국의 광대한 영토를 압도했던 혼돈에 대해 효과적인 통제를 확립한다는 것, 그리고 볼세비키를 그들의 구제자나 해방자로 여 기는 노동자, 농민 대중의 열화같은 열망에 부응하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정착시킨다는 것은 만만치 않는 복잡한 과제였다.9) 이러한

 

7) Ibid., PP. 387, 391.

8) Ibid., p. 392.

9) Edward Hallett Carr, 나남편집부 역,「러시아 혁명: 레닌에서 스탈린까 지, 1917~1929」(서울: 나남출판사, 1983), P. 18.

상황에서 프를리1타리아냐 당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당조직이 당을 대체하였고, 중앙위원회가 당조직을 대체하였으며, 일인의 독재자가 중앙위원회를 대체하였다.10)  일당 통치는 곧 소비에트 기구와 당 기구를 통합하는 것을 의 미하였다. 레닌은 1921년에 소비에트 기구와 당의 기구 통합을 주장하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의회제도를 폐지하며 입법부와 행정부의 분립을 폐지하는 것이다. 행정과 입법을 통합하는 것이 다. 1871년의 파리코뮨과 동일한 형태의 권력이라고 규정되었던 소비에트가 10월혁명 이후에는 점차 국가권력의 중추기관으로서 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고, 당 지도하의 기관으로 전락하였다. 이것이 소비에트 공화국과 의회정권 사이의 차이이다. 그렇게 함 으로써 통치자가 바로 법을 결정하며 누구에 의해서도 통제받지 않는 사회로 발전된 것이다.11) 모든 권력이 일당에 집중되었다. 옥상옥을 이룬 관료기구는 모든 시민에 대하여 생사여탈권을 갖는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12) 당의 관료, 국가기구의 관료들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게 된 것이다.

생산수단의 국유화

신계급의 탄생은 사유재산의 국유화를 통해서 가능했다. 정치권

 

10) Miliband, Class Power and State Power, PP. 160~61.  

11) Kolakowski, Main Currents 행 Marxism, 2-The Golden Age, P. 502. 12) P. 490.

 

력에 대한 독점뿐만 아니라 사유재산을 국유화함으로써 사유재산 에 대해서도 독점하게 되었다. 소련의 농업집단화는 혁명전후에 소련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세력인 농민계급을 해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것이 러시아의 저항적 농민이었다. 그들은 매우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있 게 되었다. 신계급은 농업집단화를 실시함으로써 이러한 농민을 경제적으로 행정적으로 복종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실제로 1920년대 말 이후 소련사회를 지배한 국가권력 과 정치적 제도들은 모두 농민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발전되었다. 농민을 통제하고 신흥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식량을 담보해 주는 것이 1920년대 소련 정치의 주요 문제였다. 볼세비 키당에게는 노동자에 대한 정치적 호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농 민의 농산물이 필수불가결했다. 이에 따라서 나타난 것이 강제적 인 농업집단화라는 거대한 드라마였다.13) 집단화는 농민에 대해 서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통제를 행사할 수 있는 관리기구를 수립 하기 위해 의도되어진 것이다. 경제적인 효율성은 부차적인 문제 였다. 그러한 까닭에 농업의 집단화의 성공여부는 경제적 효율성 은 무시되고 몇 퍼센트의 농민을 동원에 참여시키느냐에 달려있 었다.14) 농민을 집단농장에 동원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13) Silviu Brucan, World Socialism at the Crossræds, An Insider's view, 이선희 역,「기로에 선 사회주의」(서울 푸른산, 1990), P. 64.

14) Don Van Atta, "The USSR as a Weak State' : agrarian origins Of resistance to perestroika," World Politcs, vol. )(니Ⅰ, no. 1 (1989), p.

은 도시의 기간요원인 기능 노동자, 내전 제대군인, 특별기동부대 (shock workers), 공장의 지도자, 공산당원의 조직화된 지휘에 있 었다. 비올라의 연구는15) 집단화 기간의 가장 성공적인 주요 운 동이었던, 25,000인 운동(25,000er campaign)을 다루고 있다. 25,000인들은 농촌의 기존 당-국가 관료를 대체하기 위하여 동원 되었으며 그 이후로 농촌의 통상적인 상태는 계엄상태에 있어왔 다. 집단화는 농민의 자율성을 질곡했고 농민봉기의 위협을 제거 하는데 이바지했다. 집단화에서는 개별 농민들이 혈연보다는 임 무와 기능에 따라 그룹화되었다. 보수는 필요에 의해서 보다는 생산력에 근거하여 주어졌다. 이러한 전통이 1940년대 후반과 50 년대 초까지 남아있었으며, 행정적 동원은 지금까지도 농업을 관 리하는 기본적인 수단이라고 한다.16) 부카린(Nikolai Bukhann)이 이름 붙인 대로 '군사봉건정권'(Ilⅶtary feudal regime)이 처음에 는 농촌에만 설치되었다가 후에 전체 경제에 확대되어 명령체제 를 만들어냈다. 스탈린하에서 소련은 강제징용제로 완전히 이행 되었다. 처음에는 농촌에, 그 다음에는 모든 계획경제에로 확대되 었다.17) 아타는 이러한 성격의 경제체제를 동원경제체제(campaign economic system)라고 규정 했다.

 

133.

15) Lynne Ⅵ01a, The Best Sons 행 the Fatherland: Workers in the Vanguard Soviet Collectiviza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16) Atta, "The USSR as a 'Weak State', P. 138. 17) PP. 132~33.

나. 사회주의사회 특권계급의 특징

소련사회주의가 약속한 최대의 환상은 자본주의적 소유제가 철 폐되면 계급없는 사회가 실현된다는 것이었다. 1936년 새헌법이 발표되었을 때 스탈린은 착취계급이 소멸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자본가계급과 구시대의 계급은 사실상 폐지되었던 것이다. 그러 나 새로운 지배 계급이 형성되었다. 새로운 지배계급의 토대는 레닌의 전위당이었다. 그들은 당 상층부와 국가의 정치기관이다. 새로운 계급은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행정적 독점 때문에 특권 (special privileges)과 경제적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 당이 새로운 계급을 만들었고 당 덕분에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었고 새로운 계 급은 당을 자신의 토대로 활용한다. 새로운 계급, 즉 관료, 더 정 확히 말하면 정치관료는 과거의 착취계급 속성을 모두 갖추었음 은 물론 새로운 속성도 함께 갖추었다. 질라스는 이들을 신계급

(new class)이라고 불렀다.18) 신계급이 특권계급인 증거는 신계급이 장악하고 있는 소유권과 타계급에 대한 관계에 있다. 개인이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느냐는 것은 소유권이 가져다 주는 물질 및 그 밖의 특권에 의하여 규정 된다. 사회주의 사회의 정치관료는 국유화된 재산을 사용하고 향 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신계급의 소유특권은 국

 

18) Milovan Djilas, The New Class: An Analysis the Communist System (New York: Praeger Publisher, 1957), PP. 39~40.

 

민의 수입을 배분하고 임금을 결정하며, 경제발전을 감독하며 국 유화된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배타적 권한이다.19) 신계급의 사회적 기원은 프를레타리아이다. 신계급은 반자본주 의적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노동계급에 의존한다. 신계급의 권 력장악은 프를레타리아와 노동계급의 연합의 결과이다. 신계급이 권력을 공고히 할 때까지 의존해야 하는 것은 대중이기 때문이 다.20) 신계급이 프를레타리아를 위한 계급이라는 말은 이데올로 기적이다. 그들은 단지 프롤레타리아만이 기존의 체제를 전복시 키는데 자신을 도와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이들에게 연민의 정을 가졌을 뿐이었다. 레닌은 노동계급이 가장 동질적이고 가장 규율적인 사회계급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 계급이 혁명의 정치적 무기가 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였다고 한 다. 노동계급이 없이는 직업혁명가들만으로는 혁명이 불가능하다. 소수의 지식계급(또는 전위대)가 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도움이 없이는 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 민중주의자들은 수적으로 다수인 농민계급에 의존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레닌에 의하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직업혁명가들은 잘 조직되고 잘 규율된 프롤레 타리아 계급을 기반으로 삼아야 했으며 이들의 중계역할을 통하 여 권력을 장악해야만 했던 것이다.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 있어 서 노동계급과 레닌주의, 당 사이의 관계는 바로 그러한 것이다.

 

19) Ibid., P. 44.

20) Ibid., p. 42.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전위대이며,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 투쟁한다는 == 이 말들은 이데올로기이다. 21) 사회주의 체제는 오랫동안 그들의 본질을 은폐하여 왔다. 신계 급의 본질은 집단적 소유제라는 사회주의적 어법으로 은폐되어 왔다. 소위 사회주의적 소유제라는 것은 정치관료에 의한 실질적 소유라는 사실을 위장해왔던 것이다.22) 사회주의에서 권력과 소 유권은 하나의 집단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 실은 법적 위장에 의하여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에서 법적으로는 모든 사람은 물질적 측면에서 평등하다. 공식적 소유 권자는 국가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독점적 지배구조 때문 에 소수의 지배계충이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재산은 법적으

로는 사회적 국가적 소유로 간주되고 있으니 실제로느 “ 그 트기0 只1 LI-1이 그들의 이익대로 관리하는 것이다. 법적 성격과 실제 상황간 의 간격이 비정상적인 사회적 경제적 관계를 야기하는 것이다. 지배집단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지배집단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재산소유와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다.23) 신계급 은 국가와 사회의 이름으로 관리하고 분배하는 집단적 소유제의 도입 을 통하여 권력, 특권, 이데올로기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멘클라투라는 소련의 신계급을 지칭하는 말이다. 소련의 익명 소유자들이 국가를 매개로 삼아 그들의 산업을 통제한다는 사실

 

21) 보스렌스키 지음,「노멘클라투라」, P. 51.

22) Djilas, The New Class, P, 47. 23) Ibid., P, 66.

이야말로 국가는 곧 지배계급의 기구라는 레닌의 말을 사실로 증 명한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산업체들은 국가에 귀속된다. 따라서 맑스주의적 관점에서의 산업체의 실제 소유자를 알아낼 수 있다.

소유자는 전체인민이 아니라 소수의 지배계급이며,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소수의 노멘클라투라인 것이다. 24) 통일 전 동독의 권력엘리트는 약 330명이었다고 하며, 당, 대중 조직, 국가기관, 군대, 법조계 등의 460개 요직을 독점적으로 차 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도부 핵심은 중앙위원회 서기 (Sekretar)들로 구성되는 '당정치위원회'와 지역당 제1서기들로서 1989년 당시 총이 40명이 64개의 직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중 정치위원회에 속한 사람들은 총서기 호네7d(Honecker), 경제전문 가 미타그(Mittag), 국가안전부장 밀케(Mielke) 등 남자 24명과 여자 2명이었다. 1989년 10월 당시 정치위원들의 평균연령은 66 세였고, 그 중 8명은 평균 77세였다. 이들의 평균 재직기간은 195 년이었고 중양위원에 속한 기간은 평균 27년이었다고 한다.25) 그 들이 동독의 지배계급의 핵이며 생산수단의 실질적 소유권자들이

다.

 

24) 보스렌스키 지음,「노멘클라투라」, P. 145.

25) 유팔무, “(구)동독 사회의 구조와 사회불평등체계의 변화," 김채윤•장경 섭 편,「변혁기 사회주의와 계급•계층」(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p. 144.

피지배계급의 저항

신계급의 지배가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유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념과 실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신계급은 인류를 불행과 재난에 서 해방하는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도그마를 소리높여 외 치면서 사실은 그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계급 은 저항에 직면하였다. 국가에 의해서 생산되는 자본재는 신계급 의 사적 독점보다는 사회에 의하여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서 선발된 대표자를 통하 여 관리되어야 한다는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 요 구는 신계급으로 하여금 가면을 벗고 신계급의 착취적이고 지배 적인 속성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26) 신계급은 국가재산을 자신의 것처럼 처분한다는 사실이 국민들 에게 명백하게 탄로날 때마다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 나 그 개혁은 그러한 내용으로 발표되지 않고 사회주의를 강화 한다거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일부로서 발표되었던 것이다.27) 이러한 모순 때문에 사회주의는 비판이 없을 수 없으며 이口 순이 심화되면 지배계급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모순이 신계급으로 하여금 자율화 또는 분권화 와 같은 변화를 하도록 만들었다. 사회주의가 체제의 정당성을

 

26) Djilas, The New Class, P. 66. 27) Djilas, PP. %~67.

상실하고 밑으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하였던 것은 이러한 모순에 기인한다.

3. 북한 사회 계급구조의 변화와 특권계급의 형성

북한 사회도 특권계급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주의 국 가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북한에서 지배계급의 형성과정도 소 련의 경우와 매우 유사하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일단의 전위대 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뒤 전산업을 국유화하면서 다른 사회계 급을 해체하였다. 지주, 자본가, 노동자, 농민, 지식인 등 북한사 회에서 주요 사회 세력은 일련의 사회주의 개혁으로 와해되거나 체제내로 포섭되었다. 토지개혁을 통하여 지주계급은 해체되었고 상공업 국유화를 통하여 상공인들도 해체되었다. 인텔리 계급도 숙청과 개조사업을 통하여 해체되었다. 결과적으로 가장 강력한 사회세력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력집단 뿐이며 정치권 력을 견제할 만한 사회세력은 모두 해체되었다. 국가, 당, 김일성 일파가 주도가 되어 북한의 지배계급으로 등장했으며 사회주의적 계급정책을 통하여 인민대중을 통제하고 있다.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힘을 상실한 피지배계급과 모든 권력을 독 점한 지배계급으로 양분되었다. 북한에서 간부를 제외한 그 밖의 계급은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역량이 없다. 지배계급의 통치대상에 불과하다. 지주, 농민, 상공인 등 제반 사회계급이 해체되는 과정은 기득권층을 해체하고 숙청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 람들이 반동분자 또는 파괴암해분자로 몰려 처벌을 받았다. 제반 사회계급이 해체되고 새로운 지배계급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 름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

가. 지주계급의 몰락과 농민계급의 해체

토지개혁과 지주계급의 몰락

북한에서 지주계급이 몰락하게 된 것은 1946년에 실시된 토지 개혁을 통해서였다. 당시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는 구성된지 한 달만에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공포하고 한달만에 토지개혁의 실행을 완료하였다. 북한의 토지개혁의 원칙과 방법은 1946년 3 월 5일에 공포된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랑과 동년 3월 7일에 공포된 '토지개혁법령에 대한 세칙'에 나타났다. 토지개혁의 기본 원칙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와耕者有田이었다. 5정보 이상의 땅을 가진 자는 지주로 규정되어 몰수되었다.28) 토지개혁이 끝났을 때 전국적인 토지의 몰수 내역을 보면 총 1,000,325정보가 몰수되었는데 이는 북한 총 경지면적인 1,982,431 정보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면적이었다. 이 중 일본국가 및 일본

 

28)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박명림,「한국전쟁의 발발과 기 원: 기원과 원인」, vol. 2 (서울: 나남출판, 1996), 제4장 참조할 것.

인과 종교단체의 토지는 겨우4%였다. 나머지 약 960%는 북한의 지주 및 민족반역자, 소작주는 자의 토지였다. 이들은 총 405,603 가구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북한의 총농가호수인 1,121,295호의 약 40%였다. 열농가 중 최소한 네 농가는 토지를 전부 또는 일부를 몰수당했음을 알 수 있다. 몰수대상 가구수가 실로 엄청나다.29) 토지개혁의 최대의 수혜층은 토지를 몰수 당하지 않고 분배받 은 농민이었음에 들림없다. 그러나 토지개혁을 통하여 피해를 본 사람의 수가 매우 많다는 사실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땅을 몰수당한 지주들의 경우는 북한을 떠나지 않고는 살 수 없 는 억울함을 당하였다. 지주들은 축력, 농기구, 주택의 일체의 건 물 및 대지까지 완전하게 몰수당하였다. 지주는 기존의 거주지에 서 더 이상 생활할 수 없게 하였다. 타군으로 이주하게 하였던 것이다. 박명림에 의하면 이것은 38선을 의식한 의도적인 반동 남하정책이었던 것이다. 소련군은 북한으로부터 계속되는 탈출과 남하를 의식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몰수당한 지주 약 3 만가구(29,683)의 13%인 3,911가구만 타군으로 이주하였고 나머 지 87%의 지주는 월남하였다. 이것은 북한당국이 의도했던 방향 이었다. 남하의 방임과 유도는 혁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저항 계급의 축출정책이었다. 이들이 계속하여 북한에 남아있다는 것 은 저항계급의 전존을 의미하였고 그것은 북한체제에 대한 계속 적인 도전요소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을 피하여 남

 

?9) 책, 196,

 

한으로 탈출한 사람은 100만명 정도라고 한다.30) 토지개혁에 대한 저항세력은 상당수 북한을 탈출하고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반발세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새로운 반발세력이 생성된 것이다. 토지개혁 이후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갔기 때문이다. 북한은 토지개혁 후 당해연도의 산물에 대하여 농업현물세제를 실시하였다. 처음에는 25%0를 징수하도록 하였으나 이 수치는 법령상의 규정일 뿐이었다. 농업현물세뿐만 아니라 애국미, 성출 등 잡세로 인하여 실제로는 40% 정도를 납 부해야 했다. 북한의 농민들이 낸 각종의 잡세는 토지개혁 이전 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북한의 토지개혁은 사인지주제에서 국가지주제로 변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북한은 도시나 농 촌에서 기아가 속출하는 현황이었다고 한다.31)

농업협동화의 동기

북한 농민들에게 새로운 불만의 요인이 된 것은 농업협동화 정 책이다. 토지개혁으로 농민들이 토지를 얻어 잠시 기뻐했던 •농민  = 근 1-0 다시 토지를 국가에 반납해야 했다. 토지소유권을 빼앗긴 것이다. 1946년의 토지개혁에 의하여 이루어진 토지의 개인소유 가 김일성의 1954년 3월 11일 지시와 1954년 11월 당 중앙위 전

 

30) 위의 책, PP. 200, 356.

31) 책, PP. 215~16.

원회의를 통하여 농업협동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정 한 이후,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1958년 8월까지 완수되었다. 북한 의 전체농민과 농지가 농업협동조합에 망라되었다.

김일성이 농업을 사회주의적 협동화의 길로 이끌었던 이유에 대하여 남한의 사회과학자들은 주로 경제적인 이유를 드는 경향 이 있다. 전쟁 동안 농촌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개인경리로는 농 사를 지을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일성의 주 장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이다.

농촌에서 모자라는 로력과 축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우 리는 농업을 협동화해야 하겠습니다. 3년동안이나 계속된 전 쟁으로 말미암아 농촌에서는 로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또한 농 촌의 많은 청년과 장년들이 군대에 나갔기 때문에 지금 농촌 로력의 대대수는 부녀자와 늙은이들입니다. 농촌에서는 지금 축력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좋은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로 력이 부족하여 농사를 잘 짓지 못하며 축력이 없는 사람은 마 무리 농사를 잘하려해도 잘할 수 없습니다.32)

북한의 농업협동화정책을 분석한 사람들은 김일성의 이러한 주 장을 액면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사회적 동태성과 프를레타리

 

32) 김일성, “농촌경리의 금후 발전을 위한 우리당의 정책에 관하여” (조선 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54년 11월 3일),「김일성 저작집 9」(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P 129.

아 독재권력의 본질을 완전히 무시한 관점이다.

북한에서 농업협동화에 대한 이해는 북한농민들의 계급적 속성 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가장 직접적인 사건은 북한 농민들이 국가에서 시행한 양곡수매 사업을 거부한 사건이다.

농민들이 양곡수매를 거부한 사건의 경위를 간단히 살펴보자. 사업을 북한은 1954년에 토지개혁 이후 그리고 전쟁 이후 국가적 인 양곡수매사업을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국가적인 량곡수매사업 은 올해에 처음으로 실시하는 사업이며 이 사업을 잘하는 것은 전후복구건설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며 인민생활을 안전향상시키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라고 선언하였다.33)

량곡수매사업은 국가가 수매한 량곡을 가지고 량곡의 시장가 격을 조절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개인상인들의 투기적인 폭리현 상을 제한할 수 있게 합니다. ••• 량곡수매사업은 여유량곡을 많이 가지고 있는 농민들이 쌀값이 오르는 기회를 리용하여 -폭리를 얻거나 빈농민들에게 고리대를 놓아 리득을 보는 것과 같은 착취적 현상을 막으며 나아가서 일부 농민들이 부농화되 는 것을 제한할 수 있게 합니다.34)

 

33)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제30차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54년 8월 %일)," 위의 책, P. 83.

34) S,p 83 

 

당시 북한은 양곡이 유일한 부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양곡을 누 가 장악하느냐가 누가 권력을 장악하느냐와 마찬가지였다. 양곡 을 국가가 소유해야 국가가 노동자와 농민, 인텔리를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농민들이 부농화되어 기득권이 강화되면 농민 이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지배계급이 독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양곡수매사업에 대하여 농민들은 국가에 싼값으로 팔기 보다는 개인상인들에게 비싸게 파는 것을 선호하고 양곡수매사업 에 호응하지 않았다. 김일성이 수매양곡에 대한 적절한 보상보다 는 애국심에 호소하였기 때문이다. 나라사정을 생각하여 손해를 보더라도 개인상인에게 팔지말고 국가에 수매하도록 요구하였다.

우리농민들은 지난날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자기들이 지은 곡식을 억울하게 빼앗긴 원한을 가슴에 품고있기 때문에 의무 수매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농민들을 잘 설득하고 교양하여 그 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면 의무수매제를 하지 않고도 여유 양곡을 얼마든지 수매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루빠성원들은 농민들에게 쌀을 국가에 수매시키지 않고 개인장사군들에게 팔 면 나라사정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해설하여 주어야 합니다.35)

양곡수매사업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국가의 의도와 농민들의

 

35) 글, PP. 85~86.

이익이 상충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싼값에 몰수하다시피 쌀을 수 매하고자 하지만 농민들의 최대관심은 최대의 개인적 이익을 추 구하는 것이다.

아직 적지않은 농민들의 사상상태는 자원적으로 량곡수매사업 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일부 농 민들은 세금을 바치기 위하여 부득이 가을에 쌀을 얼마간에 팔지만 대부분은 가을에 팔지 않고 봄에 쌀값이 오른 다음에 팔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36)

빼앗아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싼값에 쌀을 수매하고자 하는 북한정권에 대하여 농민들이 수매를 거부한 것이다. 아래의 김일 성의 지적에서 보는 바대로 양곡수매사업이 농민들의 반발에 부 딛쳐 결국 실패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일성으로서는 큰 충격이 었다. 정부정책의 실패가 마치 당 및 정권기관의 간부들이 잘못 해서 그런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농민들에 대한 수탈을 효과적 으로 못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량곡을 여유가 있는 농민들에게서 계획적으로 수매할 데 대하여 한두번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당 및

 

36) 글, P. 84.

정권기관 일군들은 사전에 아무러한 사상동원사업도 하지 않 고 있다가 어두운 밤에 주먹을 내밀듯이 농민들에게 내리먹이 는 식으로 량곡수매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당 및 정권기관 일 군들이 이런 식으로 사업한 결과 량곡수매사업에서 편향을 범 하게 되었으며 높은 값을 주고도 량곡을 제대로 수매할 수 없 었습니다. 37)

김일성은 또한 농촌에 계급적 원쑤들이 숨어있어서 그런 것으 로 주장하였다. 농민들의 이기주의 때문이라고도 주장하였다. 자 기가 생산한 쌀을 가능한 한 높은 가격을 받겠다는 농민들을 계 급적 원쑤, 간첩, 암해분자라고 규정하였다.

이번 량곡수매사업을 통하여 농촌에 계급적 원쑤들이 적지않 게 숨어있으며 그들이 당과 정부의 정책을 파탄시키기 위하여 교활하게 책동하고 있다는 것이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지 않은 농촌당원들과 농민들 속에서는 현단계에 있어서의 우 리나라 혁명의 성격과 우리 혁명의 최종목적 등을 똑똑히 인 식하지 못하고 혁명의 리익보다는 몇가마니의 자기 쌀을 더 귀중히 여기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매우 엄중한 문제 입니다. 당과 혁명의 리익보다 자기의 쌀 몇가마니를 더 귀중 히 여기는 사람이 어려운 때에 당과 혁명의 리익을 배반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38)

 

37) 김일성, “농촌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대책에 대하여" (조선로동 당 중양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한 결론, 1955년 2월 2일),「김일성 저 작질 와) pp. 216~17.

 

농촌에서 간첩, 파괴암해분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전군중적 운동으로 벌려야 합니다. 간첩, 파괴암해분자들과의 투쟁에서 우리 당의 관대정책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 니다. 우리 당의 관대정책은 동요분자들에게 관대하라는 것이 지 결코 적들에게까지 관대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적과 동요분자들을 옳게 가려 극소수의 적들은 무자비하게 치 고 동요분자들은 설복하고 교양하여 그들이 적의 편에 넘어가 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39)

아래의 김일성 담화문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듯이 북한에서는 부 농이 성장하여 북한 정권과 대립되는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 다. 북한에서 농업협동화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치적 이유가 여 기에 있다. 김일성은 북한농촌에서 토지개혁 이후 자기 땅을 가 지고 농사를 지으면서 성장하고 있었던 농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농촌에서 부농들이 부단히 산생되고 있는데 대해서 묵 과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토지개혁을 잘 실시했습니다. 토지개혁후 아직까지 큰 문제로 될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어 쌨든 농촌에서 점차 부농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부농화하는 사람들은 비록 토지개혁의 혜택을 입기는 하였 지만 그들의 경리가 점차 자본주의적 성격을 띠게 됨으로써 남조선 반동층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시

 

38) 위의 책, PP. 216~19. 39) 글, P. 221.

적 후퇴시기에 반동에 가담한 자들을 분석해보면 그 중에는 토지개혁의 혜택을 입은 자들과 심지어 지주앞에서 머슴살이 하던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 농촌에서 토지개혁후 부농화하면서 남조선 반동층의 영향과 미제국주의자들의 영향 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농촌에서 부농이 산 생되고 이들에게 주는 반동작 영향이 있는 조건하에서 아직 로골적으로 표면화된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농촌에서 계급투쟁은 있으며 또 그것이 앞으로 점차 첨예화될 수도 있 습니다.40)

김일성이 농업협동화를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경제적 문제도 있었지만 정치적 문제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토지국 유화는 농민들이 생산한 량곡을 국가가 자의적으로 통제할 수 있 게 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질라스를 여기서 원용할 필요가 있다. 질라스의 시각에 따르면 북한의 지배계급은 자신들 이외에 소유계급이 있는 한 권력이 공 고화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식량공급에 사보타아지가 일어날 수 있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토지의 국유화가 필요하였 던 것이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농민은 정권에 위험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러므로 김일성은 농업협동화를 실시함으로써 농민을 경 제적으로 행정적으로 복종시키고자 하였다. 이것이 농민에 대한

 

40) 김일성, “농촌경리의 금후 발전을 위한 우리당의 정책에 관하여” (조선 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54년 11월 3일),「김일성 저작집 9」. D. 127.

공격을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인 것이다.41) 소련이 농업집단화를 했던 뱌경과 매우 유사하다.

농업협동화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북한의 농민들이 농업협동화에 대하여 찬성할 이유가 없었다. 자기 땅을 가지는 것이 농민들의 숙원이었다면 농민의 손에서 도 로 땅을 뻣아가는 것은 농민들에게는 엄청난 좌절임에 틀림없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김일성이 어떻게 농업협동화 를 추진했는지 살펴보자.

북한은 농업협동화를 원칙적으로 레닌적 자원성의 원칙을 지킨 것으로 자평하였다. 그러나 소란이 농업을 협동화하게 된 동기와 그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하여는 이미 앞 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당은 농업협동화운동을 지도하는데서 레닌적 자원성의 원칙을 엄격히 지켰으며 실지경험을 통하여 농민들에게 협동경리의 우월성을 알려주는 기초우에서 이 운동을 대중적으로 발전시 키는 방침을 취하였습니다.42)

 

41) Djilas, The New Class, P. 56.  

42) 김일성,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적 농업협동화의 승리와 농촌경리의 앞으로의 발전에 대하여" (전국농업조합대회에서 한 보고, 1959년 1월 5일),「김일성 저작집 13」(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1), P, 16.

그러나 계급투쟁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를 가하였음을 김일성의 담화가 잘 시사하고 있다. 김일성은 북한에서 부농이 장성하고 있으며 그들의 저항이 예상된다고 지적하였다.

오늘 공화국 북반부에서는 소상품경제형태가 계속남아있기 때 문에 적으나많으나 간에 농민들의 계급분화가 진행되며 부농 이 발생하며 장성하고 있다. 이들은 계절적 혹은 고정적으로 고용로력을 채용하며 곡물시장을 통해서와 현금 및 각종 현물 에 의한 은폐된 고리대적 방법과 농기구, 축력 등의 리용대가 를 고률로 받는 방법으로써 빈농민들을 착취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국 북반부에서 토지개혁이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라는 구호밑에서 실시된것만큼 부농의 경제적 기초는 대단히 미약하다. 특히 농촌에서의 협동조합의 급격한 장성에 따라 부 농들의 착취대상은 없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그들로 하 여금 자진하여 농업협동조합에 망라되게 할 것이며 점차 근로 농민들로 개조되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농촌에서 아무 러한 계급투쟁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는 없으며 적들의 일정한 저항과의 투쟁속에서 진될될 것이다.43)

 

43) 김일성, “모든 힘을 조국의 통일독립과 공화국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다' (우리 혁명의 성격과 과업에 관한 테제, 1955년 4월)  「김일성 저작집 9」, P. 236.

무엇보다도 아래의 김일성 지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도부내 에서도 정책노선 자체에 대하여 갈등이 반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협동화운동의 시기상조론을 들고나오거나 우리나라에서의 농 업협동화운동이 빨리 발전하는데 겁을 먹고 뒤걸음질하는 사 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당이 농업협동화방침을 내놓았을 때 어떤 사람들은 '아직 남북이 통일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협동화 를 하겠는가?' 또는 '아직 기계화도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협동화를 하겠는가?'고 하면서 당의 협동화 정책에 대하여 의 심을 품었습니다.44)

역시 농민들 사이에 많은 반발이 있었으며 그것에 대하여 치열 한 '계급투쟁'이 있었음을 김일성의 연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 이행하는 력사적 행정은 치열한 계급투쟁을 동반합니다. 쓰딸린이 말한 바와 같이 죽어가는 계 급이 자발적으로 력사무대에서 물러간 일은 일찌기 없었으며 죽어가는 부르죠아지가 자체의 생존을 고수하기 위하여 마지  기 근冒별0필으 하지 않은 경우는 아직도 력사에 있어본 일이 없습

 

44) 김일성,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적 농업협동화의 승리와 농촌경리의 앞으로의 발전에 대하여” (전국농업조합대회에서 한 보고, 1959년 1월 5일),「김일성 저작집 13」, p. 25.

니다. 공화국 북반부에서 민주개혁의 결과 청산된 지주계급과 예속자본가, 친일분자, 민족반역자 기타 반동분자들은 과거의 자기 처지를 회복하려는 망상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자기의 착취자의 본성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45)

농업협동화를 비판하며 반대하는 농민들의 저항이 많이 있었음 을 김일성의 담화를 통하여 표출되고 있다. 반혁명분자, 파괴암해 분자가 많이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계급적 원쑤들은 당정책을 비방하며 농업협동화운동을 반대하 는 반동적 요언들을 퍼뜨리며 공동재산을 해치고 생산을 파탄 시키기 위한 해독행위를 하는 등 우리의 농업협동조합들을 내 부와 외부로부터 마사버리려고 날뛰였습니다. 특히 농업협동화 가 완성되여가고 도시와 농촌에서 사회주의의 승리가확고하여 짐에 따라 반혁명분자들의 준동과 파괴암해행위는 더욱 악랄 하게 되였습니다.46)

농업협동화에 반대하는 반대파들을 엄하게 처벌하였음을 알 수

 

45) 김일성, “당원들속에서 계급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로동 당중양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 보고, 1955년 4월 1일),「김일성 저작집 9」, P. 249.

46) 김일성,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적 농업협동화의 승리와 농촌경리의 앞으로의 발전에 대하여" (전국농업조합대회에서 한 보고, 1959년 1월 5일),『김일성 저작집 13」, P. 23.

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처벌을 받았 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다.

당은 반혁명과의 투쟁을 일시적 깜빠니아로가 아니라 일상적 인 정치투쟁으로 진행하였다. 당은 반혁명분자들과의 투쟁을 진행함에 있어서 현행 죄과들에 기초하여 악질 분자들을 엄격 하게 처벌하며 자기의 죄과를 자백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는 자 들은 관대히 처리하는 방침을 정확히 실시하였다. 이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은 계급적 원칙에서 적아를 똑바로 식별하여 계급적 원쑤들를 명확히 갈라 내는 것이었다.47)

농업협동화를 하면서도 농민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개인의 이익을 고수하고자 하는 여러가지 편법행위들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은 농업협동화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제한하 는 분위기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농민들 속에서는 중농의 기분을 반영하는 편향들 즉 경제적 토대가 비교적 튼튼한 농민들끼리만 조합을 무으려 하면서 빈 농민들을 받아주지 않는 경향, 규정이상으로 터밭을 남겨 두며 협동조합에 들여놓은 역축 및 농기구 등의 값을 지나치게 비

 

47) 조선로동당출판사 편,「조선로동당력사교재」(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64), Pi 393.

 

싸게 치루는 것과 같은 부정적 현상들도 나타났다.48)

농민들간에는 농업협동화가 완료된 후에도 개인토지 소유의 시 절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을 다음의 김일성 연설문에서 엿볼 수 있다. 소소유주의가 당시 북한주민의 보편적인 정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아직도 낡은 사회에서 넘겨받은 봉건적 및 자본주의적 사상산재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민 들 속에서 온갖 낡은 사상잔재를 없애고 그들의 사상의식을 개조하기 위한 공산주의사업을 힘차게 전개하여야 하겠습니다.

 • 농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에게 남아있는 개인리기주의와 소소유자적 근성을 없애는 것 입니다. 개인리기주의는 우리의 전진운동에 커다란 장애로 됩 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성과적으로 건설하기 위하여 농촌에 서 사회주의적 소유인 집단적 소유를 튼튼히 하여야 하며 더 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또한 앞으로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하 여서는 집단적 소유를 전인민적 소유로 전변시켜야 합니다. 개인리기주의를 없애지 않고는 이 모든 발전과정을 촉진할 수 없습니다.49)  

 

48) 위의 책, P. 333.

49) 김일성,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적 농업협동화의 승리와 농촌경리의 앞으로의 발전에 대하여" (전국농업조합대회에서 한 보고, 1959년 1월 5일)「김일성 저작집 13」, PP. 52~53. 

토지개혁과 농업협동화에 대한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강조되어 야 할 것이 있다. 한국의 북한연구자들은 북한의 토지정책에 대 해서 논의할 때 토지개혁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많다. 토 지개혁을 사회주의적으로 했기 때문에 김일성 정권의 대중적 기 반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지개혁에서 토지를 몰수당 한 사람은 전체 농가수의 40%에 달한다는 사실이 과소평가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토지개혁으로 개인토지를 소유하게 된 북한 농민들이 불과 몇년 후에 다시 농업협동화 정책을 통하여 토지를 국가에 빼앗겼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처벌이 두려워서 적극적인 저항은 하지 못했지만 농업협동화를 적극 찬 성한 농민은 별로 없으며 거의 모든 농민들이 반발하였다는 사실  이다. 이것이 북한에서 청산된 계급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한  계급정책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 개인상공인의 몰락과 숙청

토지개혁에 이어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8월 10일 '산업, 교통, 운수, 체신, 은행 등의 국유화에 관한 법령'을 공포 하여 “일본 자본가와 일본인의 사인 및 법인 등의 소유 또는 조 선인민의 소유로 되어있는 일체의 기업소, 광산, 발전소, 철도, 운 수, 체신, 은행, 상업 및 문화기관 등은 전부 무상으로 몰수하여 이를 조선인민의 소유, 즉 국유화한다"50)고 선언하고 즉시 실행 에 옮겼다. 이에 따라 당시 북한 전역에 설비된 전산업의 900% 이 상인 1,034개소의 주요 공장, 기업소들이 국유화되었다.51)

1947년 북한 공업총생산액에서 국영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0.2%0인 반면 자본주의적 상공업은 19.8% 정도였다. 전후 북한에 서 개인생산기업체로서는 주로 소규모의 정미소, 야장간, 고무공 장 등이 있었고 1957년 현재 개인기업가 1명당 고용로동자 수는 평균 1.4명이었으며 5명 이상의 고용로동자를 채용한 기업소 수 는 전체기업소 수의 14%에 불과하였다. 1957년 5월 현재 개인공 업기업의 총수는 633개였다.

상업부문에서는 개인상업이 차지하는 몫이 소매상품유통액 기

준으로 1947년의 43.50%였다. 그런데 1953년 휴전 직후 3250%로 떨어졌으며 19%년 말에는 12.7%0로 떨어졌고 1958년 8월에는 완 전히 소멸되었다.52) 6•25전쟁 이후 북한은 잔존하고 있던 상공업 분야의 자본주의적 경제형태와 소상품경제형태 역시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로 개조작업에 착수하여 1958년 8월까지 완료하였다. 이로써 1958년 이후 북한은 생산양식에 있어서 철저한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상공업에 종사하던 사람

 

50) 김일성,「조국의 통일독립과 민주화를 위하여」제1권 (평양: 1949), PP. 107~14..

51)「근로자」, 제4호 (1963), P. 87.

52) 김영희,「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경험」(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7)1 pp. 14~15, 46~47 참조.

 

들이 노동자로 개조되든가 상공업분야 국가고용인으로 전환되었다. 상공업 분야에서 거상으로 성장하던 사람들도 모두 거세되었다.

<표〉개인상공업 및 농업협동화의 사회주의적 개조 연도별 추이(%)

연도 1953 1954 1955 19% 1957 1958

개인상공업

농업 농가호수 농업 경지면적 33.7

1.2

0.6 39.5

31.8

30.9 59.4

49,0

48.6 62.7

80.9

77.9 77.2

95.6

93.7 100

100

100

출처: 김영희,「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경험」(평양: 사회과학출판 사, 1987), p. 107.

 

개인상공업 협동화의 동기

북한은 왜 개인상공업을 국유화했는가? 사회주의 체제 건설을 위해서 그랬다는 것은 충분한 설명이 안된다. 북한이 농업협동화 를 단행한 배경의 하나가 농촌에서 부농이 성장하였고 농민들이 양곡수매사업을 보이콧트하는 등 통제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개인상공업을 협동화한 배경도 당시 북한 에는 개인상공인이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담화에

서 그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전쟁에 의하여 몰락하였던 개인상공업자들이 처음에는 국수집 이나 갈비국집 같은 것을 차려놓았다가 얼마안가서 큰 상업가 로 자라나고 있습니다.53)

북한이 개인상공업을 국영화한 것이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단행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 적 논리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이에 대한 증거가 김일성의 다른 연설문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 국가상업은 모든 방면에서 우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통부문 일군들의 무책임성과 불충실 성으로 인하여 국가상업이 개인상업보다 뒤떨어진 형편에 처 하여 있습니다. 개인상인들은 자전거나 소달구지로 또는 도보 로 사오십리, 심지어 수백리 되는 먼곳에 가서 상품을 사다가 팔며 파는데서도 적은 수량의 상품을 규모있게 진렬하고 맵시 있게 장사하고 있는데 국가상점, 소비조합상점에서는 상품원천 을 적극 찾아내지도 않으며 국가로부터 배정된 상품을 파는데

 

53) 김일성, “농촌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대책에 대하여," (조선로동 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한 결론, 1955년 2월 2일),「김일성 저 작집 9」(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P. 219.

서도 그것을 무질서하게 늘어놓고 먼지와 곰팡이 속에서 손님 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비자들 속에서 국가상점의 인 기가 없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54)

김일성의 지적에서 보듯이 국가상업은 개인상업에 비해 낙후되 어 있었고 경쟁력이 뒤떨어졌다. 경제적인 논리로 본다면 개인상 공업이 더욱 장려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협동화와 마찬가지의 논리로 상업을 국유화하였다. 질라스에 의 하면 소유권을 장악함으로써 생산성이 다소 하락하는 것은 사회 주의 지배계급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배계급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농민들의 재산에 대한 집단화는 경제적으로는 효율적이지 못할지라도 권력과 소유권을 공고화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것이었다.55)

개인상공업에 대한枯死전략

개인상공업이 번창하고 국영상업이 후진적인 상황에서 북한은 개인상공업을 국유화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였다. 강력한 행정적 조치와 물리적 제재가 가해졌다. 북한이 강구했

 

54) 김일성, “모든 것을 전후 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하여," (조선로동당 중 양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서 한 보고, 1953년 8월 5일), P. 53. 55) Djilas, The New Class 참조.

던 새로운 조치란 나날이 번창해가는 개인상업 및 사기업을 규제 하고 통제하는 조치였다.

첫째, 소위 '자백운동'을 들 수 있다. 1955년 당시 북한은 국영 상공업 부문이 상품의 종류 및 그의 질에 있어서도 개인상업 및 사기업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는 문제점을 발생시킨 원인을 국영 상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이 불건전하며 또한 규율 과 질서가 문란하다는 데서 찾았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으 로서 사상문제를 바로잡고 강한 규율을 확립시키고 고질화되고 있는 탐오 당비현상과의 철저한 투쟁을 전개하는 방법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단정하였던 것이다. 그 방도의 하나가 '자백운동' 이었다. 자백운동을 전개하여 범죄사실을 밝히고 아울러 사상적 인 개혁을 기도한 것이다. 이 자백운동에 대하여 1955년 4월 당 중앙전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여 자백운동의 의의와 방법

을 제시하였다.56)

경제절약과 재정규율을 강화하기 위하여 탐오랑비한 자들을  교화소에 넣는 것을 위주로 하지 말고 자백운동을 하는데 중 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번 국가재정을 도둑질한   놈들을 용서하여서는 안됩니다. 자백운동을 위주로 하면서 아 주 엄중한 탐오랑비분자들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을 가한는 방 향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자백운동을 한 다음에는 그

 

56) 북한연구소, “북한의 계급정책," 양호민 외,「북한사회의 재인식」(서울: 한을, 1987), P. 300.

들이 다시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의 국가 및 경제기관 일군들이 기업관리 운영을 잘 하며 규율 과 질서를 확립하도록 당에서 교양사업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경제절약과 재정적 통제를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57)

4월 전원회의의 이 결정이 있은 후 북한의 각급 당 단체들은 당회의를 개최하고 이 결정의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토의 하였다. 1955년 5월부터는 북한 전역에 걸쳐 자백운동들이 전개 되어 당원들은 소속 당 조직에서 그리고 비당원들은 소속 직업동 맹에서 매일 회의를 2시간씩 열어 이 운동을 실행하였다. 이러한 회의에서 취급된 문제 중 비행이 큰 것은 '반탐오 반낭비 투쟁위 원화에 회부되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게 하였는데 수많은 사람들 이 처벌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출당, 철직, 강직, 강제노동 또는 투옥과 공개재판과 같은 극형까지 받았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및 농민 등 기본성분 출신은 관대하게 처리되었으나 과거 부터의 상공업자 또는 도시 소시민들이 주로 처벌을 받았다.58) 둘째로, 북한은 자본주의적 상공업에 대한 제한과 통제를 보다 강화하기 위한 행정적 조처로서 1955년 9월 1일에 기업허가제를 실시하였다. 기업허가제의 기본내용은 자본주의적 상공업자들의

 

57) 김일성, “사회주의 혁명의 현단계에 있어서 당 및 국가 사업의 몇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 년 4월 4일),「김일성 저작집 9」, P. 305. 58) 북한연구소, “북한의 계급정책," P. 301.

 

업종과 활동지역, 설비와 시설, 노력과 자금 등 기업운영과 관련 된 모든 것을 국가가 직접 검토하고 그 기초위에서 기업을 운영 하게 하는 것이었다. 기업허가제를 통하여 기업가, 상인들의 활동 지역을 더욱 철저하게 장악하고 통제하였다. 자본주의적 상공업 자들 중에서 개인상인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상 업활동구역이 문제로 되고 있었던 사정과 관련하여 개인상인들의 활동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데 보다 큰 관심을 돌리었다. 북한은 유통부문 기업가들의 활동지역을 국가 및 협동단체 상업 의 손이 덜 미치는 지역에로 국한시키고 그들의 활동지역을 고착 시켰다. 개인상인들에게 국가가 지정하여주는 장소에서만 상품을 판매하도록 하였다. 농어촌지대, 산간지대에서 주로 그 활동을 허 용하는 조치를 취하였다.59) 셋째, 북한은 개인상인을 고사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1956년 1월 20일에 내각결정 제11호로 승인된 농촌소비협동조합 기준 규약을 발표하였다. 농촌주민들에게 필요한 공업상품과 식료상품을 공급 하기 위한 상점과 공급망을 개설하여 개인상업을 폐지하고 국영 화하였다. 각 리 또는 읍마다 소비협동조합을 결성하여 드 노 민들을 이 조합에 가입하게 하여 공식적 상업망에서만 상품을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규약의 제3조에서 “조합은 농촌 주민들에 대한 모리 간상배들의 중간 착취를 제거하고 그들의 생활상 수요

 

 

59) 김영희,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7), pp. 32~34.

에 필요한 공업 상품을 공급하며 농촌의 일여 농산물과 부업산물 들을 도시에 판매함으로써 도시와 농촌간의 경제적 연계를 강화 함과 동시에 조합원들의 물질적 복리를 향상시키며 그들을 사회 주의 기초건설을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시키는 것을 자기 의 기본 과업으로 한다”고 규정하였다.60) 넷째, 북한은 국가 및 협동단체 공업생산물을 사회주의 상업기 업소가 아닌 개인상인들에 팔아넘기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였 다. 그리고 북조선인민위원회 산업국의 지도밑에 있던 지방공업 을 상업국에 소속시키고 도매상업을 국가의 수중에 들어가게 함 으로써 도시나 지방할 것 없이 국영 및 협동단체 기업소에서 생 산된 모든 생산물들이 전적으로 사회주의 상업에 집중될 수 있게 하였다.

상품자원을 사회주의 상업이 장악하게 하기 위하여 북한은 또 한 소상품경리에서 생산된 생산물도 통제하였다. 북한은 개인농 민의 농산물을 국가 및 협동단체 상업이 장악할 수 있게 수매체 계를 세웠다. 특히 북한은 개인농경리의 생산물에서 기본을 이루 는 양곡과 고기에 대한 국가의 유일수매 및 공급체계를 세워놓음 으로써 국가의 수중에 더 많은 양곡이 집중되게 하였다.

다섯째, 북한은 사회주의 상업의 지도적 역할을 높이기 위하여 일부 중요한 생활필수품에 대하여 배급제를 실시하는 조치를 취

 

60) 조선중앙통신사 편,「조선중앙년감 1957」(평양. 조선중양통신사, 1957), 하였다. 배급제를 실시함으로써 수요에 비하여 생산량이 제한되 어 개인상인들의 투기의 중요대상으로 되여 있던 일부 대중적인 소비품을 보다 확고하게 국가가 장악할 수 있게 하였다 여섯째, 세금을 통한 통제를 하였다. 북한은 상공업의 협동화 기간 노동자, 사무원들에게는 매우 낮은 소득세률을 적용하였으 나 기업가, 상인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높은 세율을 적용하였고 일 정한 한도를 넘으면 세율이 누진적으로 올라가는 초과누진세를 실시하였다. 또한 개인상공업자들이 당국에 자기수입을 정확히 보고하지 않으며 탈세행위를 하거나 세금납부의무를 지키지 않는 데 대해서는 강하게 통제하였다.61)

개인상공인의 인간개조

북한에서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는 경리형태의 개조와 인간개조를 밀접히 결합하여 진행하였다. 경리형태의 개조란 협 동화를 의미한다. 개별적으로 흩어져 일하던 개인상공업자들이 한 곳에 모여 집단적 노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개인상공업자들 을 협동조합을 단위로 하여 집단노동과 정치적 조직생활을 하게 하였다. 인간개조는 사상개조와 동시에 노동자 또는 농민으로 전 환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문제는 궁극에 있어서 개인상공업자들을 사회주의 근로자로 개조하는 문

 

61) 김영회. 00. 92~94, 98.

제에 귀착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북한은 경리형태를 사회주의적 으로 개조한다고 하여 사람들도 스스로 사회주의적 근로자로 개 조되는 것은 아니며 만일 경리형태를 개조한다고 하더라도 사람 들의 사상의식을 개조하지 못하면 사회주의 협동경리를 공고발전 시킬 수 없고 나중에는 그 존재자체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인식 하였던 것이다.62)

개인상인들에게 로동능력이 없거나 일할 자리가 없다면 모르 겠지만 그들에게 로동능력이 있고 일할 자리도 있으며 더우기 경제건설사업에 많은 로력이 요구되는 오늘의 조건에서 우리  그들을 될수록 로동에 적극 참가시켜 근로자로 개조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야 합니다.63) 

북한은 오랜세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에 기초하여 개인 경리를 운영해온 개인상공업자들은 많은 경우 근로정신이 부 족하였고 협조의 정신은 더욱 없었다고 보고 이러한 개인상공 업자들을 사회주의적 근로자로 빨리 개조하기 위하여 그들을  집단노동에 적극 인입시킬 수 있는 협동경리의 형태들을 조직 하였다. 그래서 북한은 상인들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위해서는 그들로써 판매협동조합 또는 생산판매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여 기에서 생산의 비중을 점차적으로 높여 그것을 생산협동조합

 

62) 위의 책, PP. 77~80.

63)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제30차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54년 8월 23일)”「김일성 저작집 9」, P. 87.

 

으로 개편하였다. 이러한 판매협동조합과 생산협동조합은 생산 로동을 거의 해보지 못하고 장사를 해오던 개인상인들을 점차 생산로동자로 개조하는데 알맞는 독특한 협동조합형태들이었 다우)

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따라 돈을 먾이 벌수도 있고, 이미 거상으로 성장한 사람들도 있었던 상황에서 개인상공인을 집단농 장의 농민이나 공장 노동자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일부의 영세상 인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저항할 것은 당연하다. 이하에서는 그 저항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개인상공업 협동화에 대한 저항

북한은 상공업을 협동화하는 과정에서 자원성의 원칙을 강조했 으며 자원적으로 포섭되도록 노력하였다. 김일성의 연설에서 보 듯이 북한은 조급하게 강제로 시행하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초래 될 것임을 농업이나 수공업의 개조에서 이미 경험한 바가 있는 것으로 토로하였다.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사업은 개인상공자들의 의식의 성숙도와 모든 경제적 조건들을 충분히 따진 다음에 진행하여

 

64) 김영희, PP. 60~61, 73.  

야 할 것입니다. 농업이나 수공업의 개조에서와 같이 이 사업 에서도 조급성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65)

그러나, 자본주의적 상공업자들의 협동화에 있어서 자원성의 원 칙을 준수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는 선전에 불과하였다. 다음의 귀 절에서 알 수 있듯이 자발적으로 유도한다는 것은 원칙이고 실제

 '강력한 제재를 행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협동화운동에서 자원성의 원칙을 철저히 관철 하면서도 이를 반대하고 방해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 재를 가하는 원칙을 고수하였다.66)

찬성하는 사람보다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으로 가정한다 면 많은 사람들이 상공인의 사회주의적 개조과정에서 강력한 제 재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개 인상공인들은 자발적으로 조합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실제는 엄청난 물리적 강제가 행사되었다. 다음의 글에서 알 수

 

65) 김일성, “상품류통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 (전국상업일군열성자회 의에서 한 연설, 1957년 2월 14일),「김일성 저작집 11」(평양: 조선로 동당출판사, 1981), P. 60.

66) 김영희,「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경험』, P. 58.

있듯이 계급투쟁이 동반되었고 제재가 가해졌다고 한다.

개인상공업에 대한 사회주의적 개조는 계급투쟁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불순한 자들은 계속 모리와 투기행위에 눈이 어두워 협동화를 접수하려 하지 않았으며 또는 생산협동 조합에 기여들어 조합을 저들의 모리행위에 리용하면서 내부 로부터 파괴하려고 하였다. 당은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 조를 방해하는 자들에 대하여 응당한 제재를 가하도록 하면서 개인상공업자들 속에서 정치사상사업을 강화하였으며 조직된 생산협동조합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지도와 방조를 주면서 당 의 협동화 방침을 정확히 실천해나갔다. 당의 정확한 방침과 적극적인 지도에 의하여 개인상공업자들의 사회주의적 개조는 농업협동화의 완성과 때를 같이 하여 1958년 8월까지 완성되 었다.67)

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결코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고 법 적 재재가 가해지지 않으면 안될 만큼 많은 저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 상공업에 대한 제한조치들은 결코 순 탄하게만 실현되지 않았다. 사회주의경제가 장성•강화되고 낡 은 경리형태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급속히 진적됨에 따라 일부

 

67) 조선로동당출판사 편7「조선로동당력사교재』, pp. 397~984

 

불건전한 자본주의적 상공업자들은 보다 교활한 방법과 수단 으로 투기와 모리간상 행위를 하였으며 그것이 미치는 영향도 심각해지게 되었다. 일부 자본주적 상공업자들은 국가재산의 략취, 국가상품의 되거리 판매, 상품의 은닉과 시장물가의 교 란, 금지된 상품의 밀매, 소비자들에 대한 사기와 기만, 탈세행 위 등으로 투기와 모리행위를 하였다. 극소수 자본주의적 상공 업자들의 부정적 행위를 제 때에 막지 않고서는 절대다수 민 족자본가들을 옳게 리용하고 그들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다그 쳐나갈 수 없었다. 이로부터 국가는 자본주의적 상공업자들속 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을 법적으로 철저히 금지하는 조치 를 취하고 그를 위반할 때에는 해당한 법적 제재를 가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자본주의적 상공업자들 속에서 나타나는 부 정적 현상에 대하여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키고 사회적 및 대 중적 비판의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투기와 모리 행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국가의 법적 제재가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고 제때에 효력을 내게 하였다.68)

북한의 공식문헌에서는 일부 개인상공인들이 협동화에 참여하 기를 주저했다는 말로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은 전부 저항했던 것 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비교적 부유하게 살아왔던 사람이 터 전을 빼앗기고 노동자, 농민으로 전락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없 을 것이기 때문이다.

 

68) 김영희,「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경험』, P. 38.

오래동안 개인경리를 운영하여 온데서 사적 소유의 관념이 강 하였던 개인상공업자들은 처음에는 협동경리에 들기를 주저하 였다. 특히 개인수공업자들보다 자본주의적 기업가, 상인들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였다. 기업가, 상인들은 지난날 남을 착취 하던 사상적 경향과 일정한 경제토대를 가지고 비교적 부유하  게 살아온 생활처지로 하여 기본생산수단을 통합하는 협동조 합에 들기를 더 주저하는 경향이 일부 있었다.69)  

 북한은 협동화에 반대하는 상공인들을 제국주의자, 국내반동분 자의 악랄한 책동으로 간주하였다. 남한의 소행으로도 몰았다.

아래의 북한 최고지도부의 발언을 통해서 볼 때 당시 북한 사회  에는 저항의 분위기가 매우 팽배했음을 알 수 있다.

도시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와 그것을 낳는 온상을 없에버리는 개인상공업의 협동화는 불피코 이를 방해하는 제국주의자들과 국내 반동분자들의 악랄한 책동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복된 착취계급 잔여분자들이 낡은 제도를 되찾으려는 망상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우리조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미제국주의자들과 직접 맞서있게 된 조건에서 개인상 공업의 협동화를 친행하는 과정에 원쑤들의 온갖 파괴행위를 반대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빠른 발전을 가로막으려고 남조선 괴뢰 도당과 우리내부의 적대분자들을 협동화운동을 반대하는

 

69) 위의 p. 53.

데로 부추겼으며 여기에 일부 불건전한 기업가, 상인들도 가담 하였다. 계급적 원쑤들은 우리 당의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정책을 비방하고 협동화운동을 반대하는 반동적 요언을 퍼뜨리며 공동재산을 해치는 등 협동조합들을 내부와 외부로 부터 마사버리려고 책동하였다. 국가는 개인상공업자들속에서 반혁명분자들의 준동과 파괴암해행위에 대하여 혁명적 경각성 을 높이기 위한 정치사상교양사업과 반혁명과의 전군중적인 투쟁을 강화하는 한편 사회주의 리익을 철저히 응하는 계급적 립장에서 자원성의 원칙을 관철하였다.70)

북한은 강제로 생산판매협동조합에 가입시키는 조치를 취하였 다. 국가의 강요와 탄압에도 끝까지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일부 개인상업 및 사기업자가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탄 압이 가해졌다. 즉, 이들에 대해서 '악질상인,' '인민의 적,' 심지어 '반혁명분자,' '반동분자' 등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혁명 을 반대한다는 구실로 투옥 또는 처형하였다. 가벼운 경우 재산 을 몰수하였고 노동직장으로 축출시켰다.71)

다. 인텔리 계급의 숙청

북한은 정권의 초기에 인재난 때문에 이전 체제에서 교육받은

 

70) 위의 책, P. 57.

71) 북한연구소, “북한의 계급정책," P. 305.

오랜 인텔리들을 포용하여 활용하기 위한 정책도 구사하였으나 산업의 국유화 과정에서 반대세력을 거세하기 위하여 많은 인텔 리들을 숙청하였다. 1958년 8월 9일 시•군 인민위원회위원장들의 강습회에서 김일성은 인텔리에 대한 개조 및 숙청 문제를 처음으 로 시사하였다. 이 회의에서 김일성은 “사회주의 건설의 속도를 계속 높여 가야만 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사회주 의 건설에 장애가 되어온 지식층 속에 있는 소극성과 보수주의에 대한 완강한 투쟁을 전개하지 않고서는 계속혁명을 할 수 없다" 고 주장하였다.72) 이 당시 노동신문의 한 귀절은 지식인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인식을 잘 드러내어 준다.

아직도 대중의 기세가 폭풍같이 낡은 것을 구축하는 시기에 사무실에서 낡은 방식 그대로 안일하게 행동하고 매일같이 비 약이 일어나고 있는 시기에 낡은 기준들에서 맴돌고 헤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73)

동년 9월 북한은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극복하고 사회주의 건설 의 속도 증가를 위한 대책으로서 전체당원에게 호소하는「북한노 동당중양위원회 편지」(일명「붉은 편지」)를 채택하게 되었다. 이

 

72) 김일성, “시, 군 인민위원회의 당면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김일성 선집 6」(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60), P 2.

73) “재차 보수주의와 소극성에 반대하여,"「로동신문』, 1958.9416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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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서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분쇄하고 모두다 천리마를 타고 과감히 진군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인텔리 속에서 보 수주의와 소극성을 반대한다고 내세운 것은 하나의 구실에 지나 지 않았고, 사실은 사회주의 개조사업에 불만을 가졌던 인텔리를 숙청하는 사업이었다. 이에 대하여「조선전사」는 북한에서 “혁명 의 전진운동을 방해하는 소극성과 보수주의, 신비주의 등 낡은 사상 잔재를 뿌리빼는 사상투쟁이 힘있게 벌어졌으며 이 과정에 서 보수주의자, 소극분자, 신비주의자들의 유해로운 사상관점과 행동이 철저히 폭로비판되었다"고 지적함으로써 인텔리들에 대한 숙청이 감행되었음을 시사하였다.74) 인텔리 숙청에 있어서 중점적 인 대상이 된 것은 과거 일제하에서 교육을 받은 충이었다. 이것 은 전국 생산자혁신대회에서의 김일성 발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일본 제국주의 사상잔재가 농후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래도 나는 과거 일본의 모모 대학 을 다녔는데 당신들은 무엇을 아는가"고 하면서 낡은 관점으 로 우리의 현실을 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상를 분쇄하 여야 합니다.75)

 

74)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조선전사 29」(평양: 과학, 백과사전출판사, 1981), p. 103.

75) 김일성, “사회주의건설에서 소극성과 보수주의를 반대하여” (전국생산 혁신자 대회에서 한 연설, 1958년 9월 16일),「김일성 저작집 12」(평 양: 조선로동당출관사, 1981), P. 523.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은 처음에는 경제부문 의 기술자 및 관리간부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점차 전체 인텔리 에게까지 파급되었다.「붉은 편지」와 당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 라 보수주의자(인텔리, 기술자)들에 대한 숙청이 모든 사무부문, 행정기관, 학교, 문화예술 부문까지 확대되었다.76) 귀순자 정갑력 씨의 증언에 의하면 유일독재 기반을 확립하기 위하여 능력있는 인텔리들은 모두 처리되었다. 월북인텔리, 자체생산 인텔리, 오랜 인텔리들 모두 처리되었다.77)  전산업의 국유화가 종료된 직후인 1958년 10월 작가, 예술인에 대해서도 사상교양 및 숙청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부 작가, 예술인들에게서는 당의 지도와 정당한 비판을 시끄 럽게 여기며 당의 지도를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무규율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작가, 예술인들 속에서 자본주의 사상 잔재가 없어지지 않고 있는 원인은 작가, 예술인들 자신이 낡은 사상잔재를 뿌리뽑기 위하  여 적극 노력하지 않은데 있습니다. 지난 시기 작가, 예술인들 은 자신의 사상생활에 대하여 스스로 검토하여보고 낡은 사상 잔재를 부리뽑기 위한 투쟁을 잘하지 않았습니다. • 작가, 예술인들은 자본주의 사상잔재를 뿔리봅기 위한 사상투쟁에

 

76) 북한연구소, “북한의 계급정책," P. 310.

77) 정갑렬(46세, 19%.5.31 귀순, 문화예술부 메아리 음향사 음향연구소장) 의 증언.

적극 참가하여야 합니다. 모든 작가, 예술인들은 거울에 자기 얼굴의 흠집을 비쳐보듯이 당정책을 자로 하여 자신의 사업과 생활을 허심하게 검토하고 비판하여야 하겠습니다.78)

다음의 인용문은 북한의 공식 문예방침을 벗어난 작가에 대하 여 부르조아 반동, 수정주의자, 사대주의자 등의 이름으로 반동으 로 몰아 숙청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문학의 무계급성을 지껄이던 악명높은 '문화로선' 제창자들, 반동시집「응향」을 들고 예술지상주의를 부식시키려던 시대작 오적인 쓰레기들, 미제 침략에 발맞추어 부르조아 반동사상을 부식시키려 꾀하던 문학대렬내의 음흉한 반혁명분자들, 그리고 국제기회주의 사조에 편승하여 우리 문학에 사대주의, 수정주 의를 퍼뜨리던 반당 종파분자들을 비롯한 온갖 낡고 반동적인 것들은 모두 당내 문예방침을 받들고 나선 우리 문학의 힘찬 전진앞에 여지없이 격파되고 말았다.79)

시바다 미노루에 의하면 다수의 문화인이 '반동 부르조아 분

 

78) 김일성, “작가, 예술인들속에서 낡은 사상잔재를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 게 벌일데 대하여" (작가, 예술인들 앞에서 한 연설, 1958년 10월 14

일),「김일성 저작집 12」(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1), PP. 553, 557.

79) 림수림, “위대한 태양을 받들어 힘차게 전진하여 온 우리의 주체문학,'  「조선문학」(1982.5), P. 65.

자,' '자유주의' '수정주의'로 몰려 숙청당하였다고 한다.80) 또 한 북한의 한 귀순자가 당시 북한의 작가 및 예술인이 처했던 억 압과 숙청의 실상에 대하여 수기의 형식으로 자세히 증언한 바

있다.81)

이로써 모든 사회세력은 거세되었다. 지주, 농민, 상공인, 인텔 리 집단이 해체되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은 모두 소멸되었 다. 생산수단이 모두 사회화 또는 국유화됨으로써 모든 개인은 국가의 고용인이 되었다. 국가가 북한에서 유일한 고용주가 되었 다. 이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국가의 관료적 통제하에 맡겨졌다. 개인은 국 가의 동원의 대상일 뿐이다. 사회적 계급으로 조직화 할 수 있는 자유도 없어졌다. 북한에 유일한 계급은 지배계급이다. 지배계급 만이 계급조직을 가지고 있고 계급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으며 계급적 힘이 있다.

이로써 북한의 계급구조는 정치권력 집단인 간부가 지배계급 또는 특권계급으로, 청산된 계급들을 포함한 인민대중이 피지배 계급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80) 시바다 미노루, 이원복 역,「김일성의 야망: 숙청의 역사」(서울: 겸지 사, 1989), p. 147.

81) 이철주,「북의 예술인」(서울: 계몽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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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북한 사회 특권계급의 특징

북한은 전산업을 국유화하고 기득권 계급을 해체한 것에 대하 여 착취제도를 청산하고 인민대중의 계급적 해방을 실현하였다고

공언하고 있다.82)

착취사회에서는 국가가 로동자, 농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복무하지만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국가가 인민들의 이익을 위하여 복무하며 근로자들의 물질문화 생활을 책임적 으로 보장할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 착취자 국가사회제 도는 언제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철저히 옹호한다. 때문에 착취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이 언제나 착취계급에게만 속하여 있으며 착취계급은 생산수단을 틀어짐 으로써 주인행세를 하면서 근로인민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가사회제도는 생산수단을 오직 근로하는 인민대중이 소유하도록 법적으로 고착시키고 국가권력으로 철 저히 옹호한다. 제도자체가 생산수단을 근로인민대중이 틀어쥐 도록 되여있기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근로대중은 국가와 사회 의 주인으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과 가능성을 담보받고 있다.83)

 

82) 과학, 백과사전종합출판사,「조선로동당의 사회주의건설령도사」(평양: 과학, 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5), P. 7.

83) 과학, 백과사전 출판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사회제도」(평양: 과학백과사전출관사, 1984), P. 10.

그에 반해서 자본주의 사회는 착취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것이 북한사회의 공식적 체제이념이요 체제 정 당성의 근거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있고 권세있는 놈은 더욱더 잘사는 대신 근 로대중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못살게 되는 '무익부 빈익빈'의 사회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가 근로대중이 창조한 모든 사회적 부를 오직 착취계급만이 향유하도록 법적으로 제 도화하고 그것을 국가권력의 힘으로 옹호하기 때문이다. 84)

북한은 계급없는 사회를 주체사상과도 연관시키고 있다. 주체사 상은 인민대중이 주인이라는 사상이다.

주체사상을 사상적 기초로 하고 있고 주체사상에 의하여 지도 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우리의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 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며 인민대중의 단결된 힘에 의하여 발전하는 인민대중중심의 가 장 우월한 사회주의로 공고발전되어올 수 있었다.85)

 

84) 위의 책,p. 11.

85) 과학, 백과사전종합출판사,「조선로동당의 사회주의건설령도사」, P.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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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계급이 소멸했다는 북한사회에서 특권계급이 존재한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생산수단이 국유화 되고 그것을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당관료가 있다. 그들이 세도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이 김정일의 담화에서도 표출되고 있다. 인민 대중이 주인이 아니라 간부가 주인 노릇를 한다면 주체사상도 허 위로 되고 만다. 북한 사회에 당관료들의 관료주의, 세도주의, 부 정부패가 공식적으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북한에 특권계급이 존재하여 온갖 특권을 행사하고 인민대중을 착취하고 있음을 의 미한다. 북한의 간부들 중에는 부정부패가 많고, 세도 및 관료주 의가 많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의 문헌과 김정일의 담화 문에서 시사하고 있다.

세도와 관료주의는 집권을 악용하여 권세를 부리며 인민대중 의 의사와 이익에 배치되게 행동하는 낡은 사업방법과 작풍입 니다. 일꾼들 속에서 세도와 관료주의를 없애는 것은 노동계급 의 당과 인민대중의 혈연적인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절실한 요구입니다. 노동계급의 당이 정권을 잡으면 일부 일꾼들 속에 서 세도와 관료주의를 부리면서 권력에 의거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86)

 

86) 김정일,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 (1991년 5월 5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의 담화."「로동신문」, 1991.527.

동유럽에서 밑으로부터 혁명이 일어나고, 위로부터 시작된 소련 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밑으로부터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진전되자 북한은 이러한 제반 사회주의 문제의 원인을 관료주의 폐해때문 이라고 규정하고, 관료주의 때문에 정권으로부터 인민대중이 이 반하였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북한식 민주주의인 인민대중 중 심의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쪽으로 주체사상을 재해석하고 세도와 관료주의와 같은 사회주의의 부패를 단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 한 지적이 1994년에도 김정일의 이름으로 발표된 논문에서도 제 시되었다.

당과 국가의 모든 정책은 간부들을 통하여 집행되는 것만큼 당과 국가가 아무리 좋은 정치를 실시하여도 간부들이 세도와 관료주의를 부리면 그것이 제대로 구현될 수 없다. 간부들이 득세를 부리고 관료행세를 하며 부정부패를 일삼으면 사회주 의 집권당은 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잃게되며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당은 자기의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 역사적 교훈 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사회주의 집권당이 간부들속에서 세도 와 관료주의, 부정부패를 허용하는 것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파 는 것이나 같다.87)

독점과 특혜를 누리는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반발을 우려하

 

87) 김정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로동신문」. 199411.1.

고 있다. 인민대중의 반발을 통제하고 예방하는 것이 북한체제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북한의 계급정책은 이러한 계 급모순에 대비한 정책이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제Ⅲ장 북한의 계급정책

1. 계급정책의 개념

계급정책은 곧 지배계급의 지배정책이다. 인류역사에서 경험한 지배정책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지배계급이 도덕적인 지도력에 근거하여 피지배계급의 자발적인 동의를 획득하여 피지배계급을 체제내로 통합시키는 유형이며, 다른 하나는 물리적 억압과 강제를 통하여 저항하지 못하도록 통 제하는 유형이다. 전자는 자유주의적 전통이며, 후자는 레닌적 전 통으로서 사회주의 국가에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는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회체제로서 서 구사회에서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 그람시에 의하면 이 러한 지배는 헤게모니적이라는 것이다. 헤게모니적 지도력은 단 순히 힘에 기반을 둔 물리적 지배가 아니라 철학적 도덕적인 지 도력에 기반을 둔 기꺼이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인 '동의'에 기초 하는 지배능력이다. 지배계급은 물리적•이데을로기적 국가기구를 통하여 경제적, 정치적, 지적, 도덕적, 지도권을 확립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보았다.1)

 

1) Robert Bocock, Hegemocy (Chichester: Ellis Ho遬ⅴ00d, 1986); 이향 순 역,「그람시 헤메모니의 사회이론」(서울. 학문과 사상사, 1991),

사회주의 사회의 계급정책은 레닌의 계급투쟁론에 이론적 뿌리 를 박고 있다.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의 전략은 전위당을 통해서 폭력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 는 것이다. 레닌의 이러한 혁명의 전략은 자유주의 국가의 정당 성과 동의에 근거한 사회체제와는 대조적이다. 정당성이란 강제 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사회내에서 자발적인 동의에 의하여 형 성되는 것이다. 레닌에 있어서 사회주의란 노동운동으로부터 생 성된 이념체계가 아니다. 레닌의 혁명전략은 전위당의 주도에 의 한 폭력혁명 전략이다. 레닌에 있어서 사회주의란 지식인들에 의 하여 창조된 것이며 외부로부터 계급투쟁에 도입된 것이다. 노동 자들이란 그냥 내버려두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고용주에게 대항 하여 더 많은 임금을 얻어내며 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여러가지 형태의 복지법안을 통과시키는 정도에 그친다. 혁명과 사회주의 는 이러한 운동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성장된 것이 아니다. 레닌은 사회주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지도자를 통해서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보았다. 레닌의 전위당의 개 념은 소련에서 관료주의 국가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독재의 원 리이다.2) 레닌은 이러한 폭력사상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여 1917년의

 

p. 63; Chantal Mouffe, "Hegemony and Ideology in Gramsci, in Chantal Mouffe, ed., Gramsci and Marxist Theory (Boston and Henley, Routledge & Kegan Paul, 1979), p. 181.

2) Anthony Giddens and David Held, ed., Classes, Power and Conflict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mia Press, 1982), PP. 7~8.

러시아 혁명에서 실천에 옮겼다. 혁명 이후에도 구시대의 잔재를 청 산한다는 명분으로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지속되었다. 사회주의 사회에 서 계급정책은 레닌의 이러한 계급투쟁의 전통이 그대로 지속되었다.

북한의 계급정책은 레닌의 이론과 유사한 측면이 많은 것으로 보인

다.

2. 북한 사회 계급정책의 내용3)

농업협동화 및 상공업의 국유화조치를 통하여 적대계급의 물적 토대를 제거한 것이 초기의 계급정책이었다면 그 이후의 계급정 책의 내용은 과거 계급구조의 사상적 토대마저 제거함으로써 과 거의 계급적 잔재가 재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급출신 성분 별로 차별화하여 통제하는 것이다.

북한의 계급정책이란 계급적 출신 성분이 북한체제에 적대적이 라고 간주되는 사람들은 동요계층, 또는 적대계층이라는 낙인을 찍고 이들을 처벌, 격리, 감시하는 한편, 입당, 대학입학 등의 중 요한 사회적 지위획득의 기회에 제한을 가하는 정책이었다. 북한 의 계급정책은 계급적 갈등을 협상과 타협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레닌의 폭력혁명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이 절은 졸저,「또 하나의 북한사회: 사회구조와 사회의식의 이중성 연 구」(서울: 나남출판, 1995), 제12장에서 부분적으로 전재한 것임. 북한지도부는 출신성분별 차별정책을 채택하게 된 동기를 아래 의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제, 한국전쟁 등 복잡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 주민들의 사회정치적 구성이 복잡하기 때문 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오랫동안의 일제식민지 통치와 미제에 의한 나라의 분리 조국 해방전쟁시기에 있은 적들의 리간책동 등으로 인하여 우리나 라 주민들의 사회정치적 구성에는 많은 복잡성이 조성되였습 니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는 주민들의 각이한 계층과의 사업을 특별히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4)  

그러나 실제로 북한이 계급출신별 성분분류에 의한 차별정책을 채택한 것은 보다 적극적인 계급정책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 다. 북한의 성분별 차별정책은 1956년 8월종파사건으로 숙청된 남로당계나 소련파 및 연안파 등 반대파들의 남은 뿌리를 깨끗이 뽑아야 한다는 권력의 요구뿐만 아니라 농업집단화 및 개인상공 업의 폐지 등 급진적인 사회주의개혁으로 말미암은 대중적 불평 불만을 억압하고 사회 모든 부문에서 사회주의적 질서를 세워야 하는 현실성에서였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스탈린 사후 후르시쵸 프의 주도에 의한 수정주의의 와중에서 폴란드, 헝가리 등 동구

 

4) 김일성, “현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한 보고, 1966년 10월 5일),「김일성저작선집 4」(평양: 조선로동당출관   사, 1968), p. 373.

사회주의권에서의 반사회주의의 격변이 휘몰아치던 상황을 맞아 김일성으로서는 소련 및 동구의 자유화 바람이 북한에 유입하여 정권을 위협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사회정책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대내외적 위기적 상황 속에서 북한은 주민 전체를 상대 로 출신성분과 사상경향을 조사하여 혁명을 지지하는 자와 혁명 을 반대하는 자, 즉 정권을 지지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 '믿을 수 있는 재와 '믿을 수 없는 자'를 가려내서 적과 아를 분명히 하 고자 하였다. 이같은 대주민정책은 계급투쟁과 반혁명분자와의 투쟁이라는 이름 밑에 진행되었다.5) 그런데, 당시에 남한으로 귀 순한 김정기에 의하면, 북한지도부가 내세운 명분은 당시 1차5개 년계획의 실패의 원인을 북한주민들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주장하 고 주민들의 사상을 검토한다고 발표하였다고 한다.6)

중양당집중지도: 북한의 계급출신별 차별정책이 본격 실시된 것은 1957년부터이다. 북한은 1957년 5월 30일 당 상무위원회를 열고「반혁명분자와의 투쟁을 전당적, 전인민적 운동으로 전개할 데 대하여」라는 결정서(5•30 결정)를 채택하였다. 북한은 처음에 는 지역별로 운동을 실시했으나 '5•30결정'의 효율적 집행을 위 하여「중앙당집중지도」라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중양당집중지도 는 1958년 12월을 기하여 그 조직에 들어갔다. 김일성의 실세인

 

5)北韓硏究所編,『北韓總覽』(서울:北韓硏究所, 1980), PP. 301~02.  6) 김정기,「밀과」(서울: 대영사, 1967), PP. 281~82.

김영주 중앙당 조직지도부장을 총책으로 하여 7,000여명의 지도 요원을 구성하였다.

집중지도의 조직은 평양으로부터 시작, 1960년 말까지 북한 전 지역을 휩쓸었다. 북한은 집중지도에서 북한주민의 사회성분을 기준으로 믿을 수 있는 층과 믿을 수 없는 층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유사시 김일성을 절대적으로 지지할 핵심세력과 동요할 가 능성이 있는 계층, 그리고 유사시 적대세력으로 전환 가능한 계 층 등으로 세분화한 것이다. 북한은 성분분류 작업을 위하여 적 대계층을 색출하고 수사하는 과정을 인민재판, 공개처형 등 매우 공포적인 분위기하에서 진행하였다고 한다.7) 북한은 이 사업을 통해 김일성 정권에 대한 저항세력, 6.25동란 당시 반당행위자, 농업협동화 정책에 대한 반대자 등과 그의 가 족 약 300여 만명을 대거 색출하였다. 북한은 불순분자로 분류된 사람들에게「내각결정 149호」라는 멍에를 씌워 추방시키고 주거 제한을 실시하였다.『내각결정 149호에 의하면 대상자를 해안선 과 휴전선으로부터 20k111, 평양과 개성시로부터 5이an, 각 시로부 터 2이an 밖의 지역으로 추방하여 그곳에 거주지를 제한하도록 되어있다. 이 거리로 계산하면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 등의 산 간내륙지방 밖에는 해당되는 곳이 없다. 149호 대상자들은 공민 증에 '149호'라는 낙인이 찍혀 각 지방의 사회안전부에 등록되고

 

7) 중앙당집중지도 당시 개성시에 있었던 구체적인 사실에 관한 증언은 당시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귀순한 김정기의 증언록, 위의 책, PP.

281~93 참조할 것 

대중적인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149호 대상자가 집중지도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북한은 이들을 약 1년 동안에 걸쳐 순차적으로 이주시켰다. 그 대상자의 수는 평양시에서 약 5,000세대, 개성지구에서 약 600세대, 황해남도에서 1,500세대, 강 원도에서 1,000세대, 도합 8,000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계된다. 이 밖에도 중양당집중지도를 통하여 처벌된 사람들을 유형별로 보면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된 사람이 5,%0명, 구속된 사람이

1,500명, 처형된 사람이 1,000명에 달하였다.8)  

낙인벗기기 운동: 2년여에 걸쳐 실시된 당 집중지도는 결과적 으로 북한주민의 정치적 구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공포감 과 상호불신감을 조장시켰다. 북한이 표방하는 군중노선과는 상 반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즉 공산주의 혁명이론에서는 당 주 위에 군중을 얼마나 쟁취하는가가 혁명승리의 담보로 된다고 주 장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교리에 비추어보아 어긋나는 것이었다. 반혁명요소로 규정된 자들은 어느 때 어떠한 운명에 처하게 될지 모르는 처지에서 전전긍긍하고 노동의욕을 상실하는 현상을 나타 내게 되었다고 한다.9)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북한은 새로운 계급정책이 불가피하게

 

8) 중앙집중지도의 자세한 절차와 그 결과에 대해서는北韓硏究所編,「니匕韓總覽」, PP. 302~08 참조.  

9) 북한연구소, “북한의 계급정책," 양호민 외,「북한사회의 재인식」(서울: 한을. 1987).

되었던 것이다. 전산업 국유화 작업이 마무리된 이후인 1961년 3 월 27일, 노동당상무위원회는「각계각층 군중과의 사업을 개선할 데 대하여」라고 결정하고, 각계각층의 반혁명 요소로 낙인을 받 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종전과 같은 방법으로 감시와 차별을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완화책을 써서 노동당과 정부를 신뢰하고 경 제건설에 열성을 발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 혁명적인 요소인 뚜껑, 즉 낙인을 벗겨주자는 것이다. 이 운동은 성분을 변경하는 것, 과거 죄과를 없애는 것, 경력을 없이1주는 것 등이었는데 그 경력란에 뚜껑벗긴 사유가 기록됨으로써 어디까지 나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고 그 수도 극소수에 그쳤다. 이 운동은 특히 6•25전쟁 당시 치안대가담자 및 월남자가 가장 많은 황해도 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러나 전쟁시기에 피해를 입었던 자 및 극좌적 핵심분자들은 이 운동에 대해서 반대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이들은 뚜껑벗기기 군중대회에서 몽둥이로 대상자를 구타하는 일까지도 감행했다고 한다. 또한 뚜껑벗기기에서 제외된 사람들, 즉 피살자 가족, 전사 자 가족 등은 사기가 저락되어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결 과는 북한의 계급정책을 궁지로 몰아넣게 되었다. 따라서 북한은 뚜껑벗기기운동이 우경적 과오를 범했다고 비판하면서 이를 중지

시켰다.10)

 

10) 회匕韓硏究所編,「北韓總覽」, P. 877.

주민등록사업: 북한은 1962년 12월 노동당 4기 5차 전원회의에 서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함에 따라「전민무장화』정책 실현과 관 련하여 주민들 속에서 반혁명적 요소들을 더욱 철저히 가려내고 자 하였다. 전쟁이 났을 때 무기를 들고 싸울 자와 처치(학살)해 야 할 대상을 분명히 해놓자는 것이었다. 이같은 요구에서 북한 은 1964년 2월 당중양위원회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각계각층 군중과의 사업을 강화할데 대하여」라는 안건을 토의 결정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북한주민들의 성분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재분류 하고 일관성 있는 계급정책을 실시해나갈 목적으로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경험들을 종합하여 새로운 대책을 세우게 되었다.  「각계각층 군중들과의 사업에 대한 개회라는 지침서를 작성하고 그를 시행토록 한 것이다. 이것은 본래의 계급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었 다. 종전의 성분조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계급적 출신보다 당성, 혁명성이 더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4기 8차 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1964년 4월부터 1967년 3월 말 까지 북한 전주민을 상대로 주민재등록사업을 실시하였다. 주민 등록사업은 당초에 1년을 예정했던 것인데 사업이 확대되어 1964 년 4월부터 시작되어 1967년에 끝났다. 이러한 주민등록사업을 통한 북한주민에 대한 성분 재분류는 그 목적이 다수를 포섭하고 소수를 고립시키며 숨어있는 반혁명요소를 적발하는데 있었으나, 기본군중보다는 오히려 복잡한 군중의 수가 많아진 결과를 가져 오게 했다. 따라서 수적으로 많은 복잡한 군중을 어떻게 관리하 느냐의 문제가 대두되었다.11)  주민재등록사업의 결과를 토대로 1%7년부터 1971년 말까지 북 한은 전주민을 정치적 성분에 따라 3개 계급 고개 계층으로 분류 하고 그에 따라 각기 계층별로 상응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1971년 2월 1일 노동당비서국이 하달한「인민분류목록」에 의하면 북한주민은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의 3계층과 51부류로 구 분되어 있다. 핵심계층에 속하는 자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북 한정권을 지지할 핵심을 이루는 층이고, 동요계층은 유사시 북한 체제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기대할 수 없는 층의 사람들이다. 적 대계충은 김일성 정권을 거부하여 '잠재적 반혁명분자'로 될 가 능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 사람들이다. 적대계층으로 분류된 사 람들은 월남가족 및 한국전쟁 때 치안대원이던 자와 그 가족들, 과거의 종교인, 지주, 기업가, 상공인이었던 자와 그 가족들, 귀환 포로와 그 가족들, 일제시대에 관직자였던 자와 그 가족들, 인민 군에서 탈주한 자와 그 가족들, 복역자 및 출옥자와 그 가족들 을  포함하였다.12) 51계층 구분에 다른 북한주민의 계층구성은 •핵심 계층이 약 87만 가구에 391만 5천명, 동요계층이 약 70만 가구에 315만명, 적대계층은 약 173만 가구에 793만 5천명으로 집계되어

있다.13)

 

11) 위의 책, PP. 333~34.

12) 51부류에 대한 분류는 위의 책, PP. 907~08 참조. 13) r內外通信』제22호 (1977).

 

이밖에도 북한은 주민요해 사업(1972~78), 월북자 및 외국귀화 인 13계층 분류 사업(1980) 등을 계속하여 주민들에 대한 성분별 차별정책을 지속하고 있다.14) 현재도 당세포단위에서 매월, 매분 기마다 군중평가를 한다고 한다. 유사시에 총부리를 뒤로 돌릴 사람을 색출하는 작업을 계속한다고 한다. 군중들 중에는 평가를 당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으나, 대체로 알고 있어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15)

3. 북한사회 계급정책의 특징

북한은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에 의하여 온갖 착취계급 은 계급으로서 청산되었지만 전복된 계급들의 파괴책동이 계속되 고 있는 조건에서 사회주의 전취물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부단 히 강화되어야 했으며 파괴분자, 적대분자들과의 계급투쟁이 계 속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고 본다.16) 따라서 북한에서 계급정책은 곧 계급투쟁이다. 계급투쟁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첫째는 과거의 지배계급을 청산하는 투 쟁을 계속하는 것이다.

 

14) 여기에 관한 자세한 자료는 4匕韓硏究所編,「北韓總覽」, P. 311 이하를 그- 근六•

15) 김대호(1994.5.7 귀순) 및 김광욱(1994.3.31 귀순)의 증언. 16) 조선로동당출판사 편.「조선로동당력사교재」, p. 399.

사회주의하에서 계급투쟁은 무엇보다도 의부로부터 기여드는 적대분자들과 전복된 착취계급잔여분자들의 파괴활동을 반대 하며 부르죠아적 및 봉건적 반동사상과 그 침습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표현됩니다. 원쑤들은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파괴하 며 자기들의 옛처지를 회복하여보려고 온갖 시도를 다하고 있 습니다. 우리 내부에 숨어있는 적대분자들은 극소수이기는 하 지만 우리는 원쑤들의 파괴책동에 대하여 경각성을 높여야 하 며 그것을 철저히 분쇄하여야 합니다.17)

계급투쟁의 두번째 방향은 영도계급인 노동계급의 사상변질을 억제하기 위하여 노동계급에 대한 지속적인 통제를 실시하는 것 이다.

사회주의하에서는 또한 근로자들의 의식속에 낡은 사상잔재가 남아있으며 이것을 반대하는 투쟁도 로동계급의 사상과 부르 죠아사상간의 투쟁이라는 의미에서 계급투쟁의 하나의 표현입 니다. 만일 우리가 낡은 사상잔재를 반대하는 투쟁을 약화시킨 다면 근로자들속에서 부르죠아적, 소부르죠아적 사상이 조장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사회주의 건설에 큰 지장을 줄 뿐아 니라 적들의 파괴활동에 쉽사리 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 리는 근로자들 속에서 낡은 사상을 반대하-1- 드=丁 즪 懿경으 그늦추지 말고 계속 강력히 진행하여야 합니다.18)

 

17) 김일성, “현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 P. 367.

18) 위의 글, P. 367,

북한에서 계급정책은 물리적 강제와 함께 사상의식을 개조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곧 모든 인간을 노동계급적 의식을 가지는 인 간으로 개조하는 작업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을 위하여서는 물질적 토대를 닦는 것 과 함께 사람들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개조하고 그들을 온갖 낡 은 사상에서 벗어나게 하여야 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은 근로자들의 의식적인 투쟁을 통하여서만 진행될 수 있으며 따 라서 그들의 공산주의적 자각성을 높이는 것은 사회주의, 공산   주의 건설을 빨리 촉진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된다.19)

북한 당국이 계급투쟁이 수반하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지 않 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계급노선이 적대세력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 북한은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의 균형을 유지할 필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낡은 사상잔재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여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하여서도 안됩니다. •••우리의 혁명대오를 튼튼히 꾸리는데서 인민대중의 통일단결 을 강화하는 사업과 적대분자들의 음모책동을 반대하는 계급 투쟁을 옳게 결합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20)  

 

19) 조선로동당출판사 편,「조선로동당력사교재』, P. 417.

20) 김일성, “현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 P. 368 

 

군중노선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여 사회적•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전략이라면, 계급노선은 그러한 사회통합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계급적 성분과 사상적 동태에 대하여 감시하는 전략이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여 병행하는 것이 북한 당국의 사회통합 정책의 기본 방향이다. 그러나 군중노선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자 하는 전략이라면 계급노 선은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을 배제하고자 하는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군중노선과 계급노선은 본질적으로 서로 상충되는 개념 이다. 사실 아래의 인용구에서 보는 대로 북한은 이 두가지 모순 적인 노선 사이에서 딜레마에 처해 있다.

사회주의하에서는 로동계급과 농민, 인테리의 동맹이 사회관계 의 기본으로 된다는 것(즉, 군중노선)을 잊어버리고 계급투쟁 (즉, 계급노선)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며 그것을 과장한다면 좌 경적 과오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되고 애매한 사람을 적대분자와 같이 취급할 수 있으 며 당과 대중을 리탈시키고 사회에 불안한 분위기르 뙨 •그- .久/니0 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회주의하에서도 적대적 요소가 있고 낡은 사상잔재가 남아있으며 계급투쟁이 계속된다는 것을 잊 어버리고 인민대중의 정치사상적 통일만 보면서 그것을 절대 화한다면 우경적 과오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적 대적 요소들에 대한 경각성이 무디게 되고 낡은 사상을 반대 하는 투쟁이 약화될 수 있으며 당과 로동계급의 령도적 역할 이 마비되고 사회생활에서 부르죠아적 영향이 널리 퍼질 수 있습니다.21)

따라서 북한은 좌경적 과오도 우경적 과오도 모두 해롭다고 인 식하고 있으며 양자를 극복하고자 하고 있다.

결국 좌경향적 편향이나 우경향적 편향은 다같이 적아를 똑똑 히 가려낼 수 없게하며 계급로선과 군중로선을 정확히 관철할 수 없게하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건설에 심대한 손실을 끼치 게 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좌우경향적 편향을 다 반대하고 계급투쟁을 능숙하게 진행하면서 인민대중의 통일과 단결을 부단히 강화하도록 하여야 합니다.22)

그러나 군중노선이란 노동계급의 범주에서 다소 일탈하는 사람 도 노동계급의 테두리내로 통합하자는 노선이기 때문에 계급노선 을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끊임없이 계급투쟁을 지속해야 되는 이유가 무 엇인가? 계급갈등을 해소하고 타협을 이루어내야 할 국가가 끊임 없이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를 몇 가지 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어떤 사회든 분업체계를

 

21) 위의 글, P. 368.

22) 위의 글, P. 369.

발전시키기 마련이며 분업은 곧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사회분화 를 발전시키기 마련이다. 정권 초기에 하나의 계급을 지향했지만 노동계급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측면에서 분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프를레타리아 계급으로 단일화한다는 북한의 사회구성 이 론 자체가 모순이다. 중간계급이 성장하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인 데 북한의 계급이론에서는 중간계급이 설 공간이 없다.23)  둘째, 북한이 계급투쟁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또 다른 이 유는 6 • 25전쟁을 통하여 북한체제가 확고한 주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6•25전쟁 기간 북한 지역이 북한군의 일시적 후퇴로 인하여 국군 및 유엔군의 점령하 에 들었을 때 대부분의 인민들이 국군 및 유엔군을 환영한 사실 에 북한 당국이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의 다 음 연설은 6•25전쟁 동안 북한의 일반주민뿐만 아니라 북한의 노 동당원 중에서도 이반자가 많았다는 사실을 잘 말하여 준다.

이번 전쟁을 통하여 누가 진정한 당원이며 누가 가짜 당원인 가 하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전쟁은 당내의 불순분자, 비겁분자, 이색분자들을 무자비하게 폭로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자들을 당대렬에서 내쫓고 당을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24)

 

23) 중간계급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필자의 졸저「또 하나의 북한사회」 제5장 “계급구조의 이중성: 프로레타리아독재 대 인텔리계급의 성장"을

24) 김일성, “현정세와 당면과업" (조선로동당 중양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 지난 전정행정에, 특히 일시적 후퇴시기에 우리의 일부 간부 들과 당원들 속에서는 엄중한 결함들이 나타났습니다. 일시적 후퇴시기에 일부 당일군들과 군사지휘관들은 승리에 대한 신 심을 잃고 동요하면서 자기의 임무 수행을 태공하였으며 무질 서와 혼란에 빠져 후퇴사업을 옳게 보장하지 못하였습니다.25)

이러한 인식과 함께 북한은 계급투쟁을 전개하여 많은 사람들 을 숙청하고 처벌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남한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었으며, 계급노선이 남한의 보안법과 같은 역 할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당은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당규률과 군사규률 을 더욱 강화하며 온갖 비겁분자, 우울분자, 요언전파분자, 기 타 각종 암해분자들과 강한 투쟁을 전개하여 당의 사상적 통 일과 강철같은 당규율과 행동의 일치성을 보장하는 사업-亡0  전개하였습니다.26)

 

에서 한 보고, 1950년 12월 21일),「김일성 전집」(평양: 조선로동당출 판사, 1995), P. 470.

25) 김일성,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50년 12월 23일), 위의 책, P. 476.

26) 김일성, “현정세와 당면과업" (조선로동당 중양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 에서 한 보고, 1950, 12월 21일), 위의 책, P. 455 

스탈린동지는 로동계급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 프로레타리아독 재는 자기앞에 제기되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주요임무를 수행 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첫째로, 혁명에 의하여 전복되고 수탈된 지주와 자본가들의 반항을 분쇄하고 자본의 주권을 회 복하려는 그들의 온갖 시도를 청산하여야 하며, 둘째로, 모든 근로자들을 프로레타리아트의 주위에 집결시키는 정신으로 건 설사업을 조직하며 또 그 사업을 계급들의 청산과 폐절을 준 비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여야 하며, 셋째로 외적들과 투쟁하기   위하여, 제국주의와 투쟁하기 위하여 혁명을 무장시키고 혁명 의 군대를 조직하여야 한다. 우리 당과 인민정권은 스탈린동지 가 지적한 이 원칙을 지침으로 삼았으며 또 삼고 있습니다.27)

셋째, 북한에서 지속적인 계급투쟁이 요구되는 또 다른 이유는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사회주의적 개조를 행하는 과정에서 기득권 을 가진 계급의 저항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농업집 단화 및 상공업 국유화를 효율적으로 단행하기 위해서 계급의식 과 투쟁방법으로 당원들을 우선 사상적으로 무장시키느 1- 0 으 택했던 것이다.28) 정권 초기 토지개혁 이후 저항세력을 통제하기 위하여 계급투쟁을 전개한 사례를 김일성의 다음 연설에서 엿볼

 

27) 김일성, “현단계에 있어서의 지방정권 기관들의 임무와 역할” (도, 시, 군 인민위원회 위원장 및 당지도일군 련석회의에서 한 연설, 1952년 2 월 1일),「김일성 저작선집 1」(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67), PP. 334

28) 이러한 논지의 주장을 전개한 논문은 북한연구소 '북한의 계급정책," 수 있다.

우리당은 맑스-레닌주의적 선진이론으로 우리 당원들을 무장 시킴으로써 그들 속에서 계급적 경각성을 일층 제고시켜야 하 겠으며 우리당은 어느 때든지 계급적 원수들이 우리를 반대하 여 항상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당의 정책을 반대하여 나서는 자는 반동적 지주층과 모리 간상배 극소수의 악질적 기업주 상인들 층입니다. 왜냐하 면 우리당이 지주들에게서 토지를 몰수하였으며 위대한 민주 개혁들을 실시한 결과 민족경제가 발전되며 그에 의하여 모리 간상배들이나 반동적 기업주 악질상인들이 인민을 작위하며 중간모리를 얻을 토대가 잃어진 까닭입니다.29)

북한에서 계급투쟁을 강화해야 될 필요성은 그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6•25전쟁 이후 농업의 집단화를 추진하던 시기에는 개인 소유였던 토지를 국유화하였던 혁명적 조치가 필요했던 만큼 농 민들의 반발이 거세었다. 이 시기에 전개되었던 계급투쟁의 필연 성을 다음의 김일성의 연설의 일부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 기간 우리나라 발전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우리 당의

 

29) 김일성, “북조선로동당 제2차전당대회에서 진술한 당중앙위원회 사업 결산보고와 결론 (1948년 3월 28일),"「김일성선집 2」(평양: 조선로동 당출판사, 1954).

 기본군중인 로동자, 농민들의 계급적 각성이 부족합니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 로동계급 대렬내에 여러 가지 락후한 사 상의식이 침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오늘 일부 로동자들 소 에서 안일하고 부화하고 비규률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국가의 주인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30)

넷째, 북한에서 계급투쟁이 계속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 의 계급정책이 헤게모니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계 급정책은 헤게모니하에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강제를 통하여 집행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계급정책을 정당화하는 철학 적 이론적 토대는 매우 취약하다. 북한에서 맑스-레닌주의는 이 미 폐기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주체사상에 의하여 대제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계급정책을 정당화하는데 별 기여 를 못하고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김일성 정권을 정당화하는데 보다 더 기능적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계급정책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계급정책은 북한사회를 핵심계층(기본계층), 동요 계층, 적대계층으로 분열시키고 적대세력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 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북한체제 수립 이래로 정치

 

30) 김일성, “당원들 속에서 계급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할데 대하여” (조선 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 보고, 1955년 4월 1일),「김일성 적작선집 1」(평양: 조선로동당출관사, 1967), PP. %2~03.

범에 대하여 사면을 실시한 적이 없는 사회에서 계급적 토대뿐 아니라 계속적인 감시와 통제로 말미암아 정치적 행위 때문에 낙 인찍힌 사람의 수가 많아졌다.

4. 서구자본주의 계급정책과의 비교

북한 계급정책의 특징을 보다 분명히 이해하기 위하여 자본주 의에서의 계급정책의 본질을 비교방법적 측면에서 간단히 살펴보 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자본주의체제는 어떻게 계급타협을 이루 어내고 맑스의 예견과는 달리 프롤레타리아혁명을 피할 수 있었 는가? 자본주의체제가 노동계급에 대하여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게 된 계급정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케인즈주의와 수정자본주의

1930년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공황과 실업 문제였으며 이 것은 곧 자본주의의 최대의 위기였다. 케인즈의 이론은 이들 문 제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위기로부터 구해내 고 번영을 이룩하는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케인즈는 정통경제학 의 오류를 비판하고 마르크스 경제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그의 '일반이론'을 발전시켰다. 즉, 생산력과 소비력의 만성적 충 돌이 공황의 근본원인이라고 하는 마르크스의 직관에서 출발하여 소득의 분배가 불평등하면 재화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여 만성적 으로 산업의 생산이 감소하는 경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31) 게인 조에 있어서 공황과 실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수요를 증대하 는 것이다. 즉, 생산의 원동력은 소비이며 소비의 주체인 대다수 노동자와 빈자가 자본가의 일반이익의 대표자로 변환하는 것이 다. 이것은 마르크스적 개념의 계급간의 갈등적 관점이 동지적 관점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계급의 근본적 시각이 변화한 것이다. 즉, 자본주의 체제가 계급간의 zero-sum system에서 positive-sum system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지금까 지는 노동자에게로 돌아가는 임금이 생산의 '비용'으로만 인식되 던 것이 이제는 유효수요를 창출하여 자본주의 상품경제의 영원 한 원동력으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케인즈 이론에 있어서 임금 을 인상하는 것, 특히 임금이 임금 인상율보다는 고용증대를 통 해 임금기금이 인상된다는 것은 총수요의 증대를 의미하여 이윤  을 증대하고 투자를 증대하여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임금 인상이 국민경제발전의 장애라는 시각에서 국민경제의 활성화라 는 시각으로 바뀐 것이다. 게인즈주의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계급타협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기반을 제공했다. 케인즈 주의 계급타협은 두 가지 프로그램, 즉 “완전고용과 평등"으로

 

31) Joan Robinson, An Essay 0缸Marxian Economics (London: Macmilan, 1942), 이정환•김종원 공역,「마르크스주의 경제학」(서울: 집문당, 1%1), PP. 138, 234.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수요의 관리와 정부투자를 통한 고용수준 의 조절이며 후자는 복지국가를 구성하는 사회서비스로 구성된 다. 케인즈이론은 국가정책에 의하여 완전고용과 복지정책을 달 성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도의 실천적 함의을 가지고 있 다. 이점에서 존 로빈슨은 케인즈를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자본주 의에서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32) 케인즈주의적 전환은 곧 사회민주주의자들로 하여금 “복지국가"의 본격적 이데 올로기를 개발하게 만들었다. 케인즈의 이러한 이론은 사회민주 의자들에게 현실적인 정책대안을 제공하여 주었기 때문에 즉각 실제로 수용되었으며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자본주의체제에서 집권 할 수 있는 이론적 들이 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 의 역할을 생산수단의 국유화 프로젝트를 전면 폐기하고 대신 시 장력의 역할을 수정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케인즈주의의 성공 적 적용은 의회주의적 방법으로 국유화하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 니라 불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33)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 혁명가의 대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

1960년대까지 케인주주의는 미국의 계급타협의 이데올로기로 정립되었다. 1940~50년대 미국의 냉전구조와 함께 진보적이던 CIO가 AFL과 1955년에 통합함으로써 계급타협이 공식적으로 선 언되었다.34) 케인즈주의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서구 유럽에서도

 

32) 위의 책.

33) Adam Przeworski, Capitalism and Social Democrac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p. 210.

 

광범위하게 계급타협의 일반이론으로 수용되었다.

복지국가와 조합주의

자본주의사회에서 계급타협이 발달하게 된 것은 자본주의사회 에서 발달한 복지국가와 조합주의에도 기인한다. 가프는 복지국 가를 현대 선진 자본주의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특징이라고 본 다.35) 자본의 축적과정은 사회정책의 영역에서 새로운 필요 (needs)와 요구(requirements)를 계속 발생시킨다. 여기서 필요라 는 말을 사용할 때 이것은 인간의 욕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 정 발전단계에 있어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요구를 말하는 것이다. 자본축적이라는 바로 그 역동성이 산업예비군을 고갈시 킴으로써 계급적 압력이 강화되어 국가역할의 재편성이 요구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프는 복지국가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의 재생산을 수정하기 위한 그리고 비노동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사용으로 정의한다.36) 즉 현대국가의 복지활동

 

34) 미국의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동안 계급타협의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경 제적 조건에 적합했다. 그러나 미국의 기업이 해외투자를 하고 민족해 방투쟁이 등장하고 미국의 대의경쟁력이 떨어짐에 따라 계급타협은 위 기를 맞고 있다. 자본은 사회계약에 대한 약속을 철회하고 노동자의 동 의에 대한 물적 조건이 약화되었다대owe 1986).

35) Ian Gough, The Politiæl Economy the Welfare State (The Macmillan Press, 1981), p. 14.

은 두 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그 하나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 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비노동 인구를 부양하는 것인데 이것  미래 노동력의 생산과정과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력을 수정하여 개입하는 복지국가의 이러한 역할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역할뿐 아니라 노동계급을 체제대로 흡수하 는 계급타협의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 가프는 이것이 조합주의로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가프에 의하면 자본주의에서 복지국가는 계급타협과 관련되어 있으며 계급타협의 구체적 전략은 조합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조합주의란 국가의 경제계획과 소득정책 프로그램과 이것을 논의 하는 기구에 노동조합의 중앙기구와 경영자조직을 결합시키는 것 이다.37) 이러한 방법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두 기본적 생산자 집 단인 자본과 노동이 국가 내로 통합되는데 이러한 조합주의적 통 합의 핵심은 각각의 영역에 대한 대표권의 독점을 인정하고 협의 를 하는 대가로 각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통제한다는 것이 다. 따라서 그것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보다 강력해진 노동운 동을 국가 내부로 끌어들여 계급타협을 도출해낸다.

 

36) Ibid., PP. 66~69.

37) Leo Panitch, "The development of corporatism in liberal democracies,"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ⅴ이. 10, no. 1 (1977).

93

자본주의 노동자들의 합리적 선택

복지국가가 발달하게 되면 계급타협은 더욱 용이해진다. 세볼스 키는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에서 계급타협은 노동계급의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라고 본다. 세볼스키에 있어서 계급타협 이란 절대주의를 전복한 시민혁명이후 서구사회에서는 민주주의 의 원칙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이행을 추구하느냐 안하느냐는 민주주의적 원칙하에서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세볼스키에 의하면 사회주의 운동의 일관된 논리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정치적인 영역에서 사회적인 영역, 특 히 경제적인 영역에로 '확장' 하는 것이다.138) 합리적 선택이론의 요점은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면서 사회주의로 이행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기의 위기와 위험으로 물질적 손해 를 보기보다는 적정한 노동복지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용인하고 타협을 한다는 논리이다.  

세볼스키에 의하면 물적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있어서 설사 사 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효율적이라 하더라도 사회주의로의 이행 과정에 야기되는 경제적 위기가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손해가 된 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일어나면 자본가들은 더이상 의 투자를 중단할 것이고 상품의 품귀로 물가가 급등하며, 정상 적인 임금 수입이 흔들리며 결국은 수요가 감소하여 실업이 근본

 

38) Przeworski, Capitalism and Social Democracy P. 7 

적 문제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위기에 직면하면 선거 에서의 지지를 얻기 어렵고 파시스트의 반혁명의 가능성의 우려 가 있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이행의 프로젝트를 폐기한 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사태가 악화되느니 차라리 자본주의에서 착취당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설명할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다.39)  전후 독일의 기적, 일본의 고도성장,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성공 은 생산력의 고도성장과 임금의 평등 분배의 결합을 통하여 성장 위주의 우익 공급위주의 정책에 대한 대안이 경험적으로 존재함 을 보여준다. 세볼스키의 계급타협이론이 적용된 가장 적절한 예 는 스웨덴의 사민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웨덴의 사민당은 1928년 선거에서는 생산수단의 사회화 정책 등 급진정책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당시의 대량실업 문제의 해결이라는 현실적 인 요구를 외면한 비현실적인 정책이고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로 여겨져 노조의 지지를 획득하는데 실패하고 선거에서 가장 큰 패 배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1932년 선거와 1936년 선거에서 모두 급진적 개혁 대신에 실용적 개혁주의를 내세워 집권당으로 될 수 있었고 자본가 계급과의 타협을 할 수 있었고 70년대 중반의 세 계경제 침체기 동안 공백기를 거쳐 1981년 이후 지금도 집권하고

있다.40)

 

39) Ibid., PP. 43~46.

40) 신광영,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와 경제정책,"「사회비평」, 제4호 (1990). 95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자본주의체제는 노동자계급에 대하여 해 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이 자본주 의 제제를 전복시키는 것 보다는 체제내에 순응하는 것이 경제적 으로 이득이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식 이 가능한 까닦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국가는 복지국가라는 지 배이데을로기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소결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살펴볼 때 북한의 계급정책은 힘에 기반 을 둔, 동의없는 '지배'에 가까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체 제의 계급정책이 계급갈등을 체제내로 제도화한 계급타협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북한의 계급정책은 계급투쟁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계급 이외의 계급과 계급적 속성을 청산하는 투쟁이 바로 북한의 계급정책이다. 북한의 계급정책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처럼 분배를 조정한다든지 물질적 복지수준을 향상시켜 줌으로써 체제내로 통합하도록 하는 타협정책이 아니 다. 북한의 계급정책은 노동계급인 아닌 다른 계급에 대한 소멸 정책이다. 북한에서는 노동계급 이외에는 계급의 존재를 인정하 지 않으며 노동계급이 다른 계급으로 변질되는 것도 허용하지 않 는다. 북한의 계급정책은 도덕적 철학적 헤게모니에 기초한다기 보다는 물리적 강제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 계급간의 갈등문제는 타협과 해결의 문제가 아니라 독재의 대상이다. 북한체제는 노동계급에 대하여서는 민주주의를 실시하지만 제국주의의 주구이며 그 세력을 부식하는 지주, 예속 자본가들과 친일파, 친미파, 민족반역자들에 대하여서는 독재를 실시한다고 선언하고 있다.41)

 

41) 김일성, “현단계에 있어서의 지방정권 기관들의 임무와 역할" (도, 시, 군 인민위원회 위원장 및 당지도일군 련석회의에서 한 연설, 1952년 2 월 1일),「김일성 저작선집 1」(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67), P. 334.

제Ⅳ장 북한 사회의 계급갈등

1. 계급갈등의 개념

우리가 계급이라고 함은 동일한 이해관계, 사회경험, 가치체계 를 가지는 사람들로서, 계급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기질 (dispositions)을 가지며, 다른 집단의 사람들과 관련해서는 그들 의 의식과 행동에 있어서 계급적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사람들

로 정의한다.1) 따라서 계급적 분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 계급갈등은 필연적이 다. 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관계는 항상 착취적 관계이며 따라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에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 이다. 따라서 계급적 관계는 본질적으로 갈등관계이며, 때때로 계 급투쟁을 수반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맑스는 계급투쟁이야 말로 역사발전의 동력이라고 보았다?) 계급사회에서 계급갈등이 발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지배계급이 철저하게 해메모니를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과학자

 

1) E. P. Thompson, The peculiarities the English #7 Socialist Register 7965, ed. by Ralph Miliband and John Saville (London: Merlin Press Thompson, 1%6), p. 357.

2) Anthony Giddens and David Held, eds., Classes, Power, and Cofflict: Classical and Contemporary Debate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mia Press, 1982), p. 3.

들이 지배게급의 지배적 역방에 관하여 강조하였지만 피지배계급 의 계급적 힘도 존재한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베크름 비(Abercrombie) 등은 중세 봉건주의도 현대 자본주의도 지배이데 올로기를 피지배계급에 내면화시키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구체적 인 사례연구를 통하여 지배 이데올로기 이론을 비판했다.3) 아베 크롬비 등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지배이데을로기의 중요성이 너무 강조되었으며, 지배이데올로기 는 실제로 지배이데올로기론이 주장하는 그러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피지배계급도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되면 지배계급의 지배이데 올로기에 대한 대항이데올로기를 형성할 수 있으며, 지배계급으 로 전변될 수도 있다. 특히 사회주의권에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장악은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동구 사회주의 사회에 서 피지배계급은 제2의 사회를 형성하여 지배계급의 독재에 대응 하였다. 사회변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계급갈등의 개념이 중요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계급갈등이며 계급갈등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 나는가? 계급갈등은 항상 계급조직을 통해서 집단적 행동으로 나 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에 따라서 계급갈등은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

 

3) Nicholas Abercrombie, Stephen Hill, and Bryan Tumer, The Dominant Ideology Thesis (London: George Allen & Unwin, 1980), p. 3.

 

체제에서 계급갈등은 계급조직을 형성하여 집단행동으로 나타나 기는 어렵다. 정치적 억압이 강한 사회일수록 계급적 적대감은 내면화, 잠재화되어 있다. 조직적 집단행동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소극적 체제저항, 일상생활형의 저항으로 나타난다.

계급갈등은 계급의식의 측면과 계급행동의 측면으로 나누어 보 아야 할 것이다. 조직행동 보다 더욱 근원적이고 파괴적인 계급 갈등은 다른 계급에 대한 적대의식이다. 계급이론의 대가로 알려 진 롬슨에 의하면 계급행동과 계급의식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 이다.

계급은 마치 독립적인 실체로서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 주위 를 둘러보고서 적대계급을 발견하면 그 때 투쟁을 시작한다는 그런 따위의 것은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은 규정지어 진 방식으로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결정적으로 생산관계에서) 구조화된 사회속에 놓이게 된다. 그 속에서 그들은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확인하게 된다. 그들은 이러한 이해관계를 둘러싸 고 투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그근1-으六六 로를 계급으로서 발견하게 되고, 결국에는 이러한 발견을 계급 의식으로서 인식하기에 이른다.4)

계급적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계급갈등이 이미 심화된 상태 이다. 따라서 계급갈등의 분석에서 계급조직에 의한 집단적 행

 

4) E. P. Thompson, Poverty Iheory and Other Essay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8), PP. 147~49.

동이 관찰되지 않는다고 해서 계급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 급갈등의 중요한 다른 징후는 계급적 적대의식이다.  

이 장에서는 계급적 갈등이 심화되는 요인이 무엇인지, 계급갈 등의 내용이 무엇인지, 계급적 적대감이 어떠한 양식으로 표출되 고 있는지, 그리고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도전에 대하여 어떻 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계급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

북한 사회에서 계급간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경제난이 계급 갈등을 심화시키는 일차적인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난이 심 화되자 희소가치를 둘러싼 계급간의 생존투쟁이 심화되고 결과적 으로 계급간에 불평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요즘 어제가 옛날 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매우 빠른 속도로 상황이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 사망 이전까지만 해도 불만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 이후는 불만이 없는 사람이 없고 범죄가 많고 사회가 어지러 워졌다고 많은 귀순자들이 증언하고 있다.5)

 

5) 고준(30세, 1996.722 귀순, 평남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보 위부 정보원)의 증언.

가. 체제이념과 현실의 괴리

북한사회에서 계급갈등이 발생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체제이념 과 현실간의 차이 때문이다. 사회주의체제는 허위의 선전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은 인민대중이 사회의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선전 한다. 북한 지도부는 북한은 인민을 하늘같이 내세우고 국호도 군대 이름도 기념비적 창조물 명칭도 나라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많은 것들을 인민이라는 말과 결부시키도록 하고 있다. 인민을 그토록 귀중한 존재로 내세우기 때문에 북한의 '우리의 사회주의' 는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로서 인민의 자주적 요구를 철저히 구현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로 된다는 것이다.

인민대중은 오직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이 인민의 것으로 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비로소 사회의 모든 것의 참다운 주인으로 된다. 인민대중은 사회의 모든 것의 주인인 것만큼 주인으로서 의 지위를 차지하고 권리를 행사하며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 할을 다하며 주인으로서의 값높고 행북한 생활을 누려야 한다.   노동계급의 당은 언제나 노선과 정책을 세우는데서 인민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의 의사와 요구를 들어야 한다. 일꾼들이 사 업하는데서도 인민대중의 의사와 요구르근 = 거 으 즨 ^ 처 고只& 0 00 로 삼아야 한다.6)

 

6) 김정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로동신문』(199411.1).

북한은 또 물질생활의 중요성도 강조하면서 주민들이 안정된 물질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인민대중은 사 회의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값높고 행복한 생활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민대중의 값높고 행복한 생활에서 물질생활은 중요한 자리 를 차지한다. 물질생활은 사회생활에서 기초를 이루는 분야이 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인민대중은 국가에서의 주인인 것만큼 마땅히 유족하고 문명한 물질생활을 누려야 한다. 우리당은 지 난기간 경제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사회주의 경제제도를 공고 발전시키고 위력한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함으로써 인민들의 물질생활을 자체의 힘으로 원만히 보장할 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였다. 우리가 자력갱생 간고분투하여 건 설해 누으 자립적 민족경제의 잠재력은 매우 크며 그것은 전 체 인민의 건전하고 안정된 물질생활을 보장하는 귀중한 밑천 으로 되고 있다!)

최근 김정일의 이름으로 발표된 한 담화문은 북한의 현실을 매 우 역설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위 '지상 의 천국'과도 같은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다.  

 

7) 위의 글 

우리인민은 누구나 먹고 입고 쓰고 살 걱정을 모르며 무료의 무교육제와 무상치료제의 혜택을 일생동안 끊임없이 배우며 무병장수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노동능력이 있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마련하여 주고 전체 인민의 생활을 책임지고 보장해주며 일시적으로 노동능력을 잃었거나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 돌볼 사람이 없=1- 느으 이 드 의 생활까지 따뜻이 보살펴주고 있다.8)

그러나 실제로 북한에서는 이러한 이념이 실현되기 보다는 실 제는 이념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북한에서는 인민대중이 주인이 아니라 수령과 간부가 전권을 독점하고 있다. 그들이 세도를 부리고 인민대중에 대하여는 관료주의를 행사하고 있다. 뒤에서 귀순자들의 증언에서 자료가 제시되겠지만 김정일 의 담화에서도 중요한 사실들이 엿보인다.

세도와 관료주의는 집권을 악용하여 권세를 부리며 인민대중 의 의사와 이익에 배치되게 행동하는 낡은 사업방법과 작풍입 니다. 일꾼들 속에서 세도와 관료주의를 없애는 것은 노동계급 의 당과 인민대중의 혈연적인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절실한 요구입니다. 노동계급의 당이 정권을 잡으면 일부 일꾼들 속에 서 세도와 관료주의를 부리면서 권력에 의거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9)

 

8) 위의 그 

9) 김정일,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1991년 5월 5 이 담화문에서 나타난 내용은 북한에서 간부들 사이에 세도, 관 료주의가 중요한 문제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사 회문제라는 증거는 김정일의 이름으로 발표된 여러 건의 담화문 에서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1993년에 발표된 김정일의 담화문에서는 툭권, 세도, 관료주의가 심하여 인민대중이 당으로 부터 이탈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주의는 그 본성부터 온갖 특권을 배제한다. 지난시기 사회 주의 실천에서 세도와 관료주의가 나타나게 된 것은 당과 정 권건설을 인민의 복무자로서의 사명에 맞게 바로하지 못한 것 과 관련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세도와 관료주의가 조장되 면 인민대중을 당과 국가로부터 리탈시키게 되며 그것을 사회 주의의 원쑤들이 리용하게 된다. 사회주의가 붕괴된 나라들의 사태가 바로 이것을 보여준다. 어느 나라에서나 인민이 요구한 것은 세도와 관료주의가 없는 사회주의였지 결코 자본주의는 아니었다.10)

1994년 김정일의 이름으로 발표된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의 담화."「로동신문」1991.527.

10) 김정일,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근로자」, 제3호 (1993).

 

 담화에서도 북한 간부들의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에 대하여 매 우 강하게 경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 집권당을 어머니 당으로 건설하는데서 간부들을 철 저히 혁명화하며 그들속에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를 반 대하는 투쟁을 적극 벌이는 것이 중요하다. ••• 사회주의는 온 갖 특권을 반대한다. 사회주의제도가 서면 특권계급은 없어진 다.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이 인민의 손에 장악되는 한 사회주 의 사회에서 특권계급이 새로 생겨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주 의 사회에서도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일부 준비되지 못한 간부들이 사상적으로 변질 되어 인민들로부터 유리되고 특수계층화될 수 있다.11)

둘째, 북한주민들은 국가의 주인으로서 유족하게 살기는 커녕, 간부들에 착취당하며 상대적으로 빈곤을 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대적 빈곤 상태에 처해있다. 이론과 실제사이에 큰 간격이 있

다.

북한의 주민들은 체제전반에 대하여 매우 암울한 생각을 가지  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는 썩고 개인은 배고프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식량배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끼니걱정을 해야 한 다면 그 보다 더 암담한 현실은 없을 것이다. 월급 70여원 받아

 

김정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로동신문」, 199411.1.

야 살 것이 없다. 열차, 버스 등의 차비도 같이 올랐다. 한달 월 급 받아야 운동화 한 켤레 값이다. 최근의 북한귀순자들은 최근 들어 한달 월급으로 정액으로 다 타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한달에 5원, 10원씩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작년 12월 생활비를 올 6 월에 받았다는 것이다. 상점에 물건이 없으며 집안에 아이들 기 저귀할 헝겊조각 하나 제대로 없기 때문에 “머저리 아닌 이상 딴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평불만을 일일이 표출하지는 않 아도 속으로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12)  북한주민들에게 짜증나는 일은 내년이면 생활이 풀린다고 매년 주장하는 정부당국에 속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속았다는 인식, 정부에 속아산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금년도 김정일 서한에서도 “금년만 참아라. 1996년은 고난의 해. 이 고난의 해를 넘겨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해이다”라고 종용하였다고 한다.13)

북한주민들은 병원은 무상치료라고 선전되고 있으나 절대로 약 을 무상으로 주는 법이 없다고 한다. 첫째는 병원에 약이 없기 때문이며, 둘째는 약이 희귀하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뇌물을 바쳐 야 치료할 약을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주민들을 더욱 분개하게 만드는 것은 고위층들은 무상치료혜택을 다 받는다는

 

12) 신명철(37세, 199511.18 귀순, 보위부산하 황남 청단체신소 선로공), 최승 찬(30세, 19%.7.11 귀순, 개성시 석비레 벽돌공장 자재인수원)의 증언.

오명선(33세, 1995.327 귀순, 신의주 일용품협동조합 자재인수원), 정갑렬 (46세` 19965.31 귀순, 문화예술부 메아리 음향사 음향연구소장)의 증언. 사실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보다 더 혜택을 받으면서 산다고 한

다. 14)

나. 간부들의 독점과 불평등 심화

북한에서 간부와 비간부간의 적대감의 원인이 불평등의 심한 정도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주의에 특유한 평등의 가치 때문인지 는 명확하지 않지만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상호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서 인간은 평등한다는 원칙이 보편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그동안 북한체제를 정당화시키는데 중요한 역 할을 하였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은 불평등 문제에 민감한 편이라 고 한다. 차별을 줄 때는 무조건 항거한다고 한다. 못먹으려면 같이 못먹어야 하는데 간부들만 잘먹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15) 북한에서 1990년대들어 계급간의 갈등이 심화시키고 있는 요인 의 하나는 지배계급의 독점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배계급의 독점이 심화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권력이 많은 지 배계급은 정당한 방법과 부정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희소가치 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난이 지속됨에 따라 식량배급 이 계층에 따라 차별적으로 주어지고 있는데 체제유지에 핵심적

 

14) 최승찬(四세, 19967.11 귀순, 개성 석비래 벽돌공장 자재인수원), 정갑렬 (46세, 19%.5.31 귀순, 문화예술부 메아리 음향사 음향연구소장)의 증언. 최승찬(30세, 1996.711 귀순, 개성시 석비레 벽돌공장 자재인수원), 이 철수(41세, 1994.7 귀순, 객화차대 물자조달원)의 증언.

 

인 기득권층에 우선적으로 식량배급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귀순 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군대와 사회안전부, 국가보위부, 당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런대로 식량배급을 받았으나, 일반주민들은 몇달째 식량배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배계급은 특권 을 활용하여 우선적으로 분배를 받는데 반하여 노동자 농민 등 인민대중은 먹고 살기가 힘든 형편이다.16) 또한 간부들은 주어진 권력을 활용하여 국가재산을 불법적으로 유용하는 행위를 많이 하고 있다. 간부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제 맘대로 다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간부들은 모든 것이 부럽지 않다고 한다. 자기가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공식적으로가 아니라 비합법적으로 이루 어지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이다.17) 가령, 협동농장에서는 한 개 의 작업반이 100세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업반장이 생산량을 실 제보다 작게 보고하고 나머지를 작업반장이 횡령하는 일이 많다 고 한다. 횡령하는 양은 몇 백톤씩에 달한다고 한다. 국가재산을 개인적으로 사취하는 것이다. 농민들은 양은 어느 정도인지는 정 확히는 모르지만 간부들이 거액을 횡령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 안

다고 한다.18)

북한은 더 이상의 부정부패가 있을 수 없을 만큼 지배계급의 횡령이 심하다고 한다. 여담삼아 “당일군은 당당하게, 보위부원은

 

16) 허창길(47세, 1996.1028 귀순, 속도전 돌격대 군의장, 중좌)의 증언.

17) 윤성철(36세, 19963.18 귀순, 원산시 양정사업소 소방대 대원)의 증언.

18) 신명철(37세, 1995.11.18 귀순, 보위부산하 황남 청단체신소 선로공)의 증언. 보이지 않게, 안전원은 안전하게 해먹고, 군단에서는 군데군데  어 먹고, 사단에서는 살금살금 떤어 먹고, 연대에서는 연대적으로 떧어 먹고, 대대에서는 대대적으로 떧어 먹고, 중대에서는 중요한 것만 떤어 먹고, 소대에서는 소소하게 떧어 먹고, 사병들은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19) 위로 올라갈수록 횡령을 더 많이 더 일 상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원산시의 경우 인민들의 모든 생필품이 市상업관리소를 거치는데 군당, 시당에서 순서대로 들어가서 뽑 아먹고나서 나머지를 배급준다고 한다.20) 귀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러한 불법행위는 통제되지 않고 묵인된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법에 의하여 다스려지지 못한 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간부가 횡령한 것에 대하여 고소하면 고소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없어진다고 한다기) 권력가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국영상점에서 국정가격으로 물건 을 사서 몰래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남긴다고 한다. 보통 5배에 서 10배까지 높여 장마당에 내다판다고 한다. 또한 이걸 사들이 는 장사꾼들은 안전원들에게 뇌물을 바친다고 한다.

이 밖에도 국가재산을 사적으로 전용하여 사취하는 방법이 매 우 가하다. 가령, 북한에는 자가용번호판을 국가번호판으로 바 꾸어 달음으로써 개인이익을 생기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자

 

19) 정갑렬(46세, 1996.5.31귀순, 문화예술부 메아리 음향사 음향연구소장), 최동철(30세, 1995.1212 귀순, 415담배농장 노동자)의 증언. 20) 이해영(34세, 19963.18 귀순, 시베리아 석탄연합7기업소 노동자)의 증언. 21) 이전국(30세, 19%.5.8 귀순, 의화벌이 사업소 과장)의 증언.

가용 가진 사람들이 기업소와 짜고 번호판을 기업소 것으로 다는 것이다. 북한의 모든 기업소는 국영이어서 기업소 차량의 번호판 도 국가번호판이며 차에 넣을 기름도 해당 기업소가 맡는 관행을 악용하는 것이다. 대신 기업소는 그 차를 업무용으로 빌어쓴다고 한다. 개인과 기업이 결탁하여 상호 이용을 하는 것이다. 북한에 서 이제 자가용 번호판을 다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모두 국가번 호판으로 바꾸어달고 있다고 한다.22) 간부들이 상대적으로 부를 더 많이 획득하는 또 하나의 수단은 뇌물수수이다. 북한에서는 모든 것에 뇌물이 매개된다고 한다. 취직, 입당, 대학입학, 운전면허증 등 모든 것에 뇌물을 주어야 된다고 한다. 뇌물 많이 먹는 사람들은 당 초급당비서 이상, 행정 계통 지도원 이상, 기업소 노동지도원 이상이라고 한다.23) 또한 일반주민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간부들은 주로 외제를 소비한다고 한다. “물 하나만 북조선" 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외제를 쓴다는 것이다. 권력층은 발끝에서 머리끝 까지 몽당 외제로 뒤집어 쓰고 산다고 한다. 중앙당 간부 집에 가보면 간장, 된장까지 일제를 쓰며. 방마다 외제 칼러 TV, VTR 이 있는 등 서울 최상류층도 흉내내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북한 의 공장은 돌아가지 않아도 달러만 있으면 외화상점, 외화식당에 서 뭐든지 살 수 있는 불평등한 세상이 되었다.24)

 

22) 위의 증언.

23) 이해영(34세, 19963.18 귀순, 시베리아 석탄연합7기업소 노동자), 김영국 (끄세, 19962.25 귀순, 평북 철산군 자동차우전학교 학생, 장사)의 증언.

일반주민들은 굶어 죽는다고 외부로 소문이 나돌지만 중앙당 간부 정도면 진짜 잘먹고 잘 산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권력을 잡 은 사람들이 다 잘살게 되어 있다. 공장지도원만 되어도 죽 안먹 고 밥은 먹고 사는 반면에 노동자는 맙먹고 살기가 어렵다. 탄광 의 경우도 분초급당비서부터는 많이 다르다. 집에 냉동기, 선풍기 등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가구를 구비하고 살더라는 것이다. 

급당비서 및 지배인에게는 자동차(벤쓰)가 지급된다고 한다.25) 원산에 도당 책임비서는 원산 동명산동 맨꼭대기 여관처럼 만들 어놓은 집에 여자들 데려다 놓고 술먹는다. 일반 식당처럼 꾸며 놓고 있다. 간부들만 이용한다. 대형 승용차만 왔다간다 한다. 26)

신흥 부유계급의 등장 북한사회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요인의 하나는 기존의 사회주 의적 배급체계가 마비됨에 따라 암시장에 기초한 새로운 분배체 계가 등장하여 분배에서 극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난이 심화됨에 따라 암시장이 성행하자 공장의 생산품이 암 시장으로 유출되어 공급량이 줄어들고, 동시에 암시장 상품가격 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상황이 발생하였다.27) 국가경제가 침

 

24) 고준(四세, 1996.722 귀순, 평남 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정갑 렬(46세, 1996.531 귀순, 문화예술부 메아리 음향사 음향연구소장)의 증언.

25) 서병림(39세, 19965.8. 귀순, 천성탄광노동자), 고준(30세, 1996.722 귀 순, 평남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보위부 정보원)의 증언.

26) 윤성철(36세, 19963.18 귀순, 원산시 양정사업소 소방대 대원)의 증언.

27) 이전국(30세, 19965.8 귀순, 외화벌이 사업소 과장), 오명선(33세, 신의 체될수록 지하경제가 활성화된다. 북한의 장마당에는 고양이 뿔 만 없고 다있다. 서해지방에 가도 동해바다에서 나오는 생선을 살 수 있고郡병원에는 없는 의약품도 살 수 있다고 한다.28) 이런 상황에서 능력있는 사람들은 잘 적응하여 돈을 많이 벌고 있다. 특히 외화벌이 사업소의 간부들과 중앙당 간부들이 이 신 흥 부유계급의 대열에서 가장 앞서 있다. 국가가 경제적 통제력 을 이미 상실한 상태여서 개인소유로 변화된 것들이 많다. 대표 적인 것이 고기잡이와 어패류 채취에 사용되는 잠수선이다. 이 배들 중 거의 전부가 실제로는 개인소유이기 때문에 당국에서는 손을 못댄다고 한다. 소유자들이 간부급에 해당하니 어쩔 수 없 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 배로 고기잡이 나간 어민들은 잡은 고 기 중 태반을 배 사용료 조로 선주에게 주고 나서 나머지를 어민 들이 먹을 것도 남기고 국가에 바친다고 한다. 국가에 낼 것은 맨 나중으로 미루다 보니 국고는 말라갈 수밖에 없다.

가령, 함경북도 청진시 534 후방총국 외화벌이 사업소장 전영호 가 바로 이 예에 속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사람은 잠수선을 12척 이나 가지고 있다. 한 척당 3 천달러 이상이다. 그러니 이 사람 재산이 배만 쳐도 36,000달러이다. 국가가 주주형태로 이 사람에 게 달라붙어 있는 형편이다. 이 사람은 한번 무역을 잘 해내면 1 만달러 이상 이익이 생긴다. 이런 규모의 무역거래가 한 달에 두

 

주 일용품 협동조합 자재인수원, 1995.327 귀순)의 증언.

28) 고준(29세, 1996.722 귀순, 평남 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의 세건은 족히 된다.29) 그 다음으로 돈을 많이 버는 계층은 외화벌이 사업을 하여 북 한의 실물경제에 밝은 사람들이다. 귀순자의 증언에 의하면 장사 해서 부자된 사람이 많으며 장사해서 잘사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벌려 고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귀순자 오명선의 경우 신의주 20여명 의 친구 중 거의 다 비공식수입으로 살았으며 월급은 받으나마나 생각지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직장에 한 달에 500원씩이나 내 고 장사를 하였다고 한다. 신의주 인구 30만명 중 1만명 정도는 이런 식으로 생활한다고 한다. 주로 20~30대의 청년들이다. 직장 에서 동료 150명중 일하는 사람은 100명 정도인데, 특히 겨울에 는 50~60%가 직장에 돈을 들여주고 밖에서 장사를 하면서 산다 고 한다. 한달에 3,000원 정도 벌었으며 능력있는 사람은 먹고 사 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30) 신위주 같은 지역은 주민 전체 의 20~30%정도가 밀수에 종사한다고 한다.31) 북한의 국가는 어 려워졌지만 더 잘사는 사람이 많아져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심화

되었다.32)

이들은 지역의 안전원, 보위부원 등 단속요원과 결탁하여 공생

 

29) 이전국(30세, 19965.8 귀순, 외화벌이 사업소 과장)의 증언,「월간조서」 1996년 10월호, P. 146에서 재인용.  

30) 오명선(33세, 신의주 일용품 협동조합 자재인수원, 1995.327 귀순)의 증언.

31) 김영국(22세, 자동차 운전사 학교 학생, 19% 2 귀순)의 증언.

32) 오명선(33세, 신의주 일용품 협동조합 자재인수원, 19%.3.%7 귀순)의 증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단속요원들에게 상습적으로 뇌물 을 주어 매수하기도 하며 그들에게 장사용으로 쓰는 오토바이나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선물을 주기도 하여 친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비사회주의그루빠 등 새로운 단속반이 등장하면 처 음에는 그 조직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해 수그러들다가 일단 그 조직의 성격과 사람을 파악하자마자 이들을 매수하여 다시 또 장 사를 하게 된다고 한다.33) 뇌물을 받으면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안전원들은 검열이 있는 날에는 오늘 검열나왔으니 팔지말 고 들어가라고 귀뜸하여 준다고 한다.34) 군부, 당, 보위부, 안전부 가 한 덩어리가 되어 암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국경에서   국경 경비원을 끼고 한다.35) 북한에서의 이러한 추세때문에 권력이 있는 당일꾼들이 무역직으로 옮기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한다.36)

이처럼 고위 당간부들이 북한의 통제경제체제가 이완되는 틈을  타서 국가재산을 개인화하여 자산증식에 몰두해온 결과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노동자, 농민, 병사계층에서는 아사자가 나타나는 등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장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북한에서

 

33) 진광호(29세, 인민부력부 보위대학 온천수산기지 운전사, 1994.6% 귀 순)의 증언.

34) 귀순자 윤웅의 증언, 김영국(22세, 자동차 운전사 학교 학생, 1996. 2 귀

순), 박철만(30세, 함경남도 도농촌경리위원회 잠업검역소 지도원, 1995.326 귀순)의 증언.

35) 최세응(34세, 대성총국 유럽지사 외환딜러, 1995.1212 귀순)의 증언. 36) 이전국(30세, 19%5.8 귀순, 외화벌이 사업소 과장)의 증언.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다. 김일성 체제하에서 고생만 해 돈 도 없고 장사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아사자 속출이 란 바로 이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북한사람 전체가 굶어죽는 것이 아니라 적응 능력없는 노동자 농민들만 굶는다는

것이다.37)

북한은 간부세상이라는 것이 북한주민들의 일반적 인식이다. 제 일 위층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자기 것인냥 자의적으로 국 가재산을 절취하여 유용한다고 한다. 간부와 비간부의 계급은 넘 을 수 없는 깊은 사회적 간극으로 존재하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북한에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사회주의 평등의 원칙이 있으나 말 뿐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한 다. 북한에서는 원칙은 평등하게 살게 한다는데 현실은 간부와 백성간에 차이가 엄청나다고 공공연히 말한다고 한다. 북한귀순 자들은 북한이란 한마디로 노동자, 농민만 죽어나는 나라라는 사 실과 당 간부들이 얼마나 잘먹고 잘사는지를 남한 사람들은 이해 하기 힘들다고 한다.38) 실제로 현재 북한 주민들은 북한에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 람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한다.39) 백성이 먹을 것 을 특권계급이 독점하고 있는 현상을 잘 나타내어주는 유행어가

 

37) 위의 증언.

38) 고준(29세, 19%.7.22 귀순, 평남 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윤성철(36세, 19963.18 귀순, 원산시 양정사업소 소방대 대원) 의 증언. 39) 윤성철(36세, 19963.18 귀순, 원산시 양정사업소 소방대 대원)의 증언.

있다. 무식한 노인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빗대어 간부들의 독식 현상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노인1•. 한냉전선이 왔대.

노인2•. 한냉전선이 온덜 월 하나. 간부들이 다 먹고 우리에게 까지 돌아올 것이 있겠나.40)

다. 계급질서의 정당성 문제: 선발기제 및 보수체계에 대한 불만

어느 사회든 제한된 자리에 많은 지원자가 있으니 경쟁과 선별 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과연 어떠한 기준으로 선별한다는 말인 가? 사회주의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직업적인 경력 이 아니라 정치적인 경력이다. 가령, 입당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이미 입당한 사람이 직위를 차지하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 회주의에서 하나의 직책을 차지한다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지도 층이 부여하= 느 으초 1-。01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만약 지도층이 자기 에게 이 은총을 거두어 가버리면 각자는 아주 간단하게, 다른 사 람으로 대체된다는 사실을 사회주의 국가사람들은 모두 의식해야 만 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경력의 중시는 높은 직위를 차지하게 된 행운을 얻게 된 사람들에게 상급자의 의향에 절대적으로 복종

 

40) 최세응(34세, 1995.1212 귀순, 북한 대성총국 유럽지사 외환딜러)의 증언.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정치적인 경력이라는 구실하에 특 권계급 전체의 완전무결한 헌신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41)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계급질서는 앞에서 자세히  살펴본 것처럼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에 따라 사회계층의 사다리 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출신성분으로 결정되고 있다. 북한에서 이러한 사회선발 정책은 북한사회의 계급정책의 핵심이다.42)  북한의 경우는 제도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출신성분을 가장 중 요한 변수로 사용하고 있다. 사상과 성분이 당원 선발 및 대학입 학 등 사회적 선발의 중요한 기준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인 맥 또는 가족적 배경이 성분과 사상으로 위장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가족적 배경은 지배계급을 재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북한 사회에서 자녀의 대학입학에 아버지의 배경이 매우 중요 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간부의 아들은 출세를 보장받을 수 있 다. 성분이나 사상보다는 간부의 아들이라는 인맥이 대학입학과 지위획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북한에서 의 가족적 배경은 사상과 성분을 뛰어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 다. 출신성분이 나쁜 사람은 능력이 있어도 간부가 될 수 없다.

 

41) 보스렌스키 지음, 홍순호 역,「노멘클라투라: 소련의 보이지 않는 권력」 (서울: 평민사, 1982), PP. 75~76.  

42)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계급질서가 실질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적으로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중심으로 사회적 선발이 이루어진다는 공식적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성분이 좋은 사람만 간부가 될 수 있다. 당에 충성하 는 사람이 간부가 될 수 있다. 43) 북한 사회에는 계층간에 두터운 벽이 있다. 북한에서 간부들은 간부자녀끼리 결혼시킨다. 타계급간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간 부들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도와주면서 폐쇄체제 (closure system)를 구축한다. 이 체제를 이용하여 간부들은 자기 자식을 중간간부에 올려 놓는다. 따라서 간부집에서 간부가 나온 다는 것이 북한주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44) 과거에는 노동자, 머슴 자제가 성분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었으 나 이제는 간부 자제가 성분이 좋은 것으로 되었다. 간부의 자제 는 무조건 성분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버지가 간부이면 자식도 간부, 아버지가 노동자이면 자식도 노동자이다. 양반 자식 은 양반, 간부자식은 간부, 쌍놈 자식은 쌍놈으로 재생산된다는

것이다.45)

이러한 현실을 두고 북한주민들은 출세하기 위해서는 “토대가 좋아야 한다, 백두산 줄기를 타고 나야 한다, 똥이 좋아야 한다" 는 등으로 조소적이고 비꼬는 말투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북 한에서는 이처럼 계층질서의 세습화를 비판하는 일이 많다.

 

43) 서병림(39세, 19965.8. 귀순, 천성탄광노동자)의 증언.

44) 차성근(29세, 1%6.1.16 귀순, 잠비아 주재 북한대사관 공작원), 최주활 (46 세, 19%.9.石귀순, 인민무력부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 상좌)의 증언.

45) 고준(30세, 19%.7.22 귀순, 평남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보 위부 정보원), 김영국(22세, 19962.25 귀순, 평북 철산군 자동차우전학 교 학생. 장사)의 증언.

출신성분에 따라 선발된 북한의 당원들은 선발되지 못한 사람 들을 출신성분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경향이 있기 때 문에 당원과 비당원 사이는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 적자와 서자 의 관계로 설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당원과 비당원간에 감정적인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당원들은 자기 당중을 믿고 비당원들을 차별대우하여 싸움이 자주 발생하며 싸움에서도 경과가 어떠하든간에 비당원들이 불리한 판정을 받는다고 한다.

당원에 억눌려서 비당원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다고 한다. 비당원은 머리 숙이면서 살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당원과 비당 원은 확연히 구별된다. 모든 개인은 직장생활에서 당, 사로청, 직 맹의 세가지 조직 중의 어느 하나에 가담하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31세까지 사로청에 가입한다. 입당한 사람은 당조직에 편입 되지만 그렇지 못한 비당원들은 직맹조직으로 편입된다. 직맹조직에 서는 직맹위원장만 당원이다. 생활총화를 이 조직별로 따로 한다.46) 북한에서 당원들이 장자리 하나 따서 올라가면 인민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을 만큼 권위주의적이라고 한다, 당권이라는 것 하나 믿고 당원안된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당원에게는 많은 권한 과 특혜를 주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제도적으로 당원들을 우 대하기 때문에 비당원들은 결과적으로 천시당한다.47) 북한주민들은 북한의 보수체계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고 있다.

 

46) 서병림(39세, 19965.8. 귀순, 천성탄광노동자)의 증언. 47) 서병림의 증언.

북한에서는 현재 일한 만큼 보수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성심 이 강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고 인식하고 있다. 충성심의 열도에 따라 대가를 받는다. 충성심이란 남에게 아첨하기 잘하는 사람, 간부자녀들, 연줄이 많은 사람들의 몫이다.48) 북한에서는 간부에 대한 배급체계에 대해서도 정당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공급대상에 4호, 3호, 2호, 1호 대상으 로 구분되어 있는데 직급이 높을수록 높은 호수의 배급을 받는 다. 군급, 도급 이상에는 간부공급소(상점)가 따로 있어서 담배, 단과류, 육류, 기름 등 식료품 공급을 하는 간부공급소가 있다. 이러한 불평등한 분배에 대하여 사람들은 초급당비서 월하는 것 이 있다고 4호대상이냐하고 빈정댄다. 지도원 정도이면 출근해서 얼굴 한번 비치면 그만인데 월말에 가면 월급이 1.5배로 높다는 현실에 대하여 비판이 많다고 한다. “개새끼 출신성분이나 좋아 가지고 대학가고 지도원 되어 놀고 먹는다"고 노동자들이 불평한

다고 한다.49)

라. 가혹한 통제에 대한 공포와 원한

간부에 대한 적대감이 심화되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인은 지배계 급으로부터의 가혹한 통제에 대한 반감이다. 식량 등 생필품에

 

48) 박성철(1993.11 귀순,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노동자)의 증언.

49) 신명철(37세, 1%5.11.18 귀순, 보위부산하 황남 청단체신소 선로공)의 증언.

대한 보장은 안해주면서 정치적 통제만 세게 하기 때문에 불만이 많다고 한다.50)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정치적 반항을 예방하기 위하여 사찰기관에 의한 엄격한 감시와 처벌을 실시하고 있다. 주민들의 동태를 직접적으로 감시•통제하는 대표적 기관은 사회 안전부와 국가보위부이다. 주민통제에 있어서 다른 사회와 달리 특이한 점은 비밀감시망이 매우 엄격히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귀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주민 6명 모이면 그 증에서 3명은 정보원이라고 한다. 보위부 정보원 1명, 안전부 정보원 1명, 군당 정보원 1명이다. 귀순전에 북한에서 보위부정보원 노릇을 한 고 준에 의하면 보위부 정보원은 보름에 한 번, 한 달에 2번 정기적 으로 보고하도록 되어 있는데 건수로는 보통 한 달에 3~4건 보 고한다고 한다. 주로 발언에서 정치적 색채가 짙은 불만사례를 보고한다고 한다. 사람이 안보이는 곳, 인민학교 마당 등에서 몰 래 만나 서면으로 6하원칙에 따라 보고한다는 것이다. 가짜 자료 를 만들어서 허위보고를 하여 혐의가 없는 사람을 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위지도원들은 이것을 알면서도 건수 올리기 위하여 유도공작을 한다고 한다. 건수 많이 올려야 승급되기 때문이다51)

1991년 9월에 청진에 사는 조카의 집을 3박4일 동안 방문한 바 있는 재미교포 이은일의 증언은 북한주민들이 얼마나 철저한 감 시 속에 사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에 의하면 안방에서 조카

 

50) 최승찬(30세, 19%.7.11 귀순, 개성시 석비레 벽돌공장 자재인수원)의 증언.

51) 고준(30세, 1996.722 귀순, 평남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보 위부 정보원)의 증언.

와 대화도중 정치적인 질문을 했을 때 조카는 안방에서 대답하지 못하고 건넌방으로 데리고 가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더라는 것 이다. 집안 내에서 마저도 누가 듣고 있지 않나 하는 외부의 감 시를 의식한다는 것이다.

체코에서 유학하다가 1989년에 귀순한 조승군의 증언에 의하면 어른들로부터 밖에 나가면 말조심하고 특히 술먹고 말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북한에서 국가자연기술과학원 산 하 도시경영사업소에서 일하는 기술직 노동자로 있다가 1988년에 귀순한 어승일은 북한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곧 공포정치를 의미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북한사회는 겉으로는 새것털처럼 보드랍지만 속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우니 주의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그는 또 군대에서 같이 근무하던 한 동료가 행군 도중에 “쭉정이를 보니 올해도 또 흉년이구나"라고 말했다가 보 위지도원으로부터 “대중들이 많은 마당에서 주체농법을 헐뜯었 다"고 비판받고 군복무를 못하고 탄광으로 끌려간 사례가 있다고 증언하였다.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귀순한 최봉례는 사찰기관에 적발된 사람은 동, 반의 주민들이 집합한 장소에서 기관원으로부 터 추방명령을 공개적으로 하달받고 잡혀간다고 증언했다.

북한주민들은 “자기 등짝도 못믿는다"는 말을 흔히 한다고 한 다. 또한 방에 혼자 앉아서도 “김정일 나쁜 놈" 이라고 고함을 지 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그렇게 못할 정도로 심리적인 공포감  느낀다고 한다. 부모들이 자주 자식들에게 타이르는 말의 하 나는 밖에 나가서 말조심하라는 것이라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정치범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52)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복종은 유아기부터의 정치사 회화에 기인한 측면도 있으며, 정권초기 한국전쟁 이후의 급속한 경제복구 등의 정치적 업적도 작용했지만 사찰제도를 통한 강제 가 매우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자발적인 복 종과 존경에 기인한다면 현재 존재하는 그러한 양식의 철저한 주 민통제 및 사찰의 기구들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사찰기 관과 주민통제의 엄격성, 사회안전부, 국가보위부, 인민반, 5호담 당제 등에 관해서는 기존의 연구가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하기로 한다.

실제로 귀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주민들은 보위부 사람들 을 보면 심한 공포심을 느낀다고 한다. 보위부원들을 보면 오늘 은 또 누가 잡혀갈가 하는 공포심이 든다고 한다.53) 북한주민들의 사회심리적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어 주는 증거 가 대부분의 북한 귀순자들이 공통으로 증언하는 내용은 전쟁이 빨리 나서 이 힘든 세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북한주민들은 무거운 짐을 졌다고 생각하며 이 짐을 벗 어버리고 싶은 절망적인 심리상태에 있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사 이의 술좌석에서 흔히 하는 말이 전쟁이나 탁 터져라고 한다는

 

52) 고청송(1%3.6 귀순), 어승일(19883.31 귀순)의 증언.

53) 윤성철(36세, 19963.18 귀순, 원산시 양정사업소 소방대 대원)의 증언.

것이다. 전쟁이 나야 변화가 생긴다는 심리이다. 절망적인 심정, 현실에 대한 좌절감을 이렇게 표출한다. 전쟁이 나면 북한이 이 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주 민들은 가난 등 모든 것이 전쟁에 귀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전쟁이 나버려야 이판사판 결정된다는 것이다.54) 

3. 계급갈등의 내용

가. 피지배계급의 지배계급에 대한 적대감 확산

북한의 사회조직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기초해 있다. 사회정 치적 생명체론의 핵심적인 내용은 수령•당•대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생명을 가진 유기체적 통일체라는 것이다. 수령•당• 대중은 하나의 생명으로 결합되어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는 서로 도와주고 사랑하는 혁명 적 의리와 동지애의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개별적 사람들 의 생명의 중심이 뇌수인 것처럼 사회정치적 생명의 중심은 이 집단의 최고 뇌수인 수령이라는 것이다. 수령을 사회정치적 집단 의 최고뇌수라고 하는 것은 수령이 바로 이 생명체의 생명활동을

 

54) 신명철(37세, 199511.18 귀순, 보위부산하 황남 청단체신소 선로공), 최 세웅(34세, 1995.1212 귀순, 북한 대성총국 유럽지사 외환딜러), 최동철 (30세, 199512.12 귀순, 415담배농장 노동자)의 증언 

통일적으로 경험하는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본다.黨은 수령을 중 심으로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집된 인민대중의 핵심부대로 서 자주적인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은 여기서 당조직과黨이 영도하는 사회정치적 조직의 한 성 원으로서 조직사상생활에 적극 참가함으로써 사회정치적 생명체 의 중심인 수령과의 혈연적인 연결을 공고히 하고 자기의 사회정 치적 생명을 빛내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 8월호「근로 자」에 발표된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의 글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주 의 제도하에서는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단결과 협력 이 사회관계의 기본으로 되고 있으며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적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 집단주의적 원칙에 기초한 사람들 사이의 동지적 협조, 특 히 창조력을 더욱 높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주체의 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투쟁혁명에서 자기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게 하 는 담보로 된다.

그러나 북한에서 간부와 비간부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불만투성이고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은 내 리누르기만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간부계급에 대하 여 거의가 불만이다.55) 북한에서는 이제 의식이 깬 사람 많다. 북한에서 의식이 깬 사 람이란 체제문제의 본질이 간부의 횡포와 부정부패 문제라고 인 식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무식한 사람은 미국놈이 원수라고 생각 하지만 의식이 있는 사람의 경우 체제문제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 는 것이 간부의 문제라는 것이다. 북한주민들은 북한을 간부세상 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간부와 비간부의 심한 불평등에 대하여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간부입만 입이고 우리입은 입 아니 냐, 간부 아니면 죽어야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고 한다. 간부 와 비교하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생기는 불만이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56) 북한주민들은 죽는 것은 백성들 밖에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당간부 안전원 보위부원들은 잘먹고 잘 살지만 백성들은 죽는다 는 것이다. 간부, 안전원, 군인 등 정권을 잡은 사람에게만 식량 배급을 준다는 것이다. 밖에서는 말은 잘 못하고 집안사람끼리는

“죽는 놈은 노동자 밖에 없다"고 말한다고 한다.

함남 청단군 출신 귀순자의 증언에 의하면 함남 청단군의 경우 만 보아도 간부들은 필요한 물건을 무엇이든지 어느 때든지 구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은 무상이거나 값싸게 구한다고 한다. 음식은

 

55) 정갑렬(46세, 19%.5.31 귀순, 문화예술부 메아리 음향사 음향연구소장), 박성철 (1993.11 귀순,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노동자)의 증언.

56) 고준(30세, 1996.722 귀순, 평남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보 위부 정보원)의 증언.

무상으로 먹고 물건은 국정가격으로 싸게 산다는 것이다. 또한 부정부패하여 뇌물 많이 먹는 등 간부는 “악질적인 것"으로 인식 하고 있다고 한다.57)  북한주민들에게 간부는 매우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일반주민들은 간부들을 부정부패의 화신, 큰 놈은 크게 해먹고 적은 놈은 작게 해먹으며 뇌물 없이는 아무것도 안해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당의 노선과 사상과는 달리 북한에서 간부들은 자기욕심 채우는데만 급급한 부류로 인식되고 있다. 고위간부들 의 부정부패가 심하여 인민들의 생활이 이 모양이 되었다고 생각 하였다. 간부들은 팬티까지 외제를 입으면서 인민들은 죽으라는 것이냐 아니면 살라는 것이냐라고 불평을 한다.58) 따라서 북한주민들은 간부에 대한 적대감, 울분이 많다. 북한에 서 김일성, 김정일에게는 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간부들에게는 노 골적으로 욕하지 않으나 당간부, 안전부, 보위부원에 대한 백성들 의 원성이 높다. 북한에서 간부층은 주민들의 원한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높은 간부보다 일상네서 접하는 중간간부들에 대한 적대 감이 더 많다고 한다. 사람들 모여 앉으면 간부층 욕하는 것이 일상적이라고 한다. 온갖 쌍스런 욕을 다한다고 한다. “앉아서 놀

 

57) 신명철(37세, 199511.18 귀순, 보위부산하 황남 청단체신소 선로공)의 즈어

58) 차성근(29세, 1996.1% 귀순, 잠비아 주재 북한공작원), 진광호(29세, 19946.16 귀순, 인민무력부보위대학 온천수산기지 운전八b, 차성근(29 세, 1996.1% 귀순, 잠비아 주재 북한대사관 공작원), 정갑렬(46세, 1996.531 귀순, 문화예술부 메아리 음향사 음향연구소장)의 증언.

고 먹는 것들, 인민들 피나 빨아먹는 놈들, 뭐하나 해결하지고 해 도 뇌물, 뭐하나 승낙받자고 해도 뇌물" 등의 내용이다.59) 북한귀순자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하는 증언의 하나는 전쟁이 나면 군관과 안전원, 간부부터 쏴죽이겠다는 것이다. 특히 안전원 에 대한 원한이 크다고 한다. 북한의 사회질서가 파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원에게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안전 원들은 이들을 잡아놓고 엄포놓고 띧어 먹는다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안전원부터 쏴죽이겠다고 벼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전쟁 만 나면 두고보자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60) 북한주민들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북한의 간부들은 전쟁이 나 면 총구가 내부로 지향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귀순자들은 북한에서 민중봉기가 나면 바로 무력으로 진 압할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북한주민들이 당간부, 안전원, 보 위부원의 집을 먼저 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61) 일상생활에서도 간부들에 대한 적대감이 표출된다고 한다. 시당 간부들에게 대들고 싸움한다고 한다. 구타만 안하면 말로 싸움하 는 일은 별문제가 없다고 한다. 극장같은 공공장소에서 노동자들

 

59) 김영국(22세, 1996.225 귀순, 평북 철산군 자동차운전학교 학생, 장사) 의 증언.

60) 정갑렬(46세, 19%.5.31 귀순, 문화예술부 메아리 음향사 음향연구소장), 진광호(29세, 1994.616 귀순, 인민무력부보위대학 온천수산기지 운전久D, 이해영(34세, 19963.18 귀순, 시베리아 석탄연합7기업소 노동자), 최승찬 (30세, 1%6.7.11 귀순, 개성시 석비레 벽돌공장 자재인수원), 신명철(37세, 1995.11.18 귀순, 보위부산하 황남 청단체신소 선로공)의 증언.

61) 최세응(34세, 199512.12 귀순, 북한 대성총국 유럽지사 외환딜러)의 증언.

이 간부로 보이는 사람들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 달겨들 정도로 간부에 대한 적대감이 많다고 한다.62) 보위부, 안전부 사람들은 “똥집이 둘"이라고 생각한다. 별종이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 한 안전부원을 건데기, 또는 택관이라고 비꼬아 부른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요새」라는 영화에서 일본 순사에 고자질하는 정보 원의 이름이 택관이었는데 그 영화가 나은 이후로 세포비서 등 당간부를 택관이라고 부른다고 한다.63) 군당간부, 안전부 요원 중에서 몰래 맞아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원한 가진 사람은 밤에 숨어 있다가 간부들을 죽이기도 한 다고 한다. 야간에 안전부 요원에 대한 임꺽정 도리깨 사건이 많 다는 것이다. 양덕군 분주소 소장이 밤에 자전거 타고 가다가 공 병국 군인 세명에게 팬티만 남고 발가 벗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안전부원들이 복장을 변장하여 유도하여 체포하기도 한다64)

나. '양반-상놈'의 갈등구도

주목할만 사실은 북한주민들이 간부와 비간부의 관계를 이조시 대의 양반 상놈의 구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사람들

 

62) 차성근(29세, 1996.1% 귀순, 잠비아 주재 북한공작원)의 증언.

63) 이철수(41세, 1994.7 귀순, 객화차대 물자조달원), 고준(30세, 1996.722 귀순, 평남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보위부 정보원), 최동철 (30세, 1995.1212 귀순, 415담배농장 노동자)의 증언.

64) 최승찬(30세, 1996.711 귀순, 개성시 석비레 벽돌공장 자재인수원)의 증언. 은 요즘 양반과 상놈,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라는 이분법 적 표현을 많이 쓴다.65) 북한주민들은 “양반 상놈 차이가 너무 심하다, 우리 상놈들 •••, 우리 천민들 •••" 이라는 말을 자주 쓴 다고 한다. “네놈들은 양반이고 우리는 상놈이다, 네몸들은 택관 이 아니냐” 라고 적대시한다고 한다.66) 그러한 의미에서 북한은 신분사회(status group society)이다. 북한에서 “제비는 제비끼 리, 까치는 까치끼리 논다는 북한 속담이 유행한다는 것이다.67) 양반-상놈의 갈등과 관련하여 흥미있는 사실은 북한 당국이 북 한사회의 계급갈등 문제를 호도하기 위하여 정치적 홍보용으로 1988-1989년에「림꺽정」이라는 영화를68) 제작했는데 이를 최근에 상영금지 했다는 사실이다.69) 북한은 이 영화를 “16세기 봉건적 착취제도와 신분제도가 빚어 낸 엄중한 사회형편과 그 과정에서 싹트고 자란 인민대중의 항거 의식을 보여주기 위하여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70)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양반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수 없어 떨쳐나선

 

65) 윤성철(36세, 1996.3.18귀순, 원산시 양정사업소 소방대 대원)의 증언.

66) 정갑렬(46세, 19%.5.31 귀순, 문화예술부 메아리 음향사 음향연구소장). 최동철(30세, 1995.12412 귀순, 415담배농장 노동자)의 증언.

67) 이전국(30세, 19965.8 귀순, 외화벌이 사업소 과장)의 증언.

68) 영화「림꺽정」(각색 김세륜, 연출 장영복, 주연 최창수)은 1948년에 월 북한洪命熹(1888~1%8)가 1928년 11월부터 12년간 조선일보에 연재 한 소설「임꺽정」을 북한이 1988-1989년에 5부작으로 제작한 것이다 1989년 평양청년축전기간에도 상영되었다.

69) 신명철(37세, 1995.11.18 귀순, 보위부산하 황남 청단체신소 선로공)의

70)『예술영화」(1988년 5월호).

농민들이 비록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 많은 세상을 저주하면서 들판의 조약돌 밑에 영혼이 되어 묻혔지만 먼 훗날까지 양반 상 놈간의 싸움은 계속되어 계급적 원수들에게는 마지막까지 철저하 라는 피의 교훈을 남겼다"는71) 강한 메시지를 주면서 이조시대 중기의 양반과 상놈의 갈등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연출하였다.

이 영화는 북한 주민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 영화의 오락성 보다는 영화의 주제가 현재 북한의 간부와 인민대 중간의 갈등 상황을 잘 반영하는 영화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 는 것이다. 임꺽정 영화에 나오는 조선사회의 계급제도가 북한 사회와 유사하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영화에 나오는 주제가를 자신들의 정서를 대 변하는 노래라고 생각하여 즐겨 부르며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 다는 것이다. 귀순자 윤성철은 영화 임꺽정에서 상놈이 양반에 당하는 내용에 대하여 “우리 신세가 이 신세구나 하는 심정에서 처량한 마음을 임꺽정 노래로 표현한다”고 한다. 오늘날 북한의 계급사회를 빗대어 부른다는 것이다. 양반놈들이라는 말을 간부 놈들이라는 말로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고) 김영국은 북한의 젊은이들이 임꺽정 노래를 혼자서 기타치면서 부른다고 한다. 불만 있을 때 혼자서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73)

 

71) 영화「림꺽정』의 결론부분에 나오는 내레이션에서 인용.

72) 윤성철(36세, 19963.18 귀순, 원산시 양정사업소 소방대 대원)의 증언.

73) 김영국(22세, 19962.25 귀순, 평북 철산군 자동차우전학교 학생, 장사) 의 증언.

최동철은 임꺽정에 나오는 노래 “구천에 사무쳤네 •••" 자신의 심 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노래라고 공감하기 때문에 자주 부른다고

증언하였다.74) 최승찬은 가사를 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임꺽정 노래에 대하 여 심정적으로 동조하며 북한의 현재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다고 증언하였다.75) 이러한 역효과 때문에 최근에 김정일이 임꺽정 영화와 임꺽정 노래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임꺽정 영화 주제곡은 다음과 같다.

제1부 구천에 사무쳤네 백성들 원한 소리 피눈물 고이었네 억울한 이세상 산천아 말해다오 부모처자 빼앗기고 백성의 등뼈갉는 이 세상 어이살리

제2부 1절 무거운 짐졌다고 발부리만 보지말고 앞길을 내다보고 이 세상 살아가세 길가에 들밑에도 호걸들이 묻혔으니 내한번 실수하면 이술로 사라지리

제2부 2절 칼집에 꽂힌 장검 보습을 벼리어서 사래긴 논과 받을 갈았으면 좋으련만

 

74) 최동철(30세, 1995.1212 귀순, 415담배농장 노동자)의 증언.

75) 최승찬(30세, 19%.7.11 귀순, 개성시 석비레 벽돌공장 자재인수원)의 증언.  나서라 의형제여 악한 무리 쓸어내고 가슴에 쌓인 원한 장부답게 풀어보자

제3부 마음어진 백성들이 어이 칼을 들었나 양반놈과 한 하늘이고 정녕 살 수 없었네 피맺힌 사연없다면 이 길을 누가 나서랴 피맺힌 사연없다면 모진 마음 누가 먹어라

제4부 알아다오 산천초목아 원통하다 이 마음 용서하라 백성들이여 못이룬 이 내 큰 뜻을 언제나 그 날 오려나 양반놈 없는 새 세상 언제나 그 날 오려나 맘편히 사는 새 세상

제5부 대장부로 세상 태어나 백성구제 못하면 어느 누가 후에라도 너희의 뜻을 따르랴 사나이 천변 죽어도 사무친 원한 풀리라 사나이 천번 죽어도 양반놈 때려 없애리

4. 계급갈등의 표출양식

위에서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에 대하여 적대감을 느끼고 있다 는 사실이 분석되었다. 북한의 경우 적대적 감정이 대체로 내면 적인 감정의 형태로 억압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들어 소극 적인 형태로 또는 간접적인 형태로 겉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적 대감의 표출양식을 소극적 체제저항과 일상생활형의 저항의 측면 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가. 소극적 체제저항의 증가: 삐라 및 낙서

북한에서 불만의 표출은 물론 조심스럽다. 가족일, 식량문제, 직 업문제 등 비정치적 문제에 한정하여 불만을 표출한다. 자칫 잘 못하여 정치적 불만으로 오해를 받을 경우에는 엄청난 화를 당하 기 때문에 대체로 비정치적인 형태나 왜곡된 형태로 표출되는 것

이 보통이다.76)

체제저항은 일부의 사람에게 한정되어 표출되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은 잘 모른다. 따라서 많은 귀순자들은 북한에서 나타나고 있는 삐라나 낙서와 같은 형태의 체제저항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보위부에 인맥이 있는 사람들은 삐라, 낙서 등의 소극적인 형태의 반체제 행위가 빈번히 나타나는 것으로 증언하   있다. 3촌이 보위부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삼촌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차성근에 의하면 삐라 및 낙서 사건도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두주일에 한번 꼴로 생긴다고 들었다고 한다.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이었던 현성일도 비슷한 증언

 

76) 박성철(1993.11 귀순,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노동자)의 증언.

을 하였다. 그에 의하면 자신이 1993년 잠비아 대사관으로 부임 할 때 기차를 타고 모스코바까지 가는 9일 동안 동행한 보위부원 을 통하여 많은 정보를 들었다고 한다. 그 보위부원은 현성일에 게 북한에서 매일같이 삐라, 투서, 대자보사건이 발생한다고 전언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빈발하는 사건들 때문에 보위부원들은 어 느 한 밤도 편안히 자지 못한다고 한다. 보위부원들이 이렇게 고 달프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너희 외교관들이 잘 알아주어야 한다 고 현성일에게 요청했다고 한다고)  보위부 통신관리수로 일했기 때문에 보위부원들로부터 정보를 전해듣곤 했다는 신명철에 의하면 자기도 삐라를 여러번 보았다 고 한다. 삐라의 내용은 김정일을 타도하라는 구호, 김정일의 부 화방당한 생활을 알리는 내용, 우리가 배고픈 설움은 김정일이 정치를 잘못하기 때문이라는 등의 내용이라고 한다. 또한 양강도 국경 경비대 부소대장 (상사)로 근무하던 사람이 89년 평축이 끝 나자 붙잡혔던 사실이 있으며 간부들의 부정부패에 불만하고 이 사회를 저주하는 단체가 있었는데 1987년 10월 발각되어 14가구 가 평북 삭주로 추방되었다고 한다고) 소조활동 시절 통보자료에서 삐라 살포에 관한 내용을 읽었다 는 사람도 있다. 김광일에 의하면 김일성대학 학생이 대안의 사 업체계를 비판하는 편지를 김일성에게 올렸다는 것과 13차 평축

 

77) 현성일(37세, 1996.130 귀순,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의 증언.

78) 신명철(37세, 199511.18 귀순, 보위부산하 황남 청단체신소 선로공)의 때에 김일성 김정일 김부자 독재를 반대하는 삐라 살포에 관한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79) 사회가 변화하고 주민들의 의식이 깨고 있다는 징후들이다. 일 상생활에서 표출되는 예를 들어보자. 체제우월성을 늘어놓는 사 상교양 학습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 아새끼들 밤낮 (체제) 자랑 만 하고 강냉이는 왜 못주나?" 라고 빈정댄다고 한다. 농민들은 “농업위원회 새끼들 전기도 제대로 못주면서 뭐하고 있나?"라고 불만을 표출한다고 한다.80) 현실에 대한 불만도 간접적인 방법으로 표출된다. 가령, 북한의 혁명가를 부르되 가사를 살짝 바꾸어서 부르는 등의 방법이 사용 되고 있다고 한다.

전화의 그날 옛전우들이 나를 보고 물었네 그 때 처럼 우리가 살고 (먹고) 있는가 그 때 처럼 우리가 살고(놀고) 있는가 낙동강을 넘으며 피눈물을 홀리던 그 때 그 나날들 처럼

이 노래를 “그 때처럼 우리가 먹고 있는가?, 그 때처럼 우리가 놀고 있는가?”라고 원래의 노래가사를 왜곡하여 부르고 있다고

 

79) 김광일(39세, 1995.923 귀순, 함북 도농촌경리위원회 지도원)의 증언.

80) 최주활(46세, 19959.25 귀순, 인민무력부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 상좌) 의 증언.

한다81)

이처럼 북한에서 비공식적 차원에서 체제비판 세력은 있을 수 있으나, 조직적 세력은 없다. 조직적 세력을 기도한다는 것은 무 모한 짓이기 때문이다. 갈등은 주로 내면으로 억압되어 있다.

나. 일상생활형의 저항의 증가:

국가재산에 대한 절취, 범죄 및 일탈의 증가

북한에서 간부계급과 체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는 방식의 하 나는 사회일탈현상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당과 수령에 충성해 야 보상이 없으며 체제의 정당성이 실추된 결과이다. 1980년대 들어서 장사꾼 많이 생기고, 국가의 법과 어긋나는 일이 많이 생 겨나고 의식상태, 남녀관계 등 모든 면에서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귀순자들에 의하면 자신들도 국가법에서 볼 때 나쁜일 많 이 하였다고 한다. 가령, 직장을 거의 안나/갔지만 나간 것으로 되 어 있는데 간부들이 뇌물먹고 다 묵인하여 주었기 때문이다.82) 북한에서 확산되는 사회일탈 현상 중에서 가중 주목할 것은 국 가재산에 대한 좀도둑질 또는 절취행위이다. 북한에서 식량과 생 필품의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급증한 사회일탈 현상의 하나이다.

 

81) 오명선(33세, 1995.327 귀순, 신의주 일용품협동조합 자재인수원)의 증언.

82) 오명선(召세, 1995.327 귀순, 신의주 일용품협등조합 자재인수원)의 증언. 자기직위를 이용하여 개인의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이처럼 국가재산 훔쳐먹기가 성행하는 이유는 월급과 배급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의 증가는 공익에 대한 도덕적 타락을 증명하는 것이 며 동시에 전반적 결핍에 대한 항의의 표현으로서 나타난 간접적 인 공격성 또는 국가의 파손을 의미한다. 국가 재산에 대한 범행 은 거의 대중현상이 되었다. 경제적 결핍상황의 결과 결핍을 보 상받기 위한 집단적인 말없는 공모라고 볼 수 있다. 좀도둑질은 체제에 대한 항의밸브이기도 하다.

북한주민들은 공장 제품을 훔쳐 먹는 것을 도적질이라 생각하 지 않는다. 개인물건을 훔치면 도둑이지만 국가물건을 훔치는 것 은 도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국가배급 대신 나 스스로 가 져가는 것이지 결코 도둑질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 다. 국가가 줄때 까지 기다리지 말고 알아서 가져가는 것이 현명 하다는 것이다.83) 또한 주민들은 간부들이 더 많이 훔쳐먹는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북한귀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주민들은 이제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받기를 기대하지도 않으며 국가로부터 받은 월급을 돈으로 치지도 않는다고 한다. 모두 훔쳐먹거나 장 사해서 살며 장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굶어죽는다고 한다.84)

 

83)「內外通信」週刊版, 제1019호 (1996.822).

84) 최승찬(30세, 1뚀6.7.11 귀순, 개성시 석비레 벽돌공장 자재인수원)의 증언. 최근 북한에는 범죄도 매우 많다고 한다. 기차안 등에서 도둑질 및 강도질이 많아졌다고 한다.85) 범죄가 너무 많아서 밤길을 혼 자 못다닌다고 한다. 임꺽정 영화에 나오는 쇠도리깨 장수 유형 의 강도가 많아 그러한 유형의 강도를 만나면 임꺽정 쇠도리깨사 건이 났다고 한다. 밤에 다니기가 어렵다고 증언하는 귀순자 들 이 많다. 안전원, 군관들도 밤에 혼자 못다닐 정도라고 한다.86) 귀순자들의 이러한 증언 내용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근거가 최근 김정일의 연설문에서 일부 나타난다.

사회주의적 생활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인민대중을 온갖 범죄 와 사회악의 희생물로 만든 범죄행위이다. 사회주의적 생활질 서가 파괴된 나라들에서는 무정부 상태가 조성되고 각종 범죄 와 사회악이 판을 치게 되었으며 온갖 사기협잡군과 범죄자들 이 제세상을 만난 것처럼 날치게 되었다.87)

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반감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1994년경부터는 암시장 단속도 제대로 못

 

85) 최승찬(30세, 19%.7.11 귀순, 개성시 석비래 벽돌공장 자재인수원)의 증언.

86) 고준(30세, 1996.722 귀순, 평남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보 위부 정보원), 김광일(39세, 1995.923 귀순, 함북 도농촌경리위원회 지 도원)의 증언.

87) 김정일,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근로자」, 제3호 (1993).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암시장 단속에 대항하여 주민들이 시위를 하다시피 저항한다고 한다. 장사하는 물건 뼷어가면 차앞에 드 러눕는 등의 형태로 완강히 저항하기 때문에 단속이 완화되었다 고 한다.88) 안전원이 암시장 단속나갔다가 들은 이야기가 우스개 소리로 확산되기도 한다고 한다.

안전원: 왜 비사회주의 해.

노인: 당신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비사회주의 해 서라도 사회주의 지켜야 해. 먹고 살아야 제도를 지킬 것 아닌가?89)

간부들이 작업을 지시했는데 목표달성을 못하면 “하기 싫어서 못했나, 배고프고 자재가 없어서 못했지. 다른 공장에서는 월급받 는데 왜 우리 공장 간부는 처신을 잘 못하여 은행에서 월급도 못 타오느냐' 0 자기 이익을 둘러싸고 문제제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90)

 간부들은 밑의 이러한 사정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밑으 로 내리 지시를 한다고 한다. “기계가 20바뀌 밖에 못돌아가는

 

88) 고준(30세, 1996.722 귀순, 평남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보 위부 정보원)의 증언.

89) 최세웅(34세, 1995.1212 귀순, 북한 대성총국 유럽지사 외환딜러)의 증언. 오명선(33세, 1995.327 신의주 일용품협동조합 자재인수원)의 증언.

것을 알면서도 30바뀌 돌리도록 내리 먹인다는 것이다. “간부들 이 내리먹이면 반장들이 들이댄다"고 한다. 원료, 인원, 전기 사 정이 이런데 어떻게 생산하느냐고 항의하면 간부들은 대주면 좋 고 안대주면 자력갱생한다는 정신으로 해야 한다고 반박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노동자들의 반응은 “먹여놓고 일 시켜야지, 다 는 못주어도 주는 날짜에 주어야지”라고 반박한다고 한다.91)

5. 지배계급의 대응

피지배계급의 이러한 적대감, 저항적 행위에 대하여 북한의 지 배계급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방향의 대응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로는 이데올로기적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가. 감시와 처벌의 강화

주민들의 불만 표출과 일탈행위에 대하여 집배층은 감시와 처 벌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북한의 귀순자들은 김일 성 사망 이후 법이 세어지고, 총살도 많아지고, 배급이 안되고,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학습 등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있다고

 

윤성절(36세, 19%.3.18 원산시 양정사업소 소방대 대원)의 증언.

말한다. 불만을 표출하다가 잡혀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한 해가 다르게 잡혀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북 한 일반 노동자의 60~70%는 교화소92) 한 번씩은 갔다온 사람들 이라고 한다.93) 1980년대 후반들어서 주민통제에 질적인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삼촌이 보위부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삼촌으로 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차성근 씨에 의하면 세상이 어수선 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 정일이 더 조이라고 지시한 이후 닥치는 대로 잡아가둔다는 것이

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말을 못할 정도이며, 보위부원들도 이러다 가는 어떻게 되겠냐고 황당해한다고 한다. 그러나, 보위부원들은 “우리는 손에 피를 묻힌 사람들이니 체제무너지면 우리도 죽는 다”고 생각하고 체제유지에 안간힘을 다한다고 한다. 대체로 힘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당한다고 한다. 높은 사람들은 정치범으로 걸려도 살아남는데 애매한 사람만 당한다는 것이다.94) 북한은 사회질서의 문란에 대응하기 위하여 충격적 요법을 많 이 사용하고 있다. 군중들을 모아놓고 즉결처형을 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개성의 경우만 해도 1995년 12월에서 이듬해 1월 사이에 15명이 공개 총살되었다고 한다. 소 잡아먹은 사람 3인,

 

92) 사회안전부 산하 통제 및 처벌 밥법은 감옥, 교화소 (관리소), 강제노동 (혁명화), 무보수 등의 순으로 구분된다.

93) 고준(30세, 1996.722 귀순, 평남양덕군 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 보 위부 정보원)의 증언.

차성근(29세, 1996.1% 잠비아 주재 북한공작원)의 증언. 양정(쌀도둑)으로 사리사욕 채운 3인, 장마당에서 술 뺏어먹은 사 람 3인 등 비사회주의 짓하다가 걸린 사람들이라고 한다.95)  평양에서는 중구역 등 중심가를 제외하고는 작년 한 해동안 4 ~5차례 공개처형이 실시되었다고 한다. 작년 7월 대동강구역 건 설건재대학 뒤편에서 주민 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살인 및 강도 협의로 20대의 처녀와 부부 등 3명이 공개총살되었다고 한다.%)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감시체계가 거물망처럼 매우 촘촘하다고 한다. 안전부, 보위부원이 너무 많다. 북한 사람들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생각하여 언행에 매우 조심을 한다고 한다. 직장동료 속에서도 감시자가 있어 말이나 행동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통제된다고 한다. 자기 등도 남이 나 마찬가지라고 인식하고 있다. 행동수상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기 때문에 감히 사회제도가 나쁘다는 말을 못한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귀순자들은 북한체제가 유지되는 원인은 독재강 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통제가 매우 심하다. 3명 이상 앉아 서 술먹지 못하게 한다. 특히 말조심을 많이 한다. 짧은 혀 때문 에 긴 모가지 달아나게 하지 말라고 서로 경고한다고 한다. 친구 끼리 모여 놀 때도 말조심을 해야한다고 한다. 남이 정치적 발언 하면 나를 떠보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대개는 동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처는 남으로 생각한다고 증언하는 귀순자도 많다. 부

 

95) 최승찬(%서둮 1%6.7.11 귀순, 개성시 석비레 벽돌공장 자재인수원)의 증언. 장해성(51세, 19965.31 북한 중앙방송위원회 소속 작가)의 증언.

 

부싸움 일어나면 과거의 발언을 문제삼아 보위부에 신고하기 때 문에 처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97) 그러나 결과적으로 엄한 통제의 결과 민심이 나쁘기 때문에 부분적인 유화책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2년부터 말 반동은 잡지 말라고 지시하였고 한다.98) 공개총살을 하는 등 엄 한 통제를 하지만 완전무결한 통제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이동을 제한했으나 비법적 이동은 많이 증가하고 있다. 주민통제 는 옛보다 강화되었으나 융화는 더 용이하다고 한다. 오히려 눈 감아 주는 것이 옛날보다 더 많다고 한다. 증명서 없이 쌀 구하 러 여행하는 것도 용인하여 준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것은 융화되지만, 정치적인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99)

나. 간부들의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에 대한 단속

인민대중들에 대한 감시와 처벌에 병행하여 북한은 간부들의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현재의 불평등과 간부들의 부정부패, 세도, 관료

 

97) 정갑렬(46세, 1996.5. 31귀순, 문화예술부 메아리 음향사 음향연구소장), 최승찬(30세, 19%.7.11 귀순, 개성시 석비레 벽돌공장 자재인수원), 이 해영(34세, 19%.3.18 귀순, 시베리아 석탄연합7기업소 노동자)의 증언.

98) 최세웅(34세, 1995.1212 귀순, 북한 대성총국 유럽지사 외환딜러)의 증언.

99) 신명철(37세, 1995.11.18 귀순, 보위부산하 황남 청단체신소 선로공), 오 명선(33세, 1995.327 귀순, 신의주 일용품협동조합 자재인수원)의 증언.

주의가 만연하는 현상에 대하여 “사회주의 사회에 낡은 사회로부 터 물려받은 유물이 일정한 역사적 기간 남아있는 것은 과도적 현상”이라고 변명을 하고 있다.100) 그러면서도 간부들의 부정부패 문제는 척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당과 국가의 모든 정 책이 간부들을 통해서 집행되는 것만큼 당과 국가가 아무리 좋은 정치를 실시해도 간부들이 세도와 관료주의를 부리면 그 것이 제대로 구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 해독성은 당을 대중과 분리시키고 망하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위대한 장 군님이 지적하신 바와 같이 간부들이 득세를 부리고 관료행세 를 하며 부정부패를 일삼으면 사회주의 집권당은 대중의 지지 와 신뢰를 잃게 되며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당은 자기의 존재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101)

북한의 공식문헌에서 간부들의 관료주의, 세도, 부정부패 문제 는 어제 오늘에 지적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 로 최고지도자의 공식담화에서 지적되고 있다. 이 사실이 시사하 는 것은 북한당국이 이 문제들을 척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 만 실제로는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 김정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로동신문」, 199411.1.

101) 김정일 노작 강좌 135회,「평양방송」(1996.11.4일자).

다. 계급노선으로부터 군중노선으로 이행 선전

북한은 일반주민들을 계급적 출신성분에 따라 분류하여 차별적 으로 통치하는 정책들이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이 크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좌경적 과오, 즉 계급 정책이 수반하는 문제점을 줄이기 위하여 북한은 군중노선과의 균형을 취하고자 노력하였다. 북한은 특히 김일성 사후 “사회주 의 내부에서 생긴 배신자의 문제"를 크게 우려하고 과거의 계급 노선에 기초한 사회통합의 정책 대신에 군중노선을 강조하고 있 다. 즉, 한편으로는 과거의 계급적 차이 없이 누구든지 현재의 사 상의식을 중심으로 평가하여 포용하겠다는 인덕정치, 다른 한편 으로는 계급투쟁의 무기로 간주되었던 당을 대중적 당으로 전환 하는 대중적 당건설론으로 사회통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인덕정치 및 광폭정치

사회통합의 전략으로서 계급노선에서 군중노선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사례가 인덕정치 및 광폭정치의 사례이다. 인덕정치 및 광폭정치는 또한 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리더쉽의 특 징을 새롭게 부각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이념이기도 하다. 인 덕정치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소련의 붕괴한 이후인 1993년 1월 28일자「로동신문』에서 “인덕 정치가 실시되는 사회주의 만세"라는 기사에서부터였으며, 본격 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김일성 사망 직후인 8월 27일「김 정일 노작 발표 20주년 중양보고대회」에서 행한 계응태의 보고문 이다. 북한은 “친에하는 김정일 동지께서 1980년대에 당의 군중 노선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하여 새롭게 취하신 혁명적 조치는 각 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을 당의 두리에 더욱 튼튼히 묶어 세우는데 서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로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인덕정치 및 광폭정치의 본질은 지금까지의 계급노선에 기초한 출신성분별 차별정책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노예문서를 불사르는 것과 같은 의미로까지 비유를 하면서 계급노선의 폐지를 강조하 고 있는 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는 언제나 사람들을 출신성분이나 과거경력이 아니라 본인의 현재의 사상을 기본으로 평가하여 야 한다고 하시며 우리 당을 믿고 따라오는 사람이라면 가정 주위 환경이나 사회정치생활경위가 어떠하든 관계없이 사랑의 한품에 안아 따뜻이 보살펴주고 계신다. 이 절대적인 믿음과 포용력이 있기에 우리 나라에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민생 단〉문서보따리를 불사른 것과 같으며 해방후 토지개혁을 한 것에 못지 않는 로동당시대의 위대한 인간사랑의 서사시도 엮 어질 수 있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고귀한 정치적 생명을 받아 안고 참된 삶의 길로 걸어나가고 있는 것이다.102)

아래의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은 적대계급의 과오는 본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적들에게 일시적으로 이용당했을 뿐이 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포용하고 용서하고 있는 것처럼 발표하고 있다.

복잡한 군중이라고 할때에는 가정주위 환경이나 지난날의 사 회정치 생활 경위가 복잡한 사람들을 이루는 말입니다. ••• 복 잡한 군중의 대부분은 기본계급 출신으로서 지난날 계급의식 이 낮았던 탓으로 적들에게 일시적으로 이용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혁명의 대상이 아니라 동지이며, 일시적인 동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까지 같이 가야할 혁 명동지들입니다.103)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는 북한이 계급적 노선을 거의 폐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북한은 일부의 복잡군중을 포용하 여 입당시키고 직위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제한적인 숫자에서 사례를 만든 것이지 광범히 하게 실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인덕정치를 매우 숭고 한 이른적 체계로서 설명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실제 생활에서 경 험하는 현실에는 별 차이가 없다. 주민들은 여전히 엄격한 감시 와 통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계급적 처지와 토

 

102)「로동신문』, 19951.15.

103) “김정일 혁명력사강좌,"「평양방송』. 1994.1L5`

대는 참고로 하고 본인의 사상의식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 사회 주의 위업에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 것을 기본으로 당대렬을 꾸린 다”104)라는 말에서 보듯이 북한주민들은 여전히 정치적 성향에 대한 감시의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당의 개념변화: 전위당에서 대중적 당으로

북한은 사회통합의 전략으로서 인덕정치 및 광폭정치라는 개념 을 부각하는 외에 당의 개념을 과거의 노동계급 전위당에서 인민 대중의 대중적 당으로 이미지를 전환시키고자 하고 있다. 북한에 서 노동당은 분명히 소련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의 전위당의 성격을 갖는다. 레닌의 전위당이론에 의하면 인민대중은 스스로 를 노동계급으로 의식화시길 수가 없기 때문에 전위당이 필요하 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위당으로서의 당의 개념에 이제 변화가 나타나고 있 다. “지난 시기에는 당을 주로 계급투쟁의 무기로 보았습니다"105) 라는 김정일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에서 당의 역할은 계급 노선의 전위대로서 계급노선을 추진하는 인민에 대한 감시기구, 통제기구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김정일은 현재의 역사적 조건, 시 대적 상황은 노동계급의 당에서 전체 인민의 당으로 전환할 것을

 

104) 김정일,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105) “김정일 혁명력사강좌 164회,"「평양방송」, 19951.17.

요구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지난 시기에는 당을 일정한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고 옹호하는 계급적 정치조직으로, 계급투쟁의 무기로 보아왔다. 당은 일정 한 계급(노동계급)의 요구와 지향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계급의 선봉대”(전위당)이지만 당을 일정한 계급만을 위한 당 으로 건설하여서는 혁명적 당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수 없으며 광범한 인민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광범한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한 우리 시대의 역사적 조건은 로 동계급의 당을 전체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며 근로하는 모든 계 층의 선진분자들을 망라하는 대중적 당으로 건설할 것을 요구 하고 있다.106)

북한은 당의 개념을 대중적 당으로 부각하는 내용을 연일 언론 매체를 통하여 선전하고 있다. 주요 문건 하나를 예로 들면 1992 년 10월 10일 당창건기념일에 김정일의 명의로 발표된「혁명적 당 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에서는 당의 대중적 기반을 튼튼히 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였다.

노동계급의 당 건설과 활동에서 중요하게 나서는 문제는 당의 대중적 기반을 튼튼히 다지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당을 인민대

 

106) 김정일,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조선로동당창건 47돐에  음하여 집필한 론문,"「로동신문』` 1992.1010.

중의 이익의 대표자로서 대중속에 뿌리박는 것은 그 존재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대중의 지지를 떠나서는 노동계급의 당의 자기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107)

이러한 대중적 당으로의 이미지 변화는 체제의 위기 속에서 현 실의 문제와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언어적 유희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적인 정책 변화를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는 더 자세히 현실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북한주민이 경험하는 현실과 정치이 데올로기의 간극이 커질수록 북한주민이 느끼는 소외감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북한체제가 현재의 모순을 은폐하기 위하여 이데 을로기적인 동원을 강화하면 할수록 북한지도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라. 이데올로기 교육 강화: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주민들의 의식변화와 저항적 태도에 대하여 북한당국은 이데올 로기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어떠한 내용의 이데올로기 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북한은 사회주의 기초이론을 동원하여 사회주의가 본래- 조 쵸 1-0  제도라는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서 현실의 모순을 과도기적인 일탈 적 현상에 불과하며 제도 자체는 좋은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107) 위의 글.

 

실제로 북한 귀순자들의 대부분은 북한의 현재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면서도 제도는 좋은데 라는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은 흥미 로은 사실이다. 북한은 사상적으로 제도적으로는 아주 좋으나 현 실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108) 북한지도부는 사회주의가 착취와 압박, 사회적 불평등과 그 기 초에 놓여있는 사적 소유를 없애고 사회적 소유에 기초한 평등한 사회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만이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반영한 가장 진보적인 사상이며 사회주의 제도는 인민대중이 자 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는 가장 선진 적인 제로라고 본다.109)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북한은 인민대중들로 하여금 간부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기 보다는 북한 사회를 하나의 화목한 대가정 이라고 규정하고 그 속에서 일심단결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수령과 전사, 당과 인민이 일심단결되고 사람들이 친혈육과 같 이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며 하나의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정신도덕 분야에서 주체사상의 빛나  는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 하는 것입니다.110)

 

108) 차성근(29세, 1996.1% 귀순, 잠비아 주재 북한공작원)의 증언.

109) 김정일,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근로자」, 제3호 (1993).

존대하는 「로동신문」, 

또한 북한은 북한 사회를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규정하 고 계급적 대립을 지양하고 사랑과 믿음의 관계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회주의 제도가 서면 계급적 대립이 청산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대립과 불신의 관계로부터 사랑과 믿음의 관계로 전환 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사랑과 믿음이 사회적 집단과 그 성원들 사이, 사회의 개별적 성원들 사이에 꽃피어나며 그것은 수령과 전사들 사이에서 가장 숭고하게 발현된다. 수령과 전 사, 당과 인민이 사랑과 믿음으로 결합되고 온 사회가 하나의 사화젚츠L작-꼬명츠津전환되어 모든 사회 성원들이 사회정치 적 생명을 끝없이 빛내어 내가는 삶이 가장 값높고 아름다운 삶이며 그것을 실현한 사회가 가장 공고하고 생활력있는 사회 로 된다.111)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주로 육체적 생명을 주고받는 혈육의 관계라면 혁명가들 사이의 관계는 혁명의 한길에서 뜻을 같이 하고 생사운명을 같이하며 육체적 생명보다 더 귀중한 사회정 치적 생명을 빛내어 나가는 혁명동지들 사이의 관계입니다.112)

 

111) 김정일,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로동신문」, 199411.1. 존대하는 「로동신문」, 

집단과 조직을 이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당원과 근로자 들이 자기의 부모형제를 사랑하듯이 서로 아끼고 도와주는 관계 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자기의 부모형제들을 사랑하고 동지들을 사랑하며 서로 아끼고 도와주는 것으로부터 집단과 조직을 귀중히 여기고 국가와 사회재산을 애호관리하며 공중 도덕을 자각적으로 지키는데 이르기까지 사회관계와 사회생활 의 모든 분야에서 공산주의적 도덕규범을 잘 지켜 나가도록 꾸준히 교양하고 이끌어주어야 합니다.113)

이러한 내용들은 북한의 사상교육의 전형적 방법에 속하는 것 이다. 부정적인 내용을 들추어내어 비판하기 보다는 모범적 사례 를 발굴하여 따라배우기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사회갈등의 정 도가 미약할 경우는 이러한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경우에 이러한 방법이 계급간의 갈등을 해소 하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존대하는 『로동신문」, 

 

제V장 결 론 

지금까지의 분석에서 발견된 사실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북한사회의 계급구조와 계급정책에는 계급갈등을 촉발시 킬 수 있는 구조적 잠재성이 크다는 점이며, 둘째는, 그러한 잠재 적 갈등구조가 사회주의권 붕괴, 경제난 심화와 같은 위기적 상 황에서 부분적이나마 표면으로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사회에 계급갈등의 동인이 구조적으로 잠재해 있는 까닭 은 산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후의 계급정책 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의 사회주의건설의 역사는 숙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6년 토지개혁시 에 지주들은 토지는 물론 살던 집까지 몰수당하고 타 군으로 이 주하게 하였기 때문에 억을함을 참지못해 100만에 가까운 사람들 이 월남하였다. 1958년에 완료된 농업협동화, 상공업 국유화 과 정에서 성장한 부농들, 거상들이 모두 몰락하였고, 산업의 사회주 의적 개조에 대하여 불만의 소지가 있는 지식인들도 숙청되었다. 모든 사회계급이 거세된 상황에서 유일한 사회세력은 정치권력 집단이다. 그들이 다른 사회주의체제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신계급 또는 노멘클라투라와 동일하다. 사회주의가 약속한 최대 의 환상은 사적 소유제가 철폐되면 계급없는 사회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사회에서는 새로운 특권계급인 간부가 구시 대의 지배계급 이상의 착취계급으로서 군림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과거의 '청산된 계급' 들의 반항을 진압하기 위하여 계급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 기나긴 사회주의화 숙청의 과정에서 칼자루 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간부와 비간부 로 나뉘어졌다. 칼자루를 취지 못한 사람들은 동요계층이나 적대 계층으로 분류되어 차별을 당하고 있다. 북한에서 임하게 운용되 고 있는 감시와 처벌 제도의 존재이유가 무엇인가? 엄하게 감시 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저항할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서 북한사회에서 계급갈등이 심화된 요인을 세가지 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근원적인 요인은 경제난 때문이다. 북한 당국에서 선전하는 내용과 인민대중의 실제 생활간에 엄청난 괴 리가 있다. 이러한 모순때문에 북한체제 자체의 정당성이 실추되 고 있다. 둘째,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권력을 장악한 간부들이 휘 귀한 생필품을 독점하기 때문에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  이다. 셋째, 경제난 심화가 야기시킨 사회혼란 때문에 더욱 엄 혹한 사회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어 당국으로 부터 피해를 당한 사 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령•당•대중은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라고 선전되고 있는 북한에서 간부와 인민대중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당간부, 안 전부, 보위부원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이 높다. 북한귀순자들 대부 분이 공통적으로 하는 증언의 하나는 전쟁이 나면 안전원, 보위 부원, 당간부부터 쏴죽이겠다는 것이다. 특히 안전원에 대한 원한 이 크다고 한다. 매우 엄하게 다스리는 사회에서 안전원에게 걸 리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주민들은 이러한 적대감을 직간접적으로 정치적인 행동으 로 표출하고 있다. 주로 삐라나 낙서의 형태로 표출하고 있다. 또한 공공재산을 절취하는 행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행위의 증가는 공공질서에 있어서의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는 것 이며 전반적 결핍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간부와 인민대중 간의 갈등은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 놈의 갈등구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북한 주민들은 간부를 양 반, 자신들을 상놈 또는 천민으로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의 양반 과 상놈이 신분제하에서 태생으로 결정되었듯이 북한에서도 간부 와 비간부는 거의 태생으로 결정된다. 북한사회도 조선시대와 같 은 신분제 사회를 닮고 있다. 계급적 출신성분이 입당 및 대학입  사회적 선발의 기준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인맥 또 는 가족적 배경이 출신성분과 사상으로 위장되고 있다. 따라서 가족적 배경은 지배계급을 재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이다. 간 부의 자식은 간부로, 노동자의 자식은 노동자로, 양반 자식은 양 반으로, 쌍놈 자식은 쌍놈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권력의 정당 성 문제는 계급질서의 정당성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북한 사회에서 계급간의 구분이 전통사회의 신분제에 가 까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북한 계급갈등의 중요한 요인이 다.

북한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의 핵심적인 축은 간부와 일반대중 간의 계급적 갈등이라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의 하나이다. 북한사 회에서 일반주민들의 불만이 주로 간부충 특히 중간간부에 대한 적대감의 차원으로 표출되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북한문제의 본 질이 간부들의 행위 자체보다는 그것을 결정하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 있다는 사실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러한 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은 최고지도부에 있다는 인식 도 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의 지식인층을 제외 한 일반주민들은 오히려 사회주의 제도는 좋고 사회주의 사상은 좋은 데 중간간부들의 이기주의, 부정부패가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최고지도자는 옳게 지도하는데 중간간부들이 그 지침을 잘 집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시해야 될 것은 북한 주민들이 현재의 상 황에서 많은 불만을 느끼고 있으며 그것을 중간 간부의 탓으로 인식하고 그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체제에서 간부와 인민대중간의 이반이라는 정 치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사회의 통합에 대단히 파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사회에서 계급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까닭은 북한의 체제이념에 계급타협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다. 청산된 계급의 반발을 분쇄하는 계급투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계급갈등 자체가 해소될 수 있는 계급타협의 정치는 의제 에서 배제된다. 북한의 계급정책은 도덕적인 지도력과, 기꺼이 복 종하고자 하는 마음인 '동의'에 기반을 두기 보다는, 힘의 '지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동의 없은 지배, 정당성 없는 억압이 우세하 다. 자본주의체제의 계급정책이 계급갈등을 체제내로 제도화한 계급타협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북한의 계급정책은 계급 투쟁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계급정책은 노 동계급인 아닌 다른 계급에 대한 소멸정책이다. 노동계급 이외의 계급과 계급적 속성을 청산하는 투쟁이 바로 북한의 계급정책이 다. 계급출신 성분별 차별정책이 북한의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적 대세력을 양산하는 핵심적인 메카니즘이다. 그러나 북한은 현시 점에서 기존의 계급정책을 폐기할 수도 없고 더욱 강화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둘째, 북한사회에서 계급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은 경제난이 해소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계급적 문제가 분배의 문제라고 볼 때 분배할 재화의 절대적 크기 자체가 적어질 때에 는 분배량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난이 심화되자 희소가치를 둘러싼 생존투쟁이 심화되고 결과적으로 간부충과 인민대중간의 불평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간부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배급품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빈곤의 상황에서 계급갈등 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다.

셋째, 북한 사회에 계급갈등을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은 북 한주민들의 의식이 전반적으로 사적 자율화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암시장의 비중이 증가 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치적 측면에서 국가 및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 의식변화가 심화된다는 것은 곧 계급갈등 이 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북한 사회에서 계급갈등은 주로 인민대중의 중간간부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으며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비판은 억제되고 있다. 그러나 간부들에 대한 비판은 곧 최 고지도부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북한의 경제상황이 더 악화되고 계급적 적대감이 표출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생길 경우 그 적대감은 보다 폭력적으로 분출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경우 계급갈등은 북한체제를 변화 시키는데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發刊資料目録案内◎

 

91ー01 轉換期東北亞秩序斗南北韓關係

91ー02 岐路列北韓經濟社會:實相展望

91ー03 北韓體制變化:現況斗展望

92ー01 南北和解・協力時代,辛司座標斗課題

92ー02權カ構造斗。1政策方向

92ー03 北韓核問題斗南北韓關係

92ー04 韓半島周邊4國對北韓政策

92ー 轉換期南北韓關係:現況展望

93ー01 統一理念皇民族主義  

93ー02 北韓核問題:展望斗課題  

93ー03 中國改革・開放  

93ー04 北韓開放周邊4強立場  

93ー05 南北韓關係現況要94年情勢展望   

94ー01 北韓核問題斗南北韓關係展望

94ー02 南北韓關係斗美國  

94ー03 統一問題點  

94ー04 金日成北韓政策展望斗卒司統一方案

94ー05 統一文化斗民族共同體建設

94ー 南北韓關係現況喫95年情勢展望 

95ー01 韓半島平和體制構築方案摸索

95ー02 甘司鬯ス1 :「剋月国」

95ー 金正日政權向方

95ー04 南北韓關係現況喫。%年政勢展望

96ー01 を刈斗子4三  


8-02脫冷戰期韓半島戰爭平和問題

 

ㄑ研究報告書>

91一01 第2次大戰後新生國家聯邦制度運營事例

91一 北韓聯邦制案分析喫評價

91一 美國聯邦制研究:歷史的發展過程音中心旦

91一 韓半島非核地帶化主張對應方向

91一 東西獨事例司芒南北韓關係改善方案:甘

 

91一10 國際的平和保障事例研究

91一11 在野統一案研究

91一12 蘇聯東北亞政策變化斗東北亞秩序改編: 1年代東北亞秩序豫測( Ⅰ )  

91-13 北韓體制實相斗變化展望  

91一14 「」具體化方案研究:社會·文化·經濟交流·協力

92一01 統一獨逸分野別實態研究

92一 中國改革·開放現況斗展望:北韓中國式改革·開放旦

受容可能性斗關聯  

92一 美國對韓半島政策:韓國安保斗南北韓統一問題 

92-8 日本國際的役割增大斗東北亞秩序: 1年代東北亞秩序豫測( Ⅱ )

 

92一 1 2年度統一問題國民輿論調査結果

92一 軍備統制檢證研究:理論喫歷史斗事例中心

92一 北韓住民人性研究

92一 國際社會南北韓間協力方案研究


日本對韓半島政策

92一10 囚聯邦對韓半島政策一11 東北亞經濟協力發展方向

一12 統一獨逸財政運用實態研究:統一關聯財政政策中心

92一13 南北韓國力趨勢比較研究

92一14 南北韓社會·文化共同體形成方案:社會·文化的同質性增大

方案中心

92一15 北韓權力旦研究

一16 東北亞新國際秩序下韓半島統一基盤造成方案

92一17 南北韓經濟共同體形成方案  

93一01 1 3年度統一問題國民輿論調查結果

金日成著作解題日本對北韓政策  

中國改革·開放加速化斗東北亞秩序: 1年代東北亞秩序

 

豫測( Ⅳ)  

中·臺灣關係現況發展方向

93-3 美國行政府東北亞政策東北亞秩序變化:

 

1年代東北亞秩序豫測( Ⅲ)

東北亞地域多間安保協力體形成展望對應策 獨逸統一後東獨地域私有化政策研究

93一 對北投資保護紛爭解決方案研究 93-10 脫冷戰期北韓對中國·關係一11 北韓軍事政策展開樣相核政策展望一12 北韓人權實態研究

93-14 旦甘統合事例研究

93一15 金正日著作解題

一16 韓半島軍費統制方案研究:軍費統制條約示唆點斗

93一17 北韓家族政策變化

93一18 主體思想理論的變化


93一19 統合事例研究

93一20 北韓政治社會化傳統文化役割:北韓映畵分中心旦一21  

93一22 北韓國營企業所管理運營體系

93一23 社會主義體制改革·開放事例比較研究

 

93一 南北韓國力趨勢比較研究(改訂版)

93一 「昘」形成過程僑胞政策

93一26 日本核政策

 

93一27 東北亞新經濟秩序

93一 聯邦對北韓政策

 

93一29 南北韓政治共同體形成方案研究

93一30 統一論議變遷過程1945 ~ 1993

 

94一01  

94一02 美國日本對北韓關係改善南北韓關係

94一03 韓國對司經濟協力推進方向

94-04 中·臺灣統一政策比較研究

 

94一 北韓社會間接資本實態分析

94一 主體思想內面化實態

94一07 金正日研究

94一08 北韓民族主義研究

94一 金正日軍事權力基盤

94一10 韓國對中經濟協力推進方向

94一11 中國斗日本軍事力增强。韓半島安保影響

94一12 統一韓國政黨制度斗選擧制度

 

94一13 南北聯合形成運營方案研究

 

 

94一14 金正日體制對南政策展望

 

94一15 北韓斗中國經濟關係分析

 

94-16 北韓指導部情勢認識變化斗政策展望 94一17    


94一18 統一韓國對外經濟協力方向:亞·太地域多者間協力關聯

94一20 「圣」解題

94一21 19年NPT延長會議斗韓國對策北韓住民價值意識變化:蘇聯東歐韓國民族主義研究

中國北韓政治體制比較研究:黨·軍關係變化斗關聯統一韓國登場可東北亞地域安保構造變化對應策南北韓文化政策比較研究南北韓協商行態比較研究

一30 南北韓特殊關係法的性格運營方案一31 統一韓國權力構造

統一韓國社會福祉政策統一韓國政治理念  

統一以後國民統合方案研究統一韓國經濟體制

國際機構昘南北韓交流·協力增大方案研究一01 司·北關係變化展望韓國對應方案    

 

一02 金正日政權人權政策變化展望北韓知識人政策變化

 

韓半島平和體制構築方案  

 金正日政權權力旦研究

北韓對美國政策變化研究

 

韓·日關係變化展望斗韓國對應方案  

95一10 金正日體制下軍部役割:持續變化

一11

-12


95-13 북한의 협상전술 특성 연구-남북대화 사례를 중심으로

95-14 남북한 양자간 및 동북아 다자간 원자력협력에 관한 연구

95-15 북한의 경제특구 투자환경 연구 : 중국• 베트남과의 비교

95-17 鄧小乎死後中國의國內情勢와韓半島政策展望

 

95-18 화匕•美關係와韓•美關係變化展望

95-19 북한 주요 기초문헌 해제집(Ⅱ) :「근로자」해제

95-21 탈냉전기 중북한관게 변화 연구

95-22 북한의 경제개혁과 남북경협

 

95-23 통일문제에 대한 세대간 갈등 해소 방안

95-24 지역갈등 해소방안 연구 : 국내적 통일기반 조성방안

95-25 金正日政權의對外政策變化展望

95-26 19%年度統-問題國民輿論調査結果

%-01 김정일의 당권장악과정 연구

%-02 통일과정에서 매스미디어의 역할

96-03 동• 서독 인적교류 실태 연구

96-04 동저독간 정치통합 연구  

 

96-05 남북한 환경분야 교류• 협력 방안 연구 : 다자적 • 양자적 접근

 

 

96-06 북한의 대 주변4국 군사관계  

 

 

 

96-07 韓•美安保協力增進方案硏究  

 

96-08 東北亞乎和體制造成方案

 

 

96-09 北韓經濟改革의最適方向硏究

96-10 통일과정에서 민간단체의 역할

96-12 한반도 펑화체제 구축과정에서의 한국의 안보정책 방향

96-13 남북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

 

 

 

96-14 북한 사회의 계급갈등 연구  

 

 


〈統-精勢分析〉

91-01 韓•劘日•蘇J頁上會談結果分析:褘半島周邊情勢및南北韓

關係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91-02 고르바초프權力의現`7兄과展望

91-03 李鵬中國總理의訪北結果分析:褘半島周邊情勢및南北韓

關係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91-뗝 第%7欠國際議會聯盟(IPU)乎壤總會結果分析

91-05 中•蘇頃上會談結果分析

91-06 혜匕•日, 회匕•美關係變化展望과封策

 

91-07 北韓의 유엔加入宣言의影響과政策變化展望

 

 

 

91-08 美國의東北亞安保政策基調와最近動向

91-09 유고슬라비아의民族葛藤과聯邦解體危機

91-10 中國의對韓政策展望

 

91-11 옐찐의 러시아大統領當選이蘇聯國內情勢에 미칠影響分析

91-12 美•蘇의對東北亞政策과東北亞軍事秩序再編可能性

91-13 美•蘇頂上會言炎의結果分析

 

91-14 單戈術核관련 부시美大統領宣言이東北亞및褘半島安保에 미

 

치는影響

92-01 부시美國大統領의 아시아 4個國巡訪結果分析:南•北褘關係

와 관련하여

92-02 豆滿江地域開發計劃發展方向

92-03 中國의改革•開放深化가北韓에 미치는影響

92-04 러시아聯邦의改革과樟• 러關係展望


92一

92一

92一07 豆滿江地域開發計劃現況斗展望:開發代案喫法制度中心

93一01 最近聯邦政局推移:國民投票結果中心

93一02 北韓核問題展開過程分析展望

93一 北韓對南動向分析(183·1 ~ 6)

93一 <圣音翟104 >北韓對南政策

東北亞多者間安保協力體構成展望南北韓關係北韓對南動向分析( 1 3· 7 ~ 9)

 

中國核實驗。1國際東北亞情勢影響

第5次亞·太經濟協力體( EC)會議刁旦芒亞·太地域協力發展方向

93一 133年12月黨中央委全員會議最高人民會議結果分析一01 美國對韓半島政策:北韓核問題斗美北關係改善中心旦中國對北韓政策:現況展望

 

司權力構造改編對內·外政策展望     

94一北韓核問題斗對中政策方向

核關聯北韓協商戰略戰術分析

-07 韓·日,韓·中頂上會談結果分析北韓對南動向分析(134·1 ~ 3)

北韓最高人民會議第9期7次會議結果分析

一10 韓·關系定立方案: 19年6月頂上會談契機旦 11  

一12 北韓南北頂上會談提議意圖會談展望一13 早可(村山)內閣對內外政策展望

 

一14 北韓對南動向分析(184·4~ 6) 一15 金正日政權登場政策展望 一16 北韓對南動向分析(134·7 ~ 9)  

94一17 李鵬總理訪韓結果分析斗對中政策方向


94一18 美國中間選擧以後對韓半島政策變化展望一19 北韓變化斗金正日政權將來

94-20 核·經協連繋緩和措置斗北韓對應政策展望

95一01 鄧小平死後中國國內政勢韓半島政策展望一02 北韓對南動向分析(135· 1 ~ 3)

中國政局展望:第8期全人大3次大會結果中心旦金正日承繼體制鞏固化動向

北韓食糧支援要請背景斗對北韓食糧支援方案金日成死後1年:  

一07 「丕·丕丕喫圣丕廢棄意味評價江澤民中國國家主席訪韓結果分析

一01 北韓政治動向: 2 · 16生日行事中心旦

一02 中國對內政策斗對臺灣政策展望: 8刁全人大4 結果分析中心旦

北韓對美·中政策懸案斗展望

周邊4國頂上會談韓半島安保環摬

大選結果分析

金日成死後2年:北韓政勢動向喫展望

 

日本總選結果分析

美國大統領喫議會選舉結果分析

<世界主要事件日誌>

91一01 世界主要事件日誌(131· 4· 1 ~ 1 1· 6· )

91一02 世界主要事件日誌(1991· 7· 1 1 1· 9· 30)

91一03 世界主要事件日誌(1991· 10· 1 1 1 · 12· 31)

92一01 世界主要事件日誌(1992· 1· 1 1992· 3· 31)  

92一02 世界主要事件日誌(1992· 4· 1 1992· 6· 30)


92ー03 世界主要事件日誌(1992. 7. 1 1992. 9. 30)

92ー04 世界主要事件日誌(1992. 10. 1 182. 12. 31 )

93ー01 世界主要事件日誌(1993. 1. 1 ~ 1993. 3. 31 )

93ー02 世界主要事件日誌(1993. 4. 1 1993. 6. 30)

93ー03 世界主要事件日誌(1993. 7. 1 1993. 9. 30) 93ー04 世界主要事件日誌(1993. 10. 1 1 3. 12. 31 )

94ー01 世界主要事件日誌(1994. 1. 1 1994. 3. 31 )

94ー02 世界主要事件日誌(19 . 4. 1 1994. 6. 30)

94ー03 世界主要事件日誌(1994. 7. 1 ~ 1994. 9. 30)  

94ー04 世界主要事件日誌(1994. 10. 1 1994. 12. 31 )  

95ー01 世界主要事件日誌(1995. 1. 1 1995. 3. 31 )  

95ー02 世界主要事件日誌(1995. 4. 1 1995. 6. 30)  

95ー03  世界主要事件日誌(1995. 7. 1 1995.  9. 30)    

95ー04 世界主要事件日誌( 1995. 10. 1 ~ 185. 12. 31 )  

96ー01 世界主要事件日誌(19%. 1. 1 19 .   3. 31)  

96ー02 世界主要事件日誌(19%. 4. 1 19 .     6. 30)      ー03 世界主要事件日誌(19%. 7. 1 19%. 9. 30)

 

 

 

 

 

く年例情勢報告書〉          

 

 

 

91 統一環境斗南北韓關係: 1991 ~ 1 2      

92 統一環境斗南北韓關係: 1 2 ~ 1 3

93 統一環境斗南北韓關係: 183 ~ 1               ー01 北韓核問題斗南北關係    

-02 統一環境斗南北韓關係: 19 ~ 1 5

%ー01 統一環境斗南北韓關係: 19% ~ 1

 

 

く論叢〉

 

 

統一研究論叢創刊號(1 2.   6)  


統一研究論叢第1卷2號(182· 12) 統一研究論叢第2卷1號(183· 7) 統一研究論叢第2卷2號(133· 12) 統一研究論叢第3卷1號(1 · 8) 統一研究論叢第3卷2號(1 · 12) 統一研究論叢第4卷1號(1 · 8) 統一研究論叢第4卷2號(1 · 12) 統一研究論叢第5卷1號(1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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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OREAN JOURNAL OF NATIONAL UNIFICATION VOL 2(1 )

KOREAN JO  NAIIONAL UNFICAIION s tim(1 )  

 

KOREAN JO OF NATIONAL UNFICATION vol. 3(1 )

 

KO • JO OF NATIONAL UNIFICAmN spedal edition(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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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01 統一喫丬關聯文獻目錄(國)

92…02 統一北韓關聯研究文獻目錄(外國語篇)

93一01 藏書目錄:單行本·研究報告書

93…02 藏書目錄:特殊資料

93一03 獨逸統一條約批准法律

94一01 貨幣·經濟·社會統合條約(上)


94一02貨幣·經濟·社會統合條約(中)

94一03貨幣·經濟·社會統合條約(下)

95一01藏書目錄:單行本·研究報告書(追錄I)

95一02藏書目錄:特殊資料(追錄I)

 

94一01  統一文化研究(上) 一02 統一文化研究(下)

95-01 統一斗北韓社會文化(上)

95一02 統一斗北韓社會文化(下)

 

 

북한사회의 계급갈등 연구

硏究報告書96-14

 

發行處 民族統-硏究院編輯人 民族統-硏究院資料調査室 서울 중구 장충동 2가 산 5-19 전화:232-4726, FAⅩ:231-4304 印刷處 한라인쇄 전화:277-5308 印刷日 1996년 12월 일 發行日 1996년 12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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