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26, 2024

처절한 탈북 다큐 ‘비욘드 유토피아’[살며 생각하며] :: 문화일보 munhwa

처절한 탈북 다큐 ‘비욘드 유토피아’[살며 생각하며] :: 문화일보 munhwa


처절한 탈북 다큐 ‘비욘드 유토피아’[살며 생각하며]
문화일보
입력 2024-03-15 

황영미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장, 영화평론가, 前 숙명여대 교수

평생 ‘천국’ 속아온 노 씨 일가
목숨 건 北 탈출 다큐 큰 울림

참혹한 北인권 유린 실상 폭로
한 민족으로서 痛恨 느끼게 해

분단 80년…탈북민 고통 여전
더 이상 눈감고 귀 막지 말아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상황을 국가나 국제정치의 관점이 아닌 핏줄과 민족의 관점으로 다룬 다큐멘터리가 최근 개봉됐다. 마들렌 개빈이 감독한 ‘비욘드 유토피아’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다큐멘터리 부문 미국 대표 영화로 선정되어 15위 예비후보 안에까지 들게 되었다. 이 영화는 지난해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받은 관객상을 시작으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서도 최종 후보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동안 탈북민에 관한 영화는 국내외 다큐 영화도 많았고, ‘크로싱’(2008)같은 극영화도 나온 바 있다. 그런데 ‘비욘드 유토피아’의 어떤 점이 세계 영화인들에게 그처럼 큰 임팩트를 준 것일까.

그동안 탈북민들을 다룬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탈북민들의 위험천만한 탈북의 실체를 코앞에서 보여준다. 어느 첩보 영화보다 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다큐는 국가정보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탈북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의 의지와 실행, 그리고 손녀와 할머니까지 다섯 명의 노 씨 가족이 탈북에 성공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과 한국에 사는 어머니 이소연 씨를 만나러 탈북하다 결국 북한의 수용소에 갇히게 된 청소년의 상황을 중심으로 그린다. 그들이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손이 쥐어지며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온다.

특히, 탈북 후 중국에 도착해 어렵사리 이 씨와 전화 통화가 됐던 17세 아들이 중국에서 잡혀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 수용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 씨의 처지는 솟구치는 눈물을 피할 수 없게 한다. 10여 년 전 탈북하다가 다시 잡혀가 북한에서 2년간 감옥살이를 했고, 또다시 탈북을 시도해 남한에서 살게 된 이 씨는 북한 수용소나 감옥의 고문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억누르며 또 속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한 가닥 소식에 목을 매며 브로커에게 송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 목사의 소식통에 따르면 브로커의 친구가 포상금에 눈이 어두워 고발하여 이 씨의 아들이 잡힌 것이라고 한다.





김 목사는 그동안의 탈북민을 위한 헌신의 결과로 중국에 입국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아는 브로커가 노 씨 가족을 중국에서 베트남까지만 데려오면 김 목사가 거기서 합류하여 라오스를 거쳐 공산권이 아닌 태국까지 한밤중에 함께 국경을 넘는 과정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상 탈북민들은 무수한 지뢰가 매설된 사실상의 전투 구역으로 둘러싸인 휴전선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북쪽의 중국으로 도망쳐 이웃 아시아 국가들의 험난한 지형을 헤쳐 나가야 하는 참혹한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탈북민을 돕다가 아들까지 잃었던 김 목사 부부는 자식이 밀알이 되어 많은 사람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이 위험한 일을 자처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해 온 23년 동안 구한 탈북민이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비욘드 유토피아’라는 제목은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거짓 유토피아 북한에서 자행되는 인권 유린의 실상을 통해 충격과 분노를 자아내며, 지상낙원이란 선전에 속아 자란 고향땅을 벗어나려는 탈북민들의 실상을 그들이 직접 찍은 영상으로 보여주기에, 강대국이 갈라놓은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실감하게 된다. 실상 노 씨 일가는 탈북한 가족이 한국에 살고 있어 가혹하게 탄압하는 북한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중국도 받아주지 않기에 필사적으로 남한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공산 독재를 평생 겪고 살았던 노 씨 가족의 할머니는 촬영 때 마이크를 대하자 ‘북한에서 잘 지냈고, 이처럼 탈북하게 된 것도 김정은 위원장의 은덕’이라고 말한다. 어떤 말이 본인을 곤경에 빠뜨릴지 모른 나머지 그저 북한에서 세뇌당한 말만 되풀이한 것이다.

20여 년 전 북한을 탈출하여 미국에 사는 이현서 씨의 북한 사회에 대한 충격적 증언, 그리고 분단 이후 북한의 역사와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제시하는 화면은 우리에게 북한 문제를 다시 환기시켜 준다. 북한 장면은 갈렙선교회의 자료라고 한다. 그동안의 탈북 관련 영상들은 정치적 관점으로 집중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 다큐는 실제로 탈북민들이 실제로 겪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말을 쓰는 한 민족으로서의 통한(痛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어려운 여러 가지 일을 감수하면서 도와주는 김 목사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모습에 가슴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국가 차원의 통일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우리 개인의 노력과 힘이 얼마나 영향이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민족으로 5천 년을 살아온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나 생존은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이다. ‘비욘드 유토피아’ 같은 영화가 앞으로도 다양하게 제작되어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면 국제사회에 더 큰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 분단 80년이 되어 가는 지금 탈북민들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에 더는 눈감고 귀 막지는 말아야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부한 말로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황영미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장, 영화평론가, 前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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