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최상목 특사 보내면, 美가 李정부 다시 보게 될 것"
DJ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 지낸
강인덕 경남대 석좌교수 인터뷰
김민서 기자
입력 2025.07.14.

김대중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전 장관이 13일 서울 용산구 한 커피숍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 전 장관은 이재명 정부를 향해 “즉자적으로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실용주의가 아니라 기회주의”라며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면 중국은 한국을 깔볼 것이고 미국은 우리를 아예 쳐다도 안 볼 것”이라고 했다/조인원 기자
김대중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전 장관은 13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미국 특사단으로 보내면 미국이 이재명 정부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강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 정책을 비판한 남덕우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비판한 나를 장관으로 기용했다”며 “내란 수사보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대미 관세·안보 협상이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에 보도된 미국 특사단은 미국통으로 보기는 어렵고 국내 정치용 특사단으로 보인다”고 했다.
강 전 장관은 1960~70년대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에서 1세대 북한과 해외 정보분석관으로 일했다. 1968년 1·21 사태 발생 몇 달 전 북한 움직임을 예견한 보고서를 썼고, 해외정보국장과 북한정보국장 재직 당시 미국 닉슨·카터 행정부의 주한 미군 감축을 경험했다.
-미국과의 관세·안보 협상이 난항이다.
“국가안보실장 혼자 이번 협상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미국을 잘 알고 미국과 말이 잘 통하는 대미 협상용 특사단을 보내야 한다. 협상팀은 협상 종료 시까지 워싱턴 호텔에 진 치고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의회·싱크탱크·언론 등 각계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설득에 나서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원하는 미국 개신교와 선이 닿는 국내 개신교 목사들도 전부 동원해 총력 대응을 해야 한다.”
-닉슨·카터 대통령 때처럼 미국 조야(朝野)에서 다시 주한 미군 감축 가능성이 거론된다.
“박정희 대통령 때 카터와 30~40분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 박 대통령이 ‘당신들이 우리를 이렇게 무시하면 안 된다’고 언성을 높여 카터가 회담 도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려고 할 정도였다. 미국의 국방전략보고서(NDS) 발간을 앞두고 주한 미군 감축 및 재배치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우리한테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쪽으로 결정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한미 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논의되고 있다.
“시기상조다. 미군이 제공하는 핵항공모함 등 전략 자산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나. 한국은 안보가 무너지면 경제도 무너진다. 게도 구럭도 다 잃게 된다.”
-현 정부가 표방한 실용주의 외교 기조는 어떻게 보나.
“실용주의를 하려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사상적 기반이 확고해야 한다. 이게 없이 즉자적으로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실용주의가 아니라 기회주의다.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면 중국은 한국을 깔보고 나올 것이고 미국은 우리를 아예 쳐다도 안 볼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강인덕 전 장관이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커피숍에서 최근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을 밝히고 있다. /조인원 기자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을 강조한다.
“서두를 때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 우리가 북한에 관여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것이다. 미국·일본과의 강력한 협력을 등에 업고 중국·러시아와 협조해 북한에 접근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대북 유화책에도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다.
“북한과 중국에 상당한 공을 들였는데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대통령은 중국 가서 ‘혼밥’을 했다. 배신당한거나 마찬가지다. 힘에 의한 외교가 공산권 국가와의 외교 정도(正道)라는 역사적 교훈을 외면한 결과다. 대북 군사력 우위는 남북통일을 달성할 때까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철칙이다.”
강 전 장관은 “국가정보원과 통일부가 서로 경쟁하듯 대화하겠다고 무리한 시도를 하는 건 금물”이라며 “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무조건 원 팀이어야 한다”고 했다.
-통일부 명칭 변경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부 이름에서 통일을 빼자는 건 완전히 남북 2국가로 가자는 얘기 아닌가. 정권 바뀔 때마다 통일을 넣었다 뺐다 한다? 이래 갖고 어떻게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나. 통일 없이는 우리 민족의 장래도 암울하고 주변 강대국 틈바구니를 비집고 민족의 살길을 개척할 방법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통일부는 통일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확산하고 탈북민 정착 지원에 애써야 한다. 남북 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 관계라는 점을 국민들이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1970년대 방북해 김일성과도 만났다.
“김일성은 오찬 자리에서 남북이 서로 4만~5만명씩 오고 가고 자유 왕래를 통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하자면서 그러자면 남한의 강력한 반공 정책 중단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뻔뻔한 주장을 했다. 김일성을 상대하면서 공산권 세력과 대화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강 전 장관은 1978년 중앙정보부 퇴직 후 1980년부터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될 때까지 18년 동안 KBS 사회교육방송에서 ‘노동당 고급 간부들에게’라는 제목의 대북 방송을 진행했다. 2015년부터는 올 3월까지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같은 주제로 방송을 했다.
-25년 넘게 대북 심리전 방송을 했다.
“나는 6·25 때 평양에서 미국의소리(VOA)방송을 들었다. 그때 VOA를 통해 어느 지역이 폭격됐는지 알 수 있었다. 혀가 굳어서 발음이 어눌해지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한 대북 방송을 계속하고 싶었다. 미국 정부가 VOA와 RFA 등의 지원을 중단한 건 대단히 잘못한 일이다.”
-여권에선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만든다고 한다.
“1983년 북한군 조종사 이웅평 상위(중위와 대위 사이)가 내 방송을 듣고 북한 현실을 깨닫게 된 뒤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일이 있었다. 이후에도 내 방송을 듣고 탈북한 탈북민들을 만날 때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큰 보람을 느꼈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같은 수세적 자세를 버리고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논리적인 대북 심리전은 통일이 될 때까지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전 장관은 13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미국 특사단으로 보내면 미국이 이재명 정부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강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 정책을 비판한 남덕우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비판한 나를 장관으로 기용했다”며 “내란 수사보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대미 관세·안보 협상이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에 보도된 미국 특사단은 미국통으로 보기는 어렵고 국내 정치용 특사단으로 보인다”고 했다.
강 전 장관은 1960~70년대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에서 1세대 북한과 해외 정보분석관으로 일했다. 1968년 1·21 사태 발생 몇 달 전 북한 움직임을 예견한 보고서를 썼고, 해외정보국장과 북한정보국장 재직 당시 미국 닉슨·카터 행정부의 주한 미군 감축을 경험했다.
-미국과의 관세·안보 협상이 난항이다.
“국가안보실장 혼자 이번 협상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미국을 잘 알고 미국과 말이 잘 통하는 대미 협상용 특사단을 보내야 한다. 협상팀은 협상 종료 시까지 워싱턴 호텔에 진 치고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의회·싱크탱크·언론 등 각계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설득에 나서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원하는 미국 개신교와 선이 닿는 국내 개신교 목사들도 전부 동원해 총력 대응을 해야 한다.”
-닉슨·카터 대통령 때처럼 미국 조야(朝野)에서 다시 주한 미군 감축 가능성이 거론된다.
“박정희 대통령 때 카터와 30~40분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 박 대통령이 ‘당신들이 우리를 이렇게 무시하면 안 된다’고 언성을 높여 카터가 회담 도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려고 할 정도였다. 미국의 국방전략보고서(NDS) 발간을 앞두고 주한 미군 감축 및 재배치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우리한테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쪽으로 결정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한미 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논의되고 있다.
“시기상조다. 미군이 제공하는 핵항공모함 등 전략 자산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나. 한국은 안보가 무너지면 경제도 무너진다. 게도 구럭도 다 잃게 된다.”
-현 정부가 표방한 실용주의 외교 기조는 어떻게 보나.
“실용주의를 하려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사상적 기반이 확고해야 한다. 이게 없이 즉자적으로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건 실용주의가 아니라 기회주의다.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면 중국은 한국을 깔보고 나올 것이고 미국은 우리를 아예 쳐다도 안 볼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강인덕 전 장관이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커피숍에서 최근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을 밝히고 있다. /조인원 기자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을 강조한다.
“서두를 때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 우리가 북한에 관여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것이다. 미국·일본과의 강력한 협력을 등에 업고 중국·러시아와 협조해 북한에 접근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대북 유화책에도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다.
“북한과 중국에 상당한 공을 들였는데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대통령은 중국 가서 ‘혼밥’을 했다. 배신당한거나 마찬가지다. 힘에 의한 외교가 공산권 국가와의 외교 정도(正道)라는 역사적 교훈을 외면한 결과다. 대북 군사력 우위는 남북통일을 달성할 때까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철칙이다.”
강 전 장관은 “국가정보원과 통일부가 서로 경쟁하듯 대화하겠다고 무리한 시도를 하는 건 금물”이라며 “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무조건 원 팀이어야 한다”고 했다.
-통일부 명칭 변경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부 이름에서 통일을 빼자는 건 완전히 남북 2국가로 가자는 얘기 아닌가. 정권 바뀔 때마다 통일을 넣었다 뺐다 한다? 이래 갖고 어떻게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나. 통일 없이는 우리 민족의 장래도 암울하고 주변 강대국 틈바구니를 비집고 민족의 살길을 개척할 방법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통일부는 통일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확산하고 탈북민 정착 지원에 애써야 한다. 남북 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 관계라는 점을 국민들이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1970년대 방북해 김일성과도 만났다.
“김일성은 오찬 자리에서 남북이 서로 4만~5만명씩 오고 가고 자유 왕래를 통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하자면서 그러자면 남한의 강력한 반공 정책 중단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뻔뻔한 주장을 했다. 김일성을 상대하면서 공산권 세력과 대화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강 전 장관은 1978년 중앙정보부 퇴직 후 1980년부터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될 때까지 18년 동안 KBS 사회교육방송에서 ‘노동당 고급 간부들에게’라는 제목의 대북 방송을 진행했다. 2015년부터는 올 3월까지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같은 주제로 방송을 했다.
-25년 넘게 대북 심리전 방송을 했다.
“나는 6·25 때 평양에서 미국의소리(VOA)방송을 들었다. 그때 VOA를 통해 어느 지역이 폭격됐는지 알 수 있었다. 혀가 굳어서 발음이 어눌해지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한 대북 방송을 계속하고 싶었다. 미국 정부가 VOA와 RFA 등의 지원을 중단한 건 대단히 잘못한 일이다.”
-여권에선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만든다고 한다.
“1983년 북한군 조종사 이웅평 상위(중위와 대위 사이)가 내 방송을 듣고 북한 현실을 깨닫게 된 뒤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일이 있었다. 이후에도 내 방송을 듣고 탈북한 탈북민들을 만날 때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큰 보람을 느꼈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같은 수세적 자세를 버리고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논리적인 대북 심리전은 통일이 될 때까지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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