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축지법? 북한은 50년 전에 이미 사실 아니라고 말했다
김일성 축지법? 북한은 50년 전에 이미 사실 아니라고 말했다
[기고] 김기남 전 비서 사망 계기로 보여지는 언론의 북한 무시
마틴와이저 독립연구자 | 2024-05-23 05:01:30
북한은 오랫동안 "축지법", "모래를 쌀로" 등 항일전설의 마술 내용에 대하여 "사실이 아니다"강조해왔지만 북한자료를 무시하는 언론사들이 "사실로 선전한"다고 왜곡시켜왔다.
지난 8일 북한이 김기남 전 비서와 선전부장의 사망을 알리자 남한의 언론사는 김 전 비서가 "북한의 괴벨스"로 불린다고 보도했다. 나치독일의 괴벨스는(Paul Joseph Goebbels)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대중계몽선전국가부 장관"으로 최고 선전책임자였다. 김기남은 1960년대부터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1985년부터 2017년까지 부장으로 오랫동안을 최고 선전 책임자이자 김정일‧김정은 위원장의 권력승계에 도와준 유일한 인물이었다.
북한이 거짓선전을 한다는 기자들
김 전 부장의 사망에 대해 보도할 때에 주요 언론사는 그를 나치독일에 비유했을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지도자가 마술을 부릴 수 있다는 거짓선전을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KBS6 뉴스 내용이다.
"모래로 쌀을, 솔방울로 총알을, 축지법을 쓰고 가랑잎을 타고 큰 강을 건넜다. 북한이 과거 학생 및 주민용 교재에서 항일 빨치산 시절 김일성 주석을 소개한 글입니다. 내용만 봐도, 김일성 신격화의 일환인 걸 알 수 있죠. … 북한은 이런 방식으로 3대에 걸쳐 김씨 일가를 우상화, 신격화해왔습니다"
▲ 지난 9일 KBS뉴스6는 김일성에 대한 항일전설을 소개하면서 북한에서 사실로 가르치듯이 "신격화"라고 주장한다. ⓒKBS방송 갈무리
이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 최상훈 서울지국장은 8일 "In school textbooks and TV cartoons, the leaders are depicted as capable of turning tree leaves into boats and pine cones into grenades. (교재와 TV 만화에서는 지도자들이 가랑잎을 배로, 솔방울을 수류탄으로 만들수 있다고 묘사한다.)"이라고 보도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의 '더 저널'(The Journal)이라는 팟캐스트에서도 서울지국장이 14일 "It was said that the country's founder, Kim Il Sung, could levitate, that he could stop bullets with his hand, that he could turn pinecones into ammunition. This comic book hero stuff emerged that really established nobody but someone with a hereditary tie to the country's founder could run the country. (국가를 설립자인 김일성이 날아갈 수 있다고, 손으로 총알을 막을 수 있다고, 솔방울을 탄약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슈퍼히어로 만화책에서 나온 얘기로 유전으로 국가의 설립자와 연결되어야 승계할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전했다.
무지한 기자들이 무시하는 자료들
그런데 북한에서 잘 알려진 김일성에 대한 항일전설은 '전설'뿐이었고, 거짓선전을 통해 김일성을 신격화시키는 것이 없었다. 북한은 항일활동 시절에 그런 전설들이 일반사람 사이에 돌리는 사실을 이야기해왔지만, 매체에서와 김일성 일화까지 일관성있게 수십 번이나 묘사된 마술이 있을 수 없다고도 강조해왔다.
예를 들어서 북한의 영문신문인 <평양타임스>는 1976년 2월7일 보도를 통해 그 전설들이 믿을 수 없는 내용처럼 보여도, 김일성이 믿을 수 없게 계속 전투에 이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술로 꾸민 것이라고 설명한 적 있다.
조선로동당의 일간신문인 <로동신문>은 1982년 2월 10일에 그런 보도가 실렸다. 항일활동 시절에 김일성빨치산 전투원이 김일성이 옆에 서있어도 노인에게 '김일성이 축지법을 쓴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1990년대에 발간돼 <세기와 더불어>에도 나온다. 1941년 이전에 노인 몇 명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하니, 해방 뒤에 '축지법을 사실로 선전해왔다'는 주장의 정반대의 내용이다.
▲ 로동신문 1982년 2월 10일자 2면의 보도.
남한 기자들이 그동안 조금이라도 사실을 확인했다면 김일성이 북한에 돌아온 지 몇 주도 안돼 직접 축지법과 같은 마술이 있을 수 없다고 한 자료를 찾았을 것이다. 북한 웹사이트로만 2015년부터 이미 20여 번이나 나온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1992년 김일성전집 등 주요자료에서도 나왔다.
2015년에 발행된 김일성일화집 제6권에 의하면 1945년 11월 29일에 김일성이 평안북도 룡천군을 방문했을 때에 어느 농민조합 위원장이 일제와 싸울 때에 축지법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김일성은 답으로 축지법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항일유격대가 일제와 싸워 승리할 수 있은 것은 인민대중과 혈연적련계를 가지고 그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방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축지법을 쓴다는 말도 우연하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유격대가 인민대중과 혈연적련계를 맺게 항상 그들에게 의거하여 싸웠기 때문에 그런 전설같은 이야기가 생겨난 것입니다.
일제놈들이 밀정들을 통하여 우리가 있는 곳을 탐지하고 비밀리에 군대와 경찰을 출동시키군하였지만 그때마다 인민들은 우리에게 얼마만한 일제병력이 어디에서 떠나 어느 골짜기로 쳐들어간다는 것을 미리 다 알려주었습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적들은 유격대를 《토벌》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달려오다가는 몰살되든가 허탕을 치군하였습니다. 이렇게 인민들과 밀접한련계를 가지고 그들의 방조를 받아 묘한 전술을 쓰는 것을 알리 없는 일제는 유격대가 축지법을 쓰며 신출귀몰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사람이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어졌다가도 다시 나타나며 땅을 주름잡아 다닐 수는 없는 것입니다." (김일성전집 제2권 1992년판, 377~378면 중에서)
마지막 문장은 일화이야기와 함께 이미 1985년 12월 4일 자 <민주조선>에, 1989년 8월 27일 자 <로동신문>에 나왔다. 2015년 김일성일화집 제6권 발행 이후에는 2015년 8월, 2016년 7월, 2018년 2월, 2020년 5월에 로동신문에 실렸고 몇 번 북한 웹사이트에 게재됐다. 그 일화이야기는 2008년에 시 형식으로 <조선문학>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물론 다른 일화이야기나 문학작품에서도 김일성이 마술을 부인했다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 1989년 8월 27일자 로동신문 4면에 실린 글은 1945년 11월 29일 일화이야기를 소개할 때 김일성이 축지법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인용했다. 김일성전집 내용과 사소한 차이를 보이지만 똑같이 축지법을 부인했다.
모르고 싶은 정보와 잊고 싶은 사실
북한전문 기자가 많이 없고 북한 자료를 편하게 확인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언론사의 기자들이 위 자료들의 내용을 몰랐을 수는 있다. 다만 북한에서 지도자가 마술을 할 수 있다는 거짓선전을 한다는 주장은 늦어도 4년 전인 2020년 5월 20일에 끝났어야 했다. 그날 김일성이 축지법을 부인했다는 1945년 11월 일화이야기가 또 다시 <로동신문>에 실려 많은 남한 언론사들이 갑자기 이 글에 대해 보도했기 때문이다.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는 많지 않았다. <한겨례>, <경향신문>, MBC를 비롯해 <중앙일보>, <세계일보>와 <문화일보>는 보도하지 않았다. <아시아경제>와 <리버티코리아포스트>는 20일 오전 8시에 보도해 사실확인 없이 쓴 것으로 보인다. 다음날인 5월 21일 통일부 당국자가 기자들과 만나고 그 일화이야기가 언제부터 실려왔는지 의심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매체가 이 <로동신문> 기사를 보도했다.
보도한 언론사를 날짜별로 따져보면 5월 20일은 SBS, 채널A, 리버티코리아포스트, 아시아경제, 조선비즈, 통일뉴스, 한국일보, 매일경제, 파이낸셜리뷰, 허프포스트코리아, 동아일보가, 21일은 연합뉴스, 뉴시스, TV조선, 자유아시아방송, 서울신문, KPI뉴스, 서울경제, 이데일리, 뉴스윅스, 조선일보, 22일은 미국의 소리, JTBC, KBS, 24일은 시사인이 각각 보도했다.
일례로 TV조선 뉴스9는 5월 21일에 "북한은 그동안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시절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축지법'을 쓴다고 선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북한 노동신문이 어제 처음으로 축지법 불가능하다는 기사를 실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습니다"고 주장했다.
▲ 2020년 5월 21일 TV조선 뉴스9 갈무리. ⓒ TV조선
KBS의 북한뉴스프로그램 <남북의 창>은 23일에 “김씨 일가를 우상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는데, 북한 교과서에도 김일성 주석이 축지법을 쓰고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던 북한이 돌연 축지법을 부정하고 나섰습니다”고 주장했다.
▲ KBS의 북한뉴스프로그램 '남북의 창'. ⓒKBS 방송 갈무리
한번이라도 <로동신문>이나 우리민족끼리 등 주요 북한 웹사이트에서 '축지법'을 검색했다면 손쉽게 몇 년 전 이미 게재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본인은 KBS, JTBC등에 많은 언론사에 보도를 정정하는 것을 몇 번 요청했지만 무시당했다.
언론사만 문제를 외면한 것이 아니었다. 본인은 2020년 통일부 가짜뉴스 담당 부서에 '축지법을 처음 부인했다'는 보도들이 오보라는 것과 자유아시아방송이 통일부까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영문보도에 대해 알려줬는데, 통일부는 성실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심지어 웃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대는 종종 대북오보를 비판하는데 본인은 2021년 말 단체에 연락해 협동사무처장과 만나 '축지법을 처음 부인했다'는 오보와 다른 대북오보들을 보여줬다. 민주언론시민연대는 그런 오보에 대해 활동할 수 있는지 고민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활동할 수 없다고 결정을 내리고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오보 문제와 관련해 뉴스타파에도 연락했다. 몇 년 전에 이미 뉴스타파 기자와 만나 남한에서 북한자료를 제대로 안보고 오보가 많은 문제를 이야기한 적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스타파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답을 받았다.
사실 그 1945년 일화이야기가 남한언론사에 처음 보도된 것은 2020년 5월이 아니었다. 우리민족끼리는 2019년 8월 12일 이를 보도했는데 <조선비즈>와 <조선일보>가 이 보도를 인용했다.
<조선비즈>는 12일 우리민족끼리의 여러 문장을 인용했지만 축지법을 부정하는 부분을 제외시켰고 이를 강조하지도 않았다. 두 번째 기사는 다음날 <조선일보> 종이신문에도 실렸는데 이 기사는 축지법을 부정하는 정보를 제외시킨 것뿐만 아니라 북한 보도의 내용을 정반대로 바꿨다.
우리민족끼리 보도 맨 끝에 나온 김정은 위원장이 축지법을 쓴다는 말만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2020년 5월 또 다시 이에 대해 보도하며 이번에는 "김일성 우상화에 이용된 신화를 스스로 부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판단했다.
<한겨례>, <경향>, <미디어오늘>과 MBC는 2020년 5월 '북한이 축지법을 처음 부인했다'는 오보에 반박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본인은 그 언론사에 몇 번 사실 확인을 해달라고 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MBC의 북한뉴스 프로그램인 <통일전망대>는 2020년 10월 29일 정정보도와 유사한 영상을 게재했다. TV프로그램이 아닌 유튜브 계정으로만 공개했다. 영상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난 5월이었죠. 북한 노동신문에 '축지법이 사실 도술 같은 건 아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고 국내언론들도 북한이 이제 축지법을 부정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중략) 그런데 저도 기자입니다만 업계기자들이 좀 게을렀거나 놓친 부분이 있는데 죄송합니다. 반성합니다."
언론들은 지난 5월에 일제히 기사를 쓰긴 했는데 사실 북한이 축지법을 부정한 게 5월에 처음이 아니다. 이미 2년 전에도 김일성이 일군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하면서 똑같은 내용의 보도가 나온다.
▲ MBC 통일전망대 유튜브계정에 올린 영상의 장면. 2018년 2월 7일에 이미 로동신문에 나온 보도라고만 언급했다. ⓒ MBC 통일전망대 방송 갈무리
영상에서는 2018년 이미 나온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로동신문> 웹사이트에 2018년부터 올린 내용들만 검색되는 것으로 보아, 통일전망대는 여기에서만 검색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민족끼리'나 '려명' 등 다른 주요 북한 웹사이트에서 검색했다면 2015년이나 2016년에 올린 일화이야기를 찾았을 것이다.
통일부는 현재까지도 그 오보에 무관심을 이어갔다. 2020년 5월 21일 통일부 당국자가 기자들과 만나 "좀 더 시간을 갖고 의미를 분석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이 처음으로 축지법을 부인했는지, 옛날에 사실로 선전했는지에 대해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MBC 통일전망대가 10월에 오보였다고 밝힌 뒤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본인은 2020년 6월 29일 유튜브 계정으로 운영된 통일TV에 출연해 2015년 <로동신문> 기사를 보여주면서 오보라고 비판했고 2021년 11월 1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도 똑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 필자소개
마틴 와이저 독립연구자는 독일 출신으로 2014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북한인권 정책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의 정치, 법, 매체와 남북관계와 사회주의 우당(友黨)을 연구하고 있다. European Journal of Korean Studies, 38North, NK News, East Asia Forum 등에 글을 게재했다.
마틴와이저 독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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