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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1)
"나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 영국에서 자유의 소중함 온몸으로 체험"
이문경승인 2025.08.22 00:07 | 최종 수정 2025.08.23 23:08 0





[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나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 영국에서 자유의 소중함 온몸으로 체험"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자, 한반도 장기 분단 7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여전히 분단의 벽을 허물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2023년 말부터 소위 '적대적 2국가론'을 들고나오며 기존까지의 민족 통일 노선을 전면 폐기하고, 분단 고착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비록 적화 통일이라도 분단된 민족을 기어코 통일해야 한다는 김일성 유훈마저 저버린 것이다.
프리덤 조선은 이념과 체제 차이로 갈라진 남북의 영구 분단을 주장하는 적대적 2국가론에 반대한다. 북한 2500만 동포 역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보장되는 선진화된 체제에서 자유와 인권, 번영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이미 고령화되어 상당수가 고인이 된 이산가족 외에도 분단으로 인한 각종 기회비용은 너무나 크다.
김정은 정권이 영구 분단 적대적 2국가론을 들고나온 배경에는 그 체제가 수십 년간 자행한 참혹한 인권 말살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특히 탈북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북한 실상과 탈북 이후 북한 동포들이 겪어야 했던 인권 유린은 실로 경악할 수준이다. 아무리 부정하고 외면해도 진실은 변하지 않으며,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할 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올 것이다.
20세기 말 공산주의 자체 모순으로 인해 구소련 등 동구권 몰락 속에 북한 역시 공산주의 배급 체제가 붕괴했고, 최저 수십만 명에서 최대 300만 명대로 추산되는 주민들이 굶어죽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북한 주민이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넘었다. 이들은 중국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늘 쫓기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했다. 특히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된 탈북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많은 이들이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모진 처우 끝에 목숨을 잃었지만, 살아나 석방된 이들은 다시 중국으로 탈출했다.
그중 약 3만여 명은 대한민국으로 탈출했고, 현재 한국에 정착해 성공한 경우도 많다. 제3국 행을 택한 탈북자들도 있다.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탈북자가 정착한 나라는 영국이다. 2025년 현재 영국 정착 탈북자는 약 700명 전후라 하지만, 2세를 포함하면 최대 1000명대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은 한국행을 택해도 정착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영국행을 택한 탈북자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북한에서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영국 정착 탈북자들은 체제만이 아니라 언어, 피부색, 문화 모두가 낯선 환경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 셈이다.
이들 역시 일종의 한인 디아스포라 일원이며, 장차 한반도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로 나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함께 해야 할 동포다. 우리는 더 늦지 않게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삶을 돌아보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프리덤 조선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올해 8월 초,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 중 맨체스터의 박지현 씨를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6년 맨체스터 무어사이드 선거에 보수당 후보로 의원직에 도전하는 박지현 씨.
박 씨는 영국 정착 탈북자들에게 영어를 교육하는 등 정착을 돕는 활동을 적극 전개했다. 또 영국과 유럽에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던 북한의 실상 및 재중 탈북 여성들의 참혹한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해 증언하는 등 인권 활동에 힘쓴 공로로 2020년 영국 국제 앰네스티 인권상을 수상했다. 또 2021년 탈북민 최초로 영국 지방 의회 선거에 출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씨는 또한 7개 국어로 번역된 <가려진 세계를 넘어> (박지현, 채세린 공저, 도서출판 슬로비. 2021년 한국어판 출간. 영어 제목은 <The Hard Road Out>)의 저자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 출신 플뢰르 펠르랭 씨를 비롯해 영국 외무 장관 라미, 상원 의원 앨튼 경 등 많은 인사가 박 씨 저서를 읽고 적극 추천할 정도로 서구에서 반향이 컸다.
2025년 현재에도 영국과 미국, 유럽 언론 및 대학, 연구소 등에서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들과 함께 북한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국제 인권 운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박 씨의 인터뷰는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나누어 게재할 예정이다.
- 편집국
Q. 박지현 씨의 영국과 유럽에 북한 인권 활동이 인상적입니다. 몇 년 전 출간되어 여러 언어로 번역된 진솔한 수기 <가려진 세계를 넘어 (The Hard Road Out)>가 영어권 국가들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며, 용기를 내어 증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영국이나 유럽 언론, 또 RFA 등에서 먼저 박지현 씨 소식이 많이 보도되었고, 한국 언론에서는 탈북자 최초로 영국 의회 선거에 도전하며 조선일보 등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이번에 프리덤 조선에서 영국 정착 탈북 사회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박지현 님의 활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지현 씨가 탈북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와 시기가 궁금합니다. 자서전과 인터뷰를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프리덤 조선 독자들을 위해 다시 한번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께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저는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탈북한 시기는 북한 전역에서 주민들이 대량으로 굶어 죽던 시기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를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지만, 저는 그 표현 대신 ‘국가에 의한 집단 대량학살’이라고 규정합니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단어는 마치 자연재해로 인한 단순한 흉작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식으로 국가의 책임을 흐리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굶주림에 놓여 있었지만, 저의 탈북 동기는 생존을 넘어선 절박한 가족의 외침이었습니다. 당시 군부에서 쫓기고 있던 제 남동생을 살려달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목숨을 걸고 탈북했지만, 남동생은 중국에서 강제북송되어 끝내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었고, 저는 인신매매로 팔려가 중국 농촌에서 6년간 살았습니다.
결국 2004년, 저 역시 체포되어 강제북송 당했고, 다시 지옥 같은 북한으로 끌려갔습니다.
두 번째 탈북은 저에게 마지막 희망이자 결단이었습니다. 중국에 홀로 남겨진, 저의 유일한 가족인 어린 아들을 더 이상 잃을 수 없다는 생각이 저를 다시 죽음의 강을 건너게 했고, 결국 그 결심이 저를 살려냈습니다.
Q. 탈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혹은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박 : 처음 탈북은 온성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청진에서 살았지만,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는 봄과 가을마다 온성, 종성, 샛별 쪽으로 농촌 동원을 자주 다녀서 그 지역의 지형은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새벽에 두만강을 건넌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극한의 공포였습니다. 두만강 위에 섰던 그 순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제대로 걷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움직였고, 등 뒤에서 총성이 울렸을 때 온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두 번째 탈북은 무산 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는 브로커가 있었지만, 제 왼쪽 다리는 인간이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저는 비닐로 다리를 감고 그 위에 신발을 신은 뒤, 신발 끈으로 단단히 묶고 새벽 2시부터 밤 9시까지 단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고 산길을 걸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한 번 앉으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중국에 홀로 남겨진 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는 넘어질 수 없었고,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힘든 과정이 무엇이었냐고 물으셨지만, 사실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자체였습니다. 그 고통은 지금도 제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퉁퉁 붓고 망가진 다리를 비닐로 감싸고 새벽 2시부터 밤 9시까지 한 번도 앉지 않고 산길 걸어 탈출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 자체, 그 고통은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어
Q. 한국이 아니라 굳이 영국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울러 영국 외에도 탈북자가 유럽 등의 국가로 가고 싶을 경우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 또 대략적으로라도 그 규모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지요?
박 : 탈북자라면 누구나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저 역시 다시 탈북한 후,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심양, 청도, 그리고 북경에 있는 한국 영사관과 대사관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를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여권조차 가질 수 없는 21세기의 '무국적자'입니다. 그러니 한국뿐 아니라, 어떤 나라 대사관에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떤 한국 분들은 다른 나라 난민이나 이민자들이 탈북자들보다 더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탈북자들의 가장 큰 차이는 그들에게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여권'이 있지만, 진짜 북한 주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여권도, 국적도, 자유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프리덤 조선 독자 여러분, 이런 현실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공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법적으로 세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무국적자들입니다.
한국행이 실패한 뒤, 저는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기 위해 내몽골 국경을 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북경에서 2년 동안 장사를 하며 숨어 지냈고, 그 시절은 제 인생에서 가장 불안하고 고립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 국적을 가진 목사님의 도움으로 북경 외곽에 위치한 유엔 난민기구(UNHCR) 사무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택권'을 가졌습니다. 그 선택이 저를 영국으로 인도했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 날 제가 영국에 살게 된 이유입니다.

박 씨는 북한에서의 성장 및 탈북 과정을 진솔하게 기록한 수기 <The Hard Road Out> (박지현, 채세린 공저, 한국어판으로는 '가려진 세계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출간)는 7개 국어로 번역되며 북한 현실 및 탈북자 인권에 대해 무관심하던 영국 및 유럽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스 전 문화부 장관과 영국 외무 장관 등도 박 씨 수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으며, 체코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은 소위 고난의 행군 시절을 거치며 양산된 무수한 재중 탈북 여성이 겪은 끔찍한 비극의 당사자이자 생존자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한 매우 중요한 사료다. 또한 공산 전체주의 체제가 강요한 극한 고통과 위기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도덕적 가치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는 숱한 탈북 여성들의 용기와 지혜를 엿보게 해주는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다.
Q. 영국에 정착할 때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과 영국에서 북한 인권을 알리는 활동을 하게 된 이유 혹은 계기는 무엇입니까?
박 : 영국 정착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언어’였습니다. 탈북자들은 무인도에 데려다 놔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전체주의 공산 정권을 견디어 낸 생존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저희에겐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정착 과정에서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안과 북송을 피하기 위해 언어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단지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터전'을 읽고 살아가기 위한 가장 소중한 수단으로 영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북한 인권을 알리는 활동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언어였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어와 통역을 사용했지만, 한국 분들조차 북한 현실을 정확히 모르다 보니 통역에 많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같은 한글을 쓰는 사람들이지만, 북한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처음에는 참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또 하나 놀랐던 점은 제가 2008년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많은 영국인들이 한국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반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대학교에서조차 한국학은 왜곡된 역사 위에 서 있었고, 북한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였습니다.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일부 고령 참전 용사분들만이 그나마 한국과 북한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충격은 저를 더욱 배움의 길로 밀어 넣었습니다. 저는 더 열심히 영어를 배우며, 한반도 역사를 영어로 다시 공부하며 저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Q. 영국 지방 선거에 도전한 이유 특히 영국 보수당 후보로 출마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북한 인권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는 한국 보도 등을 봤는데, 현실적으로 영국 지방 의원 역할은 해당 지역 구민의 생활 향상 등에 집중될 것으로 생각되므로 그런 출마 이유가 오히려 마이너스는 아니었는지요? 지역 유권자 반응 및 출마 경험을 통해 배운 점 등 성과와 한계를 포함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박 : 한국 뉴스와는 인터뷰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신이 제 활동을 보도한 것을 가져가 쓰는 경우가 발생했고, 그래서 왜 제가 정치에 도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은 자주 생략되곤 했습니다.
물론 "북한 인권을 알리기 위해 정치에 나섰다"라는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전해지면 마치 한국에 '배경 따지기 정치 문화'가 있는 것처럼, 제가 탈북자이기 때문에 공천을 받았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후보자로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영국인들이 제게 해준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초기, 전 세계에서 영국이 가장 높은 사망자 수를 기록하던 시기였습니다. 너무 늦게 봉쇄에 들어간 탓에 사망자가 폭증했고, 병원에서 쓸 마스크조차 제대로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개인적으로 쌀과 라면을 사서 런던에 있는 탈북민들에게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계신 탈북민 한 분께서 무려 7,000장의 마스크를 무료로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그 마스크를 1,000장씩 나누어 형편이 가장 어려웠던 요양원들에 기부했습니다.
TV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망자 소식, 가족조차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그 장면들은 저를 90년대 북한의 대량 아사 시절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길가에 쓰러진 시신들, 그 시신조차 수습할 가족이 없어 집단으로 매장되던 그 시절, 굶주림에 죽어가던 제 제자, 그리고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떠났던 아버지와 동생의 기억이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런 저의 행동을 본 영국인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난민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를 돕고 있다."
그 말이 저에게 용기와 기회를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정치에 뜻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2017년 보수당에 가입은 했지만 그것은 제가 살아갈 길에 하나의 지팡이가 필요해서였을 뿐, 직접 정치에 뛰어들려는 목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영국인들의 말 한마디, 그리고 마침 찾아온 지역 선거 기회가 제가 용기를 내어 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 후보 등록을 했을 때는 누구도 제가 탈북자라는 것, 북한 인권 운동가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후보자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경찰서를 통한 신원 조회부터 진행되는데, 저는 범죄 기록이 없었고 아이들도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지역 의원은 국회의원과 달리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제가 그동안 해 온 활동이 지역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선거에 나서며 오히려 제가 더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영국에 살면서도 저는 늘 '난민'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역 사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들은 한 번도 저를 차별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유'란 무엇인가를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저 자신이 이 사회에 당당히 녹아든 시민임을 느꼈습니다.
코로나19 당시 영국 요양원을 돌며 마스크를 나누어 주다가 '난민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를 돕고 있다.'는 말에 용기 내어 지역 정치 도전
그 전까지 '난민' 테두리에 갇혀 있었지만 지역 사회 안에서 활동하며 극복, 더 정확한 '자유'의 의미와 당당한 시민임을 자각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 박지현 씨가 2021년 3월 22일 영국 버리의 무어 사이드 구 지방 선거에서 보수당 후보 출마를 결정한 후 전단지를 돌리며 지역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필 노블/로이터 제공(Phil Noble/Reuters)
지금은 지역 교육에 참여하며 보수당 정치인 자격으로 학교 이사를 맡고 있고, 학교 운영 전반에도 직접 참여해 배우고 있습니다. 두 달 전에는 지역 당 대회에서 대내외 협력 담당자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북과 남으로 나뉘어 있고,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유대인 커뮤니티, 무슬림, 기독교, 힌두교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합니다. 마치 한자리에서 전 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 다름 속의 조화를 보며 저 역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저를 '탈북 난민'이 아닌 '영국 시민'으로 인식해 주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또한 저를 통해 북한 현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반응을 들을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습니다.
정치와 활동을 통해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때로는 목소리가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행동이 더 절실한 순간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과거는 아픈 역사지만, 그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제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유의 소중함, 오늘도 독재자들의 박해로 고통받는 이들의 현실, 그 모든 것에 눈을 감지 않도록 이끄는 일, 그것이야말로 생존자의 책임이란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저는 또한 영국 보수당 컨퍼런스에서 연설한 최초의 탈북자이기도 합니다.
Q. 현재 혹은 과거 영국에서 북한 인권 활동을 알리거나 재영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진행한 활동 및 계획이 궁금합니다. 보람 있었던 일이나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지도 간략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 제가 본격적으로 인권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입니다. 처음에는 영국인들과 함께 일하며 영어를 배우고, 서로의 문화를 익혀가던 그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때 만났던 동료들은 영국에서 제가 처음으로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이자 평생 친구들이 되었고, 지금도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뿌듯하게 여기는 일 중 하나는 영국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 생각에서 출발하여 지금 런던에 있는 '커넥트 북한(Connect North Korea)'라는 단체를 현재의 대표와 함께 설립하고 성장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펀딩을 확보한 후 탈북민들을 정식으로 고용하고, 저는 인권 운동가로 전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본격적으로 북한 인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정치도 배우고 활동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아시아 태평양 전략 센터(Center for Asia Pacific Strategy)'에서 인간 안보(Senior Fellow fir Human Security) 분야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란치스코 빅토리아 대학교(Francisco Victoria University) 산하 동아시아 센터에서도 연구원으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저에게 하나하나 '나만의 게이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게이트들이 결국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북한 독재 정권과 맞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는 유럽, 영국,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온라인 글쓰기 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쓰기 방의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메아리가 돌아오려면 먼저 소리를 내야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 말하지 못했던 아픔과 목소리들을 이제는 세상 밖으로 꺼내 말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고, 이제 곧 시작될 3기 프로그램에는 더 많은 참여자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은 어쩌면 평범한 이민자의 삶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확실한 방향이 있었습니다. 한 걸음씩, 내가 설 곳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나를 사회에 녹여냈고, 그 과정은 단지 적응이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확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징검다리는 지금도 인권, 교육, 정치, 시민사회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Q. 영국에서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체감한 영국 언론이나 정치권, 일반인의 북한에 대한 관심과 지식 정도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적 인생을 시작한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박 :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저는 그저 동양인 이웃 중 한 명으로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일반 시민 대부분은 북한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South Korea)과 '북한'(North Korea)은 구분조차 어려운 낯선 개념이었고, 북한 인권 문제는 뉴스 변두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 시절 저처럼 생존자였던 탈북민들도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북한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데 큰 한계가 있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진실도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진실도 전달되지 않는다.
나에게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다.
진실을 전하고, 기억을 공유하며, 자유를 확장하는 언어라는 무기를 갖는 것이다.
- 박지현(맨체스터)
그러나 2014년 유엔 북한 인권조사 위원회(COI)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영어를 배우고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탈북민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제는 다큐멘터리나 유튜브를 통해 북한 실상을 직접 증언하는 탈북자들을 영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한 진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도 많습니다. 영국과 유럽 전반에는 지금도 친북 성향 활동가들과 학자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아카데믹 세계에서는 북한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여전히 통용되며, 이로 인해 한국 현대사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진실이 가려지는 현실은 저에게 언어를 넘어 역사와 담론을 바로 세우는 또 다른 과제를 던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를 배운다는 것을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진실을 전하고, 기억을 공유하며, 자유를 확장시키는 언어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영국 역사도, 한국 역사도 함께 배우며 진실을 정리하고, 이를 두 언어로 전달하는 작업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서는 한국어로 글을 쓰고, 링크드인(LinkedIn)에는 영어로 내용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그렇게 두 언어로, 두 개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진실을 말하는 게 저의 활동 방식입니다.
얼마 전에는 프라하에서 열린 자유주의 학생 포럼(Liberalism Student Forum)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그 경험과 느낀 점을 기고문으로 정리해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관련 기고 - 자유는 억압의 사슬을 끊는 것이다 (Libertarianism as Abolitionism)
https://m.blog.naver.com/freedom88-/223852804657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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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2)
"나는 끝까지 말할 것..누군가는 이 참상을 기억하고, 끝내야 하기 때문."
"왜 한국 86 민주화 세대는 북한 인권 참상에 침묵하고 외면하나? 소위 내재적 접근은 위선이자 동조"
이문경승인 2025.08.23 23:49 | 최종 수정 2025.08.24 14:38 0





[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저는 끝까지 말할 것입니다...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하고, 이 참상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86세대가 과거 민주화를 외쳤다면, 오늘날 진짜 억압이 판치는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짜 자유는 나와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2023년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찰스 국왕을 직접 만난 박지현 씨. 박씨는 "영국에서 숱한 정치인과 언론인을 만났지만 북한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찰스 국왕이 북한 인권에 매우 깊은 관심과 지식을 갖고 계셔서 크게 놀랐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시며 자유민주주의로 한반도 통일을 바라는 것을 느끼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 사진 /박지현 FB
Q. 소셜 미디어(페이스북)에 찰스 국왕과 만난 것이 무척 뜻깊었다고 올려놓은 것을 봤습니다. 다른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지만, 버킹엄 궁 초대 계기 및 절차, 영국 국왕이 북한 인권에 대해 갖는 관심 등에 대해 직접 느낀 바를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박 : 제가 처음 영국 국왕 찰스 3세를 뵌 것은 2023년 2월 1일이었습니다. 2022년 크리스마스 전에 영국 외교부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는데, 동아시아인을 주제로 한 버킹엄 궁전 만찬에 저를 초대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스팸메일인 줄 알았지만, 이후 직접 전화가 와서 초대 경위를 설명해 주었을 때 너무 기뻤습니다.
사실 2021년 크리스마스에도 영국 더 타임즈가 ‘영웅 29인 리스트’를 발표하며 저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혹시 여왕을 만나느냐는 질문도 했지만, 그때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찰스 3세 국왕이 즉위 후 마련한 행사에 제가 초대받아 버킹엄 궁전 초대장도 받게 된 것입니다.
국왕께서는 저에게 "어떻게 북한을 탈출했느냐?"고 물으셨고, 북한 주민들이 세뇌된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제가 영국에 온 후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을 만났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국왕님의 깊은 관심과 진심 어린 말씀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두 손을 꼭 잡아 주시는 순간 눈물이 나왔습니다.
6개월 뒤, 찰스 국왕이 즉위 후 첫 국빈 방문 국가로 대한민국을 선정했다고 트윗으로 발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국빈 만찬 초대는 있었지만 특별한 관심은 없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방문 때는 재외동포 간담회 참석 여부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023년 10월, 중국에서 탈북민 600여 명 강제 북송 소식이 전해지며 기자들의 연락이 이어지던 중,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발신 번호 제한이라 받지 않으려 했지만, '버킹엄 궁전' 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버킹엄 측에서는 외교부가 제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고 하며, 대한민국 대통령 국빈 만찬에 저와 남편을 초대하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집 주소와 남편 이름까지 알고 있어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이후 정식 초대장과 드레스 코드 안내 메일을 받고, 2월에 뵈었던 찰스 국왕님을 11월에도 다시 뵐 수 있었습니다. 국왕님은 저를 알아보시고 "또 왔느냐, 잘 왔다."며 다정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님도 그런 모습을 보고 아마 궁금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윤 대통령님께 남편과 함께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임을 알려 드렸고, 유일하게 대한민국 국빈 만찬에 참석한 탈북민 부부라는 점에 의미를 느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영국이 바라는 한반도 통일은 바로 '자유 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Q. 최근 한국에서는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국내외 보수 진영은 친북 정권이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언젠가 화해하고 통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 및 현재 북한 정권이 자행한 온갖 반인륜범죄는 도저히 덮고 넘어갈 차원이 아닙니다. 그 체제의 직접적 피해자와 2세, 3세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향후 통일 한국이 도덕적 정통성을 갖기 위해서도, 재중 탈북자 인권을 포함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탈북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 중에서도 특히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 및 강제 북송된 경우의 참혹한 인권 유린 참상은 너무나 많은 증언이 쌓여서, 이미 수년 전 유엔에서도 정식 보고서로 채택되어 인정되었습니다.
그런 인권 유린을 직접 겪은 당사자로서 향후 북한 정권을 상대해야 할 신임 이재명 정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기탄없이 해주십시오.
박 : 저는 탈북자이며, 다른 많은 북한 여성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직접 겪은 생존자입니다. 영국 땅을 밟기까지 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히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재명 정부는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저 같은 사람들의 존재를 사실상 지워버리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2017년, 국제인권단체인 코리아 퓨처 이니셔티브(Korea Future Initiative)와 휴먼 라이츠 워치(HRW)는 "중국 내 북한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인신매매되고 있으며, 결혼, 성노예, 온라인 성산업 등으로 팔려가고 있다"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미 10년 넘게 이 범죄는 지속되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입니다.
참고 - 2017년 휴먼 라이트 와치의 북한 인권 보고서 바로 가기
https://www.hrw.org/world-report/2017/country-chapters/north-korea
그리고 최근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북한 여성들이 중국 내에서 온라인 성매매 영상에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감시를 받으며 카메라 앞에 서고, 성 착취를 당합니다. 그런데 이 채팅방에 들어와서 돈을 내고 그 여성들의 성을 소비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한국 남성들이라는 사실을 저는 직접 들었습니다.
남한 땅에서 민주화와 인권을 외친다는 사람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인신매매된 동포 여성들의 고통을 소비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민낯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인신매매 고통에 시달리는 재중 탈북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과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강하게 말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팔리고 있는 북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침묵합니까?
왜 재중 탈북 여성들의 문제, 강제 북송, 북한 정치범 수용소, 공개처형, 고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끝까지 말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하고, 이 참상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박지현 (맨체스터, UK)
이재명 정부는 이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위 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왜 재중 탈북 여성 문제, 강제 북송, 북한 정치범 수용소, 공개 처형, 고문 같은 끔찍한 참상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겁니까?
왜 과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강하게 말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팔려가고 있는 북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이재명 정부에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의가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화해는 가짜입니다.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통일은 폭력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진심으로 (남북 화해와) 통일을 말하고 싶다면, 먼저 북한 체제의 범죄를 인정하고 그 피해자들을 보듬는 태도부터 보여야 합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북한 정권에만 고개를 숙인다면, 대한민국은 그 어떤 도덕적 정통성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끝까지 말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하고, 이 참상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10년 10월 KBS 스페셜에서 방영되며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던 23세의 북한 꽃제비 여성. 당시 북한 내부에서 취재 활동을 벌이던 일본 아시아 프레스가 6월 평안남도에서 이 여성과 인터뷰를 해서 영상을 제공했다. 이 여성은 안타깝게도 얼마 후 옥수수밭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15년이 흐른 2025년 현재도 평양 특권층을 제외한 지방 북한 주민 다수가 생활고에 시달린다. 자유와 기본 인권은 당연히 누리지 못한다. 김정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략 전쟁에 당사자 및 가족에게도 제대로 통보하지 않고 북한 군인들을 멋대로 용병으로 동원해 유럽 전쟁 총알받이로 보냈다. 초기에는 용병 동원 자체를 부인하다 사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자, 최근 김정은이 직접 전사자 100명 신원을 공개하며 애도하는 모습을 연출해 동요하는 북한 민심을 누그러뜨리려 기만하고 있다. / 사진 : KBS 화면 캡처
Q. 지현 씨가 블로그에 올리신 글 중 문화전쟁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 그리고 문화계 - 문학, 영화, 음악 등 전분야 - 에 종사하거나, 하고자 하는 프리덤 조선 독자들이 꼭 새겨야 할 점이 있다면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박 :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문화 전쟁이란 다소 생소한 용어 같습니다. 북한에 대해 알아갈 때도, 북한은 굶주리는 나라, 김씨 3대 세습, 세뇌 교육은 알지만 그 세뇌 교육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다 보니, 북한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접하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많은 분이 '문화 전쟁' 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거창하거나 낯선 개념처럼 느끼지만, 북한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 전쟁을 계획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특히 김정일이 후계자로 나선 1970년대부터, 그는 "총보다 강한 것이 문화"라고 봏고 문화를 체제 유지의 중심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북한의 세뇌는 절대 고문실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동요에서 시작하고, 시와 가극, 영화, 교과서, 포스터, 심지어 말투와 억양까지도 통제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어릴 때부터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말을 시처럼 외우고 자라고, '혁명적 인간형'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5대 혁명가극 속 주인공들을 통해 배웁니다.
이것이 북한 주민들이 김씨 일가를 신처럼 받아들이고 섬기게 되는 진짜 이유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문화전쟁의 결과입니다.
김정일이 만든 문화전쟁 체제는 지금 김여정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북한의 선전 문화 부문을 직접 장악하여 최근에는 평양 문화어를 기준으로 주민의 언어까지 통제하고, 남한식 말투를 쓰거나 외국말을 흉내 내는 청년들을 사상 반동이라며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 통제를 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입니다.
이 법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입을 수 있는지, 심지어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까지 규제합니다. 이처럼 북한의 문화전쟁은 철저히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기 위한 전쟁입니다.
북한 정권이 문화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 것처럼 자유 사회에서도 문화는 사람들 인식을 조종할 수 있어, 북한은 1970년대 김정일이 직접 '총보다 강한 것이 문화"라며 문화 분야를 챙기기 시작, 현재 김여정이 이어서 철저히 주민 사상과 감정을 통제, 세뇌, 처벌 중.
그런데 한국 사회도 지금 조용한 문화전쟁 안에 있습니다.
한국은 다양성이나 자유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예술이나 인권 중심 서사는 교묘하게 배제되고, 대신 북한 체제를 "그 나름의 체제"로 미화하거나 "분단의 피해자"처럼만 그리는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계가 점점 이념적으로 한쪽에만 기울고 있는 점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프리덤 조선 독자들 중에서 문학, 영화, 음악, 예술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문화는 단순히 감성의 표현이 아니라, 세계관을 전달하는 무기입니다. 진실을 감추는 문화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결국 진실을 믿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침묵하는 사이에, 거짓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됩니다.
북한 정권이 문화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 것처럼, 자유 사회에서도 문화는 사람들의 인식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화 속에서 먼저 싸워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예술, 억압을 고발하는 문학, 자유를 노래하는 음악이 없다면 아무리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라도 사상과 감정은 이미 독재에 잠식당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는 늘 전쟁이며, 우리는 지금 그 전선 위에 서 있습니다.
Q. 박지현 씨는 1968년 생이므로, 한국으로 치면 86세대 끝물입니다. 남한 86 세대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자부하며 30대 초반부터 국가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86세대의 민주화 기여를 인정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그 세대는 이념적으로는 가장 종북 좌파적 성향이 강합니다.
또 86 세대는 남한의 군사 정권이 독재였다고 아직도 증오하며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선군 정치와 억압 체제가 일상인 북한 독재 체제에게는 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소위 '내재적 접근론'으로 북한의 반민주적, 반인권적 체제를 이해하고 합리화하며, 북한 실상에 대한 비판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저도 그 세대 출신 현역 정치인에게서 직접 '남한은 일제에서 해방된 후로도 미군정을 거치며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노예가 되었지만, 북한은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김일성이 집권했으므로 민족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정신적 조국 역시 북한이므로, 북한에 충성해야 한다.'라는 말을 직접 듣고 충격 받은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직접 살아보고, 탈북해 중국을 거친 끝에 근대 자유민주주의 종주국이라 할 영국에 정착해 정치권에도 도전해 본 입장에서, 지현 씨가 그러한 남한의 같은 세대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박 :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살았고, 목숨을 걸고 탈출했으며, (다른 많은 북한 여성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인신매매 피해를 겪었습니다. 지금은 근대 민주주의가 시작된 나라, 영국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며 인권 활동과 정치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오늘 한국의 86세대 제 또래 정치인들, 학자들,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과거 한국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지금도 독재를 비판하며 자유와 권리를 외칩니다. 하지만 왜 북한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입니까?
북한은 제가 직접 경험한 곳입니다.
자유로운 직업 선택과 거주 이전, 신앙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인권도 전혀 없고, 조금이라도 말을 잘못하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가정 내에서도 감시를 당하고, 해외 뉴스를 본다는 이유만으로도 처형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남한 86세대 일각에서는 "북한은 북한만의 문화가 있으니, 서구식 인권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소위 '내재적 접근론'을 내세워 현실을 외면합니다. '유교식 효(孝) 문화', '사회주의 공동체 정신' 운운하며 북한 정권에 면죄부를 줍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억압은 억압이고, 고문은 고문이며, 굶주림은 굶주림입니다.
'문화' 라는 이름으로 인권 침해를 포장하지 마십시오.
'내재적 접근'이란 북한 정권의 범죄를 정치적으로 외면하겠다는 선언일 뿐입니다.
그것은 억압받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교만한 태도이며, 과거 당신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권위주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위선입니다.
당신들은 한국 군사 정권 시절을 독재 정권이라 비난하지만, 그 시절에도 남한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고, 이사도 할 수 있었으며, 외국 방송을 들을 자유도 있었습니다. 또 외국으로 이민도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이 죄입니다.
그 차이를 알고도 침묵하는 것은 중립도 아니고, 동조입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 정권이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공식 규정했습니다.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종교 박해, 강제 낙태, 성폭력, 인신매매가 아예 국가 시스템이 된 나라가 북한입니다.
현재 제가 사는 영국은 2015년 현대판 노예제법(Modern Slavery Act)를 도입해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을 불법화했습니다. 이 법은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겪어야 하는 성노예와 인신매매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매우 진보적인 법률입니다. 저는 이 법을 접하면서 확신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억압자를 단죄한다."
그런데 왜 남한 일부 정치권은 피해자가 아니라, 억압자에게만 관대한 겁니까?
86세대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이들이 북한 주민들이 단지 외국 방송을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용소에 끌려가고,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 당하고, 굶주림을 피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국경을 넘는 여성들이 북송되어 처형 당하는 참혹한 동포의 현실에 침묵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이념적 동지의식입니까?
북한 정권에 대한 정치적 계산입니까?
어떤 이유건 그것은 비겁함이며, 당신들이 과거 비판했던 권력자들보다 더 한 위선일 뿐입니다.
진짜 자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귀를 기울일 용기에서 시작된다.
남한 86 세대는 왜 북한 동포의 인권 참상에 외면하고 침묵하는가?
왜 피해자가 아니라, 억압자에게만 관대한가?
- 박지현 (맨체스터, UK)
마지막으로 저는 영국에서 배웠습니다.
진짜 자유란, 나와 다른 사람의 고통에도 귀를 기울일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요.
북한은 단순히 이념이 다른 체제가 아닙니다.
국민의 생존권과 사상, 표현, 종교까지 철저히 통제하는 전근대적 전체주의 국가입니다.
한국의 86세대가 과거 순수한 마음으로 민주화를 외쳤다면, 오늘날 진짜 억압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서울 광장에서 외칠 수 있는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닙니다.
북한의 밤 하늘 아래 몰래 라디오를 켜고 숨죽여 외국 방송을 듣는 사람들, 진실을 알리려고 목숨 걸고 고군분투하는 북한 내부의 고발자들,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는 여성들과 아이들 속에 살아 있는 게 진짜 민주주의입니다.
그들을 보지 못하는 '민주화 세대'라면, 이미 민주주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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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기고
[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3)
"북한 인권 실상 알게 되면 달라지는 서양인들, 서구의 도덕적 품성에 감명."
"남한 86세대는 위안부 문제 정치적 접근, 위안부 소녀상 설치하려면 지금도 인신매매로 고통받는 탈북 여성상도 전 세계에 설치하라"
"비엔나 북한 태권도 연맹 대북 불법 송금 루트 강한 의혹...오스트리아는 과거부터 전 유럽의 사치품, 무기, 외화를 북한 전달 루트로 악용"
이문경승인 2025.08.28 01:24 | 최종 수정 2025.09.03 00:12 0






영국 정착 탈북자 박지현 씨는 유럽 내 북한 스파이 실상에 대한 상세한 지식 외과 함께 한국 진보 세력 특히 86세대가 보이는 정치적 편향과 북한 인권 무시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했다.
Q. 영국 및 유럽, 캐나다 등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추종하는 좌파라도, 북한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혹시 영국에서 지내면서 사상적으로는 좌파인데도 그렇게 단호한 반북한 입장을 취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박 :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행사에 참여하다 보면 북한을 잘못 이해하는 학자나 외교관, 정치인들을 볼 때는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면, 다음 행사를 할 때면 인권에 대한 질문은 모두 저에게 답변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서양인들의 도덕적인 품성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북한에 대해 잘못 알던 서양인들 북한 인권 실상 알게 되면 태도 달라져...서구의 도덕적 품성에 감명."
Q. 반대로 영국에서 친북 활동가나 학자들을 만난 적은 있습니까? 아울러 공개적으로 북한 인권 운동을 하게 된 후 신변 위협을 받은 적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 : 저는 공개적으로 해킹 메일을 받기도 하고, 지금은 대사관 대사를 사칭하는 메일도 옵니다. 또 제 이름으로 유명한 분들께 해킹 메일도 보내는 일도 발생해서, 심지어 FBI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또 비엔나에 있는 북한 태권도 그룹 실체를 파헤치면서 신변 위협이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들을 이겨낸 결과 그들을 미디어 앞으로 끌어낼 수도 있었기에 보람을 느낍니다.
비엔나에 있는 북한 태권도 그룹 실체를 알리기 위해서는 미디어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올해도 비엔나 코미디 쇼 프로그램에서 다루었고, 또 프랑스 기자와 끈질기게 북한 태권도 그룹을 압박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본부를 둔 북한 국제 태권도 연맹(ITF) 관계자들이 유엔 제재를 위반하고 북한으로 불법 송금을 했다는 의혹으로 파문이 일어난 사건은 올해 3월 한국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 사진 = KBS 보도 화면 캡처 @프리덤 조선
중국 대사관 앞에서도 늘 시위를 하기에, 중국 대사관은 저희가 가면 영국 경찰도 부릅니다. 하지만 영국 경찰에게 저희 활동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지지를 해주기도 합니다.
※ 오스트리아는 비엔나에 있는 북한 국제 태권도 연맹이 유엔 제재를 위반해 금, 코뿔소 뿔, 불법 외화 송금 등을 했다는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했다. 당국은 리용선 총재 측의 혐의가 확실하며, 잠재적 위험도 커서 방치하면 '오스트리아의 명예를 훼손'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 2020년부터 그를 추방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법원은 리총재의 월수입이 비교적 적은 5,256유로(5,702달러)임을 들어, 그가 불법 대북 송금에 관여한 직접적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이에 영국 정착 탈북자 박지현 씨는 북한 태권도 연맹(ITF) 총재는 "운동선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그와 그의 아내, 그 아들은 평양으로 자금을 흘러들어가게 하는 요원"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언론에도 크게 보도된 북한 태권도 연맹 문제. 박지현 씨의 폭로로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던 유럽 각국 언론이 크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 사진 = 독일 Die Presse 박지현 제공 @프리덤 조선
당시 박 씨는 신변 위협 및 해킹 때문에 일부 언론과 인터뷰는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용기 있게 유럽 내 북한 조직의 실태를 알렸다.
박 씨는 프리덤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태권도 연맹(WT)과 국제 태권도 연맹(ITF)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면서, "국제 태권도 연맹은 북한 조직이다. 이를 모르고 태권도에 대한 관심으로 멤버십으로 가입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원으로 포함되는 경우도 많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세계 태권도 연맹과 국제 태권도 연맹은 엄연히 다른 기구, 국제 태권도 연맹은 북한 조직...모르고 멤버십으로 가입해 북한으로 흘러가는 자금에 포함되는 경우도 빈번, 각별히 주의해야
프랑스 국제 보도채널 《프랑스 24》는 이러한 박 씨 주장과 함께 "오스트리아는 전 세계 스파이 소굴"임을 지적하며, 인구 900만에 불과한 중립적 EU 회원국 오스트리아 정보기관 역량 부족을 꼬집었다.
스파이 전문가 지크프리트 비어 씨는 북한이 비록 오스트리아의 "중요" 관심 국가지만, 오스트리아가 북한인들의 비밀 활동을 "진지하게 조사할 수단이 부족하다" 고 경고했다.

EU 중립국 오스트리아는 전문적 방첩 기관 역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국제 스파이 소굴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으며, 북한 특권층도 오래전부터 오스트리아에 거점을 두고 유럽 전역에서 무기 및 사치품, 외화 등을 보내는 통로로 비엔나를 이용했다. 이같은 사실은 박씨의 노력과 유럽 미디어들의 공동 추적으로 프랑스 국제 보도 전문 채널 《프랑스24》 2025년 3월 11일 자 및 독일, 오스트리아 언론에 상세히 보도었다. / 사진 = 프랑스24 화면 캡처 @프리덤 조선
"오스트리아 비엔나 북한 태권도 연맹은 유엔 제재 위반 불법 대북 송금 루트, 오스트리아는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각종 무기 및 사치품, 외화 등을 북한으로 송금하는 루트로 악용"
북한은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프랑스 24》는 1974년부터 유럽에서 암약하던 비엔나 주재 평양 외교관 김정률이 1994년 오스트리아로 망명하기 전까지 20여 년 간 북한 독재자들을 위해 유럽 전역에서 무기와 사치품을 구매했음에도, 단 한 번도 조사를 받지 않았음을 폭로했다.
또 김일성 처남 김광섭이 2020년까지 27년간 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냈으며,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북한은 알프스산맥에서 무려 19만장의 여권을 인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Q. 최근 남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직후 국민적 공분 속에 구속되었던 조국, 윤미향을 석방했습니다. 윤미향은 종군 위안부 후원금 횡령 비리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큰 비난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이들은 모두 86세대(60년대 출생, 80년대 학번) 운동권 출신입니다.
한국 86세대는 대학 시절부터 매주 특정한 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이슈 등을 제기하는 항의 집회를 초장기적으로 이어왔습니다. 또 위안부 소녀상을 국내외 각처에 설치하고, 일본 전쟁 피해자라고 선전하며 반일 감정을 부채질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진행형인 더 끔찍한 북한 인권 특히 탈북 여성들의 참담한 인권 현실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이런 현실 이면에는 이른바 '갓끈 전술'이 작동한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습니다.
지현 씨는 북한에 있을 때 혹시 갓끈 전술에 대해 들어본 바 있습니까? 또 위안부 소녀상 설치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갓끈 전술을 국내에 소개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유원장은 북한 대남 전략 전술 연구 권위자다. / 사진 = 자유민주연구원 外 @프리덤 조선
※ 갓끈 전술에 대해서는 안보 전문가 유동열 박사가 권위자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미래한국 2022년 10월 말에 기고한 글을 통해, 광범위한 반일(反日) 선동 이면에는 북한 김일성의 갓끈 전술이 작동한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논증했다.
갓끈 전술이란 1969년 김일성이 간첩 및 공작원 양성소인 금성정치군사대학(김일성정치군사대학 →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을 방문해 행한 연설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이후 1972년 북한군 총정치국 소속 정치군관 양성소인 ‘김일성 정치대학’ 졸업식 연설에서도 김일성은 이를 재차 강조했다.
김일성은 연설에서 “남조선 정권은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끈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사람의 머리에 쓰는 갓이 두 개의 끈 중에서 하나만 잘라도 머리에서 날아가듯이 남조선 정권은 미국이라는 끈과 일본이라는 끈 중 어느 하나만 잘라버리면 무너지고 만다. 남조선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의 두 끈 중에서 어느 하나만이라도 잘라내기 위한 갓끈 전술을 써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남조선 혁명 완성을 위한 반미, 반일 투쟁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 저는 북한을 직접 겪고 탈출해 현재 영국에 정착해 인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북한과 남한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왜곡된 현실을 강력하게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선 북한은 반일 감정을 체제 유지와 정권 선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은 북한은 '김일성이 일본과 싸워 해방을 이끌어냈다'고 선전합니다. 사실상 김일성 정권은 일본 식민 통치가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고, 반일 감정을 키우는 것은 북한 체제의 핵심 선전 도구입니다.
제가 흥미 있는 점은 위안부 문제가 한국보다 먼저 북한에서 공식 제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80년대 후반 북한은 종군 위안부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방송으로 내보내며 피해를 강조했습니다. 저 역시 그 방송을 보며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그 후 북한 내에서 이 문제를 사라졌습니다. 뒤늦게 그 선전이 한국으로 넘어가 광범위한 반일 감정과 정치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한국 86세대 정치인들과 일부 단체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북한의 전략적 이용이란 점을 간과 혹은 은폐한 채, 위안부 문제를 반일 정서의 정치적 도구로 계속 활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영국에서 위안부 행사에 참석했을 때, 중국 내 북한 여성들이 겪는 인신매매와 성매매 현실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많은 학자가 이를 철저히 회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남한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는 세력은 진정한 여성 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선전과 반일 감정 조장을 위한 수단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북한 여성들은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또 성 노예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 현실은 한국 내 위안부 운동의 화려한 정치적 장식 뒤에 가려져 있습니다. 진정한 여성 인권 문제라면 과거의 역사적 상처에 머무는 게 아니라, 오늘 현재 진행형인 현실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역사를 바로 세우고, 진정한 인권을 위해 싸우려면 북한의 반일 선전 전략과 한국 내 일부 세력의 정치적 이용의 실체부터 냉철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감정적 선동과 왜곡을 넘어서, 피해자들의 존엄과 인권 회복에 진심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특히 역사 문제는 사실과 인권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정치적 선전 도구로 전락한 위안부 운동은 피해자들의 존엄을 훼손하는 또 다른 폭력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으로서, 지금도 고통받는 같은 처지의 무수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인신매매로 고통받는 동포 여성들을 외면하는 반쪽짜리 인권 논의와 정치권의 위선에 저는 분노합니다.
한국의 86세대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싸웠다면 당신들은 과거사의 명분이 아닌 오늘 벌어지는 현실의 참혹한 북한 여성 인권에 앞장섬으로써 진심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 고통에도 똑같은 눈과 마음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만 당신들이 진짜 정의고, 진짜 민주주의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한 86세대는 위안부 문제를 여성 인권 아닌 정치 선전과 반일 감정 조장 수단으로 접근...위안부 소녀상이 전 세계에 설치할 문제라면, 지금도 인신매매로 고통받는 탈북 여성상도 전 세계에 설치하라"
Q.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100여 년 가까운 과거의 실체적 논란도 이견이 분분한 위안부 소녀상 설치 운동 같은 저열한 반일 감정 선동에 맞불을 놓기 위해 재중 탈북 여성 인권을 부각하는 탈북 여성상 또는 탈북 모자상 설치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반면 당사자들의 아픈 기억만 자극할 뿐이라며 반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탈북 여성들이 겪은 고통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알리는 일은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탈북 모자상 설치를 반대하며 그들의 아픔을 건드린다는 식으로 이유를 댔다면, 그런 이들은 단 한 번도 피해자들인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어낸 구실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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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기고
[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4)
"우크라 전 북한군 가담은 전례 없는 국제 범죄...세계 질서 균열 속 신(新) 전체주의 연대 살육 실험장"
"대북방송 중단은 북한 주민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목소리를 끊는 것...우리가 가장 먼저 잃게 되는 자유의 시작"
이문경승인 2025.08.319 | 최종 수정 2025.09.03






북한은 러시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최대 1만 5천 명 이상의 북한 군인을 파병했다. 초기에는 러북 모두 참전 사실 자체를 부정하며 우크라이나의 북한군 참전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쿠르스크 등 현장에서 우크라이나 군과 교전하는 북한군 부대 존재가 계속 포착되고, 사상자가 속출하다가 급기야 북한군 출신 포로들이 잡히며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올해 들어 참전 사실을 인정했다. 아울러 김정은은 러시아의 승리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천명했다. / 사진 = New York Post @프리덤조선
Q. 조금 주제를 바꾸겠습니다.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 불법 합병으로 시작된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본토 전면 침공으로 커진 후 3년 반이 넘도록 계속 중입니다. 그 사이 북한 군인들도 푸틴의 용병으로 동원되어 유럽인을 죽이고, 또 죽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세계 최악 불량 국가 북한 군인들까지 유럽을 유린하고 있음에도, 유럽도 너무 경각심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EU 차원의 강력한 대북 추가 제재나 유럽을 거점을 활동하는 북한 간첩 조직에 대한 수사 강화 등의 소식은 잘 들려오지 않습니다.
또 한국 사회도 너무 무관심합니다. 아무래도 멀리 떨어진 유럽 전쟁이고 정보도 적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반면 소수지만 현행 헌법상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니, 해외에서 포로로 잡히면 마땅히 대한민국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당사자들이 한국행을 원하면 전원 수용하겠다는 원칙을 밝혔지만, 현 이재명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할지 알 수 없습니다.
브렉시트로 EU를 탈퇴했어도, 한국보다는 훨씬 러우전 정보도 많이 접하고 실존적 위협으로 느낄 영국에 정착한 북한 출신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박 : 저는 북한에서 태어났고, 공산 독재 체제에서 자랐으나 탈북하여 중국을 거쳐 영국에 정착한 사람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지금, 제가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나 다릅니다.
특히 2022년 이후 본격화된 러우전, 그리고 북한군이 투입되어 유럽 영토에서 유럽인을 학살하고 또 북한군도 죽어가는 현실은 저에게 다시 한번 세상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침묵에 익숙한지 절감하게 합니다.
2024년 중반 이후, 다수 외신과 북한군 포로들의 영상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북한 정권은 러시아 푸틴 정권과 군사 협약을 맺고, 북한군을 우크라이나 전선에 지상군으로 투입했습니다.
이는 단순 외교 협조나 물자 지원이 아닙니다. 세계 최악 인권 탄압국이자 유엔에서 '반인도범죄국'으로 지목된 정권이 타국의 전쟁에 병력을 보내 직접 살상에 가담하는 전례 없는 국제 범죄입니다.
북한 병사들 다수는 자신들이 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러시아 열차에 실려 유럽 땅에 도착하고, 총을 들고 전장에서 유럽 시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입니까?
아닙니다. 이건 북한이라는 반인륜적 정권이 세계 질서의 균열을 틈타 국제 사회의 안면몰수식 침묵 속에 벌이는 '신(新) 전체주의 연대의 살육의 실험장'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한국 정부와 정치권, 언론, 그리고 진보 인사들이 한결같이 이 사태에 침묵하거나 외면한다는 점입니다. 한국 헌법은 분명히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으며, 이에 따르면 북한 주민 역시 원칙적으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무 설명도, 교육도, 선택권도 없이 전쟁터로 끌려가 살육 병기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에 대해 한국 정부나 사회는 아무런 구출 노력도, 항의도, 문제 제기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 진보 세력은 러시아의 거짓 선전을 그대로 되뇌며, 우크라이나를 '네오나치'로 몰아붙입니다. 이런 게 북한 체제의 세뇌와 무엇이 다릅니까?
박 씨 말대로 우크라이나에서 포로로 잡힌 북한군 인터뷰에 의하면, 북한 군인들은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로 현장에 투입되는 상태다.
북한은 남성은 10년, 여성은 8년의 복무기간을 기본으로, 17세 무렵부터 군 복무 의무를 진다. 의무 복무기간은은 다소 변동이 있으나, 최장 13년까지 가능하다고 2023년 CIA(미 중앙정보국)가 밝힌 바 있다. 이런 북한 군대 특성상 4-5년 넘게 부모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군생활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유럽 땅에 끌려가 살상 기계가 되고, 자신들 역시 대량으로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고 불구자가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 우크라 전쟁 쿠르스크 지역 등에서 포로로 잡힌 북한군 부상자들. 윗줄 왼쪽 북한군 포로는 부상이 심해 생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러북이 북한군 참전을 은폐하던 2024년 12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전사한 북한군 신원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의 얼굴을 불태웠다."는 사실을 보고하며 텔레그램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후 올해 들어 러북은 북한군 참전을 마지못해 인정했으며, 최소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북한군 사상자는 현재도 늘고 있는 상태다.@프리덤 조선
2025년 8월 말 현재 기준 가장 최신 추정치로 우크라이나와 미국 측은 북한군 참전 규모 1만 2천 명 중 이미 4,00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반면 한국 국정원은 북한군 1만 5천 명 참전, 사망자는 600명이라고 보고했다.
독재국가 특성상 정확한 통계는 그들이 밝히지 않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불과 1년도 안 된 사이에 수백~수천 명의 북한 젊은이들이 푸틴 침략 전쟁 희생양으로 사상자가 된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김정은은 초기 참전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침묵하던 태도에서 전사자 100명 시신 사진을 공개하며 위로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9월 초 베이징 전승절에서 러시아에 이어 북한이 거의 서열 3위에 오를 정도다. 러 북 중 밀착이 어느 때보다 강화되는 가운데 특히 북한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이를 종합해 판단컨대, 미국이나 우크라 당국이 파악한 것보다 더 많은 북한군이 희생되고, 북한 무기도 많이 투입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민족인 북한 군인들이 이처럼 무더기로 죽어가도 한국 사회는 보수 거의 무관심 일변도다. 종북 세력은 아예 러시아 편을 드는 경향이 강하다. 특이한 것은 범 보수 진영 내에서도 러우전에 관한 입장이 크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한국 보수 진영 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프리덤 조선은 여러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어떤 선택권도 없고,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모르고 죽으러 끌려 나온' 북한 주민도 원칙적으로 북한 영토를 벗어나는 순간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헌법적 정체성의 보호를 더 강력하게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박 씨의 호소에 공감한다.
박 씨는 국내외 러시아 옹호자들에게도 다음과 같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박 : 러시아를 옹호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빼앗았기 때문에, 러시아가 다시 되찾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거짓말입니다. 크림반도는 역사적으로 타타르 족과 투르크 계 민족이 주를 이루던 지역입니다. 1783년 제정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병합해서 러시아령이 되었지만, 1954년 구소련 시절 니키타 흐루 쇼프가 우크라이나 SSR에 행정권을 이관했습니다.
이후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국제사회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영토로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그에 따라 유엔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유 국가들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크림반도 문제를 '러시아의 정당한 반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 또는 악의적인 왜곡입니다.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 병합이 정당하다는 주장은 역사에 대한 무지 또는 악의적 왜곡...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UN 포함 대부분 자유국가는 불법으로 규정
현재 한국에서도 러시아가 2차 대전 승전국이라는 기묘한 논리가 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은 무엇입니까?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감행한 김일성 뒤에는 당시 소련 스탈린이 있었습니다. 지금 푸틴은 그 구소련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러시아가 2차 대전 승리만 계승하겠다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6.25 침략과 학살 책임은 부인하는 것,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일부 한국 좌파 인사들의 태도야말로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이중성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유럽이 왜 이 전쟁에 이렇게 민감한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유럽은 20세기에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결국 대전으로 이어질 전체주의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떻게 확산되며,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연대한 신(新) 전체주의 축(The Axis of Neo-Totalitarianism)은 단순하게 한 국가의 문제, 한 지역의 갈등이 아닙니다. 이것은 21세기 자유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이며, 전 인류의 보편 가치에 대한 도전입니다.

- 2025년 8월 초순 런던 트라팔가 광장 앞길에서 프리덤 조선 취재진과 만나 환하게 미소 짓는 박지현 씨. 박 씨는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위기감을 상세히 설명하며, 푸틴의 불법 전쟁에 북한군까지 개입한 사태의 본질은 21세기 자유 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이자 전 인류의 보편 가치에 대한 도전 즉 문명 자체에 대한 심각한 도발 징후라 강조했다. @ 프리덤 조선
많은 한국인들은 유럽이 왜 이 전쟁에 이렇게 민감한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유럽은 20세기에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전체주의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떻게 확산되며,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연대한 신(新) 전체주의 축(Axis of Neo-Authoritarianism)'은 단순하게 한 국가의 문제, 한 지역의 갈등이 아닙니다. 이것은 21세기 자유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이며, 전 인류의 보편 가치에 대한 도전입니다.
북중러가 연대한 "신 전체주의 축(The Axis of Neo-Totalitarianism)"은 단지 한 국가나 지역 갈등이 아니다. 21세기 자유 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이자, 전 인류의 보편 가치에 대한 도전이다.
Q. 한국 새 정부는 취임 직후 대북 방송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대북 전단 살포 단속,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남쪽으로 표류해온 북한 주민 해상 송환에 이은 조치입니다. 국가정보원이 관리해온 ‘인민의 소리’ ‘희망의 메아리’ ‘자유 FM’ ‘K뉴스’ 등 라디오 방송과 국정원의 대북 TV 방송이 지난 6월 모두 송출을 중단했습니다. 이는 역대 가장 종북적이라 평가받는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일방적인 각종 대북 유화책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도 운영하던 대북 방송까지 전면 송출을 금지하는 한편, 개인적인 방북 허용과 북한 방송도 남한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여권에서는 본격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반응은 "개꿈", "남한과 마주 앉을 일 없다.", "비핵화 운운은 개소리"라는 증오 섞인 막말 뿐인 상태다. / 사진 = KBS 자료 화면 캡처 @프리덤조선
이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등의 시민단체가 헌법재판소에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며, 前 외교부 인권대사 제성호 중앙대 교수 등도 헌법 4조 자유평화통일 원칙 취지 위반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북한은 김여정이 직접 남한에서 무슨 조치를 취하건 :남한과 마주앉을 일이 없다"며, 북한도 대남 확성기를 중단할 것을 기대하는 건 "개꿈"이라며 특유의 천박한 욕설로 화답한 상태입니다.
또 미국에서 지난해 말 북한인권법 재승인이 무산됐으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예산 절감을 이유로 일론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가 이끈 정부효율부(DOGE)의 대대적인 조치 여파로, 수십 년간 진행된 VOA(미국의 소리)와 RFA(라디오 프리 아시아) 등도 모두 중단된 상태입니다. 미국 연방 법원에서는 VOA와 RFA 폐쇄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렸지만, 2025년 8월 말 현재 반년이 가깝도록 정상화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대대적 연방 정부 기관 축소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머스크가 수장을 맡았던 정부효율부(DOGE)의 조치로 VOA, RFA, VOE(Voice of Europe) 등이 수십 년만에 모두 중단된 상태다. 이에 냉전 시대부터 동구권 등 공산국가의 수십 억 주민에게 큰 희망이던 정보 통로는 존폐에 놓였고, 자유 세계의 적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다. /사진 = VOA 유투브 홈페이지 캡처 @ 프리덤조선
한국 새 정부여당은 전통적으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다수 포진되어 그렇다고 쳐도, 한때 자유세계 리더이자 꺼지지 않는 희망의 등대로까지 불리며 공산주의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이런 대북 방송을 중단한 사실에 안보 및 인권 분야에 오래 종사한 국내외 많은 인사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지현 씨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박 : 저는 북한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몰래 라디오를 켜고 남한 방송을 듣던 이들이 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삶'을 처음 알게 되는지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밤마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단파 라디오를 맞추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존엄을 향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대북 방송을 끊는다는 것은 단순한 방송 송출 중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희망의 끈을 자르는 것이며, 독재 체제에 동조하는 비겁한 외면입니다.
북한은 하루도 빠짐없이 남한을 비난하고, 김정은 체제를 선전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북한은 유튜브와 SNS 사이버 공작을 통해 세계를 기만하며 자기들 정권을 미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런 비대칭적 현실 앞에서, 스스로 입을 막고 귀를 닫는 선택을 하는 겁니까?
대북전단 - 그 전단 속에는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이 신(神)이 아니란 걸 처음으로 알게 해주는 정보와 사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물자나 돈이 아니라 정보가 북한 주민들의 각성을 이끌어 냈고, 북한을 탈출할 결심을 하게 했습니다. 그 전단 한 장, 그 USB 하나가 북한 안에서는 생명처럼 귀중합니다.
그런데 방송과 전단, USB 같은 것은 막으면서도 "개별 방북은 허용하자"라고 한다면, 대체 누구를 위한 방북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들었던 외부 세계 방송과 정보가 폐쇄된 사회의 유일한 빛이었다고 주장한다. / 사진 = RFA 기사 화면 캡처 @프리덤조선
북한 주민을 위한 방북입니까, 아니면 김정은 정권을 위한 방북입니까?
정보는 보내지 못하게 하면서, 김정은의 '외화벌이'에만 기여하는 방북은 허용하자는 것은 비겁한 거래입니다. 그건 인도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 정권에 협조하는 정치적 유화책입니다.
지금 북한에는 중국에 팔려간 탈북 여성들, 억류된 정치범들, 남한 등 자유세계 정보를 접했다는 이유로 고문 처형 당하는 젊은이들, 정권에 반기를 드는 주민들, 심지어 해외에 나갔다가도 강제로 송환당한 사람들이 버젓이 존재합니다.
이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이 무엇입니까?
바로 진실을 들려주는 것, 자유세계의 목소리를 북한 땅끝까지 날려보내는 것, 그래서 그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남북 대화와 인도적 교류, 평화적 협력, 말은 다 좋습니다.
그게 목표라면 먼저 물어야 합니다.
- 김정은은 왜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가?
- 김정은은 왜 외부 세계의 정보를 차단하는가?
- 김정은은 왜 방송을 불허하고, 라디오를 몰수하며, USB를 소지하면 사형 대상으로 취급하는가?
- 김정은은 왜 북한 주민을 자유롭게 가지도, 오지도 못하게 하는가?
- 김정은은 왜 최근 개장한 원산 갈마 휴양지에 한국인들을 초대하지 못하는가?
- 김정은은 왜 이산가족 상봉을 이루지 않는가?
우리는 이런 건 묻지 않습니다.
아니, 묻지 않도록 스스로의 입을 닫습니다.
진실을 포기하고, 정보 송출을 중단하고, 전단과 USB 유입을 금지하고, 체제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멈추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북한 주민들을 김정은의 수용소에 영원히 가두는 데 협조하는 것입니다.
진실이 없는 남북대화는 거짓이고, 정보가 없는 남북 교류는 세뇌에 불과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지금 듣고 싶어 하는 건 바로 우리의 목소리입니다.
"대북방송 중단으로 그런 목소리를 끊는 것은 우리가 가장 먼저 잃게 되는 자유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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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기고
[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1)
"나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 영국에서 자유의 소중함 온몸으로 체험"
이문경승인 2025.08.22 00:07 | 최종 수정 2025.08.23 23:08 0
[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나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 영국에서 자유의 소중함 온몸으로 체험"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자, 한반도 장기 분단 7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여전히 분단의 벽을 허물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2023년 말부터 소위 '적대적 2국가론'을 들고나오며 기존까지의 민족 통일 노선을 전면 폐기하고, 분단 고착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비록 적화 통일이라도 분단된 민족을 기어코 통일해야 한다는 김일성 유훈마저 저버린 것이다.
프리덤 조선은 이념과 체제 차이로 갈라진 남북의 영구 분단을 주장하는 적대적 2국가론에 반대한다. 북한 2500만 동포 역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보장되는 선진화된 체제에서 자유와 인권, 번영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이미 고령화되어 상당수가 고인이 된 이산가족 외에도 분단으로 인한 각종 기회비용은 너무나 크다.
김정은 정권이 영구 분단 적대적 2국가론을 들고나온 배경에는 그 체제가 수십 년간 자행한 참혹한 인권 말살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특히 탈북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북한 실상과 탈북 이후 북한 동포들이 겪어야 했던 인권 유린은 실로 경악할 수준이다. 아무리 부정하고 외면해도 진실은 변하지 않으며,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할 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올 것이다.
20세기 말 공산주의 자체 모순으로 인해 구소련 등 동구권 몰락 속에 북한 역시 공산주의 배급 체제가 붕괴했고, 최저 수십만 명에서 최대 300만 명대로 추산되는 주민들이 굶어죽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북한 주민이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넘었다. 이들은 중국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늘 쫓기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했다. 특히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된 탈북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많은 이들이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모진 처우 끝에 목숨을 잃었지만, 살아나 석방된 이들은 다시 중국으로 탈출했다.
그중 약 3만여 명은 대한민국으로 탈출했고, 현재 한국에 정착해 성공한 경우도 많다. 제3국 행을 택한 탈북자들도 있다.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탈북자가 정착한 나라는 영국이다. 2025년 현재 영국 정착 탈북자는 약 700명 전후라 하지만, 2세를 포함하면 최대 1000명대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은 한국행을 택해도 정착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영국행을 택한 탈북자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북한에서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영국 정착 탈북자들은 체제만이 아니라 언어, 피부색, 문화 모두가 낯선 환경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 셈이다.
이들 역시 일종의 한인 디아스포라 일원이며, 장차 한반도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로 나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함께 해야 할 동포다. 우리는 더 늦지 않게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삶을 돌아보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프리덤 조선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올해 8월 초,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 중 맨체스터의 박지현 씨를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6년 맨체스터 무어사이드 선거에 보수당 후보로 의원직에 도전하는 박지현 씨.
박 씨는 영국 정착 탈북자들에게 영어를 교육하는 등 정착을 돕는 활동을 적극 전개했다. 또 영국과 유럽에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던 북한의 실상 및 재중 탈북 여성들의 참혹한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해 증언하는 등 인권 활동에 힘쓴 공로로 2020년 영국 국제 앰네스티 인권상을 수상했다. 또 2021년 탈북민 최초로 영국 지방 의회 선거에 출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씨는 또한 7개 국어로 번역된 <가려진 세계를 넘어> (박지현, 채세린 공저, 도서출판 슬로비. 2021년 한국어판 출간. 영어 제목은 <The Hard Road Out>)의 저자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 출신 플뢰르 펠르랭 씨를 비롯해 영국 외무 장관 라미, 상원 의원 앨튼 경 등 많은 인사가 박 씨 저서를 읽고 적극 추천할 정도로 서구에서 반향이 컸다.
2025년 현재에도 영국과 미국, 유럽 언론 및 대학, 연구소 등에서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들과 함께 북한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국제 인권 운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박 씨의 인터뷰는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나누어 게재할 예정이다.
- 편집국
Q. 박지현 씨의 영국과 유럽에 북한 인권 활동이 인상적입니다. 몇 년 전 출간되어 여러 언어로 번역된 진솔한 수기 <가려진 세계를 넘어 (The Hard Road Out)>가 영어권 국가들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며, 용기를 내어 증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영국이나 유럽 언론, 또 RFA 등에서 먼저 박지현 씨 소식이 많이 보도되었고, 한국 언론에서는 탈북자 최초로 영국 의회 선거에 도전하며 조선일보 등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이번에 프리덤 조선에서 영국 정착 탈북 사회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박지현 님의 활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지현 씨가 탈북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와 시기가 궁금합니다. 자서전과 인터뷰를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프리덤 조선 독자들을 위해 다시 한번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께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저는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탈북한 시기는 북한 전역에서 주민들이 대량으로 굶어 죽던 시기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를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지만, 저는 그 표현 대신 ‘국가에 의한 집단 대량학살’이라고 규정합니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단어는 마치 자연재해로 인한 단순한 흉작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식으로 국가의 책임을 흐리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굶주림에 놓여 있었지만, 저의 탈북 동기는 생존을 넘어선 절박한 가족의 외침이었습니다. 당시 군부에서 쫓기고 있던 제 남동생을 살려달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목숨을 걸고 탈북했지만, 남동생은 중국에서 강제북송되어 끝내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었고, 저는 인신매매로 팔려가 중국 농촌에서 6년간 살았습니다.
결국 2004년, 저 역시 체포되어 강제북송 당했고, 다시 지옥 같은 북한으로 끌려갔습니다.
두 번째 탈북은 저에게 마지막 희망이자 결단이었습니다. 중국에 홀로 남겨진, 저의 유일한 가족인 어린 아들을 더 이상 잃을 수 없다는 생각이 저를 다시 죽음의 강을 건너게 했고, 결국 그 결심이 저를 살려냈습니다.
Q. 탈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혹은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박 : 처음 탈북은 온성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청진에서 살았지만,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는 봄과 가을마다 온성, 종성, 샛별 쪽으로 농촌 동원을 자주 다녀서 그 지역의 지형은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새벽에 두만강을 건넌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극한의 공포였습니다. 두만강 위에 섰던 그 순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제대로 걷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움직였고, 등 뒤에서 총성이 울렸을 때 온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두 번째 탈북은 무산 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는 브로커가 있었지만, 제 왼쪽 다리는 인간이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저는 비닐로 다리를 감고 그 위에 신발을 신은 뒤, 신발 끈으로 단단히 묶고 새벽 2시부터 밤 9시까지 단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고 산길을 걸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한 번 앉으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중국에 홀로 남겨진 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는 넘어질 수 없었고,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힘든 과정이 무엇이었냐고 물으셨지만, 사실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자체였습니다. 그 고통은 지금도 제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퉁퉁 붓고 망가진 다리를 비닐로 감싸고 새벽 2시부터 밤 9시까지 한 번도 앉지 않고 산길 걸어 탈출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 자체, 그 고통은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어
Q. 한국이 아니라 굳이 영국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울러 영국 외에도 탈북자가 유럽 등의 국가로 가고 싶을 경우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 또 대략적으로라도 그 규모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지요?
박 : 탈북자라면 누구나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저 역시 다시 탈북한 후,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심양, 청도, 그리고 북경에 있는 한국 영사관과 대사관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를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여권조차 가질 수 없는 21세기의 '무국적자'입니다. 그러니 한국뿐 아니라, 어떤 나라 대사관에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떤 한국 분들은 다른 나라 난민이나 이민자들이 탈북자들보다 더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탈북자들의 가장 큰 차이는 그들에게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여권'이 있지만, 진짜 북한 주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여권도, 국적도, 자유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프리덤 조선 독자 여러분, 이런 현실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공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법적으로 세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무국적자들입니다.
한국행이 실패한 뒤, 저는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기 위해 내몽골 국경을 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북경에서 2년 동안 장사를 하며 숨어 지냈고, 그 시절은 제 인생에서 가장 불안하고 고립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 국적을 가진 목사님의 도움으로 북경 외곽에 위치한 유엔 난민기구(UNHCR) 사무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택권'을 가졌습니다. 그 선택이 저를 영국으로 인도했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 날 제가 영국에 살게 된 이유입니다.
박 씨는 북한에서의 성장 및 탈북 과정을 진솔하게 기록한 수기 <The Hard Road Out> (박지현, 채세린 공저, 한국어판으로는 '가려진 세계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출간)는 7개 국어로 번역되며 북한 현실 및 탈북자 인권에 대해 무관심하던 영국 및 유럽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스 전 문화부 장관과 영국 외무 장관 등도 박 씨 수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으며, 체코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은 소위 고난의 행군 시절을 거치며 양산된 무수한 재중 탈북 여성이 겪은 끔찍한 비극의 당사자이자 생존자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한 매우 중요한 사료다. 또한 공산 전체주의 체제가 강요한 극한 고통과 위기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도덕적 가치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는 숱한 탈북 여성들의 용기와 지혜를 엿보게 해주는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다.
Q. 영국에 정착할 때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과 영국에서 북한 인권을 알리는 활동을 하게 된 이유 혹은 계기는 무엇입니까?
박 : 영국 정착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언어’였습니다. 탈북자들은 무인도에 데려다 놔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전체주의 공산 정권을 견디어 낸 생존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저희에겐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정착 과정에서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안과 북송을 피하기 위해 언어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단지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터전'을 읽고 살아가기 위한 가장 소중한 수단으로 영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북한 인권을 알리는 활동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언어였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어와 통역을 사용했지만, 한국 분들조차 북한 현실을 정확히 모르다 보니 통역에 많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같은 한글을 쓰는 사람들이지만, 북한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처음에는 참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또 하나 놀랐던 점은 제가 2008년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많은 영국인들이 한국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반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대학교에서조차 한국학은 왜곡된 역사 위에 서 있었고, 북한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였습니다.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일부 고령 참전 용사분들만이 그나마 한국과 북한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충격은 저를 더욱 배움의 길로 밀어 넣었습니다. 저는 더 열심히 영어를 배우며, 한반도 역사를 영어로 다시 공부하며 저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Q. 영국 지방 선거에 도전한 이유 특히 영국 보수당 후보로 출마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북한 인권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는 한국 보도 등을 봤는데, 현실적으로 영국 지방 의원 역할은 해당 지역 구민의 생활 향상 등에 집중될 것으로 생각되므로 그런 출마 이유가 오히려 마이너스는 아니었는지요? 지역 유권자 반응 및 출마 경험을 통해 배운 점 등 성과와 한계를 포함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박 : 한국 뉴스와는 인터뷰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신이 제 활동을 보도한 것을 가져가 쓰는 경우가 발생했고, 그래서 왜 제가 정치에 도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은 자주 생략되곤 했습니다.
물론 "북한 인권을 알리기 위해 정치에 나섰다"라는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전해지면 마치 한국에 '배경 따지기 정치 문화'가 있는 것처럼, 제가 탈북자이기 때문에 공천을 받았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후보자로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영국인들이 제게 해준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초기, 전 세계에서 영국이 가장 높은 사망자 수를 기록하던 시기였습니다. 너무 늦게 봉쇄에 들어간 탓에 사망자가 폭증했고, 병원에서 쓸 마스크조차 제대로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개인적으로 쌀과 라면을 사서 런던에 있는 탈북민들에게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계신 탈북민 한 분께서 무려 7,000장의 마스크를 무료로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그 마스크를 1,000장씩 나누어 형편이 가장 어려웠던 요양원들에 기부했습니다.
TV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망자 소식, 가족조차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그 장면들은 저를 90년대 북한의 대량 아사 시절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길가에 쓰러진 시신들, 그 시신조차 수습할 가족이 없어 집단으로 매장되던 그 시절, 굶주림에 죽어가던 제 제자, 그리고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떠났던 아버지와 동생의 기억이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런 저의 행동을 본 영국인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난민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를 돕고 있다."
그 말이 저에게 용기와 기회를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정치에 뜻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2017년 보수당에 가입은 했지만 그것은 제가 살아갈 길에 하나의 지팡이가 필요해서였을 뿐, 직접 정치에 뛰어들려는 목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영국인들의 말 한마디, 그리고 마침 찾아온 지역 선거 기회가 제가 용기를 내어 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 후보 등록을 했을 때는 누구도 제가 탈북자라는 것, 북한 인권 운동가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후보자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경찰서를 통한 신원 조회부터 진행되는데, 저는 범죄 기록이 없었고 아이들도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지역 의원은 국회의원과 달리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제가 그동안 해 온 활동이 지역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선거에 나서며 오히려 제가 더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영국에 살면서도 저는 늘 '난민'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역 사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들은 한 번도 저를 차별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유'란 무엇인가를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저 자신이 이 사회에 당당히 녹아든 시민임을 느꼈습니다.
코로나19 당시 영국 요양원을 돌며 마스크를 나누어 주다가 '난민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를 돕고 있다.'는 말에 용기 내어 지역 정치 도전
그 전까지 '난민' 테두리에 갇혀 있었지만 지역 사회 안에서 활동하며 극복, 더 정확한 '자유'의 의미와 당당한 시민임을 자각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 박지현 씨가 2021년 3월 22일 영국 버리의 무어 사이드 구 지방 선거에서 보수당 후보 출마를 결정한 후 전단지를 돌리며 지역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필 노블/로이터 제공(Phil Noble/Reuters)
지금은 지역 교육에 참여하며 보수당 정치인 자격으로 학교 이사를 맡고 있고, 학교 운영 전반에도 직접 참여해 배우고 있습니다. 두 달 전에는 지역 당 대회에서 대내외 협력 담당자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북과 남으로 나뉘어 있고,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유대인 커뮤니티, 무슬림, 기독교, 힌두교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합니다. 마치 한자리에서 전 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 다름 속의 조화를 보며 저 역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저를 '탈북 난민'이 아닌 '영국 시민'으로 인식해 주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또한 저를 통해 북한 현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반응을 들을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습니다.
정치와 활동을 통해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때로는 목소리가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행동이 더 절실한 순간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과거는 아픈 역사지만, 그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제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유의 소중함, 오늘도 독재자들의 박해로 고통받는 이들의 현실, 그 모든 것에 눈을 감지 않도록 이끄는 일, 그것이야말로 생존자의 책임이란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저는 또한 영국 보수당 컨퍼런스에서 연설한 최초의 탈북자이기도 합니다.
Q. 현재 혹은 과거 영국에서 북한 인권 활동을 알리거나 재영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진행한 활동 및 계획이 궁금합니다. 보람 있었던 일이나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지도 간략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 제가 본격적으로 인권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입니다. 처음에는 영국인들과 함께 일하며 영어를 배우고, 서로의 문화를 익혀가던 그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때 만났던 동료들은 영국에서 제가 처음으로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이자 평생 친구들이 되었고, 지금도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뿌듯하게 여기는 일 중 하나는 영국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 생각에서 출발하여 지금 런던에 있는 '커넥트 북한(Connect North Korea)'라는 단체를 현재의 대표와 함께 설립하고 성장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펀딩을 확보한 후 탈북민들을 정식으로 고용하고, 저는 인권 운동가로 전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본격적으로 북한 인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정치도 배우고 활동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아시아 태평양 전략 센터(Center for Asia Pacific Strategy)'에서 인간 안보(Senior Fellow fir Human Security) 분야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란치스코 빅토리아 대학교(Francisco Victoria University) 산하 동아시아 센터에서도 연구원으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저에게 하나하나 '나만의 게이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게이트들이 결국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북한 독재 정권과 맞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는 유럽, 영국,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온라인 글쓰기 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쓰기 방의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메아리가 돌아오려면 먼저 소리를 내야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 말하지 못했던 아픔과 목소리들을 이제는 세상 밖으로 꺼내 말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고, 이제 곧 시작될 3기 프로그램에는 더 많은 참여자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은 어쩌면 평범한 이민자의 삶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확실한 방향이 있었습니다. 한 걸음씩, 내가 설 곳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나를 사회에 녹여냈고, 그 과정은 단지 적응이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확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징검다리는 지금도 인권, 교육, 정치, 시민사회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Q. 영국에서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체감한 영국 언론이나 정치권, 일반인의 북한에 대한 관심과 지식 정도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적 인생을 시작한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박 :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저는 그저 동양인 이웃 중 한 명으로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일반 시민 대부분은 북한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South Korea)과 '북한'(North Korea)은 구분조차 어려운 낯선 개념이었고, 북한 인권 문제는 뉴스 변두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 시절 저처럼 생존자였던 탈북민들도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북한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데 큰 한계가 있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진실도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진실도 전달되지 않는다.
나에게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다.
진실을 전하고, 기억을 공유하며, 자유를 확장하는 언어라는 무기를 갖는 것이다.
- 박지현(맨체스터)
그러나 2014년 유엔 북한 인권조사 위원회(COI)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영어를 배우고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탈북민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제는 다큐멘터리나 유튜브를 통해 북한 실상을 직접 증언하는 탈북자들을 영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한 진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도 많습니다. 영국과 유럽 전반에는 지금도 친북 성향 활동가들과 학자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아카데믹 세계에서는 북한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여전히 통용되며, 이로 인해 한국 현대사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진실이 가려지는 현실은 저에게 언어를 넘어 역사와 담론을 바로 세우는 또 다른 과제를 던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를 배운다는 것을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진실을 전하고, 기억을 공유하며, 자유를 확장시키는 언어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영국 역사도, 한국 역사도 함께 배우며 진실을 정리하고, 이를 두 언어로 전달하는 작업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서는 한국어로 글을 쓰고, 링크드인(LinkedIn)에는 영어로 내용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그렇게 두 언어로, 두 개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진실을 말하는 게 저의 활동 방식입니다.
얼마 전에는 프라하에서 열린 자유주의 학생 포럼(Liberalism Student Forum)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그 경험과 느낀 점을 기고문으로 정리해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관련 기고 - 자유는 억압의 사슬을 끊는 것이다 (Libertarianism as Abolitionism)
https://m.blog.naver.com/freedom88-/223852804657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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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2)
"나는 끝까지 말할 것..누군가는 이 참상을 기억하고, 끝내야 하기 때문."
"왜 한국 86 민주화 세대는 북한 인권 참상에 침묵하고 외면하나? 소위 내재적 접근은 위선이자 동조"
이문경승인 2025.08.23 23:49 | 최종 수정 2025.08.24 14:38 0
[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저는 끝까지 말할 것입니다...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하고, 이 참상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86세대가 과거 민주화를 외쳤다면, 오늘날 진짜 억압이 판치는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짜 자유는 나와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2023년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찰스 국왕을 직접 만난 박지현 씨. 박씨는 "영국에서 숱한 정치인과 언론인을 만났지만 북한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찰스 국왕이 북한 인권에 매우 깊은 관심과 지식을 갖고 계셔서 크게 놀랐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시며 자유민주주의로 한반도 통일을 바라는 것을 느끼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 사진 /박지현 FB
Q. 소셜 미디어(페이스북)에 찰스 국왕과 만난 것이 무척 뜻깊었다고 올려놓은 것을 봤습니다. 다른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지만, 버킹엄 궁 초대 계기 및 절차, 영국 국왕이 북한 인권에 대해 갖는 관심 등에 대해 직접 느낀 바를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박 : 제가 처음 영국 국왕 찰스 3세를 뵌 것은 2023년 2월 1일이었습니다. 2022년 크리스마스 전에 영국 외교부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는데, 동아시아인을 주제로 한 버킹엄 궁전 만찬에 저를 초대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스팸메일인 줄 알았지만, 이후 직접 전화가 와서 초대 경위를 설명해 주었을 때 너무 기뻤습니다.
사실 2021년 크리스마스에도 영국 더 타임즈가 ‘영웅 29인 리스트’를 발표하며 저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혹시 여왕을 만나느냐는 질문도 했지만, 그때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찰스 3세 국왕이 즉위 후 마련한 행사에 제가 초대받아 버킹엄 궁전 초대장도 받게 된 것입니다.
국왕께서는 저에게 "어떻게 북한을 탈출했느냐?"고 물으셨고, 북한 주민들이 세뇌된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제가 영국에 온 후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을 만났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국왕님의 깊은 관심과 진심 어린 말씀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두 손을 꼭 잡아 주시는 순간 눈물이 나왔습니다.
6개월 뒤, 찰스 국왕이 즉위 후 첫 국빈 방문 국가로 대한민국을 선정했다고 트윗으로 발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국빈 만찬 초대는 있었지만 특별한 관심은 없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방문 때는 재외동포 간담회 참석 여부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023년 10월, 중국에서 탈북민 600여 명 강제 북송 소식이 전해지며 기자들의 연락이 이어지던 중,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발신 번호 제한이라 받지 않으려 했지만, '버킹엄 궁전' 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버킹엄 측에서는 외교부가 제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고 하며, 대한민국 대통령 국빈 만찬에 저와 남편을 초대하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집 주소와 남편 이름까지 알고 있어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이후 정식 초대장과 드레스 코드 안내 메일을 받고, 2월에 뵈었던 찰스 국왕님을 11월에도 다시 뵐 수 있었습니다. 국왕님은 저를 알아보시고 "또 왔느냐, 잘 왔다."며 다정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님도 그런 모습을 보고 아마 궁금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윤 대통령님께 남편과 함께 영국에 정착한 탈북민임을 알려 드렸고, 유일하게 대한민국 국빈 만찬에 참석한 탈북민 부부라는 점에 의미를 느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영국이 바라는 한반도 통일은 바로 '자유 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Q. 최근 한국에서는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국내외 보수 진영은 친북 정권이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언젠가 화해하고 통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 및 현재 북한 정권이 자행한 온갖 반인륜범죄는 도저히 덮고 넘어갈 차원이 아닙니다. 그 체제의 직접적 피해자와 2세, 3세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향후 통일 한국이 도덕적 정통성을 갖기 위해서도, 재중 탈북자 인권을 포함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탈북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 중에서도 특히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 및 강제 북송된 경우의 참혹한 인권 유린 참상은 너무나 많은 증언이 쌓여서, 이미 수년 전 유엔에서도 정식 보고서로 채택되어 인정되었습니다.
그런 인권 유린을 직접 겪은 당사자로서 향후 북한 정권을 상대해야 할 신임 이재명 정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기탄없이 해주십시오.
박 : 저는 탈북자이며, 다른 많은 북한 여성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직접 겪은 생존자입니다. 영국 땅을 밟기까지 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히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재명 정부는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저 같은 사람들의 존재를 사실상 지워버리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2017년, 국제인권단체인 코리아 퓨처 이니셔티브(Korea Future Initiative)와 휴먼 라이츠 워치(HRW)는 "중국 내 북한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인신매매되고 있으며, 결혼, 성노예, 온라인 성산업 등으로 팔려가고 있다"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미 10년 넘게 이 범죄는 지속되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입니다.
참고 - 2017년 휴먼 라이트 와치의 북한 인권 보고서 바로 가기
https://www.hrw.org/world-report/2017/country-chapters/north-korea
그리고 최근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북한 여성들이 중국 내에서 온라인 성매매 영상에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감시를 받으며 카메라 앞에 서고, 성 착취를 당합니다. 그런데 이 채팅방에 들어와서 돈을 내고 그 여성들의 성을 소비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한국 남성들이라는 사실을 저는 직접 들었습니다.
남한 땅에서 민주화와 인권을 외친다는 사람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인신매매된 동포 여성들의 고통을 소비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민낯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인신매매 고통에 시달리는 재중 탈북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과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강하게 말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팔리고 있는 북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침묵합니까?
왜 재중 탈북 여성들의 문제, 강제 북송, 북한 정치범 수용소, 공개처형, 고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끝까지 말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하고, 이 참상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박지현 (맨체스터, UK)
이재명 정부는 이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위 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왜 재중 탈북 여성 문제, 강제 북송, 북한 정치범 수용소, 공개 처형, 고문 같은 끔찍한 참상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겁니까?
왜 과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강하게 말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팔려가고 있는 북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이재명 정부에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의가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화해는 가짜입니다.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통일은 폭력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진심으로 (남북 화해와) 통일을 말하고 싶다면, 먼저 북한 체제의 범죄를 인정하고 그 피해자들을 보듬는 태도부터 보여야 합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북한 정권에만 고개를 숙인다면, 대한민국은 그 어떤 도덕적 정통성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끝까지 말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하고, 이 참상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10년 10월 KBS 스페셜에서 방영되며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던 23세의 북한 꽃제비 여성. 당시 북한 내부에서 취재 활동을 벌이던 일본 아시아 프레스가 6월 평안남도에서 이 여성과 인터뷰를 해서 영상을 제공했다. 이 여성은 안타깝게도 얼마 후 옥수수밭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15년이 흐른 2025년 현재도 평양 특권층을 제외한 지방 북한 주민 다수가 생활고에 시달린다. 자유와 기본 인권은 당연히 누리지 못한다. 김정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략 전쟁에 당사자 및 가족에게도 제대로 통보하지 않고 북한 군인들을 멋대로 용병으로 동원해 유럽 전쟁 총알받이로 보냈다. 초기에는 용병 동원 자체를 부인하다 사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자, 최근 김정은이 직접 전사자 100명 신원을 공개하며 애도하는 모습을 연출해 동요하는 북한 민심을 누그러뜨리려 기만하고 있다. / 사진 : KBS 화면 캡처
Q. 지현 씨가 블로그에 올리신 글 중 문화전쟁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 그리고 문화계 - 문학, 영화, 음악 등 전분야 - 에 종사하거나, 하고자 하는 프리덤 조선 독자들이 꼭 새겨야 할 점이 있다면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박 :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문화 전쟁이란 다소 생소한 용어 같습니다. 북한에 대해 알아갈 때도, 북한은 굶주리는 나라, 김씨 3대 세습, 세뇌 교육은 알지만 그 세뇌 교육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다 보니, 북한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접하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많은 분이 '문화 전쟁' 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거창하거나 낯선 개념처럼 느끼지만, 북한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 전쟁을 계획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특히 김정일이 후계자로 나선 1970년대부터, 그는 "총보다 강한 것이 문화"라고 봏고 문화를 체제 유지의 중심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북한의 세뇌는 절대 고문실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동요에서 시작하고, 시와 가극, 영화, 교과서, 포스터, 심지어 말투와 억양까지도 통제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어릴 때부터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말을 시처럼 외우고 자라고, '혁명적 인간형'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5대 혁명가극 속 주인공들을 통해 배웁니다.
이것이 북한 주민들이 김씨 일가를 신처럼 받아들이고 섬기게 되는 진짜 이유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문화전쟁의 결과입니다.
김정일이 만든 문화전쟁 체제는 지금 김여정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북한의 선전 문화 부문을 직접 장악하여 최근에는 평양 문화어를 기준으로 주민의 언어까지 통제하고, 남한식 말투를 쓰거나 외국말을 흉내 내는 청년들을 사상 반동이라며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 통제를 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입니다.
이 법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입을 수 있는지, 심지어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까지 규제합니다. 이처럼 북한의 문화전쟁은 철저히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기 위한 전쟁입니다.
북한 정권이 문화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 것처럼 자유 사회에서도 문화는 사람들 인식을 조종할 수 있어, 북한은 1970년대 김정일이 직접 '총보다 강한 것이 문화"라며 문화 분야를 챙기기 시작, 현재 김여정이 이어서 철저히 주민 사상과 감정을 통제, 세뇌, 처벌 중.
그런데 한국 사회도 지금 조용한 문화전쟁 안에 있습니다.
한국은 다양성이나 자유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예술이나 인권 중심 서사는 교묘하게 배제되고, 대신 북한 체제를 "그 나름의 체제"로 미화하거나 "분단의 피해자"처럼만 그리는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계가 점점 이념적으로 한쪽에만 기울고 있는 점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프리덤 조선 독자들 중에서 문학, 영화, 음악, 예술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문화는 단순히 감성의 표현이 아니라, 세계관을 전달하는 무기입니다. 진실을 감추는 문화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결국 진실을 믿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침묵하는 사이에, 거짓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됩니다.
북한 정권이 문화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 것처럼, 자유 사회에서도 문화는 사람들의 인식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화 속에서 먼저 싸워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예술, 억압을 고발하는 문학, 자유를 노래하는 음악이 없다면 아무리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라도 사상과 감정은 이미 독재에 잠식당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는 늘 전쟁이며, 우리는 지금 그 전선 위에 서 있습니다.
Q. 박지현 씨는 1968년 생이므로, 한국으로 치면 86세대 끝물입니다. 남한 86 세대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자부하며 30대 초반부터 국가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86세대의 민주화 기여를 인정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그 세대는 이념적으로는 가장 종북 좌파적 성향이 강합니다.
또 86 세대는 남한의 군사 정권이 독재였다고 아직도 증오하며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선군 정치와 억압 체제가 일상인 북한 독재 체제에게는 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소위 '내재적 접근론'으로 북한의 반민주적, 반인권적 체제를 이해하고 합리화하며, 북한 실상에 대한 비판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저도 그 세대 출신 현역 정치인에게서 직접 '남한은 일제에서 해방된 후로도 미군정을 거치며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노예가 되었지만, 북한은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김일성이 집권했으므로 민족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정신적 조국 역시 북한이므로, 북한에 충성해야 한다.'라는 말을 직접 듣고 충격 받은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직접 살아보고, 탈북해 중국을 거친 끝에 근대 자유민주주의 종주국이라 할 영국에 정착해 정치권에도 도전해 본 입장에서, 지현 씨가 그러한 남한의 같은 세대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박 :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살았고, 목숨을 걸고 탈출했으며, (다른 많은 북한 여성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인신매매 피해를 겪었습니다. 지금은 근대 민주주의가 시작된 나라, 영국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며 인권 활동과 정치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오늘 한국의 86세대 제 또래 정치인들, 학자들,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과거 한국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지금도 독재를 비판하며 자유와 권리를 외칩니다. 하지만 왜 북한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입니까?
북한은 제가 직접 경험한 곳입니다.
자유로운 직업 선택과 거주 이전, 신앙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인권도 전혀 없고, 조금이라도 말을 잘못하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가정 내에서도 감시를 당하고, 해외 뉴스를 본다는 이유만으로도 처형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남한 86세대 일각에서는 "북한은 북한만의 문화가 있으니, 서구식 인권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소위 '내재적 접근론'을 내세워 현실을 외면합니다. '유교식 효(孝) 문화', '사회주의 공동체 정신' 운운하며 북한 정권에 면죄부를 줍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억압은 억압이고, 고문은 고문이며, 굶주림은 굶주림입니다.
'문화' 라는 이름으로 인권 침해를 포장하지 마십시오.
'내재적 접근'이란 북한 정권의 범죄를 정치적으로 외면하겠다는 선언일 뿐입니다.
그것은 억압받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교만한 태도이며, 과거 당신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권위주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위선입니다.
당신들은 한국 군사 정권 시절을 독재 정권이라 비난하지만, 그 시절에도 남한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고, 이사도 할 수 있었으며, 외국 방송을 들을 자유도 있었습니다. 또 외국으로 이민도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이 죄입니다.
그 차이를 알고도 침묵하는 것은 중립도 아니고, 동조입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 정권이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공식 규정했습니다.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종교 박해, 강제 낙태, 성폭력, 인신매매가 아예 국가 시스템이 된 나라가 북한입니다.
현재 제가 사는 영국은 2015년 현대판 노예제법(Modern Slavery Act)를 도입해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을 불법화했습니다. 이 법은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겪어야 하는 성노예와 인신매매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매우 진보적인 법률입니다. 저는 이 법을 접하면서 확신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억압자를 단죄한다."
그런데 왜 남한 일부 정치권은 피해자가 아니라, 억압자에게만 관대한 겁니까?
86세대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이들이 북한 주민들이 단지 외국 방송을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용소에 끌려가고,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 당하고, 굶주림을 피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국경을 넘는 여성들이 북송되어 처형 당하는 참혹한 동포의 현실에 침묵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이념적 동지의식입니까?
북한 정권에 대한 정치적 계산입니까?
어떤 이유건 그것은 비겁함이며, 당신들이 과거 비판했던 권력자들보다 더 한 위선일 뿐입니다.
진짜 자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귀를 기울일 용기에서 시작된다.
남한 86 세대는 왜 북한 동포의 인권 참상에 외면하고 침묵하는가?
왜 피해자가 아니라, 억압자에게만 관대한가?
- 박지현 (맨체스터, UK)
마지막으로 저는 영국에서 배웠습니다.
진짜 자유란, 나와 다른 사람의 고통에도 귀를 기울일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요.
북한은 단순히 이념이 다른 체제가 아닙니다.
국민의 생존권과 사상, 표현, 종교까지 철저히 통제하는 전근대적 전체주의 국가입니다.
한국의 86세대가 과거 순수한 마음으로 민주화를 외쳤다면, 오늘날 진짜 억압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서울 광장에서 외칠 수 있는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닙니다.
북한의 밤 하늘 아래 몰래 라디오를 켜고 숨죽여 외국 방송을 듣는 사람들, 진실을 알리려고 목숨 걸고 고군분투하는 북한 내부의 고발자들,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는 여성들과 아이들 속에 살아 있는 게 진짜 민주주의입니다.
그들을 보지 못하는 '민주화 세대'라면, 이미 민주주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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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기고
[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3)
"북한 인권 실상 알게 되면 달라지는 서양인들, 서구의 도덕적 품성에 감명."
"남한 86세대는 위안부 문제 정치적 접근, 위안부 소녀상 설치하려면 지금도 인신매매로 고통받는 탈북 여성상도 전 세계에 설치하라"
"비엔나 북한 태권도 연맹 대북 불법 송금 루트 강한 의혹...오스트리아는 과거부터 전 유럽의 사치품, 무기, 외화를 북한 전달 루트로 악용"
이문경승인 2025.08.28 01:24 | 최종 수정 2025.09.03 00:12 0
영국 정착 탈북자 박지현 씨는 유럽 내 북한 스파이 실상에 대한 상세한 지식 외과 함께 한국 진보 세력 특히 86세대가 보이는 정치적 편향과 북한 인권 무시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했다.
Q. 영국 및 유럽, 캐나다 등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추종하는 좌파라도, 북한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혹시 영국에서 지내면서 사상적으로는 좌파인데도 그렇게 단호한 반북한 입장을 취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박 :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행사에 참여하다 보면 북한을 잘못 이해하는 학자나 외교관, 정치인들을 볼 때는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면, 다음 행사를 할 때면 인권에 대한 질문은 모두 저에게 답변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서양인들의 도덕적인 품성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북한에 대해 잘못 알던 서양인들 북한 인권 실상 알게 되면 태도 달라져...서구의 도덕적 품성에 감명."
Q. 반대로 영국에서 친북 활동가나 학자들을 만난 적은 있습니까? 아울러 공개적으로 북한 인권 운동을 하게 된 후 신변 위협을 받은 적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 : 저는 공개적으로 해킹 메일을 받기도 하고, 지금은 대사관 대사를 사칭하는 메일도 옵니다. 또 제 이름으로 유명한 분들께 해킹 메일도 보내는 일도 발생해서, 심지어 FBI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또 비엔나에 있는 북한 태권도 그룹 실체를 파헤치면서 신변 위협이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들을 이겨낸 결과 그들을 미디어 앞으로 끌어낼 수도 있었기에 보람을 느낍니다.
비엔나에 있는 북한 태권도 그룹 실체를 알리기 위해서는 미디어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올해도 비엔나 코미디 쇼 프로그램에서 다루었고, 또 프랑스 기자와 끈질기게 북한 태권도 그룹을 압박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본부를 둔 북한 국제 태권도 연맹(ITF) 관계자들이 유엔 제재를 위반하고 북한으로 불법 송금을 했다는 의혹으로 파문이 일어난 사건은 올해 3월 한국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 사진 = KBS 보도 화면 캡처 @프리덤 조선
중국 대사관 앞에서도 늘 시위를 하기에, 중국 대사관은 저희가 가면 영국 경찰도 부릅니다. 하지만 영국 경찰에게 저희 활동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지지를 해주기도 합니다.
※ 오스트리아는 비엔나에 있는 북한 국제 태권도 연맹이 유엔 제재를 위반해 금, 코뿔소 뿔, 불법 외화 송금 등을 했다는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했다. 당국은 리용선 총재 측의 혐의가 확실하며, 잠재적 위험도 커서 방치하면 '오스트리아의 명예를 훼손'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 2020년부터 그를 추방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법원은 리총재의 월수입이 비교적 적은 5,256유로(5,702달러)임을 들어, 그가 불법 대북 송금에 관여한 직접적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이에 영국 정착 탈북자 박지현 씨는 북한 태권도 연맹(ITF) 총재는 "운동선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그와 그의 아내, 그 아들은 평양으로 자금을 흘러들어가게 하는 요원"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언론에도 크게 보도된 북한 태권도 연맹 문제. 박지현 씨의 폭로로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던 유럽 각국 언론이 크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 사진 = 독일 Die Presse 박지현 제공 @프리덤 조선
당시 박 씨는 신변 위협 및 해킹 때문에 일부 언론과 인터뷰는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용기 있게 유럽 내 북한 조직의 실태를 알렸다.
박 씨는 프리덤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태권도 연맹(WT)과 국제 태권도 연맹(ITF)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면서, "국제 태권도 연맹은 북한 조직이다. 이를 모르고 태권도에 대한 관심으로 멤버십으로 가입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원으로 포함되는 경우도 많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세계 태권도 연맹과 국제 태권도 연맹은 엄연히 다른 기구, 국제 태권도 연맹은 북한 조직...모르고 멤버십으로 가입해 북한으로 흘러가는 자금에 포함되는 경우도 빈번, 각별히 주의해야
프랑스 국제 보도채널 《프랑스 24》는 이러한 박 씨 주장과 함께 "오스트리아는 전 세계 스파이 소굴"임을 지적하며, 인구 900만에 불과한 중립적 EU 회원국 오스트리아 정보기관 역량 부족을 꼬집었다.
스파이 전문가 지크프리트 비어 씨는 북한이 비록 오스트리아의 "중요" 관심 국가지만, 오스트리아가 북한인들의 비밀 활동을 "진지하게 조사할 수단이 부족하다" 고 경고했다.
EU 중립국 오스트리아는 전문적 방첩 기관 역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국제 스파이 소굴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으며, 북한 특권층도 오래전부터 오스트리아에 거점을 두고 유럽 전역에서 무기 및 사치품, 외화 등을 보내는 통로로 비엔나를 이용했다. 이같은 사실은 박씨의 노력과 유럽 미디어들의 공동 추적으로 프랑스 국제 보도 전문 채널 《프랑스24》 2025년 3월 11일 자 및 독일, 오스트리아 언론에 상세히 보도었다. / 사진 = 프랑스24 화면 캡처 @프리덤 조선
"오스트리아 비엔나 북한 태권도 연맹은 유엔 제재 위반 불법 대북 송금 루트, 오스트리아는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각종 무기 및 사치품, 외화 등을 북한으로 송금하는 루트로 악용"
북한은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프랑스 24》는 1974년부터 유럽에서 암약하던 비엔나 주재 평양 외교관 김정률이 1994년 오스트리아로 망명하기 전까지 20여 년 간 북한 독재자들을 위해 유럽 전역에서 무기와 사치품을 구매했음에도, 단 한 번도 조사를 받지 않았음을 폭로했다.
또 김일성 처남 김광섭이 2020년까지 27년간 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냈으며,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북한은 알프스산맥에서 무려 19만장의 여권을 인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Q. 최근 남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직후 국민적 공분 속에 구속되었던 조국, 윤미향을 석방했습니다. 윤미향은 종군 위안부 후원금 횡령 비리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큰 비난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이들은 모두 86세대(60년대 출생, 80년대 학번) 운동권 출신입니다.
한국 86세대는 대학 시절부터 매주 특정한 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이슈 등을 제기하는 항의 집회를 초장기적으로 이어왔습니다. 또 위안부 소녀상을 국내외 각처에 설치하고, 일본 전쟁 피해자라고 선전하며 반일 감정을 부채질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진행형인 더 끔찍한 북한 인권 특히 탈북 여성들의 참담한 인권 현실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이런 현실 이면에는 이른바 '갓끈 전술'이 작동한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습니다.
지현 씨는 북한에 있을 때 혹시 갓끈 전술에 대해 들어본 바 있습니까? 또 위안부 소녀상 설치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갓끈 전술을 국내에 소개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유원장은 북한 대남 전략 전술 연구 권위자다. / 사진 = 자유민주연구원 外 @프리덤 조선
※ 갓끈 전술에 대해서는 안보 전문가 유동열 박사가 권위자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미래한국 2022년 10월 말에 기고한 글을 통해, 광범위한 반일(反日) 선동 이면에는 북한 김일성의 갓끈 전술이 작동한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논증했다.
갓끈 전술이란 1969년 김일성이 간첩 및 공작원 양성소인 금성정치군사대학(김일성정치군사대학 →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을 방문해 행한 연설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이후 1972년 북한군 총정치국 소속 정치군관 양성소인 ‘김일성 정치대학’ 졸업식 연설에서도 김일성은 이를 재차 강조했다.
김일성은 연설에서 “남조선 정권은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끈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사람의 머리에 쓰는 갓이 두 개의 끈 중에서 하나만 잘라도 머리에서 날아가듯이 남조선 정권은 미국이라는 끈과 일본이라는 끈 중 어느 하나만 잘라버리면 무너지고 만다. 남조선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의 두 끈 중에서 어느 하나만이라도 잘라내기 위한 갓끈 전술을 써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남조선 혁명 완성을 위한 반미, 반일 투쟁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 저는 북한을 직접 겪고 탈출해 현재 영국에 정착해 인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북한과 남한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왜곡된 현실을 강력하게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선 북한은 반일 감정을 체제 유지와 정권 선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은 북한은 '김일성이 일본과 싸워 해방을 이끌어냈다'고 선전합니다. 사실상 김일성 정권은 일본 식민 통치가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고, 반일 감정을 키우는 것은 북한 체제의 핵심 선전 도구입니다.
제가 흥미 있는 점은 위안부 문제가 한국보다 먼저 북한에서 공식 제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80년대 후반 북한은 종군 위안부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방송으로 내보내며 피해를 강조했습니다. 저 역시 그 방송을 보며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그 후 북한 내에서 이 문제를 사라졌습니다. 뒤늦게 그 선전이 한국으로 넘어가 광범위한 반일 감정과 정치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한국 86세대 정치인들과 일부 단체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북한의 전략적 이용이란 점을 간과 혹은 은폐한 채, 위안부 문제를 반일 정서의 정치적 도구로 계속 활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영국에서 위안부 행사에 참석했을 때, 중국 내 북한 여성들이 겪는 인신매매와 성매매 현실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많은 학자가 이를 철저히 회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남한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는 세력은 진정한 여성 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선전과 반일 감정 조장을 위한 수단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북한 여성들은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또 성 노예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 현실은 한국 내 위안부 운동의 화려한 정치적 장식 뒤에 가려져 있습니다. 진정한 여성 인권 문제라면 과거의 역사적 상처에 머무는 게 아니라, 오늘 현재 진행형인 현실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역사를 바로 세우고, 진정한 인권을 위해 싸우려면 북한의 반일 선전 전략과 한국 내 일부 세력의 정치적 이용의 실체부터 냉철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감정적 선동과 왜곡을 넘어서, 피해자들의 존엄과 인권 회복에 진심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특히 역사 문제는 사실과 인권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정치적 선전 도구로 전락한 위안부 운동은 피해자들의 존엄을 훼손하는 또 다른 폭력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으로서, 지금도 고통받는 같은 처지의 무수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인신매매로 고통받는 동포 여성들을 외면하는 반쪽짜리 인권 논의와 정치권의 위선에 저는 분노합니다.
한국의 86세대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싸웠다면 당신들은 과거사의 명분이 아닌 오늘 벌어지는 현실의 참혹한 북한 여성 인권에 앞장섬으로써 진심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 고통에도 똑같은 눈과 마음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만 당신들이 진짜 정의고, 진짜 민주주의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한 86세대는 위안부 문제를 여성 인권 아닌 정치 선전과 반일 감정 조장 수단으로 접근...위안부 소녀상이 전 세계에 설치할 문제라면, 지금도 인신매매로 고통받는 탈북 여성상도 전 세계에 설치하라"
Q.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100여 년 가까운 과거의 실체적 논란도 이견이 분분한 위안부 소녀상 설치 운동 같은 저열한 반일 감정 선동에 맞불을 놓기 위해 재중 탈북 여성 인권을 부각하는 탈북 여성상 또는 탈북 모자상 설치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반면 당사자들의 아픈 기억만 자극할 뿐이라며 반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탈북 여성들이 겪은 고통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알리는 일은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탈북 모자상 설치를 반대하며 그들의 아픔을 건드린다는 식으로 이유를 댔다면, 그런 이들은 단 한 번도 피해자들인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어낸 구실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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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기고
[특집 기획] 영국의 북한 인권 운동가 ① : 2020년 영국 앰네스티 인권상 수상자 박지현 씨 (4)
"우크라 전 북한군 가담은 전례 없는 국제 범죄...세계 질서 균열 속 신(新) 전체주의 연대 살육 실험장"
"대북방송 중단은 북한 주민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목소리를 끊는 것...우리가 가장 먼저 잃게 되는 자유의 시작"
이문경승인 2025.08.319 | 최종 수정 2025.09.03
북한은 러시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최대 1만 5천 명 이상의 북한 군인을 파병했다. 초기에는 러북 모두 참전 사실 자체를 부정하며 우크라이나의 북한군 참전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쿠르스크 등 현장에서 우크라이나 군과 교전하는 북한군 부대 존재가 계속 포착되고, 사상자가 속출하다가 급기야 북한군 출신 포로들이 잡히며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올해 들어 참전 사실을 인정했다. 아울러 김정은은 러시아의 승리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천명했다. / 사진 = New York Post @프리덤조선
Q. 조금 주제를 바꾸겠습니다.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 불법 합병으로 시작된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본토 전면 침공으로 커진 후 3년 반이 넘도록 계속 중입니다. 그 사이 북한 군인들도 푸틴의 용병으로 동원되어 유럽인을 죽이고, 또 죽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세계 최악 불량 국가 북한 군인들까지 유럽을 유린하고 있음에도, 유럽도 너무 경각심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EU 차원의 강력한 대북 추가 제재나 유럽을 거점을 활동하는 북한 간첩 조직에 대한 수사 강화 등의 소식은 잘 들려오지 않습니다.
또 한국 사회도 너무 무관심합니다. 아무래도 멀리 떨어진 유럽 전쟁이고 정보도 적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반면 소수지만 현행 헌법상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니, 해외에서 포로로 잡히면 마땅히 대한민국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당사자들이 한국행을 원하면 전원 수용하겠다는 원칙을 밝혔지만, 현 이재명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할지 알 수 없습니다.
브렉시트로 EU를 탈퇴했어도, 한국보다는 훨씬 러우전 정보도 많이 접하고 실존적 위협으로 느낄 영국에 정착한 북한 출신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박 : 저는 북한에서 태어났고, 공산 독재 체제에서 자랐으나 탈북하여 중국을 거쳐 영국에 정착한 사람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지금, 제가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나 다릅니다.
특히 2022년 이후 본격화된 러우전, 그리고 북한군이 투입되어 유럽 영토에서 유럽인을 학살하고 또 북한군도 죽어가는 현실은 저에게 다시 한번 세상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침묵에 익숙한지 절감하게 합니다.
2024년 중반 이후, 다수 외신과 북한군 포로들의 영상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북한 정권은 러시아 푸틴 정권과 군사 협약을 맺고, 북한군을 우크라이나 전선에 지상군으로 투입했습니다.
이는 단순 외교 협조나 물자 지원이 아닙니다. 세계 최악 인권 탄압국이자 유엔에서 '반인도범죄국'으로 지목된 정권이 타국의 전쟁에 병력을 보내 직접 살상에 가담하는 전례 없는 국제 범죄입니다.
북한 병사들 다수는 자신들이 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러시아 열차에 실려 유럽 땅에 도착하고, 총을 들고 전장에서 유럽 시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입니까?
아닙니다. 이건 북한이라는 반인륜적 정권이 세계 질서의 균열을 틈타 국제 사회의 안면몰수식 침묵 속에 벌이는 '신(新) 전체주의 연대의 살육의 실험장'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한국 정부와 정치권, 언론, 그리고 진보 인사들이 한결같이 이 사태에 침묵하거나 외면한다는 점입니다. 한국 헌법은 분명히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으며, 이에 따르면 북한 주민 역시 원칙적으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무 설명도, 교육도, 선택권도 없이 전쟁터로 끌려가 살육 병기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에 대해 한국 정부나 사회는 아무런 구출 노력도, 항의도, 문제 제기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 진보 세력은 러시아의 거짓 선전을 그대로 되뇌며, 우크라이나를 '네오나치'로 몰아붙입니다. 이런 게 북한 체제의 세뇌와 무엇이 다릅니까?
박 씨 말대로 우크라이나에서 포로로 잡힌 북한군 인터뷰에 의하면, 북한 군인들은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로 현장에 투입되는 상태다.
북한은 남성은 10년, 여성은 8년의 복무기간을 기본으로, 17세 무렵부터 군 복무 의무를 진다. 의무 복무기간은은 다소 변동이 있으나, 최장 13년까지 가능하다고 2023년 CIA(미 중앙정보국)가 밝힌 바 있다. 이런 북한 군대 특성상 4-5년 넘게 부모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군생활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유럽 땅에 끌려가 살상 기계가 되고, 자신들 역시 대량으로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고 불구자가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 우크라 전쟁 쿠르스크 지역 등에서 포로로 잡힌 북한군 부상자들. 윗줄 왼쪽 북한군 포로는 부상이 심해 생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러북이 북한군 참전을 은폐하던 2024년 12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전사한 북한군 신원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의 얼굴을 불태웠다."는 사실을 보고하며 텔레그램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후 올해 들어 러북은 북한군 참전을 마지못해 인정했으며, 최소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북한군 사상자는 현재도 늘고 있는 상태다.@프리덤 조선
2025년 8월 말 현재 기준 가장 최신 추정치로 우크라이나와 미국 측은 북한군 참전 규모 1만 2천 명 중 이미 4,00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반면 한국 국정원은 북한군 1만 5천 명 참전, 사망자는 600명이라고 보고했다.
독재국가 특성상 정확한 통계는 그들이 밝히지 않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불과 1년도 안 된 사이에 수백~수천 명의 북한 젊은이들이 푸틴 침략 전쟁 희생양으로 사상자가 된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김정은은 초기 참전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침묵하던 태도에서 전사자 100명 시신 사진을 공개하며 위로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9월 초 베이징 전승절에서 러시아에 이어 북한이 거의 서열 3위에 오를 정도다. 러 북 중 밀착이 어느 때보다 강화되는 가운데 특히 북한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이를 종합해 판단컨대, 미국이나 우크라 당국이 파악한 것보다 더 많은 북한군이 희생되고, 북한 무기도 많이 투입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민족인 북한 군인들이 이처럼 무더기로 죽어가도 한국 사회는 보수 거의 무관심 일변도다. 종북 세력은 아예 러시아 편을 드는 경향이 강하다. 특이한 것은 범 보수 진영 내에서도 러우전에 관한 입장이 크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한국 보수 진영 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프리덤 조선은 여러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어떤 선택권도 없고,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모르고 죽으러 끌려 나온' 북한 주민도 원칙적으로 북한 영토를 벗어나는 순간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헌법적 정체성의 보호를 더 강력하게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박 씨의 호소에 공감한다.
박 씨는 국내외 러시아 옹호자들에게도 다음과 같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박 : 러시아를 옹호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빼앗았기 때문에, 러시아가 다시 되찾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거짓말입니다. 크림반도는 역사적으로 타타르 족과 투르크 계 민족이 주를 이루던 지역입니다. 1783년 제정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병합해서 러시아령이 되었지만, 1954년 구소련 시절 니키타 흐루 쇼프가 우크라이나 SSR에 행정권을 이관했습니다.
이후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국제사회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영토로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그에 따라 유엔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유 국가들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크림반도 문제를 '러시아의 정당한 반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 또는 악의적인 왜곡입니다.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 병합이 정당하다는 주장은 역사에 대한 무지 또는 악의적 왜곡...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UN 포함 대부분 자유국가는 불법으로 규정
현재 한국에서도 러시아가 2차 대전 승전국이라는 기묘한 논리가 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은 무엇입니까?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감행한 김일성 뒤에는 당시 소련 스탈린이 있었습니다. 지금 푸틴은 그 구소련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러시아가 2차 대전 승리만 계승하겠다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6.25 침략과 학살 책임은 부인하는 것,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일부 한국 좌파 인사들의 태도야말로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이중성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유럽이 왜 이 전쟁에 이렇게 민감한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유럽은 20세기에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결국 대전으로 이어질 전체주의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떻게 확산되며,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연대한 신(新) 전체주의 축(The Axis of Neo-Totalitarianism)은 단순하게 한 국가의 문제, 한 지역의 갈등이 아닙니다. 이것은 21세기 자유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이며, 전 인류의 보편 가치에 대한 도전입니다.
- 2025년 8월 초순 런던 트라팔가 광장 앞길에서 프리덤 조선 취재진과 만나 환하게 미소 짓는 박지현 씨. 박 씨는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위기감을 상세히 설명하며, 푸틴의 불법 전쟁에 북한군까지 개입한 사태의 본질은 21세기 자유 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이자 전 인류의 보편 가치에 대한 도전 즉 문명 자체에 대한 심각한 도발 징후라 강조했다. @ 프리덤 조선
많은 한국인들은 유럽이 왜 이 전쟁에 이렇게 민감한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유럽은 20세기에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전체주의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떻게 확산되며,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연대한 신(新) 전체주의 축(Axis of Neo-Authoritarianism)'은 단순하게 한 국가의 문제, 한 지역의 갈등이 아닙니다. 이것은 21세기 자유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이며, 전 인류의 보편 가치에 대한 도전입니다.
북중러가 연대한 "신 전체주의 축(The Axis of Neo-Totalitarianism)"은 단지 한 국가나 지역 갈등이 아니다. 21세기 자유 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이자, 전 인류의 보편 가치에 대한 도전이다.
Q. 한국 새 정부는 취임 직후 대북 방송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대북 전단 살포 단속,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남쪽으로 표류해온 북한 주민 해상 송환에 이은 조치입니다. 국가정보원이 관리해온 ‘인민의 소리’ ‘희망의 메아리’ ‘자유 FM’ ‘K뉴스’ 등 라디오 방송과 국정원의 대북 TV 방송이 지난 6월 모두 송출을 중단했습니다. 이는 역대 가장 종북적이라 평가받는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일방적인 각종 대북 유화책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도 운영하던 대북 방송까지 전면 송출을 금지하는 한편, 개인적인 방북 허용과 북한 방송도 남한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여권에서는 본격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반응은 "개꿈", "남한과 마주 앉을 일 없다.", "비핵화 운운은 개소리"라는 증오 섞인 막말 뿐인 상태다. / 사진 = KBS 자료 화면 캡처 @프리덤조선
이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등의 시민단체가 헌법재판소에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며, 前 외교부 인권대사 제성호 중앙대 교수 등도 헌법 4조 자유평화통일 원칙 취지 위반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북한은 김여정이 직접 남한에서 무슨 조치를 취하건 :남한과 마주앉을 일이 없다"며, 북한도 대남 확성기를 중단할 것을 기대하는 건 "개꿈"이라며 특유의 천박한 욕설로 화답한 상태입니다.
또 미국에서 지난해 말 북한인권법 재승인이 무산됐으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예산 절감을 이유로 일론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가 이끈 정부효율부(DOGE)의 대대적인 조치 여파로, 수십 년간 진행된 VOA(미국의 소리)와 RFA(라디오 프리 아시아) 등도 모두 중단된 상태입니다. 미국 연방 법원에서는 VOA와 RFA 폐쇄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렸지만, 2025년 8월 말 현재 반년이 가깝도록 정상화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대대적 연방 정부 기관 축소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머스크가 수장을 맡았던 정부효율부(DOGE)의 조치로 VOA, RFA, VOE(Voice of Europe) 등이 수십 년만에 모두 중단된 상태다. 이에 냉전 시대부터 동구권 등 공산국가의 수십 억 주민에게 큰 희망이던 정보 통로는 존폐에 놓였고, 자유 세계의 적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다. /사진 = VOA 유투브 홈페이지 캡처 @ 프리덤조선
한국 새 정부여당은 전통적으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 다수 포진되어 그렇다고 쳐도, 한때 자유세계 리더이자 꺼지지 않는 희망의 등대로까지 불리며 공산주의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이런 대북 방송을 중단한 사실에 안보 및 인권 분야에 오래 종사한 국내외 많은 인사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지현 씨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박 : 저는 북한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몰래 라디오를 켜고 남한 방송을 듣던 이들이 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삶'을 처음 알게 되는지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밤마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단파 라디오를 맞추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존엄을 향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대북 방송을 끊는다는 것은 단순한 방송 송출 중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희망의 끈을 자르는 것이며, 독재 체제에 동조하는 비겁한 외면입니다.
북한은 하루도 빠짐없이 남한을 비난하고, 김정은 체제를 선전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북한은 유튜브와 SNS 사이버 공작을 통해 세계를 기만하며 자기들 정권을 미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런 비대칭적 현실 앞에서, 스스로 입을 막고 귀를 닫는 선택을 하는 겁니까?
대북전단 - 그 전단 속에는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이 신(神)이 아니란 걸 처음으로 알게 해주는 정보와 사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물자나 돈이 아니라 정보가 북한 주민들의 각성을 이끌어 냈고, 북한을 탈출할 결심을 하게 했습니다. 그 전단 한 장, 그 USB 하나가 북한 안에서는 생명처럼 귀중합니다.
그런데 방송과 전단, USB 같은 것은 막으면서도 "개별 방북은 허용하자"라고 한다면, 대체 누구를 위한 방북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들었던 외부 세계 방송과 정보가 폐쇄된 사회의 유일한 빛이었다고 주장한다. / 사진 = RFA 기사 화면 캡처 @프리덤조선
북한 주민을 위한 방북입니까, 아니면 김정은 정권을 위한 방북입니까?
정보는 보내지 못하게 하면서, 김정은의 '외화벌이'에만 기여하는 방북은 허용하자는 것은 비겁한 거래입니다. 그건 인도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 정권에 협조하는 정치적 유화책입니다.
지금 북한에는 중국에 팔려간 탈북 여성들, 억류된 정치범들, 남한 등 자유세계 정보를 접했다는 이유로 고문 처형 당하는 젊은이들, 정권에 반기를 드는 주민들, 심지어 해외에 나갔다가도 강제로 송환당한 사람들이 버젓이 존재합니다.
이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이 무엇입니까?
바로 진실을 들려주는 것, 자유세계의 목소리를 북한 땅끝까지 날려보내는 것, 그래서 그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남북 대화와 인도적 교류, 평화적 협력, 말은 다 좋습니다.
그게 목표라면 먼저 물어야 합니다.
- 김정은은 왜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가?
- 김정은은 왜 외부 세계의 정보를 차단하는가?
- 김정은은 왜 방송을 불허하고, 라디오를 몰수하며, USB를 소지하면 사형 대상으로 취급하는가?
- 김정은은 왜 북한 주민을 자유롭게 가지도, 오지도 못하게 하는가?
- 김정은은 왜 최근 개장한 원산 갈마 휴양지에 한국인들을 초대하지 못하는가?
- 김정은은 왜 이산가족 상봉을 이루지 않는가?
우리는 이런 건 묻지 않습니다.
아니, 묻지 않도록 스스로의 입을 닫습니다.
진실을 포기하고, 정보 송출을 중단하고, 전단과 USB 유입을 금지하고, 체제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멈추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북한 주민들을 김정은의 수용소에 영원히 가두는 데 협조하는 것입니다.
진실이 없는 남북대화는 거짓이고, 정보가 없는 남북 교류는 세뇌에 불과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지금 듣고 싶어 하는 건 바로 우리의 목소리입니다.
"대북방송 중단으로 그런 목소리를 끊는 것은 우리가 가장 먼저 잃게 되는 자유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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