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11, 2026

제임스 드레스녹 - 위키백과, James Joseph Dresnok

제임스 드레스녹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제임스 드레스녹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
출생일1941년 11월 24일
출생지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사망일2016년 11월(75세)
사망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국적미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영어: James Joseph Dresnok,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률상 이름: 홍철수, 1941년 11월 24일 ~ 2016년 11월)은 1962년한반도의 군사 분계선을 넘어서 탈영한 미국의 군인이다. 그는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출신으로 주한 미군 일병으로 비무장지대(DMZ) 철책 근무 당시인 1962년 8월 15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투항하여 2016년 사망할 때까지 평양에서 거주 중이었다. 2004년 찰스 로버트 젱킨스 하사가 탈북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생존해 있는 유일한 월북 미군이 되어 있었다.

키가 196cm나 될 정도로 체격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가족

조지프 드레스녹 시니어(1917 ~ 1978)의 아들이며, 형제자매로는 남동생인 조지프 드레스녹 주니어(1946 ~ )가 있다.[1] 1951년에 제임스가 9세였을 때 리치먼드에 살던 가족이 이혼으로 나뉘었고, 제임스와 어머니, 조지프와 아버지는 끼리끼리 흩어졌다.[2] 아버지와의 약속은 임시적이었다. 10대 시기에는 위탁 가정에서 길러졌고, 학교에서 쫓겨나 17세 생일이 된 다음날 미국 육군에 입대하였다.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평양시민》(Crossing the Line)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미국인과 결혼한 후 서독에 2년간 배치되었다고 한다. 귀국 후 당시 부인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자기 아이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말을 할 때 카메라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망명

드레스녹은 미국 육군의 상병으로 1960년대 초반 비무장 지대에 근무하였다. 미국에 있었던 첫 아내가 떠난 후, 다시 자원하여 대한민국으로 왔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후, 기지를 떠날 수 있는 허가증에 서명을 위조한 혐의로 군법회의에 부쳐졌다. 이후 처벌을 두려워하여 탈영을 결심하게 된다.

1962년 8월 15일에 동료 군인들이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지뢰밭을 달려 월북하였다. 조선인민군이 그를 체포하였고, 열차편으로 평양으로 이송되어 조사받았다.[3] 조사받는 과정에서 또다시 도주했는데 중국보다는 그래도 같은 백인종인 소련이 낫겠다 싶어서 다른 월북 미군들과 소련 대사관에 들어갔으나, 소련 측에서 받아 주지 않았다.

망명 이후

드레스녹은 월북 후에 또 다른 망명자 래리 앨런 앱셔를 만났다. 이를 포함한 네 망명자들은 같이 살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서 발간하는 선전물에 참가하였다. 여러 잡지 표지에 출연하였고, 대남 방송을 통하여 다른 미군의 월북을 유도하였다. 처음에는 북한에 남지 않으려고 생각하여 1966년평양 주재 소련 영사관에 들어갔으나, 정부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3]

드레스녹은 같은 월북 미군들 사이에서는 깡패로 통했으며 특히 찰스 로버트 젱킨스를 심하게 학대했는데 찰스 로버트 젱킨스가 미군시절 상병이던 자신보다 높은 계급인 하사 계급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열등감으로 필요 이상으로 학대해, 되려 북한 사람들이 말릴 정도였다.

이후 드레스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착하기로 하였다. 드레스녹은 홍철수라는 이름도 사용했는데, 홍은 '붉을 홍'(紅)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1978년부터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하였고, 미국인 역을 맡아서 국가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배역 이름이 아서였기 때문에 북조선인 친구에게는 아서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일성의 저작물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3][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사는 동안 그는 두 번 결혼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만난 첫 아내는 1950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인과 1970년에 결혼하여 이탈리아로 가서 살다가 1978년이탈리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치된 루마니아인 여성인 도이나 붐베아(1950년 ~ 1997년)였으며, 두 아들이 있었다. 젠킨스의 자서전에서는 도나라고 언급하고 있다. 도이나가 1997년폐암으로 죽은 후, 토고 외교관과 결혼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성의 딸과 결혼하여 2001년에 셋째 아들을 낳았다. 그의 가족은 평양에서 국가가 지급한 아파트에 살면서 북한 정부가 지급한 연금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현재 드레스녹은 심장 질환과 질환으로 건강이 안 좋은 상태이며, 흡연과 음주 때문이라고 한다.[3]

드레스녹은 여생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보낼 예정이며,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귀국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현재는 은퇴한 상태로, 북조선에서 이따금씩 강연을 하며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낚시를 즐긴다.[3]

두 번째 결혼에서 낳은 차남 제임스 가브리엘 드레스녹은,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이 1980년대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평양외국어대학의 학생이며, 그의 영어 억양에는 조선어가 많이 묻어 있다. 가브리엘은 북조선 사람과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자기 자신을 북조선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외교관 일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3]

2001년에는 김정일이 직접 드레스녹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많은 선물을 지급했다. 2016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인용

  • "8월 15일 대낮에 모든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을 때, 저는 길가로 나왔습니다. 물론 무서웠습니다. 제가 살 수 있을지 아니면 죽을지 말이죠. 그리고 전 지뢰밭에 뛰어들었고 제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땀이 났죠. 저는 국경을 건넜습니다. 새 삶을 찾기 위해서였지요."[3]

같이 보기

각주

  1. 조셉 드레스녹 시니어는 1917년 2월 3일 태어났으며 1978년 3월 사망하였다.
  2. Man Hopes His Brother Alive 보관됨 2007-02-05 - 웨이백 머신; Thursday, January 18, 1996
  3.  Anderson, Robert G.; Casey Morgan (2007년 1월 28일). An American in North Korea.. 60 Minutes. 2007년 8월 21일에 확인함.
  4. Spiller, Penny (2007년 1월 23일). Last US defector in North Korea. BBC News. 2009년 5월 1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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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ェームズ・ドレスノク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ジェームズ・ジョセフ・ドレスノク
James Joseph Dresnok
生誕1941年11月24日
アメリカ合衆国の旗 アメリカ合衆国
バージニア州 ノーフォーク
死没2016年11月??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の旗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平壌直轄市
所属組織 アメリカ陸軍(1958–1962)
軍歴1958-1962(亡命)
最終階級一等兵
配偶者キャスリーン・リングウッド(1959-1962)
ドイナ・ブンベア(1978-1997)
ダダ(1999-2016)
子女3人
除隊後教師俳優、通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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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ェームズ・ジョゼフ・ドレスノクJames Joseph Dresnok 1941年 - 2016年11月)は、アメリカ合衆国出身の軍人。陸軍の一等兵として軍事境界線の警備に従事していたが、1962年に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北朝鮮)へと亡命した。ジョー・ドレスノク(Joe Dresnok)とも表記される。

来歴

バージニア州リッチモンド市出身。10歳の時に両親が離婚し、父親とともにペンシルバニア州へ移る。弟は母親に引き取られ、離婚後2人とは会っていない。父親は新しい女性を見つけたが、その女性がドレスノクを育てることを拒んだため、児童養護施設に送られた。17歳の時、高校を中退して陸軍に入隊した。その後結婚したが、西ドイツ米軍基地に配属されている間、アメリカに残っていた妻が浮気し、帰国後に離婚を告げられる。次いで韓国に配属され、軍事境界線での警備に就いた。

1962年8月15日、仲間の兵士が食事をとっている隙に、境界線を越えて北朝鮮領内に逃亡した[1]。脱走時の階級は、二等兵だった[2]。その時の心境について、「自分の子供時代、結婚、軍隊生活すべてに嫌気がさしていた。俺はならず者だった。自分が行く場所は一つしかなかった」と後に話した。

北朝鮮の生活は過酷であった。1962年5月28日に脱走したラリー・アレン・アブシャー上等兵、1963年に脱走したジェリー・ウェイン・パリッシュ伍長とともに平壌寺洞区域の家で暮らしていたところに、1965年1月、新たに脱走してきたチャールズ・ジェンキンス軍曹が加わった[1][2]。4人とも北朝鮮に居つこうと思っていたわけではなく、共産主義のシンパでもなかった[2]。ジェンキンスが来たとき、どうして軍曹である彼が脱走したのか聞いたところジェンキンスが「ベトナムに行きたくなかった」と答えたのに対し、ドレスノクは「あなたは片足を煮え湯の鍋に突っ込んでいたのかもしれないが、ここへ来たら火の中に飛び込んだも同然だ」と話した[2]

1965年6月、彼らは寺洞から万景台区域へと移された[1][3]。万景台に移って間もなく、病院に入院していたアブシャーが退院して加わったが、ドレスノクはさっそくアブシャーの性格の弱さに付け込んでこき使った[3]。ドレスノクは着ていた服を投げ出しては拾えだの洗えだのと命じ、アブシャーはその通りにやってしまう[3]。身長196センチ、体重120キログラムという巨漢の彼は生まれついてのガキ大将タイプで、見かねたジェンキンスがアブシャーにドレスノクの言うことをきくのはやめろと言い、さらに洗濯を拒んだアブシャーにドレスノクが詰め寄ったときドレスノクに先制パンチを食らわした[3]。その後、アブシャーがいじめられることはなくなったが、ドレスノクとジェンキンスの荒々しい関係の始まりになった[3]

1966年春、配給が乏しくなってきたとき、配給担当の者が品不足のため肉の缶詰が配給できないと伝える一方、豚1匹を連れてきたことがあった[4]。4人は春から夏にかけて豚1匹を太らせるために悪戦苦闘したが、晩秋になってようやく肥えてきて、肉の保存に適した寒冷な気候になったとき幹部たちの一団がやってきて彼らの目の前で解体しだした[4]。アブシャーが罵り声を挙げて銃口を突き付けられた[4]。その場はアブシャーが謝罪して収まったが、さすがに4人は収まらず、労働党本部へ行って指導員が配給品を横流ししていると訴えた[4]。さらに、ソ連大使館がすぐ先に見えたので、亡命を申請したがこれは失敗に終わった[4]。その後、4人は1967年秋に大陽里の新しい住居に移り[5]1969年には貨泉洞の家に移された[1]

1972年6月30日、他の3人の脱走者とともに彼に北朝鮮の市民権が与えられた[1]。4人の米国脱走兵はばらばらになり、ジェンキンスとドレスノクは勝湖区域立石里、パリッシュとアブシャーは数キロメートル離れたところに家と料理人が与えられた[1][6]。4人はアブシャー、パリッシュ組とドレスノク、ジェンキンス組の2組に分けられて徹底的に監視され、互いに連絡を取りあうことさえ禁止された。ジェンキンスの証言によれば、ドレスノクは体制側に付いて、よく自分を殴ったという。彼は巨体を遺憾なく発揮し、仲間を殴ることを楽しんでいたという[注釈 1]

ドレスノクは北朝鮮の反米プロパガンダ映画『名もなき英雄たち』に“ミスター・アーサー”という役名で出演した(ジェンキンスも出演した)。そのため、北朝鮮では“ミスター・アーサー”と呼ばれている。

1978年イタリアから拉致されてきたルーマニア人ドイナ・ブンベアと結婚[7][注釈 2]。ドイナが1997年ガンで他界した後、1999年、北朝鮮人とトーゴ人ハーフである女性ダダと再婚した。ドイナとの間に2人の息子シオドア・リカルド・ドレスノクとジェームズ・ガブリエル・ドレスノク、ダダとの間に息子トニーがいる。

アブシャーとパリッシュについて、北朝鮮政府は「国内で自然死した」と説明している[10]、ジェンキンスは2004年、美花、ブリンダの2人の娘とともにジャカルタへ出国、妻で日本人拉致被害者の曽我ひとみと再会、日本へと渡った。よって、ドレスノクは北朝鮮国内に残っている最後の逃亡アメリカ兵であった。

2007年イギリスドキュメンタリー映画Crossing the Line」とアメリカ・CBSのニュース番組「60 Minutes」に出演し、北朝鮮に渡った経緯などについて初めて語った[10][11]。このどちらにも息子のジェームズ・ガブリエル・ドレスノクが出演したが、その顔立ちがドイナにそっくりで、名前もドイナの弟と同じガブリエルだったことから、ルーマニアの家族が拉致されていたのはドイナだと確信した[12]

2016年11月に脳卒中で死去した[13][14][15] 。74歳没。

脚注

注釈

  1.  ジェンキンスは、1965年から1980年までの間に少なくとも30回はドレスノクに殴られたと証言している。
  2.  ドイナも『名もなき英雄たち』に出演していたため、ルーマニア政府が動き出すきっかけになった[8][9]

出典

参考文献

関連項目

外部リン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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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제임스 조셉 드레스노크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
탄생1941년 11월 24일 미국 버지니아 주 노퍽
미국 국기
사망2016년 11월 일본 북한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평양 직할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 
소속 조직 미국 육군 (1958–1962)
전사1958-1962(망명)
최종계급일등병
배우자캐슬린 링우드 (1959-1962) 도
이나 분베어 (1978-1997)
다다 (1999-2016)
어린이3명
제대 후교사 , 배우 , 통역
템플릿 보기

제임스 조제프 드레스녹 ( James Joseph Dresnok 1941-201611월 )은 미국 출신 군인. 육군 의 일등병으로서 군사 경계선 의 경비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1962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으로 망명했다. 조 드레스노크 ( Joe Dresnok )라고도 표기된다.

내력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 시 출신. 10세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버지와 함께 펜실베니아주로 옮긴다. 동생은 어머니에게 끌려 이혼 후 두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새로운 여성을 찾았지만 그 여자가 드레스 노크를 키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아동 양호 시설 로 보내졌습니다. 17세 때 고등학교를 중퇴해 육군에 입대했다. 그 후 결혼했지만 서독미군 기지에 배속되어 있는 동안 미국에 남아 있던 아내가 바람피워 귀국 후에 이혼을 알릴 수 있다. 이어 한국 에 배속되어 군사 경계선 에서 경비를 했다.

1962년 8월 15일 , 동료 병사가 식사를 하고 있는 틈에, 경계선을 넘어 북한 영내로 도망했다 [ 1 ] . 탈주시의 계급은 이등병이었다 [ 2 ] . 그 때의 심경에 대해 "자신의 어린 시절, 결혼, 군대 생활 모두에 혐오를 받고 있었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가는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북한 의 생활은 가혹했다. 1962년 5월 28일 탈주한 래리 앨런 압샤 상등병, 1963년 탈주한 제리 웨인 패리쉬 오장 과 함께 평양 사동 구역 의 집 에서 살던 곳에 1965년 1새로 탈주해 찰스 젠킨스 군조 . 4명 모두 북한에 살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의 심파도 아니었다 [ 2 ] . 젠킨스가 왔을 때, 왜 군조인 그가 탈주했는지 들었는데 젠킨스가 「베트남에 가고 싶지 않았다」라고 대답했는데, 드레스노크는 「당신은 한쪽 다리를 끓여 물의 냄비에 돌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에 왔더니 속에 날아 갔다

1965년 6월, 그들은 사동에서 만경대 구역 으로 옮겨졌다 [ 1 ] [ 3 ] . 만경대에 옮겨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 입원하던 압샤가 퇴원해 참가했지만, 드레스노크는 곧바로 압샤의 성격의 약점에 쏟아부어 사용했다 [ 3 ] . 드레스노크는 입고 있던 옷을 던져서는 데리러 씻는다고 명령하고, 압셔는 그대로 하게 된다 [ 3 ] . 신장 196㎝, 체중 120㎏이라는 거한의 그는 태어난 굴 대장 타입으로, 보지 못한 젠킨스가 압샤에게 드레스노크의 말을 하는 것은 그만두라고 말하고, 더욱 세탁을 거부한 압셔에 드레스노크가 막혔을 때 드레스 노크 선제 . 그 후, 압샤가 괴롭히는 일은 없어졌지만, 드레스노크와 젠킨스의 거친 관계의 시작이 되었다 [ 3 ] .

1966년 봄, 배급이 부족해졌을 때, 배급 담당자가 품부족 때문에 고기 통조림을 배급할 수 없다고 전하는 한편, 돼지 1마리를 데려온 적이 있었다 [ 4 ] . 4명은 봄부터 여름에 걸쳐 돼지 1마리를 살찌게 하기 위해 악전 고투했지만, 늦가을이 되어 마침내 끓어오고, 고기 보존에 적합한 한랭한 기후가 되었을 때 간부들의 일단이 와서 그들의 눈앞에서 해체했다 [ 4 ] . 압샤가 꽉 목소리를 들고 총구를 내밀었다 [ 4 ] . 그 자리는 압샤가 사과해 들었지만, 과연 4명은 맞지 않고 노동당 본부에 가서 지도원이 배급품을 횡류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 4 ] . 게다가 소련 대사관이 바로 앞에 보였기 때문에 망명을 신청했지만 이것은 실패로 끝났다 [ 4 ] . 그 후, 4명은 1967년 가을에 대양리 의 새로운 주거로 옮겨 [ 5 ] , 1969년 에는 화천동 의 집으로 옮겨졌다 [ 1 ] .

1972년 6월 30일 , 다른 3명의 탈주자와 함께 그에게 북한의 시민권이 주어졌다 [ 1 ] . 4명의 미국 탈주병은 장미가 되어, 젠킨스와 드레스노크는 가쓰코 구역立石里, 패리쉬와 압샤는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집과 요리사가 주어졌다 [ 1 ] [ 6 ] . 4명은 압샤, 패리쉬조와 드레스노크, 젠킨스조의 2조로 나뉘어 철저히 감시되어 서로 연락을 취하는 것조차 금지됐다. 젠킨스의 증언에 의하면, 드레스노크는 체제측에 붙어, 잘 자신을 때렸다고 한다. 그는 거체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동료를 때리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 주석 1 ] .

드레스녹은 북한의 반미 프로파간다 영화 '이름도 없는 영웅들'에 '미스터 아서'라는 역명으로 출연했다(젠킨스도 출연했다). 그 때문에 북한에서는 '미스터 아서'라고 불리고 있다.

1978년 이탈리아 에서 납치되어 온 루마니아인 도 이나 분베아 와 결혼 [ 7 ] [ 주석 2 ] . 도이나가 1997년으로 타계한 뒤 1999년 북한인과 토고인하프인 여성 다다와 재혼했다. 도이나 사이에 두 아들 시오도아 리카르도 드레스녹과 제임스 가브리엘 드레스녹, 다다 사이에 아들 토니가 있다.

압샤와 패리쉬에 대해 북한 정부는 '국내에서 자연사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 10 ] , 젠킨스는 2004년 미화, 브린다의 두 딸과 함께 자카르타 에 출국, 아내로 일본인 납치 피해자 의 소가 히토미와 재회, 일본으로 건너갔다. 따라서 드레스노크는 북한 국내에 남아 있는 마지막 도망 미국병이었다.

2007년 영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 Crossing the Line '과 미국· CBS 의 뉴스 프로그램 '60 Minutes '에 출연해 북한으로 건너온 경위 등에 대해 처음으로 말했다 [ 10 ] [ 11 ] . 이 두 사람 모두 아들 제임스 가브리엘 드레스노크가 출연했지만, 그 얼굴이 도이나에게 똑같았고, 이름도 도이나의 동생과 같은 가브리엘이었기 때문에 루마니아 의 가족이 납치되고 있던 것은 도이나라고 확신했다 [ 12 ] .

2016년 11월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 13 ] [ 14 ] [ 15 ] . 74세몰.

각주

주석

  1.  젠킨스는 1965년부터 1980년 사이에 적어도 30회는 드레스노크에 맞았다고 증언했다.
  2.  도이나도 '이름도 없는 영웅들'에 출연하고 있었기 때문에 루마니아 정부가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다 [ 8 ] [ 9 ] .

출처

참고 자료

관련 항목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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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Joseph Dresnok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ames Joseph Dresnok
US Army photo of Dresnok, prior to his defection
NicknamesJim, Joe, Arthur
BornNovember 24, 1941[1]
DiedNovember 2016 (aged 74–75)
Pyongyang, North Korea
Cause of death
Stroke
Allegiance United States (1958–1962)
 North Korea (1962–2016)
Branch
 United States Army (1958–1962)
Service years
1958–1962 (defected)
Rank
Private first class
Spouses
  • Kathleen Ringwood (1959–1962)
  • Doina Bumbea (c. 1980s–1997)
  • A daughter of a North Korean woman and a Togolese diplomat (2001–2016)
Children3
Other workTeacher, actor, translator

James Joseph Dresnok (Korean: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 November 24, 1941 – November 2016) was an American defector to North Korea, one of seven U.S. soldiers to defect after the Korean War.

After defecting, Dresnok worked as an actor in propaganda films, some directed by Kim Jong Il,[2] and as an English teacher in Pyongyang. He was featured on the CBS magazine program 60 Minutes on January 28, 2007, as the last U.S. defector alive in North Korea.[3] He was also the subject of a documentary film, Crossing the Line, by British filmmakers Daniel Gordon and Nicholas Bonner, which was shown at the 2007 Sundance Film Festival.[4][5]

Dresnok most often called himself Joe Dresnok[3] but was also referred to as "James"[6][7] or "Jim" Dresnok[8] in media reports. He was known by most North Koreans as "Arthur", from his role in the miniseries Unsung Heroes (1978).

Early life

Dresnok was born in Norfolk, Virginia, to Joseph Dresnok Sr. and Margaret Lucille Dresnok (née Mizelle), who were married in South Mills, North Carolina, on May 3, 1941.[1] Joseph Dresnok Sr. (1917–1978) was born on February 3, 1917, in Greensburg, Pennsylvania, and died on March 16, 1978, in Wyckoff, New Jersey. Joseph Dresnok, Sr. served in the United States Army from November 23, 1937, until May 29, 1940.

The family was poor and fought over money. At one point, Margaret Dresnok fled with James and his younger brother, Joseph Jr., driving for hours, and the three would sleep in the car, essentially becoming homeless. Neither of the boys attended school during this period, and they wandered from place to place with their mother while she attempted to earn money through prostitution. She would often drink in bars at night, while leaving the boys in the car. Their family eventually tracked them down in Atlanta, after which Margaret lost custody of the children. Joseph Dresnok, Sr. sent the two to live with relatives, with James going to live with an aunt and his brother with an uncle. He stated that his aunt was "annoyed" to be forced to raise her brother's child, and he would run away from home often.[9]

Joseph and Margaret Dresnok divorced on July 10, 1951, in Richmond, Virginia. Dresnok's father initiated the divorce action, claiming that Dresnok's mother was "legally married to another." Eventually, James's aunt returned him to his father's house in Pennsylvania, unwilling to deal with him anymore. However, by this point his father had already found a second wife, and his brother had moved back in with them, with Joseph, Sr. lying to his wife, saying he only ever had one son. After his father and stepmother got into an argument that night, the following morning, James's father drove him to a retirement home a few towns away, saying they were on the way to visit a relative. Telling James to wait in the reception area, Joseph Sr. got back into his car and drove away.[9] James would never come into contact with his mother, father, or younger brother again.[10] Dresnok reported that after this, he left the building and stole $20, then stole a nearby unattended bicycle, eventually being caught by the police.[9] After almost being sent to a youth detention center, Dresnok was placed in a foster home in Glen Allen, Virginia, under the care of Presbyterian minister Carson T. Overstreet and his wife, Marguarite,[11] where he felt welcomed.

Dresnok would end up dropping out of high school, and joined the Army the day after his 17th birthday,[12] believing it was one of the few opportunities available left for him. During a short-term leave period, he returned to Richmond, Virginia and married Kathleen Ringwood, who he had met at church a short time earlier.[9]

Defection

Dresnok's first military service was two years spent in West Germany. He reported being treated harshly after "one minor offence", being forced to clean an armored truck with a toothbrush in sub-zero temperatures. He described it as the first thought he had of crossing into a communist country, although ultimately abandoned the idea at the time, saying that "if you went to the DDR they interrogated you and sent you back."[13] After returning to the United States and finding out that his wife had cheated and left him for another man, he filed divorce papers at the request of his wife, and he re-enlisted and was sent to South Korea.[9]

He was a private first class with the 1st Cavalry Division along the Korean Demilitarized Zon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in the early 1960s. Depressed and having lost any hope for a future outside the Army, Dresnok began spending all his military earnings on prostitutes and alcohol.[9] Soon after his arrival, he found himself facing a court martial for forging his sergeant's signatures on paperwork that gave him permission to leave the base, which ultimately led to his going AWOL (absent without leave).[3] At the time, he was stationed around 20 kilometres (12 mi) east of Kaesong.[14]

Having lost hope for his life and future and being unwilling to face punishment, on August 15, 1962, three hours before he was due to meet with Captain Thomas Bryan regarding the court martial, while his fellow soldiers were eating lunch, he ran across a minefield in broad daylight into Kijong-dong in North Korean territory, where he was quickly apprehended by North Korean soldiers.[9] Dresnok was taken by train to Pyongyang, the North Korean capital, and interrogated.[3]

Life in North Korea

"I was fed up with my childhood, my marriage, my military life, everything. I was finished. There's only one place to go," Dresnok said in an interview. "On August 15th, at noon, in broad daylight when everybody was eating lunch, I hit the road. Yes, I was afraid. Am I gonna live or die? And when I stepped into the minefield and I seen it with my own eyes, I started sweating. I crossed over, looking for my new life."[3]

Dresnok met Larry Allen Abshier, another U.S. defector, soon after his arrival. Eventually there were four of them: Dresnok, Abshier, Jerry Parrish, and Charles Robert Jenkins. The men lived together and participated in several propaganda efforts on behalf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They appeared on magazine covers and used loudspeakers to try to persuade more U.S. soldiers at the border to defect. They did not wish to remain in North Korea indefinitely at first. In 1966, the four men tried to leave North Korea by seeking asylum at the Soviet embassy in Pyongyang, but the embassy immediately turned them over to North Korean authorities.[3] After that, Dresnok decided to settle in North Korea.

Beginning in 1978, he was cast in several North Korean films, including one episode of the series Unsung Heroes (as an American villain called "Arthur Cockstead"),[15] and he became a celebrity in the country as a result. He was called "Arthur" by his North Korean friends, after the name of his character in Unsung Heroes. He also translated some of North Korean leader Kim Il Sung's writings into English.[3][16]

In his book The Reluctant Communist, Jenkins claims that Dresnok was a bully, betraying the other Americans' confidences to the North Koreans, and beating up Jenkins on 30 or more occasions on the orders of their Korean handlers.[17]: 64  In the documentary Crossing the Line, Dresnok vehemently denied the allegations.

Dresnok asserts that "because of the sanctions of the U.S. Government and Japanese",[18] during the North Korean famine of the 1990s, he was always given his full food ration by the government. "Why? Why do they let their own people starve to death to feed an American?" he asked. "The Great Leader has given us a special solicitude. The government is going to take care of me until my dying day."[19]

Personal life and marriages

In December 1959, Dresnok married Kathleen Ringwood, a 19-year-old from New York City.[20] In Crossing the Line, Dresnok explains that after getting married at a young age, he was deployed in West Germany for two years while she remained in the U.S. He prided himself on "truly loving her and being loyal to her", but when he returned, he found out that she was already in another relationship. He was quoted as saying, "The good thing was that she did not get pregnant by me because I had promised that I would never abandon my children." However, they remained married until after his defection in 1962. She filed for divorce the next year, citing "willful desertion" on his part as grounds.[21]

Dresnok was married twice more after defecting to North Korea. His second marriage was to a Romanian woman, Doina Bumbea (referred to as "Dona" in Jenkins's autobiography), with whom he had two sons, Theodore "Ted" Ricardo Dresnok (born 1980)[22] and James Gabriel Dresnok (born c. 1982).[23] Bumbea supposedly worked at the Romanian Embassy, but some accounts say that she never worked there and was in fact an abductee who had been taken by the North Korean secret service. According to Bumbea's family, she was living in Italy as an art student when she vanished, after telling people that she had met a man who promised to help arrange exhibitions of her art in Asia. After viewing Crossing the Line and seeing one of Dresnok's sons, Bumbea's brother stated he bore a startling resemblance to his missing sister.[24][4][25][26] According to Jenkins' book, Bumbea was abducted in order to be the wife of one of the American deserters.[17]: 73–74 [4] The Romanian Foreign Affairs Ministry's website says that in 2007 the Romanian Government had requested an explanation for Bumbea's abduction from the North Korean government. However, no response was provided to Romania.[27][28] Bumbea reportedly died of lung cancer in 1997.[22]

After Bumbea's death, Dresnok married his third wife, identified by Jenkins as "Dada", the daughter of a North Korean woman and a Togolese diplomat. They had a son, Tony, in 2001. The family lived in a small apartment in Pyongyang, provided to them along with a monthly stipend by the North Korean government. Dresnok was in failing health, with a bad heart and liver (Dresnok described his liver as "full of fat"), which he attributed to smoking and drinking too much.[3][29]

His younger son from his second marriage, James Dresnok, was a student at the Pyongyang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where his father taught English in the 1980s.[22] James speaks English with a Korean accent and considers himself Korean but he reportedly did not wish to marry a Korean woman.[29] James joined the North Korean military in 2014, and in 2016 he reportedly held the rank of taewi, a rank that is equivalent to the rank of captain in the US Army.[22][30] Both the younger James and the older Ted Dresnok are now married and they also have children of their own in North Korea. Like their father, they have also appeared as villainous Americans in North Korean films.[31][32]

Dresnok stated that he intended to spend the rest of his life in North Korea, and no amount of money could have enticed him to move back to the West. Dresnok retired and occasionally gave lectures in North Korea and went fishing "just to pass the time."[3][29]

Death

In April 2017, the Western news organization NK News reported that Dresnok had died the previous year.[8] In August 2017, Dresnok's sons confirmed that he had died of a stroke in November 2016.[33][34] They released a statement saying that their father told them to remain loyal to Kim Jong Un and they also stated that the US would be destroyed if it launched a preemptive strike against North Korea.[30][35]

Filmography

Filmography of James Joseph Dresnok
YearTitleRoleNotesRefs.
1978–1981Unsung HeroesArthurA North Korean epic miniseries[16]
1990From 5pm to 5amAmerican generalA North Korean action film[36]
2006Crossing the LineHimselfA documentary film[16]

See also

References

  1.  Virginia, Birth Records, 1912–2014, Delayed Birth Records, 1854–1911; Virginia Department of Health, Richmond, Virginia.
  2.  "The Americans Who Chose To Live in North Korea". BBC.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December 7, 2016.
  3.  Anderson, Robert G.; Morgan, Casey (January 28, 2007). "An American in North Korea". 60 Minute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ugust 10, 2007. Retrieved August 21, 2007.
  4.  Kirby, Michael Donald; Biserko, Sonja; Darusman, Marzuki (February 7, 2014), Report of the detailed findings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 A/HRC/25/CRP.1,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pp. 306 (Paragraph 973),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February 27, 2014, Ms Dona Bumbea disappeared from Italy in 1978 and is believed to have been lured to the DPRK. Ms Bumbea had been studying art in Italy at the time when she met an Italian man claiming to be an art dealer, who convinced her to hold an exhibition in Hong Kong. The two travelled to Pyongyang en-route to Hong Kong at which point the Italian disappeared. Ms Bumbea was kept in the DPRK and "given" to American army deserter Mr Dresnock [sic]. Ms Bumbea died in the DPRK and is survived by her two sons, Mr Ricardo Dresnock born in 1981 and Mr James Gabriel Dresnock, born in 1983, both of whom have been seen in several documentaries including "Crossing the line" (2006) and "Aim High in Creation" (2013). Ms Bumbea's family in Romania has been unable to have any contact with Ms Bumbea's sons despite their wish to.
  5.  World Documentary Competition, "Crossing the Line" (2006) Archived March 4, 2007, at the Wayback Machine 2007 Sundance Film Festival. Accessed January 28, 2007.
  6.  Frederick, Jim; Zama, Camp (November 4, 2004). "In from the Cold". Tim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September 4, 2007.
  7.  Russell, Mark (October 19, 2006), "An American in North Korea, Pledging Allegiance to the Great Leader", The New York Time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January 25, 2016, retrieved January 28, 2007
  8.  O'Carroll, Chad (April 10, 2017). "Jim Dresnok, American who defected to N.Korea in 1962, died in 2016". NK New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pril 10, 2017.
  9.  James Dresnok: The US Soldier Who Defected to North Korea. Biographics. July 22, 2019 – via YouTube.
  10.  Man Hopes His Brother Alive Archived February 5, 2007, at the Wayback Machine; Thursday January 18, 1996
  11.  Swift, Earl (September 8, 2004). "The Defector". Style Weekly. Retrieved February 15, 2023.
  12.  Sweeney, John (2015). North Korea Undercover: Inside the World's Most Secret State. Pegasus Books. p. 123. ISBN 9781605988030. Retrieved August 21, 2017.
  13.  Seddon, Mark (September 8, 2008). "'The Dear Leader takes care of me'". The Guardian. ISSN 0261-3077. Retrieved February 15, 2023.
  14.  McMichael, William H. (January 18, 1996). "PENTAGON: SOLDIERS RAN OFF TO N. KOREA". Daily Press. Retrieved February 15, 2023.
  15.  Classic North Korean film about and starring US defectors has been converted into colour, Koryogroup.com, December 6, 2018
  16.  Spiller, Penny (January 23, 2007). "Last US defector in North Korea". BBC New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February 8, 2007. Retrieved May 1, 2009.
  17.  Jenkins, Charles Robert; Frederick, Jim (2008). The Reluctant Communist: My Desertion, Court-Martial, and Forty-Year Imprisonment in North Kore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 73. ISBN 9780520259997.
  18.  "North Korea Documentary About a US Army soldier who defected to North Korea" on YouTube
  19.  "An American in North Korea, Pledging Allegiance to the Great Leader". The New York Times. October 19, 2006.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January 25, 2016.
  20.  Virginia, Marriage Records, 1936–2014
  21.  Virginia, Divorce Records, 1918–2014
  22.  Fifield, Anna (May 25, 2016). "An American GI defected to North Korea. Now his sons are propaganda stars". The Washington Post.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June 4, 2017.
  23.  "N. Korea kidnap victim's brother wants Pyongyang to come clean". Bangkok Post. March 17, 2014.
  24.  Cain, Geoffrey (December 26, 2014). "Political kidnappings, North Korean style". USA Toda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ugust 22, 2017. Retrieved August 21, 2017.
  25.  "Romanian Woman Kidnapped by N. Korea in 1978" Archived June 22, 2011, at the Wayback Machine, The Chosun Ilbo, March 22, 2007. Accessed November 13, 2010.
  26.  "Romanian brother of Pyongyang abductee visits" Deprecated link archived July 17, 2012, at archive.today, The Japan Times, April 21, 2007. Accessed November 13, 2010.
  27.  "Ministerul Afacerilor Externe". mae.ro.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February 27, 2012.
  28.  "Japonia mizează pe ajutorul României, în relaţia cu Phenianul pe tema răpirilor". REALITATEA.NET. December 28, 2015.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February 9, 2011.
  29.  "Dresnok". YouTub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pril 27, 2021. Retrieved May 19, 2018.
  30.  민족통신, 미국인 조선공민과 특별대담 -54년전 3.8선 넘어온 미국 병사의 두자녀는 말한다-. YouTube.
  31.  Broinowski, Anna (January 21, 2016). "The Australian who shot a North Korean propaganda film". BBC New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pril 23, 2017.
  32.  "- YouTube". YouTube.
  33.  "Sons confirm death of US soldier James Dresnok, who defected to North Korea". The Guardian. Agence France-Presse. August 21, 2017.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ugust 21, 2017. Retrieved August 21, 2017.
  34.  "A U.S. soldier who defected to North Korea in 1962 has died, his Pyongyang-born sons say". The Washington Post. August 21, 2017.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ugust 21, 2017. Retrieved August 22, 2017.
  35.  "Sons of US defector to North Korea James Dresnok speak out after father's death – video". The Guardian. August 21, 2017.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May 20, 2018. Retrieved May 20, 2018.
  36.  Fowler, Simon (December 12, 2017). "The US defectors who became film stars in North Korea". BBC. Retrieved November 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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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May 9, 2026

북한 그래픽 노블 분석 및 평론 - Google Gemini

북한 그래픽 노블 분석 및 평론 - Google Gemini




마틴 피터슨(Martin Petersen)의 저서 <북한의 그래픽 노블: 순진한 이들의 유혹?>(North Korean Graphic Novels: Seduction of the Innocent?)에 대한 요약과 평론을 작성하였다.

 

<북한의 그래픽 노블: 순진한 이들의 유혹?> 요약 및 평론

1. 요약: 체제와 독자 사이의 정교한 줄타기

마틴 피터슨의 이 연구서는 북한에서 <그림책>(kurimchaek)이라 불리는 매체, 특히 칸 나누기와 말풍선이 사용된 순차적 이미지 형식의 만화(그래픽 노블)를 다룬다. 저자는 2000년대 이후 발행된 북한 그래픽 노블이 단순한 선전 도구를 넘어,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고 인민을 교양하는 핵심적인 예술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분석한다.

서구적 시각의 재구성 저자는 프레드릭 워덤(Fredric Wertham)의 1954년 저서 <순진한 이들의 유혹>을 부제로 차용한다. 워덤이 미국 만화가 청소년의 비행을 유도한다고 비판했다면, 북한의 이론가들 역시 자본주의 만화를 '퇴폐적이고 기괴한 범죄의 온상'으로 규정하며 이를 경계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북한 체제가 자국 내 만화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논리를 펼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림책의 강한 '유혹적 힘'과 '상상력'을 인정하며, 이를 인민을 충성스러운 국가 지지자로 만드는 강력한 선동 수단으로 활용한다.

내용과 주제의 분화 책의 제2부에서는 2000년대 북한 그래픽 노블의 주요 주제를 심도 있게 살핀다.

  • 가족과 국가: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가족으로 상정하고, 부모에 대한 효도를 수령에 대한 충성으로 전이시키는 서사를 분석한다.

  • 출신 성분과 갈등: <이슬 맺힌 꽃송이의 정체> 등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북한 사회의 핵심 기제인 '성분'이 서사 내에서 어떻게 갈등을 유발하고 다시 체제 수호의 논리로 회수되는지 보여준다.

  • 고난의 행군과 새로운 전략: 1990년대 중반 대기근 이후, 식량 문제나 경제적 위기를 다루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인민의 일상적 현실과 어떻게 충돌하거나 타협하는지 탐구한다.

  • 전쟁과 애국주의: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을 다룬 작품들을 통해 적에 대한 증오심을 고취하고 전형적인 영웅상을 제시하는 방식을 고찰한다.

수용과 저항의 틈새 제3부에서는 북한 내 독자들과 탈북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매체의 실제 수용 방식을 추적한다. 저자는 북한 당국이 매체를 완전히 통제하려 하지만, 그래픽 노블 특유의 오락성과 시각적 서사가 때로는 체제의 의도와 어긋나는 '통제 불가능한 틈새'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독자들은 이를 선전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순수한 재미로 소비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삶과 괴리된 체제 서사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을 지닌다.


2. 평론: '획일성'이라는 신화에 던지는 균열

이 책은 북한 문화를 바라보는 서구와 남한의 '단성적(monolithic) 시각'에 도전하는 중요한 학술적 성과다. 기존 연구들이 북한 만화를 단순히 조잡한 선전물로 치부했다면, 피터슨은 이를 텍스트와 이미지가 결합된 고유한 '미디어 어포던스'(media affordances)를 가진 예술 형식으로 격상시켜 분석한다.

정교한 분석 프레임워크 저자가 워덤의 비판적 시각을 북한 맥락에 투영한 것은 매우 영리한 전략이다. '유혹'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북한 체제가 인민의 심리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공략하는지 드러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유혹이 가진 휘발성과 불확실성을 짚어낸다. 이는 북한 체제가 완벽한 세뇌 장치가 아니라, 끊임없이 인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체를 혁신하고 가다듬어야 하는 '불안한 권력'임을 시사한다.

현실과 서사의 괴리 특히 평론적으로 가치 있는 지점은 2000년대 이후 북한 그래픽 노블에서 발견되는 '모순'에 대한 통찰이다. 체제는 도덕적이고 완벽한 영웅을 제시하려 하지만,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도입한 갈등 요소들이 실제 북한 사회의 부조리(성분 차별, 식량난 등)를 은연중에 노출하게 된다. 저자는 이를 '창조적 틈새'라 부르며, 이 틈새야말로 북한 사회의 내부 역동성을 읽어낼 수 있는 소중한 창구임을 역설한다.

한계와 의의 물론 저자가 인정한 대로 북한 내부의 내밀한 생산 과정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나, 가용한 1차 사료와 탈북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결합해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책은 북한 만화를 '읽는 대상'이 아닌 '연구의 대상'으로 확립했으며, 북한 연구에 있어 문화 인류학적 접근과 매체 미학적 분석이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결론적으로 마틴 피터슨의 이 저작은 북한 그래픽 노블이 체제의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인민의 상상력이 체제 밖으로 탈주할 수 있는 위험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이는 북한 문화 연구의 지평을 넓힌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세진님, 북한의 그림책이 가진 이중적 면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의 분석 내용 중에서 특히 북한 만화 속의 <가족관>이나 <계급 갈등> 같은 특정 주제에 대해 더 자세한 평론이 필요하신가요?

===

Martin Petersen의 《North Korean Graphic Novels: Seduction of the Innocent?》는 북한 만화(쿠림책, kurimchaek)를 단순한 “선전물”로 보지 않고, 국가·예술가·독자 사이의 긴장 속에서 분석한 매우 독창적인 연구입니다. 이 책은 북한의 그래픽 노블(만화)이 어떻게 체제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체제가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상상력과 감정의 공간을 만들어내는지를 탐구합니다.

핵심적으로 Petersen은 서구 사회가 흔히 갖는 단순한 이미지―“북한 만화 = 세뇌 propaganda”―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합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북한 만화가 실제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체제에 충성하도록 “유혹(seduction)”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바로 그 “유혹”을 위해 필요한 상상력과 서사성 때문에 체제의 통제를 넘어서는 균열도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책의 제목이 Fredric Wertham의 고전 《Seduction of the Innocent》를 패러디한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Wertham은 1950년대 미국 만화가 청소년 범죄를 조장한다고 주장했는데, Petersen은 흥미롭게도 북한 내부 담론 역시 자본주의 만화를 “타락시키는 매체”로 비난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북한 학자들은 서구 만화를 “개인주의·퇴폐성·범죄를 조장하는 위험한 문화”로 본다는 것입니다. Petersen은 여기서 아이러니를 발견합니다. 미국 보수주의자 Wertham과 북한 문화이론가들이 만화를 “위험한 매체”로 본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Petersen 자신은 Wertham식 단순 미디어 효과론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만화라는 형식 자체가 갖는 상상력”에 주목합니다. 북한 체제는 만화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강하게 몰입시키는 힘을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동시에 그 몰입과 상상력이 체제에 불편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도 두려워합니다. 즉, 만화는 체제에 매우 유용한 동시에 위험한 매체라는 것입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부분은 북한 만화의 역사와 국가체제와의 관계를 다룹니다. Petersen은 북한 문화예술 전체가 김일성 시기부터 “혁명교육”의 도구로 조직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문학과 예술은 당과 국가에 종속되었고, 작가와 화가는 “혁명의 전사”로 규정되었습니다. 만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북한이 만화를 단순 오락물이 아니라 “강력한 선전·선동 수단”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입니다. 북한 문화이론서 《A New Turn in Print Art》에서는 만화를 “노동자와 어린이를 교육하는 혁명적 매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 만화는 애국심·충성심·반간첩 의식·도덕교육을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Petersen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북한 만화가 단순한 포스터 선전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만화는 이야기·캐릭터·감정이 필요합니다. 독자를 몰입시키기 위해서는 갈등과 긴장도 필요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체제의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구체적 작품 분석입니다. 이 부분이 책의 가장 강력한 핵심입니다.

Petersen은 1990년대 대기근(“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만화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 현실을 다루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예전 만화가 단순히 “혁명적 영웅”을 찬양했다면, 2000년대 작품들은 사회적 위기·가족 갈등·배신·의심 같은 요소를 더 적극적으로 묘사합니다.

예를 들어 《Pear Blossom》 같은 작품에서는 가족 배경과 충성심 문제가 긴장 요소로 등장합니다. 어떤 인물은 좋은 시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순한 배경”을 가진 존재로 드러납니다. Petersen은 이런 설정이 북한 사회 내부의 “성분(sŏngbun)” 문제를 반영한다고 분석합니다. 즉, 공식적으로는 계급 없는 사회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가족 배경과 정치적 혈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모순이 만화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북한 만화가 “가족”을 국가와 동일시한다고 분석합니다. 아버지는 지도자, 어머니는 조국, 자식은 인민이라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이는 유교적 가족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주의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가족 내부의 충성은 국가 충성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Petersen은 이 가족주의가 오히려 체제의 불안도 드러낸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만화 속 갈등이 계속해서 “숨겨진 불충성”과 “배신 가능성”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체제는 완전한 단결을 말하지만, 서사는 계속해서 균열과 의심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전쟁만화 분석도 흥미롭습니다. 북한 만화 속 한국전쟁은 “조국해방전쟁”으로 묘사되며, 미국과 남한은 극단적으로 악마화됩니다. 그러나 Petersen은 이런 전쟁만화가 단순 선전 이상의 “하이퍼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고 봅니다. 전쟁은 거의 신화적 차원으로 재구성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이 지점은 세진님이 관심 가지신 “기억정치”와 연결됩니다. 북한 만화 속 전쟁 기억은 단순 역사교육이 아니라 감정 구조를 만드는 장치입니다. 독자는 전쟁을 “과거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위협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체제 충성은 단순 정치적 충성이 아니라 생존 본능과 결합됩니다.

세 번째 부분은 독자 연구입니다. 이것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Petersen은 탈북자 인터뷰를 통해 실제 독자들이 만화를 어떻게 읽었는지 조사합니다. 놀랍게도 많은 탈북자들은 만화를 “정치교육”보다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기억합니다. 아이들은 영웅 이야기·전투 장면·모험·감정적 긴장에 몰입했습니다.

즉, 체제는 만화를 통해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 했지만, 실제 독자들은 종종 그것을 오락으로 소비했습니다. Petersen은 바로 이 지점에서 “체제의 통제 불가능성”을 봅니다. 독자는 항상 국가가 의도한 방식대로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Petersen이 북한 만화를 낭만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북한 만화가 국가 이데올로기의 핵심 도구라고 봅니다. 다만 그 효과가 단순하고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북한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많은 서구 담론은 북한 문화를 “100% 선전”으로만 봅니다. 반대로 일부 친북 담론은 북한 문화를 “민족적 순수성”의 표현처럼 낭만화합니다. Petersen은 둘 다 거부합니다.

그는 북한 만화를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봅니다. 즉:

  • 체제 통제가 강력하지만,
  • 창작자들의 고민도 존재하고,
  • 독자의 자율적 해석도 존재하며,
  • 상상력 자체는 완전히 봉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단순 북한 연구를 넘어 문화연구 전체에 중요한 기여를 합니다.

다만 한계도 있습니다.

첫째, 실제 북한 내부 독자 자료는 제한적입니다. 탈북자 인터뷰는 귀중하지만, 현재 북한 내부 독자의 반응 전체를 대표하기는 어렵습니다.

둘째, 경제적 측면 분석은 비교적 약합니다. 예를 들어:

  • 종이 공급,
  • 출판 시스템,
  • 유통 구조,
  • 시장화 이후 변화

같은 부분은 깊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셋째, 일본 만화나 한국 웹툰과의 미학적 비교도 제한적입니다. 북한 만화가 동아시아 만화문화 전체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더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riday, May 8, 2026

고백, 찰스 로버트 젠킨스

주한미군이 월북 했다고? <에세이> 고백, 찰.. : 네이버블로그


독서일기


주한미군이 월북 했다고? <에세이> 고백, 찰스 로버트 젠킨스
파블로 네루다 ・ 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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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인이 자신의 부하들과 DMZ를 정찰한다. 그는 무척 취해있었다. 부하들에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한 다음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1965년 1월 5일, 주한미군 중사 찰스 로버트 젠킨스는 DMZ를 넘어 북한에 투항했다.



살다보면 별의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찰스 젠킨스도 매우 독특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미국을 버리고, 북한으로 갔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체 왜, 미국인이 북한에 갔나?



때는 베트남전 막바지였다. 젠킨스가 속한 주한미군 사단도 베트남으로 차출돼 전쟁에 투입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젠킨스는 그 소문을 다름아닌 자신의 사촌에게 직접 들었다. 그래서 탈영을 결심했다. 대충 사고를 치고 북한에서 소련을 거쳐 미국으로 송환되면, 간단한 징역을 살고 베트남전 참전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의 묘미(?)이다. 젠킨스는 북한에 투항하고 무려 40년 간 북한에 잡혀있었다. 젠킨스는 하급 간부로 군사기밀을 알지도 못 했고, 단순히 차출 공포로 북한에 온 것이 활용가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젠킨스를 억류했다.



젠킨스는 북한에서 월북 선배(?) 주한미군 드레스녹을 만난다. 드레스녹은 엄청난 거구로, 젠킨스와 티격태격 했다. 두 사람 외에도 또다른 미군 병사 2명이 월북해와 4명은 절친(..)으로 지낸다.



북한은 체제 선전용으로 4명의 미군을 어떻게든 북한에 정착시키려 했다. 네 사람의 수발을 들기 위해 불임으로 이혼 당한 여성 4명을 각각 요리사로 보내주었다. 젠킨스는 여성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북한 간부는 젠킨스에게 “왜 저 여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느냐?”고 화를 냈다. 그렇게 물어볼 수 있다는 건 젠킨스가 24시간 도청당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젠킨스는 여성을 단호히 거부했다. 사실은 북한 여성이 일반적인 북한 사람처럼 열렬한 반미주의자라 젠킨스를 매우 싫어했다. 그저 당국이 시키니 어쩔 수 없이 젠킨스 옆에 있었던 것뿐이다.



이후 북한 당국은 소가 히토미라는 일본 여성을 젠킨스의 집으로 보냈다. 히토미와 젠킨스의 나이 차이는 무려 20살로, 젠킨스에게 히토미의 영어교사 역할을 맡긴 것인데...

사실 소가 히토미는 북한의 납치 피해자다. 간호조무사였던 히토미는 어머니와 시장을 다녀오다 납치당했다. 북한 공작원들은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 민간인들을 무작정 납치하는 만행을 여러 차례 저질렀다. 즉 히토미도 억류당한 일본이었고, 젠킨스도 자발적으로 오긴 했지만 억류당한 미국인으로 같은 신세였다.



젠킨스는 히토미에게 최대한 정중하게 대했고, 히토미는 서서히 젠킨스에게 마음을 열었다. 히토미에게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을 것이다. 북한 남자와 결혼하지 않을 바에야 젠킨스랑 결혼하겠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극한의 상황에서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결혼했다.



세월이 흘러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북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의 압박(이때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다)에 못 이겨 납치 사실을 인정했고, 급기야 북한은 납치피해자 명단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 명단에 소가 히토미도 포함돼 있었다. 히토미의 납치 사실을 파악하지 못 했던 일본은 “소가 히토미가 대체 누구야?!”라면서 패닉에 빠진다.



북일 협의 끝에 납치 피해자 5명(히토미 포함)이 일본 땅을 일시적으로 밟게 됐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데, “돌려보낼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낸다. 납치 피해자인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북한에서는 돌려보낸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노발대발 했다.



히토미가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자 젠킨스는 크게 낙담한다. 그는 술로 몸과 마음을 적시며 인생을 포기할 지경에 이른다. 이때 일본 정부는 다시 북한과 교섭했고, 젠킨스와 두 딸은 인도네시아에서 히토미와 재회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 같이 일본으로 향한다.



정말 드라마틱한 인생,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인생이 많지만, 젠킨스의 인생만큼 독특한 인생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자신이 ‘거대한 감옥’이라 부른 북한에서 오롯이 보냈다. 사람들은 젠킨스에게 자주 물었다. “북한에 간 것을 후회하지요?” “물론!”라는 답변을 듣기 위해 물은 것이다.



하지만 젠킨스는 “후회합니다. 하지만 북에 가지 않았다면 히토미와 두 딸을 만날 일도 없었겠지요...”



영화 <컨택트>도 아니고 이건 뭐...참으로 기가 막힌 아이러니다.



+책 표지에 설명 문구가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북한으로 탈북’이라고 쓰여 있다. 남을 떠나서 북한으로 들어가면 ‘월북’이고, 남을 탈출했으니, ‘탈남’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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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찰스. R. 젠킨스 (지은이),김혜숙 (옮긴이)물푸레2006-06-01
원제 : To Tell The Truth (2005년)




책소개
주한미군 중사 출신으로 40여년간 북한에 갇혀 살다 2004년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 일본에 정착한 찰스 R. 젠킨스의 북한생활 수기이다. 납북자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받고 있는 요코타 메구미와 김영남을 만난 이야기를 비롯, 북한 내의 사상교육과 지독한 가난, 고립된 공산주의 세계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한다.

지은이는 1965년 1월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자원하여 들어왔지만, 자신의 부대가 월남전에 파병된다는 사실을 알고 탈영을 결심,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한으로 건너간다. 소련을 거쳐 미국에 자수하려던 그의 계획은 북한에 의해 좌절되고, 그는 '냉전시대의 전리품'으로 포장되어 영화배우, 영어를 가르치는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일본인 납치 피해자인 요코타 메구미와 결혼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북한에서 경험한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서술하면서 북한식 공산주의의 허위를 외국인의 눈으로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의 이야기는 이후 일본 니혼 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으며,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베스트셀러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목차


서장

제1장 슈퍼 젠킨스
제2장 육군 입대, 그리고 비무장지대를 넘어서
제3장 동거인들
제4장 요리사, 사관후보생, 아내들
제5장 아내, 소가 히토미
제6장 친구들, 그리고 이방인들
제7장 가정생활
제8장 히토미의 탈출
제9장 나의 탈출
제10장 귀향


연보


책속에서


순간 나는 의사가 얼마나 무서운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문신을 피부째 벗겨내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달려들어 작은 의자에 앉혔다. 의사가 칼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와 먼저 ‘US ARMY'라는 글자를 위아래로 잘랐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살갗을 들어 올려 가위로 피부를 걷어내기 시작하자 뭐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한 통증이 엄습했다. 나는 거의 실신할 정도로 비명을 질러댔다. - 본문 중에서 접기
요코타 메구미 씨의 운명에 대해서는 다양한 억측이 떠돌고 있다. 살았는가, 죽었는가, 북한이 일본에 보낸 화장된 유체의 일부가 진짜 그녀의 것인가? 지금부터 내가 쓰는 말이 사실인지 어떤지 나는 잘 모른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메구미 씨가 살아 있으며 군인이나 공작원과 결혼했고 해외에서 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람과 결혼한 일본인을 북한 정부가 고국으로 돌려보낼 리 만무하다. - 본문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찰스. R. 젠킨스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40년 2월 18일생이다. 1955년 노스캐롤라이나 주군에 입대하여 1958년 제대 후 바로 미국 육군에 입대했다. 1958년 9월 한국의 캠프 카이저 미군기지로 배속된 후 1964년 다시 자원하여 한국의 캠프 클린치에서 근무했으며, 근무 중 부대가 월남전에 파병될 것임을 알고 탈영을 결심했다. 1965년 1월 5일 비무장 지대(DMZ)를 넘어 북한으로 건너간 이후 월북한 미국인 아부셔, 퍼리슈, 드레스녹과 함께 살다가 1972년 북한의 시민권을 부여받게 되었다. 1980년 일본인 납치피해자 소가 히토미 씨와 결혼,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총리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부인 히토미 씨가 먼저 일본으로 탈출하고 2년 뒤인 2004년 7월 9일 두 딸과 일본으로 탈출했다. 그 해 11월 미 육군 군법회의에서 30일간의 금고형을 확정받고 미국해군 요코오카 기지에 수감됐다. 12월부터 일본 사도 섬에 정착하여 부인과 살고 있다. 접기

최근작 : <고백>

김혜숙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한림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전국국공립대학교육원협회에서 '한국어 강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강의를 하기도 했다. 현재는 번역 전문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성공한 사람들의 독서습관", "퇴근 후 3시간", "잠자는 기술", "유대인 유머의 지혜", "차이나는 기회다", "바람피우 는 남자, 한눈파는 여자", "매혹의 기술" 외 다수가 있다.

최근작 :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기르기 위한 50가지 방법> … 총 36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기구한 운명

뉴스에서 듣고 본 사연을 한참을 잊고 지내다 며칠 전 우연히 묵은 'TIME'지 속에서 기사를 찾아 읽고선, 바로 책을 주문해 어제 오늘 단숨에 끝까지 읽어 버렸다.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참 기구한 삶을 사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서 네 명의 월북한 미군들이 모여 사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읽노라면, '신들의 주사위'라는 소설 제목이 떠오른다.

실상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넘어간 북한에 갇혀서 수십 년을 그곳에서 살다가, 둘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한 명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으로 나온다. 다른 곳에서 납치해 온 여성들과 각자 결혼해서 사는 생생한 생활의 묘사를 읽다보면, 인간이란 어떤 현실 속에서든 '살아야 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지고 세상에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란 자신의 운명과 고통스런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체념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이렇게 살아지는 것이구나.... 그러다 또 다시 어떤 운명의 힘에 의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희망이 주어지면, 시간이 바꾸어 놓은 현실과 고통스럽게 다시 마주하게되는구나....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냥 그대로 지나가지 않는가.... 납북된 사람만 아직 얼마나 많이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미군 중사가 DMZ를 넘어 북한으로 간 사실도 참 희귀한 경우지만, 납치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20년을 넘게 그 곳에 살다가, 극적으로 40년 만에 가족이 일본으로 빠져나온 후, 다시 미군 법정에 회부되어 30일 금고형을 살고 마침내 지난 40년간 지고 왔던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곤, 이제 일본에서 모두 함께 살고 있는 이 사람의 이야기가 참으로 많은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은 무엇보다, 지금껏 추상적으로 생각해 왔던, '자유'라든가, '고생'이라든가, '운명'이라든가 하는 말 위에 얹혀있던 거품을 삽시간에 걷어버리고, 안이한 쪽으로 흐르는 생각의 습관을 몹시 흔들어 놓는다.

잘나지 못한 너무도 평범한 한 개인이, 어떻게 하다 보니 빠져버린 기막힌 상황에서, 할 수 없이 그대로 '살아버린' 인생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이 있다.

이 시대 북한에서의 생활이란 것, 그리고 개인이 처한 어떤 극한 상황 속에서 우리 각자가 드러낼 수 있는 좌절과 희망의 몸부림, 또 선택의 폭이 거의 전무 하다시피 한 환경에서도 인간이 내리고 또 내려야 하는 선택이란 것 - 이런 제목들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스쳐 간다.

이 책에 담긴 솔직한 고백 속에 '리처드 젠킨스'란 한 사람이 고스란히 숨쉬며 살아있다. 그리고, 부인인 '소가 히토미'란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느낀다. 앞으로의 시간 동안 이 가족이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마음 속으로 조용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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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 2007-08-24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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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 찰스 젠킨스 회고록 "참혹하게 사는 北주민들에 미안" 2008

"참혹하게 사는 北주민들에 미안"






"참혹하게 사는 北주민들에 미안"
미국의 소리(V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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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3, 09:25
越北 후 40년 만에 귀환한 미군 찰스 젠킨스 회고록 ‘마지못한 공산주의자(The Reluctant Communist)' 미국서 발간.
주일 미군사령부에 자진 출두한 젠킨스 씨.

43년 전인 지난 1965년 주한미군 복무 중 탈영해 북한으로 넘어갔던 찰스 젠킨스 씨가 북한을 빠져나오기까지 40년 간 북한에서의 삶을 이야기한 회고록 ‘마지못한 공산주의자 (The Reluctant Communist)’가 최근 미국에서 발간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자신의 아내를 따라 3년 전 일본에 정착한 젠킨스 씨는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자신은 외부 세상에 40년 간 북한에서의 경험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미정 기자가 `마지못한 공산주의자' 젠킨스 씨와의 인터뷰 내용 두 번째 마지막 편을 전해드립니다.

2002년 9월17일 저녁. 무심코 텔레비전 뉴스를 지켜보던 찰스 젠킨스 씨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북한의 관영 뉴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고만 짤막하게 보도했습니다.

절망 가운데 한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37년 전, 24세의 젊은 나이에 북한으로 탈영했던 주한미군 젠킨스 중사. 그의 얼굴에는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어 있었습니다. 그 사이 그는 22년 전 결혼한 일본인 납북자 소가 히토미와의 사이에서 미카와 브린다라는 두 딸을 두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왜 북한을 방문했을까? 그가 김정일을 만나 무슨 얘기를 했을까? 아내 히토미의 고국에서 온 최고 지도자라는 이유만으로 젠킨스 씨는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대해 더 알고 싶었습니다.

젠킨스 씨는 벽장 안에 숨겨두었던 중국산 라디오를 꺼내, 그동안 청취해왔던 ‘미국의 소리’ 방송과 일본의 ‘NKH 방송’에 주파수를 맞췄습니다. 순간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지난 '70년대와 '80년대 간첩 훈련을 위해 일본인 13명을 납치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북한은 이들 가운데 8명은 이미 사망했으며 5명은 생존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생존한 납북 일본인들의 귀국이 허용되고 이 때 일본으로 돌아간 아내 히토미를 통해 그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열리게 됐습니다.

바로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을 것으로 체념했던 ‘거대한 감옥’ 북한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아내 히토미는 북한에 잔류한 남편 젠킨스 씨와 아이들이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1년여 이상 일본 정부에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 5월 22일. 고이즈미 총리의 2차 방북으로 마침내 그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젠킨스 씨는 선뜻 북한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북한 정부가 자신을 보내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젠킨스 씨는 말했습니다. 북한 관리들은 그에게 중국에서 팩스로 전송돼 온 문서들을 보여주며, 미국 정부는 그와 가족들에 대한 아무런 동정심도 없으며, 결국 그가 북한을 나오면 탈영 혐의로 그를 종신형에 처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젠킨스 씨는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결합을 원했지만 군사재판에 회부될 것을 두려워한 젠킨스 씨는 두 딸과 함께 당분간 북한에 머무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젠킨스 씨와의 직접 면담에서 일본으로 갈 것을 권유했지만, 그의 의사를 존중해 다른 피랍자의 북한 잔류 자녀 5명만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 주선으로 2004년 7월 제 3국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이뤄진 히토미와의 상봉에서 젠킨스 씨는 마침내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와의 면담에서 받은 약속도 북한을 떠나겠다는 그의 결정에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젠킨스 씨는 고이즈미 총리가 면담에서 자신과 아내, 그리고 두 자녀가 아내의 고향인 일본의 사도 섬에서 여생을 지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말했습니다.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던 지난 1965년, 부대를 이탈해 북한으로 넘어갔던 찰스 젠킨스 씨는 이렇게 해서 40여년 만에 북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을 벗어났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북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사도 섬의 마노 마을. 약 7000 명이 거주하는 이 한가한 어촌 마을에 젠키스 씨 가족이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젠킨스 씨는 북한을 나와 일본에 도착한 직후인 2004년 10월, 주일 미군사령부에 자진출두해 군사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미군 역사상 최장기간 탈영병이 됐지만 재판부는 인도적 관점에서 그에게 금고 30일과 불명예 제대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반 평생을 북한 땅에서 살아야 했던 찰스 젠킨스 씨. 아마 북한에서 그가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이동의 자유’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일본에 와서 젠킨스 씨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바로 운전면허증을 딴 것입니다.

도쿄의 운전학교에서 20일 만에 운전면허를 땄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젠킨스 씨. 그는 지금은 모터 사이클 면허도 따서 2대의 모터 사이클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젠킨스 씨는 사도의 관광지인 한 금광에서 설비 관리자로 일하면서, 선물가게에서 쿠키를 파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쿠키 판매에 뛰어든 이래 판매가 300% 증가했고, 지난 해에는 6000달러의 보너스까지 받았다고 자랑하는 젠킨스 씨에게서 제 2의 인생을 사는 환희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북한에서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참혹한 생활을 하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보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해 자신의 회고록 2편의 준비를 극구 반대하는 아내에게 젠킨스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나이 어느덧 68세. 나는 살만큼 살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경험한 것을 외부세상에 말할 것이라고…

‘마지못한 공산주의자 (The Reluctant Communist)-찰스 로버트 젠킨스’ 와의 인터뷰 두 번째, 마지막 순서를 보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