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하루키와 다카사키 소지는 이 책을 통해 일본 내 북한 연구의 흐름을 정리하며, 북한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객관적이고 다각적으로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북한에 대한 정보가 극도로 제한적이고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혐오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악의 축'이나 '낙원'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이들은 북한 관련 서적들을 연대기별, 주제별로 분류하며 각 문헌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저자의 관점이 어떻게 투사되었는지를 추적한다.
2. 유격대 국가론과 체제의 기원
책의 핵심적인 줄기는 와다 하루키의 <유격대 국가> 담론으로 이어진다. 북한은 만주 항일 유격대 경험을 국가의 뿌리로 삼아, 온 사회를 군사 조직화하고 수령체제를 공고히 했다는 분석이다. 저자들은 북한의 공식 문헌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며, 그 안에 숨겨진 '혁명 전통'의 논리가 어떻게 현실 정치를 규정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북한 읽기의 시작임을 강조한다. 특히 1960년대 중소 분쟁과 주체사상의 확립 과정에서 발행된 서적들이 체제 정당화를 위해 역사를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분석한다.
3. 증언과 기록의 긴장 관계
탈북자들의 수기와 일본 귀국자들의 증언록에 대한 분석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저자들은 이러한 개인적 서사가 북한 사회의 내부 실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임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외부 세계의 기대나 정치적 상황에 의해 편집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언한다. 증언의 진실성을 존중하되, 그것을 거시적인 역사적 자료와 대조하여 북한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춰가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4. 납치 문제와 냉전적 시각의 극복
일본 사회 내 북한 인식의 전환점이 된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다룬다. 저자들은 납치 문제 이후 북한 관련 서적이 급증했으나, 대다수가 감정적인 비난이나 자극적인 폭로에 치중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이라는 체제가 왜 그러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동북아시아의 평화 공존이라는 관점에서 북한 문헌을 읽어낼 것을 제안한다.
<북한 책을 어떻게 읽을까> 평론
1. 문헌학적 접근을 통한 냉철한 리얼리즘
이 책은 북한이라는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텍스트'를 매개로 삼는 문헌학적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와다 하루키는 감정과 이데올로기가 앞서기 쉬운 북한 연구 분야에서, 철저하게 사료를 비판하고 계보를 추적함으로써 학문적 엄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이는 북한을 단순한 비난의 대상이 아닌,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생성된 '이해의 대상'으로 격상시킨다. 저자들의 태도는 정보의 편식과 왜곡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이 지녀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2. 유격대 국가론의 유효성과 한계
와다의 <유격대 국가> 모델은 북한 체제의 독특한 군사주의와 수령 독재를 설명하는 데 매우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북한 사회 내부의 역동성이나 경제적 변화, 아래로부터의 균열을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국가 중심적 서사에 집중된 경향이 있어, 시장화와 정보 유입으로 변모하는 21세기 북한의 미시적 변화를 담아내기에는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3. 경계인으로서의 균형 감각
다카사키 소지와 와다 하루키는 일본 내에서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주장해온 소위 '비판적 지지자' 혹은 '합리적 평화주의자'의 입장에 서 있다. 이들의 시각은 우익적 혐오와 좌익적 맹신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북한의 인권 유린과 독재를 직시하면서도, 동시에 일본의 식민 지배 책임과 냉전적 구조를 망각하지 않는 태도는 동북아시아 지식인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4. 읽는 행위의 정치적 책무
결론적으로 이 책은 <북한 책을 읽는 것>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를 넘어, 한반도와 일본,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정치적 실천임을 역설한다. 저자들은 독자에게 비판적 거리 두기를 요구하며, 텍스트 뒤에 숨겨진 권력의 의도를 읽어내는 '의구심의 해석학'을 주문한다. 북한이라는 '괴물' 혹은 '유토피아'의 환상을 걷어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 체제의 작동 원리를 직시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이 책이 지닌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있다.
세진님, 혹시 이 책의 내용 중에서 특히 관심이 가시는 특정 시기(예: 항일 유격대 시기나 납치 문제 이후의 변화 등)에 대해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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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田春樹와 高崎宗司의 『北朝鮮本をどう読むか』(“북한 관련 서적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단순한 서평집이 아닙니다. 이 책은 일본 사회에서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북한 인식의 구조” 자체를 비판적으로 해부하려는 메타-비평서에 가깝습니다.
두 저자는 특히 다음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 <북한에 관한 일본의 지식은 얼마나 사실에 근거해 있는가?>
→ <왜 북한 관련 담론은 극단적 감정과 정치적 동원 속에서 소비되는가?>
→ <북한을 둘러싼 출판과 미디어 시장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이 책은 북한 자체를 직접 설명하기보다, “북한을 말하는 일본 사회”를 분석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북한 연구서이면서 동시에 일본 사회 비평서이기도 합니다.
1. 책의 기본 문제의식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북한 관련 출판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납치 문제
핵 개발
미사일 문제
김정일 체제
일본인 피해자 의식
이 결합되며 “북한 붐”이 형성되었습니다.
저자들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 <그 많은 북한 책들은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들의 대답은 상당히 비판적입니다.
많은 책들이:
사실 검증보다 선정성
분석보다 공포 조장
역사 이해보다 감정 동원
에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즉:
→ “북한 이해”보다 “북한 소비”가 이루어졌다는 분석입니다.
2. 일본 사회와 “북한 판타지”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개념은:
→ <북한은 일본 사회의 투사 대상이 되었다>
라는 점입니다.
북한은 실제 국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본 내부의 불안과 공포를 투영하는 상징으로 기능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후 일본의 정체성 불안
냉전 질서의 잔재
우익 민족주의의 부상
경제 침체 이후의 사회적 불안
이런 요소들이 북한 문제에 집중되었다고 봅니다.
특히 납치 문제는 단순 외교 문제가 아니라:
→ 일본 국민 감정을 통합하는 국가적 서사
로 기능하게 됩니다.
저자들은 납치 문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제 피해자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 왜 일본 사회는 다른 역사 문제보다 납치 문제에 훨씬 더 강한 감정적 반응을 보였는가?
여기서 와다 하루키의 전형적인 시각이 드러납니다.
그는 일본 사회의 “피해자 의식”과 “가해 역사 망각” 사이의 긴장을 자주 지적해왔습니다.
3. “북한 책”의 유형 분석
이 책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북한 관련 서적을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점입니다.
(1) 공포-선동형
가장 비판받는 유형입니다.
특징:
북한 붕괴 임박론 반복
김정일 악마화
과장된 군사 위협
음모론적 서술
이런 책들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합니다.
북한은:
절대악
광기
비정상 국가
로만 묘사됩니다.
저자들은 이를:
→ 냉전적 상상력의 연장
으로 봅니다.
(2) 내부 증언형
탈북자 증언이나 내부 경험을 다룬 책들입니다.
저자들은 이런 책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왜냐하면:
개인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체 북한 사회를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즉:
→ 증언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체제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는 입장입니다.
(3) 학술 분석형
와다와 다카사키가 높이 평가하는 유형입니다.
특징:
역사적 맥락 중시
국제관계 분석
한반도 분단 구조 이해
식민지 역사와 연결
이 유형은 북한을 “괴물”로 보기보다:
→ 역사 속 국가
로 이해하려 합니다.
4. 식민지 역사와 북한 이해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은:
→ 일본 식민지 지배 문제를 북한 이해와 연결한다는 점
입니다.
저자들은 일본 사회가 북한 문제를 논할 때:
식민지배
강제동원
전후 분단 구조
를 자주 망각한다고 비판합니다.
와다 하루키는 특히:
→ 북한 체제를 이해하려면 항일혁명 서사를 이해해야 한다
고 봅니다.
즉 북한의 공식 역사관은 단순 선전만이 아니라:
일본 식민지 경험
민족해방 전쟁 기억
냉전 체제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 우익 담론과 강하게 충돌합니다.
왜냐하면 우익 담론은 북한을 “비합리적 독재국가”로만 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5. 납치 문제에 대한 접근
이 책이 가장 논쟁적인 이유 중 하나도 여기 있습니다.
저자들은 납치 문제를 중요하게 보지만:
→ 그것이 일본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단일 프레임이 되는 것을 비판합니다.
그들의 입장은 대략 이렇습니다.
납치는 분명 중대한 인권 침해
그러나 북일관계 전체를 그것 하나로 환원하면 해결이 어려워진다
감정 정치가 외교를 압도하면 협상이 불가능해진다
특히 와다는:
→ 대화 없는 압박 일변도는 실패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합니다.
이 점 때문에 일본 보수 진영에서는 와다를 “친북적”이라고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북한 인권 문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고
핵 개발에도 비판적이었으며
북일수교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즉:
→ 적대와 단절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주의적 접근에 가깝습니다.
6. 책의 강점
(1) 메타-비평적 시각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 “북한”보다 “북한 담론”을 분석한다는 점
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북한 관련 논의는 흔히:
사실
감정
국가주의
미디어 상업성
이 뒤섞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바로 그 구조를 드러냅니다.
(2) 역사 맥락의 회복
많은 북한 담론은 역사 맥락 없이:
김씨 체제
핵 문제
납치 문제
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식민지배
냉전
한국전쟁
미일안보체제
를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단순 도덕주의보다 훨씬 구조적인 접근입니다.
(3) 감정 정치 비판
이 책은 일본 사회의 감정적 동원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특히:
피해자 의식
공포 소비
미디어 선정주의
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SNS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입니다.
7. 한계와 비판
(1) 북한 체제 비판이 상대적으로 약함
비판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일본 사회 비판에는 날카롭지만 북한 내부 억압 분석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실제로 이 책은:
정치범수용소
세습 독재
정보 통제
등을 중심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일부 독자에게는:
→ 북한 문제를 상대화하는 인상
을 줄 수도 있습니다.
(2) 일본 진보 지식인의 전형성
이 책은 전형적인 전후 일본 진보 지식인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즉:
구조 분석 강함
역사 의식 강함
국가주의 비판 강함
반면:
체제 내부 권위주의 분석은 상대적으로 약함
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8. 세진님 관심사와 연결하면
이 책은 세진님이 자주 탐구하신 다음 문제들과 깊이 연결됩니다.
(1) 기억 정치
→ 일본의 납치 기억
→ 한국의 위안부 기억
→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억
모두:
실제 피해
국가 정체성
정치 동원
이 결합된 구조를 가집니다.
(2) 피해자 의식과 국가주의
와다 하루키가 지속적으로 탐구한 핵심 주제도 이것입니다.
→ 피해 기억은 정의를 위한 힘이 될 수도 있지만
→ 국가주의적 동원 장치가 될 수도 있다
(3) 냉전 구조의 지속
이 책은 냉전이 끝났어도:
감정 구조
적대 구조
미디어 구조
는 계속 살아있음을 보여줍니다.
9. 전체 평가
『北朝鮮本をどう読むか』는 북한 안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 “북한을 둘러싼 지식과 감정의 정치”를 분석하는 책
입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아마 이것입니다.
→ 북한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북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치적 욕망과 공포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 친북론이 아니라:
미디어 비판
국가주의 비판
기억 정치 비판
을 결합한 시각입니다.
10. 한 줄 정리
<『北朝鮮本をどう読むか』는 북한 자체보다 “북한을 소비하는 일본 사회”를 해부하는 메타-비평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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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on book reviews.pdf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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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해당 도서에 대한 아마존 재팬의 비판적인 리뷰들을 확인했습니다. 요청하신 대로 이 리뷰들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평론을 정리해 드립니다.
아마존 도서 리뷰 요약
1. 저자의 과거 행적과 도덕성에 대한 비판
리뷰어들은 저자인 와다 하루키가 과거 구소련을 마르크스가 지향한 이상향이라고 찬양하거나,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피해자 가족들을 모욕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거의 발언들을 근거로 저자의 학문적 양심과 인간적 품격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격앙된 반응이 주를 이룬다.
2. 북한 비판 세력에 대한 비방 문제
리뷰어 <도도새(ドードー鳥)>는 저자가 폴러첸(Vollertsen) 등 목숨을 걸고 북한 정권과 싸우는 반북 활동가들에 대해 비방과 중상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며, 저자들이 결국 역사의 단죄를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3. 저술 의도에 대한 강한 불신
리뷰어 는 이 책이 북한 비판론자들의 결점을 지적하는 부분에서 일부 참고할 점이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의도에 부합하는 발언을 해온 인물들이 쓴 <북한 옹호 서적>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저자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사과하기는커녕 여전히 아는 체하며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리뷰에 대한 평론
1.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과 과거사의 충돌
리뷰에서 드러나는 분노는 지식인이 과거에 견지했던 입장이 현재의 사실(납치 문제의 실체 등)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신뢰의 붕괴를 보여준다. 저자들이 학술적 방법론을 제시하더라도, 그들이 과거에 취했던 정치적 스탠스가 독자들에게는 강력한 필터로 작용하여 책의 논리적 타당성보다 저자의 도덕적 자격을 먼저 묻게 만드는 형국이다.
2. 텍스트의 가치와 저자의 평판 분리 문제
한 리뷰어는 북한 비판론의 맹점을 짚어낸 점은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저자의 정체성을 <북한 심파(동조자)>로 규정하며 책 전체의 가치를 부정한다. 이는 북한 관련 저술이 객관적인 학술 토론의 장에 머물기 어렵고, 일본 내에서도 극심한 진영 논리와 감정적 대립의 중심에 서 있음을 방증한다.
3. 증언과 학술 사이의 간극
저자들이 문헌학적 엄밀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리뷰어들은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목숨을 건 투쟁>을 저평가하는 저자들의 태도에 가장 큰 반감을 느끼고 있다. 이는 차가운 분석을 지향하는 학술 담론이 고통받는 개인의 서사와 충돌할 때 대중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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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그것을 둘러싼 반응은, 단순히 “북한 문제”를 넘어 일본 전후 지식인 사회의 균열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세진님이 첨부하신 일본 아마존 서평만 보아도 그 분위기가 드러납니다. 리뷰어들은 와다 하루키를 단순히 “틀린 학자”가 아니라 거의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존재”처럼 공격합니다.
이 감정의 강도 자체가 중요한 역사 자료입니다.
와다 하루키 세대의 일본 진보 지식인들은 기본적으로 다음 전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
냉전 군사주의 비판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거리감
대화와 화해를 통한 동아시아 평화
이런 흐름 속에서 북한 문제를 보았습니다.
반면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는 크게 변합니다.
소련 붕괴
일본 경제 장기침체
북한 핵 문제
일본인 납치 문제
중국 부상
우익 민족주의 재강화
가 결합되며 일본 대중 정서가 급격히 변했습니다.
즉:
→ “식민지 반성” 중심의 시대에서
→ “일본인 피해” 중심의 시대로 이동한 것입니다.
와다 하루키는 바로 이 전환기에 “구세대 진보 지식인”으로 남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일본 보수층은 그를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 “냉전 시대의 낡은 친북 좌파”
처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와다의 문제의식 자체는 사실 오늘날 국제학계에서는 그렇게 특이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 역사학이나 국제정치학에서는:
적대국 악마화의 위험
미디어 공포정치
피해자 기억의 정치화
냉전적 상상력의 지속
등은 상당히 일반적인 연구 주제입니다.
즉 와다가 했던 말 중 상당수는:
→ 국제 비판학계에서는 비교적 익숙한 문제제기
입니다.
다만 일본에서는 납치 문제가 거의 “국민적 트라우마”와 결합되었기 때문에, 그의 발언이 훨씬 더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세진님이 관심 가지신 “기억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위안부 기억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억
미국의 9·11 기억
일본의 납치 기억
모두 실제 피해 사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단순 피해 기억을 넘어:
국가 정체성
도덕적 정당성
정치 동원
외교 전략
과 결합됩니다.
와다 하루키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렸습니다.
즉 그는:
→ “납치 피해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북일관계를 구성할 수는 없다”
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피해 중심 기억이 강한 사회에서는 이런 말 자체가:
→ “피해자를 배신한다”
처럼 들리게 됩니다.
세진님이 이전에 탐구하신 박유하 논쟁과도 구조가 상당히 비슷합니다.
박유하 역시:
위안부 피해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기억의 정치화와 단순화 문제를 건드렸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 “피해자 공격”
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와다도 일본에서 유사한 위치에 놓였습니다.
다만 와다 하루키에게도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는 매우 뛰어난 역사학자이지만, 종종 북한 체제 내부의 권위주의와 폭력성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정치범수용소
세습 체제
정보 통제
주민 억압
문제에 대해서는, 구조 분석에 비해 도덕적 언어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이 때문에 일본 보수층뿐 아니라 일부 중도 진보층도:
→ “북한 국가폭력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고 느꼈습니다.
이 비판도 완전히 근거 없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일본 우익 담론 역시 심각한 문제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종:
식민지 책임
한반도 분단의 국제정치
냉전 구조
일본 자신의 역사
를 거의 삭제한 채:
→ “북한 = 절대악”
이라는 단순 도식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와다의 가치는 바로 그 단순화를 거부했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와다 하루키의 작업은 “북한 옹호”라기보다:
→ “적대 정치 속에서도 역사적 복합성을 유지하려는 시도”
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문제는 대중사회에서는 복합성이 잘 소비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중 정치는:
선/악
피해자/가해자
애국/반역
같은 단순 구도를 선호합니다.
와다는 그 구조 속에서 계속 “복잡한 역사”를 말하려 했고, 그래서 일본 사회에서 점점 고립되었습니다.
세진님 관심사와 연결해보면, 이 책은 결국 다음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 <국가는 기억을 통해 어떻게 감정을 조직하는가?>
→ <지식인은 그 감정 정치 속에서 어디까지 저항할 수 있는가?>
→ <피해 기억과 역사적 복합성은 함께 공존할 수 있는가?>
게다가 ○○는 반북한 책, □□는 양서(와다의 책이거나 하는 것이지만), △△는 센세이셔널리즘, 등과 색으로 구분.
「『납치는 없었다고 와다는 말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라고 거짓말을 하는 와다.
뭐, 엄밀히 말하면, 와다는 「납치일까는 매우 의심스럽다」라고 하는 쓰는 방법을 하고 있어, 「없었다」라고는 쓰지 않은 것이지만.
수용소 관련 책에 대해, 소련의 수용소 수감자수가 0.8%이기 때문이라는 것만으로, 북한의 수감자수도 0.8%라고 결정해, 거기로부터 「북한을 수용소 국가라고만 생각하지 말라」라고 진설을 이끌어내는 와다.
「변화되고 있는 측면이 잘려져 있다」
라고 쓰는 다카사키.
변함에 따라 어떤 측면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정도일 것이다.
「난폭한 것을 쓰고 있다」 「도발」 「인식이 부족하다」등과 주관 말 내는 「논평」.
거기에는 구체적으로 이런 이유로 이상하다는 설명이 부족하다.
「북한은 거대한 허위의 사회」라고 하는 특파원의 회상본에 대해, 사회주의국은 어디도 그랬기 때문에, 그 나라의 사람들과 마음을 통하게 할 기회를 소중히 하라고 하는 와다.
회상본에서 북한에 대한 인상을 쓰지 말아도?
일부러 잡지의 인용까지 해, 「와다=손끝」설을 부정하는 와다.
북한으로부터 초대되는 것 자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의 감성이지만…
세키카와 나츠오의 「지루한 미궁」에 대해서, 내용은 일절 소개하지 않고 제목만을 주는 사토히사.
황·장요브의 회상록의 일본어판에 대해서, 타이틀에 계속해서 케치를 붙이는 오타 슈.
「북한의 인간이라면, 미국의 폭격에 반발하는 것이 보통」?
정부 중추에 있어, 조선전쟁을 걸었던 것이 누군가 알고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망명 이유를 분명히 쓰고 있는데, 「언제 망명을 결정적으로 시켰다」인지 모른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왜 황서기가 망명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라고 왜 쓸지 불명.
김현희의 책에 대해 증언의 모순(증언이기 때문에 모순이 전혀 없는 편이 부자연스럽지만)을 지적한 직후에 ‘김현희의 어둠’인 ‘김현희는 범인이 아닌 설’ 책을 소개하는 그룹 남.
증언의 엇갈림에는 작은 시끄러운 것과는 대조적으로, 확실한 증거도 없이 한국 첩보 기관에 의한 일본의 여론 조작을 위한 출판 「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이라고 버리는 남.
북한의 공식 발표와 김현희의 증언을 동렬로 늘어놓고 사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취급하는 남.
충분히 김현희책에 케치를 붙인 뒤에, 「김현희는 범인이 아닌 설」책을 다시 소개하는 남
노동자 17명이 포함되어 있는 인터뷰 책을, 「당 간부・군인・엘리트 유학생들」이라고 일부의 특수한 의견인 것처럼 표현하는 사토.
매번 친숙한 안명진 두드리는.
표제가 개제되고 있는 것에 열심히 케치를 붙이는 사토.
라이첸 의사의 「부유한 바캉스 손님 상대의 의료 행위」의 「정보」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또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는데, 그것에 뭔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귀국사업은 복잡한 역사현상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부추긴 조선총련의 책임을 애매하게 하고 있는 남.
『서승』에 대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한 것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구체적인 예도 나타내지 않고 쓰는 남.
이 책은 민주화 운동 지원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물증도 오르고 있는 북한 스파이 서승을 민주화 운동의 영웅 취급한 무리를 비판하고 있는데.
이영화를 「돌비한 행동을 하는 인물」이라고 인상론으로 정리하는 다카사키 소지.
역시 타카사키도 하고 있는 타이틀 비판.
가상 전기라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에까지 「악의의 도발」등과 청근 세우는 와다.
007 영화에 클레임을 붙이는 북한 똑같이.
특수 부대의 상륙·파괴 공작에 대해서, 지금까지 북한이 시도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하는 와다.
잠수함 좌초 사건은, 그럼 무엇이었는가?
자위대의 치안 출동에 반대하는 등, 정치가나 사민당이 극도로 희화화되고 있다고 하는 와다.
무라야마 정권이 한신 대지진 때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생각하면 일어날 것 같은 이야기도 많지만.
영화의 팜플렛에까지, 「조선 유사를 바란다고 하는 것일까」라고 망상하는 와다.
남조선노동당이나 조선총련의 봉기를 비현실적으로 결정하는 타카사키.
이야기의 진위는 어쨌든, 서울에 잠입 공작원 다수가 있다고 하는 소문이나, 철탑 도괴 사건에 관련되는 소문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이지만.
「잘못해도 현실과 틀리지 말아야 한다」라고 마지막에 염념하는 다카사키.
그렇게 염두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고 있는 것은 누구 쪽일까?
책의 내용을 거의 무시하고, 신상구마의 망명 동기를 횡령과 「추정」하는 것만으로 열심인 중도도.
미래 예측이 빗나가고 있으면, 그것을 철저히 해 힘들게 계속하는 저자진.
KEDO 합의에 의한 중유공여나 김대중에 의한 50억 달러 송금 등도 북한이 붕괴를 면한 요인이 되었을 것인데, 그들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지폐 위조, 마약 밀수출 의혹, 수상한 배, 핵 개발, 대포동 및 노동에 대해서도 거의 다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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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서적 소개의 방법이 허락된다면, 다음과 같이 써도 좋다는 것이 되어 버린다.
「『북한 책을 어떻게 읽는가』는 2003년에 출판된 책이다.
본서는 일련의 북한 비판·검증 책을 쿠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레텔 붙여넣기>.
메인 집필자인 와다 하루키는 『납치가 정말로 있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수상한 배는 놓쳐야 했다』 등과 북한의 문장이 눈에 띄는 인물이다.
김정일의 정권세습을 옹호하는 듯한 기술까지 하고 있다.
게다가 와다의 학우가 북한 귀국 후, 행방불명이 되어도, 북한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물증이 있어 유죄가 확정되고 있는 북한 스파이 서승을 민주화 운동의 영웅으로 축제 올리면, "서승 '영웅'으로 된 북한의 스파이"(장명수 저, 다카라지마사)에서 그렇게 단절된 것처럼, 와다 자신이 스파이라고 의심되어도 어쩔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책에 대해서도, 「어떻게 읽는가」라고 하는 것은 타이틀만으로, 대부분 근거가 없는 결정 붙이가 눈에 띈다.
타이틀을 온건한 내용으로 하고, 잘 모르는 인간을 속이려는 의도가 추측된다.
죄송합니다. 문책 : 그루브 타키 <멤버의 실명이 나타나지 않는 불명료한 집필 그룹> 그래서 '서승' 때처럼 호소하고 싶다면 타키를 호소해줘 <정말로 이런 예방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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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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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 새
1.0 out of 5 stars 바보에 붙이는 약 없음!
Reviewed in Japan on June 10, 2005
Format: Paperback
제목대로입니다 (웃음). 흩어져 납치 피해자의 가족을 어리석고, 그것뿐만 아니라, 일찌기 스탈린의 손에 의해, 어쨌든 마르크스가 목표로 하는 이상향은 완성했다고, 학자로서라고 할까, 인간 로서의 품성을 의심할 수 없는 것만이 쌓여 있던 와다씨입니다만, 이기에 이르고 아직 이런 바보 같은 책을 내고 있기 때문에, 이제 무슨 말을 해도 낭비겠지요.
그렇다 치더라도 포라첸 씨 등을 비롯한 '반조파'에 대한 비방 중상의 수많은 가슴이 나빠집니다. 목숨을 걸고 김정일 정권과 싸우고 있는 그들에 대한 이 처치는 더 이상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와다씨도 역사에 의해 단죄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과응보라고 합니다. 자신들이 일찍 온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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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okikt
1.0 out of 5 stars 두꺼운 얼굴 부끄러움의 극한
Reviewed in Japan on June 1, 2003
Format: Paperback
본서가 비판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반·북한」의 입장으로부터의 논자로 해도 인간인 이상, 그 내용에 결점이나 문제점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고, 그 한계에 있어서, 본서의 지적에는, 참고가 되는 곳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오랫동안 북한 측의 의향에 따른 발언을 계속해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일만을 반복해 피해를 호소하는 가족들을 계속 어리석은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왜 이 기간에 걸쳐서 다시 하거나 얼굴로 물품을 할 수 있을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우선 무엇보다도 벌써부터의 불명을 사과하는 곳에서 저자들은 사회복귀를 도모해야 한다.
이 책의 다자는 '양심적 지식인' 등이 아니라 '북한 심파'일 뿐이다. 극히 일부 북한 지지자 이외의 상식을 막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읽을 가치가 없는 '북한 옹호본'의 일종으로 서점에서 보았을 때 대충 읽어두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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