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 2019

14 [북한바로보기] 한국교회의 통일운동과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 |



[북한바로보기] 한국교회의 통일운동과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 |



2014.12월호, MISSION STUDY, 북한 바로보기, 월별모음 » [북한바로보기] 한국교회의 통일운동과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

[북한바로보기] 한국교회의 통일운동과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

한국교회의 통일운동과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

오픈도어 선교회 현장사역자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하면 세계선교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선교와 관련된 중요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기도-부흥-선교”의 깊은 연관성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에는 기도를 통해 부흥이 일어나고 부흥을 통해 자연스럽게 선교가 일어나고 선교를 통해 더 깊은 기도로 들어가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 나타나듯 개신교 선교의 시조–모라비안교도들과 100년 중보기도운동, 윌리엄캐리로부터 시작된 근대선교-기도합주회운동, 건초더미 기도회-미국선교의 시작, 캠퍼스 기도모임-선교의 위대한 세기, 1903년 원산 기도운동-1907년 평양대부흥 의 경험들 속에서 우리는 기도-부흥-선교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교회가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이와 같은 선순환이다.

북한교회연구원장 유관지목사는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역사를 구분할 때 2008년 이후 현재시기를 “북한선교-통일운동의 백화재방기”로 구분한다. 40여년간 북한선교에 몸담은 그의 경험에 의하면 분단 후 한국교회의 역사를 살펴볼 때, 지금과 같이 기독교통일운동과 통일기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기도-부흥-선교”의 그 패턴이 지금 한국교회에 시작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우리는 고찰하고자 한다. 본 칼럼 에서는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의 역사를 살펴보고 최근 남한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는 통일 기도모임의 비젼과 소명을 나누고자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온전히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복음통일의 기운이 과연 일어나고 있는지, 그렇다면 어떤 이들의 어떤 기도를 통해서 주님이 이루시고 계신지 보고자 한다.

한국교회의 통일운동

남한지역의 교회들은 분단직후부터 북한선교에 관심을 보여 왔다. 미국의 라벰코라는 선교기관은 1946년에 북한선교를 위해 방송 설립을 계획하고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그 결과 세워진 것이 기독교방송(CBS)이다. 1954년 12월 15일에 드려진 CBS의 창사봉헌예배는 북한선교대회 같은 분위기 가운데에서 진행되었다.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지 1947년 4월호에는 당시 조선기독교연합회(현 NCCK) 회장이었던 김관식 목사의 글이 실려 있는데 김 목사는 이 글에서 장로교 신학교(현 한신대인 것으로 추정됨)의 재학생 360명 가운데 3분의 1인 월남학생들이 북한선교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1956년 12월 23일에는 극동방송이 공산권 선교를 목적으로 개국하였고, 1973년 6월 30일에는 아세아방송이 공산권 선교 전문시설(대출력․지향성․공간파)을 갖추고 개국하였다.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은 2001년 9월 재단을 합병하여 지금까지 북한전파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1970년에는 예장통합측이 교단의 북한선교기구로 북한선교위원회를 발족시켰다. 1974년 김창인 목사가 씨앗선교회를 설립했는데 씨앗선교회는 1977년 4월, 이름을 북한선교로 바꾸고 기구를 확장하여 공개적인 활동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5년 9월 22일에는 남북적십자회담 고향방문단이 평양에 방문 했는데 이때 방문단 중 기독교인들은 고려호텔에서 예배를 드렸다.

1984년 10월29일부터 11월2일까지, 세계교회협의회 국제문제위원회 주최로 ‘도잔소 동북아의 평화와 정의에 관한 회의’가 열려 한국교회의 통일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이뤘다. 이후에 있었던 보수진영의 북한선교와 진보진영의 통일 운동을 보면, NCCK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문’ 발표(88년 2월 29일), 문익환 목사,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초청으로 방북(89년 3월 25일), 한국기독교총연합,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효시인 사랑의 쌀 나누기(90년) 사랑의 의약품 나누기(91년) 전개, 남북나눔운동 창립(92년 12월 1일), 한국기독교출판협회, 2,517권의 도서 북한에 기증, 김일성대학 본관 대회의실에서 기증식 가짐(92년 5월23일), 부활절연합예배 임원회, 남북한공동부활절 예배 개최를 북한교회에 제의(93년 2월19일), 한국기독교총연합, ‘한국교회의 통일정책선언문’ 발표(96년 12월17일), 북한동포후원연합회 조직(97년 2월5일) 등을 들 수 있다.

북한교회 재건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나서 한국기독교총연합 북한교회재건위원회가 「북한교회재건자료집 무너진 제단을 세운다」를 발간하였고(1995년) 남한의 교회들과 분단이전 북한지역에 있었던 교회들을 연결하여 재건하는 계획을 추진하여 분단이전 북한의 2,850개 교회 재건 계획을 담은 「북한교회재건백서」 발간하였다(1997년).

같은 시기에 발생한 식량난과 남한사회의 대북지원이 시작될 때 기독교계 단체가 디아코니아의 정신으로 지원에 앞장섰는데, 1995-1997년 통계를 보면 당시 대북지원의 단일루트였던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해외단체를 비롯한 대한민국 전 기관 대북지원의 총 합은 240여억원 이었는데 그 중 53억여원이 기독교계의 지원액 이었다. 김대중정부 들어 화해모드 조성과 발맞추어 남북한 종교교류와 대북지원도 폭을 넓혀 갔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이와 같은 활동들은 지금은 중단되거나 대폭 축소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탈북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하여 중국내 탈북자선교가 활기를 띄게 되었으며 이들 중 남한으로 유입되어 정착한 탈북민에 대한 선교는 북한선교와 통일운동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한국교회의 기도운동

한국교회는 오래전부터 새벽기도, 철야기도등의 좋은 기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교회, 개별단체들의 기도의 열기가 운동으로 결합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97년 선교한국의 주관으로 열렸던 제1회 선교동원가 전략회의에서 김형익에 의해 제기되었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중보기도 사역과 그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헌신된 이들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 이었다. 98년에는 양희송의 ‘한국 내 기도운동의 동력화와 효과적인 네트워크 방안’이라는 아티클이 선교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선교계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논의는 북한선교-통일운동계에도 시차를 두고 이루어지고 있다. 2001년부터 ‘북한사랑’ 이라는 격월간지를 통해 이루어진 기도운동의 네트워크, 2004년부터 시작된 쥬빌리 기도운동, 2009년 시작된 에스더 기도운동을 통해 북한-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성훈, 이용희를 비롯하여 네트워크를 위해 헌신된 이들이 등장하여 북한-통일을 위한 네트워크가 활성화 되고 있으며 동시에 기도운동이 동력화 되고 있다.

양희송은 기도운동의 동력화를 위해서 ‘외적 확산’과 ‘내적 훈련’이 동시에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외적 확산을 위한 “안정적 기도합주회의 모델”과 내적 훈련을 위한 “중보기도운동 리더 훈련”이 필요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 또한 북한선교계에 이루어지고 있는데 쥬빌리 기도회와 에스더 기도운동이 “안정적 기도합주회의 모델”로 정착하고 있으며 북한중보기도 리더훈련을 위해 오성훈목사는 “북한선교 동원가 학교”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기도운동이 헌신된 몇몇 개인과 개별단체의 노력으로 활성화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네트워크라 하면 주로 인적 네트워크를 떠올리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인터넷 혹은 문서를 통한 네트워크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위한 대표적인 페이지는 오성훈 목사가 운영하는 북한사랑센터 블로그( http://blog.naver.com/lovenor?Redirect=Log&logNo=30178266427) 가 있으며, 그밖에 오픈도어의 월간 북한소식, 모퉁이돌의 카타콤 소식, 에스더 기도운동의 Jesus Army,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의 통일코리아 등의 매체들이 북한선교와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매체의 경우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보출처의 신뢰성이나 다양한 정보를 취사선택 해내는 관점이 무엇이냐는 것이 문제이다. 가령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대한 문제, 평화공존 혹은 반대로 북한급변사태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도 등에 있어서는 어떻게 일방적인 관점에 서지 않으면서도 기독교적인 ‘건전한’입장을 어떻게 드러낼 것이냐 하는 문제에 접하게 된다. 이에 대한 기본원칙은 “북한에 대한 관점은 정책적 판단일지언정 교리나 신조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절충주의는 결국 양비론과 양시론의 함정에 빠져 기도제목을 추상적으로 만들거나 적당히 얼버무리게 된다. 한국사회의 이념다툼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북한-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은 확고하게 중심을 잡고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여러 기도소식을 통해 소개되는 기도정보에서는 종종 사실관계의 오류나 과장, 왜곡이 발견된다. 대부분의 경우 악한 의도가 아닌 “자기의 분야 밖에 보지 못하는”한계에서 비롯된다. 이런 오류를 막기 위해서는 관련분야에 대한 리서치가 필수적이다. 또한 개별 단체의 기도회를 벗어나는 순간 현실상황의 정보를 기도제목화 하는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결국 현실을 기도제목으로 뽑아내는 것은 고도의 지적, 영적 가치판단을 요구하는 일이다. 감사하게도 현재 북한선교계에는 이 작업을 훌륭하게 감당하는 몇몇 분들이 있다.

신속하고 열렬하고 지속적인 기도회를 위하여

조나단 에드워즈는 1747년 9월 스코트랜드의 맥컬로크 목사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간절히 소망하는 바는, 하나님의 성령의 부으심과 그리스도의 왕국의 도래를 구하는 비상한 기도를 시작한 사람들이 실패하거나 무감각해지거나 생명력을 상실하지 않고, 오히려 열정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 미국에서 기도합주회를 확산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게 삶을 허락 하시는 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이 일을 계속할 것이며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69년간 끊임없이 통일을 위해 기도해왔다. 안타깝게도 그 기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기도에 피로감이 들 수도 있다. “북한”과 관련한 이념갈등의 피로도 있다. 사실관계오류와 과장된 기도제목의 경험으로 인한 피로도 있다. 그러나 기도회의 유익은 하나님 자신의 임재다. 기도를 통해 간구해야 할 선과 유익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점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에 주목하여 기도합주회를 이끌었고 이는 기도-부흥-선교의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기도합주회는 신속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함의된 기도의 방식, 즉 그들이 기도의 의무에 헌신하고 그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 매우 신속하고 열렬하며 지속적으로, 그리고 매우 철저하게 수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수많은 피로에도 지치지 않고 인도자가 기도회를 성실히 준비하고, 기도자들이 자리를 지키며 간절히 기도할 때 지금 한국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기도운동들도 남북통일의 과정속에서 기도-부흥-선교의 선순환을 통해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