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16, 2019

기독교와 주체사상의 대화(1)



기독교와 주체사상의 대화(1)




기독교와 주체사상의 대화(1)
복음화 통일 기획 시리즈

황준배 (jun77291@naver.com)
승인 2007.02.0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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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운명을 예측하고 전략적 선택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바람직한 통일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윤리, 종교, 교육, 언어 등, 포괄적인 접근과 국가전략의 선택이 필요하며 선택된 전략들은 일련의 정책과 대안으로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준비되어져야 한다.





이 복음화 통일 기획 시리즈에서는 정치적인 이념이나 경제적인 현상적 문제에 대한 접근이 아니다. 민족의 분단 원인에 대한 기독교적인 고찰과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이념분쟁, 교파분열, 분단책임 회피, 분단 60여 년간의 화해와 일치의 중보자로서의 소극적인 자세와 무관심 등을 자성하는 회개와, 성경적인 통일관을 제시하는데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송건호는 “일제하에서 민족적 오점이 있는 사람일수록 히스테리컬하게 반공적이 되고 그 당연한 결과로 이들이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민족을 보호하는 민족주의의 담당 세력처럼 되었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분단을 재생산하는 세력을 변화시키고 민족통일에 기여하고 선도해야 하는 한국기독교의 역할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




주체사상을 초극할 기독교




통일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는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자면, 주체사상이나 낡은 사회주의 이론은 그 유통기한이 다 지나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실체임에는 분명하다.




주체사상의 사실상 창시자인 황장엽은 2006년에 필자와의 대담을 통해서 “주체사상을 초극하는 길은 기독교 진리가 유일하다”는 것을 설파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김일성이나 그의 친척 일가가 기독교와 밀접하다는 사실은 상당 부분 과장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전략전술에 기독교도 이용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화 가운데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그 분이 교회에 우호적이었고,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 했고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의 핵심측근이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으며 창원 황씨로 나와 동성동본이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장수하시길 바라고 통일을 여는 대업의 선구자와 주체사상을 극복하는 역할을 해주시길 주문하며 대화를 마친 적이 있었다. 그는 <민주주의 정치철학>에서 민주주의만이 이상적인 사회질서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북한의 사상적 쇠락은 급격히 불어 닥치고, ‘전도의 전초상태’(per evangelism)가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다. 이에 대비를 다 해야 한다.




그는 인간 사회, 사회적 존재는 자주성과 창조성, 사회적 협조성을 지니고 목적의식적으로 활동하는 산 인간과 인간이 창조한 사회적 재부와 그것들을 결합시키는 사회적 관계의 세 가지 요인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자연개조사업, 인간개조사업, 사회관계개조사업은 처음부터 인간의 창조적 활동의 3대 분야로서 상대적 독자성을 강조한다. 세 가지 창조적 사업은 상호의존하면서도 상대적 독자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헌법에까지 명시된 공식적인 통치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어왔다. 특히 헌법 제3조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하여 주체사상의 인간중시 측면과 혁명적 측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사회에서 주체사상의 용어가 등장하여 사용된 것은 1955년 12월 18일 당선전선동원 대회에서 김일성이 “사상에서의 주체”를 주장한 데서부터이다. 그리고 이것을 대외적으로 공식 선언한 것은 중,소의 이데올로기 분쟁이 두 나라를 결정적으로 분열시키고 난 뒤인 1966년 8월 12일자 노동신문의 사설 “자주성을 옹호하자”라는 내용이었다.




주체사상의 유래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김일성주의 창시자인 김창만(1996년 숙청)에 의해서다. 김창만은 소련에서 돌아온 간부들을 중상, 비방하면서 주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0년에 발간한 문세영 사전에 의하면 주체란, “주요한 물건과 일들”이라고 설명하는 동사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설명하는 동시에 명사로서 “정리하여 처치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의 등장은 김일성체제 유지에 방해가 되는 자를 정죄하여 처치하는 무기로 활용되었음을 결과적으로 알 수가 있다.




주체개념을 반대파 숙청의 논리에서 진일보한 사상으로 발전시킨 것은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에 의해서였다. 황장엽은 주체사상 창시의 업적을 김일성에게 돌리고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과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 앞에 쌓아 올리신 영생불멸의 업적 가운데 가장 빛나는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창조하신 일이다. 주체사상은 바로 자주성을 요구하는 인민들의 투쟁의 전도를 밝게 비쳐주는 우리 시대의 탁월한 지도사상이다”라고 하면서 전적으로 김일성의 업적을 찬양하고 있다는 점이다.




1966년 8월12일자 노동신문의 사설은 주체사상의 중요한 지침을 제공해주고 있다. 김일성은 이 사설을 통해 중,소 분쟁에서 중립을 지킬 것을 선언하고,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이른바 자주노선을 내걸고 동시에 각국 공산당간의 주종관계란 있을 수 없다고 표명했다.




이것은 다시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에서 북한의 독자적인 정치노선으로 구체화, 체계화되면서 노동당의 유일사상체계로 발전된 것이다. 당시 김일성은 중,소분쟁이 심화될수록 어느 한쪽에 편향할 수 없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부득이 중,소 양국의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할 미묘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여기에서 김일성은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명분과 논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자주노선”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북한에서의 통치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은 북한체제의 성립 및 변천과정에서, 중,소 분쟁에서의 중립을 통한 내정간섭 배제와 실리추구를 목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은 황장엽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후 1974년 5월 25일자 노동신문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일색화하자”라는 사설을 통해 노동당뿐만 아니라 전 북한사회를 주체사상화 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주체사상은 북한의 유일한 통치이데올로기로 굳어졌다. 또한 1980년 10월, 제6차 노동당 대회에서 전 사회를 주체사상화 한다는 과제가 공식화됨으로써 주체사상은 현재 북한체제의 유일한 통치이데올로기로서, 그리고 종교적 교의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체사상은 김일성 사후도 ‘붉은기’ 사상과 함께 정치행정 이념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1967년 5월까지 혁명 전략으로서의 1단계 주체사상이 당의 유일사상으로 대치된 때로부터 1974년 2월 김정일이 후계자로 선정되기 전까지의 독재체제 수립을 위한 통치이데올로기로 굴절되는 2단계, 그 이후 주체사상이 김일성주의로 선포되고 “혁명적 수령관”이 확립되며 종교적 변신과정에 이르는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주체사상은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 원리, 지도 원리, 이렇게 3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첫째, 주체사상의 철학적 기초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완전히 새로운 과학적 해명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은 생명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셋째,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규정하는 것은 그들의 사상의식이다.” 넷째, “주체사상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주도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주체사상은 모든 사람의 사고와 혁명실천에서 자기나라 혁명을 중심에 놓을 것을 요구 한다”고 내세우고 있다. 여섯째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기 때문에 인민대중은 마땅히 혁명과 건설에 대하여 주인다운 태도는 자립적 입장과 창조적 입장에서 표현 된다”는 것이다.




1982년 김일성 탄생 70돌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 주체사상 토론회가 열렸다. 이때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도 발표되었다. 김정일의 논문에 나타난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힌 사람 위주의 철학적 원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사람이 세계와 자기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이며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운명을 개척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이며 물질세계 발전의 특출한 산물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이 세계의 주인으로서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주체사상의 철학적 기초인,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 사람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사상의식이다”라고 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역사적, 혹은 경제적 결정론”(History or Economic Determinism)과 정면으로 모순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레닌과 스탈린의 “정치적 주지주의”((Political Voluntarism)와 비교하여 반드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스탈린은 사회의 상부구조가 기초에 반작용할 수 있다고 표현한 데 대하여 김일성은 사상의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는 좀 더 노골적인 표현이 다르다.







황준배 / 목사ㆍ한세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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