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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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바로보기]북한의 경제문제와 북한선교


오픈도어 현장사역자

북한의 경제문제는 핵문제와 더불어 가장 많은 세간의 관심을 받는 이슈이다. 북한정권의 주요 행사와 발표가 있을 때마다 남한의 학계와 언론은 그 안에 나타난 경제와 관련된 담론들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전망한다. 남한사회가 북한의 경제에 이렇게도 많은 관심을 갖는 이유는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인이 바로 경제문제이기 때문이며 개방의 확대는 체제 변화의 신호탄 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북한이 폐쇄적인 국가라고 하나 외부와의 교역은 정권생존에 있어서 변수가 아닌 결정적인 상수이다. 실례로 1990년대 초반 북한의 경제가 급작스럽게 무너진 결정적 원인이 동구권의 몰락으로 인한 교역 감소였으며 이후로 북한의 경제가 가끔씩 호조를 보인 때에는 항상 남한을 비롯한 외부사회와의 교역 이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경제와 교역은 선교와도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선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상인들이 닦아놓은 교역로가 복음전파의 유용한 통로로 활용 되었다. 근대의 항해술 발달과 교역의 증가는 선교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우리 나라에도 동일하게 적용 되었는데, 조선의 첫 순교자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선교사가 타고 온 배가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면호 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렇듯 선교에 있어서 경제문제와 교역은 중요한 변수이다. 북한선교를 위하여 우리는 북한의 경제와 대외교류와 그가운데 나타난 선교의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체제와 경제

6, 25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던 시기가 있었다. 그 이유는 지하지원과 공업기반이 북쪽에 편중되어 있었던 점,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특성상 노동이나 자본 등의 자원을 국가 주도 하에 생산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었던 점 등을 들 수 있다. 남한도 1960년대부터 수출을 중심으로 한 경제발전에 힘입어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였으며 대략 1970년대 초반쯤 남한의 일인당 소득이 북한을 추월하였고 그 후 점진적으로 격차가 벌어졌다. 그러나 북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1970년대에 북한은 러시아로 부터 차관을 들여와 경제개발 정책을 시도했고 80년대에는 외국의 직접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합영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덕분인지, UN의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0년 435달러이던 것이 1980년대 후반에는 900달러를 돌파해 두 배 이상 성장하였다.1) 그러나 이는 남한의 국민소득 증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수치 였으며 특히 1990년대 들어서며 일어난 사회주의의 붕괴는 북한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과의 대외거래가 끊어지게 되었고 이는 북한의 경제에 큰 타격이 되었다. 이에 더해 1990년대 중반부터 수년간 이어진 북한의 홍수피해로 인해 북한의 경제는 붕괴하기에 이르렀다.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북한은 실질적인 개혁의 시도를 하였다. 1998년의 개정헌법에서는 대외무역과 경제개방 확대를 강조하였고, 2002년에는 제한적으로나마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을 수용하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 하였다. 이후 시행된 2004년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내각 직속기관화, 2010년 국가개발은행의 설립, 2012년 부터 시범 운영 되고 있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6·28방침) 등은 발표될 때마다 북한의 개혁개방의 신호탄으로 해석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개방의 시도는 모두 제한적 개혁개방으로 경제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였다.

이렇듯 북한의 개혁개방이 번번히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하나로 종합된다. 그것은 바로 “개혁으로 인한 외부문물의 유입에 대한 북한정권의 부담감”이다. 김정일이 생전에 말한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조심하라’는 말과 ‘모기장 이론’ 등을 통해 드러나듯 북한정권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외부 정보의 유입이다. 그러나 개방은 외부문물의 대규모 유입을 가져오게 되고, 개방으로 인한 외부문물의 대규모 유입 속에서 정보들을 걸러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북한정권은 개방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히려 북한정권은 중대한 경제의 위기때마다 그 위기를 경제의 시스템 변화가 아닌 사회적 시스템의 변화로 해결하려 했다. 위에서 언급한 경제개혁조치는 모두 실패하였지만, 같은시기 추진된 사회시스템 개혁은 성공하여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체제를 지켜냈다. 북한의 대표적인 경제위기는 1950년대 중반, 60년대 중반, 90년대 중후반에 있었다. 이 위기 때마다 북한은 새로운 시스템 구축으로 체제를 보위해 왔다. 1차위기 시에는 행정관료체계를 당적 지도체계 우위의 시스템으로 교체를 통해 극복 했고 2차 위기시에는 수령시스템을 등장시켜 극복 했다. 3차 위기는 선군체제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극복했다.2)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경제위기의 극복이 아니라 체제위기의 극복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위의 시스템의 변화들은 경제를 조금도 발전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경제 악화의 원인을 제공했고 이러한 시스템이야 말로 만성적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선군정치 시행과 더불어 시작된 “핵·경제병진노선”은 북한경제의 거대한 장애물로 이어져오고 있다.

체제 존속을 위한 경제정책

경제개혁과 관련하여 보통국가의 경제 정책은 분석과 예측을 근거로 수립되어 시장을 통제한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 정책은 음지에서 점점 활발해져 어쩔 수 없게 된 지하경제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공식화 한 사후적 정책이다. 7·1조치가 그랬고 2012년부터 시범적으로 시범운영되고 있는 6·28조치가 그렇다. 두 조치가 북한의 경제구조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시장원리 활성화, (준)사유화 확대의 흐름을 공식화하여 북한의 경제적 변화에 기여했다. 두 조치로 인해 북한의 시장은 활성화 되었고 북한정권도 이에 대해 묵인하는 단계를 넘어서 시장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개방과 관련하여 최근에 관심을 모으는 이슈는 14개의 경제 특구이다. 북한은 경제특구를 개발하기 위해 2014년 6월 “무역성에 국가경제개발위원회와 합영투자위원회를 통합해 대외경제성으로 하기로 결정했다”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발표했고, 8월 19일에는 라선 경제무역지대(경제특구) 투자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경제특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제특구의 개발규모는 약 414.8km²로 예상투자액은 총 78억 달러에 달한다.3) 이들 경제특구는 모두 관광산업을 포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원산특구는 마식령스키장-금강산-송도원-온정천 온천의 관광벨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산은 니가타현에서 출발하는 만경봉호의 도착항 이고, 북한이 대일관계 개선을위해 노력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만경봉호의 재출항이다. 그밖에도 미주 한인신문에 연일 실리고 있는 “백두산 관광, 평양골프관광, 승마패키지, 2015년 4월 평양 국제마라톤대회 참가 패키지” 등의 광고를 통해 재미교포들을 관광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중국에도 대도시의 대형마트에서 종종 북한관광 홍보 팜플렛을 볼 수 있다. 최근 북한의 대학마다 실시되고 있는 영어-관광 연계교육, 고급호텔 개발, 북한주민이 이용하리라 상상할 수 없는 호화 관광지 개발에 많은 돈을 들이는 것 등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북한은 관광산업을 단지 외화벌이 수단만이 아닌 신성장동력으로 삼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기도

위에서 말한 시장 활성화, 경제특구 개발, 관광산업의 확대는 북한경제의 긍정적 변화로 볼 수 있으며 선교적으로도 더 많은 기회의 제공을 의미한다. 위의 변화들은 북한진출의 문이 훨씬 넓어지고 있으며 비즈니스선교, 전문인선교등 여러 창의적 방법을 통해 북한선교를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정권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특구 내의 주민통제는 물론 출입 외국인에 대한 검문, 감시가 이루어질 것이며, 여행객에 대해서도 주민접촉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2012년 11월 라선특구에서 벌어진 선교사들에 대한 검거와 그 중 케네스배를 아직까지 놓아주지 않는 것, 존 쇼트, 제프리 파울 등 선교적 비젼으로 북한을 여행한 서양인들에 대해 관광지 혹은 호텔에 성경을 두고 왔다는 작은 꼬투리를 잡아 억류한 것 등은 선교 혹은 기도를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관광객 길들이기 차원의 행위로 볼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하자면 북한정권은 그만큼 기독교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으며 앞으로 특구 및 관광자원 개발을 확대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교사와 복음전도자들은 이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도 침투하여 복음을 전하고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왔다. 최근 세계선교계는 비즈니스 선교(Business as mission)의 경험과 이론이 축적되며 발전하고 있으며 북한과 같은 창의적 접근지역에 대한 여행(Vision trip)과 방문에 대한 노하우도 공유되고 있다. 우리는 북한 정권이 정한 규정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하면서도 제한적이나마 우리 나름의 선교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북한정권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경협사업을 통해 북한과 접촉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업을 지혜롭게 이끌도록, 이러한 사업을 통하여 북한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발각될 경우 당국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관광이 확대됨에 따라 북한을 방문하게되는 외국인들 중 많은 신앙인이 있으며 북한을 보며 기도하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도 있고 이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들의 기도 여행을 위해, 이들의 행동을 통해 간접 전도가 이루어지며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이 드러나며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도록 그리고 이러한 기회가 점점 늘어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 선교타임즈 2015년 1월호 (vol.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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