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 2019

[북한바로보기] 기독교적 통일 비전과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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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바로보기] 기독교적 통일 비전과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

오픈도어선교회 북한선교연구소
‘통일’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의 뇌리에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아마 어린 시절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 일 것이다. 통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릴 적부터 우리의 소원이요 민족의 소원이라는 교육 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북한의 실상이 더 구체적으로 밝혀지면서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부담스러운 짐 인 것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소위 통일 비용 담론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왔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통일을 반드시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분단 상황을 잘 관리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라는 이들의 주장은 일견 일리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 통일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한쪽 이념에 치우친 주장을 하거나, 또는 이념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비판하기에만 바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와중에 통일 만 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통일 자체를 궁극적인 목표로 바라보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고, 복합한 담론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통일 문제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사상과 생각들이 성도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만, 정작 교회가 가져야 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독교적 통일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승구 교수는 통일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준비 없는 낭만적 기대 모두 성도들이 가지지 말아야 할 태도이며, 특히 교회가 통일에 대한 무리한 성경적 해석 및 적용을 시도하며 정작 실제적 문제들을 고민하고 기도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1) 당장 통일 되었을 때 맞닥뜨릴 토지문제, 경제 체제 이전 문제, 사회 질서 유지 문제 등 중요한 국가적 문제들부터, 각 교단의 북한 진출과 신학교 건립 등에 있을 분쟁 같은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떤 복음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실질적인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약해진 국력에 주민들의 이탈현상이 계속 되고 있는 북한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관점과 상관없이 통일은 다가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 문제는 호 불호의 문제가 아닌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교회적인 모든 부분에 있어서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한 현실적 문제이다.
2014년 초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언급하며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청사진을 제시했고,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들을 언급했다. 비록 북한의 수용 거부와 북한과 얽힌 인권 및 핵 문제로 인해 실질적인 시행은 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밑그림을 그렸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뿐 만 아니라 각종 민간 단체와 기업들도 통일을 대비하며 나름의 준비와 노력을 하고 있다. NGO들은 인권운동과 구호 등의 방법으로, 기업들은 경협과 앞으로의 비즈니스 기회에 대한 탐색 등을 통해 통일에 위해 또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서서, 복음적인 통일 한국의 비전이 필요하다. 통일이라는 국가적, 민족적 중대사 앞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복음의 정신에 입각한 통일 한국이 되도록 한국 교회가 노력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교회야 말로 적극적으로 통일을 준비해야 할 주체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교회는 통일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먼저 교회가 통일에 대한 세상의 관점 및 비전과 다른 복음적인 비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복음적 통일 비전이라고 할 때 사람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성도들이 대체로 동의할 만한 공통적인 요소를 찾아보자면 북한의 많은 영혼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통일, 그리고 사회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입각해서 북한 주민들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통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북한은 정권의 핍박과 통제로 인해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한 많은 영혼들이 있다. 전 세계에 많은 선교지가 있지만 북한이야 말로 우리가 먼저 복음을 전파해야 할 최우선 선교 대상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70년의 긴 분단 속에서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은 서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이질화 되었기 때문에 일반 남한 사람들을 대할 때와 동일한 관점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접근한다면 많은 역효과가 날 것이다. 탈북민들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상황을 추정해 보면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아직 많은 이들이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있고, 억압적인 체제 및 식량난으로 인해 겪은 비극적인 일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특별한 돌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남한 교회가 이들의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의 확보가 필요하다. 또한 기존에 북한에 넓게 퍼져있는 무신론적 세계관의 영향력을 극복할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박종소 교수는 동독과 동독교회에 대한 논문에서 동독인들 사이에 공산주의 붕괴 이후 무신론적 가치관이 약해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로 인한 취업의 어려움과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 동독인들의 무신론적 가치관은 계속 유지가 되고 오히려 교회를 더 가까이하지 않는 상황 가운데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2) 통일 이후 북한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에 적절한 방법으로 복음을 제시하고 삶을 돌볼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통일 이후 북한을 재건하고 북한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예수님의 아가페적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 비용 문제에서도 보이듯이, 통일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 우리는 자칫하면 손익계산에 근거한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통일과 통일 이후의 한국을 바라보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관점이 주가 된다면 남북 주민들의 화합과 사회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사회적, 윤리적 요소가 간과될 여지가 크다.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이 무너진 빈 자리에 경제 논리에 입각한 사회 질서가 구축된다면 그 동안 제대로 경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에 있는 북한 주민은 자연스럽게 사회의 비주류로 밀리게 되고 진정한 남북의 통합은 불가능해 질 것이다. 통일 독일의 사례에서도 동독과 서독 주민간의 이질감과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90년대 초에 실시한 한 설문 결과 동독 주민들의 85% 이상이 서독 주민들에 비해 열등한 2등 국민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3) 2008년에 실시한 설문에서도 동독 주민의 72.4%가 서독 주민들이 동독 주민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하다고 응답하는 등 동과 서의 심리적 거리가 아직까지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4) 독일 통일 당시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 차이가 현재 남과 북에 비해 매우 작았던 것을 생각할 때, 만약 경제논리로 통일을 접근한다면 남한과 북한 주민간의 갈등은 독일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것이다.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을 대체할 사회 질서는 이해관계와 경제 논리가 아닌 사랑에 기초해야 할 것이고, 특히 대가 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 기반이 되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적이고 선교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먼저 탈북민과 북한 주민들을 섬기고 마음과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역량 개발이 필수적이다. 앞으로 맞닥뜨릴 북한 주민들의 독특한 상황과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기술, 인력, 자원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탈북민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탈북민이 겪고 있는 정신적, 사회적 어려움은 북한 주민들이 경험하고 있거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증상과 매우 유사할 것이다. 탈북민을 섬기고 이를 위해 필요한 다양한 인력과 요소들을 배치하는 과정 속에서 북한 주민들을 섬길 수 있는 역량은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이다. 교회 내에서 탈북민들을 섬기는 사역 외에도 탈북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독교 대안학교와 교육 사역도 매우 중요한 통일 역량 강화 사역이다. 또한 통일이 되었을 때 고향에서 사역할 수 있는 탈북민 사역자들을 세우고 교육한다면 통일이 되었을 때 훨씬 더 효과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가 연합하고 회복되어 이를 통해 잃어버린 사회적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에 기반한 사회 질서 구축이라고 아무리 주장을 하여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교회 내 분열과 분쟁들, 그리고 공의와 사랑을 앞장서서 실천하기 보다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드는 부끄러운 모습으로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가 회개하고 사랑을 실천함으로 먼저 예수님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가 된다면, 그 사랑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회의 사회적인 영향력 또한 회복될 것이다.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북한 지역 개발에 있어서도 경제 논리와 이해관계 보다 먼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안정될 수 있도록, 또 충분한 교육적, 심리적 도움이 먼저 제공되어 북한이 갑작스럽게 무한 경쟁 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제안과 설득을 해야 할 것이다. 또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 관계자로만 여기고 시기하고 이용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품고 사랑할 수 있도록 교회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의 회복과 연합은 앞으로 있을 북한 교회 재건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북한에는 수십 년간의 지독한 핍박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고 신앙을 지킨 성도들이 있다. 바로 이 성도들이 통일 한국의 북한지역 교회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90년대 공산권 붕괴와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무분별한 북방 진출과 교세 확장이 오히려 현지 교인들에게 분열과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각 교파와 개 교회의 열정들이 충돌하여 경쟁적으로 사역을 하게 된다면 분명 북한 성도들에게 큰 혼란을 야기하고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특정 교단의 교구 확장이 아닌 북한 성도 스스로가 자립하고 서는 교회가 되도록 도와야 할 것이고 남한 교회 성도들은 그 일을 보조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남한 성도들이 북한 성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남한 성도들 사이에 희미해지고 있는 굳은 믿음과 헌신, 사랑의 삶을 살아온 북한의 성도들이 본보기가 되어 남한 교회 성도들을 각성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통일 한국은 선교한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남한 교회가 감당하고 있는 선교 사역이 북한의 순수한 신앙의 전통과 만나게 된다면 분명 상상할 수 없는 큰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남한 교회와 성도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북한 교회를 섬긴다면, 자연스럽게 남북한 교회가 서로 화합하게 되고, 통일 한국의 교회로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게 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통일 한국이 지금보다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강대국의 대열에 설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러한 국가적 발전이 성취된다면 그 성취의 결과물이 열방을 이롭게 하는 선교적인 열매로 맺힐 수 있도록 남북한의 교회가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많은 활동가들이 통일 운동을 하고 있다. 그들과 그리스도인의 통일 준비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통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일 것이다. 많은 세상의 활동가들이 통일 자체를 궁극적 목적으로 여기고 이를 위해 노력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통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 중 하나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더 근본적인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하며, 다가올 통일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통일이 되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역할인 것이다.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 해로 삼고 나아갈 때 분명 하나님께서 한반도에 그분이 기뻐하시는 통일의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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