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26, 2019

1401 VOA 검색 결과 - 김필주 박사 인터뷰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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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4일
'북한의 목화 할머니' 김필주 박사 (3)

함경도에서 태어난 김필주 박사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뉴욕 코넬대학교에서 작물 생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인 종자개발 기업인 듀퐁 ‘하이브리드 인터네셔널’에서 종자학 연구실장으로 활동하던 중, 강냉이 품종 개발을 도와달라는 북한측의 부탁을 받고 1989년 북한을 방문하게 됐다. 이후 북한에 이모작을 전파하고 협동농장을 운영하며 북한의 농업 기술 발전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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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7일
'북한의 목화 할머니' 김필주 박사 (2)

함경도에서 태어난 김필주 박사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뉴욕 코넬대학교에서 작물 생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인 종자개발 기업인 듀퐁 ‘하이브리드 인터네셔널’에서 종자학 연구실장으로 활동하던 중, 강냉이 품종 개발을 도와달라는 북한측의 부탁을 받고 1989년 북한을 방문하게 됐다. 이후 북한에 이모작을 전파하고 협동농장을 운영하며 북한의 농업 기술 발전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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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0일
'북한의 목화 할머니' 김필주 박사 (1)

함경도에서 태어난 김필주 박사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뉴욕 코넬대학교에서 작물 생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인 종자 개발 기업인 뒤퐁 ‘하이브리드 인터네셔널’에서 종자학 연구실장으로 활동하던 중, 강냉이 품종 개발을 도와달라는 북한 측의 부탁을 받고 1989년 북한을 방문하게 됐다. 이후 북한에 이모작을 전파하고 협동농장을 운영하며 북한의 농업 기술 발전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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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0일
대북 농업지원가 김필주, “4월까지 대북 비료 지원 시급”

문) 

김필주 박사님 뉴스위크’ 잡지에 의해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으로 선정되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하찮은 일을 하고 있는데 너무 영광스럽게 생각이 되고요, 추천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아직도 북쪽의 2천3백만 동포들이 식량 안정이 안 돼서 애를 쓰고 있는데 제가 이렇게 이런 상을 받아도 되는지 좀 걱정이 되네요






대북 농업지원가 김필주, “4월까지 대북 비료 지원 시급”
201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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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력 주간잡지인 `뉴스위크’가 최신호에서 북한에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한국계 김필주 박사를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의 한 명으로 선정해 소개했습니다. 이 잡지는 김 박사가 “작물 생산 뿐 아니라 북한의 농부들에게 안정적인 보금자리와 자녀교육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함경도가 고향인 김 박사는 올해 74살로, 한국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한 뒤 20대에 종자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왔습니다. 이후 국제 기업들에서 일하면서 세계 각국에 종자기술을 보급했고, 1989년에 옥수수 종자 개량사업을 통해 북한과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김필주 박사를 인터뷰 했습니다.


문) 김필주 박사님. `뉴스위크’ 잡지에 의해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으로 선정되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답) 저도 놀랐습니다. 하찮은 일을 하고 있는데 너무 영광스럽게 생각이 되고요, 추천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아직도 북쪽의 2천3백만 동포들이 식량 안정이 안 돼서 애를 쓰고 있는데 제가 이렇게 이런 상을 받아도 되는지 좀 걱정이 되네요. 앞으로 좀 더 열심히 도와야 된다는 뜻으로 알고 받습니다. 사실 저는 다리 역할만 했지 저를 지원해주신 많은 미국 분들과 재미교포 분들과 한국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문) 박사님께서는 2004년부터 황해도에 협동농장들을 운영하고 계신데요. 무려 3천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대규모 농장인데, 어떻게 운영하고 계십니까?

답) 북쪽의 무역회사 하고 저희들이 같이 정부로부터 농장을 임대를 받았어요. 앞으로 계속해서 같은 농장을 도우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익성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수익성 있는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주민들을 격려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은 절대로 제가 밖으로 가져 나오지 않고 다시 농장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약속이 돼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저희가 전적으로 기자재나 모든 것을 충당하고 그 농장에서 나오는 것들을 농민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허가를 맡았습니다.

문) 수익성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작물을 주로 재배하고 계십니까?

답) 지금 현재로는 우리가 주로 목화를 생산합니다. 목화를 천 정보(천만 제곱미터) 생산하는데요 정부에서 구매를 해갑니다. 경공업부에서 솜을 실로 짜고 옷감도 짜고 하는데 사용하게 됩니다. 수매할 때 공정가격으로 환산해서 내국환을 받습니다. 그걸 농민들에게 나눠주죠. 농민들은 수익이 되죠

문) 후원하시는 농장에 농민이 1만5천 명 있는 걸로 아는데요,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하나요?

답) 많이 된다고 합니다. 그 전에 비해 굉장히 윤택하다고 합니다. 나머지 2천 정보에서, 1천 정보는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땅이고 과수원도 있고 채소밭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곡물들도 농민들이 사용을 하고 그래서 나은 것 같습니다.

문) 협동농장 후원을 위한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고 계십니까?

답) 주로 교단이라던가 교회라던가 사업체라던가 개인한테 북한의 실정을 말씀 드리고 세미나도 하고 지원을 받습니다. 대개는 미국 교단들이 많이 돕습니다. 작은 교단들이 많이 돕습니다.

문) 북한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이 모금 활동에 영향을 주나요?

답) 많이 있습니다. 정부에서 제재를 하면 개인이나 회사는 굉장히 주저합니다. 기존에 지원을 하던 분들도 많이 중단하십니다. 지난 2년 동안은 참 힘들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몇 개 작은 재단은 계속 저희를 돕기 때문에 그걸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 최근에는 언제 북한을 다녀오셨습니까?

답) 2월 19일에 나온 것 같습니다. 일주일 있었습니다. 1년에 여덟 번에서 열 번은 가는 것 같습니다.

문) 북한을 자주 방문하시니까 현지 실정도 잘 아실 텐데요. 요즘 북한의 식량 상황이 매우 어렵다고 하는데, 예년에 비해 어떻습니까?

답) 식량 상황은 예전에 비해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왜냐면 작년에 농사가 잘 안됐습니다. 초기에 굉장히 추웠어요. 오랫동안 그래서 봄에 발아율도 저조했을 뿐아니라 초기 생육도 늦은 데다가 또 후기에 비가 많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추수가 늦어진다거나 추수 하다가 비를 맞는다거나 그래서 추수 후 곡물을 잃어버리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좀 어려운 작황이었습니다.

문) 비료도 많이 부족했다지요?

답) 비료를 그 전에는 남쪽에서 많이 지원을 했었는데 비료가 없어서 특히 북에는 복합비료가 딸립니다. 질소비료는 좀 생산을 하는데요. 또 유기질 비료가 많이 필요합니다. 작년부터는 그게 부진해서 열심히들 일합니다. 옛날보다 유기질 비료를 많이 만들어 내느라고 국가에서도 장려는 하고 농장에서도 열심히는 하는데 기초자원이 없다 보니 들어가는 것이 적어서 작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식량이 부족하니까 밭에 나가 일하는데 지장이 많기 때문에 많은 자선단체들에서 식량 지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 농사철을 감안할 때 비료 지원이 언제 이뤄지는 것이 좋습니까?

답) 사실은 3~4월까지는 들어가야 합니다. 보통 3월에 춘경을 하고, 하지 않은 데서는 4월에서 5월 초순에 심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4월까지는 비료가 들어가야 합니다.

문) 김 박사님은 북한 최초의 국제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초대 농대 학장직도 맡고 계시는데요. 최근 과기대 수업이 시작됐죠?

답) 네. 금년에 이번 학기부터 한 과목 가르칩니다. 금년 3월부터는 전문과목 한 과목에 영어를 계속 가르칩니다. 아직도 농대는 기자재라던가 그런 것들이 많이 부족해서 힘들게 준비하느라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가르치는 것은 유전 쪽에 미국 교수가 교육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 계획으로는 첨단교육을 가미한 농업발전을 위해, 유전자 지도라던가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기초작업을 시작하려 합니다. 또 실험실에서 연구한 것들이 현장에서 이용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문) 평양과기대는 수재들만 모였다고 하던데요.

답) 아주 영리하고 발랄하고 서양 교수님들이 더 반했습니다. 자기들이 발전도상국가라던가 동구권 국가들에서 일할 때 보면 학생들이 우울한 걸 많이 봤는데 이 학생들은 너무 발랄하데요. 선생님들이 굉장히 좋아하네요. 굉장히 빨리 배우고. 성격이 좋다고 해요. 부지런하고.

문) 마지막으로, 북한의 식량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이뤄져야 할까요?

답) 도울 수 있는 나라들이 좀 더 크게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북쪽에 농업이 좀더 개선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근데 너무 기자재가 부족하고 지금까지 땅에 대한 유기질 비료나 이런 것들이 투입되지 못했고, 전기가 부족하니까 생산 가공하는 것이 부족하고. 여러 여건이 맞물려 돌아가니까 좀 더 많은 투자가 한꺼번에 많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문) 김 박사님,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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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2일
[인터뷰] 김필주 평양과기대 농대 학장

북한 최초의 국제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초대 농대 학장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농업전문가이자 대북 지원 사업가인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김필주 교수를 임명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지난 1962년 문: 김필주 교수님, 이번에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초대 농대 학장으로 임명되셨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을 좀 소개해 주십시요
AUTHOR:
김근삼


[인터뷰] 김필주 평양과기대 농대 학장
2008.5.22

김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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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개교 예정인 북한 최초의 국제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초대 농대 학장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농업전문가이자 대북 지원 사업가인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김필주 교수를 임명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지난 1962년 미국으로 이민 온 올해 71살의 김 교수는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부족한 기자재를 도입하고, 해외인력을 확보해 식량 증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또 북한의 만성적 식량부족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한국 정부의 비료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김근삼 기자가 김필주 학장을 인터뷰했습니다.

문: 김필주 교수님, 이번에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초대 농대 학장으로 임명되셨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을 좀 소개해 주십시요.

답: 평양과기대는 오는 9월에 개교할 예정인데, 아직 학교를 열지 않았으니까 저희는 설립 학장으로 돼 있습니다. 농대는 박사원 수준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농업 증산, 새로운 품종 개발, 생산성 문제, 경영 방법 등 여러 가지를 연구할 생각입니다. 또 되도록이면 미국이나 외국에서 첨단기술을 연구하는 농학자들이 많이 참석해서 강의도 하고, 실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농업개발에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그런 방향으로 채용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문: 북한에는 기존의 농업 연구기관들이 있는데요, 평양과기대는 이런 기관들과 차별화해서 어떤 성과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답: 기존 연구기관도 학술적으로는 참 앞서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재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는 한정된 부분이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보완해 가면서 또 북한 학자들이 함께 힘을 합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강의를 하려고 합니다.

문: 김 교수님은 미국에서 오래 산 재미 한국인으로써 이번에 평양과기대에 참여하면서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답: 같은 동족이고, 또 우리가 미국에서 첨단이라면 첨단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니까, 되도록이면 우리가 배운 것들을 같이 가서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합니다. 사실은 북한에 계신 분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는 지식사업에 많이 공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하는 것 같은 실험 기자재를 갖고 좀 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사업이 진행됐으면 하고, 또 그것이 식량생산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문: 김 교수님은 북한 정부의 협조를 받아서 협동농장을 크게 운영하고, 또 목화재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압니다. 좀 소개해 주시죠.

답: 저는 비정부기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구촌농업협력 및 식량나누기운동’ 이라는 기구인데요. 2003년에 농장을 네 개를 맡아서 운영하기로 북한 정부로 부터 허락을 받아서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마침 중국에서 사오던 솜 값이 너무 올라서 목화를 재배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알아본 결과 북한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품종이 있어서, 다행히 목화 농사를 올해로 5년째 짓고 있습니다. 저희가 처음에는 정보당 0.72t을 수확했는데, 둘째 해에는 1.2t, 셋째 해에는 2.3t, 작년에는 홍수가 나서 작물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수확량이 많지 않아서 1.6t 정도 했구요. 올해는 3t에서 3.5t 정도 해보겠다고 농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문: 농장이 황해도에 있죠?

답: 황해북도 봉산군에 2개가 있고, 황해남도 함천군에 2개가 있습니다.

문: 요즘 북한의 식량 사정과 농업 현황에 대해 우려섞인 목소리가 있고, 여러 가지 분석들이 있습니다. 북한에 오랫동안 도움을 주신 농업 전문가로서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답: 저는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협동농장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것은 기자재를 제대로 쓰고 기술적인 면에서 개선을 하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첫째는 북한의 땅이 굉장히 노화됐는데 유기질 비료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유기질 비료를 투입하면서 복합비료를 주면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자재가 없으니까 많은 경우 순전히 인력에 의존하는데, 그 것도 기계화하고 또 효율적인 기계화 방법을 쓰면 식량 사정이 지금보다 많이 개선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남한에서 50만t씩 지원하던 비료가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올해 농사에 대해 참 많이 걱정을 합니다. 제 생각에는 남한에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비료는 계속 보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비료는 시기가 늦었다는 의견도 있지 않습니까?

답: 시기가 좀 늦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복합비료는 늦은 것 같고 요소비료라도 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 유기비료를 확보하기 위해 북한이 축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기자재 구입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경제 개선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 교수님은 어떤 제언을 하시겠습니까?

답: 축산 도입이 참 중요합니다. 하지만 축산을 도입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 때까지는 남쪽에서 유기비료를 지원해야 합니다. 남쪽에서는 유기비료를 많이 생산하고, 또 유기비료를 생산할 수 있는 축산 폐기물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비료화해서 북한에 보낼 수 있도록 양측의 합의가 빨리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김근삼 기자가 오는 9월 개교 예정인 평양과기대 초대 농대학장으로 임명된 김필주 교수를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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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7일
북한 농업 재건 위해 토질 개선과 종자 개발 시급

남북한은 최근 평양에서 양돈 협력사업을 벌이기로 합의하는 등 지난 북한의 옥수수 종자 개량사업을 시작으로 북한의 농업 발전을 위해 힘써 온 김필주 박사는, 6일 워싱턴에서 재미 한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열고 

북한 농업의 현황과 과제에 
김필주 박사는 지난 2001년부터 북한 황해도의 4개 리에서 협동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북한 농업 재건 위해 토질 개선과 종자 개발 시급
2007.11.7

남북한은 최근 평양에서 양돈 협력사업을 벌이기로 합의하는 등 지난 2년 간 중단됐던 농업 분야 협력을 다시 활성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농업 현장에서 20여년 간 지원 활동을 펼쳐온 한 전문가는, 현재 북한은 토양 개선과 종자 개량 등 전반적인 농업 기반 복구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은 오랫동안 척박한 토양에서 낙후된 종자로 씨름해 왔으며, 재원 부족으로 농업 개혁을 꾸준히 추진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북한의 농업 현장에서 20년 간 활동해 온 한국계 미국 전문가가 밝혔습니다.

지난 1989년 북한의 옥수수 종자 개량사업을 시작으로 북한의 농업 발전을 위해 힘써 온 김필주 박사는, 6일 워싱턴에서 재미 한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열고 북한 농업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김 박사는 북한의 농업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척박한 토양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금비, 즉 화학비료를 남용해 산성화 된 토양을 유기비료를 이용해 복구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유기비료를 퍼부어야 하는 형편입니다. 제가 우스갯 소리로 하는 말이, 남한의 모든 축분을 산야가 코를 들 수 없을 만큼 만들어야 북한 땅이 재생할 것입니다.”

김 박사는 북한 농토 개선 노력의 해답은 남북한이 조만간 추진할 양돈 협력사업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축산업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현지에서 구하기 힘든 유기비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축산업을 도입하는 건 중요합니다. 남쪽에서 유기질 비료를 가져갈 수 있으면 되는데 북에서 잘 받아주지 않고 그러니까 축산을 도입해서 축분을 이용한 유기비료 생산을 시작해야 하니까 그런 것도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김 박사는 북한의 농업에서 토양 개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우성종자 개발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농업 교류를 하지 못하고, 주로 동유럽 국가들과만 협력을 추진한 결과 종자 보급처가 제한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김 박사는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종자 개발을 위해서는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다른 발전도상국가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종자 증식과 종자 정선입니다. 북한도 이것이 굉장히 필요해서 Asia Bank나 World Bank에서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박사는 국제금융기구의 재정 지원은 북한의 농업 재건을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정부 역시 종자 개발이나 유기질 비료 증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과거에 이를 위한 중단기 계획을 세웠지만 이를 꾸준히 추진할 재원이 부족해서 중도에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김 박사는 전반적으로 북한은 평작 농사를 지어도 자급자족을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습니다. 북한에서 한 사람이 세 끼를 다 먹는다고 가정할 때, 하루에 필요한 곡물은 7백~8백 그램 정도이고 전체 국민으로 따지면 1년에 총 6백만t이 필요하다고 김 박사는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농사가 잘 되는 해에도 고작 4백~4백50만t의 곡물만이 생산되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김 박사는 처음 북한에서 농업발전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변화된 남북관계를 현장에서 온몸으로 체감한다면서,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 농업 재건을 위해 다방 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특히 비료 지원과 같은 경우는 농사철에 때맞춰 보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필주 박사는 지난 2001년부터 북한 황해도의 4개 리에서 협동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로부터 50년 간 땅을 임대받아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 박사는 한달에 두번 정도 현지를 방문해 현지인들에게 농업 기술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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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7일
[뉴스 초점] 11-07-2007

최)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김필주 박사가 최근 워싱턴에서 강연을 했는데요,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김박사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습니다 김박사에 따르면 북한이 한 해 필요한 식량은 6백만톤인데 산이 많고, 영농 기술이 낙후돼 아무리 노력해도 4백만톤이상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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