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6, 2025

[문은희1부 풀영상] 한국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1번동지라 불렸던 장성택 죽음의 뒷이야기… 가장 가까운 최축근의 고백



[문은희1부 풀영상] 한국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1번동지라 불렸던 장성택 죽음의 뒷이야기… 가장 가까운 최축근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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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83 views  Apr 5, 2025  #강은정 #강사 #가수
간증, 강의, 공연, 강은정TV 출연 문의: 
kang22tv@gmail.com

#강은정#한국#가족#가수#강사#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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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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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연-z9o
2 weeks ago
잘 오셨어요.
행복하게 사세요.
앞으로 자유대한민국이 영원하도록 함께 싸워주세요.
광화문에 나오셔서 현실이 어덯게 돌아가는지 알아야죠.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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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th2ve8uh3k
2 weeks ago (edited)
마약은 파는 사람이 더 나빠요.대한민국에서는 법을 지키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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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명흠남성
3 weeks ago
오늘도 내일도 동분서주하느라 수고가많습니다 
은정씨 몸관리잘하고 영원히 행복했으면합니다 
한국에오신분들
경쟁사회에서 노력하여 대한긍정으로 다잘됐으면합니다 
은정씨가하는방송
모든일에 일춰월장이네요 
정직한 방송널리퍼져
북한주민들위해 
많이받으면합니다
영원히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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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rikim9664
2 weeks ago
북한에도 정말 다양한사람이 있구나
매력있는 사람들 많아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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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나라-b6q
3 weeks ago
"우리는 하나다"
걸어서 금강산 ~~~~
걸어서 평양 ~~~~
걸어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그 날을 위하여 ~~~~
남녘과 북녘이 하나가 되고 
휴전선이 붕괴되어 자유통일대한민국이 
되는 그 날까지 
강은정님 화이팅 
☆한민족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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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o1e
3 weeks ago
문은희씨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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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ng3877
2 weeks ago
색다른  삶을 살다오신 언니네요 나름대로  뜻있는  길을  찾으신것같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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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rimseo2268
3 weeks ago
탈북민 모든분들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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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h7557
2 weeks ago
통일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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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b4k
3 weeks ago
장성택이나 김정은이나 결국 권력싸움이다 먼저보고먼저치는놈이 이기는것  그나물에그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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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환-u3z
3 weeks ago
제발 속지말고 속아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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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니아-r8q
3 weeks ago (edited)
제주도 가지말라고 말린 이유는 알거 같네요. 제주도는 보통 돈벌려고 가지 않습니다. 돈벌어 먹고 살려면 아무래도 힘들죠. 확실한 돈벌이 없이 제주도 가지 말라는 뜻으로 알아들으세요. 일반적으로 제주도로 놀러는 가지만 돈벌러 가지는 않는다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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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라이프
7 days ago
장성택이 죽은이유가 중국과의 너무깊은 커넥션 때문이었던 것으로 소문들었어요.  지금 한국도 중국과 커넥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걸로 아는데 이는 아주 위험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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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v9m
2 weeks ago
마약은 파는 사람을 더 강하게 처벌합니다. 문은희씨가 삼촌의 총살을 얘기하면서 웃는 모습이 좀 그러네요. 한 두번도 아니고...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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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희신-l5j
2 weeks ago
힘내시고 통일되기을 바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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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형-j7h
3 weeks ago
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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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일-d9t
2 weeks ago
문은희님 통일한국을 위해 최선을 (한몫)  다해주시기 바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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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열-c6k
7 days ago
문은희씨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큰일 하실분이네요
앞으로 많은일하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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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식-j5e
2 weeks ago
한반도 통일을위하여 탈북 이주민들과 협력해서 함께 노력합시다 
대한민국의 큰틀을 걱정하는 국민이됩시다 
영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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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농bdy
2 weeks ago
"원수님"을  "원수"로 표현하도록 촬영전에   미리 교육 했으면  좋겠습니다.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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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리 살던 집 좀 봤어요 그대로 있어요 정찰당까지 아시죠
중앙당으로부터 그렇죠 그래 중앙당에서부터 떨어지는 지표를 장성택이 해 준 거예요 네 왜 그런가
하면요 그 내일이 청살인데 곧 전날까지 어떻게 해놓가면요 지금도 이치 앉지는 게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은정 TV의 은정입니다 네 오늘도 오김
없이 새로운 서대처님을 이렇게 또이 자리에 초대를 했는데요 야 정말
너무도 세상은 넓으면서도 좁은 거 같습니다 우리 같은 대형단 쪼개서
살다 오신 분이에요 만나보도록 할게요 우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네 번석에
부탁드려요 아 네 저는 북한에서 2019년도에 탈북했고요
지금은 청신대라고 거기에서 중독 상담학과 네 누뚱이 대학생으로 지금
공부하고 있는 문온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네 대한민국의원 탈북 새내기 누뚱이 대학생 말을 너무
이쁘게 해요 어 너무 감사합니다 네 우리가 또 대형단에서부터게 우리 집이랑 우리
운이 언니랑 아는 사이여 가지고 이제 커피숍에서 촬영장에 올라오기 전까지
막 편하게 얘기했는데 갑자기 지금 긴장이 됐어요 긴장됐어요 왜 왜 왜 우리밖에 없는데
우리밖에 없는데 응 아 이거 그런 거 있잖아요 우리 북한에서는 자유롭게 만하는 법을
우리가 못 배웠잖아요 항상 딱 정해진 걸 가지고 우리가 낭독을 한다 뭐 이런 거 아직도
투박힌 것 같아요 제가 대학 생활 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게 자유롭게
말을 못 하고 좀 어딘가 모르게 자연이 강박감이 있다까 나를 좀네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는네 그런게
아직 조금은 내제돼 있는 것 같거든요 아직 5년밖에 안 됐잖아요 아마도요
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데 그런 아니 근데 사실 우리 운이 언니랑
이름 바꾸기로 하지 않아요 몬달래로 하고 싶었는데 [음악] 그냥 해요 그 은이로 가요
아빠가 지워 주신 이름이라 참 너무도 다용하 알았어 살짝 걱정이 되어서
이름을 바꾸려고 했었는데 야 근데 잘 왔어요 딱 코로나 직전에 언니 우리
집이랑 인연이 깨 있죠 그죠 인연이 참 많이 깊죠 네 한마디 해주세요 아
어떻하실까요 음 아빠 어머니 네 제가 항상 쿠아버지 큰모이라고 불렀거든요
저희 아버지 어머니보다 많이 이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쿠아버지노몬이라고 편하게 부르면서 제가 다녔거든요 다니는 거는 장사
업물로 제가 왕내하고 큰아버지 어머니가 비료라던가 농약이라던가 하는 걸 해 주시면 제가 판복도 연사
날아가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걸 장사를 한 거죠 네 네 장사를 했죠 그런 걸 왕내를 많이 했고요 참풀지 구무니까
편안했어요 네 지금도 제가 잊어지지 않은 거는 그 버리밥 깡리밥 참
맛있게 해 주셨어요 그럼 제가 그걸 맛있게 먹고 네 또
편하게 잘 수 있는 집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하고 또 해주신 걸 가지고 나가고 제가 자서 다녔어요 아
정말 이렇게 또 우리 고향에서 인연이 있던 분을 만났는데 언니는 고양이
한북도 연사군이에요 대홍단에서 연사까지 70위리 60위리 걸어서
하름에 왔다 갔다 하죠 그러니까 질로서 갈 수 있는 길은 70니 정도 차 타고 덜어러 나가는 길은
140월이 네 그렇게 되죠 아 그렇게 됐구나 그렇도에 왔잖아요 어떻게 우리 살던
집 좀 봤어요 그죠 그대로 있어요 내가 탈북하기 전에도 다 찌그러져서 언제 무너질지 몰랐는데 김동일
책임서가 있을 때 있었어요 나 책임서 너무 이름 생각이 안 나 우리 연사 책기서 김덩일이 대형단 책임서
왔거든요 어 맞아요.음 그러면서 그 대형단을 엄청나게 국화식으로 말한다면
원수님 머신다고 엄청 잘나게 꿀했어요 근데 왜 소이지 구쪽은 왜 허물지
않았지 모르겠어요 거기를 그냥 살카두고 다 했거든요 거기는 맨 뒤쪽이라 안 보이거든요 맞아요 그나라
거기 집들이 그냥 살아 있어요 진짜로요 그 옆집도 그냥 살아 있고요 어 그 안전 넣었네.네 네 네 네
맞아요 세상에 거기 그냥 다 있어요 엄마나 제가 이렇게 없어지고 나서
저에 대한 얘기를 좀들은게 있어요 우리 집 없어지고 우리 집이 다 없어졌다고 서문이 확 났지 네 난
후에도 날를 다녔거든요 네 그러다 보니까 확작 서문이 났죠 뭐라고 서문
났어요 뭐 광고 한군도 중국을 갔다고 서문 나지고 뭐이라고 나겠어요 오 한국 갔다 얘기는 다니 한국 갔다 말은 안 했어요 중국 갔다고 서했어
다 도망쳤다 다갔다 엉적이 다 야 그랬구나 그 무너질 것 같았던
집이 아직도 아직도 살아 있어요 거대로 살아 있어요 네 참 예 우리
운이 언니는 제가 알기로는 굉장히 열심히 장사해서 잘 사셨고 또 우리
언니의 집 친척들이 완전히 그 부자예요 엄청 잘 살았죠 연사군에서
삶은 어땠어요 그죠 처음엔 참 힘들었어요 우리 삼촌 죽고 난 이후에도 참
힘들었고요 당한 것까지 아시죠 알아요 네 그니까 너무 그 어려움은 뭐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힘들다 보니까
참 제 생각에는 안 해본 장사가 없이 다 한 것 같아요 어 그래서 지금 삼천이 어떤 분이었죠?음
장성태기하고 같이 정업자락 할 수 있는 어기라고 그 당시는 어머니육이라면 뭐 북한에서
장성되 멋지 않게 다 알 수 있는 분이거든요 네 그렇게 같이 동업자로
하시던 분이라 어떤 회사를 운영했어요 우리 사군에서 소경 회사라고요 네
원래는 외아보리 단이 군중회하였는데 군중회야가 후에 소경 회사를 개편했어요
그러면서 소경 회사 사장으로 하셨거든요 그런데 기본 하시는 업무는
나무 고 그래서 또 우리 한북도만 한 거 아니고 양광도 쪽에도 전 지역을
간해서 나무를 하셨거든요 그니까 나무를 했다는 얘기 뭐냐면 나무를
배서 중국에서 원하는 그센터의 이제 그 각자를 켜서 수출을
한 거예요 팔아먹은 거죠 맞아요 수출을 해요 중국 쪽에서 원하는 대로 원목은 원목대로 뭐 어승십 각자면
각자대로 망각은 망각대로 망각이라는 건 배를 모을 수 있는 땜목을 모을 수 있는 자재 재력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 크기에 따라서 넘기는 거예요 그래 그렇게 하는 건데 그것도 법적을 다
승인이 떨어져야 되는 거거든요 와쿠 와쿠라고 말하거든요 거기다를네 와쿠 지표가 떨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렇죠
중당에서는 해요 그당시 우리 삼촌이 중앙당에 가서 지표를 다 받아가지고
와서 그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가족들한테 저는 나는 우리 원수님 자금 당자금 당자금 하는 기업서라
회사라 당당하다고 그러니까 저희는 진짜 당당하게 그렇게 하는 회사인 줄
알았어요 후에 총살 당할 때도 몰랐어요 정말 어마어마한 돈을 당해다 받치고 그렇게 했거든요
그런 돌아갔거든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총알 90발 우리가 흔히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공개 처형을 봤던 사람은 많았거든요 근데 정말
처형당한 일가족을 이렇게 만나 보기는 또 처음인 거 같아요 그것도 90발을
그러니까 당자을 달러로 받았으면 어마어마했을 거잖아요 그걸 다 올려보냈는데 그렇죠 오로지 장성택
라인이라고 해서 지금 숙청이 된 거예요 그때가 몇 년도였죠
아 그랬구나 그럼 그때부터 이제 장성태이가 청됐 고사포에 맞아
죽었다는 사람도 있고 네 맞아 김정은이가 들어와서 죽여버렸잖아요 장성택이 그가 그러면 2006년도게
되면은 이미 그때부터 장성택 라인이 숙청이 진행이 됐다고 기 시작했어요 뭐 저희
삼촌만 그렇게 된게 아니고요 그 장성태기 나열이 엄청 어마어마했어요
정말 장성태기를 일본 농지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 그 라인이 엄청 한 정부를 뒤집어 엎으려고 할
정도였으니까 참 그랬던 것 같아요 아 장성제가 정 내보조인 건 알 수
없는데 그 그 후에 우리가 16년도에 수혜가 났어요 평양쪽에 있는 많은
구린들이 우린대에 지원됐거든요 응 연사군만 아니에요 함경북도가 다
수혜 장겼거든요 이번 수혜처럼 그래서 엄청난 수혜였어요 그래서 그때
많은 군인들이 들어왔는데 그때들은 소리예요 16년도에 그분들이 이야기할 때 걸더라고요 많은
장교들이 몽땅 쳐나갖고 이미 군부는 장악 했다 하더라고요 음 그래서 장
장성태기를 일본 동지라고 할 정도로 일본 동지면 최고의 응 최고의 동지로
최고의 전성이고 완전 이분이 아예 뒤집어 엎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 그러더라고요 그러지 않으면 그렇게 죽일 순 없었다 그때 군대들이 직접 말하는 말 제가 들었거든요 아니
그러면은 정치적 협자군은 또 뭐예요 저희 참추는 정치적 협자꾼이란 말은
그 말인 거예요 우리 참촌이 퍼도 차를 타고 다녔거든요 아시죠 님
북한에서 말하자 미국차 그래서 그 퍼들 차를 타고 다니셨는데 구르셨어요 이거 우리
원수님께서 소물해 주신 차다라고요 참 듣기 좋잖아요 우리 원수님께서 소물해 주신 차라는 게 그러니까이
북한 영어를 얘기하는 거예요 이분의 사상이 그런게 아니라 네네 북한에서 네네
이어 정당에 가서는 아 원수님께서 다 뭐 주신 차람 참 좋은 운 말인데 어
내 돈으로 내가 내가 나라의 산에서 나무를 잘라 가지고 수출한 돈으로
내가 산 돈인데 네가 산 차인데 왜 원수님께 선물해 주셨다고 사기치고 다니는가라는 완전한 정치적 겹작꾼이다
원수님은 너한테 소물해준 적이 없다 근데 진짜 없어요 아 없는 건 사실이죠 어 없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장성태기하고 김정훈은 차이점 있어요 검보면 김정은 대변할
정도로 직급이 있는 거고 솔직한 말 그렇거든 그니까 삼촌는 장성태기 한데도 받아왔고 당당하게 그리고 그고
차를 살 때 장성태기하고 같이 있어요.음 우리 북한에서 차를 산다 형차를 산다 아시잖아요 어디 가서
훌서 훌 사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래 나 당자금하기 때문에 우리 소물해서 주신 거 맞다
왜 장송태기 앞으로 이렇게 받은 거니까 뭐 그렇게 호물없이 말했어요 근데 이게 후에 어떻게 그니까 이렇게
확장내가지고 완전히 정치적 협자권으로 완전히게 번진 거예요 근데 어떻게이
사람을 죽이려고 하니까 죽일 건덕지가 없었어요 왜가 당장을 많이 냈지.이 이 사람과 우리 삼수를 말하면 정말
헌신적이었거든요 우리 고향 자체가 엄청 북한식으로 말하면 원수님을
모시겠다는 개념으로 그 김동일이 이제 대단한 책임소를 같은 사람이 정말 잘 꾸려놨어요 그것이 다 어머니 그니까
삼촌이 자금으로 다 꾸려놓 거거든요 중국이랑 거래를 하니까 그래서 그런 것들을 많이 드려왔나 보다 뭐 시멘트
통리 이런 것들을 많이 봤더라고요 그게 이제 연사군을 꾸리기 위한 그런 거였나 보죠 그죠 그러면 구존에는
사조관이 없었어요 우리가 연구실만이 북한 어디에나 연 연구 연 연구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는 3대상군
사관이라는게 없는데 우리 지금 북한의 3대상군 사관위에도 김 뭐 김정숙 사관이라고도
불려요 그렇게 불리는 사관이 그 당시에서 채워졌거든요 삼촌의 공로인가요 응 삼촌이 집접 지운
거예요 그 어마무시하게 사족관이 엄청 잘 지어졌어요 진짜 현대적으로
방송원이 제가 딱 나와서 사조관 강사가 딱 이야기하는 거에 따라서 불이 딱 켜져요 뭐 여기는 어디에 뭐
김일성이 몇 년도에 와서 뭐 지하투생 어떻게 한다고 딱 발언하면 고개불이 탁 켜지고 관대적으로 말에 따라서
전자 기기가 움직이게 다 돼 있는 거예요 그 어마어마한 장치가지다 보니까 더 많이 들어갔다는
말하는 거예요 그 지하에서부터 지금 지하충이 북한은 없잖아요 아파트
1층부터 서거든요 근데 3대사 그 사조관만은 국을 불문하고도
지하에서부터 지하충부터 생겼거든요 3대 장군 사소관이 북한에 지하물이
없는데 응 그 사소간이 지하부터 있어요 그렇게 삼이 건설한 거죠 그러니까 한마디로 군이 이제 깨끗하게
끓여지기 위한 모든 자금을 그쪽에 후원금처럼 됐다는 거예요 예
그렇죠.서 회사 위아보리 사업세 그 삼출이 자금으로 다 했는데도 불문하고 죽일 권독지가 없으니까 그 말이
씨앗이 된 거죠 말 씨가 된 거죠 그 말 가지고 결국은 정치적 협자권이라고 98을 짜서 죽인 거죠 야 세상에
제가 그때 살짝 기억이 나거든요 저희 대단에도 엄청나게 소문이 났어요 석영
회사 지배인인 오문역이 90발인가 70발인가 맞고 죽었다 90발을 맞았어 아니 그러면은 공개 처형할 때
집계 가족들을 다 어떻게 했어요 다 앞에다 대놓고 다 보였어요 아니 아니 다 로평 로평 아시겠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우배소 30 30 정도 시 가잖아요 30리 정도 가서 그 당시는
보완수라고 했는데 분주소 안에다 다 넣고음 못 나가게 못나가게 했다
그래서 청사라는 거 보지 못했죠 그렇게 하고 청사를 지내는 거 음 그랬죠 가족들을 안 되는 그렇지
않잖아요 아 가족들 그때 당시 어땠어요 아 정살할 줄 몰랐어요 네
왜 그런가면요 내일이 청살인데 곧 전날까지 어떻게 해놓는가면요 지금도 이치 앉지는게 삼촌 엄마가음 별이
엄마가 삼촌 엄마가 왔는데 너희들 돈이 있는 것만 다 꺼내라 하더라고요 근데 삼촌은 지금 당시 내일 청사인데
총살이라 안 돼 있었어요 재판이었거든요 내일이 재판인데음
돈을 좀 다 파자 그러더라고요 그니까 우리는 어떻게 생각했는가요 돈 전양을 다 기고 다 내면 우리가 하면 삼출이
풀려날 줄 알았어요 근데 그렇게 말했거든요 총사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우리 오빠도 돈 깨에서 어 알죠 돈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거 그래서 돈을 꺼내 왔어요 돈 내려서 그래 근거 열고 딱 열고 달러를 달러대를 해서
넣고 중국돈 있잖아요 중국돈 중국대 해서 넣고 해설이 그 돈을 다 했어요 해서 넣고 3촌한테 인계했거든요
얼마나 액수 싹 이렇게 딱 해서 주고 그걸 갖다 받쳐야 3천이 나온다니까 왜가면 삼촌도 다 주고 삼촌도 있는
엄만치 다 주고 근데 솔직한 말로 삼촌내는 북한의 돈이 얼마 없었어요 중국에 다 이렇게서 나가 있었거든요
그 자기네 갖고 있는 돈이 실제 얼마 없었어요 그래서 형제들 안데다가 말했거든요 저 우리 삼촌들 우리
오빠한데 와서 빨리 돈을 삼촌 살리자면 내야 된다고 이렇게 해가지고 그돈을 다 가지고 삼촌을 막 갔어요
그게 딱 전날이었거든요 적사하게 전날 적설한다 말 없었어요 재판 됐어요
그곧 다음날에 말두기 싫지만 다섯 개가 서해졌다더라고요 우리 난 현장에 못나가 봤는데요 그날 밤이 새벽 새벽
3시쯤이 됐는데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형제들 안데다가 말했거든요 저
우리 삼촌들 우리 오빠한데 와서 빨리 돈을 삼촌 살리자면 내야 된다고 이렇게 해가지고 그돈을 다 가지고
삼촌을 막 갔어요 그게 딱 전날이었거든요 총사하기 전날 예 총한다 말 없었어요 재판 안 됐어요
그다음 날에 말두기 싫지만 다섯 개가서 있었다더라고요 우리 난 현장에 못 나가 봤는데요 그날 밤이 새벽
새벽 3시쯤에 됐는데 전화가 왔어요 보완서에 조금 좀 직책이 있는 사람이 전화 왔더라고요 자기를 말뚝 세우고
들어왔대요 그 다섯 개를 세왔대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말뚝 세우면 촉살한다는 소리거든요
야 이게 뭐야 말뚝 씨다는 건 재판이 아니고 지금 촉살할 수 있다 소린데 그럼 다섯 명을 척살한다 소린데 깜짝
놀란 거예요 이거 청설한다는 소리가 없고 재판을 한다고 했는데 왜 청살하지 그래서 실제 말해 솔직히
15명을 촉살하게 됐어 명단에 그랬는데 다섯 명이 아닌 우리 삼수만 촉살하고 나머지 다 무기징역 같거든요
그 축근 또 3천에 나름대로 축근들이었네요 축 몽땅 축근이었거든요
몽땅 양종 황 다 축구들이는데 다 내리고 삼촌만 적사한 거죠 한 사람만
기본 같이 하는 건 우리 삼촌이었으니까네 명은 다 우리 삼촌 축군이었고 장성태기하고 기본 가서
갖고 떼워하는 건 우리 삼촌이었으니까 그러면 삼촌이 말로는 원수님께서
선물해 준 차다 말은 이렇게 했어도 실제적으로 장성태기가 새롭게 그리는
그 어떤 정권을 뒤집기 위한 거기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서 그렇게 죽인
건 아닌가요?에 에이 장사꾼이에요 장사꾼이다 장사꾼이에요 삼촌이
장사꾼이에요 철도철이 장사꾼이에요 정말로 네 정체 개념 있어서 그러진
않아요 진짜로요 그 가족들이 그렇게 총살됐다는 얘기를 듣고 다 괜찮았어요
못했어요 그렇죠 많지 아프죠 어떻게 안 괜찮겠어요 근데 북한에서 그걸 우리가 표출할 수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아 깔라 우리 북한에서 그런게 있잖아요 우리가 왜 자연스럽게 우리 말을 할 수 없이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아픈 상처를 드러내놓을 수 없고 없잖아요 그러니까 아파도 아픈 해색 못 하고 그랬구나
네 살았죠 형제들은 그니까 많이 삼촌 돌아간 다음에도 많이 돌아갔어요 그이 차 돌아가셨어요 그 충격으로 충격으로
차 돌아갔어요 야 이게 무슨 일일까 도대체 우리 이차 갈 줄 몰랐어요
진짜로 이차 이차 다 돌아가시고 그러더라고 아우 세상 너무 마음
아프다 참 그리고 그때 그랬어요 야 그 많은 돈 가지고 그
능력으로음 정말 한국으로 왔으면 야 진짜
아 참 그렇지 그때 당시 또 중국이랑 다 연이 있었으니까 한국까지
그렇지까지고 뭐 이게 사업 북한 그렇게 믿지 않고 장춘이 왔으면 그렇게까지 일이 안 되죠 그러게요
죽지 않죠 네 제가 대한민국의 2008년 1월 23일 날에 집을
나와서 정확히 대한민국에 입국한 날짜가 2008년 12월 18일입니다
나를 국정원에서 우심을 하더라고요 너는 다른 여성들은 다 팔려가 애를 나가거나 몇 년 입다가 너는 또
강제부성 됐다 오는데 저는 안만 봐도 22살이었어요 그때 제가 근데 세 번
팔려 갔어요 제가 어 진짜 응 아니 나는 너 이해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보고 그래 너 네가 정말 북한에서 제대로 거기 사람이 맞는지
증명할 거 하나만 말을 하래요 근데 내가 말을 하자고 해도 우리 동네에
살던 누가 한국 같다고 했어요 이러면은이 혹시 예야 하고 해서 아 맞아요
이렇게 될 텐데 그 당시는 온 사람도 없어 제가 제일 처음이란 말이죠 그래서 어역 사건을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다음날 풀어주대요 맞다는 거예요 너무 정확하게 이제 제가 들었던 얘기들을
했는데 장성택선이라는 건 저 오늘 처음 들었고 언제 무슨 일을 했고 그
사람이 왜 청됐고 이거를 얘기하니까 인터넷을 보여 주는데 기사가 얼마나
많이 떴는지 내가 그래서 그때 아 이거 북한에 우리 사람들이 있구나
그렇죠 너무 제가 말한 거랑 상세하게 기사가 똑같나 다양한 그 방송사들에서
그걸 다더라고요 그 지금 쳐도 나올 거예요 맞아요 그렇죠 그 정도로 엄청
맞아요 큰 사건이었는데 어쨌든 참 참 너무 마음 아죠 예 마음이 아픕니다
아우 너무 마음 아파요 그 생각하 그 근데 힘든 얘기 해 줘서 너무 감사해요 그러면은 아까 얘기했을 때
삶이 좀 어땠냐라고 얘기했을 때 제가 물어봤을 때 그 삼촌 덕분에 잘
살았다고 하셨잖아요 그죠 뭐 쌀다르는 사람은 쌀 먹고 똑 다루는 사람은 똑 먹게 생겼는데 어떻게
힘들기도 하고 또 뭐 뭐 그렇죠 북한 삶이 뭐 순탄하진 않잖아요 정말 뭐
도박이나 같죠 어떻게 보면 전 그래요 북한에서 늘 도박으로 살았는데 난 늘
도박인 생이라고 그래요.왜 우리 삼촌도 더박이 아니었을까요 음춘더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더박이었을
거고 참 그 후에 나의 삶도 더박이었다고 생각해요 음 모든 것이 다 북한에서
내가 진심으로 일하면 돈을 줘요 어디에서 너힘을 줘요 우리 대한민국처럼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무엇이나 내가 도박을 내 목숨을 내대고 도박하지 않으면 돈이 안 생기는 거예요 공무원이다 음 내가 말
들어서 보안이다 보이부다 나도 역시 도박을 해야 돼요 내가 말 내에서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레을 많이 받아야 내가 살 수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도 어 많지는 않거든요 쌀마 먹으락 줘요
그러니까 나는 그래요 북한 삶은 전반적으로 보면 더박이다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중독 상담이 들어왔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 도박이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제가
알 거 같아요 왜냐면 우리가 이게 도박이라는게 말 그대로 여러분 설명을 안 해도 아시잖아요 그렇죠 근데
북한에서는이 도박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다 불법이에요 불법을 안 하면 살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렇죠 모든 삶이 도박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은게 바로 그렇게 삶이 네 정말 네 그런 속에서
그래도 삼천이 군중회화리에서 달러를 좀 만져서 그 덕을 보면서 조금 잘
먹고 살았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힘들 땐 힘들고 또 어려울 땐 어렵더라도
그나마 또 괜찮을 땐 괜찮고 그래도 도박을 많이 하면 살 거 같아요
어려움도 참 많아 된 것 같아요 네 어떤 어려움이 제일 컸어요 솔직히 외현 삼촌는 외현이고 거기는 외현이고
엄마 켠이잖아요 외현이고 저는 아 아빠 켠 있거든요 아버지 켠 근데
갈이는 거예요 엄마 쪽은 너무 높다 아빠 쪽은 너무 바닥인 거예요 참
북한은 터대라는 거 많이 보잖아요 근데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부터 50년도 전쟁 때 지원군 포로로
잡혀서 포로 수영서에서 해방가라 전쟁을 뿌요 그리고 북한에 남아
떨어진 거죠 그러다 보니까 토대가 엄청 안 좋았던 거예요 우리 아버지네 쪽은 그니까 아버지가 입당도 할 수
없던 집안이고 포로 지원군이면 중국으로 해서 나간 거예요 아 맞아요 그니까 중국에서 사셨는데 전생이
터지면서 그 당시 중국하고 북한이 사이가 좀 좋았잖아요 그 중국에서 지원군으로 북한에다 두림인 거예요
우리 할아버지가 16살의 포로를 왔대요 참 서연이잖아요 근데 북한에
왔는데 16살이 청을 매요 아 그리고 알아요 너무 엄마가 보고 싶은 거예요
에서 할아버지가 전쟁하다 말고 바로 건너갔대요 중국으로 건너가다가 포로를
잡힌 거예요 아이고 그래서 포로 수영서에서 전쟁 3년을 다 거기서 보낸 거죠 음 그리고 다시 북한에
떨어진 거죠
그러다 보니 참 많이도 부모님워하시고 형제가 사명저였는데 사명를 너무나도
구려워하시며 사셨어요 그까나 아 우리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참 이렇게 갈등이
심한 부부가 만났는데 연애로 만나셨대요 연애로 근데 우리 아버지가 참 잘
났거든요 근데 우리 어머니는 아마도 그 잘난 인물에 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토대가 안 좋아도 같겠지
그래서 갔죠 참 그렇게도 떼말리고 반대를 했는데도 둘이 살았대요 근데
참 내가 살아하면 진짜 맞는 거 같더라 같더라고요 정말 저 어떤 때는
안 살았으면 좋겠다 할 정도로 갈등이 심할 때가 있는데 두 분이 사랑이
너무나도 깊으니까 또 살시더라고요 그렇게 음 참 그런 걱절에서 사셨는데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계실 때 할아버지가 눈을 외우셨어요 나 늘 통일했으면 좋겠다 통일되면
제주도가 잘 거야 살 거야 해소남 제주도 가도 못 봤는데 19년도에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해서 제주도락
써붙여 썼어요 처음에 아 하나원 선생님이 날 딱 보시더니 왜 제주도 가려고 하는가
아니 전 아무도 없지도 가서 못산다라고요 그 왜 가려고 해하는가
해서 저희 할아버지 눈감을 때 제주도 가기 전까지 계속 제주도가 살기 쉽다고 해서 제가 제주도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진짜 그랬어요 제주도 어떤지도 모르면서 진짜 아데 제주도 왜 못
싸는데래요 제주도 좋은데 몰라요 그분이 보시더라고 제도 가면 힘드니까 제주도 가지 말래요 모든게 너무
비싸니까 제주도 가면 힘들다 혼자 제주도 가서 어떻게 살려고 제주도 가나
그러더라고요 떨어져 있으니까 항상 그런게 있어요 근데 할아버지가 너무
구리셔서 근데 할아버지는 왜 제주도를 그렇게 그리워하셨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중국이신데 중국이신데 음 중국이신데
그런게 있어요 전화를 형제한테 전화했대요 동생분이 있는 부모님한테 전화했더니 온 가족이 흩어지면서
사명제였대요 우리 할아버지가 둘째예요 근데 마지하고 막내가 한국이 갔대요 아 근데 마지도 마지대로 마지는 그
당시 여기 전쟁에 오고요 갈라온 거예요 할아버진 지원군 할아버지 또
대한민국이 이제 국군으로 사군으로 가고 막내는 막내 나이 너 너무 어리니까 있다가 어떻게 되는지 막내는
행불이 됐는데 후에 형을 찾는다고 또 한국을 왔대요 어 내가 찾을 수 있는게 한국밖에 없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계속 한국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이제 보니까 맞아요 아 근데 그중에 이제 제주도가 꽂치셨나 제주도에 그고
제주도에 가신다고 하시더라고요 네 부모님과이 갈등 속에서 굉장히 이제
언니가 맞으러서 생계를 이어간 건가요 그러면 그렇죠 그러다 보니까 우리 아버지가 그런게 심했어요 나는 그니까
외현이 초각현이 우지하지 않고 내물로 살아야 된다는 걸 저 어릴 때부터 자꾸 심어 주시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그 삼촌이 있잖아요 우리를 참 집을 좋은 거 지워 주셨 주셨어요 좋은 집을 지워 주셨는데도 불문하고 우리
아버지 그 집을 안 들어갔어요 왜 안 들어가던가면요 아 우리 아버지가 참 김구 김구 선생님보다 자존심이 더
셌던 거 같아요 근데 저도 아니 왜 안 들어갖고 북한에서 집 지어 주는 사람 누가
있다고 우리 아버지가 참 자존심이 엄청 강했는데 내 힘으로 산다는게
너무 셌어요 그니까 익현에 좀 우지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나니까 그래서 그런 갈등으로 난
그래서음 그래서 항상 나는 외이 좋은데 아버지가 너무 그런게
있더라고요 네 근데 어릴 때는이 좋잖아요.이 캐리 너무 잘 사니까 그 항상 그랬어요 독을 보는데 왜 싫어
그래서 늘 남왜왜 캐리가 살았던 거 같아 응 왜이는 문턱이 너무 높아서 좋은 거 있잖아요 친은 너무 바닥친단
말이에요 좀 내가 처리 두니까 아 아버지 말이 얽혔다 내 힘으로 사는게 맞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부터 내가 사소 고생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내 힘으로 덤벌겠다고
참 그랬던 것 같아요 무슨 장사했어요 아 그러면서 제가 참 선을 많이
댔던게 불법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까 도박이라고 표현을 했군요 네 불법 뒤 이런데 불인데 손을 많이 돼
가지고 참 몸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불법이다면 종목이 뭐예요 동장사
기본적으로 뭐 동도 뭐 동문도 말할 것도 없고요 그다음에 마약 같은 걸 많이 했죠 전 어기 전까지 마약을
많이 하다 보니까 판매를 하다 보니까 그니까 여러분 오해하시면 돼 마약을 본인이 했다는게 아니라 마약 당사를
했다는 거예요 어 마약을 제가 판매를 했죠 예 그 이후로 이제 여기 대한민국에 와서 중독 상담학과를
들어가신 거 맞 중독 상담학과를 위한 거 제가 마약은 좀 너무 오랫동안 하다 보니까 깊이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마약을 대한민국에 와서 있는 줄 몰랐어요 솔직한 말도
어떤 사람들은 그러더라고요 북한이 참 법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북한이 법이 무르거든요 어떤 측면에서 물른가면요
모든게 다 레물로 행하기 때문에 법이 실행될 수가 없어요 솔직한 말로 법이
엄청 모든 것이 다 레물로 행해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죄악도 덮을 수가 있다는 거죠 판결이 있을 수
있다는 없어 우리 대한민국은 정말 정당한 자유민주의 국가라 말할 수 있지만 북한은 거기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말 뇌물이 성행하기 때문에 마약도 그만이 판치고 있어요 어느 정도예요 네 네 어느 정도예요 누구나
다 할 수 있죠 그럴 정도로 그 사람들이 이래요 물어보는게 뭐냐면 먹을게 없는 데서 어떻게 마약을 하냐
근데 진짜 먹을게 없는 사람은 마약 못 해요 마약이 가격이 있어요 어떤 분은 이렇게 인터뷰를 하시더라고요 음
북한이 먹을게 없는데도 불문하고 배 배고프기 때문에 마약을 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좀 어차예요
뭔가면요 마약이 가격이 있어요 가격이 있는데 배고픈 사람 마약을 해요 못
해요 돈 있는 사람 마약을 해요.음 반드시 그렇거든
도박 같은 삶을 없다고 표현을 하셨는데 여기서 정확히 좀 잘 얘기를
해 주셔야 돼요 음 한국에서 약이 약은 정말 혐상이거든요
근데 북한에서는 정말 잘못됐다 걸 알았어요 뭐 그렇게 효모 대상은
아니에요 효모대상 아니고음 그렇게 효모하고 막 이러진 않지만 딱 쓰는
사람을 보면 알아요 아 저거 딱 탕재구나 빙 삥탕재로구나 운동자부터
달라 달 다 다르거든요 말투도 달라요 그 딱 보면 알라요 근데 그걸 허물없이 말해요 아 저건 당세네
음 그렇게 허물없이 말해도 뭐 그렇게 막 여기서처럼 중마에 막 그렇게 되진
않거든요 그 사회 자체가 토덕과 윤리가 없으니까 없잖아요 맞아요 그게 다 깨진 사회라 음 그런게 없으니까
그런 개념이 없으니까 우리 대한민국처럼 그런 사람들을 치료하는 센터라든 이런 거 상상도 못하니까 아
그 뭐 그런게 없죠 당연히 불법 같은 불법이 판치는 당국이다 보니까 그게
불법인지도 모르고 이제 사람들이 하고 쓰고 아 비법이란 건 알죠
국을 안 하면 뭐 어떻게 사나 뭐 뭐 그렇서 정부에서 뭐 내가 일한다고 돈는 건 아닌데 그니까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수단이 되고 말았죠 뭐 어떤 구람당 돈인데 그건 다 역시
여로 말하면 공무원들 장사꾼들 권력 있는 사람 당연하죠 돈이는 사람들 해요 편보다도 북한
사람들이 제일 실용적으로 좋아하는게 삥두거든요 근데 삥두도 저희가 화목에서 어는 1등급하고 뺑급이라고
말하는데 그거하고 청진에서 직접 사용하는 개인들이 많이 제조해요 개인들이 제조하는 제조물이
들어오거든요 네 근데 돈 없는 사람은 그걸 할 수가 없어요 근데 돈 있는 사람들도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그 사람들이 계속 돈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기간 책임자들인데요 기간 책임자라는게 알다시피 북한은 지금도
역시 직장이 돌아가진 않아요 잘 돌아가지 않거든요 내가 예를 들어서 뭐 제지 공장 지배이다 정의공장
아시죠 태란 정의공장 북한 제지공 뭐 제지 공장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 제지공장 지변이다 하면 제지공장이
계속 돌아가진 않아요 종기가 계속 꾸기 때문에 그러면 내명이다 하면 중 한 15명
정도는 수입금예요 수익금이라면 덧이 저라는 말씀인 말이에요 그럼 15명은 돈벌이 저기 때문에 구분들은 아무게나
나가서 돈하는 그 장사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럼 한 달에 그 사람들이 뭐 나는 7만 원 뭐 10만
원 이렇게 돈 쪼가 있어요 그 사람들이 매달내는 수입금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공장이 운영이 돼서 돈이
들어와야 되는데 그것보다도 결국 수입금절로 나가 그 사람들이 이용해서
결국 돈이 한 그 직장이 운영이 된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지배들도 매번 우리한테 돈 주진 않아요 근데
저희들도 단거리 있거든요 못 사는 사람 인도를 못 해요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런 배고파서 한다고
하는 그건 거짓말이거든요 그 사람들이 오는데 집변들도 어떤 때 못 갖고 와요 못 갖고 와서 빈선에
와서 어 빈선에 와서 해 달라고 그래요 근데 우리는 닭거리기 때문에 줘야 돼요 그래서 한일번 일곱 번
줘요 일곱 여덟 번 이렇게 탁 책다 적근했다가 다음 번에는 말해요 집동지
어느 정도 아시죠 전 포근화 됐는데요 그래요 그러면 얼마 되는가 물어봐요 이전 돈이 한 5 80만 구개선
됐어요 그러거든요 그러면 알겠다 그래요 그럼 그 사람 대책이 뭐겠어요 다음번에는 자전거 북한 아시지 않아요
자전거 핸드폰 선조나 따구다 이게 다 돈이라는 거 아시지 않아요 조금 떠 와서 이번에는 뭐 따다 놓고 가든
아니면 자성거 딱 놓고 가요 응 자송거 넣고 가요 그럼 자기 딱
가서 말해요 와이프한테 가서 자거 잊어 먹었다면 되거든요 북한은 다 뚝바이예요 음 도덕질했다 이거 갖다
도덕질하고 저 갔다 도덕질한다 소리예요 자산거 딱 놓고 갔구나요 그럼 나 그 자산고 가져다 보고 말해요 아 이거는 아무리 좋다고
해야되건 좀 타서 한 40만 깎밖에 안 돼요 나무 좀 보충하세요 그러거든요 그러니까는 저를 보고 왜 못 하거나 어 보안서도 같아요 내가
집접 마약을 한다으로 딱 파명할 수가 없어요 왜 그런가 우리 집에 왕내로 심하지만 나는 마양을 판매한다고 볼
수가 없는게 왜 그런가면요 따구다씨도 팔고 자전거도 뚝바이 친구 판매하고 하기 때문에 딱 보면 자전거도 저
많이 중고품 팔거든요 그러니까이 자전거 저 자전거 정거 확 섞어요 뚝바이 채온 자전거들을 그렇기 때문에
날 딱 보면 마약을 판다고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 집에 왕내가 심해도
다음번에는 노트북트북트북 노트북이 별로 많지 않으니까 핸드폰 넣고 간다 그럼
심하고 우리가 기 분리해서 밤에도 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하거든요 죄송해 못 사는 사람 못해요 못 사는 나
어느 분이 유튜브는 봤는데 못 사는 사람 배고파서 한다 노건 거짓말이에요.음 음 그럼 여기서 또
질문이 의료가 약하기 때문에 의료 쪽으로 이제 쓰기 위해서 어떤 그
마취대 이런게 없으니까 아리 마취돼 있어요 솔지 말통쟁이 있어요 어 북한도 중국에서 이야기 다
들어오거든요 근데 가짜도 있고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에서 들어오는 약들이 가짜가 많으니까
우려로 이제 우려 대형으로 많이 무지하게 사용을 했던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니까 우려 대형으로
저한테 와요 어떤 경우 오는가면요 저도 우려대형으로 줘봤거든요 음 아 이렇게 말하면 또 이렇게 한국분들
어해하실 수 있는데 이거 어해하시면 안 돼요 삥돌을 북한에서 이런 이미지가 있어요 예 여기 내추혈
내추혈 이렇게 반풍을 뭐 쓸 수 있어요 그런 분들이 오셔요 나이든 분들이
아 이게 내추혈이 와서 그러는데 약을 좀 구할 수 있을까라고 문의하셔요 이제처럼 그 삥들을 그러면 저희가
구분 드릴 경우는 우리가 진짜 이렇게 짠물을 섞지 않아요 근데 진짜
100% 순 제 한급을 주거든요 왜냐면 아픈 환자가 줄 거기 때문에 그때 줘요 왜냐면 빗급을 안 썼거든요
그러면 마비가 어느 정도 풀려요 걸으면 네 네 왜 그런가면요 그런 말 있잖아요 우리 암판자들이 북한에서
그게 있어요 아기 덩 아시죠 예 동약도 아주 작게 사용하면 뭐예요
고약이거든요 우리 쌀밥도 너무 많이 먹으니까 이게 오니까 뭐해요 다이어트 하잖아요 그 원리나 같아요 쌀밥 많이
먹으면 살이 찌죠 음 살이 쪄서 이게 우리가 탄산 탄수화물도 먹어야 되지만 많이 먹으면 안 좋고 설탕도 적으면은
먹어야 되지만 많이 먹으면 안 좋듯이 이것도 우리가 그냥 쓰면 어째요
안좋투 요것도 약처럼 쏜다는 말이에요 제 말은 음 그게 좋다는 이미지가 아니에요 그까나 약술 사람이 와서
물어봐요 약을 어 우리가 수술할 때 맞는 머리빙 있잖아요 머리빙도 이거
어떻해요 과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안 좋잖아요 근데 그 머리핑을 수술할 때 반드시 맞아야 되잖아요 고통을
줄여 주잖아요 그거 없이 우리 수술을 못 하잖아요 근데 사람들이 기분 좋겠다 하니까 마주이 그걸 어떻게
해요 그거나 같은 원리란 말이에요 진짜 아픈 사람이다 내추혈이 와서 필요하다고 오면 불수물 안 섞어요
불순물이라는게 우리 딱 보면 알아요 그니까 개인들이 제조했을 때는 당당 돈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마지막
공정을 안 걸쳐요 그러면 굴수물이 섞인 거는 참 하고난 뒤에 머리가
아프다던가 참 이상한 중세가 많거든요 그 그런 거는 우리가 전문 쓰는
삥탕재들한테 저도 약 쓰는 사람에게는 안 주거든요 약을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약을 판매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유통이 어디서부터 들어와요 화웅에서 들어오죠 화웅은 국가 공간에서
생산하는데 이게 국가 어디라고요 국가 과학원 한문가 과학 분에서 전 받아요
저 국가 과학 분원 과학 분원이 있어요 저는 군대들 한데서 직접 받거든요
군대들이 직접 싸져요 좀 거기에서 제가 받아오거든요 여기서 뭐 옛날처럼 뭐 북한도 이게 다이전 진장이 돼서
완포장이 딱딱 뭐 사람이 차에 타 가지고 다니는게 아니고 여기서처럼 같아요 택배가 딱 짐이 실어다 주듯이
거기도 그렇게 실어다 주거든요 하면 초소 사람 중명서 내려라 올라라는 것도 전 없어요 내가 내
주면 다 돼요 응 그렇죠 그죠 내가 전화하면 차가에 기사에 운전수에 저도
차장 이렇게 하주도 해 봤거든요 차 하주 차를 산 주인이란 말이에요 차를
산 주인이 뒤에는 내가 주문 받아도 지금을 다 실는 거예요 그러면 뭐 평양에서까지 올 수 있고 회사까지도
광복으로 딱 하주만 타면 돼요 기사에다 하주 사는 권난이 대단히 많아요 큰 트럭에다 다 짐을 지었고
왔잖아요 초소에 어면 중명서 검를 한단 말이에요 그 짐을 다 봐야 되잖아요 원래 옛날처럼 하려면 일일이
근데 일일이 보자면 시간이 걸려요 그 사람 이건 필요가 없어요 이미 전에
숙제를 다 졌거든요 그까 그 숙제만 숙제 초소마다 통과하면
레물인 거죠 아 레물 초서마다 엄청 많잖아요 처음 듣는 단 네 네 숙제를
주는 거예요 근데 매초마다 숙제가 다른 거예요 숙제라는게 달러 몇 장일 수장일 수도 있고 비만 원일 수도
있고 비천원일 수 있고 그건 다를 수 있어요 무슨 담배 무슨 열벌라든가
그래서 그거 딱 해 주면 초소 다 무사가요 근데 초소 많잖아요 초소
숙제비를 줘요 근데 숙제비를 내가 물어야 되잖아요 근데 식품만 실었다 근데 식품 가지고 숙제비를 물고는
떨어질까요 북한에서 하라는 식품만 싣고 들어오면 우려랑 평성에서 들어오는 우려거든요 그 우려를
회상까지 그다음에 평성에서 만든 걸 우리 한복도까지 이것만 싣고 들어와 가지고는 숙제 간에가 무는 리물만
물어주고 나면 떨어지는게 없다 그 말인 거예요 하주가 먹을 돈이 없다 그 말인 거예요 그러니까 마약 같은
걸 그러니까 거기다가 마야 아니면 덩 이런 걸 밑에 쫙 깔고 들어온단 말이에요 근데
처서에서 매물 받는고 사람들은 뭐를까요 알아요 음 알기 때문에 자기네도 숙제를 주는 거예요 림을
받는 거예요 바로 그런 식으로 다 하고 있는 거죠 음 그렇게서 이제 하에서부터 갖고 들어왔다 이거군요 예
그니까 이제 영상을 보시면서 이게 이해 안 돼서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사 재산을 소유할 수가 없고 시당 경제가 합법화가 아닌데 이제 언니가
막 차로 장사를 했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그러시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그거예요 저도 듣다 보니까 이해되는게 못하게 만들어 놨지만
뇌물을 주면 다 가능한 사회인데 그게 또 이제 불법으로 잡히게 되면은 다
무상 멀수 당하고 그렇죠 그죠 그렇게 된 말이 정말 안 좋은 사람은 걸리면
이제 우리 삼촌처럼 그리고 죽이자면 죽는 죽이는 거죠 우리가 권난의 행위를 겪었잖아요.이는 북한 사람들이
제보고인데는 그래요 북한은 사회주의 아니죠 자본주의예요 음 이제는 사회주의지 아 당하죠 건만
흉내만 사회주의지 아니 내보는 전 다 자본주의예요 제가 마약을 판매할 때 그런 신뢰를 한번 봤어요 제가 마약을
판매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대상하게 되잖아요 북한을 때 근데 제가 참
잘한 오빠인데 그 오빠가 정말 삥들 많이 사용했어요 근데 마지막에 너무
가도하게 삥들 사용하다 보니까 자기 누나를 죽가 죽이는 걸 봤거든요 덕길로 음참 그런 북한은 그런 신뢰가
참 많지 않잖아요 근데 마지막에 저게 각성제다 보니까 음 너무 각성이 되고
잠 자지 못하고 막 이러니까 그런 중상이 나타났거든요 제가 어기 전까지 사건이 해명되지 못했어요 네 그 사건
당시에 제가 분양 19년도 이기러 왔는데요 참 그고 누나도 좋았고 그 오빠도 괜찮았는데 마지막에 이게 나가
가지고 그걸 보면서 제가 더 여기에 머리파기도 되고 또 우리 대한민국에
보니까 많은 분들이 예 정말 이게 유용업소라든가 이런 데서도 마약에 대한 마약이라는게 딱 술보다도 더 딱
마셨을 때 도파민이 활성화되면서 참 기분이하게 묘해지거든요 어 마약이라는게 저희가
그래요 우리가 맛을 딱 봐야만이 여기 어느 정도라는 것 좀 알기 때문에 마약이 깊이 그렇잖아요 우사들도
같잖아요 그런 개념으로 제가 이야기하는 건데요 덮비는 사람을 완전히 죽이는 거예요 한 빠지면 진짜
그 구렁통에서 나오기가 힘든 거거든요 지금 얘기 들어 보니까 심각하게이 약들이 다 퍼져 있는데 그래서
대한민국에 와서는 예전에는 그거를 하는 이제 생계 수단의 하나의 장사로
했지만 이제는 이거를 좀 전공을 해서 그들에게 좀이라도 이제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이 학을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죠 중독 상담 심리학과 어때요 해 보니까
어렵죠 심리학가라는게 심리가 어렵잖아요 그 중독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겠네요 중독 그렇죠 중독은 마약만
다루는게 아니다 보니까 마약이 기본이고요 우선 첫째 그리고 뭐 마약
중독이 마약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게임 중독 뭐 그다음에 전혀 북한에서
생각지 않던 술 알콜 네 그것도 다 중독에 들어가다 보니까 참 다양하게 많더라고요 그렇죠 담배 중독 뭐 다지
그런 것들 이제 다양하게 많이 배우시는군요 그렇죠 제가 아는 거 저는음 우사가 아니잖아요 우사가
아니기 때문에 배운게 없기 때문에 제가 북한에서 한 것만치 마약을 다른 그 경험 있잖아요 그 경험하고 제가
한국에 와서 좀 더 배워 가지고네 그가 같이 다양하게 복합적으로 합혀
가지고 대한민국 사회에 진짜 많은 분들이음 마약이라든가 이런 데서 지금
좀 혹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음특 20대 30대 세대에 좀 마약에 대한
이런 이미지를심 심각성을 알려주고 좀 그또 혹관 또 그런 중독이 왔다고
해도 또 가능성은 있거든요.벗어 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제가 참 더
전 우리 자유민주주의 국가 너무 좋잖아요 네 그래서 더 전 우리 민주주의 국가를 한 발짝도 다가가는데
이바지할까 싶은 마음에서 지금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멀지하는 날에 통일이 될 것 같거든요 우리 남과북이
또 우리 서망이 있잖아요 그래서 통일되면 제가 반드시 우리 고향에 가서 그 아팠던 사람들 또 모르고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한테 가서 정말 제가 여기서 배운 우리 대한민국에서
배운이 저희 지식까지 조그나와 배운 지식까지 그분들한테 가서 마약에 대한
음이 안 좋은 이미지에 대해서 정말네 알려주고네 이 정말 어떡할까요 저군나마 기하기
싶은 이런 마음에서 제가 열심히 지금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과영당에 가서 한목하고 싶어요 예 네 아유 참
또 이런 얘기는 여러분 처음 들으시죠 예 참 그래서 우리가 한 분 한 분
대한민국으로 오신 탈북민들이 너무 소중하다는 거를 이런 대목에서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그때는 몰라서 했지만 이제는 물론 뭐 그게 나쁘다는 거를
하다 보면 당연히 알겠죠 그렇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는 사회다 보니까 이제 저렇게 지금 막 정말 무한
지경까지 떨어져 버렸는데 또 우리 운이 언니가 지난 날에 삼과는 전혀
반대로 이제는 그들을 고치기 위해서 이거를 이제 전공하고 있다고 하니까
여러분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솔직한 이야기 해 줘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여러분 악플은 삼가해 주세요 제가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서 궁금한게 보통 좀 살다온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에 빠졌다고
하더라고요 좀 많이 봤어요 한국 드라마 많이 법받겠죠 북한은 전기가
잘어진 않잖아요 근데 지금은 뭐 자체를 바에 다 놓고 뭐 태양 강판을
보긴 많은데요 여자들은 좀 살기만 전쟁을 좀 많이 하잖아요 어떻게 드라마에 빠져서 막 그렇게
산다기보다는 저는 좀 덜 보느라고 많이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근데
드라마는 좀 많이 봤어요 노래도 참 우리 많이 들었고요 어떤 노래 어떤 노래 아 전 노래를 너무 부르라면
너무 그 노래를 잘 불러 가지고 뭔데요 저 아이 그 뭐 그저 그
아이고 우리 신유 가수님 있잖아요 그 신유 가수 노래를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거 같아요 아튼 신유 가심 노래는 거
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게 신유 가심 노래해 가지고 어 19년도에 북한에서
딱 모았는데 우리가 그 어디 있었던가 아 중국에서 우리가 한 달 있었는데 제가 분노래를 했던 거예요 그랬더니
어 분노래는 처음 들어본다 하더라고 불렀는데 약간 알려달라더라고요 그렇게 신가시 노래를
참 좋아했어요 왜 그니까 복시계라 시계 구노래랑 너무 마음에 와 가지고
가사가 가사가 너무 좋더라고요 어떤지 궁금해요 가사가 어떤데요 도대체 내용이 아 이게 아 후회하듯 찾아봐요
네 갑자기 물어보면 아빠 엄마도 안 생각나는 거 있잖아요 그러니게 있어요 네 많이 그랬고요
영화도 참 네 영화 어떤 거 어떤 거 봤어요 영화는 두 값수를 많이 봤던 거 같아
두 갑수 하여튼 그리고 현대 영화는 그 그분이 나오는 거 있잖아요 누구요
아 그 아구 누구더라 아 아고 현 아
무슨 더시더라 범죄 도시 범죄 도시 아 그 범죄 도시를 참 재밌게 봤어요
저 북한에서 네네 그게 중국에서 검색이 딱 터져 가지고 19년 더 열 때 야 너무 너무 재밌게 봤어요 그런
걸 보면서 무슨 생각했어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게 있어요 아 저는 무서웠어요 거짓말 안 하다 못 버틸 거예요 나는
진짜 대한민국 그런 줄 알았어요 아 한 노래는 참 좋은데 아 영화는 제가
그러니 내가 무슨 생각했는가면요 아 왜 영화하고 대한민국가 보니까 저
다르지 어 아 진짜 꼭 영화는 보고 와 진짜 대한민국 저런가 나 영화보원
대한민국 안 올 거예요 어 아 범죄 더시만 넣고 보면 그렇죠 너무 무서워요 막 청소 그 북한 사람들이
그래도 조금 수질하잖아요 막 저 웬가 북한은 눈을 가리고 있는 데라 인터넷을 다 맡고 있잖아요 솔직히
인터넷을 가만히 가만히 중국 핸드폰으로 좀 듣긴 하고 뭐진다고 해도 많이 가리고 있잖아요 아 그걸
보고는 나는 깜짝 놀랐어요 아 정말 저럴까 경제적으로 소송 장고에서 우리는 또 특히는 집 잘 살 이러다
보니까 한국 화장품도 많이 접하고 이래 나서 참 좋은 건 알아요 근데 그걸 봤을 때 너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어 진짜 저렇게 막 하는가 너무 무섭잖아요 그래서 와 진짜 두렵고
무서운 거 와 진짜 저럴 것 같은 그 제가 15년도에 중국 왔다 가보고
한국이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요 어 그래요 15년대에 어떻게 중국을 오게 됐어요 아튼 삼춘이 구에 당하고 영지
재배 재배를 하려고 그 영지보을 섬겨줄 그 박사장 만날 활용이
왔거든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있으면서 제가 참 좋다 중국이 막 이렇게 그
동거 사장이 걸더라고요 뭔 소리 하는 거하고 한국은 더 자유롭고 너무 좋다고 그래서 그때야 아 이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한국이 아니라구나 응 그때 진짜 알았어요 15년도에 어
그리고 다 투자받을 걸 약속하고 제가 다시 건너갔거든요 예 밀 몰래 도강으로 왔다가 그래 왔다가 그때
건너갔죠 보이브랑 다 말하고 끼고 왜 재배를 해야 되니까 그 중국에 사람 한 명데
갔거든요 왜가 그 사람 기술을 기본하기 때문에 기술업자를 한 명데 갔어요 더리면 다 된다는데요
북한에서도 우수워 죽겠어요 리을 근데 그게 쉽진 않아요 왜가 북한은 자유가
없는 나라잖아요 음 음 그래서 아무튼 그 사람을 데리고 제가 나가서 버이
가서 말했어요 이제부터 내가이 사람은 중국에서 같이 나온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 나올 때 요건 없이 불법을 나왔잖아요 내가 데리고 나오던 사람이니까 근데이 사람을 보호해 줘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제부터 영지보소을 시작하게 되면 내가 나올 때 좀 어느 정도 가슴 나왔거든요
농천 자재라고 있어요 우린데 농천자재 사업서에 다가 이제부터 여기다가 꾸릴 것이다 영지보 할 수 있는 기지
거기서 이미 영지보 하던 사람 있었어요 저구라고 이 사람하고 같이 할 거니까 해달라는 거 다 이렇게
손을 밟아 놨어요 근데 만약 이게 성공이 되면 우리 사군 쪽으로도 대단한 이미지 대단한 성과거든요 큰
성과였어요 참나무 토달에서 나와요 참나무 우리가 용지보섯이라는 건
자연에서 나올 때는 북한에서는 분비나무에서 나오는데 아시죠 분비나무 근데 우리가 재배할 때는 참나무에서
나오거든요 그 참나무를 몇십 립방 사드렸어요 사지고 다 딱딱 잘라야 되거든요 꼭 다육을 샀죠
다딱 잘라서 또 고압 감아에 들어갔다 나와야 돼요 참나무 번균이 없어야
되거든요 구리야 제 벗 영지 균을 접종해 가지고 거기서 제 균을 키울
수 있는 거예요 그걸 이제 중국에 와서 기술을 배웠군요 네 배우고 저는 기초적인 것밖에 모르고 기본
기술자는이 사람이었던 거예요 같이 나온 사람 예 그리고 뭐든 투자는 그때 그 박동훈
사장한테 우리 바라 가족 나왔거든요 돈 액상 다 가족왔고 여기에서 또 영집 사는 박 그 성글한 사람이
있어서 같이 우리 하기를 했어요 그래서 투자는 중국에서 받고 이제 생산에서 넘겨 주기로 했구나 우리는
포자만 넘겨 주면 돼 영을 아니에요 여기에서 영지 재배 영지는 반드시
포자를 주게 됐어요 포자라는게 그니까 자연사는 버섯을 쏘잖아요 근데 재배
용제는 버섯을 안 써요 재배 용지는 이렇게 버섯다가 포자를 앉혀야 돼요
버섯 균음 균을 앉혀야 되거든요 그 균을 채해 가지고 그 균을 분말
가루거든요 그 분말을 우리가 넘겨야 돼 그 분말이 자연산하고 똑같은 성물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음 음
절대로 버섯이 아니거든요 그니까 국 기술인 거예요 근데 국단 말이에요
근데 왜 어렵지보스라 놈이 해봤는데 얼마나 교활하고 여군지 아 이렇게 우리가
숨을 주잖아요 숨을 줄 때도 이렇게 뭐 이런 데다 물 주듯이 이렇게 막 뿌려 주는게 아니에요 안개비 안개라는
안개비 알하죠 안개비를 형성해 가지고 숲을 흡수하게 만들어야 돼요 아 어렵네 네네 그런데 오늘 한
부분이라도 물방거리 묘하게 딱 떨어졌잖아 국기는 혹이 탁 생긴다던가 벌써 어 완전히 망친 거예요 그니까
안개비를 똑같이 형성해 가지고 흡수하게 만들어야 되는 그렇게 묘한 그런 영지보 소식이 그만한 가격이
있는 거예요 아 한국에서도 비싸죠 영지보시 어 네 근데 제가 재배해 봐서 알아요 아무튼요 그렇게 제가
그걸 하면서 뭐 힘든가면요 우리가 그 받을 때마다 삼장 삼장 쪽 있잖아요
나가거든요 나갈 때마다 보이브가 따라다니는 거 있잖아요 무슨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매번
할 때마다 전기 중국 전화로 해야 되잖아요 우리 전화는 할 수 없으니까 북한 전화로는요 인터리 막아나
[음악] 가야 보름고 보해부 따라다녀요 아 화장실
내놓고 진짜 북한에서 변설하잖아요 그 내놓고 다 따라다니는 거 있잖아요.이 대제도 안 되겠는 거 시간을 막
맞아야 되잖아요 차아 있어요 북한 자가형이 없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제 시간에 가서 박사장이 왔다 빨리
나오라 하면 제 시간에 가서 우리가 한 일곱 번 여섯 번 그 정도에서 한 두 번이나 제 시간 가서 만났나
다치는 거예요 박사장도 바쁜 사람이거든요 밑 만났어요 어 제가 18년도까지
하다가 너무 막 마지막에 이게 다 나가더라고요 아 너무 스트레스 받아가 스트레스 받는 정도가 밑떨이 다 물
막 그렇게 되는 거 있잖아요 엄청 노력을 없어지죠 없어지고 그 숱한 노력을 썼잖아요 나무 샀지 너
설치했지 그 북한에서 상상도 안 되는 일이죠 여기서 회사 하나 차리는거나 같은 건데 그렇죠 토다리고 다 자를
때마다 막 이게 사람이 막 미쳐 돌더라고요 그 무슨 생각이 딱 들던가면요
15년도에 아이고 내가 15년도에 박사장이 그렇게 말리는 걸 바로 비기 타고
한국가라는 걸 내가 왜 여기로 왔지 이놈이 나라 진짜 믿지 믿지 못하겠다 이놈이 나라 진짜 자유가 없다 내가
진짜 이제 너무 믿고 살아야 되지 노력해도 안 되니까.어야 너무 막 막
진짜 마지막에는 막 남는게 없더라고요 음 음 야 나 이내 진짜 미래가
있을까 나는 이렇게 살다 치고 미래가 있을까 우리 수양이는 어떻게 살아야 되지 나를 진짜 앞이 안 보이는 거 있잖아요 진짜 어떻게 살아야 되지
진짜 없어요 국한내 거짓말 아니하는데 자연 너무 뜯어서 없어요 없어요 진짜
무상강산도 이제 어느 정도 돌아갈까요 군도 같아 괜히 군도 다 생각했는데 군갱도 있잖아 군갱 예 북한은
마구잡이 어느 정도 마구잡인지 알아요 응 대형단 옥천 쪽이랑 그다음에 저
대형단 쪽을 쭉 가면 둘 중이 많이 나는데 알죠 서두 뭐 서두부터암 유혹 유 유억이 제 많이
나잖아요 저 6억에 주하고 있었거든요 6억적에네 둘쭉 열매가 있거든요 네 둘 둘 수출하는 거예요 백수단 밑에
음 음 거기 잠지원 저 뭐야 수키부대라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수키부대가 또 제가 18년도까지 우리
집에 와 있었거든요 그니까 18년도 네 군인도는 김정훈이 현지도한
단위에요 김정은이 김정훈이 현지도 한 아이들 기념청 촬영까지 한 아이들이면
북한에서 짱이잖아요 누구도 먹고 누려요 그니까 만지 왕 나가요 그 둘쪽에 딱 가면 저 전 저 간를 끼고
하거든요 그러면 끼고 제가 둘쭉 걷는다 내가 둘쭉을 싼다 하면 간네가
완전히 전 간악하고 있는 거예요 그 둘천에 둘 쪽을 걷둬 가지고 제가
말하기 싶은 거는 마그사 북한이 지금 그런 상황이다 말하자는 거예요 자처림 저시까지 와요 어는데 어쨌든 그
한쪽을 영지보서만 하는게 아니고 영지보서는 그 거 감아서 째내고 저는 도만 투자하면 그 선구란 사람이
하거든요 선구하고 중국에서 나온 사람이 그럼 저는 또 영집 그 둘쪽에 둘쪽 맞차하고 또 들어와요 그럼 자술
우리 또 자시만거든요 그럼 그 군대들도 과세가 떨어져요 뭐 평민 뭐
인민 그리고 뭐 간부들만 있는게 아니고 군대들도 있거든요 꿈이 있어요 너희들도 나가서 보리해라 보리처럼
보리하라고 내보내거든요 그 그 사람들도 보리를 해야 되기 때문에 둘철 둘 쭉 벌어야 되지 그 자철리
또 자주 불어야 되기 때문에 내가 또 들어와요 우리들 그러면 저는 이미 전에 한날 그렇게 마구잡이에요 어디에
자 열렸다 하면 그 사는 제가 장악가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군대들을 7월 달부터 지키게 하거든요 7
8월부터 그 8일로 딱 지나면 내 선이에요 8일부터 8일로 딱 되면
자손 뜯거든요 군대들도 두들 수 있고 이렇게 던 사람은 돈부터 음 자돈을
놀기 시작해요 자실 내에서 가을에 1,000원 1500원 한다 하면 한 300원부터 늘어 주게 되겠 그러면
더 넣는 사람들 많잖아요 북한이 지금 국가 차이예요 나라에서 돌봐 주니까
괜히 개인을 돌보는데 어 여기에서 말하자면 부자가 가난한 사람 돌보는 격이 되죠 나라에서 안 들보니까
복지라는게 없잖아요 북한은 300원짜리 돈을 막 꺼 주는 거예요 그럼 그 사람들이 너 자철에 와서 내
산에 와 자 뜯어야 돼 그러겠다 하는 거예요 그럼 자철에 다 그니까 노동력에 돈을 미리 당겼는 거예요
당겨줬죠 할뻔한데도 300원짜리 갖다 쓰는 거예요 한성에 그렇게 하거든요 자
그다음 내 산에 데리고 와서 그 사람들이 막 자두게 해서 내 돈 순한지 먼저 300원짜리 지금 자식
분명 1500원 해요 한 성치 그렇지만 300원짜리를 천성인 천성이 지하고 나머지를 계산해 주거든요 그리고 그 군대들 군대들로 그 산을
지켜 왜냐가면 먹고 살기 위해 전쟁이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한 다음에 또 군대들은 못 하는 줄 알아요 자주
다 가지고 집에 내려오잖아요 내려와 가지고 그다음에 이제부터 그 군대는 강도예요 어떤 강도를 치는가면요 낮에
수차해요 오느 창고 자시 들어가나 오는 집 봐요 아 저 집이 자식
들어가는구나 봐요 밤이면 그 군대 가고 그다 마지막 강돌로 보내서 동합 딱 하고 나가죠 12시 정도나가면 한
2시 3시에 들어오거든요 뭐 자고 틀었다 하면 벌써 밤 중에 한 20마대 들어와요 20무 자로 알죠
사건을 못한 날에는 집을 들어가거든요 북한이 16년도에 수해 났다고 했잖아요 내가 아파트 다 건설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아파트 올라가거든요 아파트라는게 아야트 그 강도지랄가 너무 좋아요 딱 문 열고 들어가면
구무만 딱 떼면 소리가 안 들리거든요 완전 강금 자치가 너무 잘 돼 가지고 집을 또 엄청 크게 지어나 가지고
그래가 점 먹어 가지고 군대들 들어가요 그리고 얼굴 딱 봉화박 들어가서 손나 그다음에 액전이라
하거든요 액전 TV라고 그거하고 뭐 자전거면 자전거 딱 들고 나와요 버리치기만 하면 죽지요 뭐
완전 강도들이시요 그래요 그게 다 삼지 군 뭐야 스키대 아이들이거든요
군대돌들이 그 마구사예요 진짜 무섭죠 아 세상에
그렇게 못 하면 죽어요 음 그렇게 못 사는 사람 죽어요 꽃째들도 그렇게 살아요 이제는 북한에서 밥 빌어 먹는
꽃제이 없어요 훔쳐 먹어요 아니 훔쳐 다 먹어 간네전 그렇게 안 살아요 간네전은 이렇게 막 주세요 주세요
하고 훔쳐 먹는 꽃재비가 아니고요 간네전 딱 그이 여기만 조폭처럼 저직이 딱 있거든요 가지고 내가 왜
잘 아는가 하면요 제가 북한에 살던 우리 남편이 군간이었어요 군간이었는데 군간하다가 제대되니까 농천 자재 비례
인수로 배치받았거든요 그니까 비료 인수원이면 연사군에서 쏘는 비료를
하에서부터 연사군까지 직인으로 그 매백턴이 된 비료를 혼자 쫙 꾸 꾸고
와요 그 비로를 쭉 끌고 오는데 그 꽃제이 아이들이 이제 단체로 차가 딱
와 서면 차가 개정이 착되잖아요 북한 종기가 안 오니까 딱 서면 간혜가 무리로 달려들거든요 지시에 따라서
행동하거든요 뭐 땅해요 간해를 비어만 그렇게 하는 줄 알아요 비어 떨구거든요 떨그고
탄도 그렇게 해요 꽃비 밥어 먹는 꽃비가 아니에요 심어 전기도 같아요
대학실에 사람들이 앉아 있잖아요 아 저 사람 저 여자가 돈일 있을 것 같다라면 전기도 역전 대압실 전기를
턴 거 딱 꾸게 해요 꾸거든요 그리고 그 짐을 딱 꺾고서는 전기 딱 캐고 이래요 엄마 어떡하면 저을까 마족되네
어 맞대요 그 살기 위해서 어 살기 위해서 간네들은 딱 그렇게 움직여요 여기다 딱 초청아 딱 쌍 딱 모시고
꽃비지 뭐 알아봐요 양복 딱 여기다 쌍사가 딱 모시고 그지금 언니가 2019년도에 오셨거든요 그러니까
가장 최근의 얘기라고 볼 수가 있는데 똑같죠 지금도 똑같아요
조금 걱정이 되는게 뭐냐면 어 오히려 이런 좀 무서운 얘기들을 들으면
통일이 안 되는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어 어떤 분들은 이런 얘기 하더라고요 어차피 통일은 돼야 돼요 안 그러면 중국에 우리 저 한반도땅 북한이
넘어가는 거잖아요 전 이런 얘기가 되게 공감이 되더라고요 통일이 딱 됐을 때 갑자기 문을 여는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법적인 시스템이 어느 정도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 주민들이 개몽이 되고 법적인 제도와의 좀
적응이 되고 인식 개변이 되고 인성이 좀 변화되고 이렇게 했을 때 조금씩
왕내를 해야 된다라고 어 그런 강연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공감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 구독자분들도 야 저런 나라랑 어떻게 통일을 할 수가 있냐 이렇게 좀
걱정을 하실 거 같아요 그래서 이런 진설한 얘기들을 통해서 우리가 그런
정말 더 나은 통일의 미래를 이렇게 고민해 나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또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야 정말 마구제비로 도망가졌네요 2008년에 내가 나올 때랑은
예 그러면은 그 중국에 이제 영지보서 때문에 넘어왔을 때 박사장님이 한국
비행기 태워줬다니까 갈아했다고 했는데 안 왔다 그랬잖아요 그러다가 그때가
2015년이에요 그럼 2019년도에 한국을 왔는데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 용지보소를 하면서 그게 망하게 되고
망한 거 망한 건 아니에요 거기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거죠 삼장에 한 번씩 갈 때마다 보이부
같이 따라다니지 음번을 만나러 갔는데네 번을 넣치고 두 번을 만나다 보니까
제때에 받아야 되거든요 제때 넘기고 근데 거기 제대에 못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이게 될 수가 있어요 망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힘들고하더라고요 이게 딱 그다음에
삼춘 생각이 막 연결되더라고요 어머니 생각 이렇게 하다 보면 앞이 없겠다
믿을게 뭐 있을까 왜 이렇게 그니까이 나라론 내가 이렇게 할 필요도 없겠다 대체 미래가 있을까 내 노력조차도
아깝다 미래가 있을까 그냥 그 무슨 생각이 들던가면요 어머니는 집에 갔는데 저희 어머니가 개도 키우고
돼지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도끼도 키 키워요 어머니가 돼지옥 줄하더라고요 그 돼지 우리 친정 어머니 그 돼지
들고 나와서 들고 나와서 두루 쏟아주고 소리 가만히 보니까 돼지 쿠크 먹더라고요 자기 목더니
자더라고요 한참 생각해 보니까 그 대신거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있잖아요 저 돼지하고 내가 갔다 삶이
어 어 아 곧 나도 먹고만 자고 나도 저렇게 살려는 건가 먹고 안 주면 어
그냥 저렇게 살려는 건가 대체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하늘에 나는 비행기도
타 볼 수 없고 어 내가 그때 중국에 왔을 때 15년도에 바로 비행기 타고 한국 가라는 생각이 지금 쟁한 거예요
지금 북한도 엄청 많은 돈 딜이면 평양에서 삼진원 삼진에서 평양 비행기
누구 타고 다닐 수 있어요 그래요 당연하죠 난 진짜 케인이 근데 개인이
당연하죠 근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알아요 야 일반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책임도 그걸 못 하요
오마무시한 중국 평양에서도 진짜 더 많은 아마 몇 천 달러는 뿌려야 아마
그 비행기를 탈 거예요 난 미치겠다 그렇게 괜히 더 많아요 진짜로요 그니까 나라의 운행에는 국가에 돈이
없어도 개인 좀 돈 많아요 그리 괜히 타고 왔다 갔다 해요 응 개인용을
있어요 평양의 삼원까지 그래서 그걸 보면 내가 무슨 생각이 딱 들던가면요 아 이거는 오는 정도가 돼야 비행기를
타고 하늘 날아볼 수 있을까 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럼 자가형도 없다 차로 일생에 한번 태어나 자도
한 번도 할 수 없다 드라마를 보면 참 차들은 괜용차를 많이 왔다 갔다
다니던데 아 이거는 북상이야 자존거 얻어 봐 야 이건 너무 불쌍한 거
아닌가 딱 돼지하고 내가 똑같은 거 있잖아요 자전거랑 오도바이 있어도 부잔데 예 그것도 별로 타고다네요
기값이 한 별인데 너무너무 비싸는데 수제 안 맞죠 어떻게 5만 원짜리 김이고 다녀요 그거 말도 안 되죠
너무 말이 안 되는 거 있잖아요 그래서 안 다니죠 그러니까 자주거 타고 다니지 그래서 이게 진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이게 사람이 뭘 보고 살아야 되나 점점 이게 먹고만 살아야 되거나 그서 어지간나 눈만 뜨면 먹는
전세 음 야 이게 진짜 대지하고 내가 똑같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이
그래서 옷을 돼지가 안 입었을 뿐이지 내가 돼지하고 다른게 옷만 입었을 뿐인 거예요 가하고 적체성하고 내
정체성이 똑같은 거 있잖아요 너무 똑같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더 완전히
모래가 확 덜더라고 음 안 되겠다 나는 가기 위해서 이제부터 노력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그게 아마도 18년 동안 18년도부터 굳혀지더라고요 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다음 그때부터 그다음에
이야기했죠 음내 친구 한명 같 그래요 역시 탈북은 친구가 있어야 돼요 저도
친구랑 왔거든요 그러니까요 그 친구는 한번 저에 한번 여기로 왔던 친구예요 한국을 아니고 중국을 그래서 어 맛을
먼저 일차적으로 바꾸서 친구한테 이야기했죠 응 가사 그랬더니
친구가 자기 앞 놓아 보겠다더라고.이 한국 쪽에 있대요 한국 친구가 그래
가지고 손 놓고 마음 나가 마음 아무튼 가려고 마음 먹었죠 그다음 가족들한테 이야기했죠 당당하게 갈
곳이다 근데 저는 딸이 있었어요 그 당시 딸이 살
지금살인데 아홉살 지금 초등학교 다니고 있는데 우리 딸한테 이야기했죠 엄마 하흥이에 장사할 거다.음
그러니까 엄마 전화 자주 할 거야 그럼 전화 자주 할 거니까 걱정하지만 엄마 하 장사 갖다 인차 올 거라고
그리고 어머니들한테 솔직하게 말했죠 어머니한테 나 한국 갈 거다 뭐 일로
한국 간다고 막 갈고 가서 내가 토 잡고 다 데로 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음 더군다나 우리 할 때는 완전히 연선이 고압전기 다 후르지 뭐
어마무시 고합기 다 설치했어요 그죠 어 지금은 어마 옛날하고 달라요 말할
수가 없죠 어 내가 15번대 건너갈 때도 그랬는데 뭐 어마아 그때 국경 다 끼고 넘어갔다 왔다 하는 것도
엄청 많은 걸 주고 넘어갔다 왔다 하는 것도 이번에도 같죠 음 그래서 그 친구 따라서 이제 두만 강을 넘고
가족들한테 어느 정도 동의를 받고 딸한테는 하문 간다고 그렇 하문 간다고 왔죠 야 딸을 놓고 올 때
마음이 정말 아팠겠어요 진짜 너무 안 보이 너무 앞이 안 보이죠 마음이 아프죠 음 근데 괜히 또 같이
떠났다가 위험에 빠질까 봐 무서워서 맞아 이게 지금 김정은 시대에 전 어지 않았어요 근데 벌리는 순간인
나는 뭐 내 목숨 괜찮잖아요 근데 우리 딸까지 그렇게 할 순 없잖아요 그리고 한국은 제가 처음이라 내가
한국이와 살아보지도 못했고 한국인 아무도 없잖아요 설마 자은 할아버지 줄 알았겠어요 몰랐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한국은 처음이라 내가 와서 내가 토잡고 우리 가족 다 데리가리라고 만
먹고 내가 떠난 길이라 정말 딸을 데려갈 순 없었죠 음 그러니깐요 분양
넘어왔죠 예 예 그래서 2019년 몇 월에 출발을 했어요 1월 달에 출발했죠 어 그래도 두만 강은 꽁꽁
얼었을 때네 좀 그래도 약간 안 어울고 뭐 이럴 때 출발했죠 우리가
다섯 명이 왔어요 네 다섯 명이 왔는데 아 그 북한에서부터 응 다
한국행이요?네 한국으로 바로 그니까 그 이제 브로커들이 다 모집을 해서 같이 옮기고 아네 그게 누가
아는가면요 지금 남자분이 하나 있었어요 그니까 우리 같은 고향내기죠.음
그분이이랑 다섯 명을 끌었어요 그러니까 그분은 이미 전에 탈북 그니까 중국을 많이 왕내를 다닌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다섯 명을 끌 수 있었던 거죠
저는 제가 넘을 때는 이미 제가 경비대 같이 움직였던 거라 그렇게
간다니까 못 가겠더라고요 그럼 다섯 명이면 나는 안 가겠다 못 가겠다 그랬더니 괜찮다는 거예요 또 그 남자
또 우리 저보다도 팔이 어린 남자다 보니까 못 믿겠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다섯 명이 움직였는데 고합 전기
부르는 건데 고합 전기를 꼭딱 설비를 몸다 차고 와서 딱 자르더라고요
독일 장비들이 독일 장비들이 들어왔다고 우리가 들었거든요 손마다 독일 장비들이 북 돌아가면서 잤기
때문에 진짜 웬만하지 않으면 너무너무 무섭거든요 그 무산 쪽이에요 무산
삼장하고 무산 사이였거든요 아 나도 그쪽으로 맞아 그런데 고기를 몽딱
자르는데 인간은 배장이 없이는 걸 무서워서 그 사람 영웅이네 네 원래
중국을 원래 다녔던 사람이라고 다섯 명 이런 왜 그니까 두 세 명이 또 괜찮아 다섯 명이잖아요 그 순 여자만
어 그래서 이거는 너무 굿대 떨렸던 생각 지금도 안 익혀져요 너무너무
굳대서 떨리던 생각 야 막 죽을 것 같던 생각도 안지거든 여분다나 김종은 씨 때 권리민 정치법 수용서 바로
가야 되잖아요 다 짜른 상태에서 막 넘은 거죠 아마 그 후에는 아마 크게 일이 번졌겠죠
음 넘어갔음 여기 바로 넘어왔는데요 뭐 아 그
브로크도 왔어요 왔어요 야 그분 좀 초대해야 되겠네네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래 가지고 우리가 넘어왔어요 넘어와 가지고 중국 산에 우리가 한 일주일인가 한
주일인가 이러고 있었어요 바로 그 이게 중국에 여기에 있는 친구 그 여기에 있는 친구하고 저희 친구가
바로 가까운 친구였던 거예요 그다음에 이제부터 우리 친구가 활동하는 거죠 우리 친구가 바로 전화했어 우리 얼때
중국 전화 갖고 왔거든요 그 전화해 가지고 한국에다 연결했죠 그게 바로 안디역 교회 그니까 전조 안디옥
교회에서 연결이 돼 가지고 저희를 데려온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첫 은혜였죠 그
당시는 근데 우리가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알아요 솔직한 말로 젠 처음에 우리가 교회를 접하지 않으려고
어떤 일이 있었는가 뭐예요 그전에 산속에 지금 있는데 문제는 돈는 있었어요 문제는 산속이 깊은 곳에
있다 보니까 먹을게 다 떨어진 거예요 우리 얼 때 빵도 가지고 오고 뭐 갖고 왔는데 지금 다 떨어진 거예요
빨리 중국집 어디 인가에 가서 돈 주고 사야 되는데 어디를 지금인가를 지금 찾아가야 되는데 못 가고 있는
거예요 주문에 돈는 있는데 어떻게 지금 찾아 나가야 되는데 남자분이 그러더라고요 브로커 응 부럽고가 여기
바로 내려가면 십자가가 고려진 교회가 있다 근데이 교회가 한국 교회다
여기에 바로 내려가면 한국을 바로 갈 수 있다 우리가 산에서 이렇게 고생 안 해도 된다 북한에서선 교회를
뭐라고 하죠 북관에서 교회를 악마했잖아요 맞아요 19년도까지도 그렇게
선교사들은 그냥 이게 사람 죽이고 맞아요 아 나 진짜 정 반대로 굳지서
지들이 하면서 쌍하 우리 어떻게 생각했는가면요 간첩을 가면 안 된다 저기에서 우리 이제 간첩 근데 자기는
들어가 봤대요 이제 그 불러고는 자기는 왔다 갔다 하면서 저기 들어가면 던두도 주고 그리고 이렇게
성경책을 주는데 거기서 교억을 받아 가지고 돈 받아 가지고 북한이 다시 오고 했대요 그러면 저기 가면 한국에
보내 주니까 저기 가자는 거예요 근데 부어진 거 있잖아요 저기 가면 안 된다 우리를 다시 그래서 결국을 시켜
가지고 북한 보낼 수 있다 가자 안 가자 하고 딱 갈린 거 있잖아요.네 명 다 안 간다 못 간다 그래서
십자가를 피했거든요 나 보니까 십자가 이렇게 또 구려진 교회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거기 뱅뱅해 가지고 산을
고생하면서 애들한 가가지고 애들한테 산속에서 더 고생했죠 그래가지고 전화가
연결돼가지고 했다는게 이제 저 친구가심이라 아이가 연결이 된 거예요 친구가 연결돼 가지고 이제 전 보내
준게 바로 또 전주 안돼 교회인지도 몰랐어요 바로 우리를 태우고 왔는데 태워 와서 지금 중국 있잖아요
심양이라는 곳에 와서 딱 뒤에 보내더라고 여기 이제 여기서 이제 바로 이제 태우 가면 된다더라고요 딱
들어왔는데 깜짝 놀랐어요 딱 들어서 십자가 구다이 딱 구려져 있고 그 밑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요
부활이요 생명이요 부활이라는 건 뭐지 살았다는 소 죽은 사람 살았다는 말 아닌가 이게 뭐야 우리 진짜 잘못한
그다음에는 심장이 다 내려앉는 거지 나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죽은 것
같길이 딸려 없더라고요 죽었구나 이거 무슨 십자가를 피어나
너는 십자가를 찾아왔네 와 나 진짜 근데 내뿐이 아닌 거예요 다섯 명이 멍땅 다 죽은 줄 알았죠 어 이건 뭐
진짜 죽으라온 것 같더라고요 다 십자가 구려져 있는데 구미된도 생명이요 부활이요 아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지 막 어 막 무섭다는 건 말할 수도 없고 덜덜돌덜덜 막 말도 안 나가는데 떨린다는 거 말할 수가
없죠 생각해 봐요 그렇지 잘못된 교육이 이렇게 무서운 거 어제까지도
지금 아휴 국익 부도져 가지고 블랙북한 사람들 말을 이게 원래 못 하잖아요 자유롭게 무섭고 떨리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막 떨려요 근데 그 당시 우리가 거기 다 직행이잖아요 누가 하나 지금 뭐
자본주의를 맛본 사람 없거든요 거기 지금 덜돌 다 떨려 있는데 그
딱 나오더라고 선교사라도 하더라고요 한국에서 온 선교사님 말부터 또 다르잖아요 한국뿐이다 우리는 한국
사람 또 직접 만났네 완전히 북한 사람이 들다 보니까 말투도 완전히 오양이 안녕하십니까
이렇고 안녕하십니까 하는데 구원은 안녕하세요 어구 어진나 수가 많으셨어요 이는데 안녕하십니까 완전히
만 여자분인데 전혀 차월이 다른 거 있잖아요 하십니까 하는 것도 말 우리를
잡아먹을 것 같고 막 무서운 거 있잖아요 난 이체도 안지는게 있어요 거기서 옷을 갈아입었는데 야 왜 어제
다 짜진바지를 줘요 총바지를어 한국 한국 사람이나 해요 한놈들이 진짜 우리 북한에서 왔다더니 거짓처럼 안
해 응북에서이지 못봤는데 야 완 거짓 말고 빠지네 내가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우리 친구가 앉아 있던게 그래 중국에 살아봤거든요 야 이건 브레드야 브레두
브레드란 말 브랜드란 말 안 쓰고 북한에서는 품미야 기성복이야 기성복
뭐라고 째진게 기성이야 야 이거 무슨 그런 소리 그뭐 멍성한 거 갖다 째기면 기성이겠다고 그랬거든요 아니
야 이런 건 다 정말 거짓말 아니야 진짜야 그 친구 좀 낫네 그래도
중국에서 6년인가 잘하는데 깜짝 놀래 참 기송이 될 것도 없다
명품이 될 것도 없다 째바지 명품이라 이초도 앉아요 아무튼 근데 오자마자
우리한테 그 성경책부터 교육하더라고요 이해가 돼요 이해가 안 되죠 하나도
야 이거 무슨 막말 북한식으로 말한다면 살면 초대가리 갖다 놓고 진짜 뭐 막 진짜 그러니까 소 귀의
경일기지 아 그거 더 말한 거 말할 것도 없고 진짜 막 말하 아야 말할 수가 없는
편을 어떻게 표현할지 여기서 우리 교을 해 가지고 우리 그냥 폭성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 그래야 정역책이 벌써 나올 수가 없다 저기 왜 나오지 그리고 저게 무슨 말이야 저기 말이 통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자 주체상 공급만 확실하게 하던 사람들이 전혀 이거 안
두는 거 있잖아요 안 들어가고 있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안 되겠다 도망치자고 이렇게 했죠 음.이
도망치려고 다 작도했어요 어떻게 이분이 장마당의 시장에 뭐
살러나갈 때 도망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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