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영 풀영상 2부] 숨막히는 대가족의 탈북상황… 어린아이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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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08 views Sep 2, 2024 #강은정 #강사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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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정#한국#가족#가수#강사#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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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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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kl6yv
6 months ago (edited)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현영선생님의 눈물과 감동의 이야기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사출신으로서 다 죽어가던 남편을 살린,
방법을 묻는 분들이 계신데요.
혹시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힘이 될까하여 한현영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올려드립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한현영 010-8578-755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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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elee3260
7 months ago
훌륭 하신분을 알게되어 행복했습니다.한반도에 사는 우리 한국인이 이토록 긍정적이고 지혜로운분들이 많아 반드시 통일이 될겁니다.함께 힘을 모아 그날을 위해 갑시다.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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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ko373
7 months ago
훌륭한 분이시네요~ 타인을 배려하고 긍적적이며 선한마음에 존경을 표합니다 사회 선한영향력을 전달하는 좋은 영상입니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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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디-z2y
7 months ago
어쩜이렇게도 말씀을 이쁘게하시는지 감동감동입니다!!! 지적매력이 충만하시네요. 우리하나님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실것입니다. 남편분과 건강하게 오래오래행복하세요! 일본에서도 응원합니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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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혜-l4b4p
7 months ago
두분 늦게 만난만큼 더더욱 행복하게 사시고
축복받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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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유조
7 months ago
의사출신이라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네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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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선-j6n
7 months ago
선생님 말씀 한마디 한마다가 감동입니다 넘 감사 드립니다 늘 햄복하세요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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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옥-c3q
7 months ago
참 훌륭하신 분이네요 어쩜 말씀도 잘하고 지식도 풍부하고 사람을 살리시는 분이네요 하나님이 함께하는 귀한 분어네요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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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kreon
7 months ago
한현영님 정말대단하십니다
정말 훌륭하시네요
정말 존경합니다
말씀도 넘 잘하시네요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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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j2o
6 months ago
훌륭하십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열열히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은혜많이 받으시길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가족모두 대한민국에서 만나 새삶을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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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진-o1k
7 months ago
두분 너무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주옥같은 말씀 감동이고 존경스럽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시는 훌륭한 분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할께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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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나라-b6q
7 months ago
"우리는 하나다"
걸어서 금강산 ~~~~
걸어서 평양 ~~~~
걸어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그 날을
위하여 ~~~~
남녘과 북녘이 하나가 되고
휴전선이 붕괴되어 자유통일대한민국이
되는 그 날까지
강은정님 화이팅
☆한민족은 하나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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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자-d8g
7 months ago
귀한 남편의 생명(개인)을 살리신 훌륭한 의사 이시고,
시댁의 가정을 건강하게 이끄신 홈 닥터이시고,
유튜브를 통해 이런 소식을 전함이 풍요로 인해 사회적 비만을 앓고 있는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고쳐주시는 ~
개인 생명의 의사시요
가정을 케어 하시는 의사시요
풍요로 비만증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반듯하게 고쳐내시는 사회적 선한 의사이십니다.
존경합니다.
통일을 위한 귀한 사역 하시리라 믿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언제나 밝으신 은정님 가정도
건강하고 행복 하세요 ~
응원합니다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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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숙-v8e
7 months ago
나만듣기아까워서 손으로 선교많이하고있어요 강은정티브화이팅 너무훌륭하신분 인격이되신분 말씀에눈물이나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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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근-z5p
7 months ago
너무너무감사해요.눈물이나네요.우리나라에오셔셔열심히살고감사하는마음이와돟네요.건강하세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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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장-e2w
7 months ago
저도 많이 돌아봐지네요 저는 남편많이 무시한것같아요 서로 위하면서 사신모습 너무 보기좋네요 귀감이 됩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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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syyy1226
7 months ago
진짜 능력부자시네요~~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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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이-j6h
7 months ago
현영님 ㆍ참으로 품성이 아름답고 멘트 하나하나가 지적이며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셨을 그런 분이었을건데 참으로 아쉬웁네요ㆍ남편분의 사연 듣고 너무 화가나고 소름 돋았네요ㆍ현영님 말씀처럼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상상이 안되네요 ㆍ시아버님의 강인한 마음과 현명한 판단으로 온 가족분들이 자유의 품으로 오신거 너무 너무 축하드리며 무한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ㆍ현영님 아픔도 있겠지만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며 꾸밈없이 웃으주시는 모습에 저도 같이 웃었답니다ㆍ정말 가슴 아프면서도 현영님 말씀 하나하나에 저도 같이 감사했읍니다ㆍ시댁분들의 행복과 특히 그토록 이뻐하시는 남편분의 무한한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바랍니다ㆍ그리고 현영님께도 북에 남아 있는 다른 가족들의 좋은 소식이 와 닿기를 기원합니다ㆍ은정씨 방송 너무 좋읍니다ㆍ전 요즘 낮과 밤이 바뀌었답니다 ㆍ은정씨 체널 보느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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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철-f5q
7 months ago
누구나 맘은 있어도
하기 힘든 자기 희생을 하셨네요
고생한 보람이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지길 빕니다
타의 모범
사회의 모범
가정의 어머님. 나라의 어머님이십니다
늘 행복하세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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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r8165
7 months ago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나님이 남편분과 현영님을 정말 사랑하시나봅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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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요 오라 나 여기 새로운 보더니 나 집 내놓라이 나라는 사람이 살 세상은
아니다 아 가다가 죽어도 좋고 가서 죽어도 좋으니 여기서 더는 있을
나라가 아니다 거기서는 때리다가이 사람 죽어도 책임 안아 그렇지 근데
우리 신랑이 뭔 죄를 지었는데 선생님 아 이야기 너무 잘
들었습니다네 감사합니다 예 댓꿀 진짜 장난 아니에요 아 그래요 저
보셨어요 예 짬짬히 보느라고 하고 있어요 예 예 원래 자기 영상은
쑥스러워서 잘 못 보는게 맞 맞아 너무 쑥스러워요네 진짜 진실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저는 여기서 궁금한게 있어요 아 우리 선생님 진짜 마음이
푸곤 하시거든요 죄송하지만 혼자 계신가요 혹시 결혼 안 하셨어요 여기
하셔서 아 얼마 전에 했죠 아 그래요 오 잘됐다
지할 사람 있으면 좋죠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거예요네 저희 신랑은 북한
분이세요 예요 잘 됐어요 저희 개인 스토리인데
예 비밀입니다 아 어떻게 하지 아무튼에 제가 그음 한국에 이렇게
홀러 와 가지고 쭉 이렇게 열심히 정착하려고 애쓰고 또 배우고 어
이렇게 하는데 이제 결혼에 대해서음 어 생을 안해본 건
아니죠 좋고 훌륭한 분을 만나고 싶었어요 제가 어떤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냐면 제가 하는 사업에서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이제 안정적으로 되면
그때 가서 결혼을 할까 이렇게 하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계속 살았어요 예예 그랬는데 제가 어떤 일이 있었냐면 사실 제가 크게
막 앓고 그런 스타일은 에요 근데 어느 날 일을 하는데 제가 과로하게
일을 하다 보니 몸살 져서 눕게 됐어요 예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다 잘 알 거예요 이게 좀 심한 병이라 그가 몸에 어떤 저항성이 무너졌을 때 낮에보면 많이 아파요 예
그래서 몸살 져서 누웠는데 너무 힘들고 너무 아픈 거예요 그런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거기에다가 다 고열이 나고 그런 상황 가운데 있었는데 저는
사실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 막 기도했죠 아 하나님 저처럼 이렇게 혼자 와서
고생하시는 분들에 대해서 너무 이렇게 모르고 살았던 거 같다 제가 앓고 일어나서 꼭 저처럼 이렇게 혼자 있는
분들에 대해서 많이 관심하고 왜 그런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예 그러면서 거게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하나님 하면서 살짝 이제 응석을 부렸어요 하나님 저
어 저랑 같이 교회 갈 어 친구도 좋고 애인도 좋고 남편도 좋으니
교회갈 친구 보내 주세요 하면서 계속 그걸 반복적으로 말씀드렸던 거 같아요
그러고서 이제 제가 앓고 일어나서 일상으로 또 복귀를 해서 생활를 하고
있는데 가끔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가끔 페이스북을 들어가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자주는 못 들어가 보는데 가끔 들어가 봐요 그래서 가끔 들어가다 보면 북한 분들이 올리시는
그 내용과 말 가 우리가 딱 알잖아요 저희 신랑도 가끔 페이스북에 올라
오시더라고요 그러는데 그때 당시 이제 서로 모를 때 모를 때 그래서 그냥 이분은 딱 봐도 북한 분이네 우리가
북한 분들에대 관심이 많잖아 북한 사투리가 그 긁기를 보면 딱 알아요 근데 북한 사트리 거기서 뭐 아우이
안까이 집이 집이 이런 것들이 올라오는데 너무 반가워요 맞 맞아요 근데 우리 신랑이 거기에 올라오셨는데
딱 보니까 북한 분이세요 그래 어 이렇게 어떻게 메신저 창이 열려서 아
고향이요 이렇게 한두 마디 인사를 주고받았던 거 같아요 아 저도 고향이 북한입니다 이렇게 했는데 그럼 북한
어디예요 아 같은 고향인데 어 우와 이게 두물 아아 같은 북한 분은 많아
근데 정작 진짜 같은 고장의 분은 드물거든요 그래서 와 저도 거긴데 그랬더니 이분이 와 너무 반가우니
같은 고향 사람끼리 만나서 식사하자고 그래서 제가 좋아요 어 그래서 어
시작이 된 건데 어 어느 날 만났어요 이분도 퇴근에 오시고 저도 퇴근해 만났는데 저희 신랑이 저를 딱 보면서
가족이 다 같이 나오세요 이러는 거예요 내가 오늘은 쏩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어요 제가 혼자 있습니다
이런 말 하기는 대면에 그러니까 저희 신랑이 눈치체고 가만히 계시더라고요
그러더니 같이 식사하면서 교재가 시작은 거기서 이제 시작이 됐어요 예
예예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이 온라인 시대에 예 이런 온라인 공간에서 만난
거죠 근데 이제 그분 학고 내가 연령대가 거의 이제 비슷한 거야 한 살 차이고 비슷한데 다 그 고향에
대한 얘기를 아 나는 어느 쯤에 살았는데 그럼 왜 몰랐지 봤더니
그분은 우리 고장에서 태어나셔서 조금이 거리가 있는 것으로 아버님
이게 승급하시는 이사 가셨고 거기에서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군복무 예
10년 이상 나가 계셨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알 수 있는 계기는 없었더라
그요 그래서 우리 둘이 확인했던 거는 그거하고 그분이 부모님이 그 제가
일하던 그쪽 계통에서 예 북한에는 이제 산업 병원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화학 공장 하면 그 공장 안에 병원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그분이 제가 일하던 병원 분야에 간부를
하셨더라고요 어떻게 이제 쭉 서로 얘기하다 보니 아버님이 아시는 분인
어 신뢰가 생긴 거죠 그분에 대해서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뗐지 밥
뭐 샀어요 누가 샀어요 그분이 샀어요 우리 신랑이 자기가 남자라고 멋있게 사더라고 한 남자는 이런게 있어요이
남자가 남자가 이런 있어요 맞아요 맞아요 아니 그래서 뭐 샀어요 어
그날 저녁 시간이었는데 소고기 국밥을 샀습니다 어 아주 좋아요 네네 어떻게
마음이 통했나요 이야기가 이제 좀 더 얘기하고 하다 보니 아 그분은 어느
지역에서 사시고 무슨일을 하시고 또 그분도 혼자 계시는 거 그 저도 이제
좀 시간이 지나다 보니 아 저도 이렇게 이렇게 왔고 이런 일을 하고 지금 혼자 있다 이걸 서로 알게 됐죠
어 그러면서 어 그러면 거리가 서로가 멀지 않으니 친구처럼 지내자 하면서
가끔 처음에는 만났던 거 같아요 예 그러면서 서로 탈북하게 된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죠 그런게 있어요 동병 상년이라고 말 안 해도 알 거 같고
말해도 다 이해가 되고 참 그런게 있죠 맞아요 예 어떻게 탈북하게 되신
거예요 남편분의 가족은 아 북한에서 괜찮게 지내셨다고 저희 시부모님이
워낙의 생활력이 너무 강하셔서 어 저희 시 아버님도 훌륭하지만 북한에서
남자분들은 나가서 다 직장일 하잖아요 나라에서 주돈 안주 던 우니까 나가야
돼 그러면은 그 가정을 운영하는 거는 어머님들이 많이 했잖아 요 근데 우리
시어머님이 얼마나 생활력이 하냐면 그 북한의 미공급 시기에 정말 자식들
굶기지 않겠다고 철마다 이렇게 자기 할 수 있는 걸 다 하는 거예요 그
북한에서 보면은 이게 그 농사를 많이 지우셨다 간에서 터지라 그러잖아요
화전민 기 부대기 일군다 뭐 이런 그 여기는 아마 지금은 없죠 그런게 예
근데 과거에는 이제 화전민 부대기 일군다 뭐 이런 건데 북한이 지금 그 상
그래서 우리 시어머님이 엄청 농사를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 남는 시간이 있잖아요 그러면은 산에 올라가서
계절마다 나오는 약초들이 있어요 약초를 많이 뜯어서 때는 북한에서 중국 쪽에 많이 팔았잖아 그리고
송이버섯 성리 철에는 그 건강해 전 성리를 북한 분들 하나도 못 드세요
왜냐면 중국쪽에 팔면 돈이 되니까 그래서 우리 시어머님이 그걸 엄청 많이 캐셔 가지고 돈을 많이 보셨대요
예 그렇게 해서 자식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버 목이 되어 주시고 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 돈을 이렇게
항을 파고 묻어 놨 대요 어 근데 우리가 이해하는게 뭐냐면 한국에는 돈이 다 은행이 우리가 저축 하잖아
근데 북한은 조금선 해 가지고 만약 조금에 저축했다 그는 찾지 못하잖아요 안 주지 안 주지 그리고 돈이 많으면
요시 차리 되잖 맞아요 예 그러니까 우리 시어머님은 권 감춰서 이렇게 감췄다가 또 자식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는데 그래서 나름 또 그 그렇게 못 살거나 못 먹거나 그러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랬는데 그래서 내가 오 당신 잘 살았네 근데 왜 왔어 막 이런 식으로 예 그지 그 당연히
그렇게 되죠 예 처음에는 막 농담했는데 우리 신랑이 좀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그러면서 우리
신랑이 얘기를 하는데 저희 신랑이 사실은 군복무 또 이제 해서 북한으로
말하면 조선 노동당 예 당원 군사 복무 경력 이런게 다 있으니까 간부
표징이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 신랑의 공무원 여기 같으면 공사 공무원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물론
이하는 거는 조금 들릴 수는 있어요 저희 그렇죠 굳이 이해를 돕자면 집을 관리하는 쪽에서이 맞습니다 예
거기에서 이제 주택 관리원 직무는 그렇지만 거의 공무원이 그렇게 한
10년 하셨다 그래요 근데 보통 이제 택 관리원을 하려면 어 사람들하고
관계 속에서 일을 하는 거기 때문에 그 직업이 좋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오래 못
한대요 바뀌고 힘 거의 신랑이 10년을 하 그래서 사람들을 속에서
엄청나게 이제 일에 대한 또 믿음과 신뢰가 쌓여서 기본적으로 좀
안정권에서 사셨더라면 그랬는데 이제 그 북한에 그런 거 있잖아요 위로
간부들이 배치돼서 내려오자아요 예 근데 우리 신랑이 살던 지역에 보이지도 니 새로운 분이 담당으로 어
배치받아서 오신 거예요 근데 그분이 이제 다른 지역에서 왔으니까 집을
마련해야 되는데 우리 을 부르는 거지 그게 불러 가지고 아 그 주택지도
동무 혹시 제가 새로 어 부임 받은 새로 배치된 담당 보 어 담당 보위
지도원 있니다 어 저도 여기 이제이 가족이 이사 와야 되니 혹시 그 집을
배정받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해야 되는데 우리 신랑을 불러 가지고여 오라 나 여기 새로운 보이지 도니야
나 집 내놓라 이렇게 하니까 우리 신랑이 너무 어이가 없는 거죠 그렇죠 10년 동안 그 직위에 있었으면
얼마나 또 인격이 괜찮아 예 근데 대번에 반말 하면서 이러니까 우리
신랑이 예 순서 기다리십시오 알겠습니다 이렇게 근데 그게 또 투는 말도 아니잖아 예 근데이 사람이
거기에서 우리 신랑에게 앙심을 먹은 거지 시작은 그렇게 됐더라고 그래서
어 우리 신랑은 우리 신랑대로 기분 나쁘고 그 사람은 그 사람들의 기분 나쁜 거 예 순서 기다리십시오 이렇게
하니까 보이 지더니 아이 새끼가 아주 그냥 재수가 없네 너 새끼 이제 좀
두고 보자 하면서 그게 대부분 그렇잖아요 그러더라고 그 그 보이 지도이 저 새끼를 내가 어떻게
박살내고 혼내주고 여기에 이제 초점을 맞춘 거지 그래 가지고 우리 신랑 뒤를 쫙 해봤죠 해봤더니 생활도 안정
권이고 부모님들도 이렇게 하니까 뭐 걸릴게 없어 그래서 좀 더 알아봤더니
우리 시부모님이 시아버님이 제일 처음에 이제 옛날에 태어나신 것이
중국이었다 형제 다 중국에 있었 그리고 우리 시아버님이 그 어떤 또
사연은 있어요 시아버님이 홀로 이제 북한에 넘어 오셔 가지고 우리 시어머님 결혼해 갖고 지금 쭉 살면서
자식들 나와서 살고 계시잖아요 그러다 보니 북한이 어려울 때 중국 방조
사실 많이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이 워낙에 생활력이
강하고 부지런하신 것 첫째 두 번째는 중국의 형제들이 북한이 굶어 죽는다
해 가지고 많이 도와준 것도 있어요 그랬더니이 보이지는 그걸 알아차린 거지 그래서 아 요거 걸고 물고 늘어
져야겠다 싶어서 어 어떤 사람을 시켰어요 북한에는이 핸드폰 쓰는 것도
다 불법이잖아요 예 그래 가지고 그 저희 신랑이 불쌍하다고 잘 돌봐주던
동생 되는 분이 있어요 그니까 가까 우리 신랑하고 가까운 사람을 보이더니 딱 찾은 거지 그렇게 해갖고 그분
손에다가 핸드폰을 지어서 우리 신랑한테 보낸 거죠 야 가서 저 새끼
중국에 진척 많으니까 통화를 시켜라 거기까지 가업을 졌죠 예 그래서
그분이 전화기 가고서 형님 저기 중국에 요새 연락 잘돼요 전화하세요 그니까 우리 실랑이 아니 우리는 그
얼마 전에도 또 공식적으로 이렇게 해서 어 연락이 잘되고 있으니까 부디 내가 통화할 필요는 없다 저 실랑
그랬더니 아 형님 뭔 소리야 이게 내가 전화기가 어떻게 어떻게 돼서 있는데 있을 때 한번 무한이라도
하라고 그때 우리 신랑이 거까지 이제 딱 거절해야 되는데 은근히 저희 신랑이 호기심이 생긴 거예요 도 친한
동생이니까 친하니까 그리고 그분이 어려울 때 우리 신랑이 밥도 먹여 주고 엄청 덜 봐주던 동생이니까 어
네가 고마운 것이 있어서 나한테 이렇게 잘하나 우리 신 너무 순진해 가지고 어 그래 알았어요 그래 전화
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어 삼촌 잘 계세요 응 잘 있다 예 이제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겨서 무난 삼아
전화드렸습니다 항상 간단하게 전화를 꾸는 거예요 그래 갖고 이제 며칠 있었는데 보이 지더니 우야 찾아와
가지고 야 내 사무실 오라 이렇게 된 거예요 그니까 우리 신랑이 속으로 집 달라고 또 이렇게 나 야 어 야단
치려 그러나 하고서 때요 갔더니 거기 앉으라 그러니까 우리 신랑이 아이고 뭐 제인 지구안에 앉았어요 그때 에퍼
영지 한 장 탁 내놓으면서 여기다 사인 하라 뭔 사인 어 그러니까 우리 신랑이 뭔 싸 읽어 보고 싸이나라
이러 들는 거예 그래서 읽어 보니까 거기다 뭐라고 썼냐면 우리 신랑 이름 직장지기 다 쓰고이 자는 국가의
중차대한 비밀을 제 3국에 팔아 넘겼음 뭐 이렇게 자기네가 붙들었다
뭐 이런 거 하고 우리 신랑 이름 써 놓고 그 밑에다가 사인하라고 북한에 수표 하라 그래요 여기서 사인인데
수표 해라 이러더라 그까 우리 신랑이 순간에 심장이 먹는 거 같아 내가 잘못 걸렸구나 그다음에 우리 신랑이
전화 행 거가 딱 떠오르 들려요 그래서 아차 잘못 걸렸다 알아차렸죠 그래서 그다음에 당당하게 나가야
되겠다 그래서지도 덕무 어 나는 국가의 중차대한 비밀을 알 수도
없거이야 내가 무슨 수로 그걸 팔아 넘기냐 이렇게 날짜에서 사람 잡냐
이거는 안 되는거다 그랬더니 야이 새끼야 너 언제 통화했다 그니까 우리 거기서는 물러 못서는 거지 왜냐면
통화한 거만 사실이니까 통화했다 응 그래 아무날 이렇게 해서 어 문난
전화했다 거기까지 끝 그 이상 그 이하도 얘기가 오고 간게 없으니 내가
당원으로서 그에 대한 처벌은 내가 받겠다 개소리 치지 말라 나라 비밀을
파먹 어 팔아먹고 그러면서 보이더니 날아들면서 우리 신랑을 이제
타격하려는 취하니까 우리 신랑이 군복무 10년 진짜 막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그런 훈련까지 한 분이라서 간직해요 그러니까 보이지도 날아들어오는 거야 주먹이 그걸
공중에서 딱 잡았죠 주먹 딱 잡고 지원 동지 왜 이렇습니까 사람 이렇게 잡느냐 이렇게 했더니이 새끼 어디다
되고대 두냐고 하더니 야 오라 이러더라 보니까 북한에는 이렇게 북한에 있던 분들은 다 알아요 찰
때라고 지역마다 다 있어요 보안소 소석 보이부 소석 그래래 갖고 순찰
때 애들을 거기다 미리 준비해 놓은 거지 그래 갖고 청장년 다섯 명을
순식간에 쫙 불러들이는 거 그랬더니 다섯이 새끼를 정신 차릴 때까지
두드려 패라 이러더라 나 미친놈 그 우리 신랑이 한 명은 막을 수 있어
근데 사방에서 막 들어오니까 그니까 우리 신랑이 꼼짝 못하고 얻어 맞은
거 몇 시간 다섯 명이 다섯 시간을 팬 거
얼마나 했냐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데가 없고 내장 장기가 다 터지고
귀고막 다 터지고 얼굴은 기본적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그래서 우리 신랑이 몸에 피를 완전히 다 터지고
쓰러져 가지고 의식을 잃은 거지 그래 가지고 얼마나 때리면서 소리를
질렀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사람 잡네 사람 죽이네 공권력이 있다니까 어떻게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 신랑이 그 얘기 하는데 막 너무 가슴 아프고 너무 칫 떨리고 우리 신랑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이렇게 귀한 사람을 갔다가 어떻게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이 거기서는 때리다가이 사람 죽어도 책임 안져 그렇지 근데 우리 신랑이
뭔 죄를 지었는데 아무런 죄도 없이 이렇게 맞는 거예 막 보는 사람들이 다
까치고들빼기 허식을 듣고 우리 시아버님이 올라오셨는데 우리 실랑이 의식을 잃어서 한수 상태에 빠졌다가
눈을 이렇게 깨우 눈을 떴는데 머리 맡에 아버님이 와서 앉아 계시는데 우리 신랑이 자라면서 형제 다섯에
마디로 자랐거든요 그러면서 항상 엄격한 아버지 무서운 아버지 그런
아버지만 머릿속에 있었는데 그 아버님이 우리 신랑 그 머리 맡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시는데 눈에서
완전히 눈물 바다가 쏟아지는 거야 그 그러면서 우리 신랑이 그 의식이 흐릿한 속에서 그렇게 우는 아빠를
처음 본 거죠 새끼가 그렇게 막고 왔는데 예 그러면서 우리 시아버님이이 나라는 사람이 살 세상은 아니다 아
가다가 죽어도 좋고 가서 죽어도 좋으니 여기서 더는 있을 나라가
아니다 우리 시아버님이 너무 원통한 거 평생을 당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우리 온 집안이 충성 분자들이 우리 시아버 고지식해 가지고 그러니까
부모가 그렇 보니 자식들도 마찬가지로 그랬는데이 내 아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쓸어 눕히 그래서 우리
시아버님이 거기서 결심을 먼저 하셨더라고요 총 몇 명이 어 일곱 여덟 아 아유
대가족이 왔어 열 15명인 17명 예예 그렇게 오셨어 와서 또 결혼해서
또 식구가 들어오고 엄 예예 그 너무 우리 시아버님이 훌륭하더라고요 참
잘됐던게 우리 제일 막 네 고모 여동생 둘 있어요 우리 신랑이데 그
이런 사건이 일어나기 썩 이전에 동생들이 엄청 깨어
있었어요 그 보이지도 어떤 처벌도 없고요 어 그래서 어떻게 되냐면 그래서 우리 시아버님이 막 문제를
일으켰어요 그랬더니 보이부 윗선에서 내려온 거죠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을 때려 눕힌 거잖아 이게 죽게 됐어
근데 우리 시아버님이 워낙에 강직하게 막 강력하게 반항을 했죠 그랬더니 그
온 동네에서 다 알잖아요 그래 가지고 보위부에서 사람들이 여론을 잠재 우느라고 보위원 그이 잘못하면 첩을
하는 그런 부석 화 같은 예 그런게 있다 그러더라고 우리는 몰랐잖아
그래서 잡아간다 하면서 잡아 갔지 후에 또 선방이 처벌하고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액션을 취했고 그다음에 우리 시아버님이 공개적으로
난리 쳤어요 나 중 우리 아들 살려야겠다 너네가 우리 아들 주겠다 그러니까 중국에 내 동생들 다
있으니까 약을 내보내게 연락해 달라 예 그래 가지고 중국의 우리 시아버님
형제들이 총 동원했어요 그래 가지고 우리 신랑의 그 증세를 다 들려
보냈죠 그랬더니 중국에서 이게 한약 지어 나오고 구급약 나오고 하여튼 그에 해당한 약들이 많이 나와서 우리
신랑이 그걸 또 먹고 이러면서 우리 시아버님이 계속 결심했죠 자식들을 다
데리고이 나라에선 안 산다 그리고 또 그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 어 이전에 우리 북한에서 기차 타고 쭉 가다
보면 철길 연선의 집들이 있잖아요 그죠 바로 옆에 예 바로 옆에 집들이 쭉 있었는데 그 사실 그 절길 옆에서
사는 것도 고역은 고역이 맨 차가 덜 큰 거림에 지나갈 때 수시러 어이 엄청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 시아버님 사시는 지역에 김정일 방침이라고 내려왔어요 뭐라고
하냐면 철길 연선에서 살림집을 철거하라 그래서 그 범위를 규정했는데
우리 시아버님 집 거기 들어갔어요 무작정 집을 허물고 무작정 철
철수시킨 거예요 어디로 가요 그 어디로 가라네 그러니까 너네 가족들이 누군가가 어 있으면 거기 당분간 얹혀
살아라 그리고 어디다 집 지어라 하고서 땅을 뚝 떼 주고 그리고 완전히 집을 다 헐어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시아버님이 예 그러니까 우리 신랑의 구타 사건하고 집을 철수하라는 그 사건이 거의 같은
시기에 터진 거지 그러니까 우리 시아버님이 아 여기서 살지 말라는 거네 하고서 결심이 더 단단히 굳어진
거죠 그래서 자식들한테 쫙 얘기를 했더니 자식들이 % 200% 동조 했죠 아버지 말이라 또 엄격하게
따랐을 것 같아요 그런 아버지라면네 그래서 우리 시아버님이 절대 나는
나와 우리 그 우리 시 시어머니 그리고 내 가족들 내 핏줄은 다 가야
된다 그래서 한 사람도 남기면 다 데리고 간다 그렇게 탈북기 시작된
아니 그래도 어떻게 그 대가족을 성공을 할 수가 있어요 야 근데 이제 근데 저는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게
이것은 과학적 논리로 저도 지금 풀어낼 수 없어요 왜 그러냐면 우리 신랑이 이게 장이 장기가 너무 밝고
차고 막 이렇게 해서 장기들이 터졌어요 그래서 배가 이렇게 임신행
것처럼 남산 만하게 다 불었잖아 이렇게 되면 복막염이 와서 의학적 원리라는이 사람 죽어야 돼 그게
정확한 거예 근데 어떻게 목숨이 살았어요음 그래서 어 겨우겨우 걸을
수 있는 단계까지 됐어요 저희 신랑 일단 몸을 움직여야 오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시아버님이 우리 신랑이 조금
걸을 수 있는 때까지 기다리면서이 탈북을 준비하셨다고 그렇게 해가지고 어 우리 시 아버님하고 시어머님이 그
철길 연선에 집이 있다 보니 그 북한의 실정 아시는 분 알아요 철길
조금 더 나가면 강이 있어요 두만강 근데 그 두만강을 넘어야 되잖아요 다행히 그래도 국경 연선이 예 그쪽에
집이 있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우리 시아버님이 그쪽 지형을 잘 아셔 가지고 군대를 통하지 말자 군대 테
뭔 죄가 있냐 그러다가 군대도 잘못되고 우리도 잘못되 그래서 군대를 통하지 말고 지형지물을 이용하죠 그래
가지고 쭉 정찰 해 가지고 이제 벼랑 있잖아요 사람이 붙지 못하는 벼랑고
강이 바로 연결되는데 예 그리고 양쪽 길이 끝나는 것이잖아이 벼랑이
강쪽으로 이렇게 나왔어 그니까 거기 군인이 없잖아요 그니까 거기는 누구도 어 산짐승 날세 밖에 없어요 거기를
우리 시아버님이 딱 결정하셨다고 깜짝 놀랐어요 우리 랑이 몸이 좀 회복되는 사이에 밧줄을 준비해 그래 가지고 그
길이에 해당하는 밧줄을 준비하는 것도 사실 힘든 일이잖아요 그걸 다 준비해
가지고 그쪽을 몇 번 이렇게 정찰 하셨더라 그래서 그 거기에 든든한
나무에다가 밧줄을 걸고 줄을 늘어뜨리고 한 사람씩 내려가는 거야 그래서 그때 우리 일행이 가족이 다
있는데 우리 삼촌들도 있으니까 제일 젊은 장정이 먼저 내려가는 거예요 한 사람이 그 내려가서 그 사람이 딱
성공하자아자 무사히 내려갔어 그다음에 어머니 먼저 내려보내고 아버님 내려보내고 그다음에 아기들
내려보내고이 장정이 위에 한 사람은 끝까지 있어야 돼 그렇게 하고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다 내려보내고
마지막에 또 이제 대장정이 내려오게 이렇게 딱 시나리오를 짠 거예요 그
그렇게 오신 거예요 가족이 그럼 이제 두만강 넘어서 중국의 친척들이 대기하고 있었던 건가요 그렇죠 친척
한데 어떻게 다 몰래 연락을 하셔 가지고 예 그리고 중국 친척이 되게
했고 바로 중국 친척으로 이동해서 다 들어갔어요 근데 그때 이제 좀 얘기가
길어질까 봐 내가 뺐는데 두 가족이 떠났거든요 우리 신랑가 친구 그렇게
해서 그 가족하고 우리 시아버님 우리 신랑 가족이 멍 땅 떠나고 동생 삼촌
집으로 다 들어간 거 그밤에 그랬더니 우리 그 삼촌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너네 북한에서는이 가족 도주가 제일이 엄중하게 보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무조건 버 가 쫓아 들어온다 그럼 여기 있으면 빼 죽음이다 다 죽는다 일단 여기에서 벗어져 나가라 그리고
하염없이 계속하라 계속 하라 어 그러면서 이제 빨리이 자리에서 떠나는게 사는거다 그다음에 이제 떠
나랑 연결하자 하면서 엉덩이 못 넣고 쉬지도 못하고 소하지 아니 조금
쉬었으면 좋겠는데 나가는게 사는거다 그래서 다 나와서 그니까 삼촌이 알려졌지 어디서 어떻게 계속하 더
멀리 벗어지고 그러니까 다 나왔죠 나왔는데 정말 얼마 안 돼서
보위부가들이 닥친 거 중국까지 중국은 북한 버이브 안
마당이지만이지 완전히 들여 그래 가지고 우리 삼촌이 뭔 소리 하냐고 뭔 소리 하냐고 막 우리 삼촌이가
완강하게 나갔지면 사람이 없으니까 떳떳하게 그래 가지고 보위부의 헌물을 캤어 그러면서 걔네가 얼마 동안은
거기 주도 나면서 샅샅이 뒤질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 삼촌이 계속 멀리 가라 멀리 가라 하다 보니
다행히 그쪽에서는 벗어 놨죠 그리고 벗으로 그 중국 대륙을 계속 횡단을
한 거예요 근데 가족들이 모여앉아 해를 했죠 자 우리가 누가 딱 봐도 북한 사람이야 어 그러니까 우리가
잡히면 죽어도 다 같이 죽고 살아도 다 같이 살자 그렇게 하면서 그
북한에는 보통 이제 지약 같은 거 있잖아요 어 그게 세 북한의 쥐약이
세서 먹으면 바로 죽는 거 있어요 예 그거를 갖다가 다 가루에 섞어서
이렇게 환측 알 처럼 해가고 다 몸에다 품었어요 잡히는 순간 먹자 잡히는 순간 먹자 그다음에 만약
움직일 때 못 먹을 수도 있잖아요 응 그러니까 칼도 하나씩 다 준비했대 그래 가지고 이렇게 손이 딱 잡히
데다가 칼을 딱 보관한 거예 지금 생각하면 단속한 사람도 무슨 제가 있겠냐만은 그때는이 생과 사가 어 막
갈린 거니까 만약 중국 공안이 잡으려고 들어면 하나라도 죽이고 나도 죽는다 막 정말 엄청난 사건을 겪고
탈북을 했기 때문에 뭐가 보여 어요 그러니까 보이는게 없지 분노밖에 없 그래가지고 그 삼촌이 그 브로커
루트를 찾아서 이동하기 시작했죠 근데 동안이나이 단속하는 사람들이 언제
닥칠지 모르니까 다 긴장하게 오는 거죠 그래서 이동을 하는데 버스를 어느 지점에서 타라 그래서 탔어요
탔는데 우리 신랑이 제일 앞쪽에 타 가지고 내가 구령을 주면 다 같이
하나 까고 우리 다 같이 죽는다 그리고 그런 힘이 없는 이게 그 여자들 이게 아기들 이런 사람들지 을
먹고 죽 야 난 그말 기가 막혀가지고 예 그래 가지고 막 이렇게 가는데
이제 공안이 올라온 거예요 예 신분 중 보자고 그 사람들이 타깃을 딱
잡고 올라왔으면 무조건 잡혔지 근데 그게 이제 타깃을 잡고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정상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가정이었고 또 올라와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건열게 아니라
이게 다 이렇게 중간중간 오면서 너 선택 건면 그거 했어요 그러다 보니
앞에서부터 신분음 툭툭 이렇게 오는데 우리 신랑 앞에 와서 탁 선 거죠 그러니까 우리 신랑이 중국만 모아라
들었지만 그러니까 우리 신랑이 이제 마지막 때가 왔구나 이렇게 생각한 거지 그래서 어 처음에는 말을 못
하고 딱 굳어 있었지 그러니까 또 내밀 들어 신분증 보자고 그러더니 그다음에 우리 신랑이 이게 빠져나갈
길이 없구나 하고서 야이 새끼 찔러 죽이고 다 같이 죽자 이렇게 우리 신랑이 외친 거죠 그랬는데 자기는
그렇게 말을 했는데 밖으로 터져 나간 말은 롤 이상한 말이 나간 거지 내 우하고
다르게 그러니까 그 공안이이 좀 이상한 사람인가 해서 체다 하더래요
그래서 또 얼이 새끼 죽이고 다 같이 죽자 막 이렇게 우리 신랑이 막 외쳤는데 혀가 꼬이면서 말이 막
이상하게 나가니까 공화 이렇게 또 보더 그래요이 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하더니 삑 돌아
나가더라 어 그런데 더 웃끼는 건 이게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우리 신랑 앞에 공 이 와서 딱 서서 신분 중 달라 계속
손 내미니까 뒤에 있던 우리이 그 삼촌이 이제 우리 신랑 동생이 생
알아서 제가 제약을 먹어 버리
세상에 그래가지고 우리 신랑은 지금 위험이 물러가서 이거 뭐냐이 돌아가네
그 안더 숨을 쉬고 돌아봤는데 뒤에서 난리 난 거예요 저기 동서가 막
울면서 서리 지르는 거야이 지을 지금 먹었 아 공하는 가고 완전히 뭐 진짜
울어야 될지 그래 가지고 그다음 서는데 내렸어요 그래도 이걸 토하면
한다는 그런 생각은 있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막 난리 부르스를 친 거지 물 먹이고 배 토하고 막 이렇게 해서
그렇게 하면서 그나마 어 무사히 한국까지 온 거지 다행히 우리 삼촌
안 죽고 여기까지는 왔는데 부유 중인지 젊은 사람인데 얼굴 색깔이
지금도 좀 안 좋아요 저 근데 그 북한에서 나올 때 한국을 목표로 한게
아니잖아요 한국을 어떻게 그러면 오게 된 거예요음 그 우리 시아버님 하고
가족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냐면 중국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거는 알았어요음 중국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안전하지 못한다 이걸 미리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이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거에 대해서 그들이
엄청 깨어 있었어요 그래서 여자 동생들이 중국을 걸쳐서 한국에 와
우와 저도 깜짝 놀어요 예 처음에는 그들도 엄청 열심히 살고 애쓰다가 안되니까
여기는 아니다 해가지고 중국을 한국이 먼저 내려와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이 다 안내를
했더라고요 사실 탈북민 가족들이 그 탈북민들이 먼저 와서 북한의 가족들을
데려오고 싶잖아요 그럼 일단 돈줄을 끊어야 돼요 안 와요 보내면 먹고 살만하니까 엉덩이가 땅에 붙어서 안
와요 왜냐면 한국에서 보내는 돈이면 거기서 부자 중에
[음악]
부자거지인형 그 남자 형제들이 다 있고 시부모님들이 있으니까 동생들이 부모님한테 계속 돈을 보낸 거죠
중국에서 일정하게 보죠 그다음에 우리 시어머님이 워낙에 부지런하다 보니 형제들이 다 부지런해요 그러다 보니이
사람들이 먹고 살만 해서 어는 거에 대한 거는 꿈에도 생각 안 했어요
그랬는데이 우리 신랑이 구타 사건과 집 철수하는 사건이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거죠 그래서 이제 완벽하게 가야 된다 하가 보기 지금
생각하면 그래갖고 이제 결론적으로 다 무사히 한국까지 오셨더라 진짜 너무
잘 예 맞아요 예 다 정착 잘하고 우리 조카들은 그 연예인보다 더
잘생겼어요 예저 우리 그 석화가 열 그때 어쨌든 이제 10대 후반이었고
여기 와서 세계관이 다 많이 형성이 된 거죠 예 근데 반이기 때문에 그
북한의 기억이 완전히 이게 정확하게 딱 기억이 된 상태에서 제일 감수성이
높은 시기에 두 나라를 다 겪었 아아 예 그리고 이제 열심히 살 고 그래서
참 그런 모습들이 귀하고 또 워낙에 또 우리 시아버님이 자식들에 대해서
워낙에 가정 교육이 잘돼 있고 또 우리 형제들이 형제 또 이렇게
동생들도 부모님 그 DNA 어디 가겠 아무 열심히 야무지게 잘 살아 어떻게
명절이랑 잘 만나세요 뭐 거부 갈등 없습니까 남이나 북이나 거부 갈등
많잖아요 근데 어떻게 잘 지내세요 이제에 두에 이렇게 정착을 하는 과정에 우리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마음에는 항상이마다 그인데 근 아들인데 몸도 아프고 다른 사람들은
다 그래도 부부가 짝을 지어서 부모님한테 생일날 명절날 인사하러 하는데 마디가 항상 혼자서 덜렁덜렁
다니고 그리고 또 자기도 부모님한테 너무 미안하고 괜히 미안한 거 있죠
그러다 보니 우리 신랑이 그 많이 마음적으로 외롭고 위축돼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한국에 와서 보니 우리 부모님들 마음에는 운년 중에 우리 신랑이 아픈 손가락이 되어 버린 응
그래 가지고 우리 시어머님이 엄청 이게 남몰래 형제 몰래 신랑 몰래
혼자서 많이 오셨더라 그렇게 되는 와중에 이제 이런 아까 그 사연 속에서 저하고 저희 신랑이
만났잖아요음 그러니까 우리 시아버님과 시부모님 마음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냐면 또 형제들도 마찬가지고 아
우리 오빠는 우리 아들은 저렇게 너무 몸이 아픈 사람이고 뭔가 이제 안 돼
보이는 그런 상황에서 저를 만났는데 이런 생각을 했대요 지금은 다 얘기해요 아 끝까지 살까 아 만났을
때 에에 예 그런 생각을 너무 많이 갖고 있었더라고 그리고 자기네끼리 많은 대화를 했었어요 그래 며느리가
끝까지 살아주면 고맙고 아무튼 아슬아슬한 어 가도 어쩔 그까 좀
약간 불안 불안 그니까 기쁘면서도 불안하면서도 왜냐면 내 아들이 너무
안 돼 보이니까 예 그러니까 그때는 말 못할 이런 또
속을 앓고 있은 거지 그러니까 우리 시어머님이 저를 처음에 시부모님 인사하러 갔는데 그 우리 시어머님이
저를 이렇게 보고 이렇게 보고 계속 보시는데 제 손을 꼭 잡어서 얘기하신
첫마디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 선을 꼭 잡고서 아 내가 다른 거는
좀 안 물어 보겠는데 끝까지 살겠니 그거만 답을 달라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때는 무슨 생각 면 끝까지 살아라 해도 랄 판네 내
아들인데 왜 끝까지 살겠니 이걸 왜 물어보시지 지금은 이해 돼요 당황했었어요 그런데 시간 속에서 깨달
깨달고 그리고 우리 신랑이 건강해지고 둘이 잘 살고 그러니까 우리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이렇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냐면 아이고 제 둘이라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첫
번 채 거은 됐잖아요 둘이 잘 살고 있는데 그다음에 이제 그 형제들이 쭉 부모님 계시니까 우리가 부모님을
이렇게 공경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형제들이 다 잘하고 있었어요 그랬는데 제가 우리 신랑 만난지도 5년이 아아
그 5년 속에서 제가 또 맛이니까 어 제가 만면 우리욕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없을 때하고 있을 때하고 이게 그 달라야 돼 집안의 분위기가 그래서
제가 부모님들한테 그 어 사실이 중간에 얘기가 그렇지만 저희 친 아빠
엄마는 예 저희 본가 아빠 이님 그 하늘나라 가셨어요 북한에서 그러다
보니 저는 우리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내 아버지 엄마라고 처음부터 생각했고
우리 신랑한테 저는 그랬어 여보 홀러 있던 나에게 가족을 만들어 줘서 너무 감사해 제가 우리 신랑한테 그랬거든요
그래서 나한테는 시부모님이 내 부모님이야 이런 마음으로 항상 시부모님을 섬겼어요 그러다 보니까
1년 2년 3년 지나니까 형제들이 이제는 원래 저가 그 집에 들어가기
전까 지는 형제들이 다 부모님한테 잘했어요 그리고 자기 신랑들 테도 잘하고 이제 그 형제들이 우리 형님이
최고다 선생님한테도 잘하는 거예 예 그러면서 우리 형제들이 이게 소통하는
단체 턱이 있는데 아우이 우리 시 동생들 시누이들 만만치 않아요 북한에서 그 신누이 그런 그런
이야기도 만 여기도 똑같은 예 간단치 않아요 그래 갖고 런 눈으로 보다가
점점 이렇게 다 이렇게 그 마음이 풀린 거지 그래 야 형님 우리 형님
따라 배울게요 더 다할게요 이래요 그래 가지고 이제 우리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너무 요새는 기쁘 가지고
우리 시어머님이 저보고 그러더라고요 요전번에 이제 내려갔을 때 매누아
나는 야 우리 아들 때문에 남몰래 내 마음을 누가 알겠니 내이 눈물을 누가
알겠니 남편도 이해 못해 주고 형제도 이해 못해 주는 그 눈물을 그렇게
흘렸는데 나 오늘 밤 자아 죽어도 원이 없다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아유 어머니 그러면서 서로 위어가
되고 우리 시 아버님도 저한테 그래요 야 나 우리 며느리 앞에 무릎 꿇고
저라고 싶은 심정이다 막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 어머니 저는 우리 신랑을 만나서 감사하고
우리 신랑은 나와 주셔 감사하고 이렇게 키워 주셔 감사하고 이렇게 한국에 내가 흘러왔는데 이렇게 가족이
되어 주셔서 감사하고 시아버지 시어머님은 나한테 부모님이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그랬더니 우리 시아버지 머 너무 좋아하는 거 그서
요새는 우리 시어머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면 이제는 나하고 완전 벽이 무너져 갖고 농담도 잘하고 제가
전화하면 해보세요 하면은 와 웃기 붙어요 서로 그러면서 우리 시어머님이 이러시더라구요 얼마 전에 통화하면서
매누아 북한에 그런 말이 있지 않니 그 집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잘 들어와야 그 집이 잘 되고 어
들어오는 사람이 어 잘못 들으면 그 집안이 망한다 그런 말이 있는 것처럼 여새 내가 그 생각 그 말이 맞는 거
같아 예 예 그러면서 우리 시어머님이 요새는 내가 그 생각이 든다 우리
며느리가 잘 들아서 우리 집안이 모든 일이 하나부터 다 잘되는 거 같다
너무 고맙다 예 그래서 지금은 뭐 거부 갈등이라는 그런 걸 느껴보지도
못했고 그냥 저는 시어머니 시 아버니 그런 생각 못 해 봤어요 그냥 내 아버지 엄마다 그 지금도 아빠 엄마
이렇게 불러요 그러면 우리 시 아바님 와고 시어머니 너무 좋아하세요 그러니까 예 그 간격이 없고 나
앞으로 부모님께 더 잘해야지 그런 생각밖에 없어요 그래서 참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럼 남편분은 건강은 어때요 그럼 남편분은 건강은 어때요
아우 저희 신랑 생각만 하면 너무 마음 아프고 가슴이 짜네요 왜 그러냐면 저희 신랑이 이제이 목을 그
구타 당할 때 목을 구두 발로 너무 차놓고 구두 발로 너무 밟아 가지고
아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자기는 죽은 줄 알았대요 그래서 이렇게 숨이 딱 막히는 그 순간까지 얘들이 누른
거지 그래 가지고이 목이이 식도가 나가고 기관지가 나가고 여기 목 부분에 해당한게 다 나갔어요 그래이
갑상선이 완전히 파괴 됐어요 그래 가지고 갑상선 기능 항진증 이렇게
나왔는데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무서운게 뭐냐면 체중이 쫙 빠져요
기능이 항진돼 갑상선 기능이 이게 밸런스가 딱 맞아야 돼 몸에서 이상 대사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어 그러니까
에너지가음 빨리빨리 없어지는 거죠 이게 그리고 몸에 근육이나 이제 그 지방으로 이렇게 축적이 돼야 되는데
그게 축적이 안 되고 다 빠지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저희 신랑이 아니 성인 57세 8세 나가는 사람이 체중이
38km 나 저 만나기 전에 막내 신위가 결혼식 했더라 그 결혼식 예식장에 양과 이제 친척들과 또 이제
지인들이 모이아 근데 우리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이게 막 짱이 무너지는 거예요 자기한테 아들이잖아 우리
신랑이 이렇게 걸어 들었는데 그냥 이게 사람이 형체가 들어는음 그 38
초등학생도 38개 목에 와서도 잘 먹고 우려도 좋은이 나라에 왔는데도
예 후유증으로 야 이제 기본적인 사람 모양은 갇혔는데 이제 갑상성 기능
항진증 그다음에 귀 검사하니까 한쪽 고막이 파열돼 없는 거 그러니까 이게
귀에서 계속 걸음 나고 못 들어 길를 한 쪽기 아예 못 들어요 청각이 다
나가고 그다음 내가 그랬죠 내장 장기가 다 파열이 됐는데 췌장이 파괴돼 가지고 몸에서 인슐린이 안
나오는 거예 그러다 보니까 당뇨 예 그래서 저희 신랑이 공복혈당 500음
병원 있던 분들이나 당뇨 오해 앓으신 분들은 기절하고 놀라요 500이라고 하면 그리고 당화 혈색소가 더
위험한데 그게 이제 13까지 내려가 그러니까 다른 기능은 어떻게 하겠어
물어보나 만 하잖아 그러니까 이게 그냥 종합 병원이 걸어다니는 거 종합
병원이 아니라 중환자 실인데 완전 중환자실이 그래 병원에서는 맨날 너 일하면 죽는다 맨날 그니까 우리
신랑은 중중 고위험군으로 딱 분리돼 가지고 병원에서 우리 신랑은 별도 관리해 그런 정도까지 됐는데 막내
여동생 결혼식 하는데 그래도 제가 동생이라고 지금 왔는데 우리 시아버지 시엄마가 막 그냥 막 그냥 그냥 그냥
그서 눈에서 마음에서 막 얼마나 자기 자식이 그 마다이가 막 우리 시어머니는 이게
결혼식인게 아니라 그냥 눈물 저게 살아 있을까 언제까지 살까 막 아마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다 그렇게 눈물로 흘렸을 것 같아 예 그리고 보여지는 모습이 얼마나 비참하고 저
참에이 한국까지 와서 그래 가지고 우리 시아버지 시엄마는 혼자 있는 거도 가슴 아파 몸이 아픈 것도 가슴
아파 그러니까 그냥 그 우리 시어머니가 고백하는게 맞죠 그냥 나는 눈물로 살았다 저 큰 아들 때문에
우리나라 이제이 대한민국의 우려가 얼마나 좋아요 아 말에 뭐예요 님
솔생님 우셨을도 느끼셨을 그렇죠 이게 우리나라 우려 제도가 아니면 우리
신랑은 저 만나기 전에 이미 뭐 어떻게 될지 모르지 그래서 저희
신랑이 그 국정원 한화원이 가정에서 선생님들이 건강 검진하고 너무 놀란
거 예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까 그러니까이 사람은 치료부터 받아야 된다 그래 가지고 그 몸으로 한국까지
온게 기적이에요 기적이죠 그래가지고 그니까 그냥 쉽게 얘기하면 목숨만 살아서 온 거지 우리 신랑은 계속
병원에서 계속 치료받는 거예 계속 치료받고 시간 속에서 쭉 회복이 되기
시작했어요 어 감사해라 세상 예 그래서 저는 우리 신랑이 그 쭉 회복해 온 가정을 보면서 그 우리 그
대한민국의 우려 제도가음 일단은 이제 그 어 저도
어느 때 제가 방송에서 얘기는 했어요 우려 설비가 너무 좋아 그리고 뭐가
좋냐면 우려 보험이 잘 돼 있어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는 보험이란 말조차 몰랐잖아요 그 부분이 너 너무
감사해서 어쨌든 이제 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혜택을 받은 거죠 그래서 저를 만날 때까지는 쭉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 이제 건강을 유지하면서 있던 와중에 저를 만난 거 예 저희
신 선생님이 또 그만 안 놔뒀을 거 같아요 그렇죠 지국 정성으로 했죠 예
딱 그래 보여요 응 그래서 그 어느 날 이제 우리 신랑하고 막
교제하다가음 저희 신랑이 어느 날 조금 심각하게 여보 나 할 말이 있어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얘기하세요 그랬더니 아유 또 말씀을 그렇게 얘기하세요 이렇게 또 이쁘게 하세요
얘기하세요 무슨 얘긴데 좀 심각하게 얘기해요 그랬더니 어머 어 우리 신랑이 그쪽에서 당한 거 이런 걸 쭉
다 얘기했잖아요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너무 발전되고 좋으니까 우리 많이 회복이
돼 있어요 그 상황에서 나를 만났는데 그 후유증으로 내가 지금 어마어마한
진단 명들이 갖고 있다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뭔데요 내가 그랬어 그랬더니 제일 심한 건 지금 계속 약을 먹고
있는 거죠 갑상선약 당뇨병약 우리 북한에서는 당녀 암 하면 이제 저 삶
죽었다 이래 그죠 그러니까 우리 신랑이 겁이 나서 자기 그 병명이
상태를 나한테 말하기가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할 말이 있다 이렇게
된 거 속이 철렁해서 그래서 표정 관리하면서 어어 이렇게 된 거죠
그랬더니 근데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저희 신랑 이 너무 TV 꽝꽝 넣는 거예요음 그래서 여보 TV
좀 조금 낮추라고 근데 그 얘기를 우리 시랑 못 들었는지 또 올리는 거요 계속 얼린 그래서 여보 낮추라고
이거 옆집에서 뭐하겠어 그랬더니 입을 보고들은 거 같아 우리 신랑이 그 조금 낮추긴 하는데 왜 이렇게
높이나요 내가 막 그랬어요 그랬더니 안 들리니까 그렇지 이러는 거야 그래서 그때는 몰랐어요 그래서 뭐가
안 들린다는 거야 그 정도면 동네도 다 좋겠구만 그게 딱 해상 되는 거
그러면서 한쪽 고막이 없다 그래서 병원에서 어느 정도까지 나는 살아났고 지금 약으로 견디고 있다 그걸 나는
당신한테 솔직히 고백한다 이게 보통이라 말이지 이게 막 쌍이
무너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도 듣는데 막 치가 떨리는 예 그래서 내가 너무
마음 아픈데 그게 표정이 너무 심하게 나가면 우리 신랑이 마음이 무너질까
봐 여보 괜찮아 응 사람이 중요하지 우리 나이에는 의리로 사는 거야 딴
거 하나도 생각하지 마 같이 우리 둘이 힘을 모아서 당신 얼마든지 고칠
수 있어 어 내가 우사 아아 그래가 막 대책없이 말했어요 그때 우리 신랑이 너무
고맙다고 그렇죠 힘이 나지 그래서 이제 내가 마음속으로 딱 결심을 했죠
내가 우리 신랑의이 병을 고치는데 내가 우리 신랑하고 나 사이 우리
가정에서는 일차 목표다 이걸 집중적으로 해야겠다 그래도 내가 의사
20년 경력인데 한국에서는 너무 당뇨 고혈압 환자가 많아서 병원약을
먹으면서 관리한다고 하지만 우리 신랑은 원인이 명백한 거야 그러니까 난 살릴 수 있어 나 우리 신랑 꼭
살릴 거야 항상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어요 정말 사랑하시네 나쁜 분이
예 그리고 보면 안쓰러 가슴 아프고 그 얼마나 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팠을까 얼마나 공포스 까 꼭 우리 신랑을 살릴뿐 아니라
고칠 거예 그래서 제가 그다음부터는 우리 신랑을 살리려고 당도 여러 가지
1형 2형 여러 가지 형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당뇨에 대해서 다시 또 제복 수하고 계속 공부하면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건강 식품들도 많아요 그래서 당뇨에 대한 최첨단
기술이든 이렇게 제품이라던가 이런 거에 대해서 계속 이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음 무조건 6개월 내지 1년 이렇게 딱 관찰하면서 집중적으로
시작을 했죠 매기면서 예 예 그러니까 건강 식품 같은 것들을 주로 근데
이제 딱 보니까 원하게 병원에서도 중중 고위험군 이렇게 되다 보니까 식품으로 이제 해결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또 우리 슬랑이 먹기가 너무 힘들어하는 거 그렇지만은이 병을 떼기에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슬랑 고마워 하면서도 힘들어 했죠 그렇게 1년 2년 3년
어 안 되는 거예요 그니까 수치 변동이 없어 그리고 병원에 가서 계속 정상적으로 약을 한 번에 일주일분
보름 분씩다면 이만큼씩 두루마리를 말하오 그 약을 보면 내가 마음이 너무 어쨌든 우리 신랑이 이걸 고치지
못하면 나는 진짜 자격도 없는 여자다 그리고 내가 뭔 우사니 그런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지금은
우리 신랑이 당녀 정상되다 혈색도
정상되다 기능항진증 완치 판정 받았어 그리고 귀이 그 파열이
됐잖아요 그건 완치됐 그리고 그 나머지 남자들이
자존심 전립선 전립선 성긴 아 이거 방송에서 미안해 아 뭐 어때요 우리
다 생활 얘긴데 뭐 이상한 얘기도 아니고 아픈 거잖아요 그 부분들이 이제는 완벽하게 안정권에 들어서서
수치가 정상고 또 도 완전 동 외모가 되고 어 몸무게 38 몸무게
58km 감사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완전
우리 신랑 상태가 어떠냐면 자신감이 충만하고 그렇죠 그다음에이 그
남자들이 그런게 있더만 어떤거이 가정 생활 하면서 저희 같은
경우는 그래요 아이고 그런 험란한 가정을 거쳐서 왔기 때문에 뭐 이렇게
그냥 의리로가 간다 근데 남자 마음은 그게 아니에 자기가 그 남녀 부부가
사는데 내가 남자 역할을 해야 돼 그게 안 되면 눈을 못 맞아 치더라고
어 자존심이 자신감이 떨어져가지고 아니 남자분들 다 공감하시나요게
그래도 대화도 하고 눈도 마주치고 해야 되는데 우리 신랑은 구름만 보는 거야 사람을 빨리 먹고 도망가는 거
그래서 왜 그러지 하도 그게 반복되니까 내가 어느 날 물어봤어요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여는 눈을 안 마주치네 그리고 여하고 대화를 할 시간이 없네 여보
우리가 나가서 일을 하느라 그래 어 집에 들어오면 또 TV 보느라 그래 핸드폰 보느라 그래 유일하게 대야 할
수 있는 시간이 밥상 머리해서 어 이렇쿵 저렇쿵 얘기해야 되는데 당신은 밖으로만 쳐다보다가 도망가니 대화를
할 시간이 없네 이랬어요 또 내가 한번은 그랬어요 아 여보이 집안에
둘이 사는데 둘 중에 내가 얘기를 안 하면이 집은 악
강산이 내가 하루는 어떤 시험까지 했냐면 내 스스로 오늘 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먼저 말을 떼지 말아보자이 집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 신랑이 나한테 먼저 말을 거는가 한번 보자 하고 그러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일이 그다 저녁에
얘기했지 여보 내가 오늘 우도으로 이렇게 했는데 테스트했다 근데 결과는
이렇다 야 아 여보 내가 재롱도 떨어야 되고 애기도 들어야 되고 말도 먼저 꺼내야 되고 아 나라도 하긴 할
건데 여보 오늘 테스트 결과는 이렇다 그러니까 우리 신랑도 조금 놀라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자존감 자신 이런 것들이 자기 스스로 바닥을 치고 있었더라고 이제 눈 잘
마주치 눈 마주칠뿐만 아니라 말도 잘해요 말도 잘할뿐만 아니라 저희가
지금 주말 부부가 된지 한 1년 됐어요 아 일도 하세요 그러면 어 그러면 어머나 그러면 저희 신랑이
전기 기술자에 그 현장의 베테랑이 야 이건 정말 인간 현장
책임자어나 와 이거 완 해피 엔딩이지 현장에 나가 그럼 해피 엔딩이지 맨날
나가서 마누라 자랑하고 이렇게 코너에 부러 맨날
우주에 다니고 어머나 그래서 임금이 안부럽지 이렇게 현명하고 든든하고스런
아내를 만났는데 네 그래가지고 우리 신랑이 내가 그랬 보 당신은 있잖아 이제 본 모습을 찾은 거 같네
그랬더니 어느날 우리 신랑이 드디어 한마디 또 이제 중요 발언을 하더라고
그래서여 얘기해 그랬더니 우리 신랑이 어 약간 가치라고 대화가 연결이 안
되고 자신감 없고 눈 안 맞으 치고 이런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먼저 말고 어 이제 이제 내가 주말
부부잖아 주말에 오면 쫓아다 방마다 쫓아다니는 거야 그래서요 왜 자꾸
쫓아다 기야 그랬더니 나 아기야 막 이러는 거예 너무 웃겨가지고 그러면서
원래 남자들 기 그래요 나기 근데 옛날에 그 말 안 했거든 그래서 내가 너무 놀래가지고 옛날에 내가 사랑해
100번 말할 때 한 번도 말 안 했거든 근데 지금은 자기가 먼저 사랑해 하고 카톡에다 하트를
날리는 그 이모티콘 어떻게 구입을 한 거 같아 옛날에 그 구닭다리이 그거
이모티콘 쏘라고 나한테 하트 그리고 먼저 사랑해 하고
엄마나 너무 좋다 여보 내가 내 인생을 쭉 해상에서 점검해 봤더니
내가 군대 가서 28살에 내가 완전히 이게 한창 나이
청춘이고 자신감 넘치고 나는 건강하다 이런 거를 느꼈던 것이 28
살이었어요 인생에서 그때가 젊고 건강했다 그 이후로 쭉 해상에 보니까
행복하다 건강하다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대요 그랬는데 요즘
행복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자신감이 충만하다이 생각이 요새는 계속 들고
내 나는 행복하다는 말이 계속 나온대 그리고 이제 일하다가도 웃음 나오고
어 일하다가도 막 기쁘고 완전 자신감 어떻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만들어요
저도 비번좀 알려주세요 군내가 정말 어 그래서 자신감 그래 저와 뭐 비의
통신도 같이 하니까 그건 알겠고 그러면 우리가 재혼 부부잖아 그러니까
어 당신 지금 몇 살로 돌아간 거 같아 내가 그렇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 그 좀 무한해 하더라고 그러지 말고 어 나는 내가 당신을 딱
체크하고 점검하고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당신 건강을 딱 경제에
올려 놨잖아 그러면은 나는 그것에 대해서 파하는 다른 사람한테도 전달을
해야 될 거 아니야 어 그렇지 힘이 되게 만 건강하는 거 아니야 나는
당신이 건강해진 그 모습과 내가 당신한테 행한 그 가정을 통해서 아픈 사람들에게 나는 전하고 싶다 어 그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당사자의 말이 나는 중요해 그랬더니 나는 무슨
생각했냐면 한 40대 된 거 같다 이렇게 아니면 때 초반 뭐 이렇게 말할 줄 알았는데 우리 신랑이 가만
이제 자기도 계산해 보고 이렇게 수하나 봐 한참 기억을 더더 나는 지금 30 10대가 된 기분이 그래서
내가 여보 너무 많이 간 거 아니야 내가 그랬어 그랬더니 아니라는 거야 내가 그걸 느끼고 있다
세상에이 눈도 잘 마주치지 눈 눈눈 계속 마주치고 자신감이 사니까
쫓아다니고 그다음에 스킨십하는 스킨십 어떻게 해요 스킨십 선 잡아요 손도 잡고네 뽀뽀도 하고 그거는
기본인거 옛날에는 내가 우리 신랑 자신감 주려고 항상 내가 먼저 액션
을했어요 자신감이 살아 나라고 근데 지금 제가 먼저 해 그리고 우리 그
시부모님 그 항상 생일 명절 이때 이제 가족들이 뭐 이거든 쭉 둘러
앉잖아요 그러면은 우리 신랑이 맛이고 나이가 제일 많잖아 근데 제일 애
보이고 어려워 보여요 동안 미모 세상에 이렇게 이쁜 사람을 갔다가
그래서 나는 지금도 우리 신랑을 떠 보고 떠보고 다시 봐도 너무 이쁜
거야 그래서 내가 가 그랬어 요보 여보는 계 진짜 그래서 내가 아
여보는 너무 이뻐 여보는 그 저기 젊었을 때는 더 이뻤을 건데 니 우리
신랑 이제 자신감 살아나 가지고 아 자기가 언제 이쁘단 말 많이 듣고
군대 가서도 이쁘단 말 많이 듣고 군인 가족들이 항상 이쁘다 그러고 그걸 지금 얘기하는 거 근데 금방
만났을 때는 그런 사람 아니었거든 야 나 어떻게 그 아픈 몸을 가지고 또
일을 하시고 나는 내가 신랑을 만난 것도 감사하고 하나님 은혜고 또 저희
신랑도 저를 만난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해하고 그러면서 지금은 이런
농담까지 해요 내가 우리 요보 만나자고 한국에 왔대요 너무 잘됐다 예
축하드립니다 북한 같으면 뭐 이런 거 해서 만나긴 했겠어요 아유 꿈도 먹고이 지역에서여 지역도 못 가고
마음대로 마음을 놓고 서로 마음을 나누지도 못하는데 아니 그 핸드폰 한번 통화했다고서 사람을 폐인을
만드는 나라가 미친 아 나라도 아니고 진 다이고 한국에서 태어나서 어
정상적인이 그 운영 국가 운영 체제에서 살아온 분들은 저들이 앉아서 무슨 말 하지 이럴 수도 있어요
왜냐면 본인들이 겪고 못 봤으니까 어쨌든 북한에 대해서 비정상적인 그런 이렇게 그 사이비
집단이라는 데에 대해서 좀 깨달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냐면 거기도 사람 사는 나라지
그래요 우리가 거기서 태어나서 살았어요 근데 이렇게 바깥에 이렇게 정상적인 국가들이 있다는 걸 우리는
몰랐잖아요 비정상 속에서 저희가 노예처럼 살았잖아 그거를 많은
사람들이 깨달으셨으면 좋겠어요네 맞아요 그래서 또이 유튜브를 통해서
이렇게 잔잔하게 구체적으로 전달이 될 수 있어서 저도 감사하고 또이 얘기를
들어 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 예 감사합니다 우리가 댓글로 소통을 하지 않아요 댓꿀 한번 보세요 정말 감사한
댓글들을 많이 달아 주셨어요 아 감사합니다 저는 그 항상 많은 분들이
저에게 그런 거를 아쉬워 하세요 북한에서 의사 하셨는데 예 그걸
한국에 와서도 의사하기 얼마나 좋겠냐 이런 얘기를 많이 듣고 저또한 그런 아쉬움이 많이
있었고 제가 앞서 이제 방송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에 와서 빨리
돈을 벌어서 자식들에게 보내야 됐고 첫 번째는 그 한국에 와서 다시 라이센스를 따는게 엄청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주 식 당일부터 시작해서 단순 동부터 시작해서 바닥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사람이잖아요 그랬는데 지금은 행복해요 왜면 의사 아니도 세상은 계속
발전해요 내가 우리 신랑을 살린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그
건강에 대한 그 글로벌 비즈니스 하면서 의사 경력이 있기 때문에
전문가지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 건강에 대한 최첨단 그 과학 기술에 대한 제가 강의도 해요 예 또 그에
해당한 그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찾아주는 그런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 비즈니스도 하고 예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 선한 영향력을 주면서 또 저희 경제적 활동도 하고 예
그래서 지금은 참 모든 것이 감사하고 그 뿌리를 찾아가 보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죠음 그러게요 지금 어 그 남편을 불쌍해 여기이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여기까지 오셨잖아요 근데 솔직히 김병의 효자다 이런 말이
있어요 때로는 왜 선생님이라고 지칠 때가 없었겠어요 그렇지만 그 밑에는 신앙의
힘이 가장 컸을 것고 어 선생님은 굳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의사를 안
하셔도 남편만을 위한 의사 를 하고 계시잖아요 그게 시작이 됐던 거죠 야
정말 너무 아름다운 진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 아 그래서 제가 전번에 이제
그 강은정 TV 출연하고 그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걸 우리 신랑한테 보여줬어요 보내주고 링크를 보내
주면서 거 여보 봐 그랬더니 알았어 했어요 우리 진랑이 여보 나 이거 다
봤어 아 여보 나도 그 유튜브 보면서 감동받았어 여보가 너무 잘했어 이러는
거예요 그러더니 여보 다음에 혹시 또 나가게 되면 내 얘기도 꼭 해 내가
북한에서 그렇게 구타를 당한 거 그것도 다 얘기하고 우리가 어떻게
돼서 한국에 오게 된 것도 다 얘기하고 그리고 우리 여보가 나를
살려 준 것도 다 얘기해 엄마나 나 그래서 내 놀
말해 선생님 정말 요정이세요 아 그래 그러면서 뭐라 하냐면 그 강은정 TV
거기 내가 직접 나가서 얘기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만아 어 그러면서
이래 여보 나를 대신해서 얘기 잘해서 엄마아 남편분도 말씀을 곱게 하시네요
그래서 내가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막 생각만 해도 사랑하고
생각만 해도 기쁘고 떨어져 있어도 항상 기도하고 같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휴
아니 그래 가지고 뭐 상사한테 선물도 받았다면서요 신랑 상사분
테 그 어떻게 돼서 그런 걸 받은 거예요 저희 신랑이 하루 이제 주말에
집에 들어오시는데 문을 열고 쑥 사람이 들어와야 되는데 문을 열고 계속 사람이 안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을 뻗치고 지금 뭘 들고 들어오는 거예 큰 과일 선물 보자이 들고 들어 뭐지 명절도 아닌데
그랬더니 여보 선물 선물하는 거 나 같이라는 형님이 여보 테 선물을
보냈어 이러는 거 그래서 아 여보 내가 그분한테 해드린 것도 없는데 뭔 선물이야 그랬더니 고급 과일 세트를
탁 보냈더라 형님이 계속 지켜보더니 이런데 너는
주말에 집에 갔다 오면 광이 번쩍번쩍 광이 번쩍번쩍 나네 맨날
그런데 그래 우리 신랑이 또 그런데 다 우리 마누라 더이다 또 이러면서 같이 농담하고 그랬더니 그분이 야 너
와이프는 참 대단하다 이러면서 또 몇 번 칭찬을 하더래요 이게 그 현장에서도 이게 식사가 잘 나오지만
내가 또 내 손으로 여러 가지 또 음식을 만들어서 한번 이제 잘 포장해서 갖다 들렸거든요 그분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전달하고 왔고 같이 드시라고 많이 해서 갖고 갔는데
그러니까 그분들이 그 생각을 한 거지 아이 와이프가 신랑한테도 잘하고 또
현장에도 이렇게 왔다 가고 정말 내조의 여왕이신 세월이 어느도 이렇게 시간들이 지나갔기 때문에 나는 그냥
그날 그날 다 지나간 일인데 그에 대해서 그분들이 너네 와이프한테 상을
져야겠다 그래서 무슨 과위를 좋아하냐 이러면서 그 내용을 얘기하는데 제가
너무 감사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어 여보 그러면 그 형님한테 꼭 당신이
잘해야 돼 나는 뭘 보낼까 그랬더니 아 내가 다 준비한 것이 있으니 걱정 마시오
이러더라고 예 그러면서 어 가정에서도 잘하고 직장 가서도 자신감 충만하고
예 그렇게 삽니다 전 북한에 있었으면 봉도 죽었을 인생인데 대한민국에 와서
제도를 잘 만나서지고 맞아 맞아요 또 대한민국에서 온 아내분도 만나서 진짜
새 인생을 사시는 남편 분이잖아요 예 어 지금 생각해도 참 어 대한민국에
어 왔다는 것이 너무 행운 중에 행운이고 잘 결정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러게 참 우가 항상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가장 불행한 집단에 태어났지만이 땅에 온 자체가 우리 인생이 성공한 우리는 축복받은
인생이잖아 맞아 예예 그래서 어 저희한테는 어떤 사명이 있다고 항상
생각을 해요 어 어떤 명이냐 우리가 사실 태어난 것은 북한이아요 북한에서
태어나서 거의 뭐 세계관이 형성되는 시절을 또 이제 사 속에서 또
대한민국으로 왔고 근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과 한국의 두 제도를 살아본
우리로서는 북한에 대해서 한국과 전 세계에 정확히 알려야 되고 또 한국에
대해서 북한의 정확히 알려야 되고 그렇게함으로써 인간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찾고 어 정말 사람을 정말 기중이 여기는 한 생명 한 생명을
기중이 여기는 그런 저희들이 또 거기에 대해서 기여을 해야 되고 예
그런 마음이 계속 시간 속에서 들어요 그게 이제 사명이다 예 사실은 제가 그
유튜브나 또 이제 그 매스컴에 나가는 거에 대해서 참 좀 약간 거리를 두고
이렇게 살았거든요 어 왜냐면 다른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북한의 두거운
가족 때문에 항상 내가 조용히 살아야 된다 왜내가 그들에게 이제 어떻게
해가 미칠까 봐 그음 생각을 거의 뭐 12년 동안 하면서 살았죠 근데
지금은 우리가 두려울게 뭐가 있어요 예 무엇이들을 강하고 담대하게 세상에
대해서 모든 진실을 알리고 바른 세상에서 저와 우리 후대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알리고 또한이 제도에 대해서 우리가
항상 고마음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주면서 어
살아갔으면 좋겠음 어 그 마음으로 나오게 됐고 내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도 항상 하면서
살아요 이들이 얼마나 용기와 결심을 내가 이렇게 할까 일단 우리 선생님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왜냐면 남북한의 가정을 다 돌보고
계시거든요 그건 정말 인간 승리이기도 하다라고 생각이 돼요 그 지금은 그냥
이제 유지하는 정도로 보내고 있는데 어 참 고마운게 그들이 그쪽에서 항상
자신감 있고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라져서 너무 감사하고 지금은 또
우리가 또 남편을 만나서 여기도 가정이 또 잘 이렇게 정착해야 되고
여기서도 안정권에 자리 매김을 해야 되니 어 그러니까 지금은 자식들에게
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토대를 마련해 주고 그쪽에 있어도 사람이
정신력이 어느 세상에서 사는가가 중요한 거죠 그래서 자식들에게 그랬어요 나중 거 엄마지만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된다 어 세상을 향해서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라 그리고 저는
또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우리 그 사랑하는 자식들을
어 보호해 주실 줄 굳게 믿고 언젠간 그들이 또 하나님 앞에 또 나오기를
항상 기도하지 예 그래서 저는 옆도 어 뒤도 돌아볼 세 없이 앞만 보면서
지금까진 달려왔어요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은 나의음 의 생계와 나의 어떤
삶을 위해서 달려온 거 같아요 근데 쭉 드는 생각은 이제 우리가 주변을
둘러보자 어 정말 나와 같이 이렇게 다 그 가정을 겪고 또 저보다 더
어려운 분들도 있잖아요 예 근데 이제 북한의 어떤 그 교육 제도 때문에 항상 이렇게 한국에 와서 우리 북한
분들이 어 전번 출연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말을 잘 못 해요 근데 그런 것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 친구가 잘됐을 때 내 주변의 동료와 이웃이 잘됐을
때 축하하는 마음음 정말 그 이웃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런
마음시기 질투보다 예 그런 마음이 그런 또 문화 이런 거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예 그래서 우리가 북한에서 이렇게 내려오신 분들이 정말 성공적
잘 정착한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 사회적으로 선한 일을 하시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분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분들 이게 위주로 해서 좋 문화를 만들고 예 서로
위하고 격려하고 세워 주는 문화죠 네네네 이렇게 해서 이런 좋은 모습으로 예 그래서이 한국 사회에
우리 북한 분들이 우뚝서는 모습 서로가 이제 협력하는 모습 이런 걸
먼저 보여 주면서 이런 모습으로 이제 통일된다면 예 그래서 어 3
4,000명의
음가은 지금 또 그런 마음으로 또 많은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예 그리고
또 지역에서 지역 사회에서 우리 탈북민들이 연대를 강화하고 네트워크을
강화해서 좋은 정보 공유하고 좋은 정착 경험을 공유하고 또 아픈 이들
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게 서로 소통을 잘해가지고 예 그 좋게 좋게 다 연결시켜 드리고
이런 예 생각을 할 때 아 할 일이 많구나 또 그것으로 인해서 행복하고
그렇죠 사실 그 누가 잘되면 우리는 진짜 몰려가서 축하해 주고 이거를
가장 많이 해야 될 거 같아요네 맞습니다네 사실 댓글 꼼꼼히 다
봤어요 밤에 예 보면서 그리고 또 우리 강원정 TV 시청해 주시는
시청자분들이 너무 감사하고 아 우리들을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어 한해 의사 선생님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이런
글들이 너무 많이 올라와 가지고 어 사실 물었어요죠 그 그래서 또 연기를
냈고 아유 너무 긴 시간 잘 들었고요 앞으로도 통일이 언제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선생님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한 일원으로서 그리고 한 남편의 아내로서
북한에 두고온 자녀의 엄마 사랑 갈 일들이 많은데 항상 건강하시고 더
좋은 성과를 이루면서 씩씩하게 더 멋진 모습으로 사시길도 응원하겠습니다
아네 감사합니다 어 남편도 좀 전해주세요 너무 감사합니다 그 너무
축하드린다고 합니다 예 예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또
인사드리도록 할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네 아면 안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예 너무 하셨어요네 a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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