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희 풀영상 2부] 국정원 직원들의 사적 대화를 들은 북한여자 두귀를 의심했어요. 자기 아내를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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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93 views Apr 7, 2025 #강은정 #강사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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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정#한국#가족#가수#강사#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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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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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이-g7i
1 day ago
어서오세요.
따님과 행복한 나날되세요.
저도 힘든 일을 겪는 와중에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태하고 당연히 생각했던 많은것들을 다시생각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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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윤진왕눈이
2 weeks ago
여기서도 뜨덕국 뜨덕제비 라고도 해요 서울에서는 수제비라고 옛날 한양에서 양반들이 그런것 같네요 그리고,뜨덕국을 지금 젊은 세대는 모를수도 있어요
참!! 문은희씨는 연극배우가 됬으면 잘 하셨을거 같아요 말하면서의 얼국표정 고개짓 손짓의 표현 정말 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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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명흠남성
2 weeks ago
모든분들이
어렵게오셨으니
모든사연추억으로남기고
지금부터는.한국사회에서
경쟁사회에서 노력하여
더큰꿈같고.모든일에
긍정에힘으로 다잘됐으면합니다
은정씨는.여기에서노력하여
좋은좋은인연만나
가정을일어.행복하게산답니다
노력은성공에어머니
말씀하는게.성실하게잘하겠네요
꼭 영원히 행복했으면합니다
영원히응원합니다 남북한통일을기원하면서
파이팅입니다 승승장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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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모-w8d
2 weeks ago
노란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두분은 ᆢ와인빛 장미 같아요 ᆢ주님의 축복이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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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esoolee
2 weeks ago
대한민국은 사랑이 넘치는 선진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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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선-x5f
2 weeks ago
문은희씨 마음씨 말씨 생각들 아주 건강하고 예뻐요 꽃길만 걸으시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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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물고기-j7w
2 weeks ago
화물 묶는 줄을 보통 ""바"라고 불렀어요. 화물바, 고정바
어렸을때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지금도 그렇게 부르나봐요.
인터넷검색하니까 팔고있네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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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듣다보면빵빵터져
2 weeks ago
사랑스러운 문은희님! ㅎㅎ
오시는 길 힘들었지만 정말 잘 오셨습니다 ~~ 축복합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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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나라-b6q
2 weeks ago
"우리는 하나다"
걸어서 금강산 ~~~~
걸어서 평양 ~~~~
걸어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그 날을 위하여 ~~~~
남녘과 북녘이 하나가 되고
휴전선이 붕괴되어 자유통일대한민국이
되는 그 날까지
강은정님 화이팅
☆한민족은 하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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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성-m2l
2 weeks ago
문은희님 뜯어국인가 뭔가 드셨다는 말이 너무도 가슴이 저려 오네요...항상 좋은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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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1bu2ar
2 weeks ago
강원도 춘천 출신인데 어릴 때 뜨더국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크고 보니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아서 잊고 살았는데 오랜만에 옛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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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색소폰
2 weeks ago
오늘 개스트분 생각이 바르시고 똑똑하십니다 열심히 노력하셔서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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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임-l8b
2 weeks ago
대구는 칼국수와수제비 한번에 먹는 걸
칼제비라고 합니다 ㅎ 자꾸 잘적응 하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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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gogo718
2 weeks ago
요새 아버지는 왜 안 나오시나요? 아버지 이야기가 재미 있는데 빨리 초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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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좋아
4 days ago
국민이 나라에 위임해서 하는겁니다.나라가 하는게 아니라 국민이 하는겁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나라가 모든걸 다 하는거죠. 대한민국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나라에게 일을 위임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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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명-u4s
2 weeks ago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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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rz6ng9nj3z
2 weeks ago
천주교도 하느님을 믿는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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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x8u
2 weeks ago
호랑이보다 더무서운 꽃감. 국정원요원보다 무서운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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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f4n
2 weeks ago
베트남, 라오스 경비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50명 이상이 떼로 넘어 가는데 몰랐을까? 모른척 했나? 어째튼 고마운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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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h4z6e
2 days ago
어린시절 먹을것 별로 없을때 먹었던 기름둥둥뜬 미역국이 어른되어 최상급 한우로 끓인 미역국보다 맛있었습니다. 입이 고급이 됐다기보단 그때 처했던 상황이 그렇게 맛있게 느껴졌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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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거를 좀 아까 가정사라고 부끄럽다고 얘기한 거예요 임신한 거를 아니 왜 음 근데 임신한 거 알고
출발을 했어요 아 그때는 그렇게 좀 완전히 배 완전 내가
입실했다고 생각 못 했어요 진짜로요 근데 태국에서 내가 이렇게 우리가
하는 생리가 있잖아요 그거 막 건너뛰니까 북한에도 정점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근데 설마 내가 그럴리라고
생각 못 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안 되겠다 그래서 도망치자고 우리가 했죠 음 도망치려고
다착도했어요 음 어떻게 이분이 장마당의 시장에 뭐 살아 나갈 때 도망치자
그래 그렇게 하다 보니까 하여튼 시간이 거기서 한 달이 있었어요 음 도망치려고 했는데 안 나왔죠 문 열고
북한사람도 못 하는게 있어 그 열쇠를 작두질 했는데 열리더라고요 그래서 열번 나왔는데 옷도 다 갈아입었다마다
우리 지키는 줄 몰랐어요 아 진짜 왜냐면 잡힐까 봐 나왔는데 그 밖에
우리를 봐 주시는 분들이 딱서 있더라고요 어디 가시려고 그러면 하더라고 소리 그래서 다시 들어온
거예요 들어와서 그다음에 그 사람들 자체가 엄청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따뜻하게 대해 주죠 그때는 처음엔 이해가 안 되고 거짓을 넣게 이제 말하잖아요 안녕하세요.이는 말 자체도
전부 거짓으로 저 무슨 말 자체 왜 그런가 우리는 안녕하십니까 한다는데 안녕하세요 이러니까 저건 뭐 저렇게
완전 거짓 같은 생각으로 생각했다는데요 처음에는 그게 다 사랑인 것도 모르고 근데
성경이라게 참 이상하더라고요 암성하고 암기하고 읽고 하다 보니까 어느 대목에선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는
그 대목이 사랑한다고 누가 우리를 세상에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 있어
꼭 이상하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 꽂치더라고요 근데 한 번 두 번
접하는 거하고 달라 가지고 탐 접할수록 이상하다 일꾼들이 아침에 온
사람이나 정심에 온 사람들나 일꾼들한테 똑같이 주는 거 있잖아요 뭐 깜짝깜짝 놀랬거든요 북한을 다
평등하게 일해서 나눠 먹자 어떻게 차분의 개념에서 이런게 나올 수 있지 왜 성경이 이런게 나오지 성경이
이러지 말아야 되는데 이건 대체 성경이 주체상 가지다서 뺏긴 건가 내가 알는 아니 성경은 십자가는
완전히 간첩 진짜이다 도적이라 써 죽일 정도로 무섭게만 알았는데 성경이
사랑이고 성경이 왜 이렇게 나오지 깜짝깜짝 놀라운 거 있잖아요 내가 아온 주체상이 왜 자꾸 여기서 나오지
왜 그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김일성의 주체 사상이 여기서 나오는 거 같지
어어내가 주체 사상 잘못 아는지 아니면 내가 성경을 잘못 아는지 모르겠는데요 내가 딱 알고 주체상이
여기서 나왔어요 아니면 성경이 지금 주체상에서 뭘 뽑아냈어요라고 물어봤더니 김일성이 집안이 몽땅음
크리차 집안이어서 주체 사장이 여기에서 뽑아낸 거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성경을 벤츠마킹했지 악기적으로 어 그렇지
깜짝 놀란 거예요 그 이렇게 주체 세상을 가만히 터가다 보면 좋은 이미지가 막 사회주의라는 개념 그니까
좋은 이미지가서 나오거든요 실현되지 않지만은 계속 아 이해가 되는 거
있잖아요 아 이게 진실이라는게 여기에 있구나 진정성이라는게 여기또 진실이
여기 있구나 우린 이때까지 거짓된 삶에서 거짓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여기에 석교 살아왔구나라는 게 거기서
좀 잘 먹었어요 그렇죠 잘해 주죠 북에서 음식이 많잖아요 그가지 음식들
다양하게 또 근데 다양히 북한 사람들이 오자마자 뭘 먹기 싶어 했겠어요 김치다 그냥 고기죠 고기
계속 거기를 엄청 사줬던 거 같아 근데 저는 원래 거기를 잘 안 좋아했어요 근데 그 언분들이 엄청
거기를 좋아하니까 하루 새끼 거기를 했었던 거 같아요 아이고 세상에 그렇게 있때 이제 한국으로 출발하게
된 거예요 네 그렇죠 어 근데 태국까지 갈 때 어려움은 없었어요 어이셨어요 음
라오수 태국을 산을 넘었는데 고생했어요 너무 고생했어요 아 고기는
뿌러구가 나서서 우리를 인도해 주는데 산울 일행이 저희만 있는게 아니고요 중국에서
넘시던 분들을 같이 넘겨 주더라고요 그때가 한 어 60명을 같이 일행을
넘기는데 일행이 너무 많아 가지고 무섭더라고요 뭔가면 나이 두신 분들 계시잖아요 그분들이 같이 일행을
넘기는데 따라오잖아요 그 마지막에 다 와서 들어가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응 그래서 내가 잘못
선택했나 내가 왜 아무렇지 않았는데 내가 왜 첫초 때까지 잘 있다가 내가
왜 마지막에이 길을 선택했을까라는 생각 처음에서 후회해 봤어요 마지막에 라우스 국를 넘을 때 라우은
공산국가라고 이미지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라우스 국경을 잘 넘어야 된다라는 생각에서 그래도 무사히 다
한 명도 안 잡히고 태구까지 들어갔네요 맞아요 그래요 근데 중국에서 우리가 태국까지 가는
보스로상에서는 그때 몇 명은 내렸어요 내 어떻게 내리는가면요 우리가 중국에서 태까지 가는 길에서 그
뿌로구가 또 있잖아요 근데 그 중국 시민권 중국 주민 등록을 나눠 주더라고요 그래서 조위도 받고 거기
일행이 한명 정도가 한 보스 탔어요 주더라고요 근데 솔직히 우리 다섯 명이 직행이고 나머지는 다 중국에
사시던 분들이라 중국말 하고 있죠 저희가 제 문제란 말이에요 우리는 바로 말 시키면 북한 말밖에 안
나오거든요 음 그런 이미지에서 지금 보스에 딱 탔는데 중국 사람 딱 같이 탔거든요 탔는데 보수가 떠나면 말을
시키면 말하지 말라 하더라고요 그런데 오는 공간에 딱 어디 딱 섰는데 경찰이 그 공안이 올라오더니 지민
주민 곱를 하더라고요 근데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처음으로 하나님 접해 가지고 기도를 할
때거든요 그 당시 하나님밖에 없잖아요 그 처음으로 기도해 봤어요 그 당시 하나님으로 대한 기도를 나 주님을
처음 믿고 처음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여기서 저 공안이 말시키지 않고 바로 지나가게 해
달라고 우리 다섯 명이 같이 어 쭉 탔는데 내 앞에 앉아 있는 친구가 훨씬 한 거예요 그 친구가 이렇게
공간에 지나갈 때 뭘 딱 떨은 거예요 떨그다 보니까 공간하고 눈이 딱 맞쳤거든요 그 친구가 내렸어요 말을
시키다 보니까 중국말을 했어야 되는데 중국말 할 수가 없잖아요 그 친구가 내리고 내리고 그다음에 중국에서 사는
북한 사람들 내렸어요 그러니까 사람들 자연스럽게 중국말 했는데도 불문하고 왜 내리는지 모르겠어요 뭐 틀렸는지
아 그들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모르지 어떻게 되는지 어 잡혀갔겠다 그러면 그러니깐요 너무 안스럽죠 저
공안이 그 선택를 하더라고요 랜덤이 옹 내 옆을 바로 지나가게 해 주세요
그 공간에 바로 내 옆을 지나간 거예요 세상 아 그래 한번 숨저해 봤네요
아 정말 인생은 참 더박인 것 같아요 죽여보고 아 진짜 누가 할까요
우리 마음을 아 진짜 지금 편해하게 이야기를 하지만 인생은 그 드라마
자체 그냥 액션 용하다 이렇게 나도 표현을 하고 싶은 거 같아요 네요 야
문득문뚝 생각이 나요 그니까 불과 17년 전과 지금 후의 삶이 저는
너무 바뀌어 가지고 근데 그 과정 속에는 어려웠던 일들 정말 이제
목숨을 걸었던 이런 일들이 있잖아요 근데 지금의 너무 평안한 삶을 사니까 그때 그 일들이 오히려 더 막 놀랍게
막 나 그때 어떻게 넘어왔지 막 이런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럼 그 수영소
안에서는 우리가 흔히 또 감옥이라고도 표현을 하죠 어땠어요 아 저는 어래 안 있었어요 열흘 있다 나왔어요 제가
배 임산부다 보니까 일제를 갖고 탈북을 한 거예요 네 그러다 보니까
아니 그거를 좀 아까 가정사라고 부끄럽다고 얘기한 거예요 임신한 거를 아니 왜 음 근데 임신한 거 알고
출발을 했어요 응 그렇죠 아 그때는 그렇게 참 완전히 배 완전 내가
입실했다고 생각 못 했어요 진짜로요 근데 태국에서 내가 이렇게 우리가
하는 생리가 있잖아요 그거 막 건너뛰니까 북한에도 점점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근데 설마 내가 그럴리라고
생각 못 했어요 전혀 북한에서 거리라고 하잖아요 거리가 없이도 없었
저 안 걸리됐거든요 근데 깜짝 놀렸어요 피을 북한에서 고리라고 합니다 아 여기서 피이라 해요 피임
또는 뭐 루프를 낀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래서 버리라고 해요 그래서 몰랐어요 또 저는 또 생일 뭐 좀
이렇게 건너뛰는 편이라 몰랐죠 네 네 또 제가 이게 생일을 한 두 달
건너뛰니까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그다음에 입술리 하는 거 있잖아 입도치 북한에 입술이라 하잖아요
입도치 생기니까 아 내가 둘째가 있는데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열흘 만에 나온 거예요 음 전 빨리 나왔어요 그래서 임신을 했다고 얘기한 거예요 거기서 다 검진하던데요
검진하니까 딱 나오잖아요 예 네 네 그렇게 하고 바로 우리 여기로 왔죠 우리 대한민국에 비행기 타고 오잖아요
네 변기 타고 변기 타는데 그 빙기를 처음 타오잖아요 그 제가 그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우리 대시를 보면서 우리 꿀꼬꿀리를 보면서 그 당시 아 비행기를 세상에 한번 튀어나서
비행기를 타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내가 비행기를 타고 시끄는데 내렸거든요 내리면서 야 그때 그
사람이 어떻할까 너무나도 그 감정이 어떻게 말할 수가 없어요 구름을 타도 그렇게 좋을까요
우리 내리잖아요 인천공항 너무너무 있잖아요 와 너무 너무 뭐
와이 이렇구나 근데 어떻게 그 황물한 걸 표 못 하게는 거 있잖아요 와 이게 뭐이지 너무 웅장하고 멋있고
그다고 마중 나온 분들 있잖아요 하나같이 그정원분들 국정분들 너무 그렇게 깍두하게 대해 주는 거 와
우리한테도 깍두시 이렇게 대해 주시고 음 그렇게 하는데 돼서 꼭 감동을 받았죠 아 그래요 네네 그러면은
임신을 했기 때문에 배려도 또 엄청 있잖아요 어떤 것들이 있었어요 저를
제가 요리에 한 분인가 요리 한 번씩 계속 데리고 산부인 부인국 있잖아요
곰지를 가는 거 있잖아요 북한에서 그런 일 없잖아요 여기는 먼 사람들 다 같이 있잖아요 있었어요 덕방에
있고 완전 완체 자유지 뭐 너무 놀랍지 않아요 병원이 놀랍다 정도
아니죠 다 놀랍죠 우리가 그런 걸 봤어요 그리고 어리둥절한 건 둘째고
뭐 하나 뭐 가서 표를 뽑아야 되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잖아요 뭐 다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동행하시잖아요 하면 그분들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딱 뭘 갖다 거예요 우물의 개구리도
그렇지 않죠 저는 우물보다 더 같아요 제 생각에는 너무나도 눈에 들어오는게 다 황하잖아요 그러면 그 국정원
안에서 입덧 탈 때 막 먹고 싶은게 생각이 나잖아요 얘기했어요 물어보죠
뭘 먹고 싶은 거하고 북한에서 제일 먹고 싶었던게 저는 저는 북한에서 또둑이라면 생각나요 두덕국 응.국
밀가루 이렇게 또둑도국 또둑 먹기 싶다고 말했더니 또국이 뭐인지 모르겠대요 그래서 여기서 수제인데
설명해 버려요 그래서 또국기라고 말했는데 이해가가 말이죠 아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가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밀가루를 이렇게 반족한다고 어어 그다음에 어떻게 하는
거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에 이렇게 꺾서 감자체를 이렇게 쫙 채갈채 이렇게 파 양파 닭다가
넣는다고 했더니 그다음에 어떻게 하는가 하더라고
반뜯어뜯어 그게 뚜덕이라고 했다 말 뜯어서 넣으니까 뚜덕국이라는 거 그랬더니
수세비국이래요 같이 가세요 어 그래서 갔더니 음 수세비국이 깨도고 깨
수제국도 있고 요런 가지가 있더라고요 아 나 엄청 먹고 또 사 가지고도 왔어요 어 그랬어요 어이 맛이
맞았어요 맞는다 정도가 아니죠 너무 먹고 싶었던 잘하는데 나 어제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몰라요 야 이게 참 나 이처지 또국이 뭐인가 하니까 설명이
돼야 말이죠 반죽을 해서 설명까지 해 줘서 내가 그래 이랬어요 아니 같은
한국어를 쓰고 같은 말을 하는데 왜 이렇게 안 통하지 내가 이랬어요 아니
이게 분단 장벽만 높은 줄 알았더니 오너의 장벽도 높네 맞아요 맞아
지금도 그래요 진짜 눈물은 뭐 계속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원래 또 이렇게 임시불 때 많이 울잖아요 변화가 있죠 너무 울어서 계속 울었던 것 같아요 음 뭐 너무
뭐 선수 갖고 다니며 울었던 것 같고 여러 가지 갈동으로 많이 울었던 것 같아 훈달 생각도 하고 음 그다음에
그 둘째에 대한 생각도 하면서 많이 울었던 것 같기도 해요 참 너무 놀라운 거 많죠 아 하여튼 야 진짜
국가국이랄까요 대한민국은 천국 난 지금도 그래요 우리 대한민국은 천국이라 할까 그래요 너 요즘
천국인데 왜 힘들다 그래 너무 좋지 않아 뭐 그래리 기분이 좋은데요 날 그래요
학교 나가금들 그래요 우리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요 지금도 북한 사람들 쌀 1kg를 벌겠다고 어떻게
노력해야 되는데요 지금도 같아요 제가 권한의 행군 때 제가 외원이 잘 살다 보니까 제가 하웅이 우리 어머니 오빠
큰집들이 다 잘 살다 보니까 외원에 갔어요 우리 거는 이렇게 바탕이 좋다 보니까 그 당시도 보안소 부부장인가
했어요 우리 잘 살았는데 고난의 행군 때라 돈 받으려 갔겠죠 돈 주겠다고 해서 그래 갔는데 진짜 우리 달러를
쓰더라고요 굶어 죽어서 어느 정도로 굶어 죽는가 하면요 큰아버지가 우리 외삼촌이죠 외삼촌이 차 갖고 나오겠서
역전에 서수 기다리라 해서 역전 기다리고 있는데 진짜 지금도 생생하게 난 시체를 그때 제일 많이 봤던 거
같아요.서 있는데 이렇게이 뭐야 구름마 딸다리에 안내원들이 구름마에다
아이들 시체를 싣고 나오는데 제가 내가 거기서 40분 정도 우리가서 있었어요 시체를 달구지 세 달구지
실록할 수 있는 달구지 양을 갖다 불에 넣는데 이렇게 꿈틀꿈틀거리는 아이들 있고 이게 바지 보니까 어떡을
싼 아이들도 있단 말이에요 세 달구지 갖다 불에 넣더라고요 어떻게 세 달구지인가 아는가 하면요 달구지가
세기가 와서리 아이들을 막 집어고 가는 거 있잖아요 굶어 죽은 아이들인 거예요 굶어 죽은 아이들이 친
아이들이 나는 그래서 지금도 그래요 권난 행할 때 어디에서 사람 제일 많이 죽었는가요 그러지 한문 것
같아요 그래요 왜 난 내 어릴 때 내 봐서 내 눈으로 봤거든요 40분을 소했는데 그러니까 그게 사람이 나쁘지
않지나 우리 학교에서 내가 북한 사람데 우리 중독 상담할까 저 헌자거든요 탈북민이 응 탈북미
환자인데 우리 카이들 그래요 북한 사람들 참 좋다 멋있다 그래요 왜 그런가면 내가 멋있는게 아니고요
이렇게 나누며 사는 삶을 보고 누나는 참 부사인가 봐요 그래 그래 부사
아닌 건 아니다 뭐 왜 내 마음은 항상 부자야 그러네 그러니까 아니 누나가 너무 잘 나누잖아요 그 뭐나
혼자 안 먹고 항상 나눠주고 그리고 북한 음식도 항상 해가지가 다 나누어 주고 놀래요 마음이 부자니까 부사라
할 그러거든요 근데 제가 말하고 싶은 거는 우리 북한 사람들 마음이 참
어때요 군 나라가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지
나 지금도 그래 마음이 안 그래요 근데 오래된 사람들 내가 만나봤는데 그 사람들 저더라고요
우리 씨 너무 그러지 마세요 라고요 그래서 네 너무 나누지 말라 어 그래서 그렇게 하면 한국에서 못
살아요 그래서 내가 언니 한국 원전 얼마 됐어요 20년 됐대 그래서 언니 한국 사람 다 됐네요 그랬어요 자
자본주의 사람 다 됐네요 내가 그랬거든요 음 날 보고 너무 나눔 살지 말라 하기 때문에 그니까 나눔이
나쁘다는게 언니가 너무 많이 나눕니다 나누는 거 같아서 어 조금은 좀 자지했으면 좋겠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언니 나도 내 밖으로 자지하면서 살거든요 나도 빗이 왔는데 이렇게 살면 되는 거 아니에요 내가
그랬거든요 그 언니가 말하자는 얘기를 제가 알 거 같아요 물론 저 불량배
국가에서 결국엔 주민들을 그렇게 내머놓는 거잖아요 그래서 비록 그렇게 살았지만 제도적이고 인권이 살아 있고
나라에 오니까 나도 이렇게 변화가 됐다 이런 얘기인 거잖아요 그렇게 살던 내 몸이 이게 와서는 이렇게
나누며 살다 보니까 심지어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나를 자지할 정도로 내 말이 그 말인 거예요 나 그렇게
살았잖아요 내가 18년도까지 19년도까지 근데 이렇게 변화된다는 말이에요 그니까 걱정을 안 하셔도
된다라는 말이죠 아주 오늘 좋은이 토론의 방송 같습니다 [음악]
어 언니 우리가 저번 시간에 이제 국정원에 와서 임신된 것까지 들었어요
국정원 저사는 어땠어요 소락했어.음 그때도 말할게 별로 없었고 삼춘
이야기를 좀 많이 물어보셨어 그때 음 언니 그 삼천 오 사장님 사건은
대한민국에서도 엄청 떠오들썩 속겠어 그러니까 그분들이 이미 좀 다 아시더라고 그거 좀 자세히 해 달라고
이야기해 달라 하더라 그래서 그걸 좀 자세히 이야기해 줬어 경금 같은 받았어 엄청 받았어 많이 받았어 나
깜짝 놀랬어 왜 돈 주는가 했지 그래서 나 이게 국가 비밀에 들어가나 난 또 엄청 겁이 났어 100만이
130만인가 받았는데 너 날 왜 이렇게 돈 많이 주지 다른 사람들 뭐 신만도 받고 덜 못 받았다는데 그런
것들이 북한 체제를 파악하는데 우리한테는 중요한이 정보 자산이 되는
거예요 갈 수 없잖아 난 너무 놀래 가지고 왜가 나는 아무 비밀적인 거
말 한게 없는데서 내가 아는 것만치 우리 집안에 대해서 아는 것만치 이야기했는데 북한 더줄 않잖아
뺏아가지 뭐 그래서 깜짝 놀래 가지고 너무 혼났어 무섭더라 한 동만 아 130만 원 그 당시 5년 전에 보면
많이 받았네요 많이 받았어 참 그 임신한 몸으로 오는게 진짜
힘들었겠다 오는게 7개월을 꾸이 어정에서 다 보낸 거지 그러니까 내가
한국에 와서 3개월 있다가 인차 출산했거든 네네 세상에
국정원에서는 좀 어땠어요 잘해 주셨어요 진짜로 내가 원하는 대로
독방에 있었고 혼자 혼자 그까나 나는 입도을 하면 참 힘들어 진짜 힘들었어
계속 이렇게 심하게 하는 편인데 알지 아마 해보신 분들도 다 공감하죠 진짜
심하게 했어 어떤 때는 웃고 싶은 거 못 먹었잖아 난 그때 당시 말 못 하고 있었어
흰살밥 딱 보면 막 톡한단 말이야 그런데 그분들이 물어보시더라고 먹고 싶은게 혹시 있는가가 또둑 먹고 싶다
했더니 처음에 말이 통하지 않았어 말이 북한에서 생각나 밀가루로 이렇게
해 가지고 우리가 또이는 또둑이라고 말하지 거기서는 또둑이라고 하잖아 그지 그지 아 그걸 왜 그렇게 먹고
싶어 입덧을 하는데 막 죽게는 거야 그래서 또둑이라 하니까 말이 안 통하는 거야 또둑기 무엇인가고 물어봐
그분들이 또둑구고 모시더라고 수제이라고 수제이라고 해야 되는데 내 말이 구만 근데 난 수제이 아니고
또둑 계속 또둑이라 했어 그 우리는 북한에서 두어서 넣으니까 뚜둑이라고 했죠 그래서 그게 뭔 말인가 하셔서
내가 밀가루 반족해 가지고 이야기까지 했어 응 그랬더니 아 수제 수제비
먹고 싶은가고 맞다고 했더니 야 그분들 같이 수제비 먹어라 엄청 갔지
가는데 그분들 이야기하는거나 지금 듣는데 와이프 어떻고 저고 하면서 와이프 이야기한다 가만히 두니까
북한에 와야줄 있잖아 와야줄 생각나 와야줄 그 차 이거 차 와야 나무를
많이 했으니까 와야줄이야 눈에 기 너무 잘 있는다 막 여기서 와야줄을 뭐라고 하나 대한민국에도 와야줄
와이프 소리 하는데 와야 줄인 줄 알았지 그래서 와야 와야 그까 그렇게들은 거야 한국말이 익숙진 않고
그래서 듣다가 와야 아 와이프가 와야 줄 보고 하는 소인가 하고 물어봤어
아니래 그 와이프가 와야 줄이 아니고 그럼 와이프가 뭐 뭐예요
아내 아내를 보고 와이프 한데 나 그때 되게 웃었다 안 그래 우리
북한이 있을 때 와이프를 와야 몰라 모르지 않아 와이프 와이프란 말 안 하지 내 편네 그렇지 내 편안네
애미네 이런 말을 쓰죠 그러니까 처음 들었어 와이프란 말 나 그때 차 타고
나가면서 입도 하면서도 그 말이 제일 생생해 와이프 처음으로 듣던 생각 어
근데 와이프에 대해서 무슨 말 하던가요 아가나 와 엄청 무섭다
국정원 그 우리 생각에는 북한에 줄 때 국정원 여원들이다 하면 어떻할까
많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만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 솔직히 그랬어 나가 오기 전까지도
그랬는데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편한 거야 왜 나를 태워 가는데도 불문하고 가정사를 이야기하고 있잖아 그래 그래
근데 집에 딱 들어가면 와이프가 너무 좁대 어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처음에는 와이프를 와이줄로 생각했어 그게 무섭다 소린가 어 근데 들어보니까 그 이야기 아닌 거야
그래서 내가 물어봤지 그랬더니 어 우리를 말하면 옆혔네 어어 자기 아내였던 거야 근데 너무 무섭다 거야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아 참 편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국정원 이게 진짜 많나 이 국정원
요원들이 많나 뭐 이런 정도로 참 따뜻하게 느꼈던 거 같아 그니까 너무
막 어떻할까 담을 느꼈구나 어떻게 가면서 좀 구경은 했어요 엄청했지
어땠어요 서울 풍경이 어떻던가요 아까 TV는 좀 북한이 있을 때 영활로는 많이 봤잖아 그지 어 그런 거가
비슷했고 나가 이처지 이런게 가는데 항냉면 뭐 이런게 써 있 그래서 어
왜 저기다가는 하문 냉면 우리 북한에서는 군일날 서울 냉면 써보다가는 우리 있을 수
있어잖아 대한민국 없어 군일날 썰이 왜 저기다 하문 냉면이랑 써보채지나 그게 진짜 이초안죠 어 진짜로 그래서
저기 왜 하웅 냉면이 있지 물어봤어 저 화목 냉면이 어떤 냉면일까요 하더니 진짜 화목 냉면이 맞대어 깜짝
놀랬어 와 어 저런 꼴 간판 저렇게 북한 이름을 따다가 붙여는데
괜찮으세요 괜찮대 그때 조금 눕혀서 아고 자유라는게 이런 건가 내가
붙이고 싶은 일은 붙여도 되는 건가 근데 그때는 이해를 못 했어 아 진짜 이해는 못 했고 조금 우심스럽기도
하고 아 진짜로 왜 하 냉면이 거기 있는지는 몰랐어 근데 물어는 봤지
그게 이제 선이라는게 있죠 있어요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훈을 잘못 사용하면 방종이 된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시민분들께서 오셔서
이렇게 음식을 전파하고 고향 생각이 나서 만들면서 식당을 이렇게 발전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 보니까 평양 냉면도 있고 다 있잖아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걸 갖고 뭐라고는
안 하죠 근데 언니 말대로 북한에 이제 서울 냉면이라고 썼던 당 난리가
나는 거 당연하지 왜 그런가면 내가 한국도 요사람이다 뭐 청진이다 아
청진 냉면 할 수도 있고 연사 이름을 딸 수 있단 말이야 그거는 고향에 대한 구려움에서 할 수 있는데 그건
너무 고맙기도 하고 따뜻한 그런게 있잖아 어 그거 너무 좋은 거지
그래서 깜짝 놀렸어 와 저게 뭐지 근데 그때까진 이해을 못 했어 그렇지
뭐 보이기 위한 건지음 뭐 저게 진실인지 하는 건 몰랐지 근데 조금은
내가 놀랐던 것 같아 응 먹어봤어요 맛은 나 냉면 너무도 좋아해 지금도 좋아해
냉면 근데음 솔직히 내가 북한에서 먹던 맛은 달라 음 그러니까 어때
다른가는 잘 모르겠는데 어떻할까 지금도 나는 평양냉물을 좀 더 좋아해 하운 냉명보다는 음 그리고 북한에서
아마도 잘 좀 있는 거 같아 여기서이는 잘 먹어 잘 먹고 있잖아
아 수준이 달라진 원하는 감자 엄청 좋아하는데
대단 감자 생각나서 못 살아 대단 감자 너무 맛있지 그래서 강원도에서 무조건 감자고 옥수수 갖다 놓고 나는
냉장고에다 놓고 찌 먹거든 응 지금도 그런데도 그때 먹던 생각이 야 잘 안
나 잘 안 돼 그래서 내가 아 이게 입도 전 달라졌구나 그럼 응 달라줬어
생각만 달라진게 입도 입도 응 입맛도 변했다 그렇지
그 여기 와서 먹는게 더 이제 맛있다는 얘기죠 그지 수급이 높아져 가지고 그렇지 어 북한의 그 뭐
한우랑 언제 뭐 북한 한우 15년 한우 소가 죽어야만 먹어 볼 수
있잖아 소가 죽어도 아무나 먹 4시간 불 때문에 꾸려야만 즐기고 느린내
나는 그 소기 그런 것도 얼마나 귀하고 떡이한데 그것도 아무나 못나
작업반에서 서아 주어야 그 작업반 사람들이 한 점 먹어 볼 수 있잖아요 사고 뭐 지리 때가 이게 불리장이
떼가고 저조마다 떼가고 없지 근데 나는 끝내면 못 먹겠더라 너무 누리네 그러니까 누리네 나도 4시간을 꾸려도
있지 않잖아 야 근데 여기 거기는 살살 녹지 살살 녹다 정도가 아니지 그거 한우라고 말할 수 없잖아 군대도
지금 입맛이 변해 가지고 한우 골라가면 먹어야 되잖아 막 먹지 않잖아 그래 그래 그니까 놀랍지음
아니 뚜덕국은 입에 맞던가요 너무너무 맛있었어 와 난 너무 맛있어 가지고
그래서 너무 맛있다 했더니 이 보니까 어느 대통령인가 대통령들이 많이 다녀가셨더라고 어 그 집이 깜짝
놀렸어 다 진짜 맛집이었더라고 근데 거기 가니까 뭐 깨 어 둘깨구도 한
거도 있고 요러 가지로 먹음을 했는데 난 너무 맛있어 가지고 아 나 갑자기 먹고 있잖아 나 지금 근데 그게 지금
어딘지 잘 모르겠는 거야 그때는 처음 대한민국에 와서 그분들 따라갔더니 기억이 하나도 안 나 아 인터넷 치면
되지 대통령들이 가능한 뚜덕국집 수미집 그니까 지금은 집에서 해 먹을 수 있으니까 어 지금은 해 먹는 거지
그래서 괜찮고 아 진짜 그때 너무 맛있었지 입도을 하는 데다가 진짜
그랬던 기억이 나고 뭐 그때가 몇 월이었어요 그래요 어쨌든 대한민국에서는 입도 다 할 때 먹고
싶은 걸 다 찾아서 먹을 수가 있으니까 감사하고 북한에서 뭐 우리가
어림도 없지 그니까 아이 당연한 곳이 그래서 북한의이 엄마들 보면은 너무
가슴 말씀이 짠하고 마음이 아파 불쌍하지 나는 지금도 우리 옆집 지금도 생각하는게 그 우리 옆집
정리엄마데 정말 못 살았어 근데 그 당시 출산을 했는데 출산을 해서
둘째를 출산했어 출산한 다음날부터 일을 해야 되는 거야 근데 퉁퉁 묶 겼단 말이야 나가서 그때부터 일을
해야 되니까 나가서 문제를 먹을게 없는 거지 그러니까 그 자기 밭에
배추가 있으니까 배추를 계속 쓸어놓고 감자 뚝뚝 매달을 뚝뚝 쓸어놓고 지금 어느 때데 근데 진짜 힘들게 살아
그래가지고 꾸린 걸 지금 정의 엄마가 먹은 거야 근데 너무 배고프고 호기지고 출사를 검찰지 며칠 안
됐거든 그게 나가 보니까 완전 형편없이 붙여 가지고 지금 일을 그니까 남이내 지금 일해주고 지금
먹고 살거든 그래서 정여머니 들어오라고 소리 그래 와 가지고 이렇게 쌀밥에다 해서줬었더니 미역국
해서줬었거든 다 먹는 거지 뭐 이만하 그 북한 밖으로 날씨 그 군대
밖으로고 다 먹고 이만하지 두고로 다 먹는 거야 야 근데 그걸 두고 두고 이야기하는 거
있지 고맙지 그분한테는 진짜 아이낳도 먹을 수 없었던 거 참 불쌍하 감사한 땅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음쨌든 그러면은 거기서 이제 하나원을 넘어오잖아요
하나원에서는 괜찮았어요 그지 너무 좋았어 하나원에서는 또 배가에서는 다 나왔잖아
그러니까 어디를 갈 수가 없는 거야 그 나는 계속 병원한다는 것 같아 왜냐면 내가 그 당시 아이가 거꾸로
놓였거든 그데 북한은 아이가 거꾸러 있으면 어떻게 해 아이가 거꾸러 있으면 산부인까지 가면 우사들이
손으로 막 아이를 빙빙 돌가놔 아 여기도 그렇게 하는 분들이 있대 어 그래 빙빙 돌아 놓고 또 가서 또 자
줄까 한 주일에 한 번씩 가서 빙빙 돌아 놓거든 근데 여기 딱 가니까 이미 나는 달수가고 다 찾잖아 돌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거야 어떻해 응 그러니까 그분이 그냥 그 상황만 봐주더라고 아이가 제대로 푸는
것만 봐주고 이제는 수술을 해야 된다 하더란 말이야 그러니까 병원만 계속
병원만 다니 생각밖에 안 나 철성분 뭐 철 이렇게 철분제 그다음에 이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용량 뭐 이렇게만 나를 키워 해 줬고 그다음 중요한 우리가 나가서음 중요한 검사
그다음 검사 뭐 당검 이런 부과하고 또 교육이 필요하잖아 내가 한국에 나가서 살를 자면 그 중요한 부분만
참가하고 많이 못 갔지 그니까 교육이 지금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배가 이래 가지고 어디로 병원에서 안
놀랬어 나는 북한에서는 뭐 3부인가 못 초파로 아기 손가락 뭐 다
보여주잖아 그거 김정은이가 지금 서면서 주제 평양산원 뭐 이런데도
진짜 우려 기구가 지금 제대로 좋은 거 지금 다 딜긴 왔어 그렇지만 대한민국 대한민국 일반 병원이가 다
있잖아 따라 못 가 고덕 우리가 지방상들 평양 올라간다는게 수월에 3태자 4자를 나면 어떻게 뭐 올라가
보겠는지어지 않고는 안 되는 거잖아 그래서 말이 안 되지 솔직히 깜짝깜짝
놀랬어 와 또 가면 굉장히 막 다정스럽고 뇌물 거일 필요도 없고
번호표 딱 뽑고 누구이 은정님 뭐 이렇게 해서 들어가잖아요 누가 우리를
님 님자를 붙여서 불러줘 그래 우리 뭐 선생님이야 뭐야 님자를 안 붙이지
북한에서는 나는 그 현대적인 기계를 버는 것도 놀랍거 아예 손가락 이렇게
막 움직이고 할 때도 놀라왔고 난 제일 놀라운게 딴게 없어서 남자 여자 할 때 와 이걸 안다고 네 다 보여요
여잔지 남잔인지 알았어요 깜짝 놀랬어 기계도 다 보잖아 그러니까 그때 벌써도 와 대한민국 짱이다 이거는
평양에 가서도 할 수 없는 거잖아 인는 몰랐겠지 병원 가기 전까지 몰랐지 몰랐지 전혀 몰랐지 뭐였어요
딸이라 알려줬 때 근데 약간 섭섭했어 왜 섭섭했는가 난 아들 낳고 싶어서 계속 아들아돌 했더니 그 주위에
있잖아 우리 얼 때 국정원에 있는 그 북한 우리 다 친구들 있잖아 너 보니까 딱 아들 같아 하더라고 그래서
나 아인 줄 알아서 너무 좋아했단 말이야 근데 병원에서 딱 보더니 딸이래 그래서 북한은 좀 아들에 대한
갈망이 좀 그러잖아 근데 나 진짜 또 아들하고 싶어서 아들임 좋겠다 아들인
것 같아 했는데 딸이래 응 아 진짜 그때 생각하면 꿈 같다 음
진짜 꿈 같아 그러게요 참 집을 어디로 갔어요 집은 강명이에 내가
원하는 대로 난 강명에 가겠다고 했더니 딱 집이 하나가 나왔어 여자
쪽으로 하나 그래서 열심히 기도했다 왜 서지 광명이라니까 우리 북한이
광명이라 이름 많잖아 광명성 오 그래 가지고 왜 강명이 그렇게도
마음이 와닿니 아니 그거는 북한에서 사용했다 보이지 광명이라는 그 이름 자체 너무도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광명은 잘 멀으면서도 광명이라는 거 있잖아 어 그러니까 그니까 북한에서부터 이미지가 있는 거야
그래서 광명집이 딱 가겠다고 한 거지 근데 지도를 딱 보니까 소리에 딱 붙었더라 서울 같은 거야 그래 뻥대신
닭이지 뭐 그랬는데 강명하겠다는 분들이 한 여섯 명이지 됐지 그래서
추첨에 참가한 거야 내가 됐지 뭐 어 하나님이 기도를 잘 들어주시 주님이
오야 아멘 진짜 땡 내가 원하는 대로 왔고 구집이 나지 않고 있었어 그래서
또 센터로 갔지 그지 응 또 임산부지 이만젠 타이 가서 한 달 정도 있었어
거기도 잘해 주잖아 잘해 준다는 정도 아니지 놀랍지 정말 우리 탈북민들
진짜 친정처럼 대해주는이 제도 너무 감사해요 그렇지 너무 좋았어 먹는
것도 다 잘해 주고 말할 수가 없지 내가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었고 원하는 다 할 수 있었고 그니까 집을
떠나 왔는데도 어머니를 떠나 왔잖아 그 당시 떠나 왔는데 그 당시 그 센터는 천주교에서 했어 난 하나님을
믿지만 천주교 센터 했던 거야 근데 뭐 하나님 믿는 마음하고 그건 별도의 문제예 그 어떻다 수련 그게
수련님들이잖아 수녀님들이 딱 어머니 같더라고 참 종교가 다르다 보지
그분들도 이제 사랑하고 섬기는 거 같 똑같은 거야 어머니 같은 마음이 있었고 그런게 있어서 참 좋았어 내가
한 달 있었지만 지금도 주님들하고는 용기하고 있어 아 그럼 그거는이 이런
종교를 초월해서 어 난 처음으로 왔을 때 엄마 같았던 거야 그 지금도 정정 수님한테 전화도 하고 문의하고 그래
그래요 아주 잘했어요 집을 이제 들어가잖아요 어땠어요 집을
들어가니까 집은 다 똑같지고 이렇게 생긴 건 그렇게 생겼잖아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북한에 어디 아파 아파
새로 지단 말이야 2016년대 수행하면서 아 김종훈이가 현대적으로
지하라 근데 대한민국 집처럼 둔둔하진 않다 아 그러니까 모양만 비슷하다
그러니까 내가 깜짝 놀랬어 왜 그건 알아야 되는 거야 완전히 날림식으로 짓는 거야 우리가 완속도 속도전으로
짓는 거야 겨울에 엄청 춥잖아 물이 절절 후르고
지 그렇지 근데 형 아주이 비슷하게 지어 이렇게도 쫙 이렇게 외관
비슷하게 지워 실석이 다른 거지 어 우리는 부엌이잖아 불 때는 부엉 부엉이 없는 거야 그거하고 응
움을 참을 딱 나온다 불 켜니까 불이 착착착 오는거다 화장실 들어간 건 이미 화장실은 좀 알잖아 근데 내
화장실이다 저는 거기에서 너무 놀랐고 비란다 물 딱 여니까 베란다가 자꾸
통일 좋잖아 북한은 국기 안 돼 있단 말이야 비란다 그게 안 돼 있거든 응
와 여기다 먹다가 화분을 키워야 되겠다 저에 딱 들어가자마자 나 신물 좋아하거든 뭐 계획이 다 섰어 지금
야 그게 지금도 지금도 그렇게 키우고 있는데 그 당시에 그게 제일 좋고 음
야 도물참을 어디서 나와 그거는 김정은이 집에 가면 나올 거 당연히 나오겠지 그다음 비대 비대 비대 그
김종훈이 나오겠지 구는 우리 책임대 가도 비대는 뭐 써 그렇지 어 그니까 우리는 아마 김정일
수급에서 비대는 쓰고 있단 말이야 화장실 비대 그건 진짜 인정해 그건 인정해야 되는 거 맞아 비대는 우리도
우리 일반 국민도 우리 김정훈이 쓰고 있는 비대를 쓰고 있단 말이야 난 비대 너무 놀라운게 물이 쫙 나와
가지고 싹 씻어 주는데 아 나 왜 진짜 거짓말인 줄 알았어 지금 대형당 비료가 그 당시 한 돈 500인가 톤
500이 쫙 싹 놨어 지금 오빠 차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누가 하나 딱 오는 사람 있더라 얻더니 무슨 차를
기다리는가 물어보더라 네 했더니 날 가만히 보더니 그래 왜 이런 장사 하는가 하더라 비료를 가르치면서
그래서 왜 그래요 했더니 옷이 열어져 있기더니 보니까 비가 중국 돈 보이는
거야 중국돈하고 달라 자기는 돈 장사를 한다더라 그래서 그래 그러세요 참 대단하시다 자기 좀 돈 장사를
하래 근데 내가 그랬지 아저씨는 어떻게 돼서 이렇게 돌리는 장사를 하세요 하여튼 자기는 중국을 다니는데
응 몰래 어 그러면서 하는 말이가 같이 중국까지 어떤데요 하니까
화장실에 딱 들어가 앉으면 이제 비대서를 했던 거야 동물 차물이 딱 나오는데 뒤를 딱 보고 나면 딜란
소리 안 하자 북한 똥이라잖아 똥 싹 딱 싸고 나면 더물 차물이 딱 나와서 쫙 지쳐 준대 그래서 나는 무슨
생각했는가 하면 그대 그때 야이 사기꾼이 별로 없구나 따로 없구나
따로 없구나 이게 바로 사기꾼이구나 뭐 뭐 뭐 마지막에 뭐 덤을 참으라서 허물 다시 준다고
거짓말인 줄 알았어 왜 우리 삼촌 아무리 돈이만 하도 그렇지 않았었고 김정은이 남았었겠지 그 당시 깜짝
거짓말인 줄 알았어 어 3천 집에도 없었구나 없었지 중국에서 내울만 한대
내월만 해도 그걸 그걸 설치하자면 그거 어떻게 돼야 돼 그건 안 된단 말이야 사화인어 괜히 할 수 있는
개인이기 때문에 쓸 수 있지만 이건 없단 말이야 음 응 비대는 없었어 음.지 다 있지 않구나 그 말이
한국에 와 보니까 맞았구나 그지 맞는 거야 그래서 나는 와 진짜 한심하다
난 왜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아니었어 정말 어렵다면 아무래도
혼자니까 어머니 생각이 나서지는 그래도 북한에 비하면 난 항상 그래
그래 내가 기적에 안 쉬는 거 말이 너무 좋다 뭐 이런 거 어 그래 그래 응 나 그거 말에 너무 좋은 거
있잖아 우린 항상 하나 나오면 기적이 갖고 또 빨아야 되잖아 또 삶아야 되잖아
아 그런데 국이 없다 행복한 거 또 기조기도 또 나라에서 다 해 준다 내
자식 키우는데 나라에 다 해 주는데 뭘 어렵지 않잖아 그러니까 그럼
출산은 잘했어요 그지 우리 대한민국 어떤 나란데 깜짝 놀래서 다 해
주잖아 또 한몸으로서의 다 해 주고 그래 혜택이 있고 음 수술하니까 또 수술한 것만
집 한 병원에서 다 또 나오더라 나라에서 또 그만이 혜택이 있고 음 이게 잘 컸어요 잘 컸어 어 너무 커
유치 어린이 집 다니고 있는 다섯 살인데 초등학생인가 해 그래서 아 초등학생 아닌데요 엄마는 요렇게
작은데요 무어고 아기 출산하고
뭐 어떤 회사를 뭐 다니려고 한다든가 이런 알바라든가 이런 또 해 봤어요
열심히 아기를 낳고 알바는 별로 못 했고 할 수를 키워야 되고 하니까 공부에
열중하려고 한 거지 그니까 북한에서는 우린 공부를 못 했잖아 북한에서 장사만 하고 살았지 근데 내가 하고
싶은게 공부인 거야 그까 대한민국에 딱 오니까 할 수 있는 거 있잖아 그래서 그래 내가 한국에 온게 있잖아
꿈 있잖아 공부를 해야지 음 그래서 공부를 하려고 만 거야 수시 시험을
보는데 계속 떨어지는 거야 아 뭐 한국사라던가 하는 건 다 우리 역사
다 보니까 수월한데 나 깜짝 놀랐어 수준이 너무 높 너무 높아 가지고 와
그거랑 난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와 그나마 영어가 너무 힘들어 a
bd 잠어만 알고 있던 영어를 처음으로 더하니까 자꾸 용어서 떨어지더라고 그러니까 아이가 딱 두
살 지나서부터 수시 시험을 보기 시작했거든 음 떠보고 또 떠먹고
그래가지고 학교이 됐는데 세계 대학에다가 원하는 대학에다가 넣었지 넣었는데 다 통지서가 왔어 그러니까
북한 사람이다 보니까도 그렇고 또 시험 종수도 잘 나왔고 열심히 공부했나 보다 응 그리고 또 원하는
내가 또 원하는게 심리 상담 바가하다 보니까 원하는데 다 왔어 어제 총신대는 딱 중독이 또 들어갔더라고
중독 상담학가가 없는데 중독이란 개놈이 들어갔더라고
그래가지고 여기다 아 너무 좋다 그리고 진짜 원하는 대로 갔어 저번에
그 이제 북한에서 모르고 했던 그 장사 때문에 이제
이런 걸 배워 가지고 통일되면 그런 모든 것들을 바로잡는 어려운
이들을 이제 손잡아 주는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 중독 상담 학가를
들어갔다고 했죠 불쌍한 중독 너무 많아 그 몰라서 중독이 되고 알아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못 나와 거기서 못 나와 우리 대한민국 그래도 잘 돼 있잖아 제도가 돼 있잖아 우리는 제도 복지 이게
너무 잘 돼 있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빠지 빠졌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이제
우린 119 뭐 11 2 다 되는 거야 모든게 다 돼서 대초가 돼 있잖아 근데 북한은 그런게 있어
복지란 말 들어봤어 없잖아 지금도 없어 묶음 같은 이야기 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런 거 생각했을 때 우린 그래도 북한 사람이잖아 그래도
고향이었잖아 아직도 되게 있잖아 체제가 나쁘지 사람이 나쁜 건 아니니까 그렇지 우린 같은 피자 안
그런 거야 그래가지고 음 언젠가는 되면 어린이 집 다니면서 느낀 거 없어요 또 그 북한
엄마들 환장하게 좋아하잖아 어린이 집 여기 시스템 너무 좋아하지 너무 미치게 좋아하지 너무 좋아 응 칼리
있을 때는 어떡할까 다 거이는 체제야 내 자식 잘 보여 달라고 다 거이는
거야 내가 키봐서 알잖아 그런데 여기는 그런게 전이 없어
나는 그게 또 한번 놀라워 응 응 전혀가 없이 진짜 평등한게 있어 음
난 거기에 또 놀랍고 그다음에 우리 집에 다 가면 진짜 그 선생님들이
엄마 같은 마음으로 어 그게 또 고마운 거잖아 진짜 대한민 뭐 제 마음이거운 나 하나님 좋아할 때도 뭐
어디에 반지 알아 사랑합니다에 반했어 북한에 사랑한단 말 써 나 너 좋아해
남유관이 좋아해도 좋아한단 말 쓰지 사랑한다 말 쓰는 거 봤어 아니잖아 근데 오해집같 다 사랑하는 거야 진짜
진심으로 나 그게 너무 좋아 진짜로 좋아 그래서 그 우리 집에 가두고
선생님들 보면 우리 나이가 그래 우리 선생님들 엄마음 이쁘고 엄청 날 많이 사랑해서 아기가
그렇게 반응하 아이들이 안다는 아이들이 안단 말이야 응 그러니까 내가 아침에 7시 반내서 7시 오지
퍼해 그리고 저녁에 연장 반에다까지 놓거든 내가 혼자 공부하고 늦어와야 되니까 그때까지 내가 마음을 넣을 수
있는 거는 오늘 집 선생님들이 나갔다는 거야 엄마 갔다는 거야 우리 어머니 같기도 하고 하니까 괜찮가
우리 나이는 8시까지 뒤어 집에 전혀 마음이 전혀 불편하지도 않고 너무
편안해 나보다도 통 나보다도 선생님들랑 더 같이 있어야 돼 연장만이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나이가
엄마 나 싫어 못 가겠어 선생님은 날 미워해 하면 내가 어떻게 보낼 거야 못 가지 근데 전혀 그런 거 없어 한
번도 나 싫어 선생 날 싫어해 안 갈 거야 했으면 못 보낸단 말이야 나 공부도 못 하지 가슴 찢어지지 그러면
근데 안 그러고 있잖아 너무 좋아해 그렇지 솔직히 나도 애를 낳고 엄마가
되어 보니까 아 진짜 이렇게 예쁜 애를 나 혼자 키워야 된다면 혼자서
유치원에서 그 어린이 집에서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 잠깐만 상상해도 눈물이 핑거는데 그 선생님들이 그렇게
잘해 주면은 더 이상 감사한게 없어지 진짜 잘해줘 음 응 그어 그게 너무 좋고
고맙고 내가 어머니 없이 누구 없이 형제 없이 혼자 우리 나이를 키우면서 학교 공부할 수 있는 게 진짜 그
고마음인 것 같아 맞아 이게 사람이 환경으로부터 마음이 열리고 다기고
한다고 그러잖아요 나도 북한에서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를
참 이쁘다라고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그지 언제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지
진짜 맛어 어 저도 제 애를 낳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애들을 버는데
애들이 너무 예쁜 거야 그러니까 애들은 있잖아요 너무 맑아요 진짜 근데 북한에서 그걸 못 느꼈다 못꼈어
환경이 그렇고 난 항상 생각해 봐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 나이랑 딱 보면 우리 나이는 원하는 말을 하고
있어 자기가 생각되는 말을 하고 있잖아 근데 북한 아이들은 아닌 거야 사탕 1km를 받아도 아버지 원수님
고맙습니다를 먼저 해야 되잖아 이게 자기가 원해 하는 거 아니잖아 우리가 시키잖아 소상에다 막 갖다 세우고
아버지 오시니 고맙습니다 하라지 않아 그니까 내가 가만히 보면 내가 원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북한은 아닌 거야 세상이 태어나서 말 딱 되면 내가 안 하고 싶은 말부터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나
영이 맑을 수가 없단 말이야 어 그니까 내가 항상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아 항상 군심에 있고 애들이
경직돼 있고 뭐 먹었으면 하겠 근데 여기 아이들은 아닌 거야 자유롭게 키운단 말이야 뭐 개성을
전 아이들이 뭐 원하는 대로 이야기하다 보니까 창의적인 거 있잖아 요만한 다섯 살짜리도 창의적게 있어
음 내가 다섯 살짜리 아이 말 딱들을 때면 오 말이 막힌다 그러니까 자기
창의적인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안단 말이야 응 그니까 둘레 밖에서 말하는게 아닌 자기만의 생각인 거야
어 음 놀라워 내 자식도 그렇지만 다른 아기들도 보면 아이들이 정말
당당한 거 음 정말 그런 참 놀랍고 귀엽고 그래 우리
딸타고 다니면 그런 말 할 때가 있다 엄마 엄마 우리 태국기 대한민국
짝짝짝짝 하거든 그래 알았어 뭐 이렇게 내가 그래 멋있다 대국기 지나가잖아 그럽니다 엄마 엄마 엄마
나라는 엄마 나라 깃발은 어떻게 생겼어 그런단 말이야 그래서 엄마 나라 엄마 나라도 대한민국이거든
그런단 말이야 그래서 아니잖아 엄마나라 또 끊어놨다며
아니 엄마나도 대한민국인데 뚝 꼬는 건 맞아 근데 엄마나라 깃발은 태극기
아니잖아 응 엄마 다섯 살짜리가 엄마나라 대국기 아닌 건 맞는데
대한민국이 맞는 건 맞아 너 기도 받지 호랑이 땅하는 앙하는 거
설명하기 참 애매모하다 애매모하고 가슴이 아픈 거 있잖아 너무 아파 엄마나라 할 때 가슴만 터지는지 아니
마주막 찢겨 음 그거 엄마나라 아유 엄마나라 아니잖아 아
그래 아 아 이거 진짜 아이고 다섯 살짜리 한 데다가 다 설명할 수도 없고 대한민국이거든
응 이제 조금 큰 다음에 이렇게 체제 설명이랑 해 주면서 잘 해 주면 응
열심히 공부 많이 하세요 지금도 하고 있죠 그렇지 하고 있지 아직도 이부터 공부해야 졸업할 수 있으니까 그래요
애 키우면서 진짜 열심히 일하네 언니 대단하다 어 음 아니야 내가 더
대단해 아니요 갑자기 칭찬 못들어 아 진짜 와 은종아 내가 몸 이래
가지고도 그냥 열심히 뛰는구나 나 지금 아무렇지도 않잖아 이러리면서도 힘들다 부험 해 가지고도 살 와
모델이야 모델 진짜로이 정도는 다 해 한국에서 아 북한에서는 기회가 없어서
못 했고 여기서는 내 마음만 먹으면 진짜 열심히 할 수 있고 그러니까
나도 열심히 사느라고 해요 응 음 맞아 그래 더 이름이 들리는 거
있잖아 음 문충일 문충일 뭐 도구 뭐 이러다 문충일이면 내가 자 할아버지
법용이란 말이야 하다가 안 되겠는 거야 자꾸 우리 집 말이 나오는 거야 그래서 TV 가서 앉았어 응 왜 저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 보니까 왜 우리 내 할아버지랑 똑같이 생겼네 자 할아버지 똑같이 생겼더라 음
근데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 했어요 구약하려면 조금
길어 그리고 좀 마음 아프히기도 한데 이게 와서 우리 작은 할아버지를 찾았다고 이야기했지 설마 작은
할아버지 줄 알았겠어요 몰랐단 말이에요 내가 와서 내가 토잡고 우리 가족 다음 주일 날이었어 일요일
날이었거든 그날도 학교를 갔다 와 주일 날은 시잖아 우리가 어전에 교회를 갔다 와서 어는 청소하는
날이거든 그래서 뭐 집안 구속구 청소도 하고 그날 세탁기도 돌리고 뭐
이러고 있는데 TV 그날에 꼭무 나오더라 음 그런가 보다 하고 뭐 꺾어는 거고 꺾 재밌지 응 재밌어
근데 어제 벌세가 있어 뭐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어 근데 꼬무 이야기하다 보니까 자꾸 귀에는 뭐 이름이 들리는
거 있잖아 음 문충일 문충일 뭐 도구 뭐 이러다 문충일이면 내가 작은
할아버지 법용이란 말이야 나의 너 중조 할아버지가 아들 셋술 나왔어 문상봉 문희봉 문 신봉을 낳왔는데
신봉이가 문일이야 꼭꼼히 출연한 할아버지 중조 할아버지가 근데
해방전에 살기 힘드니까 외정 때 살기 힘드니까 중국 만주러 가셨어 만주러
가는데 새 아들 다 데리고 만주러 가셨거든 근데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우리 할아버지 집이 좀 잘 사셨대 그러니까 우리 문항일 할아버지만 내가
먼저 한국에 먼저가 볼게 하고 할아버지만 원을 먼저 하셨거든 그리고 집안에는 할머니하고 아들 서희가
있었어 음 근데 지금 그 당시 우리 문충일 할아버지는 나이가 엄청 어리셨고
마이하고 마지 문산봉 할아버지하고 우리 문희봉 할아버지가 그 당시 나이가 되셨는데 근데 남북 전쟁이 딱
터진 거야 그러니까 중국에서 지원군을 보낸 거지 북한 쪽으로 마지 상봉하고
희봉 할아버지가 지원군으로 전쟁에 참가하게 된 거란 말이야 근데 막내충일 할아버지만이 신봉이지 법명은
거기 있거예 엄마 같이 중국에 참전하게 됐는데 총기장만한게 총을
매고 전쟁에 나온 거야 50년도 전쟁에 너무나도 엄마가 보고 싶은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계속 이야기했어
난 너무도 엄마가 보고 싶다 16살에 그 전에 벌써 아버지를 여였잖아 아버지가 한국 갔잖아 그니까 그 전에
부모를 여는 아버지를 여의고도 너무 형제가 보고 싶은 거야 그다음 형이 어디 존쟁이 갔는지도 몰라 형하고 다
형제 존쟁 참가했으니까 너무나도 엄마가 보고 싶고 동생이 구입고 아버니까
나 전쟁 안 할 거라고 북한에서 62 참했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간 거야
건너가다가 붙들린 거지 그다음에 전쟁 포어로 순 뭐 2년 6개월 정도
순어로 포로 수경서에서 생활했거든 그래서 포로 수경서에서 전쟁 끝날 때까지 사시다 보니까 완전히
포로병으로 낙이 찐 거지 북한에서는 알잖아 내가 알다시피 그니까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는 월남자요 월남자에다가 우리 할아버지는 포로병이요 전쟁
포로병이요 완전히 한 심하지 뭐 음 그 이런 집안이다 보니까 근데 이런
집안하고 우리 엄마가 산다 우리 어머니의 집안하고 그가거나 서로가 살 수가 없는 집안이었던 거야 그래
이렇게 하다 보니까 우리 아버지는 늘 소망이 있었어 우리 아버지 자체도 그러니까 아버지가 열심히 진짜
살았거든 우리 아버지 진짜 열심히 살았어 우리 아버지 보면 손가락이 다섯 개 이게 없어
음장든 실대한 같았으면 어떨 것 같아 대우를 받지 대우받는 정도가 아니야
우리 아버지 그렇게 열심히 일했고 돌격대나 돌격된 다 돌리면서 중대장까지 하셨대 총각 때부터 왜
입당하려고 그 우리 엄마하고 살겠다고 엄마하고 그렇게 우리 엄마를 그렇게 사랑했다 그까 연애를 하면서 진짜
우리 어머니하고 왜 배 우리 어머니 배 나까지 익쳐 주니까 엄마 쪽에서 너무 반대하니까 끝까지 우리
어머니하고 살겠다고 진짜 우리 아버지가 내가 꼭 입당해서 그래도 진짜 가시 집에 장모 집에
인정받겠다고 그렇게 하셨대 우리 아버지가 근데 인정을 안 해 주는 거야 완전 터되고 완전 역이 집안이지
않아 우리 아버지 쪽은 그니까 아버지가 진짜 덜격대 판다 아니면 내가 무조건 입당한다고 하는데 입당이 돼야 말이지 인정 안 해 주는 거야
북한에서는 우리 할아버지는 또 말할 우리 할아버지는 나 진짜 할아버지 선에서 많이 자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눈 그랬거든 그래서 늘 통일 통일
그리고 진짜 통일되면 제주도에가 살자더라고 왜 제주도가 살겠다 했는지 모르겠어 나 어릴 때도 계속 그랬어
제주도 왜 살자고 그러지 항상 아버지가 저기 있는 줄 아신 거예요 대한국에 있는 줄 알고 그다음에 자기
동생 문충일 자 할아버지는 중국에 있는 줄 알고 그리고 편지가 중국에 있을 때도 왔다 갔다 했단 말이야
엄마 그리고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편지를 썼는데 그때는 눈물나게 왔더라고 우리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그 삼촌이 문충일이 할아버지가 편지에 썼어 그니까 할머니가 참 불쌍하게 사셨더라고
그러니까 뭐 남편이 원람했잖아 그 두 아들은 지원굴 이렇게 없어졌고 막내 아들랑 같이 사는데 공산국과 중국에서
천대란 천대 다 받았다더라고 갈랑 갈신 다 받았다더라고 그 문화 혁명 때 그래서 할머니가 마차가 깔아주면서
하여튼 자기 그렇게 불쌍하게 죽었는데 그때 편지가 내 어릴 때 기억이야
강물에 깔아 앉았는데 후에 시체를 거지고 보니까이 구멍이라는 구멍에는 가세가 다 들어가 있어서 시체를 다
파먹었다고 난 지금도 기억이 남는게 편지에 그렇게 왔더라고 그게 바로이 우리 문춘일 할아버지가
오늘 우리 할아버지다 써내보낸 편지였어 중국을 때야 그때 당시 그
당시 나이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서서 내 혼자라는 거 나 혼자지 어떻게 살아야 되지 우리 형제
집안 지금 다 흩어졌잖아 근데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라 이렇게 편지가 왔어 그래서 그때 우리
할아버지가 엄청 우시더라고 울면서 엄마 그 지금 자기 10 15살 때
군대에 나왔잖아 그게 너무 생생하거든 음 나 지금도 우리 할아버지 기억나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
중국에서 편지들 다 이렇게 차고 항상 안고 다녔거든 마지막으로 우리 이충일 할아버지가 어 태국에 타이에 있을 때
마지막 엄편지가 있었어 그때가 북한의 권한의 행군 때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데 이상하게 된 편지가 왔어 그게 바로 타이굴씨였던 거야 타이굴 씨는 영어가 아니잖아 꼬부란 글자가 왔는데
이상한 거야 어머 우리 집에는 이렇게 꼬불랑 글자가 올게 없는데 참 이상하다 그랬는데 우리 오빠 사춘
오빠가 그때 대학에서 왔어 방학이어서 그리고 오빠한테가 물어봤더니 와 이게 타이란 나란데 그러더라고 타이 우표다
우표를 딱 보더니 우리는 타이에서 얼게 없는데 우리 타이에 누구도 없는데 이상하다 그랬거든 그다음
아내거 딱 뜯어 보니까 작은 할아버지야 바로이 할아버지 문축일이 내 문신봉일 충일로 바꾸왔다 그리고
난 지금 타일한 나라에 와 그래서진다 했는데 지금 타이 왔다는
걸 야 그걸 보니 또 우리 할아버지가 너무시는 거야 동생이 고생한 걸 그
아버지를 다 잃고 자기 고생한 걸 생각하니까 너무 눈물나잖아 나 깜짝 놀랬어 우리 할아버지는 68cm가
돌아가셨거든 아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까 듣고 엄청 무 나 지금도 이치
앉지는게 우리 할아버지가 그 편지를 안다 안고 계속 약고 다니다가 딱
엎어졌거든 엎어져 있었는데 여기가 쭉 째겨졌었어 그 피 줄줄줄줄 나는데 우리데 왔더라고 그 지금 타에서 편지
왔다는 소리 듣고 와서리 눈을 불리면서 보자는 거야 동생 편지 동생 평지 보시더니 막 우는 거야 그걸
구르는 거야 내 언제문 언제 내가 이렇게 우리 형제들 만나려 갈까
언제면 통일되면 이렇게 가서 우리가 만나서 내가 우리 형제들도 만나고 내 동생도 만나고 이렇게 엄마 미어서도
가보고 아빠서도 갈까 했지 엄마는 묘사도 없지 그러니까 가까이서
그렇게 가지가 다 파먹었고 아버지 여기 와서 이렇게 월이 됐고 못 찾은 거예요 월람 한 다음에 뭐 죽 폭격에
죽었는지 살아는지도 못 찾고 그래 그렇게 진짜 가슴 아픈 사연으로
늘 그러니까 난 참 이야기하자면 너무 마음 아프고 막 그러는데이 할아버지가 자꾸 나오는 거 등장하는 거야
나 지금 길을 듣고 있었어 일을 하면서 할아버지 있는 줄 모르고 하다가 안 되겠는 거야 자꾸 우리 집
말이 나오는 거야 그래서 TV 가서 앉았어 응 왜 저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 보니까 왜 우리 뭐 내
할아버지랑 똑같이 생겼네 자 할아버지 똑같이 생겼더라 그다음에 앉아서 보기 시작하니까 우리 집 말 받는 거야
우리 집 일인 거야 저게 뭐야 꽃꼬이다 전화해야 되겠다 굳게 해 가지고 내가 할아버지를 찾았더니
할아버지 여기 대한민국에 있대 살아 또 계신데 그래서 꼬꼬물을 통해 가지고 우리 할아버지를 찾았단 말이야
93세 할아버지 응 93세 할아버지가 나는 우리 할아버지랑 이루지 못한 거
할아버지 뭐 이렇지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또 뭐 이루지 못했거든 진짜 너무도 진짜 이렇게 만나기 싶어고
갈망했는데 아 근데 내가 오니까 어떻게 그렇게 작은 할아버지 만났고 야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어 알려줘야 되는데 저쪽 이런 꿈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와 내가 어떻게 우리
할아버지를 만나 솔직 알려드렸죠 할아버지 북한의 소식들 다 알려줬어 어 그건 다 알려줬지 할아버지 너무
웃시지 날붙들고 나도 너무 울었고 할아버지 너무 울우셔 가지고 할머니가 구르치더라고
야 할아버지 재명 못 사시겠다 그래서 왜요 할머니까 너 간 다음에도 자꾸
우셔 너 그래서 내 마음이 다 이상한 거 있잖아 내 마음이 막 이상한 거 있잖아
할아버지 자꾸 우신다니까 내가 막 못 가겠더라 자꾸 우신다니까 우리 선녀 우리 선녀 우리 선녀 우리 선녀 막
날 보고 너무 부르셔 가지고 있잖아 그래도 언니를 통해서 형님의 소식을 들었잖아 할아버지님이 다 가니까 우리
할아버지 편집뿐이겠어 우리 아버지 사진 다 가지고 있었어 가족 사진
북한에서 온 사진 태국에서 사시다가 여기로 그렇게 힘들게 오셨는데 우리 지방 가족 사진 다 가족 계셨더라
편지까지도 내가 오니까 이선 내가 인계받아라 하면서 인계해 주시더라고
어 음 내가 이제 다 인계받아야 되겠다 할아버지가 이게 굵기가 있으신
분인데 거기 태국 마약 제조하는 마약 마약 왕국에 섰어 거기서 선생질
하면서 있었거든 맨가 공산국가 중국에서 사시면서 할아버지도 엄청 어려운 그거 보면 이제 할아버지
기막힌 사이를 또 거기서 나와 나를 붙들고 너무 우는 거 있잖아 너무 우리 선녀 우리 선녀만 할 줄 자주
인사드리러 가요 응 그지 너무 들고 오는데 자주 뭐야 나 가면 갈 때마다 할아버지 계속 우리 한국동이고 내
손에 다 달라마 손이 다 지하죠 할아버지 날이 아니야 우전에 이걸로 그 선녀딸
또 우리 나이 뭐 사주락 사주 할아버지 할아버지 또 주면 그다 할머니 또 할머니 또 주셔 내
안디다가 야 무서워 못 가겠어 난 과일만 싸들고 가는데 뭐 쓰고 있잖아
완전 난 그건 있잖아 완전 장식이 옵니다 할아버지 주신 거 있잖아 다 착착착 뭐하나 돈이 아니야 할아버지
주시는게 별로 기념품 같아 돈이 아니야 야 아유 참 기구한
스토리네 다행이다 여러분 문충일편 꼬꼬무 달아드릴테니까 궁금하신 분들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책도 많이 내고 뭐 이게 이름만 치면 나온다고 하시니까 꺾꼬무 문충일이라
쓰셔도 나올 거예요 꺾꼬무 문충일 그러니까 이게 미디어가 이래서 중요한 거예요 그지 나고 선녀고 그래요 만난
거 너무 축하해요 언니 그래 운정아 음 너무 그래 어떻게 이렇게 음 야
근데도 아직 이게 끝나지 않고 있으니 수많은 시약민분들을 비롯해서 이제는
탈북민 2세들까지 계속 생겨나고 있으니까 이게 언제 끝날까 싶네요
진짜 너무 마음 아프지 야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어 진짜로 음
그래요 빨리 이런 아픈 순간들이 다 잊혀지고 옛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아유 언니 울지 마세요 오늘 이렇게 아프고 슬픈
얘기까지 해 가지고 다 얘기해 줘서 고맙고 이제 2년 있으면 졸업한다고
그랬죠 대학교 그렇지 인연 잘 다니고 졸업을 하고 그렇게
하고음 좋은 이제 직업도 더 같고 언니가 원하는게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이루어졌어 음 내가 이제 말한 것처럼 우리 할아버지 만났고 우리 할아버지 찾았고 그래도 대한민국
자유로 보니까 꼭무를 보다 찾았잖아 그 맞아맞아 우리 학교 선생님들 너무 좋아했어 아유 문충일 할아버지 정말
저도 축하드립니다 선녀딸 만나신 거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언니 오늘 나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아 아니야 뭐 먹으러 갑시다 우리 천국장 먹고 헤어질 거거든 그래 다음에 또
응 만납시다 예 시청해 주신 여러분 오늘 또 너무 귀한 시간 이렇게 어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어 미디오가 참 좋긴 좋네요 예 잃어버렸던 가족도 찾게
되고 여러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다음에 또 만나요 언니 또
만나요 응 그래 알았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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