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6, 2025

[권봄 풀영상]북한은 진짜 나쁜 나라였구나! 국군포로 손녀가 한국와서 알게된 가족의 비밀



[권봄 풀영상]북한은 진짜 나쁜 나라였구나! 국군포로 손녀가 한국와서 알게된 가족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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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83 views  Jan 16, 2025  #강은정 #강사 #가수
간증, 강의, 공연, 강은정TV 출연 문의: 
kang22tv@gmail.com

#강은정#한국#가족#가수#강사#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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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eople

Oh Woo-ri
South Korean actress (born 1996)

IU
South Korean singer and actress (born 1993)

Hwang Jini
Korean gisaeng (1506–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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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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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yongkwak3102
3 months ago (edited)
봄이씨 보니까 저런 인재들을 놓친 북한은 망할 수 밖에 없겠네요. 정말 내 아들 딸 보는 것처럼 뿌듯합니다. 역시 대한민국은 잘 될 수밖에 없어요. 저런 인재들이 목숨걸고 제발로 찾아와 주니 말입니다.  회사다닐 때 해외인재 영입한다고 여러나라 다녀봤었지만 탈북 인재들만한 사람 찾기 힘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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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i6w
3 months ago
국군 포로 손녀 라니 더 소중히 생각 되네요
보훈 대상이 될것 같네요
국가에서 꼭 할아버지 찾아서 응분의 보훈 혜택 주었으면 하는 마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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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e9f
3 months ago
할아버님이  계셔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공화국으로  존재합니다. 꼭  가족분과  대한민국에서  함께 사시길 기원합니다.    의류는 잘 모르나  원단도 땀이 덜붙는 재질같고  레이어드된 디자인도  심플하니  이쁩니다.  앙드레김 같은  유명 디자이너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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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i6w
3 months ago
권봄이 똑똑 하네
혼자 단신으로 탈북해서 작은 할아버지 만나서 좋았고 명랑 발랄해서 너무 순수 신선 해서 멋져요
팟션 디자이너로 자존감 더 멋지네요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멋진 삶 누리시기를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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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i6w
3 months ago
봄이가 강은정님 아기 옷 해왔다고?
고마워
볼수록 귀엽고 발랄 해
고맙고 귀특해
앞으로 대박 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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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o-i2d
3 months ago
곱고
아름다움이 넘치는 
권봄양!
건강하시라
건강하시라
행복하시라.
멋진인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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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enna..
3 months ago
대한민국 최고의 디자이너
권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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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s6p
3 months ago
'은정씨 ! 봄이양 ~  사고가 너무예뻐요, 앞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국위선양을 위하여 아낌없이 날개 펼쳐 ~ 나가세요, 박수!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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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寂光바이로차나
3 months ago
春태어 난 재주가 많구나 
작은 종조할아버지가 기특하게 
생각 하면서 큰 형님이 너무 생각 나 가슴 아프겠네 나도 그 말에 
눈물이 나군만 
두 분 모두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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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나라-b6q
3 months ago
"우리는 하나다"
걸어서 금강산 ~~~~
걸어서 평양 ~~~~
걸어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그 날을 위하여 ~~~~
남녘과 북녘이 하나가 되고 
휴전선이 붕괴되어 자유통일대한민국이 
되는 그 날까지 
강은정님 화이팅 
☆한민족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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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c9b
3 months ago
회장님이   너무너무   좋아보이네 요  회사가   되게  좋아보이네   울국군 손녀 잘돌봐  주세요   회사모든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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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J-c6u
3 months ago
할아버지 자랑스럽게 여기세요. 대한민국 국가유공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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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석-x9h
3 months ago
강은정님 잘 보고 있고  향상 응원합니다.
봄이의 큰 울타리가 되어 왔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국의 큰별이 될 수 있는 인재입니다. 
많이 봄이에게 힘이 되어주세요.  
예쁜 천사애기 잘 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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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중
3 months ago
내 동생이 강은정 티비에 출연했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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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n-dk4bt
3 months ago
봄양 
지금처럼 밝고 화사하게 앞으로의 삶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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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fy7ml
3 months ago (edited)
완결판을 또 보네요~너무 개성 넘치고 활기찬 권봄님에 앞으로에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영상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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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606
3 months ago
봄이 넘귀엽고 똑띡이 임ㅡ한국에서 패션계 메인디자이너된거 추카추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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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donmin460
3 months ago
참 눈이 맑은 친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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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c2q2s
3 months ago
옷 너무 예쁘네요.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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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숸아쒸
3 months ago
똑똑한 봄이씨
행복하게 잘 살기 바라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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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그니까 옛날에는 어 나라에서 시키면 시킨 대로 해야지 이런 마인드였다 men 저희 때는 아니 내가 친구의
관계가 더 소중하지 그거를 이제 딱 입으면 이제 한 1m 밖에서 바로
잡혀서 이제 청소시키고 이러다 보니까 패션의 자유가 없어서 아 나는 패션의
자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오게 됐던 거 같아고 그 할아버지는 많이 우셨어요 소식을
해줬구나네 그래서 안녕하 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또 새로운 초대손님을 모셨습니다 아이 친구는 예술단 생활을 하면서
만났었는데요 그때 진짜 아기였는데 어 어느 날 통화를 하면서 이렇게
만났는데 진짜 많이 성장했다고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우
어서 오세요 본인 석에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패션 디자이너 곰
봄입니다네 아 참 우리 봄이가 아주 그냥 용이 돼서 나타났습니다 우리
진짜 7년만이 맞지 범 7년만에 만나는 거 그지네 언니 어때 언니
그대로예요 거짓말 근데 너는 진짜 그대로다 보야
아 정요 어 너 더 아기가 된 거 같아 응 세상에 대학을 들어갔다고
했을 때가 엊그제인데 맞아요 벌써 졸업을 하고 패션 디자이너가 됐어네
지금 패션 디자이너로 지자 생활 한지 4년 차 됐고네 그리고고 작년부터는 이제 그
포세라는 캐주 우류 여성 브랜드에서 메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메인이네 어 정말 너무 뿌듯하다 혼자 왔죠네 맞아요 혼자 와서 이렇게 대학
졸업하고 디자이너까지 되고 여러분 이거 보이시나요 우리 봄이가 저를 위해서
디자인을 해왔습니다 근데 이게 짝 짧은데 살 빼고 다시 보여 드릴게요
우리 봄이 옷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요이 출산하고 나니까 잘 안
빠지네요 어때 한국에서 일할 맛이나 처음에는 패션 디자인 쪽 업체가
사람들이 굉장히 무서워요 그니까 제가 원래 좀 많이 좀 뭐라 성격이 좀
순순한 성격에다가 좀 제 말로 하기엔 너무 부끄러운데 어 제가 원래 는 어
순수했다아요 그랬지 근데 이제 패션 쪽이게 화려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업체라 보니까 그 맞 개성도 막 개성도 엄청
들렸다고 하다 보니까 그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버틸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되게 컸었는데 그래서 그랬지만 그래도 잘 버텨내서 어네
지금은 메인 디자이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박수 일단 어 너무
깊숙하다 한국에 지금 몇 년 됐지 12년 됐어요 12년 아 그러니까
언니 만났을 때가 5년 되고 나서 만났을 때 그렇지 대단하다 고양이
어디예요 지역 삼경 북도 쪽 지역 말 못해네 가족 때문에 그렇 그렇지
맞아요 요즘 진짜 엄청 엄격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화도 잘한대요 아 예전엔 전화했었어 어 계속
전화했었어요 어 해서 뭐 돈도 보냈어네 1년에 얼마씩 보냈어 저
1년에 한 100만 원만 아 그래서 기특하지 공구하면서 너 장학금으로
살았잖아 맞아요 맞아요 저 장학금 받으면서 어 첫 월급 받아서 그런 거야네 첫 월급 부모님
뭐래음 저게 대구 연에 했죠음 갑자기 울컥해 지니 어릴 때
삶은 어땠어 경이랑 가까운 지역이었는데
그 저희 아빠가 그 할아버지가 국군포로 병으로음 북한에 나오셔서 아빠의
결혼하셔서 아빠를 이렇게 태어나게 했다고 해나요 그래서 아빠는 군대도
못 가셨던 분이셔 갖고 그 되게 아빠가 엄청 고양서 방황 생활을 많이
하셨어요 어 어떤 사회적인 그 적대 계급으로 몰려 가지고 맞아요 맞아요
그래서 그 영향이 저희한테도 오더라고요 그니까 예를 들어서 사회적으로 뭐 예를 들어서 제 제가
입고 싶은 옷을 입었을 때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이렇게 잡혀서 어떤
그런 단체 같은데 가잖아요 근데 갔는데 그 친구들은 너 아빠 뭐 하니 했을 때 그거 그 친구들은 아빠가 뭐
당간부 뭐 이렇게 얘기하면 그 친구들은 더 보내주는데 저만 남겨놓고
청소를 시키는 거예요 이거네네 그래 갖고 그때 아 여기서 나는 설자리가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때 벌써 그때부터 그때가 제가 한참
옷에 신경 많이 쓰고 이랬을 때가 16살부터 18살까지 그랬었거든 그렇지 또 한창 성장기도 사춘기도
맞아 그때가 딱 사충 올 때였어 갖고 더 반항심이 커지는 거예요 저희
엄마가 그때 한 중국에 계셨었어요 제가 그 그 사춘기 한체 겪고 있을
때 학교에서 저랑 정말 친한 친구를 저한테 스파이로 붙인 거예요 학교에서네 그니까 근데 학교에서
붙였는데 경찰이 와 갖고 봄이랑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있을 때 내 친구가 저 제가 제일 친한 자라고
했는데 내 친구도 봄이를 감시하라라고 했대요 근데 옛날에는 그렇게해서
감시하고 뭐 고발하고 막 그랬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제 때만 해도 제
친구가 저한테 와서 경찰 이렇게 와서 너 감시하라고 했어라고 얘기를
해줬어요 고마운 친구네 저희 때만 해도 사고가 사람들의 사고가 바뀌어서
그러니까 옛날에는 어 나라에서 시키면 시킨 대로 해야지 이런 마인드였다 저희 때는 는 아니 내가 친구의
관계가 더 소중하지이 사람들이 하라고 하는게 이게 뭐가 소중하지 이렇게 마인드가 바뀐 거예요 대박 보미가
직접 그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제 친구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저한테 와서 얘기를
한 거잖아요 어머나 진짜 놀랍게 바뀌었다 그 영향이 뭐라고 생각해요
한국 드라마 어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많이 봤어요네 저희 때는 응
예전에는 이게 뭔가 라떼는 나때는 말이야 그랬어요 각자 숨어서 봐야 됐잖아요
근데 저희 때는 예를 들어서 너 천국에 난 봤어 어 나 봤어 근데 나 1부부터 10부까지 봤어 이렇게
얘기하면 아 진짜 난 18부 아지 봤는데 아 그래 그럼 10분부동산
그니까 예전에는 서로의 그런 의심하고 서로가 의심하고 못 믿고 이런게
있었잖아요 근데 저희 때는 서로를 신뢰하고 뭔가 더 친구의 관계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때로 바뀌던 거 같아요 야 이게 듣던 중 또 반가운
그런 소리긴 한데 그러면은 엄마가 중국에 먼저 갔다고 했잖아요 그러면은
어머니가 돈벌러 중국에 가신거 맞아요 아 그럼 중국에 이렇게 왔다 갔다
하셨으면 가난하게 안 살았겠죠 맞아요 그 어릴 때는 저희
할머니부터 엄마가 물려받은 사업 같은게 있었나 봐요네 그 그 중국으로
이렇게 보내는 그런 사업이 있었었나 봐요 그래서 할머니 때부터 계속 그렇게 하셔 갖고 제가 태어났을 때가
고난의 행군이 근데 전 고난의 행운인지 모르고 컸어요 그 아네 아무래도 국경이 맞다 온 접경
지역에 살고 또 중국에 친척이 있다 보니까 맞아요 또 많이 변했다고 볼 수 있 그런
패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어떤 한국 드라마 영향인가 한국
드라마도 있고 저희 엄마가 옷에 되게 관심이 많으세요 그래서 거기서 멋 예
거기서 엄마가 페피 이었거든요 근데 엄마가 그렇게 계속 옷을 사입고 이렇게 막 거울보고 이런
모습을 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봤을 때 옷부터 보이는 거예요 그 주인공들의 옷부터 그래서
아 나도 저렇게 입으면 너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근데 또 거기에 옷 옷이 여기서 말하는 구제
같은 옷들이 한국 옷들이 나오잖아요 그거를 이제 딱 입으면 이제 한 1m
밖에서 바로 잡혀서 이제 청소시키고 이러다 보니까 패션의 자유가 없어서
아 나는 패션의 자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오게 됐던 거 같아요 그때는 또 되게 같이 가자는 브로크
엄청 많았었고 되게 어 북한에서네들도 되게 많았었고 되게 그
경로가 되게 쉬웠어요 그리고 물도 그 지금은 쇠살 창이 뭐 이렇게 앞뒤로
이렇게 막혀 있었다고 하더라요 두만강 쪽에다 네네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고
물도 되게 얕다고 그냥 마음만 먹으면 넘어갈 수 있었 그 언니 때 그러지
않았어요 우리 때는 아무래도 국경 경비대들이 자기네가 근무서는 시간에
넘겨졌지만 나보다 먼저는 중국까지 갔었고 그 엄마가 거기에 있었잖아요
그 엄마랑 같이 일을 했었던 엄마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랑 같이 오게 됐어요 어 엄마가 그럼 한국 가라고
한 거예요 아니요 엄마는 북송 송고 엄마는 북송
됐었고 그래서 그럼 그 친구랑 같이네 엄마 엄마의 그 친구랑 같이 그러면
그 엄마의 친구가 한국으로 오는데 도움을 줬다는 거네 바깥 세상이 궁금하다고 그랬는데네
북한을 떠나서 중국에서부터 바깥 세상이잖아요 어떤 일들이 있었어요 중국 있을 때는
일단 자유가 없으니까 바깥 어 내가 여기에 나가는 순간 좀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계속 실 내에만 있었었는데 오면서 비행기는 괜찮았어요
비행기 탔 때도 되게 저희 때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까 그
태국이라는 곳에 되게 오래 있었어요 한 4개월인 그렇게 오래 있 있었다
보니까 빨리 가고 싶은 되게 욕망이 컸는데 이제 비행기를 탈 때는 진짜
엄청 많이 설레었어 그러면 할아버지가 국군포로 였다고요네 맞아요 할아버지에
대해서 그러면 좀들은 얘기가 있어요 저희 할아버지가 그때가 30대였다
without 때가 30대였다 만났을 때가 저희 할머니 살이었어요
근데 살이라 거짓말하고 결혼을 했 할아버지가 되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니까 왜냐면 30대면 그때는 되게 노총각이 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못 할
나이였다 그래서 할머니 18살인데 살이라고 하면 당연히 안 할 거 같으니까
24살이라고 거짓말하고 결혼을 했었대요 근데 그거는 할머니 말로
전해들은 거고 할아버지가 할 아빠가 되게 어리실 때 10대 때 돌아가셔
갖고 할아버지를 직접적으로 만나서 할아버지 랑 얘기해 본 적은 다 한 번도 없었고요 병으로 돌아가셨나
아니요 그 일하다가 응 거기는 이제 그 국군포로들 되게 험한 공 험한데
이제 다 보내는데 광이나 이런 어 맞아요 맞아요 그런데 보내는데 이제 그런화한 대에서 일을 하시다가
현장에서 뭐 사고가 나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어떤 내용을
들었어요 할머니한테 할아버지가 고향을 많이 그리워하나 그렇죠 솔직히 저는
그 고향에 있을 때부터 할아버지 고향을 다 알고 있었어요 그 주선은 받고 한동안은 안 찾았어요 왜냐면
엄청 저 아예 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고 또 그때는 국적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갖고 한 공부하면서 공부하면서 뭔가 엄마가 계속 전화를
하면서 놓고 이렇게 공부하는데 할아버지가 옆에서 좀 돌봐주면 좋겠다
그때 엄마랑 전화했을 때 엄마한테 막 투정 버렸거든요 다른 친 친구들은 야자할 때 엄마가 간식사들고 오고
이불도 가져오는데 나는 너무 이런 이런 것도 없이 나는 너무 외롭다
이러면서 엄마한테 막 투정 부렸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그러면 할아버지 찾아서 할아버지 보고 옆에서 좀 돌바
달려고 해라라고 얘기를 해줬고 그때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했어요 작은
할아버지한테네 여기 와서도 바로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해봤었는데 그 625 때 사시던 그
자리에 그대로 그 둘째 알아버 가 계신 거예요 아 그 만났어요네 근데 그 저희 할아버지가
첫째이고 둘째 할아버지가 그 6어 때 사셨던 되게 엄청 시골이에요 엄청
시골이에요 저는 그 거기에다 전화를 해서 이름 이렇게 되면서 그 소년대
찾으려고 합니다 연 한국에 오자마자네 근데 바로 연결해 주는 거예요 헐 대박 그 어땠어요 그 할아버지는 많이
우셨어요 그 소식을 전해 줬구나네 그래서 만나자고 해서 만나서 보시고
너무 막 막 오시면서 형이 돌아온 거 같다라고 막 오시면서 저 그때 대학교
1학년 때 필리핀 어학 연수 갔었었는데 할아버지고 보내 주셨어요 아 개월 다네 지금도 연락하고 계시
아 지금도 꾸준히 계속 그때 대학교 때 항상 할아버지가 용돈 주시고 아유
그렇게서네 그렇게 해서네 그렇게 해서 대학교에 잘 나왔고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있어요 또 형의 소식을 전에들은 자원 할아버지도 기뻤을 것 같
그 친구는 잘 계세요 친구 그 원래는 거기에 제가 살았었거든요 그때 몇
살이지 그때가 살이었어요 20살이면 진짜 긴데 그때 우리 봄이가 그 집에서
나와 가지고 이제 그 9평짜리 반지하로 갔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집에 갔는데 내가 봄아 물 점주 하니까
미역국을 끓여놓고 언니 물대신 이거 먹어 그러세요 그러는 거예요 집도 굉장히 이제 정말 진짜 혼자 딱 있기
좋고 근데 전 진짜 그때 진짜 가슴이 아팠거든요 맞아 그때 또 친구랑 같이 동고 했었어요 여자 여자 사람 친구죠
근데 애가 못 일어나니까 내가 막 가서 막 내 도나도 안 받았어 그서
봄이야 너 무슨 일이지 이러고 또 깨우고 와 초창기 때 진짜 굉장했다
나도 지금 생각해 잔설이 언니 엄청해 맞아요 맞아요 그래서 언니가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이제 일 일 같이 할
때도 데리고 다니고 그 었 언니 막 미웠지 잔설이 너무 해서 너 반했잖아
언니 했잖 이러면서 그래도 우리 범이가 진짜
너무 감사하게 그때 약속했던게 언니 내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면 언니
드레스를 꼭 해 줄 거예요 이랬어요 근데 이렇게 옷을 또 만들어다가 원니
입히고 또 퓨전 한복도 자기가 만든 거를 선물해 준대요 일단 너무 고맙고
보면 제가 그때 패션 디자인 가 되겠다라고 마음 먹었었던 거는 저희 단장님 그 대표님 때문이 저 그때
계속 그림을 그렸었어요 뭐 이런 그림을 맞아 그림도 잘 그리잖아네 그림을 그렸었는데 그 대표님이 와
보막 너는 이쪽에 소질이 있다 이쪽으로 가야겠다는 막 그런 얘기를 계속 해 주셨어요 한 마디 해줬구나네
제가 원래는 패션 디자 학교로 가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다 말렸 그든 왜냐면 패션 디자인 전공하는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되게 다 잘하는 친구들인데 너 지금부터 시작하면 졸혼
못한다라는 반대가 엄청 많았기 때문에 안 가려고 했었는데 안 가려고 해서
그 언니랑 같이 공연하러 다니고 그랬었거든요 근데 그 대표님이 계속
저한테 너 이쪽을 해도 될 거 같아 너 이쪽에 소질이 있어 이렇게 얘기를 해주 그래서 아 가야겠다 그때
공연하면서 검정 보이 봤었죠네 근데 검정고시 봤는데 공부가 너무 쉬운 거예요 아 예
그래서 그때 바로 공연도 그만두고 바로 이제 그 고등학교로 다시
들어가서 다 공부하고 했죠 나는 그때 너가 진짜 대견스러웠다
왜냐면 솔직히 말해 대학은 미래를 준 준비하는 거지만이 예술단 공연도 좋긴 하지만
이것은 그냥 씨씨의 생계 아아 맞아요 그렇잖아 맞아요 그때 나는 네가
솔직히 사람이 먹구 멍이 포도청이라 하고 당장 앞에 거 딱 꿈고 미래를
위해서 뭔가 간다는게 쉽지 않거든 근데 네가 그때 언니랑 같이 오느날
같이 있다가 언니 상처받았어 농담이고
그러고 대학교로 딱 갔을 때 아 우리 봄이가 지금은 힘들겠지만 제가 진짜
선택을 잘했다 했는데 오늘날 결과로 나타났네 북한의지가 한국에서 고비가
풀려 갖고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 진짜 궁금하다 뭐가 제일 신기했어 제가
원래 고향에서는 무조건 내가 자유 패션의 자유를 누리면 미니 스커트 무조건
입을 거고 그래 오늘도 미니 스커트 입고 왔어 미니 스커트를 무조건 입을 거고
그 저만의 그런 패션의 상상의 나래를 엄청 펼쳤는데 아무도 또 제재를 안 하니까
또 안 입게 되는 거예 한국 아 이람 리라는게 다네 아무도 하지 말라는
사람이 없 으 제가 홍대를 다니다 보니까음 젊은 해거리네 클럽 문화가
예네 클럽 문화가 되게 신선하더라고요 아 예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는
진짜 클럽을 그 정말 친한 친구랑 클럽을 일주일에 두 번씩 갔었어요
근데 그 클럽을 끊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갔는데 제
저랑 계속 합석해서 놀았던 그 남자애들이 음 계속 있는 거예요
거기에 그래서 야 우리 걔 내 친구랑 저랑 야 우리는 홍대생 있데 저 백수
같은 저 친구들랑 계속 노는 건 아닌 거 같다 응 그래서 그때부터 끊었어요 아 그래서 아 그 계기로 그냥 클럽을
아예 안 간 거야 지금까지 쭉 잘네 지금까지 쭉 잘했어 그가 보니까
처음에 어떻 티 처음에는 제가 또 언니랑 공연할 때 무용수 출신이요 숨
진짜 잘했어요 어 무수 출신이라 보니까 일단 가서 춤추는게 너무
좋았고 그 시선들이 너무 좋았고 시선이 다 그대 법대 아 우리 범위를
봤어 사람들이 다 아 다 보지는 않겠지만 몇명의 보는 시선들이 너무
재밌었고 그리고 거기서이 음악에 제 몸을 맡기는 것도 너무 좋았었고 몸을
맡기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공부에 대한 공부 스트레스가 풀리는 거죠 스트레스 아
그렇구나 그지 응 그러면 북한에서 우리 범위
친구들이 한국에 온 사람은 없어 친구 못 만났어 너네 동네에서 네가 제일 똑똑하구나
그지 제가 주변에 고향 사람들이 별 별로 없어요 이제 공부하면서 거의
고향 사람들을 다 끊고 공부를 했었어요음 그 한국에서 연애는 해봤어 연애요 많이 해봤죠
아 아 많이 많이 해봤어요네음 언니랑 다닐 때는 아예
남자한테 관심도 없었고 그렇지 아기였다 순수 맞아요 그 디프리 할
때 막 제 미성 환자니까 술 먹이지 마세요 언니들 막이 이렇게 해 주고 그 혼자 그냥 뻘쭘하게 이렇게 앉아
있다가 집에가 계속 그랬었잖아 응 근데 대학교 생활을 하니까 이제
이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지 그래서 정말
늦게 이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응 나 북한 다 만났어네 맞아요 어
어떤 차이가 있던 차이는요 문화 차이일 거잖아 결국에는 아 문화
차이는 못 느끼겠고 오 그고 같은 고향이었던 그 남자분은 어느 정도
이제 자기만의 커리어를 되게 열심히 쌓으신 분이었어고 그래서 그렇게 문화 차이는
못 느끼겠는데 마인드 차이는 있는 거 같아요 아 여기 사셨던 분 은 되게 잘해도
못한다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보양 사람들이 의외로 자존감이 진짜
높아요 진짜 뭐 아무것도 없는데 자존감이 진짜 높아 있더라고요
자기 어떤 사람인지 내 어떤 사람인지 알아 진짜
떤 대단한 사람이라고 막 그러면서 엄청 대단한 사람들이 날 만나고 싶어하는데 널 만나준다 막 이런 식
헐 왜 근데 여기 여기 분들은 너를 만나서 너무 감사하다라는 마음이
마인드 였고 어 그래서 그 마인드 차이가 다른 거
같아요음 놀랍다 아근데 재밌다 이런 얘기 듣는 것도 데이트하러 어디가
봤어요 데이트요리 이요 쉴 때는 이제 커피
마시면서 그냥 조용히 이렇게 있는게 그게 힐 어서 데이트를 많이 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 많이 가보진 않았던 거 어 그래네 앞으로 이제 다 바뀔
거야 우리 범이는 진짜 어 이제 남자만 진짜 품어 주시는 사람을 좀
만났으면 좋겠다 공부할 때 뭐가 제일 힘들었어 공부할 때 영어가 제일
힘들었어요 어 영어가 제일 힘들어서 바로 학교 연습 갔었던 거였거든 왜냐면 저희 학교는 그 필수로음
에서를 야는 영어 옥이 있었거든요 그걸 받아야 졸업할 수 있는 영어
옥이 두 개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거를 해야 돼서 바로 필리핀 갔었죠
그리고 어려운게 없었어요 그래 제가 그 한복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가 제가
대학교 때 대학교 가서 친구들이랑 친해져야 되는데 제가 고양이 북한이라고 하면 애들이 좀 멀리할까
봐 얘기를 안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얘기를 안 하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다 보니까 이제 속에 있는 얘기도 못 하고 그러다 보니까 한 대학교 3학년 때쯤 돼서 저한테
정체성 혼란이 오는 거예요음 그래서 아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 이런
정체성 혼란이 와서 대학교 3학년 때 교황 수업으로 그 역사 과목을
들었는데 그때 내가 배웠던 그 역사랑 똑같은 역사를 배우고 있는 지금 나는
우리는 한민족이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될 거 같아라는 생각이든 거예요 음 그래서 그때 그러면 나는
디자이너로서 한국 사람으로서 뭘 해야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그
한국 복식 한복에 되게 관심이 가게 된 거예요음 우리가 지금 패션
디자인과에서 배우는 건 서양 복식인 왜 한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서양 복식을 배우는 걸까 이런 질문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서양 복식은 계속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는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 가는데 그
이유는 뭘까 왜 한국적인 복식은 그 복에서 멈춰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게
된 거예요 대학 3학년 때 그래서 그걸 계서 깊이 공부해 보니까 서양
복식은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이게 발전해 온 건데
한복은 그냥 그 조선 시대에서 멈춰 있는 거였어요 그니까 시대가 발전하면
복식이 발전해야 되는 건데 한국의 복식은 그 시대에 멈춰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 내가 한 을 발전시키고 싶다 한국의 복식을 발전시키고
싶다라는 생각에서부터네 한복을 그 현대 한복이라는 주제로
이제 옷을 만들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던 거예 야 생각이 진짜 다르다 그쪽은 공부할 것도 많겠다네 엄청
많아요 그냥 뭐 이게 이뻐서 뚝딱 재단하고 만드는게 아니네 역사도 들어가야 되고 뭐 철학도 들어가 맞아
맞아 맞아요 그니까 그 모든 디자이너들은 그 옷에 자기만의 가치관을 다 어 그니까 제 오제 제제
가치관이라고 하면 저 저희는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그래도 한국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민족의 역사를 발전시키고 싶다라는 제 가치관이 제 옷에 녹은 거죠음
그래서 그때 그러면 한국 친구들한테 그 이후로 나 북한에서 왔어 밝혔어 아니요에 왜 못 밝혔어 한 민족이라면
웃게 때문에에 졸업할 때까지 얘기를 안 했어요 아 진짜네
제가 그 작년에 피전 한복을 만들면서 기사가 나왔어요 동화일보 우리 범위
기사가 나왔어요네 그 거기에 기사가 나왔는데 그게 어떻게 돼서 네이버 메인 파이트를 뜨게 된
거예요이야 근데 그걸 보고 제 친구들이 너무 익숙한 실루엣이라
하면서 단톡방에 올린 거예요 제 대학교 동기들이 그래 그러면서 어 나
맞아 헐 뭐야 이러면서 다들 충격받았었어요 어
서로 오고간 말이 있어 아니요 근데 신기하게 안 물어보더라고요 아무것도 진짜
반전이다 신기하게 저는 그렇게 얘 엄청 많은 걸 물어볼 거라고 생각해서
그이 긴 시간 동안 얘기를 안 했는데 아무 관심이 없더라고요 응 또 그
친구들은 오히려 반대로 물어보는게 네가 또 부담스러울까 봐 안 물어봤을 수도 있고음 아 멋진
대단했다 봄이야 뭐 공모 정도 해서 상을 받 맞아요 그 제가 딱 메인이
되고 나서 대표님한테 뭘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인정시키는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 한복 무보 개발
공모전이라는 공모전이 있었는데 거기 그냥 일상에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인데 한국적인 요소가 들어간게 어 이거는 내가 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표님한테 이거 제가
하고 싶으니까 이거 밀어 주세요라고 딱 제안을 드렸는데 대표님은 흔쾌히 알겠어요 한번 해 봐요 이렇게 하신
거예요 님이 밀어주 그래서 딱 하고 발표까지 다
가고 절차를 다 거쳐서 대상을 받게 된 거예요 쭈 그리네 그래서 그 제가
만든 디자인이 이제 그 대구 관광 안내용 군무 보이랑 버스 버스 기사
군무 보 어머나 이제 올해 여름 지금 도입됐을 거예요 오 오 우리 봄이
너무 기특하다 어 세상에 아 우리 디자이너님 아주
그냥 들을수록 정말 보듯 하네요 패션 디자이너 된 사람들이 많나 우리 북한
사람 중에 아니요 패션 디자인된 사람들은 별로 없고요 제가 또 이번에
그 어떤 기업에서 그 청년들을 지원한 지원 사업 같은
프로그램의 그런 회사에서 어 너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들을 모으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 어
그래 그 발표한 사람들 중에 근데 이게다고 사람들 가들을 모아서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되게 엄청 많은 고향 사람들 그 사업 아이템이 있으신
분들이 모여서 하는 거였는데 그 사람들 중에서도 그래도 또 꽤 많은
사람들이 그걸 지원을 해서 사업 발표를 하고 붙은 팀이 딱 열 팀이었어요 저도 그렇게 해서 붙게
되었고 음 랜드를 지금 받게거든요 오 그 개인 브랜드로 또
빠져는 거 네서 해살 다니면서 지금 개인 브랜드 따 이름이 뭐야 개인 랜드 개인 브랜드는 쥐비 기억
비역 이게 지금 제 로고든 이제 쥐랑 비비 같이 있잖아요 그리고 비읍이라
기우기 있잖아요 어려워 지비 키비 저는 퓨전 한복 음복을 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에 뭔가 한글를 안 넣으면 뭔가 그 옷에 대한 얘기가
아닌 거 같아서 한글까지 같이 넣었어요 아 그랬구나 어쨌든 대단하다
개인 브랜드도 런칭하고 자유시장 경제에서 돈을 보러
보니까 그 소감이 어때 쉽지가 않은 거 같아요 아주 정답 좋았어 그다음에 또
쉽지가 않은 거 같고 일단은 내가 이렇게 전쟁이 치열한 곳에서 내가
만약에 그 어떤 내가 원하는 성과를 이루면 그거에 대한 성취감이 몇십배로
되는 거 같아요 그럼 넌 지금 북한에 있었으면 뭐가 됐을 거 같아 북한에 있었으면
날날이 날날이네 숨어서 옷 입고 싶은 거 입겠다고 막 난리치면서 다녔겠지
그랬겠지 어 너 혼자잖아 아무도 없잖아 가족이
없을 때 진짜 외롭지 지 맞아요 언제 제일 부모님 생각나 제가 1대 1로
누구랑 경쟁할 때는 되게 강하거든요음 그근데 그 가족이 옆에 붙으면 되게 소심해 지더라고요 그까
예를 들어서 저랑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랑 야작이 할 때 너 작품
그렇게 만들었어 난 더 잘 만들 수 있어 이런 자신감이 엄청 차 있다가 걔네 부모님들이 막 와서 어 우리
아기 이러면은 그때 막 작아지더라도 엄마가 와서 우리에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 혼자지 너는 외동이 맞아 아니요 동생이 있어요 근데
동생이랑 나이 차가 엄청 심 많이나요 여덟살 차이 범이는 좋은 이게 아빠
같고 좀 넓고 자상하고 그런 사람 만나야 되겠다 우리 저기 저 박피디
님처럼 한국에 살면서 뭐가 제일 힘들어
지금은 힘든 거는 없어요 어 지금 한창 이제 힘 받았을 때니까 디 이거
디자이너도 이제 네가 됐고 또 브랜드도 런칭했고 그러니까 그래서
초반에 제가 또 대학교 때 응 내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샤넬 수석
디자이너가 된다고 막 그랬어요 샤넬 수석 디자인 그니까 그때 너무 철이
없다 그러니까 오 처 없어 꿈은 꾸는 거지 예 철이 없을 때가 오히려 무서운게 없는가 봐요 철이 없어야
걱정이 없나 봐요 제가 심하게 처리 없었잖아요 그래서 보니까 대학교 딱
들어가서 내 졸업하면 샤넬 쑥 디자이너 된다고 막 그랬어
좋다 근데 이제 그렇게 철이 없었던 거를 깎여 가는 순간이 졸업해서 그
딱 취업한 첫날부터 있어요음 또 취업한 첫날 때 또 늦잠자 갖고
지각해 갖고 근데 거기 디자이너 실장님 있잖아 메인 디자이너님이 되게
무서워요 처음에 갔을 때 그 디자이너 실장님이 눈에다 한 섀도를 이렇게
바른 다음에 눈이 굉장히 크시고 어 그 코 엄청 못떡 하시고 그런 퍼런
눈으로 절 딱 찾아보시면서 왜 지각했어 그래서 눈물이 핑
돌더요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 그게 시작이었어요 제가 이제 철들기 시작한
계기가 된게 그게 시작이었고 막 이렇게 무서운 실장님 밑에서 내가 잘해야겠구나는 생각이 들면서 무조건
일찍 일어났고 그런데 또 이제 저희가 옷을 만들고 품평회는 거 매주에 해요 근데
전 막내 아아 근데 실장이 실수하면 대표님한테 잘릴 수 있어니까 실장에
자기가 실수한 것도 막내가 했다고 하는 거예요 저한테 했다고 하는 거예요 보미가 잘못 뽑았다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어 류명 쓴 거네네 응 근데 거기서 죄송합니다 해야
되는데 아니고 든 이거 실장님이 하신 거거든요 이렇게 나온 거예요네 근데
대표님은 항상 회사에 있지 않으시고 제 직속 상사는 실장님이시면서
아이구야 다 맞춰 줘야 되는데 아 그래서 처음에는 철이 없다 보니까 사회생활을 모르다 보니까 맞춰줄 줄을
몰랐던 거 그래서 엄청 금을 딱 당하고 나서 갈금 어떤거 당했어 예를
들어서 제가 맞춰야 되는 옷이 막 세 개다 이러면은 다른 서브도
나눠줘야 되는데 안 나눠주고 모든 걸 다 저한테 맡기는 거예요 제가 맞춰 오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퇴근하면서 혼술이 하고 싶은 거예요 너무 힘드니까네
퇴근하면서 와 사람들이 왜 혼수를 하는지 알겠는 거예요 그때부터 이제
제 철이 없던 수속 디자이너가 된다 했던 그 철 없는 마인드가 깎이기 시작한
거예요 아 여기서 내가 버티려면 분들한테 내가 잘해도 못한다 라고
해야 되고 이분들 모든 걸 맞춰줘야 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예전에는 나
잘해 나 수속 지자 데수 있어 막 이랬던 마인드를 다 깎 깎아내리고 난 아예 못하는 사람이야 난 2분한테
무조건 다 배워야 된다는 마 마인드를 가지게 되면서 그때부터 사회 생활을 잘하게 됐어요 어 예를 들어서 노루를
보고 사슴이라고 하면 노루가 사슴인 가요 아니죠 다르죠 사슴 맞습니다
[웃음] 그렇게 해서 사회생활을 배우면서 경영을 쌓아서 제가 제의 디자이너를
보여줄 수 있을 때 대표님이 마침내 보게 돼 갖고 저를 인정해 주게 되죠
그 실장님은 그래 지금 계시 안 계셔 었 계셔
잘렸어요 어찌 보면 생소한 땅이자 아 근데도 그런 또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네가 잘 걸어왔네 그래도 파괴하고 싶지 않았어 파괴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너무 무서우니까
응음 내가왜 견뎌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포기하고 싶었지만 내가
지금까지이 패션을 위해서 걸어온 시간들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포기하기에는음 그래 어쨌든 잘 이겨
냈으니까 너의 그 맑은 차원이 참
좋다 잘 이겨냈다 어 그 앞으로는 꿈이 있어 그 원래는 사의 순석
지장가 되는게 꿈이었는데 이제는 한국적인 미를 전 세계가
열강하는 트렌드로 만드는게 제일 꿈이에요음 한국적인 미가 전세계가
지금 서양 복식이 트렌드를 항상 자리 잡고 가잖아요 그렇지만 이제 제가 그
트렌드를 한국적인 미로 바꿀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는게 제 꿈이에요음 그래
잘 됐으면 좋겠다음 진짜 어찌 보면 우리는 여기 진짜 빈몸으로 왔잖아
근데 이게 공부도 할 수 있게 됐고 거기 에 대해서 소감이 있어음 일단은
저는 나라에 감사한게 많은 거 같아요음 일단은 제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고 고향에서 생각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네 공부를 잘해도 토대가 안
좋으면 대학교 못 가잖아요 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고 또 공부하는
가정에 학교 다 장학금으로 나오고 하니까 그 모든 환경 내가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나라가 너무 감사하고 그래서 감사해서 저는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고 오 그래서 때 나라 항상 감사한 거
같아 야 참 그 귀한 마음이 너무 진짜 이쁘다 근데 야 너는 얼굴은 더
아기가 되고 마음은 더 그냥 깊어졌네요이 됐네 응 대단하다 진짜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요음 뭐 다른 방송에서 보니까 말 겁나
응 씨도 지어주고 어 내 씨도 지어 왔어 내 언니가 문자 보냈잖아 언니
씨도 지어 달라고 아네 그 식는 즉흥적으로 나오는 거여서 즉흥적으로
언니의 그 언니랑 하다가 그 즉흥적으로 그런 아이디어가 생각나는 거야 갖고 지워라 하면은 지오는게
아니라 지금 언니 모습을 보고 말하는 거여서 어 그 지금 지어 봐봐 난
우리 미한테 듣고 싶고 얘가 처음에 나 마음껏 많이 지켰어요 성형하러
간다고서 하지 말라니까 언니도 했잖아요 이래가지고 진짜 아저 눈 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때 진짜 할
말이 없어 갖고 입술고 아 내가 보면 하지 마 어차
비해 범이야 하지 마 이러면서 그랬던 우린데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나서 좋습니다 우리 운하를 위해서 뭐 가져왔다면서 아네 맞아요
이게 뭐야이 아니 무슨 턴도 없는데 이런 걸 가져오고 그래 언니 반은 제가 뽑은 거예요 응 뽑은
거 요거는 제가 뽑기에서 뽑았어요 아 뽑기에서 뽑은 거야 요것도 뽑기에서
뽑았고 요것도 뽑기해서 뽑았어요 은하 그라고네 어머나 우리 은나 좋아하겠다
야 그리고 요건 제가 샀어요 엄머나 어떡하니 범이야 요거 제가 근데 제
사이즈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세 살 아기 옷 이렇게 방사해서 상관 가 맞을지 모어요 아고 안맞으면
눌려 세상에 우리 범위가 이렇게 또 세상에 범이야 그리고 고맙다 이거는요
요즘 트렌드가 긱시크는 패션이 긱스 패션이 트렌드인데 긱시크 긱시크 응
긱시크 뭐요네 긱 시크가 기이 괴짜스러운이라는 뜻이고 시크가
시크하다는 뜻이에요 되게 상반되지아요 근데 크 한데 개자 스러워야 돼요
써볼까 한번네 엄머나 나는 봄이야 너무 고맙다 어떡하니 저 잘 키운
보람이네 보자 언니 개짜 럽고 시크해 보이는지
봐봐 일단은이 옷이랑 매칭이 되게 잘돼요 왜냐면이 옷 자체가 되게 한복
기시 그 느낌으로 디자인을 해서 지금 딱 긱식 느낌이나요 아 야 진짜 아
대박이다 고마워 범이야 우리 범이는 어 세상 어머야 이거 너무 귀엽다
어우 언니한테 이런 거 안 가져와도 되는데 이렇게 또 마음을 써 가지고 우리 범이가
맞습니다네 요즘에 남자 친구 있어네 있어요 있어 잘해 안 해 잘해줘요
너도 잘해야 돼 알았지데 만약에 못 하잖아 언니한테 신 거해네네 가서
그냥 본대를 보여 줄게 근데 너도 잘하고 서로 잘해야
돼 응 이제 나이가 몇 살이지 그러면 저 이제 마늘은 살 어 마누 윤성열
나이로 살 윤성이가 누구요 아 윤성열
대통령님 아 그래네 요즘 다 윤성열 나이로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윤성열 그
바꿨잖아요 만나이로 그래서 윤성열 나이라고 하는데 아
고마워겠다 mg 다르네 북한의 mg 다르고 너 한국이 여서 한국지가 돼가지고 또 다르고 대박이다 대통령
이름 막 불렀어 너 북한 같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총살이죠 뭐 한국의 대통령 처음 보고 선고해 봤어
성고 많이했죠 어 안했어 저 선거 지금네 번째 어네 번째야네 대통령만네
번째요네 대통령네 번째 아니지 바보야 그러면 네가 한국지 20년이 아
그런가 그럼 그럼 국회의원까지 다 포인가 어어 선거할 때 좀 특이한게
있었어 내가 철이 없다 보니 없었다 보니까 선거할 때 그 교회 목사님이
누굴 찍으라고 하면 가서 그요 대통령이 바뀔 때 제 주체로
한번 해보려고 어 긴 그럴 수 있어 뭐 와가지고 진짜 공부하느라 그래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정치에 관심이 당연히 없을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선거 잘해서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나가고 우리 또 보미가 이제 결혼식날
언니가 사회를 봐준다 어때 좋아요 친구는 다를 수 있지 언니가
말이 우리 앞에 기하라 있지 김마라 언니의 사회를 받았다 저회 70만에
나왔어 정 제 잘 본대 나는 모르겠는데 구독자님들이 다 댓글을 달았어 누가 마음에 들면 언니한테
요청을 해요 알았지네 여러분 오늘은 제가 7년 만에 만난 우리 동생
봄이와 함께 촬영을 했습니다 우리 봄이 앞으로 더 열심히이 땅에서
미래로 잘 살아갈 수 있더록 많은 좋은 댓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봄이야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음 점심 먹으러 가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 앉아 빨리 인사해야 돼 응 언니 채널에 나온 소감 한마디 아
언니 채널에 나온 감요 언니가 항상 예전에 뮤지컬 연기도 막
했었고 그리고 노래들 진짜 잘하잖아요 응 고마워 그래서 지금 갑자기 행 씨가 생각났어요 어 그래 뭐야 운
띄어 줘야죠 강 강정 언니은 은근 질투나요 종 정말 왜
이렇게 다 잘해요 와 대박이다 어 알았어 범인 고마워 우리
범인은 정말 패생 기 왕이 되라는 의미에서 언니가 킹 봄으로 앞으로
불러줄게 킹봄 마음에 들지 응 킹 우먼네 좋아요
이해네 러분 감사 니다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안녕히 계세요
[음악]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 저는
지금 어디 왔냐면 우리 봄이가 일하고 있는 패션 디자인 그 회사에
왔습니다 야 아 여기가 우리 범미 회사가 일하는데요 오
쭈그리 범이한테 번 전화해 볼게요 미야 나
도착했어 어머 어머 어머머머 머나 어떡해 어떡해 어머나 안녕하세요
잖아요 어어 포세 아 포셉
안녕하세요 아 여기 메인 디자이너 우리 보자 보자 이거 이번에 여름
심상 제작한 옷이에요 어 진짜네 어머 이쁘다 야 네가 입은 건 다
멋있어야 야 너 여기가 진짜네 야 너 오늘 왜 이렇게 더 멋있어 감사합니다
갈 어 어 대박 야 이거 이렇게 이거 멋있는 디자이너 메이 이거 실장님한테
이런 거 시켜도 되는게어야 야 여기야네
나 형 안녕하세요 맛 와 여기가 저마이 다
어보 있어 여기는 저희가 it 공사인데 it 개발돼 갖고 저기 it
개발 주여서 와 여기 들어가면 돼 어 그래 어 거기 안
[음악] 들어갈게
안녕하세요 야 어들이 특이하다 엄마 이게 저희 국무 했었어
아 진짜 아 어머나 이거 우리 범위가 한
거구나 그지 야 단추도 너무 이쁜데가
진짜네 말대로 전통에 미을 잘 살렸네 무지개야 이거 이거는 대구 상진 컬러
대구 대구 군무국 이니까 대구를 상징하는 컬러예요 대구가 상징하는
컬러가 이거요네 아 그렇구나 이쁘다 가죽 치마요네 요거 리얼 가죽이 아
이것도 다 디자인한 거야네 요거는 작년에 했던 거여서 지금 안 팔아요
안 팔아네 지금 우리 신상한 거는 이쪽에 원대표님 그린 작품 중에 하나
아 아까 그 니체의 철학을 담아서 맞아요 맞아요 어 요건 갈치가 우주를
[음악] 날다라미 있잖아요 갈치가 우주를 날아요
대부분의 그림이 다 우주에요이 이것도 우주 중심에 한반도가 이렇게 있고 그리고 우주
중심에 남녀가 있다라는 이거 너무 의미 있는데 맞아요이 남녀 누굴까
나랑 너랑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응 예이
옷을 가지는 사람마다이 그림에 대해서 자기를 의미부여해서이 뭐 생각하면 되고
이것도이 눈이요네 맞아요 힉스를 찾아서라는 리는데 힉스가 엄청 작은
거잖아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건데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거를 보기 위함이라는 그림이 저이 그림 하나하나
보면 되게 재밌어 진짜 미 있다 어 그리고 요거 요거는
오션 트렌드인데 응 뭐이 바닷속에 있는 런 소라 같은 것들 아 이게 라구나 런
다양한 것들이 서로가 적대 관계가 아니고 되게 평화롭게 같이 다들
지내는 오션 브랜드 오션 속 왠지 남가 상징 하진 않았지 미래지향
쪽으로 어 뭔가 느낌이 좋다 이게 이옷가 다시 보게 된다 이것도네 제가
날지 못하는데 날고 싶은 꿈이 엄청 컸대 욕망이 개꿈을 이렇게 싫어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나는 새를 상징해서 그렸대요 보미야 여긴롱 스타일이야
프라다에서 계셨던 님께서 그 메인으로 잡았었던 옷인데
어 진짜 오 야 뭔가 그렇게 말하니까 프라다 갔잖아 어 이쁘다
여기가 포세스 여기 노 방은 어디야 대방은
응 아 여기가 노가 일하는데요네 제가 인형을 좋아했고
인형이 이렇게 맞 여기도 인형이 이렇게 아 여기서 일하는 거야네 그래서 여기서 피트에서 걸 보고 어
네가네 이또 제가 그린 거예요 이거 제가 그린 거 진짜 너무 귀여워 예 이거 올해 청경 해어 갖고 청서 제가
캐릭터 개발해 청 캐릭터 개발해고 이거 네가 디자인한 들이야
컴퓨터를 이렇게 그린 거야네 이거 이건 다 컴퓨터를 그리고 먼저 이렇게
아이디어를 응 여기에 이렇게 적어요음 그니까 이거는 제가 개 브랜드 하는
그림이고 개인 브랜드 거고 이렇게 이거 디자인하기 전에 이렇게 어떤 걸
할지 아이디어를 다 적어봐요 어 그리고 다 적은 다음에
어 러프스 대충 이렇게 그려봐요 응 그래가지고 여기에 이제 어떤 느낌으로
전개한다는 걸 다 쓴 다음에 여기에 이제 이렇게 옮겨서 그리는 거예요 컴퓨터로 그리는 거야네 컴퓨터로
그리는 컴퓨터로 그리는 거는 누구한테 배웠어 어 이제 일단 이거는 패션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다 가르치고 아
이제 어느 정도 이제 제 4년 차가 됐으니까 생각한 걸 다 이렇게 그릴 수 있는
차죠 그 그렇구나 범이야 아 진짜 대박이다 야 이거 디자인만 봐도 이거
너무 이쁘잖아 이거 꽃도 제가 다 개발한 거예요 아 진짜네 이거 뭐
있는 꽃이 아니고 응 그 고려청자에 있는 모란 꽃인데 그 모란꽃을 현대화
해서 제가 개발한 거예요 야 헐 대박 그래서 요런 모란꽃을 이렇게 나염
하는데 응 뭔가 그 모란꽃을 상반되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 갖고
아예 부각시켜줄 수 있는 그런 오브제가 뭘까 생각했을 때 아음 그
요런 이게 원단인데 이거 원단을 이렇게 상징한 건데 오박 아 그
노박이 아는 이런 원단이에요음 이런 이런 이런 원단
이런 거 아 이거요네 요거를음 제가 쟤를 이렇게 가려줘 보면 어떨까 아예
그냥 이렇게 막 노출하는 것보다 가려주면 어떨까 해갖고 여러 가지음 도 이렇게 해보 이거 바지 너무
마음에 든다요 바지도 세트랑네 이것도 응 이게 어 이런
시보리가 나오지가 않아요이 제가 그린 그림대로 시보리가 나오지가 않아요 그래서요 시보리도 제 그림을 의뢰해서
직접 짜야 돼요 아 진짜네 그래서 그니까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걸
시도해 보고 싶어서요 좀 여러 가지를 지금 시도해 보고 있어요 아 진짜네
실도 있고 이게 이게 다 온다 아 근데 이런 거를 그리고서 원단을
이렇게 가져와 갖고 어떤 원단을 쓸지 이렇게음 해서 골라서 하는
아 야 원단이 엄청 많네네 그리고 이거이 이런 거는 제가
지금 막 새롭게 시도해 보려고 하는 그림인데 응 이제 추석이 오잖아요
추석 추석때는 이제 저희가 좀 한국적인 느낌을 입고 집에 가잖아요 그지 그지 근데 저는
생각해보니까 추석에 부모님 배로 못 가잖아요 그래 그때 내가 뭐했더라
생각해 보니까 고향의 보험 있잖아요 내가 살던 고향의 노래 있잖아요 피는
살 맞아 맞아요 그것도 고양에서 추석 때 나오잖아요 그래 아 이거 엄마가
거기서 죽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나는 못 가는데 엄마가 들었던 그 노래를
나도 같이 이렇게 앉아 들으면서 아이 노래로 내 추석의 옷을 한번 올까
이런 생각이 있는 거예요 어 그래 갖고 좀 응 야 복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 달래라는 그런 주제로 옷 하나 풀어 돌려고 하고 있고 그리고 여기 보면
울긋불긋 꽃대 거리라는 주제 해서 두 가지 아이템을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 너무 좋은 거 같아 왜 가슴이
찡하지음이 뭔가 마케팅으로 자녀들이 리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추석 선물
뭐 이렇게 나가도 되겠다 아 추석 선물까지 제가 좀 옷을 영하게 만들기 때문에 부모님들한테 주 선물은 못
하고 일단 저는 이제이 예쁜 옷을 입고 고양이 못 가지만이 옷을 입어
주시는 분들은 그 제가 못 가는 그 마음까지 담아서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뵐 수 있으면 대리만족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 아 그것도 좋네네 징하다 아 진짜 아
예 나 바라보면 패션 디자이너이 너를 보러 온다고 원피스를 이렇게
꽃단장하고 왔어 근데 언니한테 딱 잘 맞아요 뭔가 알아서
느낌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야 너 그거 댓글 봤어
아 봤어요 댓글 봤어요 아이유 라는데
아니 이거는 욕 먹을 거 같아요 진짜 아유
아유 아 아유이 님 팬들이 보면 욕 욕할 거 같은음 아유 겸손해라 어
확실히 너 와서 보니까 지금 너이 차림부터 쭉 일하는 복장이 아아네 너
완전히 그날에 꽃 단장하고 왔니 이제 보니까 맞아요 근데 이게 훨씬 더 멋져 그라 아 진짜요 어
완전이워 아 아진짜요 맞아 그 언니한테 갔다고
기가 무슨 끝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우리 범인의 회사로 드디어 왔습니다 와가지고 우리 보미가 어또 어떤
회사에서 어떤 사장님 밑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잖아요 그리고 또 많은 응원과
대꾸를 남겨 주셨어요 여러분들께서 국궁 퍼러 선녀를 좀 정부에서 잘 대해줘라 일단 너무 감사하고요 우리
범이가 자기 회사 사장님 줄랑 게 하더라고요 엄청 재밌고 좋으신 분이요
그래서 제가 왔어요 일단 만나볼게요 어서 오세요 어네 아이고 대표님 요쪽 보고
인사한번 말네 안녕하십니까 임재범이랍니다 반갑습니다 아 가수
임재 우리 예 그렇습니다 우리 대표님 제가 회사 소개 좀
해주시면네 우리 회사는 이제 원래는 인터넷 마케팅 회사
서울대생 여섯명이 이제 15년 전에 만든 회사인데 예 아 그분들이
다 대기업으로 취업을 가고 한 분이 남아 가지고 10년 전에 저하고
연결이 돼 가지고 제 창업한 회사입니다 아 정말요 그래서 실제로는
이제 디지털 마케팅을 전문으로 했는데 저희들이 이제 국내 대단한
회사들의 전자상거래 모를 이제 제작해 주는데 그중 의 한 회사가 우리
전자상거래를 직접해 해다오 해서 저희들이 하다가 어류 쪽에 노하우가
형성이 되고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우리 브랜드를 실제 런칭 하자
해가지고 했는데 그중에 이제 프라다 근무 경험이 있는 분들이 또 있어서
명 예 저희들이 이제 실제 런칭을 해서
지금은음 이제 패션 쪽이 매출에 한 80% 이상 차지하고 있는 그런
회사입니다 어 제가 너무 대단한 분을 만난 거 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를
아유 일단은 이렇게 회장님 그 회사에서 잘 뿌리를 내려 가지고 일을
하니까 또 거두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사니다 북한 사람인 거 알고
받았어요음 처음에 몰랐습니다 그럼 북한에서 왔던 건 어떤 계기를 통해 알게 되 음 나중에 이제 본인이
얘기했고 그다음에 또 질문 그 기사 난 것을 저한테 보여주고 해서 알게
됐습니다 아 그때 느낌이 어떠셨어요음 긴가민가
했어요데 북한 mg 써보니까 언어 입장에서 어때요 아 전혀 문제였어요
아 그래도 단점이 있다면 아니 없어요 없어 어 회장님 너무 아 너 되게
좋아한다 정말이 언어적인 면에서 전 그거 없었어 언어적인 면에서네
몰랐다니 그 몰랐어요 장점은 그러면 뭐라고 보세요 원래 본성이 이제 쾌활하고 명랑하고 모든 데에 고기
심을 갖고 있고 어 패션에 대해서 굉장히 또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 그러니까 장단점이 없다
예 그러면 혹시 북한에 대해서 평소에 어떤 마음을 갖고 계셨어요 어 저희
할아버님이 인재라고 어 굉장히 조선시대에 유명한 문필
란데네 그분이 이제 황진이를 굉장히
사모해서 평양 감사로 예정이 돼서 이제야 이제 황진이를 보겠니 하고 평
로 가면서 황이 어디 있느냐 물었더니 이미 돌아가셔 가지고 머 무쳤습니다
그러면 묘로 가자 예 묘로 가서 거기서 이제 술을 한 잔 권하면서
실을 었죠 시조를 었는데 사실 그시 이제 조정에서는 예
평양 감사로 보냈는데네 기생 무덤에 가서 시을 그래서 원래 이제 그 할아버
관직의 뜻이 없으셨어요 예 그 전집을 예 북한에서 먼저 발간을 했어 아
진짜요 아 예 그래서 우리 그 정문에서 그거를 전부 나중에 입수해서
저희들이 읽어 보기도 하고 어 그런 리 북한의 장점 우리의 장점 딱 합칠
수 있으면 참 좋죠 그러게요 문화적인 면에서는 결가 활발해 예 맞습니다
그리고 사장님 그 지금 북한에서 한류의 패션을 엄청 사모합니다 아
그래 따라지 못해 안 다리거는 필요하면 뭐 북한 평양에
우리 패션쇼를 한번 해가 그 그때 총과 하면 되겠네요
그렇죠 그러면 범인한테 혹시 뭐 바라는 거 있어어요음 마음껏 꿈을
디자인 꿈을 펼치기를 바라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항상 제가
주문하고 있어요 어쨌든이 땅에 와서 자 이렇게 잘 적응한 우리 범위를
따뜻하게 회사에서 품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네 범이야 너는 사장님을
어떻게 생각해 짜 제 꿈을 펼칠 수 있게 기발을 만들어 주신 분이어서
저는 좀 아 그래 항상 감사로 잊지 말고 더 성실히 해서 더 큰 꿈을
위해서 아까 우리 사장님 말씀하셨던 것처럼 평양에서 쇼를 합시다 그때 또
제가 또 카메라들 갈게요 오케이 예 여러분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에 또 우리 보미
말고도 다양한 곳에서 정착해서 열심히 살아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우리
사장님에게도 여러분 댓꿀 박수 한번 보내 주시고요 어 그리고 우리
퍼셉이라는 또 브랜드가 지금 또 유명하니까 거기에도 관심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감사니다
감사합니다 어색해요 폭을 이거가
기거네
[웃음]
가죠네 우와 언니 엄청 힘드네요 나 산에서 왔잖아
밖에 근데 빨리 입고 싶다 반바지에
k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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