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태 풀영상] 쌀 1키로도 못받고 일했던 북한 의사가 한국에서 첫월급을 받고 눈물흘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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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479 views Nov 4, 2024 #강은정 #강사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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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정#한국#가족#가수#강사#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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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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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kl6yv
5 months ago
안녕하세요? 출연자 한성태의 아내인 최현숙입니다.
<한성태 브이로그 풀버전>으로 다시 인사드리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6월, 저희 이야기가 방영된 이후 <횡성삽주 진온고>와 <온양가 한옥펜션>에 대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내 주셨습니다. 특히 진온고를 믿고 구매해주신 많은 분들이 다시 재구매와 지인 소개를 해 주셔서 진온고의 미래에 대해 더 큰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횡성삽주 진온고>를 구매하실 수 있는 판매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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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문의 : 010-2822-1579 (편하게 전화 주세요. 진온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드립니다.)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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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례-g3z
5 hours ago
한성태선생님 정말고생많으셨슴다.
자유대한민국에 오셨으니 늘 행복하시고 사업도 번창하길소망합니다.
사모님이랑 아드님이랑 앞으로는꽃길만걸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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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mim-bin
2 days ago (edited)
한선생님 저도 한가 입니다^^
펑펑 울면서 보았습니다.
너무도 좋은 사모님 만나
현재는 행복하신 모습 보니
과거의 북에 있을때와
힘들게 죽을고비 넘겨가며 오신
고생을 보상 받으신것 같아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하시는 사업 번창하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응원드립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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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꽃과금은보화
5 months ago
남한으로 잘 오셨어요
이제는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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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ply
@wwegga
5 months ago
부인이 엄청 똑소리 나네요
주관도 정확하고
이해와 배려심도
있는 좋은 부인을
만나셨네요
건강하시고
하시는 사입도
번창하시길 합니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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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진-q5q
5 months ago
한성태님
한국에 오신것을
진심으로 환영함니다
눈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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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ws7np
5 months ago
아. 스트레스로 아픈데 이영상보니
또 많이울리네요
이런 인재가
대한민국에오셔서 감사합니다
배우자도 잘맞이하시고
귀한일 하셔서 감사합니다
은정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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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x4j
5 months ago (edited)
곰곰히 생각하던 아드님이 아버지를 부르며 쫓아오는 장면 등 여러 장면에서 눈물이 앞을 가렸네요. 한선생님,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성장하셨어도 정신과 마음이 곧고 밝고 맑으심에 놀랐습니다. 훌륭한 아내분과 , 아빠 닮아 현명하고 생활력 강한 아드님과 온 가족이 평생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은정씨도 함께 울고 웃으며 참 실감나게 진행을 잘 하셨구요. 고마워요.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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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석윤진왕눈이
5 months ago
우리 은정씨가 그리 슬피 우는모습 처음 봅니다 저도물론 엄청 눈물을~그리고 한성태님 께서 탈북할때 하늘도울어 땅이 젖고 변방대도 울고 중국사람도 울고
병원에 있던 사람들도 울고 국정원분 들도 울고 산초목을 울렸어요 그래서 이제와서 보니 사선을 넘어 오신것이 박사 사모님을 만나려고 그랬나 봅니다
또,아드님에 성격은 이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어디서든지 리더 역할을 잘 하여 성공 했고 앞으로는 더욱 힘차게 뻣어 나갈겁니다
부디 건강 하시고 하시는 사업~ 사람을 살리고 보호 하는 사업으로 번창 하시기를 두손모아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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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소유
5 months ago
한성태씨 고생은 많이 하셨지만 남한에 잘오셨습니다.
이곳생활에 잘적응해서 행복하게 잘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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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dy-bm8ny
5 months ago (edited)
늦게 만난 천생배필에 사업수완이 남다른 결과물의 진온고 부부입니다!
현재는 많은 판매 성과가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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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은반드시
5 months ago
이런 훌륭한 분들이 장거리이사오시는겁니다.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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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manyeom2496
5 months ago
이만갑을 보고 그러면서 많은 탈북 사연을 들었는데 한성태 선생님 부자 탈북스토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나네요...그런 정신력과 의지 때문에 의사도 되시고 그런 것 같습니다..하여튼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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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u3p
5 months ago
감동입니다,
꼭 행복하시고 성공하여 지난 고생한것 다 보답받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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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길-i5s
5 months ago
눈물이 앞을 가리더니 이제는 희망이 보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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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김-p1v
5 months ago
동맥을 끊어 아드님이 잘못 되었나 했는데 살아 같이 한국에 오셨다니 정말 잘 되었고요. 한국에서 열심히 일 하시다보니 맞는 일도 찾으시고 아드님
교육도 잘 하셨네요. 남은 생애 행복만 가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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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cjhk
6 days ago
훌륭한 성품에 잘 지내고 계시니 정말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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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dy-bm8ny
5 months ago
다양한 이력의 직업에서 이제야 한성태님 께서 본직업인 한의학의 결과물도 만들고 가정도 꾸미셨으니 많은 북주민들께 탈북의 가치를 잘보여준 사례로 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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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나라-b6q
5 months ago
"우리는 하나다"
걸어서 금강산 ~~~~
걸어서 평양 ~~~~
걸어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그 날을
위하여 ~~~~
남녘과 북녘이 하나가 되고
휴전선이 붕괴되어 자유통일대한민국이
되는 그 날까지
강은정님 화이팅
☆한민족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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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p6y
3 weeks ago
한성태 원장선생님 진정 한 의사 이십니다!
진온고도 관심 있어요^^
대한민국에 오신것을 진심 으로 축하드려요♡♡♡♡
사랑하고 감사하고 축복하고 기도해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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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그러니까 그다음부터 세트야 되고 그다음에 의사들이 환자들인데 쌀
1kg 담배 한각 이렇게 보 이렇게 받아먹고 진단서를 떼주고 사들이
나라에서 약도 안 주잖아요 예 그러고 또 뭐 장기를 좀
뜨자 그러면 서로가 이게 대란 방송 몇 번째 줄에 차를 옮겨서 상을
잡아라 하면 또이 옮겨주고 그래요 가까운 초소가 450m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은정 t 은정 있니다 오늘 또 새로운 초대
손님을 만나볼게요 어서 오세요네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저 북한 함에서 온 한태라 합니다네 여러분이요 앞에 안 보이던게 보이죠
예 오시면서 이렇게 또 꽃을 준비해 오셨어요 우리 한성대
사장님께서 게스트 분에게 꽃을 받아보는게 진짜 처음인데 님께서 준비해 주셨죠 이거 뭐 그렇죠 예
근데 사모님이 예사로운 분이 아니시더라도 어디 분이십니까 예 원래
저 사람의 스토리를 말하려고 하면 원래 5만원 꺼에 그
심사임당 그분의 그 후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태어난 것도 저기 강릉
오주권 오죽헌에서 태어났고 서울에 와서 숙명여대 나왔고 네네 그리고
지금 현재는 hrd 그 박사 불이십니다 오머 세상에 아니 이게
보통 그 북조선에서 온 여성분들이 우리 대한민국 남성분들과 만나서
결혼하는 경우는 많지만 북한 남자분께서 대한민국에 와서 우리 한국 여성분과 산단 이건 왠지 모르겠는데
비율이 정말 작거든요 그렇죠 거의 보기 힘들죠 예 그런데 거기다 또 박사님이 그래요 왜 박사지 알겠네요
일단은 그 사모님께서 또 이렇게 꽃을 보내주셨 제 너무 감사하고요 어떻게
그러면 탈북을 해서 우리 대한민국의이 여성 박사님과 이렇게 오늘 또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어떤 사연들이 있는지 만나보도록 할게요 한국에서
태어나 가지고 부모님이 영향을 잘 많이 받았죠 북한에서는 뭐 의사가 됐지만 여기는
아직 의사자격네 아 북한에서 의사를 하셨어요 어떤 의사를 하셨어요 그는
동사라고 하죠 여기 한의사를 이라서 동사라고 해
군복무를 83년도에 나가 가지고 신병 훈련만 1년 6개월 받았어요 군을
어디로 나가셨나요 아 래는 김지 안에서 군복무를 8년 정도 했어요
국군 국군이기 장병들 하고 서로 말하면서 복부 선다고 하면 돼요 예
아 그래요 진짜 말해 봤어요 그렇죠 그 뭐 이런 그런 나팔 같은 입이다
대고어야 오늘 너네 뭘 먹었냐고 작은 보리밥에 뭐 돼지고기 장신고 간
나이런 국 먹었다 예 그리고 또 뭐 장기를 좀 뜨자 그러면 소로가 이게
대란 방송 몇 번째 줄에 차를 옮겨서 상을 잡아라 하고또 이렇게 옮겨주고
그래요 가까운 초소가 450m 소리를 쳐도 다 가요 조용하니까 산 속이니까
그렇죠 그때는 우리가 있을 때는 그 대란 방송이라 해대 방송은 50승
네라는 방송을 그러니까 녹 줄에 다섯 개를 묶었어요 그러니까 4 5 20이
20이 그게 그러게 통치를 묶었으나 그러니까 거기서 이제 노래가 나가고
말 나가면 땅이 울려요 해가지고 사실은 출력이 대단했어요 그게 한국
방송이 그 방송을 또 북한 그 주민들이 들을까 봐 또 그걸 또 막
막는 방송을 해요 그니까 주민 지역에 가면은네 그 방송을 듣지 못하게
거기다 되고 마오이 다 대고 또 방송을 들어 어떻게 예 그럼 거기서 방송 어떤 내용들이 나왔어요 제 정세
그다음에 실제로 우리는 다른 부대 같은 거는 장교가 장교가 대대 급에서
대대 급에서 대대 보이지도 않나 대대 정치지도 않나 그다음에 그다 대대장음
그다음에 거기에 구이가 있고 그다음에 소대장들과
장가 예 근데 우리는 한 개 중대 예 장교가 명이에요 거긴 왜 그렇게
많아요 그러니까 감시가 써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한 개 소대 수명 정도를
책임지고 거기에 보이지도 치지도 소대장 거기에 또 중대에 또 그런게
있고 구구이 부중대장 그다음에 무슨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한개 중대 18명이 넘어가는 거죠 장교만 장교만
아 그럼 배고프진 않아 특이하게 잘 들요 아
전이니까 최전 방이니까 그렇죠 그 다른 부대는 굶어서 정말 머리털이 다
빠지고 영양실조 오지만 북한에서 여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렇죠
근데 거기는 병사들까지 다여 여가 담배 공 공가 한국군을 보고 너네
부러워하지 마라 뭐 이런 의미에서 중국도 있겠네요 슬실 걸어가도 걸어가도 한 10분이 넘어 오지않아요
한국으로 그러니까 도망가지 말라는 거죠 근데 그러면 국군을 이렇게 보면서
어떤게 치겠어요 멋 참 멋있어요 우리는 그 땡볕에 그 벌거벗고 예
그리고 앉아서 풀을 뽑으면 뒷자석에 목이 깔따구가 달라붙어서
막는데 국고는 그때가 보면은 기계로 딱 하고이 이게 모자 딱 창 쓰고
정말 멋있게 하고 기계를 딱 다 장애물을 관리를 하는데 그때 벌써
80년대 네 그렇죠 정말 하늘같은 차이 그때 벌써 그걸 느끼셨군요 그럼
뭐 물자라 그가 이런 거 나르는 거 보셨어요 거기는 다 직수기로 헬기로 들어와요 서서 헬기 그다음 차로
이렇게 문자 공급이 돼가든 예 예 여기 국군 쪽이 북한에는 뭘로
들어왔어요 북한은 그러니까 이게 일반 부대처럼 공급이 되면 가운데에서 다
떼 보어요 중간중간 떴 이다면 마지막에 사해지는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병사만 배가 걸려요 죠 그런데 우리는
그 체계가 체계가 그렇게 안 돼 있어요 평양에서 직접 물자가 내려와요 어 내려와 가지고 대대에서 그걸
떼먹는 거는 좀 없지요 평양에서 나와 가지고 그냥 소마다이닝
그니까 전쟁나면 들어가서 싸워야 되는 그러니까 이게도 그것을 그러니까 뭐
60일 조교 그다음에 경보 대대 정찰 이런 데서 나와서 공사를 했어요
근데이이 사람들이 나무로 도망가 한국으로 예 그러니까 그때서부터 딱
맞고 그 안에 공사를 다 민경이 해라 아 그래서 그때서부터 다 민경이 그냥
그 초소 공사를 했죠 예 이게 원래 주황 분기 설이라는 건 철조망이
없어요 아 그냥 보이는 거리 50승 50짜리 그니까 주앙 분기 설이라고
쓰고 그다음에 거기다 우리 쪽에는 한문으로 중앙 그러니까 군사 분기 설이라고 쓰고 밑에다가 번호 표 말이
있어 번호가 있어요 그니까 천리 아니에요 예 그러니까 그 번호가 있다고 그 표할 번호가 그걸 그까
꼽아 놓은게 주앙 구 개선이 거기는 이게 없구나 아무것도 없 아유 이양 오시고 그때 좀 오시지 그러면
그때는 참 그 전두한 전두환이 그 통치할 때죠 그때
그 미안마 미안마 가서 그 남군 폭발 사건이 있었어요 폭탄 테러가 있었어
폭탄 테러 있어 가지고 여기 그 대통령 실에서 가서 숱한 사람이 죽었고 아 그걸 북한에서 한 거예요
그거를 그죠 그래 가지고 그때 그때 전쟁이 터지냐 마냐 했어요 그때 그다
그저 다 갱도 안에 다 들어가 있고 그때 뭐 정말 힘들었어 그 예 진짜
전쟁 나는줄 예 근데 그 정황을 또 또 제일 먼저 발견한 거야 내가 그래서 그때 저는 그 민경이라는 그
적정 감시가 기본이에요 적정 감시라는게 국군 이게 한국 쪽에서
오늘 어느 초소에 무슨 차가 들어왔다 그다음 수차를 몇 명 나갔다 어디서
차가 몇대 들어왔다가 나갔다 들어 나가지 않은 차가 몇 대다 뭐 이런 것들 다 감시해 북한 처소에서 근데
아침에 척 일어나면 한국 초소는 그 군인들이 딱 나와요 나와 가지고
그러니까 그 경의를 딱 하면서 거기다가 태극기 하고 행기를 올려요
올리고 딱 들어가거든요 근데 제가 아침에 그 포대경 딱 열어 보니까
다른 때 다 올렸는데 중 가운데다가겠다 걸어 놓고 들어가더라 어 왜지 야 이게 뭐지 근데 그
민경이는 공공 하나 하면은 최고 사령부까지 전화를 할 수 있어요 예 아 그래서 그걸 적정 보고를 했더니
바로 통지가 내려오는게 저 도한 대통령이 그러니까 그 죽을 뻔했다고
예 폭발 사건 나 가지고 제 지금 전시 상태다 이러더라고 그래서 그때 적정을 제일 빨리 또 감시했다고
매달도 탔어요 오 그래요 그게 기본이니까 예 그래서 그걸로 이제
깃발을 꼭대기까지 안 가고 기 중간에가 조기 그니까 세상에 사람이
죽고 그 나라에 불상사가 나면은 그러니까 그 조기를 띄우지아요 그 조기 발견도 또 제일
먼저 했고 아 근데 어떻게 그러면 의사가 되셨어요 저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부모님 고향은 다 한국이에요 아 예 우리 청주한 씨라고
하는데 총주 그 한시는 하나밖에 없어요 예음 근데 외정 때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가 그 다 데리고 올라갔죠 북한으로 외정 님이
일제시대때 왜 가셨어요 좀 사연이 있었어요 어떤 사연이야 뭐 외론 하고
트러블이 생겨 가지고 예 예 왜놈들은 어떻게 하아 나니까 조금 사고를
쳤어요 왜놈들은 하고 그러니까 뭐 독립 투쟁이라 뭐 비슷한 거죠 그 그러 러니까 그때는 3년만 지라면
그러니까 제가 없어져요 그러니까 도망간 거예요 그러니까 3년 지날 때까지 북한으로 피신을 한 거네요
그러다 하니까 해방이 돼 가지고 고향도 오지 못하고 아 그렇게 갈렸나
남가이 그렇게 분단이 되면서 예 근데 우리 어머니는 여기 강원도 인지에서
태어났어 잘 살았어요음 우리 할아버지도 엄청 부자 됐지 예 아버지는요 아버지 그러니까
북한으로가 가지고 그냥 또 우리 대체가 인사하니까 어 거기서 사시다가
돌아가셨고 아 그러면 부모님이 그 북한 체제에 뭐 거의 엄청 오래 사신
거잖아요 어머니도 그니까 50년도 전쟁 터져 가지고 다 모여 해가지고
모이라고 하 이제부터 북으로 올라가겠어 집 다 챙겨가서 다시 나와
하더래요 그래서 그 지개 족 지에다 그 할아버지가 그 뭐 장면 냄비 같은
거 그다음에 세간살이 뭐 도구들 뭐 이불 같은 거 그거지고 그리고 피안을 가다가 어쨌든
저기 내금강 저 금강산 지구 그쪽에서 폭격으로 해 가지고 오빠도
돌아가시고음 그러니까 피부 치가 둘 남았는데음 언니하고 거기서 폭격이
헤어지고 잘 눈물이 많으신 분이에요 예 뭐 말 들어보면 눈물 나죠
어머니도 그 언니 헤어졌던 언니 그 못 40년 만에 그 주민 등록 가라리
있죠 주민 등록을 할 수 있는 그 분주소 있어요 분주소 예 분주소 거기서 어떻게 연락이 와 가지고
40년 만에 만났어요 아 40년 만에 그래도 헤어졌다가 그나마 만났으니까
진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부모 님께서는 그 북한에 사시면서
후회 같은 건 안 하셨어요 그냥 후회를 많이 했겠죠 우리 아버지도 고양이 그리워서 항상 그랬고 엄마도
내가 살던데 거기에 가면은 배나무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 밑에다가 된장
독을 묻어 놓고 왔다고 그러니까 고양이 그리우니까 그런 소리 하겠죠 예 근데 세상에
자기가 태어나고 자기가 정을 주고 하는 그 땅을 자기 집을 떠나겠다고
하는 그런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근데 우리 여기 온 사람들이 왜 왔겠어요
그 의사가 되는데 혹시 부모님 영향은 없었어요 그래도 부모님 뭐 재산도
있으셨고 저는 원래 의사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에요 아 우리 형제예요 예
칠형제 옛날에 많이 났네요 아버지 그걸 배운 건 저밖에 없어요 아
그러니까 아버지부터 동의 사셨어요 할아버지 때부터 아 그럼 대째 의사집
아네 그러니까 결국은 아버지가 저를 찍은 거겠죠음 어 그러니까 내살
때부터 왕진을 아버지 등에 엎혀서 다녔어요 예 다니면서 그러니까 그
치료하는 걸 그까 곰곰히 봤죠 예 예 궁금히 보고 그다음에 뭐 갑자기 뭐
죽어 가는 사람도 이렇게 살리는 걸 가서 내살 때부터 보 거죠 예
다하니까 뭐 조금 눈에 튀어요음 그러니까 나부터 열 살부터 열 살부터
아버지의 몸에다가 침을 놓기 시작했어요 살부터 진짜요 보구 그렇죠
아버지가 그니까 그 감각을 알려주죠 어 이럴 때는 더 들어가면 안 된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소에 그냥 실험 용이 되셔서 해라 하고 자기 몸을 통해서 배워 주신
거잖아요 그러다 그러니까 사가 될 거죠 결 예 그러면 북한에서 의사는
솔직히 말해서 진짜 배 일은 없고 그 동네에서 많이 어러 보고 그런
존재잖아요 뭐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북한에서는 의사가 제일
못한 지금 여기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면 아 무슨 소리야 나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모르죠 김일성이가
사망하고 94년 도서부터 일체 배급이 다 끊겼어요 배급이 끊기면서 의사들도
다 끊겼어요 그러니까 그 배급을 져야 되는데 어떤 때는 그러니까이 뭐 김일성이 생일 이라든지 2월 16일
김정일이 생일이라는 이럴 때는 명절 배급을 줬죠 명절 배급을 그러니까
그다음부터는 배급 체계가 어떻게 생겼 먹었는가면 예를 들어서 협동 농장 그
농장에가서음 그러니까 거한이 있는 그러니까 이런 기간들 뭐 군당 이라든지 행정 위원회라는 이런
기간들은 좋은 농장에 가서 좋은 땅을 받아요 예 그러니까 거기다가 감자를
심게 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종자를 매고가 가지고 걸음을 예 뿌리고 해
가지고 자기가 농사를 짓는 거예요 그러면 뭐 농사를 지어 가지고 뭐 그것도 정말 쉽지 않아요 벌써 감자가
달릴 쯤 되면은 군인들도 다 굶지 않아요 그러니까 군인들이 와서 다 훔쳐 가자면 또 경비를서야 돼 예 그
개우 캤다고 하면은 캤다고 하면은 옷을 져요 옷을 져 가지고 우리가
배급을 줬어 하고 배급 기표를 해 준다고 그러니까 농사는 내가고 농사는
내가지고 예 그런 체계가 그다음부터 이어가다 나니까 의사들도 업을 못
주다 나니까 의사들도 나가서 농사를 지어야 돼요 뭐 병원 어디는 무슨
어느 농장에 가서 어 몇 병씩 식구가 몇 치니까 몇 평이다 이렇게 의사가 농사를 짓다게 말이 돼요이 말 돼요
그게 안 돼요 군당 직원들도 다 농사를 지어야 돼요 당 가보도 농사
안지면 안 돼요 결국은 의사 역할을 못 하 의사 역할을 잘 못 하지요
그니까 병원이 그러니까 그다음부터 세트야 되고 그다음에 의사들이
환자들인데 쌀 1kg 담배 한가 이렇게 보 이렇게 받아먹고 진단서를
떼주고 사들이 나라에서 약도 안 주잖아요 약도 공급이 안 돼요 사호
대상이라면 군당 간부들 무슨 뭐 리 누구 과장 뭐 이런 사람들 그런
간부들이 치료받는 진료실이 따로 있어요 예 그 거기는 약이 조금 나와요 그러니까 의사들이 다 장사를
해야 돼 그러니까 약도 다 자기네 집에 개다 놓고 이렇게 수술환자가
왔으면 야 어 그 링거 포도당 만들어야 되는데 설탕 몇킬 갖고 와
뭐 포도당 그 링기 담아야 되는데 병 뭐 갖고 와 이러면서 그것까지 다 해야 되고 만약에 약이 필요하다
그러면 알려줘요 뭐 이렇게 필요하다 그러면 저 집에 가서 사와 자기네 집이야 그게 의사가 약장 사는 그
그러면 그걸 가서 낳아주는 거음 그러니까 의사들이 자기 밥벌이가 안 되니까 그때서부터 사직서를 내고 나
아파서 의사 못해 하고 다 시장에 나 완전히 무너졌죠 우 체계가 완전히
완전히 무너지다 나니까 시장에 아프면 약을 파는 사람들은 다 의사예요
사실은 그니까 약을 제가 어디 어디 아파서 그러는데 그거이 약이 약 써
그 사람들이 그까 돈 받고 약을 앉아서 장사를 하는 거죠 의사가네 그러면 아까 국가에서는 약이 공급이
안 된다 그랬는데 그 장마당에서 순환이 되는 약들은 다 있어요 어디 거예요 중국 거 그다음에 뭐 저기
러시아 거 유엔에서 오는 것도 유엔 약들도 다 일반 사람들은 혜택을 못
받아요 장마당으로 빼돌리는 거죠 그죠 유엔에서 약이 들어온 거 저 기억나요 타이렌 모고 봤어요 맞 예 그게
유엔에서 그러니까 그 전염병을 방지하고 그다음 그 사람들이 약을 쓰겠다 하면은 그걸 다 다가 빼돌려서
다 팔아먹고 간부들이 아니 의사들도 팔고 그다음에 간부들도 다 어쨌든 그
손을 걸치는 사람들마다 다 빼서 팔아 먹고죠 그 뭐 옛날에 그렇잖아요
학교에서 토끼가다고 하면 그걸 다 둬 가지고 다시 시장으로 나가서 다시
돌잖아요 그런 책이 아니에요 토끼 가지고 내라 하면 무조건 내라 하면은 애들이 장마당에 가서 사면 선생들은
그것도 그걸 다가 장마당에 대하는 거죠 아 그러면은 선생님 그 북한에서 우 동학을 하셨다고 해도 순전히
아버지한테 배워서 의사가 된 거 정말 힘들 때 대학교 나왔어요 어디
의대의 합니까 아니 거기는 억지로 보래요 진짜요 예 거기는 의사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학교 가서 배운다는게 뭐 혁명 역사 그다음에 노작 그다음에 철학 뭐 그다음 제일
마지막에 뭐 혈자리를 배워주고 뭐 어떻게 하고 뭐 전쟁 뭐 대비를 해 가지고 뭐 주사 놓는 법이라 이런게
실제로 가서 거기서 배운 의사들 별로 그렇게 좀 그렇죠 말도 안 된다 아니
의대를 갔으면 거기에 대한 공부를 해야지 형 혁명 역사는 부자들의 혁명
활동을 그걸 배우는 거거든요 그 산 대학은 다 같아요 똑같죠 그렇죠
학교에서 배우는 거는 그냥 그 원이에요 예 이원만 의사하고 18년을 공부해야 되는데요 영어 알아야 되고요
또 현대 마에 그 글로벌하게 지금 다 이게 뭔가 발전되서 가면 거기에 맞게
그 의료 기술을 또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하는데이 북한은 참 의료
뭐 환경도 정말 저지를 수밖에 없고 그 기술조차 진짜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를
지금 제가 좀 이해가 되네요 예 그럼 결혼하셨어요 어 그냥 거기서 사별이
됐어요 마음 아파서 저 이야기 안 할게요 뭐 의사도 진짜 하셨지만 밥은
그래도 먹고 사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탈북을 결심하게 되신 거예요 참 마음
아프죠 그 단과 수령 그거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말 하면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면은 나쁜 사람이에요 예 근데 제가 자기가 잘한
그 고향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아무도 없지 아무도 없어요
예 그래도 자기가 태를 묻고 난 그 땅이 항상 그래서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더 희망이 없다
솔직히 그 고란의 행군 시기를 지나가면서이 출장을 많이 다예
아니니까 북한에 장을 많이 다니면서 보니까 그 간리역 이라든지 그때는
죽지도 않는 사람 다시 여섯명 힘 있는 사람은 나와서 다 구덩이를 팔아
응 그래가지고 거기다가 80명씩 막 묻어버리고 예 절에 가면은 예 거기
자는 줄 알아요 예 뭐 기수에 초상이 걸렸잖아요 그런데 자는 줄 아는데 다
죽은 사람이에요 예 다 죽었고 저는 그래서 살면서이 김치도 정말 한
식당가 있어요 저 지치로 왜 그 왜 그 나갔어요 거기는 그러니까 이민
군대 지원을 내라 돌격대 지원 내라 그 김치 다 걷어 가요 그렇지 김치까지 뺏어간다 이제 생각이 난다
예 김치도 다 걷어 가요 그리고 저는 그 집 앞에 집 앞에서 우리 집 앞에
와서 사람이 죽으면 또 그 안전이라고 하죠 경찰이 와서이 사람을 아니야 뭐
어쩌 자꾸 끌려다니기 싫어 가지고 어 앞에 와서 사람이 굶어서 죽었는데
거기에 대해 조사를 선생님한테 선생님 집 앞에서 죽었다는 이유로 그래서
저는 우리 집 앞에 와서 사람이 또 힘 힘이 없어서 굴 앉아 있으면 그
사람이 보모는 야 이거 얼마 다 죽겠다 이러면 저는 집에 들어가서
김치라 그 된장 이만큼 식 이라든지 먹던 밤이라든가 싸주고 이거 먹고 힘내서
가는 데까지 가라고 그러니까 지금도 우리 집사람하고 많이 한다고 자꾸
내가 욕 벌 먹어요 뭐든지 하는 거 많이 해 저도 신랑한테 맨날 혼나요
예 그게 버릇 있어 가지고 그냥 누구를 퍼 줘야 되니까 또 김치
가구면 1년 식량 아니에요 쌀이 귀하니까 김치로 배를 세우잖아요 당연하죠 그때는 굶어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어 초등학교 예 그는 인민 학교로 가죠 인민학교 인민학교
때 12명이 입학을 했어요 예 학교에 예 12명이 입학했는데 졸업 한게네
명밖에 안 돼요 나주 아 세상이 참 힘든 세상이죠 그걸 보면서 진절
머리가 난 건가요 그죠 그게 무슨 희망이 있어 그래 사람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나라가 존재하는 건데 사람을 죽이는 나란데 아무대 책도 없다면은 그나라는 희망이 없죠 저는
그래도 빨리 깨달으셨어요 저는 그냥 항상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떡해요 아
전년에 군복무할 때 그 영향인가요 그 참 결심하게 된 것도
너무 한 10년이 걸렸어요 그것도 아 우리 아들이 여덟살 때가 내가 가려고
생각했는데 그때 데리고 오다 나면 죽어요 기니까 그래서 10년을 기다려
가지고 걔가 졸업 딱 하니까 군사 동원부 시체 검사 나오라는 거예요
시체 검사 하잖아요 그렇죠 군대에 내 원이잖아 다 졸업하고 그래서 이거
이러다가 또 구에 나가면 또 10년 더 기다려야 되잖아요 많아 어떻해
그래서 제가 그걸 좀 만들었어요 전염병으로 아들을 그래가지고 치료를
해서 내년에 보낼게 이러고 그다음에 아들을 데리고 떠났죠 아니
잠깐만요 전염병을 어떻게 만들어요 그냥 문건 작수 하는 거예요죠 다
친구들이 갔다 간대음 역시 부분이 있는데 예 아 아빠가 의사니까 그래서
저는 그냥 어디 장사하러 간다 하고서 아들 데리고 떠났어요 우선은 을 사지
말아야 돼 근데 아들이 거기서 세대 교육이 많이 됐잖아요 아버지 장군님
밖에 몰라 그런데 제가 떠날 때 아들을 걸로 간다고 말하면 안 떠나요
한국으로 간다고 하면 그래서 저는 그냥 치료겸 그다음에 무슨 이게 그런
그릇도 수리해 주고 신발도 꿰매 주고 자전거도 수리해 주고 이런 걸로
해가지고 또난 거지 그 공구 가방을 들고 예 위장을 한 거네요 그죠 그런
것을 감 돈을 많이 벌었어요 예예 그치 기술이 있으니까 어떻게 환자들
치료해 준 거예요 집집마다 환자들도 치료해 주고 아픈 사람들 많잖아요네
그리고 집집마다 신발이 없어 가지고 구멍이나 걸 다 신고 다니고 그런 거 또 앉아서 꿰매 주고이 장아 같은
것도 밑바닥도대 주고 자전거 뭐 이렇게 해가지고 빵꾸 놨다고 하면
거기 또 앉아 있으면 자전거 좀 수리해 달라면 또 자전거도 또 빵꾸 수리도 해지고 예 손기술로 그런 건
언제 배우셨어요 그냥 부사 침은 다 해요 아 정체가 궁금합니다 예 근데
여기서도에 저기 제가 간첩 아니냐 이런 소리를 들거든요 예 그런 소리
저도 들어봤습니다 예 가끔 그냥 농담 아닌 농담들을 때가 있는데 그래서
국경까지 왔어요음 참 막 아들은 그냥 그저 돈 벌어서 집으로 다시 가는 줄
알았죠 가는 줄 알고 그죠 그러고 따라다니는 거죠 아 그 불 피어 달라 하면 또 이렇게 신발 때자 불 또
피어 되잖아요 뭐 그런 잡일도 시키고 그리고 뭐 신부도 하고음 그러서
다니면서 돈 벌면서 해상까지 들어갔거든요 근데 그쪽에 그때는 제가
김정은이가 정치를 해 가지고 그때가 2010년도 12년도가 제가
나왔거든요 2012년도에 그러니까 그때는 참 사람들도 저는 머리가이 좀 깼어요
그는 그래서 그때 김일 시키는 대로 했던 사람들은 다 굶어 죽었어요
결국은 김정일이가 그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그러니까 한마디로 노동당이 먹게
살려주네 장마당이 먹게 살려주지 이러면서 아 이게 깼어요 그러니까
장사를 안 하고 다에 산에 가서 그 부호부 안 하는 사람은 거의 다 죽었죠 결국은 그러다 러니까 그 벌어
먹어야 돼요 그때는 그까 이게 먹을게 없으니까 그 벌 수가 없는 사람들은 네명 다섯 명이 옥수수 요만 하거
그걸 이렇게까 가지고 절에다 쪄 가지고 거기다가 풀을가 끊어 가지고 죽 써 먹고 응 그러니까 애들이
굶어죽는게 죽을 때 굶어서 죽는 애들은 배가 볼록해요 왜 그럴까요
그게 병에 세상에 병이 걸려서 배가 볼록해 가지고 마지막에 그냥 죽어요 예 얼굴
다 벗겨져요 정말 그때는 애들이 종자까지 파 먹었거든요 예 그니까 김정일 시대
김정일 걸치고 김정은이가 왔어도 변한게 없었다이 말씀이 있잖아요 또
의사는 생명에 대한 그 소중함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걸 보면서 엄청 마음이
더 아프셨을 것 같고 좀 분노했을 것도 같아요 그래서 그 회사에서는 그러면 뭐 줄이 있었어요 한국을
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몰라요 저 무작정 무작정 가는 거죠 저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그때 김정일이가 정치할 때 그니까 탈북자들 있잖아요 탈북자들 중국에 가서 살던
사람들 다시 되잖 예 예 예야 고게 이렇게 해서 들 갔 죄를 묻지 마라
그때 한때 그랬어요 맞아요 저도 기억나요 배고파서 간 건 죄가 아닙니다 아방 떨죠 그래서 그때는
용서를 해가지고 그냥 풀어줬어요 풀어줬는데 킬수 가니까 근데 한번
갔다가 온 사람은 또 다시 가요 솔직히 근데 그 사람들이 와서 하는 소리가 다 있어요 야 정말 배 안
고프고 희한한 세상이다 어 어떻게 어떻게 살고 어 더 예 뭐 조금만
일을 해도 그냥 해주고 뭐 이런 소리 자꾸 하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이제 탈북이 대량 탈북이음 중국에
배가 고파서 갔다가 잡혀 나온 사람들이 그 중국 생활을 잊지 못하고
계속 얘기를 하면서 그 영향을 또 받네요 영 그 영향이 회산 쪽 그
청진 이쪽의 사람들은 아주 그런 데가 밝아요 근데 그 안쪽에는 탈북 그런
했던 사람들이 없어요 반역 해 완전히 반역자라고 해요 근데 저는 그러니까
출장도 많이 다녔으니까 그런이 말을 많이 들었거든 3년만 가서 일을 하고
오면 부자야 이런 소리도 하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그걸
알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이 썩은 나라에 못 살겠다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지금 국경까지 나오신 거네요 그죠 국경까지 와 가지고 그
아들 보고 저기 강 건너는 사람 그 중국 땅이에요음 중국 땅인데 이제는
그 공구를 다 정리를 해야 돼요 그래서 땅을 파고 묻었어요 그래서 땅에다 묻고 그리고 아들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했죠 아버지는이 땅이 너무 가혹하고 희망이 안 보이고 너무 사람
살 곳이 못된다 예 응 그 난 사람답게 좀 살아 보려고 어디로 가려고 한다 아빠 어디로 저기 남자
소리로 아 그래서 애가 깜짝 놀라는 거야 완전에 예 예 너무 세대 교육을
받았잖아요 예 그 뭐 원수님이 아니면 다 뭐 그렇게 되는 줄 알 선이 없는
지구는 세상에 없다 이렇게 배웠죠 그렇죠 그래 가지고 가겠다고 하니까 얘가 정말 놀라는 거죠음 그래서 너
나는 네가 저는 18살는 성일이 되니까 나는 너 결심을 맡길게 네가
안 가겠으 여기 남아 어 여기 돈 있어 돈 이거 다 갖고가 집으로 다지
응 아버지는 갈게 그러나 아버지가 떠나면 영원히 아버지를 잃어 먹고 살아음 그랬죠 그랬더니 앉아서 우는
거죠 울어 그래서 곰곰히 앉아서 생각해 내가 네가 기다리는 시간만큼
기다릴게 거의 두 시간 기다렸어요음 아무 소리도 안 하고 그냥 앉아 있어
응 둘 다 아빠와 아들 그렇죠 나는 옆에 앉아서 속살에서
응 그래서 그러면 내가 안 가는 거로 알고 아빠 갈게 그리고 나는 혼자서
더벅더벅 가요 아버지가지 거의 보이지도 않는데 보이지도 않으려고
멀리 있어요 근데 갑자기 불뚝 일어나더니 아빠하고 울면서 오더라고
아빠하고 같이 간다는 거야 그렇지 어떻게 헤어져요 아들도 난 이해돼
그렇죠 어 다 거기서 그렇게 그 세뇌를 받고 살았는데 그 한 번에
그렇게 마음을 바꾼다 거는 그래서 그 강 건너편에 아지 지금 여기 강만
넘어가면 중국이 근데 거기 쭉 앉아서 생각을 해 보니까음 우리가 그 국치를
아시죠 국치 날 예 그게 1910년 10년 8월 달이죠 8월
2일인가 8월 10일인가 일본의 한일 합병대가 그날 국치 날이라고 하잖아요
그날에 그 나라를 잃고 그때 그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중국을 넘어갔
아아 야이 우리는 나 나를 잃어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절로 가야 되냐
하는이 생각이 마이로 오르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 근데 나라도
안 뺏겼는데 이거는 뭔 하는 짓이냐고 그서 눈물이 쭉 나더라고요 참 마음이
아팠어 그리고 그 생각을 가만히 앉아서 하다니까 그 앞에 군인들이
있어요 군인들이 지금 오토바이 타고 그다음에 청민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예 근데 하늘이
덥더라고요 예 갑 비가 장대비가 쏟아지더라 아 잠깐만 예 장대비가 막
쏟아지는데네이 리들이 비 받기 싫으니까 오토바이 뒤에 와락 딱 같이 타더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야 이때
다 가자 그것도 해가 그러니까 나지지 대낮에 예 예은 대낮에은 대낮에 와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고 대나 이거는 진짜 돕는거다 그렇죠 그래서 넘어가기 전에
저금 끈으로 배 풀 가지고 갔잖아 그래서 팔을 다 묶고서 떠내려가면 안 되니까 아들하고 같이
이렇게 묶고 그 밑에는 전기초 조망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전기철 조망에
걸리면 그냥 바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물에 그냥 뛰어 들어갔는데 마지막에
중국 쪽에 가니까 물살이 이렇게 감아 치는데 예 물살 세 가지고 내가
떠내려간 거지 어떻게 그러다 나니까 한 바퀴 땡 이렇게 돌면서 우리 아들이 그 중국 쪽에서 나무가 이렇게
하고서 예 옆에 뿌리가 쭉 이렇게 떠내려가는 거 있잖아요 그거 뿌리를 하나 잡은 거예요 아들이 그러니까 그
물살이 쫙 가는데 그 딱 지었으니까 둘 갔다가 기스에 딱 붙여놓는 거죠
이게 잡은 상태에서 휘 돌면서 이렇게 붙었구나 그러니까 이게 기스에가 갖다 사람을 붙여 놓은 거예요 세상에 다
그래서 바로 빨리 빨리 올라 그리고 아들을 올리고 나를 또 오르고 해가지고 몸을 딱 숨겼는데 비가 딱
늦어버렸어 노야 소나기가 예 그게 그다음에 군인들이 와 오더바이 타고
오더니 이제 여기서 사람 넘어갔다고 어떡하냐 아마 한 10초 11초
정도만 아마 늦어서는 청에 맞아 죽었을 거예요네 세상에음 그래 가지고 그냥 있다
나니까이 애들이 공중에다 총 한 더방 쓰더라고 아 그러더니 잤어요 그래서는
그때 5월 달에 그 백두산 쪽에서는 얼음 막 떠내려올 때 추워요 엄
얼음이 다 녹아 갖고 쫙 색감은 물이랑 같이 떠내려 이거 온몸이 다 젖었는데
어전에 이거 옷이라 말라야 사람이 기억을 해보 할 거 아니요 그래서 그 산으로 올라가지고 낮에는 연기를
조심해야 돼요음 바로 공안이 쳐 들어오거든 맞 불 때면 예 산에서
그러면 밤에는 불빛을 조심해야 되거든요 불빛이 또 멀리서 보이지않아
그래서 올라가니까 산에 올라가니까이 웅덩이가 있어 가지고 둘이서 그 안에서 그러니까 슨 어슬어슬 했으니까
거기서 불 피우고 거기서 그냥 날 밝을 때까지 그냥 거기서 있었죠 렸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그냥 방향만
잡고음 무작정 산을 그냥 타고 그냥 방향을 잡고 가지요 예 야 3일을
걸었어요 3일 세상에 예 예 정말 밤에도 걸고 응 숲을 해치면서 길로
나가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길에 나가면 착해요 변방 대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세상에 그래서 산으로 이렇게 헤다 나니까 우리 아들이 날 보고 그러는 거야 아빠 나 너무 힘들다 응
그렇치지 3일을 거르면 그러게 거까지 데마로 그라는 데까지 왔어요 데마로
그라는게 그게 뭐 어쨌든 그거까지 갔는데 길에 딱 나섰죠 응 너무
힘드니까 길로 좀 평평한 대로 걷자 근데 단번에 뒤에서 소리를 지르더라
야 뭐 하면 만대 애들이 나서자 맞아냐 분이나
그렇나 총 매국 그다음에 달려오는데 한 여덟 명이 달려와 정말 그때 생각
같아서는 좀 다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이든 거예요 근데 자식을 보니까
참 걔들을 못 다 치겠다고 근데 죽일 자신은 있었어요 당연하죠 저 훈련을
얼마나 많이 받은 사람인데 그렇죠 그래서 그냥 수갑을 차고 다시 저
살이라고 하는 변방 때까지 갔어요 아 그다음부터 너무이 머릿속에서는 야
이것는 넘어가면 주고 넘어가면 주고이 생각밖에 없죠
그렇지 너무 힘드니까 좀 길로 좀 평평한 대로 걷자 근데 딴 번에
뒤에서 소리를 지르더라 그요 야 뭐 하면 병방대 애들이 나서자
맞아냐 한 30분이나 그렇나 총 매국 그다음에 달려오는데
한 여덟 명이 달려와 정말 그때 생각 같아서는 좀 다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이든 거예요 근데 자식을 보니까 참 걔들을 못 다 치겠다고 근데 죽일
자신은 있었어요 당연하죠 저 훈련을 얼마나 많이 받은 사람인데 그렇죠
그래서 그냥 수갑을 차고 다시 저 살이라고 하는 변방 때까지 갔어요 아
그다음부터는 너무이 머릿속에서는 야 이것은 넘어가면 주고 넘어가면 주고이
생각밖에 없죠 그렇지 그래가 가고 그때 제가 주머니가 그 면도칼 면도칼
이렇게 북한에서 이렇게 갈아 가지고 돌다 갈아 가지고면 하지예 그걸 그죠
그걸로 칼로 이렇게 면도를 하죠 아빠들은 많이 예예 그걸 여기다 주먹을 다 쳐 갖고 있 있어요 근데
몸수색을 하더라고 단번에 와서 방대 오니까 그래서 그 뺏어 가지고 그
쓰레기 통에다 렁 집어 넣더라고요 그래서 싸고 없을 때 가서 그 다시 죽다 넣었어 넣어가지고 둘이 따라와
가지고 방에다 뒤에 보내 놓고들이 가는데 거기서 전화 소리를들은 거예요
북한 보위하고 통하는 거죠 엄마나 야 우리 어 오늘도 하나 뭐 몇 명
보냈는데 나 또 잡혀왔어 두명 내일 아침에 우리가 좀 조사하고 다시 너네
받을 준비해 마 그러니까 보내려고 그런 거죠 야 어전 죽었다 예 그래서
야 거기 가서 죽는게 여기서 죽는게 낫다음 그렇죠 거기 가서 짐승보다도
뭐 죽는 거보다 차라리 거기서 죽는게 낫다 이런 생각이 벌떡 들는 거죠 그래서 서슴없이 칼을 뽑아 가지고이
손목을 잘랐어요 민도 칼로 예 자르니까 단번에 그죠 아야 피가 그죠
쫙쫙 내다 쏟는 거죠 예 쫙 쏟는데 난 더 눈물나는 거는 예 아들이이
수갑을 이렇게 차고 옆에 있더니 아파 나도 이러는 거야 그래서 아들 손목을 또 잘랐어 아 내 데서 나오는 피는
안 보였는데 예지는 그 피가
얼마나 질지 그걸 보니까 아 빨리 나 숨이
안 떨어졌어 하는 생각이 또 들어 그래서 다시 칼을 들고 목을 지금
자르려고려고 어떡하냐 딱 원래 봤는데 비상이 걸린 거예요 군인들이 막 차고
들어왔더라고요 들어와가지고 손부터 쳐 버리는데 그 칼이 절로 떨어져 나가는
거죠지도 못하고 아 그다음에 눈물이서 쫙 나더라고 근데 지금 피가 빠지는
것도 몰라요 그러니까 조사도 못하고 그다음부터 우리는 죽는다고 그러니까
걔네들이 조사가 필요 없잖아요 보니까 가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한 사람 앞에
여덟명 다 저 그 맞더라고 통째를 채를 다 들고 그다음부터 병원을
갔어요 갔는데 저는 아직도 목숨이 아직 남아 있잖아 맞이 죽어야 되는데
아 그리고 또이 수천 상태를 또 목을 또 졸라 어떡하냐 그랬더니 그게 그 그
사람들이 울더라고 저 사람들이 왜 왜 죽으려고 할 것까지 하냐 다
울더라고요 그더 지들도 사람인데 지도들 사람 아니야 그런 자식 다까지 부모
[음악]
들라 근데 우리 애는 벌써 정신 잃어 먹은 거죠 그지 피 너 니까 어떡하냐
나는 자꾸 바닥에서 죽으려고 하니까 수갑을 양 옆에다가 해 가지고 다리도 저쪽이다 다 채워놓고 팔 이렇게 해
가지고이 철을 침 대다가 다 채워 놓은 거예요 그냥 눈물이 그냥 그렇지
소리는 안 나는데 그 눈물이 그나 내래 예 야 야 근데 아 참 하늘이
울더라고요 응 낮에는 해가 났는데 밖에서는 장대비가 그 계속 쏟아져 또
비를 보니까 더 슬프고 그렇죠 그게 한참 있다가 또 중국말로 하니까 너는
모르잖아요 그게 그 한국말 하는 그 장조가 하나 들어오더라고요 별을
세개라 방 변방에 근데 그 사람이 하는 소리가 우리가 놔 줄게 놔 줄게
아휴 근데 조건이 있어 예이 중국땅이 얼마나 넓은지 아니야 중국당 너네
거기 가서 다른데 가서 잡히면 잡히면 우리는 밥줄이 끊어지고 당연한 거
아니에요 여기서도 무서 어 범죄자를 잡았다가 낳아 주면은 그건 뭐 그 뭐
다 잘리는 거 아니에요 예 그런 상태야 어 나 줘도 너네 가서 또
잡혀 이거지 그래서 내가 딱 한 마디 했어요 저는 약속은 예 무덤까지 갖고
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고 잡혀도 다시 여기서 잡혔다 소를 안 할게요
그래서 그근데 그러니까 수갑을 풀더라 아 우리 애는 정신을 잃어 먹었어 예
그래 어떡하냐 어가 빨리 일어나야 되잖아 어린나이에 그러게이 사람들이
솔직히 다 그게 짠 거예요 또 예 그냥 자기네가 예 자기네가 이렇게
해가지고 북한을 훌렁 넘겨 놓으면 넘겨 놓으면 거기 사람들이 다 봤잖아요 의사들도 의사들도 다
봤잖아요 예 거기 있는 그 다른 사람들도 다 봤으니까 아 그러니까
자기네가 풀어놓는 척 한 거예요 예 그리고 자기네 구역에서 안 잡힌 걸로 그러니까 개다 놓고 저기서 잡아 넘겨
이렇게 약속한 거예요 사실은 더 나쁘네 속 더 나쁜 것도 그래도 기회를 줬잖아 아 예 근데 그 전화를
어떻게 하더니 그러니까 민간인 민간인이 차를 몰고 그 비가 쏟아지는데 왔더라고 그때 한 밤
10시 었어요 예 근데 우리는 가야 되는데 아들이 일 안 나 그 정신을
잃었으니 아 그래서 내가 다가가서 걔도 수갑을 풀어 놨거든 그서 야이
사람들이 우리를 놔 준대 일어나 일어나 아빠 자 그 자
어 아 그서가 갑자기 눈을 벌고 내 소리
듣고 그래 가자 그리고 둘이 들 울고 그 사람들이 저런 종이박스 있잖아
밖에 지금 비가 억스 네 수러 오는데 종이 박스에다가 거기다가 빵 요만한거
두 개 그래도 이게 지금 피를 많이 흘리고 지금 아프지 않아요 상처가 났으니까 독한술 한 병 주더라고
그리고 소형제 그러니까 약 약면 달 여알 줬나 예 여알 그다음에 거기
붕대 그거 거기다 담았어 아 그걸 주더라고 근데 그다음에 이렇게 매고 깨다가 들었잖아요이 쓰지 못하니까
움직이면 또 다시 치료 해요 해가지고 아들하고 그 차에
그러니까 민간인 차를 타고네 그 앞에는 그러니까 장교 그 공안 장교가
타고 민간인 타고 뒤에서 그 그냥 분당대 군인들이 따라오는
거예요가 쓰어 오는데 예 그러니까 그다음에 걔들이 딱 그 자기네 초소가 있어요 두 개 딱 지나더라 초소
초소를 딱 두 개 지나서 차를 딱 세우는 거예요 그래서 내리라는 거예요 비 비를 맞으면서 내리 그래서 처
내렸더니 가라 음로 가면 어디라고 하면 예 이러는 거예요 근데 척
보니까 그 앞에 앞에 불이 보여 벌써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군인 아버지는
다르네 느낌이 예 그래서 가만히 그냥서 있었어 그자리 안 가고 안
가고 잘했어요 가만히서 있었어 그랬더니 얘네들이 한참 지켜보더니
가만히 그 길에 가만히서 있으니까 차 돌려 가지고 가더라고음 그 눈에
알아서 해 이거지 응 그래서 걸로 가면 안 돼 아 바로 산를 원래 붙은
거죠 잘하셨어요 그럼 또 걸어야 돼요 그렇죠 그 상처를 가지고 그러니까 어
가다 나니까 썩은 내가 나고 정말 구데기가 생겼다 구더기가 썩은 내가는
품나요 아들은요 아들 아들도 그렇고 나는 이게 깨 매지 않았으니까 쑥 벌어져 가지고 이게 상처에
봐봐요 이게 잘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동맥 끊었던 자리가 이만한게
있네요 아 그래서 아들하고 정말 산을 전에 다시 길이 나서지 말자고 그리고
산을 타고 해매다가 뭐 정말 힘들었어요 먹지도
못하고 3 4일씩 굶기도 하고 산에 가서 산에 다니면서 약초 풀이 캐 먹으면 그다음에 뭐 이게 그 휴대
전화 중개소 그런 데는 괜찮아요 높은 산꼭대기 산기 그런 거 예 그런서
가다 나니까 그런 걸 만나 가지고 만나가지고 말이 안 통하 그래서이 쉬는 해가지고 밥을 좀
얻어먹고 오래 머물면 안 돼요 바로 공안에 와요 예 걔네들은 우리 북한
사람을 그러니까 거기서는 그니까 꼬장 한다 하죠 알려주면 상금 받아요
그렇지 예 북한 사람 잡으면 맞아 맞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 얘들은 공안에 올 때까지 잡아 놓으려고 해요
예 그 덤비지는 못해 북한 사람 그래서 그다음에 우리는 앉아서 안
먹을테니까 그다음에 거기다가이 빌 봉지다 막 담아가지고음 바로 빠져버리는 거죠 예 어쨌든 잡힐 뻔도
많이 하고 그렇게 며칠씩 굶기도 하고 하다 나니까 저 무슨까지 들어갈
거예요 어 중국 무슨 예음 그까지 딱 들어가는데 제는 거는 갈 힘이 없어
어 어떻게가 중국산이라는 거는 나무들이 빼곡하고 그냥 무연하지아요
예 숲이 걸로 툭 갔는데 딱 양계장이 있더라고요 닭 양계장 아 양계장
그러니까 집도 없이 그니까 병아리들 많이 키우고 냐면 천 을 짓고 천막
밑에 자 뭐 밥 밥이고 빵이고 먹을게 같다 간 거요 응 근데 우리 아들이
그거 보자마자 응 눈이 돌아가는 거죠 오랜만에 먹을 보 먹을니까 그래서
내가 딱 지려고 하는 순간에 그만 그랬어요 어 예 주인이 없을 때
먹으면 도둑질이 아 우리가 그 사람이 올 때까지 여기서 굶어 안 죽어 엄마
기다린 거예요 그렇죠 참 있더니 한 한시간 기다렸나
기다렸더니 큰 개 있잖아요 세파 그게 왕왕 지지면서 오더라고요 근데 그
뒤에 중국 사람이 하나 와 봤더니 그 양계를 하면서 그게 고비 아시죠 뜯
먹었어 그게 아주 그 고급나무 예 두껍고 예 그걸 뜯어 가지고 거기서
대쳐서 파하는 사람이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때가 월을 좀 지났으니까
그때가 그기 그 많이 나올 때요 그래서 저는 우리는 더는 갈 힘도 없고 그래서 그 사람 보고 그랬지
아직도 생각이나요 그 이름이 뭐 왕사이라는 자 그 사람이 오더니 갑자기 놀라는 거죠 그렇지 놀라지
그래서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이 여기다가 이렇게 지금 붕대를 다 들어가고 썩은내가 풀풀나는 사람들이
맞잖아요이 사람이 뭐라고 중국말로 하더라고 그래서 제가이 흉내로 먹을
것을 먹을 것을 좀 달라이 배가 곱다고 그러니까 알겠다고 하더니 그다음 상을 차려 주더라고요 아 다시
떠나려니까 힘들어서 못 떠나겠어 그래서 내가 이거 돈을 안 받을테니까 여기서 좀 일 좀 해
줄게음 그랬더니 오케이이 오케이 그러더라고 그래서 그 옆에다가이 텐트를 하나 쳐 주더라고 그리고 아
감사해 아 텐트를 하나 쳐주고 나는 우리 아들은 오른손 오른손이 이러니까
뜻 나물도 못 뜯어요 그렇죠 이거 움직일 수가 없잖아 예 나는 그래도
다행히 왼손이 이렇게지고 오른손을 뜯어서 이렇게 해 자에 다 수 있어
그러니까 아들은 거기다 놔두고 나는 매일같이 하루 두씩 한자루씩 뜯어서
그 고비를 뜯어 줬거든 그니까 하도 성실하니까이 사람이 하는 저는 그때가
고비 철도 끝나니까 하루는 그 전화를 하더니 어떤 사람이 승용차 타고
왔더라고 근데 한국말 하는 거야 조선적인 말이 통하는게 어디요 예
근데 그 사람이 공산 당원이고 중국 공산 당원이고 예 공안에서 20년을
봉무 했대요 어떡하면 좋아 그래서 우리 또 오더니 말을 아주 좀 건방지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네
어디서 왔어 하더라고 그래서 사실 쭉 이야기했어 그 사람들도 그 사람도 울어 사람인데 어 울어 그래서 울더니
알았다 근데이 사람의 생각은 그 무슨 시에서 그 식당들을 여러 개를 해요
가수예요 응 그러니까이 사람 우리를 그니까 일을 시켜서 일을 시켜서 돈
벌게 해가지고 그 돈으로 한국 가게 요렇게 계획을 또 세웠어요
어머나음 그런데 실제로 보면 우리 아들도 그렇고 아이이 장애인이야
솔직히 이것도 못 쓰고 아들도 못 쓰 하니까 참 안 때요 그러니까 일도 못하는 사람이야
사실은 그러니까이 사람이 알았어 내가 도와줄게 이러더니 자기 차 한 하루
딱 끌고 오더니 거기서부터 연길로 그 사람 차 타고 연길로 들어간 거예요 여길로 그근데
그기도 초소가 있어요 예 초소에서 그 문 딱 내리니까 딱 경례를 하고가 아
공가를 오래 했으니까 그래 엄마 어떻게 그런 귀인을 만났대 예 그래서
거기 가서 그 사람이 브로커를 찾아준 거죠 감사해라 한국 그 갈 수 있게
해주는 브로커 브로커 찾아주 브로크 찾아가지고 그 그때서부터 조금 마음도
좀 놓고 그 치료를 받아 그래도 그 왕두상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러니까 병원에 가서 뭐라하고 해 가지고 약을 좀 구더 바르는 약하고
그래서 거기서 조금 치료해 가지고 조금 붙었어요 그때 예 그러면은 거기서 이제 한국은 어 어떻게 출발을
하게 되신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그 브로커들이 그 몇 명이 차야 떠
나잖아요 예 몇 명이 차야 떠나는데 우리를 자기네 집에서 이렇게 재우고 그냥 매기고 그냥 한국하고 로하고
연결하고 이렇게 해가 우리 사정을 듣더니 예 빨리 움직이자고 빨리
움직이자고 했는데 여섯 명 딱 차니까 바로 떠나 거예요 그러니까 심량
닦아서 딱 내려놓고 그 사람을 쭉 빠지고 또 다른 사람이 또 움직이고 이렇게 해가지고 저 검령 이제
그거까지 왔죠 그래가지고 그 나오가 나오가 그 국경까지 와서 그다음부터
차또 타고가 거기까지 해가지고 태국 땅에 딱 내리더니 딱 넣더니 빠지
빠지죠 그러면 어디 가랑 소도 없어 그냥가 거기선 잡혀야 돼 잡혀야
[음악] 돼겠죠 예 그러면은 거기서 이제
한국은 어 어떻게 출발을 하게 되신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그 브로커들이
그 몇 명이 차야 떠나잖아 예 몇 명이 차야 떠나는데 우리를 자기네
집에서 이렇게 재우고 그냥 매기고 그냥 한국하고 로하고 연결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우리 사 을 듣더니 예 빨리 움직이자고 빨리 움직이자고 했는데
여섯 명 딱 차니까 바로 떠나 거예요 예 그러니까 신량 딱 가서 딱 내려놓고 그 사람을 쭉 빠지고 또
다른 사람이 또 움직이고 이렇게 해가지고 저 검용 이제 그까지 왔죠 그래가지고 그 나오가 오수가 그
국경까지 와서 그다음부터 차또 타고 메가 거기까지 해가지고 태국 땅에 딱
내리더니 딱 놓다니 빠지지 빠지죠 그러 어 한 소리도 없지 그냥가
거기선 잡혀야 돼 예 잡혀야 되겠죠 그러니까 거게 뭐 몇명이 왔다 갔다 하니까 아마 경찰이 온 거죠 예 와
가지고 뭐 뭐 태국말 통해요 안 통하잖아요 그래서 뭐라고 물어보는
거야 그래서 종이 좀 달라고 했 제가 또 그때 그 한국 태극기를 아는 사람
없어 예 모르잖아요 저는 군복무 할 때 태극기를 많이 보고 산 사람이니까
태극기를 또 그려줬더니 오케이 하더니 바로 대륙 가더라 야 예 야 보통이 안 해지네요 취향만
위에 모이니까 거기 북한 사람들 바글바글해 예 그렇지 처음 봤죠 예 다 그러니까
온 사람들 다 모여 놓 다죠 그게 지금 그 저는 그 국제 남민 수용소로
가야 되는데 태국에 들어온 것은 불법이에요 예 맞죠 예 맞아 그러니까
그 나라의 법으로 재판을 받고 감옥 사를 해야 돼요네 난민이라는 거를
인정받기 위해서 일부러 감옥이라 그렇게 수용소 안에 가는 거죠 일반
그 태국 감옥에 들어가야 돼 그러니까 이게 수 발이 철사를 해 가지고
이렇게 줄줄 끌고다니는이 쇠고랑을 또 차야 되 그렇게 하고 갔어요 그래요
그래서 그 국정원에서는 어 우리는 돈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냥 맨몸으로 왔잖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보면은
거기서 중국에서 살다가 살다가 이렇게 온 사람들은 돈을 많이 갖고 왔어요
중국 돈으로 예 그니까 우는 돈이 없으니까 그 정원에서도 머리를 썼더라
그 몇 명씩 짝을 지어줘 예 여섯 명이면 여섯 명 돈이 있는 사람 돈이
없는 사람 이렇게 딱 묶어놔 재판을 받아야 되는데 돈이 필요해요 그다음에
태 그 방콕까지 가야 될 는데도 돈이 필요하고 맞죠 참 그때 좀 웃기는
일이 있었어요 감옥에서 어떤 웃기는 이제 좀 웃읍시다 어떤 웃기는 일이에요 감옥에 지금 갔는데 내
주머니에 북한 돈이 5,000원짜리 500원짜리가 예 있어 가지고 그
태북 감옥에가 또 가다 넣더니 어디다가 그다 가다 놓더니 밥도 안 주는 거야 배가 고픈데 아무것도 안
줘 그래서 뭐라 하더니 무 각 닫고 나가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거 기려고 하는 하는 거 같아이 그래서 제가 문 뚝뚝뚝뚝
두드리고 경찰이 왔더라고 그래서 5천원짜리를 꺼내 줬어 꺼내주니까 돈을 보 그요 돈이죠
보더니 이거 얼마가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 여기 빵 요만한거 빵요 사람들
하나씩 먹게 좋겠다 주라고 가지라고 그랬더니 아 알겠다고 그런 거야 아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딱 나하는 거 보니까 야 내가 거짓말하면 안 되잖아
그거 어디다 쓸 때가 있어 북한 돈을 휴지보다 못한 거 그래 예 그래서
우리 안 먹겠습니까 응 그냥 가지라고 그랬어요 어 그래서 야 그 고마우니까
어떻게 이렇게 이런 어 담배 담배 한 각 주더라고 그냥 그 그냥 그냥 저기
그냥 굶고 담배 한 자이 피고 잤어 아유 진짜 아 그래 가지고 그다음에
그 재판을 받아야 되는데 돈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이 조를 묶어 준
사람들 그러니까 너네 너네 조에서 돈 모아 가지고 어느만큼 필요한데 어 한 사람은 안 보낼
거라고 너네 조는 그러니까 며칠이면 그니까 그 돈을 뭐 내면 감옥살이 한
달 해 이거요 그러니까 얘들이 주머 돈 토 놓게 돼 그렇죠 예 그래서
너네 그 한국 가서 응 그면 이런건 갚아야 돼 이런 거지
알겠다고 빌리죠 그래서 그때 그 재판을 받고 감옥 사리를 3일인가
했나 만지 당긴 거죠 그리고 바로 이민 그 거기로 갔죠 가가지고 국에서
나와서 조사 하잖아요 그렇지 근데 조사를 더 하더니 그 소리를 듣고
국정원 선생들이 막 울더라고 그러더니 주머니 돈을 다 모아 그래서까지 갈
때까지 굶지 말고 이거 이걸로 가지 간식이라도 사 먹고 있잘 있어라 참
감사하네요 그 인사하고 싶은데 그 선생들을 어떻게 만나요 못 만나죠 때 당시 그 몸은 좀 어느 정도 나은
건가요 아들도 그렇고 그때는 그래도 출연을 안 하죠 저는 좀 나아져
가니까 그런데 공항에 합 쪽으로 못 들어가요 그때 40명이 왔나 그
지하실 같은 데다가 거기다가 여기 앉아서 쉬라고 뭐 빛도 별로 없어 떻
동굴 같은데 거기다 안 치더라고 우리 보호해야 되니까 그러 예 그래서 비행기를 그다음에 시간이 돼 가지고
비행기 탁 올랐는데 그다음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거예요 북한에서는
비행기 같은 소리 들어도 못 보고이 비행기
타 그래가지고 비행기를 타 가지고 인초 공학에 딱 내렸다 버니까 야
이런 세상도 있어 그렇죠 예 그렇죠 세상 다운 세상을 한 번도 못 보고
살았잖아요 참 그 국정원으로 쭉 이제 차 타고 조사받으러 가잖아요 그때
심정은 어땠어요 뭐 저는 그냥 무덤덤 했어요음 예 그런데 뭐 들어가니까 뭐
밥도 잘 주지 예 뭐 그냥 그저 자유가 없고 그냥 그럴 뿐이지 뭐
자고 싶으면 자고 예 예 뭐 이렇게 하니까 뭐 좋긴 좋아요 좋긴 좋은데
차라리 또 하나원에 오니까 또 더 좋은 거죠 예데 하나원에서 그래 너네
그래도이 하원이 참 좋은데다 어 그러니까 그리울 거라고 하면 어
선생님들이 그리울 거 실제로 그리워 예 아 지금 그리워요 실제로 그
사람들이 어떻게 지금 사는지 그때 같이 졸업해 그 제가 2013년도 1월 1일부터 여기 나와서 국정원에서
저사 받으면서 거기서 이제 뭐 어떤 일은 없었어요 그냥 우리는 조사가
간단하지요 다른 사람들은 혼자 있기 때문에 그러면 이게 물어볼 것도 많고
조사할 것도 많은데 저는 아들 데리고 왔으니까 아들하고 따로 이렇게 조사를 하잖아요 딸로 조사하는데 둘이 딱
말하는게 똑같 그렇지 그러니까 더는 뭐 조사할게 없어요 예 예 그 바로
뭐 이런 실에 이런 실에 갔다가 뭐 하루 만에 나왔거든 예 잠은 제대로 저는 편안했어요 대한민국에 왔는데 뭐
그렇게 불안할 거 있어요 저는 국정원이라는 생각도 안 해 예 그냥
살았구나음 아 그래서 감사해 예 근데 우리가 그 한나원 강원도 화천에서
졸업했는데 남양주에 예 남자 하나 원이 예 거기에서 한 달 있다가 저
화천로 넘어간 거죠음 새건물 제일 처음으로 입소를 했어요 뭐 거기 가서
그래도 시설이 좋고음 뭐 운동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공부도 할 수도
있고 그래서 그때 하나원에서 그 카드 쓰는 방법이라든지 그다음에 뭐 뭐
이런 것들 다 알려 주거든요 예 그렇죠 예 그때 한 달에 한 사람이
그 생갈비를 리 4만 원 줬나 4만 원을 줬어요 그러니까 둘이서 8만 원
아니에요 예 아들하고 예 둘이서 8만 원인데 제가 그걸 다 챙겼어요 못 쓰게 왜 태국에서 빚지고 왔잖아요
어떡하면 좋아 그래서 그 졸업할 때 예 그 돈을
그니까 계산을 해서 안성에 와서 그 졸업식 하잖아요 그때 그 돈을 다
물고 나왔죠 하나원에서 뒤부터 가신 거예요 아 거의 안 썼다고 생각하면
돼요 돈을 아 남들 먹을 때 쓸 때 아버지야 참을 수 있다지만 아들이야
한국의 라면도 맛있고지도 마시고 뭐 뭐 우리 애는
그래도 그 뭐라 하나 그런게 좀 좋요 애들을 히유 잡고 돌아다녀서
얻어 잘 먹어 다행이네요 그 거기 안 오도 먹었나 봐요 그러니까 남녀도 야
내것같이 사와 뭐또 애들도 사다주고 그래서 뭐 돈은 거의 안 쓰고 그리고
빛을 물고 나왔죠 예 12월 12월 그때 15일 15일인가
그럴 때 마지막에 거기서 졸업을 하기 전에 예 그러니까 자기 속에서 그다음에 그 노동부에 가서 이게
소개서를 쓰고 그런 취업하는 방법을 알려 주잖아요 예예 그때 서울로
갔어요음 서울이 어떤 던가요 서울이 멋있죠 평이 많이 가졌으니까 어때요
뭐 사실은 평양 사람 못 살 때예요 북한 주민들은 거기 지방 사람들 못
가서 안 왜 기는가 하면은 평양은 사실은 그 북한이 제일 비싼 아파트가
어딘지 아세요 2층에서 3층 4층까지예요 예 왜 엘리베터 기 때
예 그리고 퇴근 시간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니까 뭐 12층이면 2층이면 다
올래 다녀야 돼 예 예 석탄도지고 올라가야 되고 그렇죠 출퇴근 시간 내에는 엘리베이터가 안 다니니까
그래서 로얄층이 2층에서 3층이다 층 그러니까 1층은 도둑놈이 많이 들어오니까
예 예 그러니까 그 평양 시민은 신발을 살 수 있는 뭐 구매건 그런
것 하고 그다 맥주 사먹을 수 있는 예한 1다 하는 그 쿠폰을 줘요
그리고 뭐 옥류관 가면은 국수 국수 먹을 수 있는 쿠폰 한 달에 뭐 한번
먹어라 하는 쿠폰 자기 돈을 내면서도 이민 반에서 그 돈을 못 받으면 못 먹잖아요 사실은 평양시가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니에요 그러니까요 그냥 뭐 그 땅에서 살 때나 그 나라가 거기가 최고인 줄 알았 그렇죠 그래서
평양 여자들은 뭐 페리시 병 알죠 예예예 한제 페니실린 병에다가 김치
장가 먹고 가로수를 붙잡고 있어도 평양이 좋다 해요 그런 말이 예 그런
말이 있어요네 얻어먹는 타먹는데 길들 그 것도 있고 평양시 벗어나면 사람이
인간이 아니에요음 평양시 사람들은 다 지방으로 가서 장사를 할 수 있는 길도 다 열어 있잖아요 그리고 애국에
나갈 수 있는 권한도 평양 사람들은 줘요 그러니까 일반 그 지방 사람들은
외국에 돈 벌도 못 나 예 도망갈까 예 그것도 있고 그다음에 뭐 벌목
하러 가는 것도 뭐 당원도 돼야 되고 그다음에 뭐 신 성분 좋아야 되고
출신 성분도 좋아야 되고 와이프도 있어야 되고 애도 있어야 되고 그 와이프가 애가 인질인 거죠 그렇죠
그게 없으면 또 외국도 안 보내요음 그런데 지방에는 그런데 나갈 기회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아 그래서 탈북
하기는 그래도 지방이 좋으니까 그래서 제가 하는 소리가 그 옛날에 그 주민 교을 많이
잖아요 항해도 사람들 전년에 있는 사람들 70년도 그때 성분 나쁜
사람들 싹 다 올려버리고 그다음에 성부 좋은 사람들 다 에다가 내려보내고 이렇게 해서 주민 교방
했어요 그리고 추방은 저기 저저 해산 갑산 아우지 예 이런데다 산이라고
해가지고 싹 추방시킨 사람들이 그래도 탈북한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 만나면 야 너 수령님이 은덕이
있어 수님이로 안 버 같 그죠
그죠 농담으로 하는 얘긴데 마지모 돌려 가기로 한 거죠
예 그래서 하나원에 가서 그때 노동부에 그 그런 걸 배우러 갔을 때
12월 15일인가 됐을 거예요 근데 그때 우리 남자 하나원에서 사람들 다
태우고 그 서울 어디 어디든가 그게 그 시청인 뒤에 어떤 체험하러 가시요
배 예 하나원에서 연말 분위기가 있었 거 같아요 시 근데 그때 강원도에 눈이
많이 왔어요 그래서 그 큰 버스를 타고 그 지금 가는데 그때 그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김재호 아고 그 사람이 러시아에서 탈출한 사람이에요 그
독일로 해 가지고 왔거든요 나이가 좀 드셨고 근데 그분이 그래도 거기서
보러 갖고 달러를 좀지고 온 사람이에요 아 예 근데 어떻게 따
가다 제옆에 앉은 거예요 예 아이고 돈주가 앉았네요 살려고 앉은 거예요
그 사람이 아 지금 버스가 지금 막 가고 있잖아요 근데 지금 밖에는 춥고
하니까 그 버스 유리는 그 성애가 껴서 잘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앉아서이 그 닦으면서 바깥에
이렇게 구경하면서 갔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나테 자꾸 쓰러지는 거죠 아
예 그래서 힘들어 가지고 잠꾸 이게 쳐 버리는데도 계속 쓰러지는 거죠 예
그래서이 뭐지 러니까 숨으로 안쉬는 거야 어떻해 심장이 섰어요 예 그래서
그때는 그러니까 그 버스가 막 이렇게 달리는 순간인데 근데 사람들이 다 잔 거죠
운전 기사만 안 잤어 나하고 근데이 사람 자꾸 쓰러지기 때문에 내가 턱 보니까 심장이 섰더라 그래서 바로
제가 이게게 그 명찰 표에서 오핀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그다음에 그
혈자리를 찔러 버렸거든요 야 푹하고 쉬는 거죠 마 그다음에 소리를 치니까
하나원 선생들이 와 달려오더니 뭘가 그러니까이 사람이 지금 숨을 안 쉬잖아요 그다음에 그 각길 다 세우고
그다음에 구급차를 불러놓은 다 살려 놓은 다음에 구급차가 왔어요 그 그 사람은 서울에 가서 그 그 치료를
받고 한 열흘 만에 왔더라고요 예 그다 그 사람이 또 정말 그
하나원에서 그런게 있었어요 근데 우리 기죠 걔가 참 내가 가슴이 아팠어요
음 아침에 운동 나가잖아요 운동 올라가는데 그 원 점검 하잖아요 근데
기수대 걔가 그 북한에서 다리 하나 잘렸어요 예 동상을 입어 가지고 그
잘라 잘려서 왔는데 형제간이 왔거든요 아침 그 운동을 안 나와 가지고 근데
와 사람들이 떠드는 거예요 근데 이어 못 나고 늦잠 자는 줄 알고 그냥
놔두고 나온 거죠 사람들이 결국은 죽었어요 거기서 하나원에서 아 내가
우리 기수라고 하면 내가 깨워 가지고 보고 나왔 겠는데 참 안 됐더라고
힘들게 목숨 걸고 와 가지고 어 하나원에서 죽어 나가니까 여기 발 한
발 못 뛰려 보 사회를 동생이 너무 안타까워서 막 우는 거 보니까 눈이
다 부었더니 하나원에서 나올 때에 그런 의료 그런 상식이 조금
있는 사람 그런 책임자를 다 좀 만들어 놓고 그 기수마다 그렇게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내가 건의를 하고 나왔어요 아 너무 중요한 건의를 하셨네요 그리고 또 사람도 죽을 뻔한
사람도 살리셨고 그렇죠 그러면 이제 집 받고 나가야
되잖아요 어디로 가셨어 그죠 제가 원래 받은 거는이 농구에 받았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보고 물어보니까 바닷가 옆에 우리 살았으니까 바닷 쪽으로 가자 아들이 그래서 어 그
가자 그럼 어디로 갈래 하니까 아 해운대 좋다는데 그래서 해운대로 갔어요 부산
부산으로 갔거든요 그 해운대에서 살다가 올라왔는데 그러니까 집이 나오기 전까지 그 포천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나는 그래도 걔는 거기 있으라 하고 저는 어 사데 가서 한번 먼저
보자 그리고 내가 부산 하나 센터에 가서 집 나올 때까지 좀 있었어 있었죠 예 예 어떻던가요 너무 좋죠
막 야 이런데도 다 있나 음 뭐 다 친절하고 사람들이 그래도 다 수고했다
하고음 얼마나 좋아요 살만 하잖아요 예 우리가 땅 집에서 살았잖아요
도둑놈이 들어올까 봐 울타리 담하게 해놓고 여기 뭐 도덕놈 있어요 도덕놈
없잖아요 가가 안 가져 갖고 가라 해도 안 갖고 가잖아요 아들이랑 해운데 걸로 봤어요 당연하지요 그 봤
해변가로 나가 가지고 예 뭐 바다에 가서 수영도 해보고 뭐 맛있는 것도
먹고 그렇죠 바닷가 이것도 해도 먹고 저는 또 생거 안 먹어 가지고 육고기
안 먹잖아요 뭐 아무거 먹어도 맛있죠 그게 여기서는네 참 여기 와 가지고 어떤
생각이 드냐 하는 거예요 예 그 북한 영화 조선이 별을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아 봤죠 봤죠 그거 뭐 본 람 있습니다 그게 어떤 영화면 김일성에
대한 영화입니다 예 그냥 그 인간이 이렇게 이렇게 싸워서 우리 민을 위해
이렇게 나라를 뭐 그런 다 사기에요 예 조선의 별이라는 김혁이 그 있는데
김혁이 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이 서은주 콘서트에서 시를 읽던 그
생각이나요 예 그래요 거기에서 김이가 그 수한 청년들 앞에서 어떤 실을
읽었는가 하면은 시내가 작은 풀 뜯어 가지고 곱게 곱게 작은 근배 무어
가지고 거기에다가도 달고 사떼 져서 순이야 너도 타라 철이야 너도 타
우리가 눈물 없는 나라로 찾아서 가자 하고서 그 실을 읽어요 예 그런데 배
탔던 사람들 다 가옥에 다 가졌잖아요 그렇지 맞죠 하나의 큰 갑목을
만들었잖아요 참 눈물나요 그 세상을 생각하면 한쪽으로 또 저기 사는
사람들도 여기에 순이야 너도 타고 오기야 너도 타고 한 이런 또
반대편에 생각도 났을 거 같아 그렇겠죠 그렇겠죠 그래서 뭐 김일수가 그래서 만나 가지고 아 김혁동 뭐 예
그게는 작은 배가 아니고 구양이 됐네요 하면서 더 많이 탈 수 있겠네요 하면서 김서가 그런 거예요
예 왜 거기다가 수탄 사람 태워 가지고 감옥으로 데려 갔냐 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으로 데려갔죠 글쎄요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러게요데 우리게 탈북민들은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그 개
같은 사상에 이렇게 쩔어 있다가도 딱 오게 되면 그거를 이제 자유에 대한 걸로 바꿔서 이제 들으셨죠 저도 그런
생각을 진짜 많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렇죠 그러면 거기서 이제 얼만큼 사셨어요 해운대에서 이제 일도 해
하셔야 되잖아요 제가 거기에서 내려가 가지고 중국에서 브로 크비 맞다 그거
브로 크비 있잖아요 브로크 비를 그게 한 사람이 400만 원씩 내야 돼요 그러니까 둘이 8800을 내야
되거든요 예예 근데 뭐 생이라는게 기껏 30 몇만 원밖에 없어요 예
그걸 가지고 안되죠 생비 가지고 근데 나올 때 300만 원을 줘요 뭐 그냥
뭐 와가지고 뭐 아무것도 없는 집에 와서 그래도 뭘 TV에도 나야 될 거 아니에요 뭐 밥솥도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 안 안 좋죠 하나 안 그래서 그 두루두루 다하니까 그것도
없잖아요 모자라요 그리고 또 브로비 갚아야 되고 하니까 제일 먼저 돈을
많이 준다는 소리 듣고 거제도 조선소에 갔어요 엄마라 조선소에 가서
정말 이 했거든요 그 기름 뽑는 선 그게 높이가 엄청 높아요 아파트 한
7층 높이가 되거든요 근데 거기 가서 그러니까 이런 케이블 배에다가 케이블을 다 설치하자아요 예 근데 그
안에 들어가면은 막 해요음 정말 숨막혀요 그러니까 이게 마스크를 써야
되지 높은데 가니까 안전 띠를 만들어 다 매야 되지이 여기다 하니까
하루종일 뛰어다니면 여기가 다 걸어요 진짜 용접을 하지 그다음에 그라인더를
하지 하니까 그 배 안에는 그 공기라는 정도가 아니에요 색감이 완전히 안 예 건강이 안 좋죠 그런데
거기서 일을 하다 나니까 그래도 400명 이렇게 쭉 이렇게 그 사람들이 아침 조회를 하고 이렇게
있을 때 400명 3 400명이 모이면 거기에 저 청색 그 모자 쓴
사람이 몇 명이 돼요 그게 반장이 예 과장
반장 바가지 보면 알거든요 모자 앉 모자 그리고 거기 거의
95% 가 노란 바가지 모자를 써요 안전 모자 노란 모자 그냥 그서 그
사람들은 그냥 일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모자로 구분 했 모자를 모자 가지고 구분 해요 근데 그 속에 또
흰모자 이런 흰모자 흰모자 쓴 사람이 하나 내지 두 명이 있어요 근데 그
사람이 도비라 해요 도비 도비 예 그 사람들은
뭐인가면 신호수 하는데 그 신호수가 일을 하지 않으면 2에서 300명이
앉아서 놀아요 그게 사실은 그 밖에서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있는데 책임감이
엄청 강해요 그리고 쉬는 시간도 많고 근데 제가 일주일 만에 그 자리를
땄어요 야 어떡해요 눈치가 좀 빠르니까 지켰죠 대표가 예 그래서
어쨌든 거기서 많이 일을 하다가 다가 그 회사가 없어졌어요 없어지면서 제가
거기서 나왔거든요 몇 년이 1년 말인가 아 그러면 한국에 오셔서 진짜
첫 일이고 정말 육체적으로도 고대 들 포기 안 하시고 1년 반을 하신
거면은 첫 시작 시구는 진짜 괜찮게 잘하신 거 같아요 그래서 거기서 벌어 가지고 브로크 브로피 그 브로크 비
그거 다 갖고 다 갖고 거기서 돈을 벌어 가지고 자동차 샀어요 자동차
그것도에 뭐야 코란도 예 코란도 사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다음부터 집에
와서 그 보니까 저는 또 다른 직업을 찾아야 되겠는데 그러다 하니까 기장에
가서 미를 또 탔어요 예 근데 말을
한국 말을 잘 이해를 못 해요 우리가 근데 그 할머니하고 할아버지하고 그게
같이 가서 일을 하는데 야 끌라 끌라 하더라고요 예 끌라 끌라 어 끌라 끌라 하는게이 꾸라는 얘기 아닌가 뭐
단기란 소리 보고 끌려고 하는 거 같아요 근데 끊으라는 소리를 들었어 그 그 대장을 칼 가지고 자르려고
하는데 나 보고 소리를 지른 거예요 응 기하는 거예요
아 한쪽으로 는 학원도 다니면서 그다음에 또 나와서 또 배도
타고음 무슨 학원 다니셨어요 그면 중장비음 할게 많아 일단 한국은 할게
많아요 맞아요 그래서 그때 미역을 잠깐 타다가 그 학원에 갔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필기가 엄청 어려워요 중장비는 근데 뭐 단번에 한 90점
맞았거든요 어이고 예 운전 그면 그 중장비 학원에 가서 그 지계 차면허
그다음에 뭐 면 포크레 뭐 이런 거 시험을 봐가지고 자격을 닦고 그
중장비 기사 자격을 가지고 양산 쪽에 한창 제지 공장이 있어요 제지 공장에
입사했어요 내가 지계차 그러니까 자격증을 가지고 예 근데 거기는
그러니까 종이를 종이를 생산하는 데데 그러니까 이게 값이 있어요 이게
생산을 해 가지고 이게 딱딱 이렇게 잘라 가지고 그이 빠레트에 쫙 이렇게
랩을 씌워 가지고 그게 종이가 밑 미끄러워요 이렇게 딱 뜨면 잘못만
움직이면 그게 무너져요 아 잘 미끄러 예 그게 하나가 200만원 넘어가요
한 파레트가 아 하나가 딱 넘어지면 200만 원 버려요 거 날아가요 그걸
싸울 수도 없어요 그냥 그래서 다시 떠 가지고 쓰리 기장에 가야 돼 어머 그게 종이가 딱 한 번 실수했어요
제가 근데 거게 공 그 대표님이 그러더라고 야 나는 엄청 실수 많이
했는데 너는 그래도 하나 진 것도 괜찮다 이더라고 감사하네 그니까 그게 기술이 엄청
필요해요 그 컵을 돌면 그게 무너져요 그리고 또 랩을 씌우는데 가서 딱
해가지고 딱 해가지고 기계에서 바로 뽑지 못하면 또 무너지지 않으면 그다음에 지게차가 고장나요 그 기계에
물려 들어가요 엄청 빨라야 돼 이게 기계가 딱 동작하기 전에 바로 하나 딱 넣고 딱 뽑았다가 또 다시 넣고
이렇게 진짜 거 그 한국에서 일해 보시면서 느기 소감이
어땠어요 북한에서는 북한에서는 다 강제노동이 예 그 사람들 하루 종
일시키고 쌀 1km man 줘도 열심히 일할 거예요네 예 근데 안 주잖아요 그래도 여기는 대가를
주잖아요 열심히 할 만 하잖아요 그게 제일 좋은 거죠 그게 제일 마음이 막 나오셨구나 맞아요 이게 가장 핵심인
거죠 그죠 그다음에 기농 학교로 갔어요음 기농 학교 가서 공부를 좀
해 가지고 는 앞으로에 가서 살건데 뭐 이러면서 그런 생각 가면서 기 학교 갔거든요
근데 거기에서 소개를 해주는 거예요 제가 약초 부분에 대해서 엄청 많이
아니까 동사는 기본적으로 약초를 끼고 있어야 되죠 약초 모르면 안 되죠
그래서 거기 가니까 그 약초 교술 실장 자리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초교 실장을 했어요 제가 예 기능학교
졸업하고 예 그 그 창에 가서 그 학교가 있어요 농학교 거기 가서 약
실적을 하면서음 약초 강의를 했죠네 40명이면 40명을 데리고 그서
산으로 가요 현지에서 가면 그 40명이 하나씩만 뽑아도 40개가
달아나요 그렇죠 자원이 말라 가지 않아요 저는 예를 들어서 단기 단기를
설명해 주면 잎을 하나 뜯어 갖고 와서 이게 단기입실 다 봐요 예 그러면 그
40명이 하나씩 그러면 잎을 하나 뜯어 보세요 하면은 사명이 거의 다 달라음 전어 뜯어 오는 사람 어수리
뜯어 오는 사람 뭐 비슷하게 생겼거든요 초가 그러면 그 뭐 열 가지를 뜯어
왔으면 열 가지를 또 다 설명해야 돼 아 그래서 제가 두 가지 한 가지만 배우고 가도 공부 잘된 거라고 내가
이야기를 해 주거든요 예 그 사람들이 그러니까 목적은 그 사람들을 정현
퇴직해 가지고 전은 생활 나가서 약초 가지고 그까 자기 건강을 좀 챙기기
싶은 사람들 아 사람들이 교육받으러 많이 와요 자 그리고 야 약초 실장까지 하셨으면 그쪽으로 뭔가
사업을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제가 그 이북에서 그 장출 그라고 있었어요
장출 gold 그 약 이름 아니에요 그렇죠 출고라고 하는게 그 동의
보관에 그 삽주 그러니까 백출 그다음에 백봉령 꿀 거기다 감초 조금
들어가요 그래 가지고 원래 궁중의 원래 명약이 그게 뉘를 따뜻하게 하고
위 그 위험이 있는 것을 그니까 이게 보강해 주고 혈관을 그니까 이게
재생시켜 줘요 그러니까 위가 편하는 온 장이 편한 거죠 그 북한에서는 그
장 출고를 옛날에 만들어서 그래도 조금 국민들 조금 줬어요 그런데 고라
행군을 맞으면서 그 장투를 모두 싹 다 켜다가 쌀 바아 먹은 거죠 중국에다 근데 여기 우리 촌이랑 와서
보면 옛날 할머니들이 그걸 캐 가지고 밤새껏까 가지고 시장을 냈다 팔아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땅을 샀다 하더라고요 엄청 귀한 이야기예요 예
옛날에 그것을 우리는 해마다 약초 채치 월간이 있거든요 무조건 게다 받쳐야 돼요 예 봄철 아고 가을
철하고가 그게 그 장출이라는게 싹 다다 팔아 먹었으니까 그게 싹
없어지니까 그 장출 그를 만들어 가지고 제일 위에 놈들데만 조금 올라가는 거예요 그거 만드는 것도
무장 보여서요 그래서 제가 여기 와 가지고 야 여기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그 스트레스를 받고
위가 다 좋지 않아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좀 내가 좀 한번 좀 풀어볼
수 없을까 전국에 있는 그 삽주를 한다고 하는데 다 찾아다녔어요 아 예
근데 그 여기 와서 보니까 중국의 큰꽃삽주 종자가 들어왔어요 예 예
근데 그게 약효가 별로 없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95% 외국에서 이라든지
이런 데서 수입을 해 가지고 들어오는데 실제로이 베나치오 할명수
일체 여기에서 나오는 소화 부분에서 필요한 약들이 그 삽주 그러니까
백출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돼요 그게 필수예요 그 약들을 만드는 데서 그
백출이 귀한 거예요 사실은 여기에 나가서 한 근을 사려고 하면 거의 우리 국산 살려고 하면 한근 69에
거의 5만원씩 그래서 제가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아 그 찾다 나니까 그래도
노업 지금 진흥청 종자 연구관 그런 사람을 만났어요 오 다행이네요데
수소물 하다 나니까 그 사람이 삽주 종자를 연구를 했더라고요 연구를 해가지고 국산화를 시키겠다고 그래서
제가 그 그 사람 보고 저도 좀 끼워주라 그랬죠 그래서 지금 그 사람하고 같이 연구도 하고 예 그래서
그걸 가지고 그 뭘 좀 만들어 보면은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 삽수를 그
재배 하고 그다음에 이렇게 하려고 하면 기술이 많이 필요해요 그래서 그걸 연구하려면 중국수 그니까 백보다
약효가 두 배 두 배 뛰어나는 거 횡성군의 삽주 농업인 연구회라는 거
만들었어요 만들어 가지고 제가 초대 회장을 하거든요 어머 그래서 그 회장 사업을 하면서
그러니까이 농가들을 단합을 시켜야 되고 그다음에 그 종자 공급도 해야
되고 수학도 해야 되고 그래 을 하기 전에 제가 북한에서 그 장 출고를
어떻게 업그레이드 시키겠냐 어떻게 업그레이드 시키겠냐 그래서 그에
이름을 제가 따로 달았어요 뭐라고 달았어 진 온고 아고 아 그걸 지금 지금 만들고 계세요 그렇죠 그게
사실은 대한민국에서 참 어려운게 식품이에요음 식품을 한번 잘못 만들면
정말 몇십억이 달아나요 어 그게 저게 엄청 까다로워요 나라에서 이게 승인
받고 도장 찍어 주는게 그렇죠 뭐 자격도 많이 따야 되고 식품 제조 시설도 있어야 되고 그 위생 관리
그다음에 이게 한번 이게 하면 무조건 다 압수가 들어요네 몇천만 원에 씩씩 만들어놓고 다 압수가 가요 그러니까
그 정도로 품질과 위생과이 철저하게 해가지고 진행을 한다는 거죠
그러면 우리 지금 선생님께서는 강원도 횡성에서 사업도 하시고 사시잖아요
강원도로 그러면 가신 이유가 부모님 고양이라서 그죠 가신 거예요 아 그것도 좀 스토리가 있죠
예 그러면 우리 지금 선생님께서는 강원도 횡성에서 사업도 하시고
사시잖아요 강원도로 그러면 가신 이유가 부모님 고향이라서 그쪽으로 가신 거예요 아
그것도 좀 스토리가 있죠 제 아버지 고향은 총주 어머니 고향은 저 인제
이렇게 되니까 솔직히 부모님 고향은 가기 싫어요 우리 줄 있잖아요 예 그
대게 보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그런데 가면 그 사람들이 땅 찾으러
왔나 도움 받으러 왔나 만났어 나 정말 많이 만났어 응 그래서 아버지 고향 엄마 고향 딱 중 가운데 가자
그래서 행성으로 가게 되거 그 친척 안 찾았어요 안 찾아요 저는 그 친척들을 찾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맞아요 이게 도대체 뭐라고 돈이 뭐데 그러니까 아니
그래도 부모님이 이렇게 살았다 살다 가셨다고 소식을 좀 전해 줄 수도 있잖아요 뭐 별로 그러고 싶지 않고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근데 좀 이상한 일은네 제일 먼저 새 차를 사 가지고
청주만들기 고장이 났다고 차가 풀리라는 거지 그럼 그렇겠죠 예
고장이 났다고 자꾸 머이 떠요네 예 새차인데 예 그래서 우리 장인 어르신
보고 물어보니까고 가라 가라 그래서 제가 집사람하고 같이 갔거든요 가서
문중 거기 찾아가 가지고 제가 그랬어요 예 그 문중 거기에 그게 있어요 예 그 제사 지내는데 조상님
저 제 힘으로 살려고 온 사람이에요 자꾸 찾지 마요 그렇죠 그다음부터
지나가면 차가 문제 없어 사실이에요 이거는 그러면 지금 사모님 얘기 나오셨잖아요 아까도 제가 얘기했지만
사모님이 여러분 박사에 신사입니다 후손이라고 어떻게 또 사모님을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한데 일단 깜 진짜 놀랐어요 남남북 다 뽕이 그만요
저한테 전화가 오시고 문자가 오시고 아주 매이 서신대 인터뷰할 시간을 물어봤더니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까지 식사하시고 언제 언제 가능하시고 어 신랑이 주무시는 시간은
좀 일찍이 주무신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저한테 미리 양해를 구하면서
남편분 테 다 맞추는 거예요 나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뭐 머리도 이제
손질해서 제가 가면 겠죠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굉장히 너무 사랑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어떻게 만났어요 그러게요 예 제가 좀 사람들 좀 아픈
걸 좀 봐주다가 예 어떻게 저 사람이 예 부모님을 모시고 아프 아프 가지고
왔어요 예 그러다 나니까 장모님이네 그때 장모님이 아니죠 그렇죠 예 어
어머니가 예 저를 선택한 거지 또 지금도 장모님 제일 좋아요 어 참
좋아요 우리 장모님이 장인 어르신도 엄청 좋고요 예 너무 정직하시고 그
마음가짐이 진짜 왜 마음 씨가 고와야 복도 받는다 이런 얘기 있잖아요
그렇겠죠 남남 부요 다 뽕이지 남쪽 여자분이 어때요
살아보니까이 시간을 통해서 사모님께 점수 달 피해를 드릴게요 아 그냥에
좋은 환경에서 많이 배웠고 참 음 분별을 알고음 예 사람 마음을 이해를
잘해 주고 그리고 또 훌륭한 집에서 자라다 나니까 부모님들데도 감사하고
예 예 열심히 해 가지고 그 부모님들데 고마운 걸 제가 보답을
해야 되죠 그래요 그러면은 지금 몇 년 되셨어요 지금 5년 7년 도에
만났으니까 그러니까 혼인 신고는 그냥 4년
됐어요 본인 속에 좀 부탁드립니다 아 제 소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
우리 강은정 TV 출연을 최근에 한 아 한이라고 하면
한성태 씨의에 아 내죠 배우자입니다네 아 정말 이렇게
배우자고 제 이름 아직 소개 안 했어요네 예 배우자로서 저는
최현숙이라고 하고요 저는 어 남쪽에서 남에서 태어나서 자라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만난 남남 북녀 아니라 남녀 북남 만남에 어디 출신이냐 떠나서
여자와 남자가 만나는 것에 사실은 고민을 좀 해야 될 거 같아요 남과
남이 만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거 같아요 어려움이 있지요 당연히 있는데 왜냐면 서로의 문화 차이에
대해서 지금부터 새롭게에 알아가야 하고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어렸을 때
제가 즐겨듣던 노래라 그가 또는 공통의 우리 이제 우리나라 전체적인
어떤 추억들 있잖아요 뭐 라든가 뭐 8팔 올림픽이라 그가 이런 경험들을이
사람하고는 사실은 공유하기가 좀 어려워요 근데 그거는 마찬가지죠 남편이 어렸을 때 그쪽 체제에서
지냈던 일에 대해서는 저는 흥미롭게 듣기는 하지만 분명히 다르긴 다르죠 그리고 제 새롭게 배워야 될 것도
많고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별 차이 없다 저이 생각 니다 아드님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신 거 아드님을 그렇게 사랑한다고 들었어요
아 사랑하죠 사랑하고 사랑하려고 노력을 하죠 자 근데 이제 이런 거
있어요 저 진솔하게 얘기 얘기하려 그니까이 얘기를 하는 건데 저는 그동안 가정을 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죠 이제 부모님 사랑하죠 제 형제 자매들 사랑해요 하지만 각자의 가정들이 다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제 가정을 갖게 된다라는 것은 그 가정의 구성원으로부터 사랑 받는다라는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또
사랑할 대상이 나한테 생긴다는게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가치였던 그런
의미에서 남편만 있는 것보다 아들까지 있는게 저한테 큰 복이죠 왜냐하면 사랑할 대상이 두 배지아 이게 좋고
그런 꿈을 꿀 수 있어서 좋죠 걔가 이제 지금은 나이 30살 이제 지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가정을 꾸릴 수도 있고 또 아이들이 생기고 하면 저한테도 뭐 손자도 생기고 손녀도 생기고 할 수 있는
건데 엄청 난 선물이죠 혹시 부부 싸움 해보셨어요 아유 그럼요 혼자 살
사는 동안에 부부 싸움을 할 일이 없잖아요 예 그러다가 하다 보니까 이제 새로운데 푸모 안는 것밖에
없어요 아니 푸모 않는다라는게 이런 거죠 미안해 내가 앞으로 잘할게 예 아
저는 정말 그런 얘기를 거의 살면서 안 해 봤어요 근데 남편이 생기고 나니까 그 말을 하지 않고는 부부
관계가 유지가 될 수 없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요 남편도 그 얘기를 많이 해 저한테 미안하다 고맙다이 얘기
정말 많이 해요 그렇기 때문에 유지가 될 수 싸우 그까 싸우죠 싸우지만 그
얘기를 서로 용기를 내서 할 수 있기 때문에에 저는 부부 관계가 유지가 된다고 보고 고마운 거는 뭐냐면
일반적으로 북한 출신의 남성들은 남성 우월주의 예 그런데 많이 이렇게 있기
때문에 여자를 똑같이 동등하게 인정하고 본인이 미안하다고 하거나 하는 것을 말하는게 굉장히 어렵다라고
알고 있고 있거든요 근데 저희 남편은 부척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뭐 북한 남자가 이렇다 남한
남자가 이렇다 또는 여자가 이렇다 저 그거는 그렇게 그 어떤 한 집단을
획일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다 다릅니다 저도
남한 여자가 어떻다라고 이렇게 똑같이 판단받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그냥 저예요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예요 북한 여자가 이렇더라 예를 들어서 여성적이고 뭐
남편 공양을 잘하고 이러한 얘기를 듣고 북한 여자 찾고 싶다라고 생각하거나 또 남한 남자가 어떻기
때문에 또 북한 남자가 어떻기 때문에라는 얘기를 듣고 찾고 싶어한다면 제발 그거 하지 마셔라
얘기를 하고 싶어요 어 다만 내가 내 배우자를 찾는데 있어서 그게 남한 사람이든 북한 사람이든 어 자기와
꿈을 잘 맞춰서이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게 아니라 사랑을 줄 자신도
있다라고 할 때 만나면 좋겠다라는 생각 들고요 그래서 선입견 내려놓고
내려놓고 만나면 모두에게 더 좋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너무 감사하네요 어찌 보면은 여기 와서까지 그 아들 하나
데리고 혼자 산다 생각하면은 참 저도 가슴이 아플 거 같은데 너무 잘됐고
아드님은 한국에 와서 후회 안 했어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그 아들이
예 그 아들이 맨처음에 와서 좀 방랑을 했어요음 참 많이 방황을
했어요네 근데 제가 브로크 비를 그 물었다고 예 가서 조선소 가서 일하고
그런데 얘가이 땅이 참 뭐랄까 낯설죠 그렇죠 그래서 그냥 먼저 온 애들
그다음에 걔들 그런 좀 못대 먹은 애들하고 돌아다니면서 같이 응 다니면서 담배도 배우려고 하고 예
술도 먹으려고 하고 그래서 제가 한번 혼냈어요 예 응 혼내 가지고 그렇게
내가 너를 살려고 그렇게 살려고 여기 목숨 걸고 데려왔냐네 응 이건 아니다 응 그래서
손 갈라 바로 그랬어요 응 호주서 파버린다 예 파버린다 이랬거든요 그래 가지고 그때 제가 저도 모질지 눈물
흘리면서 집에서 쫓아냈어요 예 그랬더니 제가 좀 방광을 하다가 그다음부터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도 애가 적응이 빨라 가지고 그래도 그런 반도체 그다음에 이런
회사들 다니면서 그도 한 30명씩 거느리고 팀장까지 들어 하더라고요
내가 잘됐다음 그래서 그때 내가음 너무 또 뭐 저 걔를 내보내고 예
1년 동안 일체 연락도 안 했어요 아 어떻게 사는지도 마 마음이 많이
아프죠 그런데 한동안지나 가지고 설날이 됐어 걔도 외롭죠 예 아빠한테
전화 왔더라고 아빠 제가 잘못했다고 예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래 응 살다 나면 다 그럴 수 있어 정신을 차리면여 좋은 세상이야 그때
방황할 때는 차라리 북한에 놔두고 오지 막 이러면서 그랬어요 난 온 거
후회한다고 어 그 소리 들으니까 더 마음 아픈 거죠 참 그래서 1년 조금
넘어서 설날이 돼 가지고 전화가 온 거죠 예 그래서 내가 용서할게 어
그래서 일 그만하고 예 내 좀 공부해 음 그랬더니 일을 하면서 걔가
아버지인데음 매달마다 자기 월급을 타 가지고 50만 원씩 예 예 용돈을
보내는 거예요 야 아주 참 잘다 그래서 그걸 내가 이렇게 딱
모아놨다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가서 공부를 해 네게 그 위에서 딴 그냥
그 뭐 고등학교 졸업도 없잖아 어 가서 그거부터 따고 공부 좀 해
그랬더니네 알겠습니다 하더니 며칠 공부하더니 가서 금정 고이 치고 온 거예요 아버지나 합격했어요 이러더라고
야이이 부자 아니 머리가 진짜 좋네요 뭐 어 예 그래서 걔도 열심히 일을
하고 참 성실해요 내가 아빠 닮았죠 그래서 저 우리 집사람을 만나고
그래서 공부를 해라 공부를 해 했더니 그 학교를 찾은 거죠 예 찾아가지고
가서 1년 1년 조금 더 돼가지고 그 학교에서 기적을 쓰고 나온 거예요 어
예 국가 자격을 열 개 딱 갖고 나왔더라고요 야이 뭐야 뭐 소방 전기
그다음에 무슨 뭐 공조 냉동 뭐 무슨 무서고 해 가지고 열 개를 자격을
따고 나왔어요 예예 그러더니 부산 그 롯데월든지 거기에 그러니까이 산업
기사 자격을 치려면 현장 경험이 또 1년 있어야 돼요 그 거기 가서 또
취업을 하더니 또 공부를 해 가지고 또 산업기사 자격을 또 더라고요음 그래서 그렇게 하고 저기 부산 그
강서 쪽에 기 다이소 물류 센터가 있어요 예 거기 가서 그니까 관리자
그러니까 장력이 있어야 들어가요음 근데 걔가 들어가서 뭐 자기 나이
많은 사람들도 거리고 일 일을 하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을 리더가 됐네요 예 그래서 그런 거 좀
있더라고 그래서 이번에 내가 여기 와 가지고 야서 거기서 뿌리 내리지 말고 어 다른음 도 좀 해 예 그랬더니
거기다가 사직서를 낸 거예요 그랬더니 아버지 나 세계 여행 갈 거예요더라고
오 예 그래서 그 돈 있으니까 아니 근데 저 퇴직금 받으면 되잖아요 어
그러네 어 퇴직금 가지고 여행 간대요 그래 알았어가 그랬더니 제가 또 다
수속을 해 가지고 베트남으로 해가지고 필리핀으로 한 달 돌아다니다가 또 왔어요 지금은 그래도 여기에 가까운
데서 지금음 고정 직어 아니지만 이제 우리가 저기 영 정도에 걔를 살게 할
거예요 그러니까 그쪽에 가서 이제 좀 직업을 좀 알아봐라 그리고 열심히
살고 있어요 지금도 말 진짜 열심히 사네요 진짜 아유 진짜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그러면 진짜 아들도 이렇게 잘되시고 하니까 이제 사업만 잘되면
될 거 같아요 뭐 잘 되겠죠 그래요 제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우리
선생님께서 북한에서 그 동사 고 계셨잖아요 양만 만들고 계신대요 근데
정말 귀한이 재주를 여기서 따셔 따셔 갖고 많은 사람 살리세요 여기 한국에
제일 많은게 한의사에 탈북이 한의사 근데 이제 따면 제가 이제 거의
70이 되었다요 10년 넘게 공부해야 돼요 그 의사 공부는 한국에서는 그래요 그냥 약초 연구는 하고 약초를
해 가지고 나라에 보태면 좀 되 될까 하는 생각밖에 없어요
어때요 근데 우리가 지금 그기에 땅을 사 가지고 그 땅에다가 지금 공장도
세우고 2층 짜리를 그리고 밑에다가 이게 투사를 많이 했거든요 저 기계도
놓고 이렇게 생산을 해야 되니까 근데 거기에 지금 우리가 편성까지 하고
있어요 그 온 양가라 네이버 칩은 다 나와요 아 그래요 예 그리고 에어
BMB고 치면 우리 온 양가가 행성에서 1억 치음 스테이 저 가도
돼요 예 와요 나가서 일주일 그냥 이놈이 나고 내 그서 나를 그서 갈 그는 나는데 거기 가서 좀 살다 오게
예 오셔도 돼요 예 참 멋있는 집이에요 어 여러분 제가 가서
치료받고 먹고 자고 와보고 처음 알려 드릴게요 리가 목숨을 건다 온다 하지만 진짜 목숨을 건 탈북민을
만났어요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왔지만 여기서 호운 짝을 또 사모님을 만나서
지금 사업 열심히 하시면서 사시고 저는 무엇보다 진짜 신뢰를 갖고
우리가 바라봐도 될 정도로 그 거은 심정으로 사시니까 저는 탈북민으로 진짜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들어요 오늘은 여기서 마치죠 감 여러분 끝나게 안해요 저희는 그죠
저는 이제 저기 행성으로 날아가겠습니다 거기 가서 또 뵙죠 예 감사합니다 오세요
예예 n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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