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e
Avatar image
[김남일 풀영상] 북한 핵심 당간부의 세뇌가 박살난 순간! K군사무기를 보고 기겁…
강은정TV
273K subscribers
Subscribed
11K
Share
Download
Clip
Save
379,001 views May 20, 2024
No description has been added to this video.
Transcript
Follow along using the transcript.
Show transcript
강은정TV
273K subscribers
Videos
About
강은정의 인스타그램
476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Add a comment...
@강병관-n2w
11 months ago
김남일 선생님 정말 반갑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1925년생 북청 출신 입니다 할아버지는 세무서장 했다고 합니다 월남때 이북동생이 있다고 합니다 작은아버지 성암이 강일봉 이라 들었습니다 늘 그리워 햐며 그리워했습니다 북청이 제 고향이지요 건강하시고 정말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82
Reply
5 replies
@user-lee1218
10 months ago (edited)
김남일님 기막힌 사연을 듣고 보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응원 합니다 ⚘️
73
Reply
@이윤수-v6u
11 months ago
지금까지 만난 탈북자 증언중 최고입니다.
94
Reply
@사랑해진주
11 months ago
김남일 선교사님~
아드님 꼭 건강하게 살아 있어 반드시 만나실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
축복합니다
52
Reply
@inhoahn6055
10 months ago
김남일선교사님의 진솔하고 생생한 탈북 이야기를 듣고 저도 눈물이 나네요. 하루 빨리 북에 두고온 아들과 자유대한민국에서 상봉할수 있길 기원합니다. 이런 유익한 내용을 잘 끌어내주는 강은정님의 매끄러운 진행도 칭찬을 하고 싶네요. 김남일 선교사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강은정tv 대박 나세요.
71
Reply
@박안나-f3v
9 months ago
같은 민족인데 이렇게 고생들하고 지낸이야기들으니 참으로 안타깝네요 앞으로 계속 편안하시고 행복하세요 ~
9
Reply
@손경신-q9y
10 months ago
얘기들으니 너무나 가슴이 뭉클하고 하루빨리 통일되어 아드님 만나시기 바랍니다. 강선생님
항상응원합니다
건강하셔요.
44
Reply
@종찬최-d1s
11 months ago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는
인생의 쓴 맛을
모른다
김남일님 가난은
하느님도 구제못한다
했는데 천만다행하게도
대한민국으로 오셨으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십시요♡♡
46
Reply
@이창국-z1w
11 months ago
강은정tv는 진솔해서 좋습니다.
북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진행하시는분 출연하시는분 모두 하나님이 살펴주실것 입니다.
26
Reply
@최명자-d4z
9 months ago
강은정티비는 한분을 모시면 끊기지않고
끝까지 방송을 해줘서
고마워요
30분 방송하다 끊어지니까
흐름을 못느껴서 나쁘거든요
8
Reply
@uro2686
10 months ago
목숨걸고 자유 대한민국 나라를 찾아 오심에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너무너무잘 오셨 습니다
27
Reply
@na.2210
11 months ago
저도 부모님이 북한이 고향이신데 참 반갑네요. 김선생님과 비슷한 나이에요. 어머님한테 북한에 대해 많이 들었어요. 1.4후퇴때 월남하셨죠. 결정 잘하셔서 대한민국 국민 되신걸 정말 축하드려요.
39
Reply
@ranijeoung3751
11 months ago
그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기도합니다.
41
Reply
@참조아-j4v
10 months ago
북한통일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김선교사님. 강자매님.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힘내시구요. ~
35
Reply
@koreaclean2780
10 months ago
어렵게 온 만큼 멋지고 재밌게 살아야지요.
건강하세요.
30
Reply
@kwang8014
8 months ago
꼭 꿈이 이루어질것입니다 항상 그분은 큰선물을 주기전에 시련을 주십니다 힘내세요
7
Reply
1 reply
@선식김-z1s
11 months ago
김남일님 늦게 대한민국에 합류했지만
어느누구보다 나라 발전에 이바지 하시는 군요.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건강하시고 더 많이 행복하시길
가도 드립니다.^^*
31
Reply
@specialrapper5937
6 months ago
김남일 선생님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슬프면서도 너무 재미있네요...
11
Reply
1 reply
@황경자-x2l
9 months ago (edited)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아들 손을잡고.
감자심고 심고 수수심는 두메산골 내고향에,못살아도 나는좋아, 외로워도 나는좋아.눈물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유정천리가사입니다#
저도 오래전거라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1
Reply
@유재경-d3h
10 months ago
말씀허시는도중
끼어들고싶어 졌어요
잘오셔서
산업발전에 이바지 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독재라고 말하는이들도 있지만
그때는그렇게 안할수 없었고
우리나라사람들은
간첩도 있고
좌파도 많았었읍니다
지금 사회를 보셔서
아시겠지요?
16
Reply
Transcript
아 그래고 쟤들이 뭘 먹어서 저렇게 크나 아니 아 쟤들은 왜 저렇게 큰
놈들만 잡아 뽑았는가음 아이 새끼들이 우리 조각 아 저 뭐야 안 좋게 보 예 좀 약
뭐 이랬다가이 180도로 또 뒤고 원려 공산주의자들이 그런 거 아닙니까
그렇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은정 t 은정 있니다 오늘 또
어김없이 새로운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만나볼게요 우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본인 석의 좀 부탁드립니다 예 한국의 언지 22년 차 행복하게 살고 있는
김남일 있니다 아네 22년이 꽤 되셨네요네 행복하게 살고 계시다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맞습니다 우리 탈북민들 중에 대한민국에서 행복을 안
느끼고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거 같아요 그렇죠 예 고향은 어디신가요
어 저는 고향은 북청 이고요 아 무슨 도죠 아 한경남 함경남도 북청 이요
거기 뭐가 유명한가요 사가지 그렇죠 사과를 많이 드시면서 그러면
하셨겠네요 예 예 어렸을 때 뭐 사과는 많이 먹고 자랐죠 아 그래서
이렇게 가까이 있서 보면요 여러분 너무 인자한 얼굴이어서 진짜 자상함에
끝판왕이에요 아 딱 보면은 우리가 북한 남자들의 그 그게 풍기는게
있잖아요 복구 아이 갖고 예 막 이런 그런게 있는데 우리 김남일
선생님께서는 전혀 그런게 안 느껴지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러면은
북청에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거기에 자라 고등중학교 졸업하고 인민군
생활을 쭉 거치고 다시 제대 돼 가지고 다시 또 뭐 당원 돌격대 또
뽑혀 가지고 예 그쪽에 나가 또 생활하게 됐습니다 검덕 광산을 씀
가요 아 그러면은 일단은 그 군복무 좀 들어보고 싶어요 어디서 군복무
하셨나요음 강원도 금강군 장승이라고 어 그쪽이 동부전선 어 최전연의 하지
어 그러면은 최 전연이이 대한민국이랑 너무 가깝잖아요 아 그렇죠 뭐 그때가
몇 년 도시죠 저희들이 70 16년도에 입대해서 8월 달에
도끼만행 사건이 818 아 그 유명한게 예 도기 사건이 있었죠 그때
또 준전시 상태가 또 내려져 가지고네 신발도 벗지 못하고 전투 장구이 다
착용하고 잠자고 했었 했었습니다 저는 87년도에 태어났거든 그래서 두어번
그때는 모르지만 태어나서 이제 들었는데 정말 끔찍한 그런 사건이었는데 그 정확히 북한이 잘못한
거죠 그때 당시로서는 아 저희들은 뭐 북한이 잘못한지 그걸 모르 모르다 보니까 뭐
나무를 뭐 베고 뭐 이러는 과정에 아 뭐 싸움이 붙었다 북한에 있을 때는
아 용감한 민군 병사들이 싸워서 승리하고 뭐 도끼로 무슨 달려드는 뭐
미군들을 뭐 처 물리치고 뭐 그렇죠 온갖 좋은 건 다니까 아주 말 그렇게
붙이고 이쪽에 나와서 들으니까 그게 또 아니더라고요 항상 저희들 북한에
있는다 하면 다 속해 사는 거 아닙니까 그죠 예 그런 측면에서 너무
허 된 거짓에 속해야 살지 않았나 그죠 너무 후회스럽고네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전년에 군복무를 하셨는데 그때 당시 한국군에 대해서 좀 보고 듣고 뭐
어떤 그런게 있었나요 야 있었지요 아 저희들이이 감시 정차를 민경 초소에
나가 가지고 항상 수행하거나 거는 항상 두 시간씩
나가서 감시 정찰을 해요니까 상대측 적들이 일고 일고
일투족을음 병력이 어떻게 움직이며 차량 이동이 얼마며 어떻게 이동하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동하며 이런 것들을 항상이 보는군요 한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예예 그때로 말하면 게곤 이죠 야 저거 게곤 애들이 저거
주일날은 항상 운동해요 얘들은 뭐 농구도 하고 배우도 치고 하는데 아게
쟤들이 뭘 먹어서 저렇게 크나 엄청 큰 거예 우리보다 예 그래서 야
이상하네 먹지 못하고 뭐 그런다는게 예 뭐 잘 놀고이 운동복도 아 우리
우린 뭐 그때 운동복이 있어요 없지요 예 뭐 하면 딱 몇 내의 바라 물로 우리 운동하고 다 그러니까 운동복도
아니 아 저들은 왜 저렇게 큰 놈들만 잡아 뽑았는가음 그렇게 하면서 그런
나름대로 의심이 항상 예 가고 저희들이이 81화 초소 그쪽에 거리가
800 700m 800m음 그쪽은 거리가 골짜기 하나죠 네네 골짜기
하나 사이로 다이고 그렇죠 그렇죠 그 사이로 위치하고 있으니까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요 예 그때도 떨어졌어요 삐라 같은 것들이 예예 그때도
남한에서 보낸 삐라 삐라들을 예 있었어요 오 그 어떤 내용이었어요
남한에 기술한 사람들 잘 살고 뭐 음식이랑 넣고 뭐 잘 먹고 제일 또
기억나는 거는 그 이민근 군인들이 따발총 있잖아요 예 따발총 이렇게 해지고 발 싸게 싸는
오 그게 삐라에 온 거예요 사진 지켜서 삐라에 그죠 그거 보 보니까 아이 새끼들이 우리 조각 아 저 뭐야
안 좋게 보는 예 좀 약간 반감이 나는 거야 예예 그때 당시는 그때
당시로서는 그래가지고 한편으로 간 사람들이 예 이 행복하게 사는 이런
거는 우리가 뭐 집적으로 생활적인 체험을 통하지 않으면 그런 걸 또 어떻게 알아요 그렇죠 아 이것도
적들이 심리전으로 해서 하는 거로구나 아 맞아요 항상 이런 또 그런 교육도
봤죠을 봤지요 엄청 봤지요 쟤들은 뭘 보고서 저렇게 쿠나 이렇게 의심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때 70년 뭐라고 도대체 교육을 했는지가 궁금하네요
군인들을 심리적으로 시키기 위해서 여색 심리전을 한다거나 그다음에이
나와서 또 롱구이 뭐 운동하는 것도 다 짜맞춰서 이렇게 하는 걸로
선전하지 여기에 절대로 소금은 안 저기 보이는 건 그냥 선전용으로 쇼일 뿐이야 한마디로 그죠 예예 예 절대로
넘어가지 말 때에 대해서 항상 당부하고 어 정치적으로 사상 교육을
그렇게 진행하는 거죠 자 이게요 정말 얼마나 취사하면 한국에 와서 저도 군부대 강의를
가봤거든요 근데 여기 대한민국 군에서는 저기 북한이 지금 저러는게
쇼다 거짓말이다 이런 말 안 해요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가지고 안보에
대해서 우리가 군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렇게 해서 실제적인 걸
갖고 접근을 하더라고요 진짜 북한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치네요 그렇죠
북한은 정말이지 다 거짓가기만 또 북한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음
김정은 당해 이런 거짓가 기만에 속고 있죠 그때는 군복무가 한 10년
넘었죠 그렇죠 보통 일반 병정들은 년 정도음 그래 하고 예 특수 병정들은
거의 그죠 10년하고 아 몇 살에 나가신 거죠 저는 급에 나갔죠 세상에
군사 복무를 하면서 다 청춘을 바치고 또 건덕 광산으로 가셨다는 거잖아요
기간은 했는데 군당 또 뽑은 거예요네 노동력이 필요하니까 노동력이
필요하니까 아 당에서 당원들이 어렵고 힘든 곳으로 나가야 된다 한국 걸기
모임하고 또 이러잖아요 뭐 하면 그죠 그래 가지고 젊은 사람들 젊은 당원들을 차출하는 거죠 뭐 가게 되면
뭐 테레비도 주고 뭐 옷장도 단복이 뭐 생활적인 이런 걸 또 주고 내버리는 거야 안 가겠다 하니까
거기에 또 현혹된 안안 현역 되면 또 반동 문제로 올리잖아요 맞아요 예
그러면 검덕 강산에서 거기에도 뭐 국군 포로라는 이런 사람들 있었나요
그렇죠 금독 강산 용양 강산 예 이파 강산 동안 광산 쭉 그 골짜기에
광산들이 있어요 아네 광산들은 다 포로 교한 봉들이 다 있었어요 아
실제 보셨어요 그렇죠 어떻게 생각 하시던가요 아 아 그저 짐승처럼 꼬리
없는 소처럼 일만 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분들이 어떤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이런 것들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분들은 고향이 그리워도 표을 못해요 얼마나 고향에 대한
그림이 있겠어요 그 인간은 그게 당연하게 있는데 그들은 그것도
표현하면 결국은 반동 문자로 몰려 가지고 관리소로 또 가야 되는 거예요
맞아 혹시 비전향 장기수 보셨어요 전냥 장기수들이 북한으로 올 때 꽃다발들고 다쳤잖아 근데 너무 다
피부가 얗고 주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어떻게 저기서 저
게르도 이이 있는 저쪽에서 온 사람들이 어떻게 얼굴이 저렇게 좋을 수 있을까 저는 그런 의심이
들었거든요 그 잘 먹으니까 그런 거죠 뭐 근데도 북한이 좋다고 그 사람들은 돌아갔고 근데 아직 남아서 정말
고양이 그립다는 말조차도 못하고 사시 우리 국군포로 분들 생각할 때 정말
가슴 아 정말 진짜 가슴이 아프고 저는 한국에서 느낀게 그 비전향 장
기수들 갈 때 왜 우리 국군 포로들은 맞교환 안 했나 이런 안타까움이 좀
들 때가 있었어요 그 사람들도 보내주면 우리 국군포로들 받아야지
그렇지 예 막 교환 한다고 하고 또 안 보내 준 거 같아요 당시로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잖아요 뭐 이랬다가이 180도로 또 예 산자들이
그런 닙 그렇죠 그럼 막 하자 이랬다가 또 뒤집어 엎을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보인다는 건데 어쨌든
저희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좀 그런 안타까움이 있다 이렇게 말씀드렸고요 북청에서 그러면
그 검덕 강산 생활하시고 다시 동암 동암 강산이는는데
내려왔어요음 그 90년대부터 뭐 백업이 안 주기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렇죠음 그때부턴 뭐 죽어 나가는 숫자들이 저 96년도 최고 절정에 이르렀어 판자가
없어서 뭐 관도 무슨 좋은 관도 아니고 널 판자 이런 것도 없어서
가만히도 없어 가지고이 나레이 있잖아 나레이 나라이다 들들 그냥 그
그다음에 마지막에는 그거 보고 보통 북한에서는 직파 아고 완전 뭐이 나
중 그 얘기 나올 줄 알았어요 저희 맹산 그래도 그랬거든요 장래가 아니라 땅을 파고 그냥 시신을 묻어 버리기
때문에 직고 아 그거 보고 직하고 하고 야이 말이 전국적으로 유행을
했고요 아 그때는 정말이지 사람 죽어 나가는게 정말 형편이 없어 제가
부문당 비서 하다 보니까 아 또 부문당 비서를 하셨어요 모든 생활해서 일 안
나오거나 하면 또 가정 방문도 해야 되잖아 아 그렇죠 예가 보면 너무
한심한 거예 움직이지 못해서 다 원 식구가 이렇게 누워 있어 아니 먹지
못해서 줄 늘어져 있는 사람한테 일 나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없습니다 아 정말 이제 그거 보고 예
정말 동종이 안 가는 사람은 그건 인간이 아니죠 짐승들도 그런 거 보면
동종 하는거 집에 가서 있는 거 없는 거 몰래 또 마누라 몰래음 옥수수를 또
퍼내서 이거라도 좀 먹고 좀 심내 조금 애들도 좀 이게 탁해서 이게
빨리 먹어라 하고 또 그렇게 하면 또 고마온 거죠 그분들은음 그렇죠 정말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정말
간부들조차 일꾼들조차 뭐 직장장 부당 이런 굽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때 생각하면음 야 정말 예 너물 라죠 아
그러면 많이 굶고 배고픈 생활을 하셨겠네요 예외 없이네 뭐 나름대로
또이 장사 이렇게 좀 하다 보니까 해산해 뭐 물고기어 무슨 뭐 오징어
뭐 마른 것들 예 그다음에 수산물을 또 가수가 해산해 해산은 바다가
없으니까 그 그렇죠 그렇죠 또 그렇게 하고 중국 물품이 많이 나오잖아 그렇죠 그쪽으로 자주 여러 번
다녔어요 그래서 그걸 가져다가 또 항해도 가는 거예요 거기서 청량하고 바꿔온 거죠 옥수수 아니면 쌀 이런
걸 또 바다가 배급을 뭐 안 주니까 그렇게 그저 자리 불로 하는 거예요
통행 중은 없이 어떻게 다니셨어요 그때 당시로서는 저는 좀 통행 중도
뭐 뛸 수 있는 그런 뇌물을 주고 하셨어요 예예 아무 아무래도 또가 가다 보면은 뭐 당회원의 뭐 간부지도
원이요 그다음에 무슨 뭐 통보 지도이 아줌마들 다 데리고 가는 거야이 광산
내이 간부 아줌마들 그러면 나한테 보내는 거예요 그데 이게이 정명서 떼 줄테니까 어
우리 마누라랑 데려가음 그 제가 또 물건도 또 어떤어떤 것들 준비해라
아니면은 뭘 준비하는 내 그걸 해산에 가서 바꿔올테니까 이렇게 해가지고 그음 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내가
가져오면 다 또 그만은 큰 물건들을 준 거에 대해서 또 물건들을 다 또
배분해 줘요 예 그 그걸 또 가지고 가는 거죠 그니까 한마디로 당간부
마누라들 사업 파트너가 되신 거네요 뭐 그들도 먹고 살아야 되죠 그래서
그렇게 그죠 갔다 오고 1년에 그래도 두 번은 가야 돼요 그게 자 정말이
마대 배낭음 그렇죠 아마다 아시겠지만 진짜 커요 사람보다 더 커요 그걸
50km짜리 배낭도 두 개 시이고 또이 열차 승무원들 테 줄 또 뇌물도
뭐 사탕이 떡이요 뭐 이런 뭐 점심 시사 같은 싸가지고 또 주면은이
화장실 카에다가 다 싸 놓는 거야 승무원들이도 최고의 직업인 거죠
전투에 전투 고해야 되고 그래야 또 화장실이라 또 자리 내주고 가만 있음
예 그러니까 그 기차 안에 너무 사람 위에 사람이 타니까 화장실도 화장실이
최고의 고국 관이죠 아 아 그렇죠 그렇죠 그러니까 세수하는 그 자리 있잖아요 그게 완전히 제일 거걸 내을
주면 그 자리를 내 주는 거예요 예 예 그렇죠 그 안 주면은 짐 올릴 때 발로 거뒀다 막 자요 못 쓸게 하는
거지 그래지 그렇게 해서 1년에 한두 번씩 하면은 굶지 않고 그렇죠 것만
또 해서 먹으면 살아요 못 살아요 술은 또 술대 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그게 굴리면서 하다 보면은 꿈 남고 기간을 연장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
가에는 다 떨어지거든요 먹을게 그렇지 그렇지 그러면 지금 뭐 군복 하셨고
당비서 하셨고 예 그중에서 먹고 살겠다고 장사도 하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국으로 올
생각을 하셨는지 거기엔 또 어떤 큰 계기가 있을까요 네예 예 가 또
아까도 어 말씀드렸지만 당 간부들이 간부들 초당 간부들 또 직장 행정
간부들 그런 분들한테도 백업이 어떤 때는 안 가니까 그들도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니 그렇 그 부인들 하고 같이 식량 구입 간다고 식량 구입만
안 가면 굶어 죽어야 되는 거예요 예 뭐 특히 무슨 뭐 소급 비소라 그가
지배인이라고 서라가 이런 사람들을 죄 하고는 다른이 밑에 있는 사람들은 다
식량이 항상 모자라는 거예요 아줌마들이 다 장사에 나가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또 제가음 단천 쪽은
해산물이 있다 보니까 그걸 또 가지고 가서 해산해 팔고는 또 물건을 또
중국 물건을 사는 거예요 그걸 사 가지고 곡창지대로 가는 거죠 예 그분들은 또 중국 물품들을 많이
원하니까 무슨 뭐 날날이 수관이 뭐예 예 뭐 중국물건 강 뭐 이렇게 한번은
그전에 에피소드 에피소드 한 일은 마누라하고 같이 왔었어 해산으로
해산에 예 중국쪽을 바라보면서 아 저기 가서 돈 좀 벌고 하면 어떨까
하면서 이랬더니 집사람이 당신이 반동 같은 소리 하냐고 하면서 아 난리치는
거야 진짜 부분 비소 와이프 담네요 그래가지고 야 이게 마누라들
때문에 음 정치범 수형소 하고 관리소 가는 사람들이 바로 이것 때문에 갈
수 있겠구나 이걸 느낀 거야 야 마누라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되겠구나 갑자기 두려움이 음습 오는 그 얘기 해 놓고도 이게 공산당이요
그렇죠 근데 실제로 마누라 때문에 간 사람들이 있었어요 아 많죠 그래요
예예 마누라가 생활총화 때 얘기하는 거야 우리 남편이 이렇게 이렇게 돼서
내가 그걸 저지하고 응다 나는 해가지고 갈리 간 사람들이
정 많습니다 예 또 그쪽 분야에 계셨으니까요 그죠 사람이라는게
당신들에 호기심이 있잖아 저기 가서 뭐 조금 이렇게가 가져오고 우리가 잘 살면 뭐 별
다른게 없잖아 지금 얼마나 지금 배고프고 이렇게 당신도 이렇게
고생하는데 해서 말을 다 싹 돌려 버린 거야 그때 마누라가 아 그러면 됐고 하면서
그러더라고요 기를 여기 그다음부터 마누라를 안 데리고 왔어 잘하셨어요
효명 아셨어요음 그때는 두 번은 혼자
다녔어요 이렇게 하는 와중에 회사에서 물건들을 역전 담당
보원한의원 명태 그다음에 마른 그 낙지 있잖아요 북한에서 뭐 낙지라면
이런 것들을 한 손호 배랑 그래도 노대 배낭은이 가죽 간 거지 마대
이런데다가가 근데 그걸 다 앞서 예 했으니 아 사정 이얘기 이렇게 하는데도 안 들는 거예요 아
절반이라도 좀 어떻게 줄 수 없겠냐 막 이렇게 될 전재산인 거잖아
그렇죠지 남이 부탁도 받고 이렇게 한 건데 아휴 자마 나는 이제 본 저자
그은 발걸음이 돌아 앉 서더라 다 뺏기고 나니까 다 뺏기고 나니까 앞이 깜깜이 갑자기 캄캄해지는 거예요
불법도 아니고 먹고 살리고 장사를 한 건데 그전까지이 하 그 중국 학교들
그 장사꾼들고 계속 거래했어요 중국 가면 뭐 한 달에 얼마이라 뭐 또
이런 야기도 예 들었어요 이제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탈출하게
했죠 돈 벌어 가지고 난 나오려고 했어 이걸이 사람들한테 아 저기 다 빼앗긴 거 내가 빚을 갚아 줘야 되
빛을 갚아 줘야 될 거 아니야 내가 그냥 가도 되지만은가 가지고 가서
그분들이 얼굴을 내가 참아 못 보겠는 거예요 믿고 돈도 빌려주고 맡기고 했는데
그 마지막에 물건을 다 뺏기고 나니까 갑자기 생각이 빡빡해 탈출한다는게 또
목숨을 걸어야 되는 거같아 그렇죠 그쪽으로 어 회산 쪽으로 해서 그냥 넘었어요 중국으로 중국으로 무작정
아는 사람 있었 아는 사람도 없죠 친척도 없고 뭐 가서 뭐 죽게 하겠네 하고 그러면 혈혈 단신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무작정 너무 신 거잖아요 4월 19일이네 4월
20일이 어 날짜도 기억하시는군요 못지 못지 생일 다음으로 기억하죠 예
아 목숨을 걸고 한번 넘어보자 이렇게게 그래도 그때는 암록 강이
그니까 위원구성 심했어요 예 잠복 아지
섰으니 차에다가 군인들을 잠복 조들 다 실어 가지고 쫙 돌아다니면 잠복
코에다 떨려 줘 뒷산에 올라가지고 딱 바로 너머에이 군인들 그 초소가
있더라고요 예 들이 식사하고 식사하는 노래 소리하고 마춰 가지고 그런 소리
다 들으면서 자정이 되기만을 기다려죠 그 초소 밑에서 그렇죠 그 그다음에
삼비 탈은 완전 다 벌쳐 나무 숲이라는 거 하나도 없지 예 반반
하죠 밑에 다 보이잖아요 밑에서이 쭉 순찰하는 애들이 보면은 전지만 하나
가지고 이렇게 보면은 그 다 사람 개미도 다 볼 수 있고 그지 후레이 한 번만
붙이면 그래 하고 원래 감시 정찰병이 아니었 그
그 탁 탁 그네들이 다 배워 줬으니까 예 그렇죠 몸을 딱 숨겨 가지고 딱
잠 보고해서 다 아 여기에 잠복 자지가 어디 있고 몇 시간에음
순찰하고 이거 다 체크하는 거지 체하고 잠복 호는 몇 몇 백마에
하나씩 있구나 하는고 사람이 제일 피곤할 때가 1시에 2시 그 사이 그렇죠 돌라 떨어질 때지 그때가 제일
피곤할 때죠 그때까지 기다리 가지 애들 두 시간에 한 한번씩 한 시간에 한 번씩 하더라고요 차를 애들이 전
자게 코고는 소리가 다 들리는 거야 그게 더 안심한 거지 아 그게 또 철길이 있어요 그 통근 열차가 있는지
그니까 회사에서 화천까지 가는 통근 열차가 있더라고요 아 벼랑 높이가 한
4m 되는 것 같아요 깜깜하니까 칠흙같이 그 또 눈가루가 날렸어 또
어 4월인데도 예예예 밑에 안 보이니까이 가다가 마침 전주대가 있는
거야 예 이쯤에서 와서지면서 딱 그걸 아는 거야 아 한 이만큼도 없더라고요
딱 붙었구나 그냥 붙고 딱 내려왔지 그게 내려오니까 못 해도 45m
되겠더라고 예 다이 강으로 와야 들어섰죠 아 암도 강으로 옆에는 한
삼삼 복판에 예 강물이 얼음이 녹아 가지고 물살이 세더라 그요음 그렇죠
암록 강인데 갑자기 떨어지면 또 심장 마이 걸릴 것 같아 가지고 그렇죠 찬물에 갑자기 들어가면 안 돼 발부터
이렇게 해가지고 여기 잡고 예 어마 발을 먼저 잠각 준비 운동을 나름 하셨네요 그래 하고 탁 들어섰죠 뭐
기가 넘더라고요 아 그 사월이 얼마 추웠을까데 물살이 또 시험쳐 가지고 걷는 거야 건너자마다 걸음마 날
살려라 몸이 얼었을 거 같은데 그렇죠 추워 갑기 푸르스 푸릇 들어가자마자가
다 아 그때 하나님 합시다 딱 이런 소리가 나오는게 저 저절로 아 그렇죠
하나님 사 소 하나님 합소서 어어어
이게 아직까지 어원 되는 거는 내가 아니 하나님에 대한 이런 것도 모르는데 하나님 옵소서 왜 이런
얘기가 나왔냐 그요 그 믿음 생활 해 보니까 그니까 다 어렵고 죽어 가는
때는 하나님을 찾게 되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 그니까 그 신앙 생활하시는
분들의 그 간증을 들어 보면은 잘 먹고 잘 나갈 때 하나님을 만난 분이 없어요 그죠 다 바다까지 떨어져서 나
죽었 쓸 때 아무것도 안 보일 때 살려 주세요 정말 많아요 저도 그랬고
고기도 좀 나중에 나누기로 하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다음에 이제는 거기서 또 빨리 탈출해야 될 거 아니
그게 산 숲속에 들어가 가지고 이젠 거기서 또 추위와 또 싸워야죠 그렇죠
그러면 눈이 보슬보슬 내리는데 몸은 다 젖었고 렇지 그 양광도 쪽이랑
해산이 가까운데 그 다 백두산 밑에 지역이라 진짜 춥거든요 그 중국도 거의 인접 이니까 비슷한 날씨죠
겨울이나 같아요 거기서 또 잘못하다가는 또 북한으로 들어간다고요 방향을 잘못 잡으면 예예 그렇죠
그렇죠 예 날이 푸름푸름 밝길지 기다려야죠 그 예 띵 뛰기 하면서 어
또 다리가 아프지음 나무를 붙잡고 밀고 자꾸 운동해야 내가 올지 않잖아요 안 그
오어 죽지 계속 능선을 타고 그다음에 아 여기 방향 이쪽은 중국이고 이쪽은
북한이고 예 이런 걸 방향을 보고 판단하고 그다음에 중국쪽으로 쫙 하는
길 따라 갔어요 길 가다가는 공원에 채보 될 수 있잖아요 그 산을 계속 타는 거지 한 2 30km 갔나 2
302 그 정도 갔는데 어느 한이 한집 한 채가 있는데 그 좀 마당에는
그 돼지 한 3 40 말이 있더라고요 그 키우는 아 분명인 사람 있겠다
배도 고프지 밤새껏 뭐 떨었으니 그래가지고 그집에 들어 들어간 거예요
이제 그 집에서 더 이렇게 아 문 뚝뚝 두드리고 들어갔더니 정말도 모르니까 벙어리 흉내 내야지 아직
배고픈데음 아 다 통하지 않아요 아 저 사람이 지금 배고파서 나 좀 뭘고
달라는 거구나 예 아 들어라고 자더라 그분들은 한족이 더라고요 한쪽 애가
여섯 일곱살 우리 애보다 뭐 한 한 살 정도 그때 았을 것 같더라고요
그만하는 애가 있는데 거기 들어가가지고 바 을 꺼번에 한 그릇 먹고 또 성 차자 또 한 그릇 더
달라 아 다 먹고 아 더 달라고 그랬더니 또 퍼주는 거야 또 먹고 또
떠달라고 그래 아 배 달라하면 아 이거 안 된다고 또 이러는 거야 많이 먹고 또 예 그렇죠 갑자기 먹고 배
탈라 할 수 있 아 그래도 달라고 했더니 주는 거야 색으로 단번에 먹은 거야 아이고 세상 그 뭐 목고리 마리
안에 그분들도 알죠 다 저어 벌써 알더라고요이 탈북해 온 사람 그
걔들이 중국말 그 때 얘기를 하는게 초생음 밍타이 바그 바그 이런 얘기는
하더라고요 타이가 뭐예요 명태 어 명태가 많지 이런 소리란 말이야 아
북한에 명태가 제일 관심사였다 보죠 한국결 그쪽에선 거의 다 북한에서
넘어오는 수산물을 딱 접하다 보니까 예 제일 또 많이 났던게 명태자아요
겨 겨울에 나는게 예 또 북한 명태가 맛있어요 예예 그렇죠 맛시나 했더니
차 대요 물이 그래서 그 고기 맛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죠 그렇죠 예 맞아요 그래서 그 집에서 이틀밤을
잤나 이틀밤을 자고 거기서 또 느꼈어요 뭘 느꼈어요 아니 그
사람들이 돼지를 주는데 돼지이 아마 저 아마 현에 내려가서 식당들에서
받아오는 물 음식물인가요
돼 기름이 뜨 돼지고기 무슨 뭐 빼 다고요 돼지고기 이렇게 막 또 이런
걸 이런 통이 큰 통에다가 짜 그렇게 하고 데드 박 있잖아 예 콩 그거
기름 짜고 나온 찌꺼기 콩 데드 박 그다음에 옥수수 대다 봐 이거 칼
해서 물 붙고 그다음에 그 바다원 식당에서 바다본 그거 대지고이 예
그걸 보고 너무 놀란 거야 야 우리는 참 굶주림에 배급도 못하고 이렇게
살다 보니까 먹기위한 전투를 그렇게음 그 하다 보니까 여기 아
중국의 개 돼지들은 우리보다도 우리보다 더 잘 먹고 있었네 하는 걸
다 내리를 딱 치는 거야 세상 야 이게 뭐야 뭐가 잘 뭐가가 있다
뭐가이 잘못돼도 뭐가 잘못됐구나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걸 느끼고
아무튼 거기서 있으면 있으면 또 가만히 있으면 또 안 되겠더라고요 산에 가서 나무도 또 해 어 그다음에
돼지도 주면 나도 같이 따라 주고 그다음에 뭐 가마이다 불도 다 뭐 좀
도와줬죠 예 눈치 껏 일을 하셨네요 해해 드려야지 가만히 있으면 예 내가
고기 먹는 체면이 안 되는 거죠 거기서 있으면서 나무를 한 차 해 준
것 같아요 제가 산에 나무 찍어 가지고 그다 한
차를 싸놓고 아 그렇게 하고 이제 여기 더 있지 말아야 되겠다 하고
예음 아이 들어가라고 고양해음 저기네이 공안이 예 붙들어
간다는 길란 말이야 디에 고향으로가 하면서음 강제 국성이 있다 알려
주셨군요 붙들리면 어 저기 되니까 그냥가 니네 내 마 중국마을 모르다
보니까 제 짐작으로 애들이 이짝 방에 가라이 짝으로 이렇게 되는 거야 결국
이자은 들어가지 말고 다시 가라이 소리지 갈 네 예 그래가지고 나는
그대로 일단 넘었으니까 그냥 가야지 쭉 길 걸어 가는 거지 갈 때 밥을
좀 싸 달라고 했지 도중 식사 밥을 다 비닐 봉지다 렇게 사주 반찬하고
자기네 뭐 그래서 그걸 가지고 떠나다가 아무튼 뭐 고지 정점이 이제 이렇게 경사지 그쪽에서 슬 가는데
차가 가는 거야 차가는 하물 차가 오는 거지 그땐 벌써 어스어스 했어
어스어스 할 때 벌써 사인 벌써 눈이 거의 정점 안 올랐었는데 정점 오르기
전에 내가 그 도로까지 올라탔는데 차를 몰래 탄 거지 달리는
차에 왜 달린 거요 그렇죠 그렇죠 아 경사지로 올라가니까 그것도 북한 사람 잘하잖아요 달리는 차임에 달리는 거
거기다 무슨 광물을 많이 지었더라 광석들을 타 가지고 그냥
계속 내려가는 거예요 아 차가 가는 데까지 아이고 세상에 아 결국은 어
중국의 변방 국경 경비의 초소 예 거기에 하면 는 또 그 차를 또
적재함까지 올라서 다 이렇게 봐요 보는 거지 나는 제일 가운데음이 맛에
그 짬에 되겠으니 아이 그 사람들이 이렇게 그저 올 라까지 이렇게 뒤지진
않는데 오늘도 사람 있는가 없는가 이렇게 보더라고요 통과하고 그다음에
내려가다가 쭉 내려다 보니까 저기 아이 북한은 새까만 새까만 돼서 살지
않았어요 그렇죠 불 받아야 응 뭐 큰 도지도 아닌데 완전 불 받아 거지 어
밝구나 예 이전 내려야 되겠다 하고 딱 내린 거예 아 또 그 오기 전에 그 집에서
자기 신랑 작업복을 다 주는 거예요 중국 오이지 결국 그렇죠 도로에 무슨
뭐이 가건물 같은게 하나 판자로 뭐 지어놨는데 그 여인숙이더라고 보니까 여인숙 있데 사람도 없고 관리하는
것도 없고 아 그냥 폐어 건물이네요 폐어 건물도 아니고 침대도 있고 또
이불도 다 있 더라고요 아 그 내려가지고 거기 들어간 거야 이불이랑 다 뒤집어 쓰고 뭐 저기 했으니까고
내려와 가지고 음음 거기서 한 점 자고 그다음에 다시 시내 쪽으로
들어간 거야 예 그것이 바로 송강하 진이라고 우리말로 송강아지 중국말로
슝 주호 거기 가서 시장에 가는 거지 우리 사람들은 뭐 보통 시장 밖에 갈
때 있어 시장에 가서 뭐라도 또 더 먹어야지 그렇지 뭐 돈도 하나도 없고
여부도 있 아 김치 파는 아줌마가 있는 거야 아이고 반가워라 생김새도
한 적 같지도 않고 딱 조선 적처럼 응 얼굴도 무슨 땡구라고 슨 눈도
빼다네 또 김치 보니까 반가웠을 것 같아요 너무 반갑지 우리도 북한에서
김치가 반년 식량 아닙니까 그 당연하지 그 아줌마한테 간 거야
아줌마 그 나이가 그 나이 때가 50대 중반 정도 아마 제가 그때 때
40대 안 됐지 예 거기 가서 그 아줌마한테 예 물어본 거 그럼 우리
말로 하는 거야 어 세상 저말 하는 거예 뭘 물어봤어요 아이 나 이거
북한에서 왔는데 아이고 이거 뭐 어디 아 신 척도 없고네 아는데도 없고음
좀 이래서 돈 벌 때 좀 알아 좀 알켜 달라고 예 이좀 돈 벌어 가지고
예 북한에 가야 되 조선에 가야 되는데 아무것도 없어 가지고 그랬더니 아 좀
기다리라고 먹을거랑이 이렇게 해서 밥에다가 이렇게 해서 김치랑 이렇게
좀 아 주는 거야 우삼 천지로 이거 좀 먹고 있어라고 아이고 감사해라 그래 가지고 그분이 어디 이렇게
연락하고 뭐 자기 좋은 사람들이 아는게 또 있는가 봐요 그 아줌마를
소개해 주는 거야 근데 큰 어 백화점이야 상점네 상점 거기에서 아유
뭐 헌칠한 그 아줌마 하나 소개해 주더라고요 그분이 또 아 어다 또 전화하더니 또 웬 그 할아버지를 또
소개해 주는 거야 당분간 좀이 집에 와 있 있어라 그 할아버지가 또
사람도 없는 그런 집 아 예 잠시 일자리 잡을 때까지 있어라 좀 있어라
예 감사하네요네 그렇게 해가지고 정말 좋은 부들 만났죠 그래가지고데 그분이
또 돈도 조금 뭐 한 10원짜리 한장
아줌마도음 돈을 한 2 30원 준 것 같아요 예 한 10원짜리 한 선하게
준 것 같아 할아버지가 또 쌀도 또 가져왔다 한참 얘기하면서 자기도 조선
사람이고 예 항미 원조도 삼성 참가자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중국
군대가 이제 북한 6 62어 때 그쪽으로 개입해서 참전한 사람이라는 거잖아요 그렇죠 중국의 조선 청년들은
그죠 다 징집되다 거죠 예음 그래 하고 그 지역에 동북 쪽에 있는 그
지역에 있는 젊은 한족들음 참전시키자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아야
제일 선봉대로 각 부대들에 다 배치시킨 거지 그 조선말을 한족들이
가서 못하면은 번역해 주고 번역해 주고 또 인도도 하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했더라고요 자기에 그 한참 얘기 나누다가 그분은 가고
나는 거기서 이틀 밤인가 았나 그 아줌마가 누구 또 보냈더라 한 쪽을
보냈 어 여기서부터 한 그저 7 880km 가야 된다고 그러더라고
차하고 예 그분을 소개해주 그 그분 따라 차 타고 간 거야음 가서 결국은
그쪽은 일할 곳이 인삼 인삼 재배하는 곳이다 인삼이 뭐 정말 무 같아 아
그렇게 커요 정말 그 장배인 인삼은 워낙 땅이 좋아서
그러는지 진짜 뭐 인삼 맛이 안 나고 무만 산동성 쪽에서 일하려고 온 사람들
인력들을 해 가지고 그 사람들하고 같이 나는 밥만 한 거야 날 밥을 시키더라고요 그분들 계속 반만 해줬다
나는이 중국말 하나도 모르고 야 이거 도저히 이게 아닌 거 같다 아닌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아 안 되겠다 난 갈테니까음 그래 하려고 걸어서
나왔구나 무적 예 왔지 통하는데 그러니까 지금 나오셔 가지고 그 미리
그 연결해 졌던 아줌마를 다시 만나서 얘기 그렇죠 예 거기 또
찾아갔지 시장 가면 만나지 않아 그분 또 만나서 아 그 사정 얘기 얘기를
했지 그래 속사정 얘기 하니까 아줌마가 그러 좀 알았다고 자기가
알아보겠 그러는 거야 그래서 며칠 있다가 아줌마가 또 온 거야 예 이제
한번 거기가 보라고음 그 버스 타고 쭉 갔는데 거기는 조선족들이 있는 거이 발전소를
건설하려는음 그런 장소더라고 거기서 한 6 5개월 아 많이 일 하셨구나
산을 깎아내는 거야 산을 아예 깎아내고음 거기다가 댐을 지어야
되니까 산화의 흙을 뺏겨야 되는 거지음 나무를 처음에 또 광산에서
하셨으니까 그건 뭐 조금 했으니까 예 그것도 그건 일당이 하루 30원이
일이 힘든 거지 사장이 또 조선족인 활용 사람이더라 그분도 좋더라고요 내
그땐 이름도 이렇게 했으니까 철이야음 그전에 내 너 무서워서 내가 얘기를
안 했는데음 아무래도 여기 이전 있기 곤란할 것 같아서 그러더라고 아
그래요 아 저 아무래도 남쪽으로 가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라 하면서 그러더라고
아래쪽이 어디에 어 여기 며칠 전에 공안들이 왔다 갔다 아 야 여기 잘
생각해 봐라 예 야이 냄새 맡았구요음 뭐 이쪽 지역에는 항상 가까운 곳은
예 북한 보위부 애들이 계속 다닌대 예 그래가지고 안 되겠구나 하고 다시
날아야 되구나 그래가지고 아무도 모르게 그냥 그죠 대련으로 가게 된
거야 대련 보 다니면서 여기가 어딘지 표 그때까지만
해도 표만 떼면 되는 거야 한국과 한국 글로 쓴 교회가 있는 거야 오
그 뭐 어느 지역인지 뭐지도 모르지 조선 말이니까 들어갔군요음
탈북해음 이렇게 여기까지 이렇게 오게 됐다고 여기서 좀 쉬하고 어 저기
하면서 교회에서 또 아 좀 일 일을 좀 할 수 있게에 좀 해 달라고
그랬더니 교회 다니는 그 집사님 있데 그분이 조선족들이 일하는 건설
현장이지 그 형제가 다 모여서 저기 하는 중국말로는 따은 창이라고 하는데
공사 현장이야 약간 예 요런 산 이걸 산을 다 밀어 거기다가 아파트를
짓는음 그런 곳이지 그 한 일꾼들이 일곱 여덟 명 되나 아 어 제일
막내가 군 군 공병 공병 뭐 대대장인
이제 하는 것 같더라고요 예예 그렇게 하고 셋째가 둘째가 예 둘째가
그다음에 거기 책임지고 형제는 너이고 그다음에 다른 또 인력 한족들음 이
쓰더라고요 거기서 또음 밥만 한 거지 어 또 식모 어어 밥만 하라 밥
잘하게 생기셨다 가는 데마다 밥을 시키시 또 힘든 것도 안 시키더라고요
거기도 오래 못 있었어 어 공안들이 계속 검열하고 또 옮겨 가신 거요 예
공안들이 그렇게하고 3개월인가 두 달인가 3개월 예 야 공원들이 계속음
중국 말라 차에 하니까 검열 온다음 얘들도 탈북자들 안고 있다가 안고
있으면 자기들도 벌 겁 내야 되거든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를 안고 있다가 개식 시한 폭탄을 짓는 일이지
자기네도 일해도 지장 있고 자기네도 신경 쓰고이 그들이 품어 줄래 품어줄
수 없는 상황이지 야 여기 더 우리도 그래 더 오래 있을 것 같지
못하다 하면서 야기를 해 주더라이 돈 볼 생각보다 그 기간에 제가 느낀게
내가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겠다는 그 마음이 싹 없어진 거야 아 어떤 기래요 내가 저 북한 땅에서 김일성
테 정말 속해야 살아왔구나음 내가 눈을 가지고 있어도 볼 것을 못 보고
그렇죠 귀를 가지고 있어도들을 것을 제대로 못 듣고 내 입을 가지고도 뭘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말도 못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아 완전 속히
살아온게 그게 너무도 억울하고음 가족을 못 때려는 그
아들도 못 때려 그 자책감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그
가족하고 생리배 한 그 마음 그런 와중에 또 그때 남조선에 갔던 애들도
있더라고 걔들 보고 물어본 거야 야 남조선이 어떻지 야 남조선이 중국보다
많이 문명들은 얘기를 하는게 문명하고 달전 이렇게 얘기를는 거야 예 그렇죠
맞아요 또이 사람이라는 허심 있잖아 그렇죠 그래가지고 어 많이 문명하고
그렇 어 자기가 아마 기 친척 있서 번 놀라 갔던가 봐 한국에 그래서 그
야기를 하더라고요 예 뭐 시골도 뭐 여기 시골 같지 않고 다 도로 포장이
돼 있고 뭐 그런 얘기 듣고 또 그러 가고 라디오로 통해서 KBS 이게
계속 고트어 놓으면은 들어요 중국에는 뭐 라디오 이런 통제하는게 없잖아 그렇죠 TV 무슨
뭐 자유대로 뭐 그렇게 다 개방 어느 정도 개방이 됐잖아요 외국 영화
벌려면 보고 그다음에 뭐 우리 그때가 한참 이름 날릴 때야 다했으니 홀리
이저 홀저 홀리 벨트하고 경계하면서 귀 물어뜯고 그럴 때야 그 그 경기도 재미나게
보면서 중국에서 아무리 숨어 살아도 북한보다 낫네요 아이 그렇지 그렇지 벌고 다 보는 거야 그러 하면서 그걸
느낀 거지 벌써 자유의 맛을 불러 아 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
내가 정말 저 땅에서 저 땅에서 내가 정말 짐승화 가지 속해야 살았구나음
중국에서 세계 종세 다 그렇죠 알겠 오죽하면 내가 거기 있을 때음 나
다시 북한 가겠으 그 경찰서가 가지고 경찰 선지 파줄 선인지 뭐지 나이
북한 사람인데 저자 북한에 좀 보내 달라 아 그 정도까지는 했었지 근데
안 보내요 그 치도 않아 어 거기 또 중국도 이게 지옥에 따라 다른 건
봐요 어응 그 시골이다 보니까 그 성강 아에 있을 때니까 응 걔들이
추지 추지 이게 보니까 가라 가라 이런 소리지 그들도 내 말을 모하라다고 선생님도 못 알았다 그렇죠
저도 못 알아듣고 뭐 이젠 뭐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살아계 돼야지 그
대령까지 그게 오게 된 거지 또 거기 와서 너무 외롭고 고독하고 나에게는
이제 조국도 없고 사람이라는게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가지 개만도 못하다는
소리가 바로 김일성이 얘기한 소리 아니에요 아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네네지가 그렇게 말했고 너지가 그렇게 만들어 버렸어요 그지가 또 우리를 그렇게 만들는 거야 그래가지고
야 사람이 여기서는 뭐 이렇게 살 바에야 자결하려고까지 했어요 자살 아
뭐 아무 희망 게 없잖아 한번 죽으려고 자 때까지 올라가 거 그래서
중국소리 얼마나 독해요 한 세명을 갔나 50도짜리 세병을 마시는데도
정신이 더 말짝 말짝 죽자 하니까 우리 아들 모습이 딱 나타나는
거야 아들이 나타나니까 죽자는 생각이 아예 또 없어지는 거야 내가 어떻하든
살아서 만나서 만나야 되겠구나 우리 애한테 아들한테 정말 죄진 내가
아버지 애인인데 만나보지도 않고 죽을 수는 없구나 무슨 술을 써서라도 내가
꼭 반드시 만나야 된다 그렇게 그런 생각이 딱 오는 거죠음 그래서 아
다시 또이 사장이 나보다 형이지 한참 그보 이제 40대 50대 초반 거지
거 그때 처리야 아 여기도 한번 차해 왔다 또 공안이 왔다 어 또 차해
왔는데 야 내리가 북경 쪽으로 가지 말라 아 북경 거 더 단속이 심하니까
그때는 한번 대사관으로 가면 어떻겠는가지 가려고 이렇게 좀 생각이
좀 그렇게 될 때야 예 어 한국 대사관으로 갈까 남조선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으니까 중국에선 도저히 내가 국적을 따고 살아갈 수 이렇게 계속
피해 다녀야 되니까 쫓겨 다녀야 되는 신사지 탈북자 하면 무조건 부 성
되니까 마누라가 한국 가서 일한대 돈 본대 예 그러니까 또 한국 또 나보고 한국
가라고 계속 그러더라고 한국가 산다 예어 영사관이 대사관이 저 북경도
그래 다 안 되니까 상해 남쪽에 가라 거기는 좀 덜한가 보죠 진 이게
진입하기가 예 진입하기가 거기는 괜찮지 예 6년도 6년도 말이니까 예
97년도 하 12월 달이야 이제 간 거야 일한 것도음 두 달인가 석단
조금 돈다 다 주더라고 야 온이네 정도 어 자기 돈으로 이렇게 또
배표를 끊어 주더라고요 이렇게 간 거지 세상에 어 그때는 좀 약간 중국말 그지 그죠 때도 부었죠 북한
때도 뭐 중국말 뭐 예 한국을이 써야
잘 나와 나요 정도는 어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한 한국 영사관이 어디냐 아
아네 어이고 예 아 오경도 좋으신데요 뭐 좀 그 조선족에 있는 애들하고
계속 배운 거야 아 걔들 보고 물어봐라네 공원인가하고나이 아 상까지 해가면서
한 거야 아이고 걸리지 말아야 되겠다 또 그때까지 크게 무슨 표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거기까지 간 거예 그 사람들은 그 중국에서는 저를
한 사람이 이라고 하지 않고 자꾸 일본 사람인가 자꾸 물 그런 느낌이
있어요 북한 사람이라 보이는 거보다 낫잖아요 그쪽이랑 관계 없죠 관계
없지 내가 뭐 완전 오리지널 김해김 예 일본에 딱 총리 비입니다 지금
그래 되면서 상해까지 왔어 한국 와서 시장 한국 링스가 오케이 예 아 한국
영상로 가는게 북한 영상로 데려 가는 거예요 이런 바보가 있나 아니 북한 공화국기 딱 이제
회상이고 아씨 깜짝 놀라 가지고 아 거 아니야 아니야 부서서 한국
링스 이렇게 된 거지 얘도 또 그때 내가 처음에 얘 북한 영사관을 이렇게
그러면 내가 아니 근데 헷갈리 있데요 자주 같이 붙어 있어서
그 거기 같이 붙어 있어 그 좀 제발 좀 떨어뜨려 놔 좀 안 됩니까 야 아 그렇게 해서 실패한 사람이 있어요
실제로 그래가지고 우리야 거기만 들어가면 죽는 날 그럼요 끝나지이지
여기까지 어떻게 힘들게 왔는데 아 그래 가지고 어 너무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아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거의 반 년인데 이제 그죠 그래 하고 다시 전화번호 그때 켜졌어
내가 가지고 딱 전화한 거지 곧 전화번호로 전화 딱 했더니 나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인데요 거기 내 들어가기 싶다음 좀 만나 주시겠다고
한국 대사관에 그렇지 그렇지 그 대사관이 영사가 아니지 그 영보이 아 그러세요 하면서 알겠다고 아 오늘은
좀 시간상으로 안 되고 내일 한번 다시 연락 주세요 예 이러는 거야
그래서 오케이 하고 내가 잘 그냥 간게 아니고 전화 걸고 항상 가라고
그러더라고 그래야 가다가 보안도 테 걸리지 않는데 그래서 자기네가
보들한이 사람은 어 오라고 만날 사람이니까 보들한 걸 단 공안에 넘겨진다 그 맞아요 그런게 또
있더라고 하면서 다음날 거기서 공원에서 어 집이 있어 예 상해
공원에서 그냥 시간 보낸 거지 아 식당에서 뭐 밥 먹으면서 식당 한
12시까지 식당에서 내 쫓을 때가 식장에 있는 거지 예 갈대 없으니까 그렇게 하고도 춥더라고 상해도 겨울에
예 살얼음을 올리더라 습기가 원래 많아 가지고
아전 몸이 오그라들지 하룻밤 있는데도 그래가 아무튼 견뎌내고 다음날 아침
한 그저 9시 정도에 다시 그쪽으로 간 거야 들어가니까 맞아 주더라고 탁
들어가는데 문에 대한민국 태국 마크 딱 있으면서 대한민국 총상에
총영사관이 또 죽으러가는 거지 살려가는 건지 알게 뭐 뭐 우리 사람들을 반겨 주겠는가 어쩌겠는가 뭐
내 나를 또 저쪽으로 보내 주겠는걸 하나도 모르잖아 예 하면서 어떤 분이
아 반갑게 반갑게 맞아 주는 거야 세상에 나서 인사하고 아 뭐 원
그다음에 앉아서 뭐 한참 얘기하 아 기순 기순 의사 있냐 있다고 도저히
뭐 중국에선 뭐 헤쳐나갈 이런 요만큼도 없으니까 들리면 우린
북송되는 거 아니에요 예 아 참 따뜻하더라 그때 그 그 영사님
영상인지 뭐 모르지 혹시 신분확인 할게 있냐고 그 그분이 신분 확인할게
있냐 물어보는 거야 아 있습니다 예 근데 마침 어떻게 내가 방증은 내가
가지고 떠한 거야 야 그거를 거기까지 갖고 왔어요 왜 갖고 오셨어요 참 내
그때 와서도 내가 장군님은 배반 안 하겠다고 이런 생각도 있었지 예 그러나 야 그래도 나를 지금 신분할인
이거밖에 없는데 가지고 있어 보자네 이렇게 된 거지 비닐에 똘똘 이렇게
싸 가지고 그건 무 안 주머이 이도 무슨 아무 크게 짐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 간편하니까
자 그걸 내놨어요 보여줬죠 그쪽은 아무나 막 해수 못해요 안전 원나 보위 원들 라든가 신분확인 할 것 정
없을 때나 보자 그만 하지 예 아 회수는 절대로 못하지 그런 것도 있어요 예 그거를 보여줬더니 여기다가
이렇게 다 사진다 이렇게 찍고 그러시더라고요 오늘은 응 예 가서
점심 방까지 먹이고 예 어디 가서 좀 거처할 때 있냐고 이러 없는데 나가면
안 되는데 아 없어요 잠시 좀 나가요 나가 내일 만나자고 예 예 그러더라고
오마이갓 나가서 좀 어디 여관이라 그가네 여관도 알아서 그거 하라
하면서 돌만 주더라고 아 그때는 이제 시스템이 안 갖춰 줬었나 봐요 뭐 아
고맙습니다 하고 받고 뭐 돈 주는게 너무 반가운 거 아니에요 그거만 있으
그거만 있으면 뭐 든든한 거 아니야 다음날 아침에 또 전화했지 아
들어오라고 하더라고 들어오더라 딱 가서 같이 차다 갔어 예 그건
아직까지 기억나 은하 호텔 은하 호텔이야 은하 호텔네 상해 상해 뭐
그때도 얼마나 삐까삐까 해 예 거기 호텔에 간 거야이 한복을 입은 젊은
예 이쁜 아가씨들이 자고 서비스하는 그런 분들 뭐다 홀렸다 궁정 같지
아주 최고 좋은 데로 모시고 갔네요 아 김 선생 좀 여기좀 간다라고 검태
경을 낀 김 선생이라고 이제 나같은 건색 양복을
입은 김선생이 오니까 예 그분 이제 오면 그분 인도 받아라이 그러는 거야
예 아 떨려 왠지 예 내 죽으러 가는 건지 살아가는 건지 도서 알 가셔야지
그래가지고 한참 좀 있다 보니까 그분이 온 거야 태김 선생님이
오셨군요 어 금태 안경을 끼 아 한
나이가 집대음 그때 후반 정도 그 정도 되겠더라고 저도 또 어문 될 거
아니야 어디 가야 되는 거예요 하면서 아 그런 건 붙지 말고 좋은 되니까
자 따라만 오면 된다고 또 그러는 거야 어디로 뭐 밝히지도 알아 어디로
무슨 뭐 끌고 가는지 무슨 뭐 그러나 일단 운명에 맡겼으니 가야지 어전
따라가는 수밖에 없는 거야 그렇죠 차 그때 아우디 차야음 김선생 같이
갑시다 뒷좌석에 둘이 한 거지 그 그게 바로 간 곳이 장자강 치라고 예
중국말로는 장자강 스 장자강 수 어느 현까 내가 모르겠네요 이제 다
까먹었어 장자강 실라는 것만 알아 그러니까 어 그건
양자강이라고음 상해 쪽으로 흐르는 물 있잖아요 그게 뭐 황인지 양자강 있지
난 잘 모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강 옆에 있는 큰 도시지네 한국분이
운영하는 가로 카라오케 외국인들만 전용하는 거기에 또 뭐 조선족들이
있는 거야 근데 거기 가서 숙식하면서 그러 조금 있다가 그분들이 또 머무른
또 아파트가 있는 거 거기도 벌써 그분들이 또 다 안배 이렇게 준비해
놨더라고 집을 하나 이렇게 다 마련 했더라고요 참 고맙죠 그때까지 그런 생활 못 해봤는데 완전히 뭐
호화스러운 생활이지 북한에서 무슨 뭐 언제 뭐 그런 집을 그런 아파트 그런
걸 저기 했겠어요 놀랍게 만하고 한 한 달 정도 있었어
거기 있다 보니까 한국 사람들 기업인들을 많이 상대했습니다 거기는 외국인만 전형이 중국 국내 사람들은
못 와 한국 사람들 아니면 대만 사람들까지 한국 사람들이 거의 다
오지 거기 기업인들 예 와 가지고 앞에서 뭐 골프도 치고음 사업 비즈니스 하러 가시나 봐요 그렇지
그렇지 예 거기서부터 한국에 대해서 알게 된 거야 거기에는 책도 예
박정희 대통령이 떤 이승만 대통령이 또 기쁨 전는 모이고 한 다 있는
거야 책이 그 안에 그 안에 예 그 가라오케에 환장하겠다 그렇게 하면서
한국 사람들하고 또 대화를 하고 대화하고 어떤 대화 했어요 북한 사람이라 하니까이 사람들이 또 데리고
가가지 노래방 데려가 한국 사람들 노래방 진짜 좋아해요 놀기 좋아하고 어 그 회사
다 사장들이 뭐 어떤 사람은 기은 마이 마이용 거는이 양목살 창하는 그
사람이 나하고 나이가 또 동결이었어 근데 친하게 된 거는 그 사람 아버지가 아버님이 이북 사람이었어
엄마나 다행이다 엄마도 이북 사람이었어 야 그 이세지 결국은
그분은 그러니까 탈북자라고 하니까 더 너무 이게 천지고 예 그 사람
이상하게 살도 이렇게 만지이 손
있잖아 우리하고 피부도 똑같 네 아니 이상하게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반갑고 진짜 부모님한테서 만 들었던 아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죽으면서도
고향이나 가보지 못하고 죽는 게다 하면서 그 원을 남기고 갔으니까 그
이세대이 새들의 아들 아들의 마음은 어떻겠냐 이거 그렇죠 그냥 그냥
반갑지 신기하기도 하고 그 그때 동포에 아 정 동포의 정 세에게
정이라 할까 이런 걸 서로 느끼게 된 거지 예 이거는 민족의음 진짜 어른 예 어른 숨기지
못하구나 이것이 바로 그런 걸 또 느낀 거야 예 한국 노래 거기서 처음
배운 거야 어 유정천리 어 유정 천리라도 있어요 어 어떻게 하나요
가련다 가려 떠나려다 어 어린아들 어린아들 두고 떠난다 문 자아 그 좀
약간 슬플까 노래죠 쓸쓸하네 거기서 그 기부자들의 책도 보고
기쁨조 책도 보고 대한민국의이 기초석을 넣은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그 책도 읽으면서 가장 깨달아 졌던게 뭔가요 완전 완전음
소가 살았고 그들한테 우리 개대 짐승만도 못 하게
살았구나음 일제 식민지 36년간 했지만 나는 김일성이 테 36년
간이나 내가 속해야 살았구나 음 그하고 기쁨죠 그게
기쁨죠 나도 몰랐던 그렇죠 예 정말이 백성들은이 다 굶어죽고 이렇게 했는데
호화로운 정말 짓거리는 다 하면서 백성들은 다 궁고 예 아니 전시
상황도 아닌데 300만 원 공개해 주겠다는게 말이 되냐고 예 한국 최군 읽으면서 어떤 걸 느끼셨어요 정말이
사람들이 건국의 이승만 대통령 대통령에 대해한 건 짧게 나왔어 박정희 대통령에대 많이
나어어야 이렇게 했으니까 결국은 김일성과 박정희 하고 정치적인
대립에서 박정희가 승리하지 않았어요 완전히 산업 혁명화 한강의 기적을
올려요 그 책을 보면서 북한에서 설리마 운동 시작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세마 운동 있잖아요 비교된다 그때음 우리가 군대 나갔을
때도 세마 로데 계속 존개 됐어요 예예 앞에 무슨이 이런 양철지붕 같은
것도 하고 그런 얘기 들었어요 운에서도 예 그 저에 다 허의 선전이고 앞에서
이게 보이면 다 우리들을 속이기 위해서음 심리전에 한 일부라고 우리는
그렇게 들었었지 근데 그게 아닌 거지 진짜였던 거지 그게 진짜 정말
각권마다 새마 노 해 가지고 나라를 부흥 예 그 부흥시킨 한 일안에
일부에 속한 거지 예 그래갖고 산업 산업 혁명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한
거에 됐어 체적으로 안 나오지만 대략적으로 이렇게 나오고요 아니
거기에 어떻게 기쁨 자라는 책도 있냐이야 에피소드와 일도 하나 있는데
그때 나 말고 하나 하라바이 한 분이 되시는 분이 있고 예 북한 사람 후에
왔어 그분 그다 하고 그 노래방에 예 한 아가씨까지 왔어 아 이하로 처녀가
돼지 뭐 새끼 돼지를 가지고 장사 왔다가 전국에 자기 말로는 예 돈
벌어 가지고 간대 자기는 예 아 그까지 온 거야 그래 근데 어 하 남자수 갈 생각은 요만큼 안 하는
여자야 그래가 거기서 애들이 야 그저 김정 김정일 동물이 말이야 거의 좀
인민들 좀 어 잘살게 해둬야지 뭐 하면 이렇게 이야기 웃으면 그
아가씨가 그때 뭐라 그러 나도 깜짝 놀랐어 뭐라고요 오 김정일 욕 욕하지 마 마시라요 하면서 야 거기 와서도
아마 금방 온가 봐 예 그랬겠죠 살다 보면 그걸 느끼면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지 그 금방 금방 이렇게 데로와 어디 어디도 들리지 않고 저도
그랬어요 저도 탈북한지 3일 만에 중국에서 조선조 그 브로커가 너네
뭐가 제일 먹고 싶냐 그어 나는 계란 삶은 거 좀 시커 먹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너무 기가 쳐서
너네는 그 김정일이 그 터 썩어 져야 된다 그 얘기 듣는데 너무 화가 나서 싸웠잖아 저도 처음에는
아마 그와 같이도 그런 케이스인 거 같아요 그 이게 들었으니까 그게 솔직히 자기라서는 완전 거부감 느끼게
돼 있어요 그렇지 얼마 시인으로 모셨는데 저는 뭐 갑자기 뭐
조선족들고 만나서도 그들이 뭐 뭐 김일성을 하거나 김정일려 하거나 그렇지 않았어 그 점차적으로 내가
인식한 다음에 내 도 이렇게 보고 그렇게 되니까 이전 그런 말이
자연스러운 거야 내가 속해서 당연하게 욕 욕하겠지 그 더 용하고 싶은데
나는 저계 때려 죽이려 아유 저 민족의 저어 웬수 그렇지 하나를이고
살 수 없 진짜 그들은 우리 민족의 웬수야 정말 같은 자기 인민들을 뭐
망둥이 새끼 망둥이 제새끼 다 잡아 먹듯이 백성들을이 평화 시기에 300만원이나 굶어 죽인 저 저 그냥
굶어죽는 것도 못 알아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수 영서 갖다 뒤집어 놓고 그것만 생각하면 아직까지 막 흥분이
되고 막 열받죠 막 원성이 높아 가지고 그전 같으면 더 이랬어 예
그런데 지금 좀 약간 좀 자재가 어 감성을 믿음 생활하면서 그 감성을음
예 잘하셨어요 예 거기 그러면 그렇게 있다가 한국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신 거예요 거기서 예 싫은 그 기업 회자
이뭐 철철 강 회사 큰 회사 거기 갔었어 거기도 뭐 회자 여기 부두가
생기면 우리 보내 수 있게 뭐 하 이런 거야 오 예 전영 부도가 생기는데 어 차다고 배하고 가면 돼요
가까워 뭐 이러는 거야 그거 좀 기다리래 그 계속 기다린 거야 대사관이 그 그뒤로 굽힌 거예요 아예
아니 가끔씩 가끔씩 왔어 어 영 영사관 잘 있냐고 하면서 그 또
만나서 또 뭐 식사도 같이 하고고 그러다가 영사가 바뀌 버린 거야
97년도 아 예 해가 지나니까 그러니까 김영삼 대통령하고 김
김대중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거지 예예 야 그다음에 안면 수심이 언제 봤던
거야 가들이 대통령이 바뀌니까 대통령이 바뀌니까 영사도 다 바뀐 다
바뀌 버린 거야 대사관이 그 그뒤로 꾸긴 거요
아예 아니 가끔 씨 가끔씩 왔어 어 영 영석 잘 있냐 또 만나서 또
식사도 같이 하고고 그러다가 영사가 바뀌어 버린 거야 97년도에 아 예
해가 지나니까 그러니까 김영삼 대통령하고 김 김대중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거지 야 그다음에 안면 수심이 언제 봤던
거야 가들이 대통령이 바뀌니까 아니 그 용산은 바뀐 건 상관이 없는데
지금 한국 와야 되잖아요 근데 모르는 척 했다고요 그래 간 거지 다시 아니 뭐 일자리라도 뭐 조금 어
좀이 계속 저기서 어떻게 좀 그 어간에 좀 일도 할 수 있겠죠
어떻게좀 여기가 너 뭐야 딱 하면서 딱 이렇게 그다음에 이렇게 된 거야 엄마 나 충격이다네 깜짝 놀라 김대중
대통령이 올라서면서 완전히 완전히 지금 다 바뀌 버린 거예요 바뀌 버린 거지 그다음에 취급 안 하는 거야
세상에 왜 그래 그때까지만이 탈북자들이 정말이지 초야 예 시초 예
탈북이 시초를 지 그래가지고 야 이것도 믿을 때 못 되구나 엄마나
그다음에 내 알았던 한국 회사 거기야 사장네 나는 그저 놀기 저기 하니까
회사에 좀 일할 수 있게 해 달라 아 그래서 거기 회사에서 예 이런 거지
일본 다 기계는 다 일본 기계야 세타 짜는 거 있잖아 실로 옷을 만드는
그런 건 그거를 물건을 제대로 떠주고 예 생산된 거 제대로음 딱 예 품들
어서 딱 받고 예 얘들이 중국 애들이 그거 가지고 실 가지고 엄청 장난하는
거 삥 뜯는거 봐 그러니까 사장이 그걸 하고 너 요거 좀 해라 그래서
그거 주고 받고 라고만 딱 한 거지 한 1년 하다가 회사가 부도난 거야 자기 유해가 돼 본사가 유해 데갈 수
없으니까 예예가 있어라 하다가 정영 커 적이 하면 자기한테 와라 그니까
완전히 우리 밥이다 이런 야기 했지 허물없이여 대화할테니까 그양반 하고는
예예 그럼 와라 예 하면서 전화번호 딱 주더라고요 아 거기 있다 한국
들어오신 거예요 다른 또 중국 아는 그 회사에 저기 했는데 거기에서도 안
받겠다 안 받는다 그 탈복 자면 그래서 뭐 나가 자로 이제 부두에
나가서 일하는 거 보다리 싸는 집예 그 부두 나가서 한국 사람들 그때 배타고 계속 들어왔으니까 한 주일에
세 번 들어왔나 두 번 들어왔나 배가 국 사람들 이 보면서 무슨 생각 들었어요 그 여행온 거잖아요 여행이라
자유지 결국은 그러니까 그들은 여권을 가지고 정말 그게 얼마나
부럽던지 우리 북한에는 그럴 수 있어 마음대로 그들은 장사하고
자유스럽게 어떻 잘 입었어 나 한국 사람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잖아요 어
그런 걸 말했는데 무조건 한국을 더 동경하게 된 거예요음 그 사람들의 뭐
보고 예 사람들이 일단 너무 편안하고 따뜻하 음 그렇지 그리하고 중국에서는
이제 국적을 가지려 가을 수 없잖아 예 그래가지고 그것도 많이 노력했어요 그런데 이것도 다 불법이기 때문에
걸렸다 하면 이것도 다 취소된다 이렇게 되더라고 뭐 그때만 해도 이만
이행을 주면은 한다 했어 근데 그것도 갈 자리다 거예 그래 가지고 뭐 뭐
그만한 돈도 없었고 뭐 한국 과야 된다네 사실 그 배를 타려고 했어
1년에 딱 태풍이 한 번 보는데 예 그때는 배가 안 가는 거야 하룻밤
먹는 거야 그때 밤에 원래 타려고 했었단 말이야데 탈북이 탈북자 한 명
알게 됐지 그것도 우리 같은 사단 같은 고향 있던 사람을 또 엄마나
중국에서 거 위 중가 양모 살 창이라고 그 친척이 그거 있더라고 조카가 운영하는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더라고 이렇게 돼서 어떻게 돼서 하다 보니까 알게 된 거야 그 양반하고 가자 해가지고 이렇게는데 또
형이 온 거야 근데 형이 무슨 야 오늘 그 날인데 저녁에 타자 이동
페리에 붙자 하고 그래 이동 이동 패리 앞 대가리를 해서 저짝 후면 얼로 다
준비했지이 갈구리 봐 하고 발리 갈구리 봐죠 그것도 올다이 뭐뭐
이렇게 하려고 탁 떨어졌는데 그 형이 완전 돌 헤엄도 하나도 못 치는
돌덩어리 어떡게 그래 가지고 야이 형 내보이고 우리 둘만 붙자 자기는 또
안 된데 형 놔두고 못 가겠 다네 형이 또 약간 살짝 바람이 살짝 온
거야 예 몸이 풍이 그러니까 완전 덩어리야 돌덩어리
날 꽉 잡고 그다 놓지도 않는 거야 같이 지금 어 하도 그저 요만한 처부
부 튜브들 다 준비했으니까 망 조이지 안 그 죽을 뻔 했겠네요 아유 그래
가지고 포기하고 그래 계속 거기서 3년 있은 거지 난 어서라도 간다
이제 내가이 정말 여기서이 돼지처럼 이렇게 살지 못하게하고 확실하게 내가
남성 가서 편하게 살겠다 그런 마음고 그다 떠난 거지 어디로 떠났어요 근데 개하고 가자고 했더니 자기 안 가겠대
가족 데려와 가지고 가져가고 같이 오겠대 그 어쩌겠어 그렇지 혼자라도 가셔야지 나는 그래도 혼자라도 가겠다
력 후에 따라오라 이렇게 하고 나는 나대로 그때 한 분이 있어 또 또
하나 한 신 50대 중반 되는 또 그분 하나 하나 있었어 그분도 또 만나 가겠대 예 예 가서 간 거야
권명이라고 예 예예 권명 많이 오죠음 그때는 다 그쪽으로 권명지 간 거야
예 권명 가기 전에 정조 우에서 예 아바 그 아바이 하나 어디 간지 또
없어 사람들 많은 데서음 없어졌어 아이고 그 아바이 시였는데 시였는데
예 잃어버린 거예요 아바이를 잃어버린 거지 아이고 자기 어디가 베겠다 얘기 어져야 될 거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
다 표를 다 끊고 가니 그래 가지고 아 거기서 딱 차 가타 노래까지 해야 되는 거야 기차 루트랑 어떻게 될 다
이야기 설명 들었지 거기까지 가는 거 어디서 갈아타고 그래가지고 둘이서 그 사람 이제 아바이 찾다 가지 둘이서
간 거야 그 차를 타고 명까지도 간 거야 경이라는데 경에서 또 이제는
그게 결국은 그쪽에서는 미안 마로 붙는데이는 매콩강 상류에서 북단으로
붙어 야 근데 쉬운 것 같은데 힘들죠이야 온산 산을 오전 내것 오를
때도 그렇게 사니 그렇더라고 그 이제 지형 이렇게 보면서 하루 종일 했는데
고자리 올 때가 고자리 올 때가 있는 거야 정말 자유를 찾기가 이렇게
힘들군요 그 거기서 오다가 한 사람 또 달아놨다 자기는 이쪽으로 가겠대 어 젊은 친구 어 이쪽으로 가자 다
그러는 거야 아니야 걱정하지 마라 그쪽으로 가면 저 잘못된 거야
이쪽으로 가자 내 말 들어라 하고 자기 깨 절 그 그 가지 어느 저
중점에서 만난다 하고 표시 해는 거야 그 하는 이렇게 간 거야 뭐 만났어요
가는 벌써 달아나 가기 위해서 아 피결 있구나 아 형 나 더 못
가겠어음 말은 못 해서 그렇게 한 거야 그런 애를 우리 아빠 도에서
만났다 대박 야 어 어떻게 왔대요 걔는 몽골로 또 왔더라고 중국에 내
있던 내가 들어 거기 있던 그 집에 가서 내가 잘 아는 사람들도 만나서
그돈도 좀 얻어 얻어 가지고 또 그래서 한국에 왔구나 이렇게 해가지고
몽골 쪽으로 간 거야 그럼 그렇게 가서 어디로 통해 한국 들어오신 거예요 태국 태국으로 태국이 얼마나
머물렀어요 태국에 한 6개월 있었어요음 태국 이미 그시
감옥 남민 수영수 거기 있다가 그다음에 2 3일인가 3일인가 하니까
영상관에서 오더라고요 그 신분 하기 할게 가가고 그거 안 주더라고 어
그래서 못 찾았어요 못 찾았지 어 잘됐어요 그 잘난 거 없었 그 뭐 그건 뭐 그래도 기념으로 있잖아 어
아 그렇지 예 예 아 그 갖고 와서 팔아도 돈이 되는데 그 신분 하기는
그거밖에 보일게 보 있어 그 가지고 또 뭐 교회에서 또 성경책도 가져다주고이 저 뭐 성경책 속에다
어떤 뭐 태국 돈이 뭐 뭔 빨라 거기서 돈이 있어야 돈이 있으면 거기서 또 다 사먹어요 또 대한민국
여건 예 받았어 그렇지 예 마음이라는게 만냥 드디어 이때까지
그 고생 한 6년간 중국에서 고생하고 끔에 그리던 결국은 이젠 내
조국이 진 그래도 갈라지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가 있겠어요 예 그렇죠 예
하나는 저 우상숭배 독재 체제 하나는 자유민주 체제 이렇게 대립되고 우리가
여기에 올 수 있었구나 그렇지 감사해서 받고 혹시 우셨어요 울
당연하게 야 내가 그래도 야 그 여건이 겉 나를 이제 뒷받침해 주는
최고의 백이 되는 거잖아요 그 근데 그 여건을 뭐에 만 줬어 예 주지는
않고 예 아이씨 잠깐이니 그냥 그래 하고 나는 이미그레이션
그냥 공항으로 차타고 그냥 가나와 비행기 처음이야 사라 생전에 머리에
털 나가지고 비행기라 소리 많이 듣지 않았어요 어 그 비행기가 한국 비행기
알게 뭐 아무튼 비행기라는 그 자체가 난생 처음이니까 그냥 오는 거야 정확히
며칠 날들로 비행기를 타셨어요 2 2002년 3월 1일에 우리나라
해방되는 날이야 그 영혼이 3일절 응 3일절 3월 1일에 딱 들어선 거야
아이고 자 그 숫자도 이상하게 딱 우미는 날이 들네 전 조선 사람이 다
나서서 해방을 외쳤아요 에 내린게 오전이야 야 이게
무슨 궁전이음 너무 잘 거인가 예 정말
뭐음 뭐 말로 표현을 못해 응 말로 형영화 평원을 못 하겠어 어 세상에
그하고음 너무 고맙고 예 감사하고 정말 나 말고도 또 몇시
여시 또 되는 거야 어 혼자 줄 알았네 벌써 한 여러 명 되는구나 열명 우리
뭐 이쪽에서 다 나왔더라고요 버스하고 탁 들어오는데 야 산을 보니까 소나무
숲 쫙 이정 도어가 쫙 고속도 도어
예 야 무슨 저 무슨 태국이 뭐 중국이야
있을 때하고 그게 더 천국 같지 야 어떻게이 이럴 수 이런 나라가 다
있냐 그게요 맞아요 그다음에 지금 보 국정원으로 국정원 국정원에 조사기
조사하는 사람들은 벌써 어 얼마나 다정한지 예 아 김소장님이 강중 TV
국정원 홍보대사 해야 돼 정말 조사하는 것도 각팀 선생님
저는 예 정말 조사 받으면서도 그게 너무 감동되어 예
선생님로써 사람 대접을 평생에 내 이런 인간 대접을 내가 응 받은 거
있음 정말 내 계속 울었어요 아 그 사람들도 CCTV 뽑고데 그 울음을 주최할 수 없더라고 너무 감사했어
조사에 다 성실하게 다 임하고 일주일 받고 하나원 딱 나온 거예요 하나원
나와서 겨울에 뭐 좋다는 데는 다 데리고 다녀 또 시장들 예 남산 꼭
데리고 가잖아 남산도 남산 그다음에 그 어딘지 잘 몰라 그 시장 같은데도
데리고 가고 그렇게 하고 뭐또 뭐 자기 사 주고 싶은 뭐 양복도 뭐
어떤 양복 어떤 어디 있겠는가음 이거 그냥 아직까지 그게 있어 그래 우리 아버지도 그걸 갖고 있어요 있는
사람들이 뭐 얼마 없죠 없지 뭐 뭐 당장 먹고 살 저기도 뭐 없는 거 또
하나 생활하면서 저 현대 조선서 거기다 보여
주더라고 뭐 배 만드는게 세상에 기가막 그지 뭐 이름 말할 수 없어
특게 또 잠 싸움까지 다 보여줘 어이구야 우리 때는 다 박정희
대통령님이 산 오파 어떻게 잘 일고 했는가 하는 거 예 같은 김일성 과구
그 시기에 이제 남가 북에 대통령이었던 그렇죠 어 한쪽 너무너무
한심하고 저건 마지막에 다 백성들 100억도 못 넣어져서 그러다가 아마 그게 죄가 돼서 그런지 죽고 또 그
아들놈이 해내는게 싹다 공개 죽이고 더하고 예 이제 손자까지 나서서
지랄이니 그러니까 뭐 더 비교라는게 안 되지 비교가 안 되는 거지 이거는
게임 자체가 안 된다 게임 자체가 안 된다 그렇지 벌써 그때 2000년대
초반에 개미안 된음 북한이 어디 그런데 있어 없죠 북한도 뭐 뱀 안
누려고는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우리도 북한에 있을 때 뭐 신포 뭐 수산 사업 소요 무슨 뭐 이런데 조금
친구들 있다 보니까 많이 다녀 봤어요음 세 그때는 뭐 세 세계 1이
조선 조선 산업 그렇죠 는 몰랐지 아
이래서 세계 리가 바로 이런 거구나 예 그걸 보고 느낀 거지 아 제대로
나라를 잘 찾아왔습니다 예 하면서 내가 잘
왔거나음 진짜 이게 바로 진정한 나의 조국이라 그나 그렇죠 아 이걸게 정말
긍지가 그래도 정말 어렵게 한국으로 찾아오셨지만 우리가 좋은 건 좋고
어운 건 어운 거잖아요 어려움은 없었어요 야 그 당연한게 있지요 예
어땠어요 일하는 과정에서 제일 좀 어려움이 있었다 할까
사람들하고 문화 수준 차이 생활상 차이 예 그 우리 한국 사람들하고
대화하다 보면 그 사람들 대화에 이거 얘기를 할 거가 없는 거야 끼지를 못하 안 껴 주는게 아니라 낄게
없구나이 얘기를 할 거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그저 일하는 그 외에는 내가
어렸을 때 무슨 뭐 우린 거기서 어떻게 놀고 무슨 북한 얘기 할래 할 수가 없는 거야 너무 수준이 없어서
아니 저 김일성 밑에서 아니 뭘 자랑하기 뭘 있어 응 대체 거자 여기
와서는 그거를 자랑도 할 수도 없고 또 대화할 이런 명분도 없고 대학거리
자체가 수준이 높아요 일단 뭐 임 열면 투자 뭐 정치 얘기를 또 마음대로 하잖아요 여기는
그 판이 좌판 이것도이 처이 이해가 안 되고
예 야 이딱 지혜빈 집안 같기도 하고 정치가 그래도 제일 민감한게
우리 탈북자들이 든요 무슨 일하셨어요 어 큰 차 이지어 예 아 트럭운전
트럭운전 그거 하면서 대한민국을 더 잘 또 알게 된 거예요 어떻게 더 잘 알게 됐어 야 당진 현대제철 포스코
현대제철 다에 삼성 핸드폰 공작들 저이 공단 다가
보게 된 거지 그다음에 삼성 수수원 삼성 그 핸드폰 그런 공장들 다 가본
거야 그거 걸고 큰이 뭐 제철 회사들 인천 현대제철이 동국제강이 진짜
대한민국 산업에 있어서 심장 핵심만 가보신 거네요 완전히 그 특히 큰
차들은이 제철 공장들 다 가야 되는 거기서 철근이 그다음에 철판 롤네
그거 그다음에 후판 그다음에 HP 건설 현장들에 필요한고 중공업의
필요한 납품할 수 있는 철 자재들 뭐 이런 이런 큰 공정이 다가는 거야
그다음에 창원에 K9 자주포 K2 4천 FA 그때는 FA FA
50 경전투기 공장이 쫙 있을 때야 와 깜짝 놀라 거 그 군사무기
아니에요 치 다 철이 필요한거 예 그니까 그걸 차에 치르고 다 날라 날
다 날라주 헐 대박 그다음에이 고흥 나로 나라호 우드 센터에도 자
자제들도 치고 거기도 가가 야 아 여기 미사일 이게 사울님 내가 바로
여기로 오나 야이 예 우주선 싸울 이래도
금지 감이 있는 거야 지안 나도 그래도 조금이나마 내가 늦게 왔지만
다 이루 그래가 동 기분 예예 아 정말 최고의
게스트입니다 예 그래가지고 그걸 내 제일 느낀 거야 한국은 진짜 발전하려
할 수 없어요 그이 기초를 낳았다게 얼마나 대단합니까 박정희 대통령 경보
속도로 그 이게 특별히 탈북민들이 박정희 대통령 이것도 뭐 좌냐 우냐이
얘기가 아니에요 이게 김일성과 동시대를 달렸던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니까 이게 비교가 안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죠 근데 또 대한민국에서는
뭐 독재를 했다 이래서 이런 또 오점도 남겨지고 했는데 어쨌든 시대적 배경에 따라서 저희가 이제 느꼈던
거를 말씀드리니까 뭐 자다 우다 이런 얘기하지 마시고 우리가 그 산물을 먹고 살지 않습니까 군사고 9이나
이런 거 보면서 어땠어 북한은 무기가 어때요 북한이 아 무리져 게임이 안 되는
거죠 우린 적 보고 알아요 북한의 무슨 뭐 포병 전력 무력 군단 사단
연대 뭐 대대 포병 무력이 어떤 무력부 까진 무력부 아진 몰라도
웬만한 군단 무력 배치 상황 포백 무렵까지 땡크 무렵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그렇게 놓고 볼 때 그 장비하고 북한의 장비하고 이건 북한의
장비는 구닥 달이고 예 소련 그 구닥다리 그거래 면서요 아 당연하지요
다 러시아를고 그 그걸 또 모방해서 만든
제품들이지만 이렇게 하려면 얻어 만든 거야 쏠려고 하면 쏠려고 진지에 벌써
나왔다 하면 벌써 나아와 때리는구나 하지 여기 다 이제 인공위성으로 딱
예 컴퓨터로 그래서 인공의 딱 잡혀 찍어 가지고 에다가 그 좌표를 주는데
그러면 애들이 뭐 이걸 무슨 뭐뭐 이거 예 아 안 하잖아 그다음에
포탄도 또 자동 아니야 K9 세계 명품 K9 아니야 내 이거 군사 아마
예 탈북자 치군 군사 매니가 아마 저만큼 아는 사람도 별로 자 K9
K2 배 전자 K1 다 개량했다 그다음에 현재는 미사일도 뭐 현무 현무 현무
2 현무 6까지 아 들어가야 현무 6는 만킬로 벗어납니다 사거리가 아
그렇게 많이 나가요 아이 그렇죠 와 전무 파는 다 동부가 뭐 중국이야 뭐
어 러시아 연해주까지 뭐 뭐 하방까지 뭐 다 사거리가 쭉 다돼 있고음 거의
한 5,000km음 5,000km 6,000km 저는 군사 무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진짜 굉장하다 생각이 네요 예 그게 또 지하벙커
같은 거 북한이 무슨 아 다 땅골 뚫고 뭐 한 발이면 예 끝나요 끝나는
거예요음 뭐 핵기지 뭐 어디 뭐 땅골 속지 감춰 놨다 정말 이제 뭐 북한
가지고 뭐 견주는 거 아니죠음 북한하고 뭐 대항하려고 하는 게임이 아니고 아 이젠 또 그렇게 앞서
보시는군요 아 그렇 북한은 당연한 거고 그 앞에 것까지도 우리는 보고
있다 대한민국은 훈이 있지 않습니까 예 중국의 인해전술 애들이 투입하면서
때 분단이 된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아마 그때 당시로서는 아마 다 해병이 됐어 아 해방되고 기어도 이겼고 아
그러다가 결국은 중국이 예 개입하면서 개입하면서 중단된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 이런 강대국들의 그것까지 보면서 군사 무기가 개발이
됐다 이렇게 평가을 하요 대한민국의 제 7기동군단 기계화
아시아에서 예 아마 세계적으로도 그래 미국은 내놓고 기계와 전력은 넘버원이
탱크 그다음에 K9이 기계와 군단이 있어요
칠 기계와 군단 예음 이제 개인만 하면 이제 너네도 이제 간주하겠다
적으로 예 북한 애들이 자꾸 하는 거는 국내 용이지 자기네 싸워서
절대로 승리하지 못한다는 거 이제는 아는 거예요 뭐 배가 아프고음 뭐 무기가 구닥다리 가지고 뭐 핵 있다고
핵 있다고이기는게 아니 예 지금은 예 예 여기 뭐 대한민국은 핵보다 더
핵은 없지만 핵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다라는 걸 알아야죠 세계에서 제일 강력한 그런 탄 탄이 있다라는 거
아예 무지막지한 핵 탄보다 더 무슨 집속탄이라는게 있어요 이건 핵이
아니니까 그래서 미국하고도이 집속 탄에 대한 문제 이거를 못 하게끔 미국이 방해도 많이
했고 그러나 이거 핵이 아니다 우리를 보호하게서 저 상상이 안 돼요 평양 같은 아이고 중국의 무슨 뭐 상해요
무슨 베이징이 무슨 그거 한방이 끝나는 거지 이게 결국은 대한민국도
결국 작전이 있어요 고슴도치 전략이라고 너네 우리를 이제 건드리면
결국은 아 대놓고 얘기를 하지 않지만 이건 제 생각이에요 그러면 우리도 가만 있다 그러면 한치 날 이제는
우리에 대해서 간섭하지 마라 진짜 군사 강국이라는 거를 이제 이거 타고
이거 운전 틀어 가시면서 느끼셨 그 야 정말 우리 선생님은 진짜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또 이렇게 대한민국의 발전 상이라 그가 또 감사함 이런 것들을
다 체험하신 거 같은데 예 맞습니다 예 그러면은 여기서 너무 죄송한데
북한의 아들이랑 어떻게 되셨어요 그거는 어제 한 7 8년 됐나 예
그때 너희 동생하고 연락도 하고음 본도 보내 주고 예 집사람도 거기
딸이 있어 또 그 딸한테도 좀 어 지금 여기 사시는 사모님 딸이 북한에
있는데 거기도 보내줬다는 거죠 그렇죠 그렇죠 좀 그러서 아드님이랑 아예 못 만난 거 못 만났죠 보고 싶겠다 아
당연하죠 그 자기가 데리고 있대 말로는 그 통화라도 좀 시켜주지 안 데리고 온 거야 국경 연선으로
이쪽으로 나와야 나와야 연락이 되잖아요 그렇죠 그러까 그때 네가 데리고 나와 봐라 그랬더니 자기 혼자
떨거다 본 거야음 아 그걸 차 몇 번 시 하셨구나 데 한 세 번 정도
했는데 다 실패했어 한 3년 한 3 4년 있다가 아 병으로 북한에 두고
오신 사람 애는 어디 갈 때 있어 그때 측량이 가는게 뭐 형제들이 뭐
자기네 형제들만 먹고 살기가 힘든데 그러면 그 아들은 그냥 니 방랑
생활한 거지 못 찾은 거지 그 동생이 그거 찾으려고 하잖아 어디서 찾은 거야
그거 무슨 감옥인 수영지 거기다 거기까지 갔는데 같은 이름인데 그거 가지고 갔는데 아니더 그렇게하고 또
어디 또 갔는데 거기 있더래 원인지 뭐인지 하는데 거기 가서 찾았다
하더라고 그 자기 집이 있는데 가까이 뭐 데리다 놨다 통화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그게 한 7 8년
8년 전인가 그래 하고 코로나 그다음에 다이 차단되고 저들이 저 뭐 폭풍군단
뭐이 쫙 뭐 경비 이렇게 해 가지고 삼엄하게 해 놓고 그런 것 또 다
찾아내 놓은 거지 아유 그러면 너무 보고 싶죠 아 당연하죠 북한에 뭐
정말 내 자식과 형제들에게 줄게 뭐 있습니까 주님의 복음을 전할 그거밖에
없지요 그들을 구원할 길은 복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걸라고 기도하고 계시는군요네 우 항상 그죠 울면서
그럴 때 거죠 계속 눈물만 흘리는 거 정말 예 우리 김남일 선교사님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또 이렇게 그 많은 정착 과정 중에 일도 하시면서 또 지금은
선교사로 이렇게 일을 하고 계신데요 정말 첫회부터 어 우리 김남일
선교사님의 스토리를 들어보신 분은 다 아실 거라 생각을 합니다 정말 어렵게
대한민국으로 오셨는데 아들을 만나는 해피 엔딩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그거는 아직까지 이루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교회가 진짜 많거든요 저도 대한민국에서 정착 잘할
수 있는 원인 중에 하나가 신앙이었다 거 같아요 하나님이 붙들어 주셨고
그리고 근본적인 마음의 치유가 되고 또 우리가이 세상 끝나는 날에 죽어서
없어지는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간다는 걸 확신을 하고 신앙 생활하시는 국민 분들이
천만 명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저 땅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이
나라에 사는게 감사하고 우리 또 선교사님 님 그래도 인생 뒤늦게
아내분을 그래도 만나셔서 서로 위해 주시면서 잘 사신다니 그나마 감사하고
위로가 되고요 아 아들분 생각하니까 참 저도 엄마된 입장으로서 너무
마음이 아픈데 만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제 뭐 할 말 다 하셨어요 맞춰야 되는데 이제 마지막에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하나님께서 언젠가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시면 그때까지 기다리면서 믿음 안에서네
복음을 전할 준비를 잘하고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예 그런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예 아 감사합니다 여러분 신앙이 없으신 분들은 아 저또 갑자기 무슨 얘기
하나 이러실 수 있는데요 어쨌든 봐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우리 김남일
선교사님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아주 디테일하게 성심 성의껏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너무 고생하셨어요 아 예 이제 통일 때까지
건강하시고 우리 또 자주 또면서 사시죠 아 예예 강 강도사님 늘
건강하 예 저는 전도사는 아닌데 이제 찬양인도 가고 간증집회 가니까 저를
보고 자꾸 전도사 님이라고 부르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어쨌거나 감사하고
시청해 주신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여러분들이 건강하시도록 저도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감 l
[음악]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