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희 풀영상1부] 한국 마트에서 넋을 잃고 감탄한 탈북 새내기, 수박도 데굴데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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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56 views Jul 1, 2024 #강은정 #탈북 #북한
간증, 강의, 강은정TV 출연 문의:
kang22tv@gmail.com
#한국#강은정#가족#탈북#효녀#가수#강사#MC#북한#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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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people
Geummi
Naeri Do
Jihan
San E
South Korean rapper (born 1985)
Leeseo
Na-Eun Go
South Korean singer and actress
Daesung
South Korean singer (born 1989)
Sulli
South Korean singer and actress (1994–2019)
Kim Shi
GEU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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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 Castles
The Green Orbs
Sand Cas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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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마음은 아닌데 기 세계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아직도 김미성
개새끼라고 말하면 더더다다 털려요 이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니까 밤에
지금 밥을 해서 먹고 자는데 한 잔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밤에 지금 밥을 해서 먹고 자는데 한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하염없이 자는데 안고 울고
울고 떠 울고 그래가지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은정 t 은정 있니다 예 또 새로운 초대손님을 모시고
이렇게 여러분을 찾아러 왔습니다 아주 한국에 온지 3년 정도 됐고요
뜨끈하다 못 때 아주 따갑습니다 오 어서 볼게요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항해도 사연에서 한국 생활은 지금 3년차로 정착하고 있는 이입니다
오 밖 안 됐네 언니 예 우리는 좀 이렇게 알고 지냈으니까 여러분 말
편하게 놓고 자매처럼 대화를 할게요 괜찮지 언니 괜찮아 갑자기 뭐 전대말
수는 거 그렇잖아요 맞지 내가 워낙 친하고 좋은 사람이면 우 사람 아래
사람 말고 간벽이 없이 호물 없이 이렇게 지내는 걸 내가 엄청 좋아했는데 그것도 또한 조금 그
배울점이 있더라고요 여기 와서는 그래요 요 어 내가 아르바이트를 잠깐
할 때 북한 분인데 중국에서 어 한 22년을 살고 왔대요들의 기수는
우리랑 같아요 같이 들어왔죠 그래서 일자리를 좀 소개해 달라 해서 한 달
반 정도를 하게 됐어요 그 언니가 나보다 두 살인지 세 살인지 위예요
그래서 내가 말을 처음에는 저저 저건 이건 하다가음 아이 그러지 말 그 우리
형제 자매처럼 지내자 음 응 나도 말을 내려놓고 어 언니야
언니야 하다가 이제 일할 때 언니들이 좀 여러 명 있었어요 있으니까이 언니
저 언니 하게 됐어요 근데 항해도 사토리가 이언니 조언니 그니까
사하는 차원에서가 아니고 그냥 언니가 조 언니가 이언니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 있어요 우리 항해에서 살 때 지역 사네요 그 사토리를 썼는데 어느
순간 에 심각해서 왜이 언니 저 언니 하냐고 버럭 성을 내더라고요 언니
그게 왜 그렇게 성이 이렇게 화가 날 정도냐고 언니를 없수 본게 아니고
낮춰 본게 아니고 나는 언니를 너무 이렇게 치는 감으로 애정의 감정으로
원이 대야도 이렇게 했어 하고 저도 그다음부턴 그렇게 안 했어요 아
북한의 그 지역마다 차이도 떠나는구나 해서 그것도 조금 내가 배울점이
있더라고요 네 아 그러면이 언니가 그랬단 말이야요 언니가 그랬단
말이야이 말투가 이제 기분이 거슬렸다는 거잖아요
황해도는 말투는 굉장히 내가 북한에서도 다른 말투로 알고 있어
가이 그레이 이렇게도 얘기하더라 질 꾼다고 그래요 저기 충청도 말처럼 예
뭐 어드레 짜니 저랬 짜니
이랬니이 개간나 개가 나야 이렇게 하지 않고이 개가 나야 그러니까 하도 답답하니까
우리 항해도 사람들을 띵이 아고 하지요 띵도 너무 누려 터졌다고 말하는
게너 너무 누려 누려서 형지지 나간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되는데 형지가
지나간다 하니까지가 다 지나간 다음에 이야기를 하니까 너무 누리다가 근데 황해도
사람이 진짜 순수해요 순수하고 대부분 착해요 그음 낸 그 시기를 저금
걸치면서 사람들이 살기가 힘드니까이 신경은 저금 올라갔지만 그래도 번신 착해요 아
맞아요 여러분 어 우리 금미 언니는 저번에 이제 브이로고 보셔서 아실
거예요 우리 이은영 원니 또 한 명 땡하고 착한 황해도에서 온 이은영의
꽃피는바다 전봉 농사지은 탈북민 언니 있잖아요 그 언니 동생이든 제가
언니의 집에 터 현장을 촬영하러 내려갔다가 우리 금미 언니를 알게
됐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서내 우리 금미 언니한테 반해 버렸잖아요
부지만이 아주 그냥 예 느릿느릿한 말투가 제 마음에 쑥
들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또 오늘 보시게 됐는데 한국에 와서 언니
만나니까 어땠어요 한국에 도착해서 언니를 만나서 언니랑 한 달 정도는
즐겁게 재미있게 생활을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불안감 북한에 다 두거운 아들 걱정
지금 밥 먹으면서 우리 아들은 밥을 먹고 있는가 어쨌든 행복이 무엇인지
갈피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이 마음에 불안이 점점 그 어기 시작하더라고요
어 해서 무언가가 항상 여기 이렇게 덩어리가 이렇게 달려 있는 느낌이고
이런 그런 생각이 계속 생각이 들어오니까 그런가 모든 그 북한
탈북인의 그 여성들이 겪는이 거충이긴 하지만은 내가 아들을 두고 와서
이렇게 밥을 먹고 살아도 되는가 하는 그런 생각에 이게 행복해질래 행복해질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도 정착 가정이든 하지만음 그 작년도 뭐 제작년도 다
최금 내가 나아져요 왜냐면은 아 여성은 약하다 하는데 머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 는을이 한에 와서 내가 새기게 되면서 주저앉아서 울고 불고
내가 외롭다고 술을 먹고 나중에 이제 아들을 데려오면 나중에도 그렇고 또
우리 아들을 위해서 또 열심히 살아야 되겠구나 하는 그런음 그 생각에 예
어느 순간에 일어나게 되더라고요 그고 또 술전 많이 안 마셔요 많이
끊었어요 기대감에 또 발전된 사회를 보면서 잠시 행복했지만 왜 자식을
두고 왔으니까 그러면 자식 몇 명이었어요 저는 그
둘이었는데음 마지가 아들이 이거 데려온 자식이 딸이에요 그러면 아들을
두고 온 거예요 예 아들을 두고 왔어요 왜 아들은 왜 못 데리고 왔어요음
역시에요 다 데려오고 싶었는데 이게 생사를 어떻게 뭐
담보할 길이 아니라서 하고 북한 분 은 아마 알 거예요 제가 이야기
하면은 항해도 사이라는 거는 그 양광도 오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국경을
좁혀 보지도 못하고 하니까 그 두려움이 더 많은 거 같아요 하고
여거 어린 아이를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나다 두아이다 잘못되면 어두 가랴음
뭐 생각이 많았어요 저희가 그 아빠 엄마가 당간 부여서 그 버는 걸 그
안 봤어요 당만 믿으라고 했어요 본다는게 이제 점을 말하는 거죠 미신 미신 미신을 번다 이게 뭐 점을 번다
이런게는데 우리 아빠 우리 엄마는음 당 간부였다 부여 가지고
16급 당비서 있는데 그 16급 당비서 아는게 그서 한 직원이 한
4천 정도음 그다음에 그 가족까지 하면은 그서 그 이상음 그렇게 데리고 있는 당간부
4천명의 직원을 갖고 있는 단부 김일성 그 원수님 모시고도 김님
촬영도 했고 아직도 김일성 원수 님이에요 말이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마음은 아니지 예 마음은 아닌데 그기 세계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아직도 김미성 개새끼라고 말하면 더더더더 돌려요 이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니까 자꾸만 김일성 보벅 되다 원수님 먼저 나가는
거예요 그니까 마음이 안 그렇다는 거 여러분 아셔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제가 동네 잘하시는 그 작은 엄마라고 그러니까 엄마
아빠를 되는 분이 있었어요 근데 저를 많이 잘 그렇게 좀 보살펴 줬거든요
제가 엄마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다 떠나다 나니까 두 아이 어린 거 거
네살 차이로 요거 금방 아기 나온 아기 없고 네살짜리 선에 둘고
걸리면서 다니면 그 장사하는 거 보고 너무 안스러워 하더라고요 저를 하더니 내가 너
친딸은 안 뭐 친딸처럼 덜받는 못줘도 그 작은 엄마가 돼서 많이 덜받는
주겠다고 이렇게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해서 너무 감독 먹었죠 그때 이렇게
하고 제가 그 한국을 어게 될 때 목숨을 걸고 나오는 문제니까 그때
의지에서 토론해 볼 데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어머니를 찾아갔어요
그 어머니를 찾아가서 처음에는 말을 못 했죠 7월 경이었는데 다섯 번
찾아갔어요 그 집을 다섯 번 정도 찾아가서 다섯 번째 만에 내가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에는 그 국경
연선에 시집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국경 연선에 시집이 더 많은
남자 더 많은 남자가 나서서 시집을 가는데 두아이다 안 받아주는데 난 두
아이다 데려가고 싶다고 이렇게 이야기했어 거짓말을 했어 말 못하고 응 반응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래가지고 했는데 둘이 합쳐서 살면은 그 노를 이뻐해 주면 그
아들도 이뻐할 거라고 이렇게 하면 저니 지지를 해 줬는데 그 지지의 힘을 받아서 중국 간다고 했어요
그다음에 뒤집어 가지고 하니까 어 뭔 살이야 이래서 그 돈 봐주는
엄마가네네 중국가요 했어요 그 국경 연선에 그 건너 중국에 가요데 예예
아들을 하고 따라가 가 둘 다 데리고 가면 받아 줄까요 하고 물어봤어요 하니까 아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어디
이렇게 신실을 보자이 점을 버자 하면서 어 운수를 버자 하면서 우리
아들를 점을 보니까 길수가 안 나온대요 우리 아들이 어 길수가 하고
우리 딸하고 저하고 길수가 나온대요 하면서이 가서 자리 잡아서 나중에
아들을 데려가는게 어떠나 물어보더라고 서고 해서 가 갔다고 하니까 아 가만
있더라고 해서 중국까지 또 지지를 받고 그다음에 한국 간다고 했어요 제
이찍네 한국가다 하면서 내가 사실은 우리 마 언니가 그거 사연을
이야기했어요 행불이 됐다가 이렇게 돼서 만나서 날 지금 한국으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저도 여기서 너무 살다가 지쳐서 한국 가려고 하는데 두
아이를 무조건 데리고가면 좋겠는데 하면 좋겠음 고 하니까 널 내셨어요
그다음에 막 널 내더라고요 파이 아 안색이 해지더니 널 내더라고 한국 간다 한참 한참 말을 못 하더라고요
하더니 응 나보고 지지한 대요 가래 응 지지하는데 가는데 뭘 하냐음
무조건 성공만이 살길이라고이 작은 엄마가 너 가는 순간부터 물 떠 넣고
12시마다 밤 12시마다 물 떠 넣고 빌게 대요 울었어요 안고
펑펑 울면서 근데 엄마 두 아이 다 들고 가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적을까 하니까
금야 내 말 들어 봐 요게 중국인이 저 중국 재중 동포나
일본 재중동포 많이 살았지 하더라고 그래서네 많이 살았어요 그 사람들 살다가 많이
없어졌어 그거 어떻게 간 줄 아니 처음에는 부부가 둘이 도망가고 어떤
사람들은 혼자 도망가서 가족을 다 가서 삼 님 자리 잡은 다음에 다 끌고가 이끌어서 다 가서 만났대요
생사의 길을 알 수도 없는 길을 두 아이를 선목 잡고 가다가 애도 크지도 않고 어린나이에 12살 여덟살 둘리를
데리고 가다가음 만약에 문제가 생겨서 걸리면은 어떡 하겠냐고 차라리 나중에
데려가 들어서 살아서 다 같이 만나는게 더 좋지 않겠냐고 그렇게
가라고 어이 엄마는 지지는 하는데 이 세명의 그 길가 다 안 나온대요
그래서 아들이랑 다 같이 가면은 잡힐 수 있는 수가 보인대요 그래서 요니
때는 진짜 그런 말을 하나도 안 믿었거든요 근데 그때는 내가 그 말을
믿게 되더라고요 왜냐면은 그 아시다시피 항해도 사이라는 것은 국경
연수하고 접해 버린 것 전 내륙에서도 안 잖아요 하니까 그 말을 믿게 되고
이거는 어린 아이들 생명을 는 거라서 안 을래 안을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음
엄마 말을 믿겠다 하고 결심을음 운영이 그 데리고 오기로 딸만 데리고
오기로 지금 마음을 먹고 있는데 그동안에 지금 브로크 이제 전화를 오면 또 나라 했거든요 해서 그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니까 딸도 운영이 언니도 운영이라 좀 헷갈리실 수 있는데 그래가지고 은영 언니가
이제 한국에서 조직을 해서 브로코 선 다 해서 이제 전화가 온 거네요
그 전화를 기다리면서 진짜 그 아들 앞에서 울진
못하고음 밥을 해서 저서 매기면서 학교에도 그 아들이 체육
선수가 선수였어요 그때 그 체육 단에 가서 훈련할 때 밥 쏟아
주면서음 정말로 많이 더 울었어요 하염없이 많이 울고 울고 울고 떠
울고 그 전화가 와서 지금 떠나야 될 그 날이 다 됐어요 지금 그날이 돼서
밤에 지금 밥을 해서 먹고 자는데 한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못 먹고 새벽에 그 사연에서
그 국경 연성지구 차가 시에 떠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새벽 3시에 다래를
자는 걸 잠에서 제대로 깨어나지도 못하는 걸 깨어서 대수 눈 것만 떼고
세소 시켜서 데리고 나오면서 아들은 역시 하염없이 자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근데 내 그전에 내가 그 아들 보고 엄마가
장사하러 가니까 더 많이 벌어서 가지고 올테니까 엄마가 또 장사 돈
벌면서이 아픈 거 치료도 하고 해서 좀 시간이 걸릴 거야 이렇게 이야기했거든요
하염없이 자는데 안 울고 울고 떠고 그래가지고 딸만 데리고 나와서
그 그 를 탔어요 컨테이너를 타고 계속 이틀을 2박 3일을 가니까
양도를 덮쳐 겠는데 계속 울었어 옆에 사람들은 모르죠 왜
[음악] 오는지 그렇게 해서 울고 울고 하면서
양광도 왔는데 양광도 더착한 내가 해 더착한 그 해 그 달이 6월
말이었어요 그런데 6월 말에 그 집을 부어 그 집을 더 착했는데 둘 밤
자고 강을 건너간다 하던게 억수로 비가 오는 거예요 엄청 억수로 비가
와 가지고 비가 일주일 얻던 거예요 제 압록강을 건너야 되는데 예 그러니까 압록강 물이 막 또 불었어요
그럼 못지 그러니까 건너려고 보니까 물이 너무 물살이 세고 물이 불어서 못 왔어요 그래 가지고 또 물이
줄기를 기다리는데 이제 장 망가진 거예요 6월 말이었으니까 7월 달
들어섰으니 그래가지고 장맛 때문에 뭐 더고 뭐고 그 장마철에 또 8월 달에
한번 그 건너려고 강을 건너려고 비가 언지 한 보름 동안은 안 오더라고요
물이 좀 줄지 않았나 싶어서 가려고 또 준비를 해 가지고 밤에지 나섰는데
운영이랑 지금 그 한 대명 서진 손잡고 힘을 같이 합심해서 발도 같이
내밀고 여기서 한 명도 넘어지면 안 된다 한 명 넘어져서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그다음에 선 넣으면 다
떠내려 간대요 어떡해 지금 압록강을 지금 첫 발짝을 딛고 두 번째 발짝을
딛고 세 번째 발짝을 짓는데 벌써 우영이가 도내리 가는 거예요 살 어떻게 그다음에 오른도 물살에 그냥
이렇게 절반이나 이렇게 넘어지려고 하고 해서 떠내려가는 거를 그 블러그가 붙잡았어요 안 되겠다고
살자고 하는 건데 죽겠다 하더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더로 나와서 더로 왔어요 그런 면에서 네네 해서 실패를
한 여러 번 했어요 한 네번 정도 했어요음 그래가지고 넘은
날짜가 10월 달이에요 이상하게도 10월 13일 어머니 돌아가신
날에음 돌아가신 날에 그 넉달 지간에 그 아시잖아요 국경 연선 옆에는 넉달
동안 그 헤도 사람이 고개를 잊지 못하잖아요 3일에 한 번씩
다른면 하고하고 너 어떻게 견디어 그니까 엄청 산에도 숨고 강 밭에도
하면서 그 옥수수밭 녹 옥수수밭 그 녹지가 시간이라는게 진짜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그 지간에는 정말이 생각도 갈피갈피 야 이거 포기할까 만약하게
포기도 못해요 가지도 못해요 항해 더해서 지금 일단은 이제는 난리가 난 거예요 내가 없어졌어 녹사리
대단하니까 난리가 난 거예요 나를 참느라고 그 남편은 없어도 시집
편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이만 하나 넣고 나왔으니까 어 남편은 없었어요 남편은
새 했어요 그래가지고 이거 가자니 가지도 못하고 우리 애는
데리고 나왔지 오리는 또 그 아이는 또 하나 두 두고 나왔지 거기서도 엄청 생각이 너무 많았어 트가
엄청나겠네요 그래가지고 하루하루 보내는게 정말 내 정신이 아니었어요
야 그래가지고 지금 엄청 머리가 한 점씩 이만큼씩 빠져요 지금도네 지금도
이만큼씩 빠져요 아 그렇게고 많이 늙었어요 그 지금 어는 기간부터 날
까지 야 그 신경전에 많이 늙었어요 어 아니 이쁜데 아니요 저 그 주름
하나 없었는데 이제 주름도 생기고 시모리 깔도 생기고음 너무 많이 늙었어요 그 마음을 여거 한마디로
말을 다 표현을 못 하겠어요 말 알 거 같아요 알 거 같아 이게 희망 고문이 그든 깨달아 놓고 그러면
그거간에 언니랑 통화했어요 통화했어요 점점 지금은 더 뭐 국경 연선의
경계가 그 감시가 더 더 심하고 그렇다는데 그때 당시도 심했어요 내가
올 때 당시도 지금 3년 됐으니까 응 그때도 심했는데 지금은 더 심하다니까
그때 우리가 전화하다가 뭐 꾼다 소리도 없이 그냥 꾸고 산으로 도망가야 될 그때였어요 왜냐면은
전화를 집에서도 못 해요 집에서 하면은 그 무슨 탐지기가 돌아가는데요
도청기 어 도청기가 이렇게 그 더 시부터 농촌까지
계속 수 로 24시간을 감지한 대요 그걸 하다가 딱 걸리면 잡는데요
그래서 그 전화를 한한 통을 하려면은 진짜 이렇게 깎아지는 벼랑 같은
사내를 그 정수리까지 올라가야 돼요 해서 전화를 하면서도 계속 밑으로
내려다 봐야 돼요 왜냐면 그 사람들이 더라고요 나는 잘 모르는데 브로크 전화를 해주 때 그 사람이더라고 쫙
탐지기 차는 지나가는 걸 알더라고요 짐작으로 아는지 모르겠는데 탐지기 차가 딱 그 더에 딱 우리가 전화하는
그 개선 정도에서 딱 지나가면 전화를 딱 꼬 버려요 그러니까 또이 상대방의
또 언니는 석이 터지고 잡 잡혔나 이거 뭐 잡힌 뭐 꾼다 뭐한다 없이
딱 꺼 버리면서 꺼버리는가 덩신 박대를 뽑아 버리더라고요 전화를 다
죽이라고 기키 하고는 우 또 산으로 덜렁덜렁 뛰어야 되는 거예요 밤에
세상에 그래가지고 한 몇 번 통화를 하고 그렇게 지금 뽑아가지고 지금 화를 끊 그 거진 20일지나 거진 한
25일 정도 전화를 못했거든요 왜냐면 그 주변에 그 우리 때 당시 그
군대가 청하고 청화를 가지고 도망갔어요 아 어디로 도망간 거
모르죠 그러니까 그 경계가 엄청 심한 거예요 그러니까 전화를 못 하고 다
돼서 분해에서 또 다 감춰 놓더라고 어디다 나가서 감춰 놓고 우린 또 산에 올라가서 숨어 있고 왜냐면은 그
가택수색을 하니까 그래가지고 전화로 한 25일 정도를 못 하고 아이고
이쪽에서 그 난리가 나 난죠 그래 가지고 25일 지나서 그 전화를
하니까 왜이야 전화 하냐고 막 그래가지고 또 그 전호 사연을
간단하게이 이게 이야기했죠 하고 이제 그 전화하다 그냥 그 딱 꼬 버리면은
좀 좀 상태가 안 좋아서 우리가 좀 딴 데로 이렇게 숨어 있으려고 하니까
그런 줄 알라고 그렇게 이야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 걱정을 하니까 그렇게
여러번 하면서 진짜 그 많이 애가 났어요 전화를 못 해 주는 나도
얼마나 막 그 느낌을 알기 때문에 항해도 사령부터 그 넘어와서 한국
국정원까지 오는 그 과정을 진짜 탁 진짜 요만큼도 빼지 않고 했으면 야
이건 진짜 훈련된 간첩이나 할 수 있는 그런 일이겠다 하고 나는 생각이
되더라고요 진짜로 압록강을 철조망을 뜯고 그 와서 그 진짜 철조망 쳐
놨어요 응 두고 두 개로 쳐 놨어요 그래가지고 원래 없었잖아 응 없었는데
그게 생겼더라고요 누가 뜯 그 브로크 이렇게 뜯어 가지고 또 이렇게 다
열어주면 개구멍 럼 뜯어요 많이들 못 뜯어요 많이 뜯으면 또 다시 원상 복을 못 하니까 그것도 원상 복고
해놔야 돼요 원상 복고 해놔야 되더라고요 아니 우리가 다 너 무사이 이거 구멍으로 나왔으면 그냥 확
달아나면 되는데 저건 왜 저렇게 하지 하고 넘으면서 살짝 물어봤거든요 경비
국경 경비대 그 그 경비원들이 이제 덜 다가 그 구멍 뚫린 거 있으 곧바로 걸리 추격 한다고 바로
추적하니 응 바로 추격해 오니까 거 다시 자리 안 나게 원상 복걸 해놔야
된대 우리가 안전하면 철저하게 전기는 안 들어오나 봐요 우리 때는 전기까지
안들어 전기가 없어요 그 색감에 음 그말로 암 감요 그때 그 나라에서 실
때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구경 손이라도 좀 불을 주지 쪽에는 막
반짝반짝하고 울긋불긋 화려하고 요거는 그야말로 색감에 진짜 불빛 하나도
없어 그거를 또 이렇게 볼볼 겨 가지고는데 옷이 걸쳐도 상관 하나 그서 겉장서 달려 나가래요 또 서리
내면 안 돼요 그래가지고 지금 딱 천점 망울 그 뜯고 내려와서 그 있는
데로 왔는데 압록강으로 지금 들어섰어요 지금 건너려고 지금 다 준비를 해요 우리 그 어린 아이한테
딸한테 또 강조했죠 이미 전에 집에서 다 강조는 했는데 그 양광도 그 암록
강물이 시율이면 오은 물이에요 이제 물에 들어가면 이제 널에서 또 서리지를 수도 있고 아이라서 이제 또
가다가 이제금 모자를 다 썼어요 모자를 다 쓰고 얼굴을 암 드러내
놓으라고 그다음에 먹고 을 다 대고 딸한테 지금 은영아 그 이제이 강을
건너가다가 너 이제 그 집에서 그 로하기 그 북한은 럭
하이라고는데 럭 하이 드라마를 봤지 럭 하이 달리면서 드라마 봤지 하니까 웅 그래요 그래서 그서 그 이런
철조망 뜨고 가다가 그 뭐라 서서 그 경비원들한테 잡히면 잡혀 가잖아
그렇지 않으면 그 도망치려고 하면은 청으로 쏘니까 구사에서 죽었지 그니까
응 그러더라고 부영을 봤으니까 음 응 그래도 내가 이제이 물에 들어가서
이제 신발이 벗겨지거나 모자가 벗겨져서 내가 엄마 서리 치는가
동시에 이게 다 이제 청사에서 우리 다 죽는다고 우리만 죽는게 아니고
저기 지금 남아 있는 가족들도 저 친척들도 다 죽어 우리가 잘못함으로써
이제 숱한 그 친척까지 다 멸적 주고 하니까음 서리 안 지르겠다고
하더라고요 하더니 그냥 한 조금 있더니 엄마 했어 왜 하니까 그럼
엄만 내가 이제 저절로 소리 치면 어떡하냐고 어 어떡해 하더니 그럼 내 입에다가 수건을 하나 달아 맞고 입을
이렇게 찔금 내래요 제가 이렇게 몇 살이 여덟 살이지 제가 저절로 서리
내면 어둑한 기 하고 집에다 수고 그래서 타아 맞고 이렇게 묶었지만
가지고 나 세상에 그렇게 해가지고 그 강을 넘었어요 다행히 소 안
질렀어요 도 않아요 그 옷을 또 다 보셔야 되더라고요 왜냐면 그 10월
달이니까 너무 추워서 다 끼어 입었는데 물에 들어가면 다 조져서 이제 무겁고 이제 혹시라도 넘어지면
물 때문에 뭐 일어날 수 있다고 그냥 싹 다 벗고 팬티 하고이 갓바지 얇은
갓바지 하고 위에 그다음에 스프링 런닝하고 얇은 그 바람막이를 입었어요
다 그렇게 입고 그 강을 건넜어요 건너는과 동시에 비가 옥수로 내리더니
비하고 눈하고 눈이 그때는 많이 오지 그러더니 바람이 그렇게 부는 거예요
막 진짜이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이 울부짖으면서 소리도 그렇게 다 중산에 딱
올라서는데 짐승이 많고 우리 북한은 없잖아요
짐승이지 나무도 없잖아요 근데 이건 나무 나무 너무 빼어 해서 보이지를
않더라고요 근데 나무 꽃꽂이는 리 짐승 울부짖는 소리 무서웠겠다 그런데
눈비 진눈 가비가 그렇게 많이 오는데 다 젖었잖아 지금 얇은 바람막이
입었잖아 얇은 바지 입었잖아 야 초저녁에 6시에 넘어서 7시 정도
얼라 거 같아요 그 산에 못지않아요 그 진눈 까비가 그 태풍을 불면서
내리는데 못지어나요 지금 첫눈이 내리거든 지금 우리 아이는 지금
배고프다고 난리도 안해 춥지 춥지 지 긴장돼서 하 지금 하루 책일 못
먹었는데 지금 내기 겁니까 애가 어 난리도 아 아니에요 그거 제가 거기서
또 요구했어요 아이한테 지금이 산을 중국산을 넘어왔는데 지금 네가 이렇게
징징 되면은 또 경찰한테 잡히면 또 잡혀 가야 돼 하고 지금이 상황에
엄마가 누가 배고프다고 해서 내가 밥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어둡게 조금만 견디면 안 되겠냐고 여기서 서리 지름 여기서 또 발각되면
또 잡혀간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진짜 한마디도 말을 안 하더라고요 아
아이가 여덟 살짜 아이가 그랬는데 그래도 그날 밤을 넘기는 거는 왜
어떻게 좀 그래도 넘겼나 면요 아마 야 동상을 입을지 않을까 눈비 집
눈감이 저었지 진짜이 톡이 다 달아나는 거 같고 그 진짜 거품 그
싸함 뼈까지 막 실리는데 근데 그 그래도 간신이 그
브로가 방막을 줬어요 방막 비닐 방막 비닐 방막 그 원탕 박막이 북한 에고
중국에서 많이 들어와요 김장철에 자르 방막음 그거를 우리
줬어요 그래가지고 그거를 뒤집어 썼어요 그러니까 자루에 우리가 싹 들어가는 거죠 들어가서 이렇게 묶으고
커만 내미는 거예요 숨쉬게 예 숨만 쓰게 근데 점이으면 여기가 또 차요
뽀게 세하게 그 습기가 더 서 또 물이 뚝뚝 떨어져요 그러면서 덜덜덜덜
떨고 있는데 브로커는 또 연결하라고 전화가 잘 안 되고 막 태풍 치
가니까 전화를 해서 연결을 했어요 언니하고 응 한국의 언니랑 네네 또 언니가 기다려봐 보라 하더니 사람을
보냈다 하고 한 때로부터 또 그니까 그 밤새 거 생 거 센 거지 이렇게 하고 그 차를 만나서 탈 때는 우리가
오아서 입이 안예 움직여지지 않고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다면 근데 또
배어 품기 생각도 안나요 그 식기가 진하네 시기가 지한 쓰지도 않고 배어
품도 없고 아무 생각 없고 그냥 멍해 멍해 있는데 차를 딱 타고 한 한시간
정도 달리니까 한참 가다가 어디지 몰라요 저는 중국이라서 잘 그때는
맞은지도 몰랐죠 매점이 하잖아요 매점 같은데 가서 뭐 빵하 그 마실 거
음료를 사 가지고 오더라고요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가는데음 우리 또 내리 그래요 양육 패는 산인데 더러운데
내리라 우리 그래서 내렸어요 하니까 그때 브로크 하고 두 사람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간신히 한 거 말을 조금 하더라고요 그니까 예 조금 예 내려
올라 가자 여런 소리 밖 잘 못해요 한 사람 아예 모르고 그 사람이
내리라고 하더라고서 세 명이 내렸어요 그 심심 산골에 내렸는데 차는 갔어요
그 사람이 사 넘어야 된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응 그 눈이 이만큼 내더라고요
그래서 그 산을 넘는데 엄청 산이 없고 우리 또 그렇잖아요 신발이
플라스틱 신발이라 짝짝 메꾸라 한 발자 올라가면 열발 짝이 룩 미끄러
오고 찢기고 이러면서 그래도 그 사람 넣 치면 안 된다고 아픈지 추운지
배고픈지 모르고 눈은 동그랗게 떠서 정신은 하나 어지 가나 살아서가 음
그 순간 그 그때 그서 아무 생각 안나요 살아서 가야 된다 그게 혀
가지고 아무것도 안 보여 이거 높은지 낮지 나 뭐 이거서 따라가는 데로 가면서 왜 우리 이렇게 이렇게 고어가
나고 막 손짓 멈칫 눈짓 다 하니까 이제 우리 사는 지금 이렇게 눕는데
도로가 이렇게 돌아간 대요 여기 공안 처소가 있대요 그래서 차에서 내려 그래서 우리가 차에서 내리고 우리가
그래서 산을 질러서 넘어서 내려가서 이제 산 밑에 숨어 있으면 이 차가 이렇게 빙 돌아서 와서 우리 또
태우고 간대요 아이야 그래서 그 높은 사을 또 넘었어요 새벽 4시 5시
사이에 그 사서 그렇게 그렇게 해서 그냥 어둠 면가 가더라고요 우린 중국을 모르니까 그냥 가고 가고 떠
가고 떠 가고 조녁 4시 5시가 됐는데 어둠에 가서 멈춰 섰어요 응
우리 보고 또 다 내리네요 그래서 내렸어요 했더니 아니 더로 한복판에 무슨 비석이서 있는데 증극 걸로 써
있어서 잘 몰랐어요데 그 밑에 앉아 있으래 우리가 세 명인데 봐봐요 완전 거지 었죠 장 그까 막 긁었지 장밤
눈뒤 맞았지 세수 못했지 조졌다 말랐다 조졌다 말랐다 막 끈적이지
그래가지고 우리 거기 밑에 내 앉아 있으래요 모르죠 지금이나 알았지 그때는 몰랐지서 앉아 있으라 하니까
뭐 그게 지금 세 명서 앉아 있는데 앉아 있으니까 그 사람이 뭐라고 하냐면은 자기네는 어둠에 간대요 우리
거 세 명을 안놓음 기 밑에 앉혀요 막 진짜 넓은 대도로 판에 그 비석
같은게 있는데 그 세명 밑에 앉아 있는데 이제 한국인이 이제 와서 우리를 데려간다 한국인이 와서 데려가는데
거기 앉아 있으래요 하 전에는 뭐 가는가 싶더니 장애는 곤란하게 들이가
있는 거예요 해서 우리 지금 보는 거예 데려가나 안 데려가나 근데 그때는 왜저러 가고 조롱 하니 머나
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까 장례 잡히면 위험하니까 우리는 거기다
내놓고 연락을 했을 거 아니에요 우리 지금 데이라 오라고 만약에 이제 경찰이 와서 우리 지금 단서 가거나
잡혀가면 자기는 냅다 달아날 판이죠 그래가지고 한참이나 있는데
어지도 않고 이건 뭐 우리는 무슨 어둠이다 팔람 먹나 뭐하나 별 생각이 다 다 나지요 지금 말도 잘 모르지
했는데 한참 한 한시간 남아 그게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그 여자분이 오시더라고요
하더니 한국 말을 하니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도
모르고 너무 좋았어요 그때 말이 통하 말이 우선 통하니까서 차에 타라는
거예요 그래서 먹 한국 사람이었어요 북한 사람이었어요
아 한적도한테 한국 사람이라고 있니까 브로크 브로크 사이니까 뭐 브로크
한다 하는게 아니고 그냥 그 한국인이라고 했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 기간에 그 한국 한적 분이 우리 딸을
뒤에다 태 다니는 거예요음 저희 직장 출 퇴고 하는데 어머나 너무 이쁘대요
신 저보고 그 딸 달라고 했었어요 그때 내가 키워서 이제 그 시집 갈
때 말하 만에 데려가면 안 되겠냐고 지은 자식이 없어나 아니 자식이 있었는데요 딸을 하나 벌려고 나온게
그때 아들이었어요 그래가지고 우리 운영일 딸이니까 너무 이뻐 가지고
자기네 그 지금 아홉달 된 아들은 먹여서 키우고 우리 딸은 자기
이제 주면은 거기만 먹여서 맛있는 거만 매겨서 키워서 이쁘게 키워서
이제 보내겠습니까 주면 안 되겠냐고 딸들 진짜 원했던 집이네요 그래서 엄청 잘대 주시고 그다음에 브로
그분이 오는데 이거 그다음에 또 나는 날에 그
북한인 그 중국에서 살던 분들 이렇게 15년 살았대요 근데 15년 살아서도
주민 등록 중이 없대요 중국의 불법자 뭐 주민 동력 증 없어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그 주민 동력 증을 받으러 한국으로 간다고 하면서 그 두
분을 붙여 주더라고요 그러니까는 한글 말도 하고 그 중국말도 하고 그렇게
해서 그 두 분을 붙여서 그다음에 같이 행하게 되면서 조금 더 편한 거
같았어요 왜냐면은 중국말을 모르잖아요 하니까 모두에 점심때가 돼도 그분들이
가서 다가 우 같이 먹고 말하면서 우리를 막이면서 데리고 다니고 이렇게
했었고 아 여기는 중국 어둠이라는 거를 조금 알게 됐어요 중국이 정말
땅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또 하루종일 달리고 달려서 그 저녁 역에 한 4시
5시쯤에 지금 어둠을 내렸는데 그분들이 더라고요 여기가 식더라
하더라고 그기서 내려서 또 한 30분 정도 있었는데 거기서 진짜
한국분 분 나왔어요 우를 한국 사람 처음 본 거네네네 처음 봤어요 때
해서 어떻던가요 아 그냥 정말 이렇게 위대하게 봤었어요 왜냐면 잘 사는
나라 어 그 회하고 또 그분이이 풍채가 있고 또 생기기도 잘
생겼었어요 그래서 그분이 한 한 30분 정도 있었는데 그
한국분이음 어 오더라고요 얻더니 우리를 또 데려갔어요 집으로 데려가서
들어가니까 거기 또 두 사람이 있더라고요 아 한국으로 온 사람 치 행 지행 그러니까 중국에서 좀 산
경력이 없이 바로 이제 북한에서 날라오는 거죠 한국으로음 맞아요 그래서 치행 분이 또 엄마하고 아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자녀 예 그렇게 해서 두 분이 있었고 그래서 거기 집이 다 모연게 총 일곱 명이었어요
해서 두 명은 중국에서 살던 분이고 다섯 명은 직행이 있어요 아이 둘
오른 셋 이렇게 해서 일곱 명이음 아 또 그때부터 같 생사고락을 같
하면서음 오게 됐죠 그래서 그 집에서 또 이틀밤을 자고 그분이 또 인도하는
대로 또 어둠에 갔어요 가서 또 어둠에 또 고리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서 그냥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나는 아무것도 항해 대해서 왔으니까
몰라요 무서운지 어두지 있데 그 직행 두 분 가운데 그분은 양광도
사람이라고요음 그냥 덜 더라고요 근데 그때 당시 나는 왜 저이 저렇게 떠는가 석으로
그랬어요 불만이 적금 이어지더라 왜냐면 너무 불안하게 넣으니까 아이씨
잡히면 잡히고 씨 뭐 살면 살고 이거 이제는 또 난 길이니까 뭐 운수에
맡기는 수밖에 없잖아요 내가 잡힌다고 덜덜덜 떨어서 잡히는 것도 아니고 안
잡힌다고 만만하게 자신만만하게 가도 아닌 거잖아 너무 이렇게 불안하게 하니까 그러면서 어 거기서 한참
기다리니까 또 까만 무슨 벤지가 왔어요 갔는데 어둠에 또 가서 저녁에
밤이 되니까 내렸는데 요안에 또 들어갔어요 이제 거기서 하룻밤 자면은
이제 내일 새벽에 이제 또 브로커가 와서 우리 데려 간대요 아 이게 복잡하구나 내가 탈북할 때만해도 그
정도로 안 복잡했어요 아니요서 새벽 4시다 시니까 연락이 왔어요 나오라고
하셨 또 나갔어요 그 더에 나가니까 나는 북한에서는 방이라고 했는데 지금
여기는 번고 차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번고 차가 또 왔어요 와가지고 우리 또 타라 하더라고 그래서 그 탔어요
타가지고 또 어둠에 어둠에 또 하염없이 정처없이 갔는데 어둠에 가서
또 내려놨어요 우리를 그래서 우리 저녁 역에 내려놨는데 이제는 마중
나온 분이 어드바이 타고 마중 나왔더라고요 남하로 갔구나다고 여자하고 남자분이 왔어요
근데 하면은 그때부터는 말을 못 알아듣더라구요 그 중국에서 살던 분도
말을 못 알아듣더라니까 베트남으로 왔어요 예 베트남이라고 했어요 해서
그게 국경연 선이라고 그 오더바이 타구 선인지 마죽 나은게 그 오더바이
다가 한 사람씩 나누더라도 두 대잖아 어드바이 남자분고 여자분 아고 한
사람씩 태워라 그러니까 그기 한 세 번네 번 정도 날랐고 아니 경찰이 딱
단서 가는 거예요 가만 있는데 다행이 음주 음주 단서
경찰이라고 후 불어 보라고 하더라고요 앞에 분 보고서 후 보니까이 없으니까
가라고 가서 1m 지나간다면 이게 막 아니 땅이 꼬이더라
숨이 나가는데 그래서 또 우리 바다인지 강인지 어쨌든 그 강유
파리를 우리 다 모여 놨더라고 우리 날라서 거기 지금 다 모아놨어요 일곱명을 하더 이만은 또 배가 와요
거기가 이게 베트남이라고 하더라고요 해가지고 거기서 또 내려서 30분 나 막
걸어갔어요 걸어가니까 산으로 올라가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또 산을 걷는데 정처 없이 갔어요 없
계속 좀 어둠에 어둠에 가고 있어요 바다 같은데 데리다 놨더라고 우리 나무배 여기 큰데 점 큰데 나무
빼더라도데 우리또 다 타래 그래서 탔어요 타니까 문을 떠 요만한 문을 또 열던 어 들어가네요 그래서 다은
괜찮아요 그 여덟 살짜리가 숨소리 하나 안 내고 찍찍 소리 안
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나래 군소리 안 하고 얼마 피곤하겠어요 12시에
들어가서 씻지도 못하고 대성 팔하고 선하고 얼굴만 씻고 시간 없이 관계
없이 브로커가 또 보겠죠 지금 뭐 넘어갈 시간이 그 안전한 시간이다
하는 걸 보겠죠 하면 새벽 3시에도 막 일어나라고 하면 그 자다가도 막 제대로 어떤 못 벗고 자요 근데 그때
그 아이가 여덟 살인데 우 하면은 바로 일어나 바로 일어나요 그게 너무
신기하죠 아 그래 가지고 또이 넘어오고 넘어오고 했는데 그래서 또 그 가판 밑에 들어갔어요 그랬는데
냄새가 얼마 나는지 기름 냄새가 한 시간 남지 다에 가더라고
그래서 드면 또 내리네요 그래서 내렸어요 내려서 또 한 30분 걸어서 또 더러 나갔어요 나가니까 거기서 또
우리 대기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거기에서 탔어요 타 가지고 근데 그때
차를 두 건대로 갈라 탔어요 응 곱 명이니까 전처 없이 가다가 가다가
가다가 라오스 그래요 이제는 전처 없이 가고 가고 떠가고 차 타고 배
타고 그다음에는 마지막에 저녁 7시 반경에 더착한 자리에서 이제는 걸어
가야 된다 하더라고요 한 8시간 9시간에 그래가지고 나는 많이 널렸죠
나는 지금 이런 길을 몰랐어요 그냥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에 더차 가잖아요
그러면 거기서 바로 비행기 다 한국으로 오는 줄 알았어요 저는 어 이런 가정을 몰랐어요 항해도 저는
그런 걸 아예 모르니까 모 이제 걸러 가야 된다 이예르 뭐 산도 이상하게
생겼더라고요 우리 이렇게 무슨 북한산이 다 북한 산이나 이런 한국이 여기 가는데 그 올라가는데 또 약간
보슬비가 나 내려가지고 딱 자다 가면 미다는 거니 야 참기름 발란 거같지
미끄 근데 저 천원이 나는 나더라도 살짜리가
산을 시간동안 어떻게 를까 내막 너무 걱정했어요 그거를 야 이제 이제
망하겠구나 이건 갓난애기 돼서 없는 것도 아니고 여덟 살인데 해서 내가
걱정한 거 아니 오히려 내가 걱정했어 될 거 같요 내가 뒤에서 한 발 자가
올라가면 열발 자가 미끄러져서 뒹굴면 몽땅 어순 불 걷고 씻어 먹고 만신
창에 훅트 배기가 돼가지고 근데 내가 그 산을 들어가니까 이게
하늘이 비 요만큼 보여요 그 나무가 얼마나 이게 큰지 산이 너무 깊어서
구는가 봐요 그러니까이 심호흡이 안 되더라고요 저는 숨이 안 올라오더라고요
이상하게도 숨차지 매수가 지니까 먹은 건 없지 않으니까 물만 자꾸 먹어서
괜한 구토하면 그걸 왔는데 오히려 딸이 여덟 살짜리가
앞장서서 걷다가 돌아서서 내가 이제 지금 여섯 번째 섰었던 응 돌아서
가지고 나를 끌어올리고 올리고 가다가 또 엄마 어 배낭을 자기 달래요 그
고맙다고 너만 잘 가라고 잘 가라고 했는데 걔가 고를 수 없는 는데도 엄청 많아요 그때 당시는 내 눈에는
10m 보여요 밤인데 높은 걸로 보이는데 그래도 이런 또 칡뿌리가
이렇게 두꺼운데 줄이 쫙 눌러져 있더라고요 그걸도 타고 올라가야
되는데 그거는 아이가 못 하잖아요 하니까음 목에다 골고 배낭지고 목에다
골고 그걸 또 올라가고 내려오고 또 조금 괜찮은데 내려놨다 이름서 왔는데
이제 물도 다 떨어져서 없어요 산에서 막 흐르는 개울물 같은 거 막 먹었는데 막 가다가 한 새벽 2시에
어둠에서 좀 쉬고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 나라에 그기가이 학기가 열대
지방이라서 그러는지 잎사귀 하나가 세 명네 명 자요 그래서 파기를 그런 걸
두개 이렇게 깔았어요 음 한 한시간 반 정도 나고서 그렇게
하고 어서서 가자고 해가지고 간게 거진 그래도 밤새껏 다 왔더라고요 그
7시 8시에 산을 올랐는데 5시에 그 산을 내려 내리게 됐어요 그래서 그
내려서 던 차를 타고 어 좀 조 없이 왔는데 오면 마을에 들어가더라고요
그래가지고 들어갔는데 오면 무슨 여관방 자고 마 한데 우리를 다 넣어
놓더니 이제 강 걷으면
태국이라는 있다가 그 라우스 강을 또 건넜어요 근데 그때는 또 지간 또
여런 배 나무배를 타고 건넜는데 아니
겨울이었다아요 여기는 또 더 여름 열대 지방이 그 근데 전 겨울옷을지고
떠 놨어 그래서 다 버리고 그 바지를 잘랐어요이 이렇게
너무 와서 먹긴 거 바지를 잘라서 이렇게 반바지 만들어 가지고 반바지
있고 긴 이런 겨을 잘라서 반팔을 만들어 있고 아 그래가지고 안
알려줬나 보다 브로커들이 그 건너면 이제는 브로커가 우리가 알아서 가야 된다 하더라고요 그 그 그 강만 강
건너서 배에서 내려주면 이제 우리가 알아서 가야 된대요 태국에서부터는 그래서 그럼 어떻게 태국에서 알아서
가냐고 하니까 경찰에 잡히면 된대요 그래가지고 그 강을 라우스 강을
건너서 내렸어요 내려 가지고 막대 죽을 정도로 뜨겁더라구요 그래가지고
또 아 이제는 어디로 가야지 되는가 하는데 그 지금 생각해 보니까 농부 같아요
한손에는 허미 비슷한데 우리 북한에서 보던 허위가 지난 않고 어쨌든 영전길
하나 들고 한 손에는 그 오른 물을 두통을 들었었어서 막 그 사람을 그간
붙잡고 그 물을 달라고 말은 안 통하는데 달라고 막 그러니까 그
사막에서 그 물 안 먹으 만난 거 같이 막 그걸 달라니까 엄마나 그 그
물을 두 두 통을은 두통을 얼음물을 다 주더라고요 해서 그걸 다 먹었어요 먹고 그분 먹고 말이 안 통하니까
이렇게 묶여서 우리 잡혀가는데 어디냐고 자꾸 흉내를 지금 영화 아는 사람 없어 리 폴리시 폴리 폴리스
밖기 모르니까 진짜 그 폴리시를 대전 거 같으니까 폴리스 이렇게 묶어 가는데 맞네요 맞아요 이게 이게 이게
탈북할 때 영어는 기본이에요 북한에서 그 속을 그 김부자 그 혁명
역사 아무 쓸데없는 거 그거나 맨날 암송하고 영어 단어 하나라도 암성
있어 얼마나 좋아 맞아 그래가지고 플리스 이렇게 잡혀가는데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그분이 그런 걸 했는지 아마 우리 탈북인들의 좀 여러번
거기다가 보내줬는지 아시더라고요 인차 하더니 여기 가만히 앉아 있으래요 우리 보고서 얼마 안
돼서 10분 20분 안 돼서 밥을 쌓은 거예요 매 봉지에가
분이네라고 갖다서게 그 쌀밥이 아니고 그 여기서 말하면 그 당면 잡채를
해골 근데 엄청 맛있게 했더라고요 그건 이에가 맞더라고요 걸 일곱 봉지를 싸서 우리를 가져오더니 한
봉지 한 봉지 넣어놔 줬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서 야 우리 이거 돈 모아서 주자고 많지 않아도 이분도
살기 힘들겠는데 그때 돈 모아서 30원 있지 40원이지 졌던 거
같아요 중국 위 안으로 큰 돈이지 뭐 그분이 그 경찰을 불러서 어 신고해
준 거예요 예 신고해 준 거예요 그래가 났네 그 경 그다음엔 그 경찰에 갔어요 진짜 머리털 나와서
처음 들어가 봤어요 감옥안에 감옥안에 그래가지고 감옥안에 들어갔는데 아 좀
그렇더라고요 이상하더라고 마음도 느낌도 그래가지고 거기서 그다음에
그래서 난민으로 인정받아 들어오니까 네네 그래가지고 한 일주일 거기서
이었나 하니까 그 큰 과목으로 그 큰 과목이라는게 그 방콕 과목이라고
하더라고요 게로요 그래서 일주일 만에 재판을 받고 그 또 벌금을 물어야
된다 하더라고요 그때 그래서 500원씩 위안 돈으로 내고 그다음에 그 또 철창 있는 그런 차를 또 꾸어
얻어 그다음에 방컷 과목이라 들 갔어요 가서 그다음에 거기서 그 일거
명저는 또 다 갈라졌어요음 저는 아이 엄마라서 아이 엄마는 또 그 감옥에 열 수가 없다는
그런 기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애 엄마 있다가 다른데다가 옮겨 놓고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그다음에 또 한 달 정도 있다가 그다음엔 일차적 그 간단한
담아 하고 그 무슨 담아 했어요 뭘 물어봐요 담아 할 때 그니까 한국
대사관에서 나오죠 어땠어요 네네 그냥 뭔가 모르게 그냥이 상담하 아까
다하라고 하니까 뭔가 모르게 그냥 두근 거리기는 했어요 왜냐면은 그
북한에서는 무슨 담화 한다던가 뭐 한다던가 아 진짜 이견 한다 그러고
어 그러니까 야 이게 또 무슨 또 이렇게 자료가 남아서 저기 넘어가지
않는가 그래서 신문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일주일 있다가 비행 타러 가야 된다
불 또를 때 또 울어요 어 왜 울어네 순서가 되는 또 우리또 같이 있다
헤어지니까 또 잘 가라 다시 만나자 이러면서 또 울고 불고 하면서 차를
타거 비행장으로 나왔어요 비행장에 나오니까 한국분이 정말 친절하게 근데
너무 잘생겨서 야 잘생기고 단정하고
깔끔하고 냥 목이 돌아가도록 그 사람 행동 거지만 버는 거예요 도도
사근사근 해 응네네 그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야 세상에 여자들도 그렇게 말 못 할
거예요 아마 그래서 그 우리를 하나씩 주더라고요 권이라고 진짠지 꿈인지 잘
모르겠어요 무기 하고 세상에 요건을 주다니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하죠
그래서 학교에 비행기를 타서 응 한국이라고 왔는데 비행기 올랐는데 네
한 시간이니까 왔어요 왔는데 딱 인천 공황에 내렸는데 무슨 어둠에 세개 제
모습 그거 뭐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 너무이 우하고고 웅장하지 그야말로 하고
하니까 근데 그 우리를 그 마중 나오신 분들이 또왜 이렇게 키코가
하나 같이도 잘 생겼나요났다 복을 엄마나 겨울인데 어 주에가 에다가 양복 있
선글라스 뒤집어 글라스 끄고 는고 엄마나 아직도 정신 못 잘했구나
언니 아직도 그 저기 뭐라니 딱 구두를 신고 딱 나왔는데 야 진짜로
못 지더라고 해서 그때 당신은 황홀하기만 했고 어딘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그 절레절레 따라갔어 그때 당신은 황홀하기만 했고
어딘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절래절래 따라갔어요 보스가 너무 진 거예요
언제 타 봤겠어 북한에는 그 보스 타 봤다고 해도 그 뒤지러 기름 냄새소서
비비고 쓸고다고 밀치고 당치고 아이 여기서 아프데 저기 너무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섰으니 어쨌 때 발을 한난 들고 있어야 되잖아요 그여 딱
딱 한 사람씩 왔는데 무슨 대접받는 기분이고 근데 나는 그냥 눈물
나오더라고 너무 감사하고 그때 엄마나 우리가 뭐길래 이렇게 잘 돼지고 이런
환 를 해주는가 하는게 너무 감독 먹었어요 야 나는 북한에서 태어나서
나 살겠다고 내 자유를 찾겠다고 잘 살겠다고 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환대를
해 주는 거 그게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고 그냥 다 아버지 같고 그냥 다 어머니 같어요음 그야말로 어머니 당
가이고 인천 공황에서 그래서 그 바다를 걸 지나가요 근데 바다가 엄청
푸르 그 멋있 바다를 처음 보니까 그음 탈북할 때 바다랑 또 다르지 예
엄청 바다에 그 물결이 쁘지 물 색이 막 파랗지 그다음에 그 다리가 너무
이쁜 거예요 다리 그 바다 위에 그 다리가 기 아 지금은 인천 대라고
이야기하니까 아 인천대교구 하는데 그때는 몰랐어요 긴데 그게 어게 바닥으로 지나가는가
하는게 이게 무슨 보스를 탔냐 날개 달린 무슨 뭐 비행기를 탔냐 그러면서
버고 지나가 어 벙벙해서 원이 벙벙해서 아이 뭐 지금 내가 한국에
더 차겠지 그냥 감개무량해 그서 줄주 눈물만 그저 나와요이 이제 눈물 구멍이 터졌는지 진정도 안 되 그냥
줄 나오고 얼 얼마나 고생했어 그다면 아 내가 살아서 한국당을
갈았구나에 내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딸은 어때요 딸바는은 그때 당신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조금씩 그 이기가 좋다고 국정원은 어땠어요 국정원에
들어갔는데 황홀했어요 너무 깔끔하고 이쁘고 그 불이 안 가니까 전기가 안
가니까 아 아 이게 항해도에는 불이에 전기가 안 가니까 너무 황홀하고 응
우선은 물이 콸콸콸콸 나오는데 이게 처음에 탁 시덕 억지를 탁 풀면은
찬물이 샤 나오지 그다음에 두 번째 탁 틀면 도움을 딱 저으면 물이
나오지 작금을 쓰고 신기하더라고요 하다면 그 샤워기를 북한에서 그
버기는 했지만은 그게 전기가 안 돌아가서 잘 안 돼요 하고 다 대중화가 안 돼요 있고 참 이름 있는
그 한중간데 가야지 있는데 설치는 다 했지만 그게 잘 안 돼요 운가
없 예 그래가지고 했는데 여기 오니까 그 샤워기도 잘 되지 아휴 뭘이 언제
뭘이 감아서 여기다가 뭐 쫙 말려요 저머리 북한에서 수건으로 문지 물이
뚝뚝뚝 떨어지는 거예 수건으로 없이 살았잖아 수건으로 질끈 덕에 그
그렇게 하고 뭐 세 시간이고네 시간이고 말리고 뭐 겨울에는 진짜로
그 머리 감고 나가면 울잖아요 그다음에 여름에는 또 머리 감고 빨리 안 말리면 더워서 또 더로 줬잖아요
땀나서 야 이런 세상도 있구나 물 나오는게 제일 여성으로서
제일 황홀하고 감개무량하고 천국에 왔구나 이렇게 생각이 되더라고요 하고
그 국정원 선생님들이 얼마나 따뜻하게 대해 지는지 뭐 유독 더 따뜻하게 대해줬던 거 같아요 그 관식 내지는
거 처음 봤어요 아 이거 북한에도 어린애도 간식을 안 내주는데 이건 오론 아지 간식을 내주니까 근데 저
뭘 줬어요 귤 바나나 그다음에 무슨 요구루트 요구루트 우유 그다음에 그
각정 거급 단가 심지어 또도 진짜로 진짜로 이쁘게 야
그네 그렇게 다 주는데 아침에 자가 일어나면은 그 국정원 선생님들이
우영이를 또 하나음식 주는 거예요 그 아이를 데려와서 그러는지 어쨌든 더
친절하게 대주고 은영아 이제는 운영이 한국 사람이구나 한국 사람이구나
하면서 아 이제는 필 때만 됐다고 하면서 잘 왔다고 상 국정원
선생님들이 잘 왔다고 할 때 많이 울었어요 지금도 눈물나요 야 나라를
위해서 프안 파기도 진짜 진짜 훅 한삽 뜨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우리 잘 받아 주고 이렇게 잘 돼 주고 나 살려고 왔는데 응 그러니까
내가 잘 살려고 내가 그 지옥 같은 땅이 싫어서 내가 뛰쳐 나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대줄까 하는게 기 야 그때 당시는 너무 하나도 이해가
안 됐어요 그 좋은 걸 막 이렇게 그니까 뭘 좀 다 빼내 보려고 이렇게
잘해 주는 거 그 마냥 좋다가도 마냥 감사합니다 하다가도 혹시 우리 뭘 뭘
이용하려고 하는가 언니 이용할 거 아무것도 없어니까 용할 가치가 아무것도 사실은 없어요 왜 항상 웃어
주지 왜 항상 말걸어 주지 상해 왜 조금만 우울해 있어도 막 이렇게
해주지 항상 우리를 이렇게 이렇게 관심속에 지 하는게 그래도 다행히
한국에 와서 이제 따뜻한 마음을 느껴서 너무 지금 다행인데 식사는 입에 맞았어요 야 이트론 있잖아요
거짓말 하나 안 치고 밥을 보지로 하나 신 거 버치 대화로 하나 쓴
거대 씬 먹어요 왜냐면요 그 정도로 많이 먹었다는 얘기 어서 못 먹었지
그 태극 감옥에서 한 달을 못 먹어요 정 배고프면 한 끼 먹어요 그
감옥에서 주는데 응 거기서 다 감동은 먹었었어요 왜냐면 감옥에서 밥 주는
기어서 따끈따끈한 국밥에 거기에 계란에 이렇게 주는 데가 없어요 한국
국정원에 오니까 우리 음식이잖아요 그니까 야 너나 나나 할 거 없이 뭐
누구 설리 할 거 없이 그래서 그 사람들이 다 이틀은 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요 이틀
지나니까 조금씩 밤 양이 어지게 되고 잘했어
또 생필품 그런 들도 잘 주잖아요 특피 감동받는 거 난 생리 대더라
언니네 맞아요 북한에서는 생리대 그 참 잘 사는
집이면 흰 가제 천을 사서 만들어서 양육자에 풀리지 않게 이렇게 하고
생활이 진짜로 어려운 사람들은 진짜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돌려도 아깝지 않을 그 입다가 다해진 옷디 있잖아요
그지 그거를 생리대로 그거를 그냥 잘라서 사용하고 사양하면 지지도 않잖아요 직 진짜 빨때 잘 지지도
않지 예 그래가지고 그 생리대를 진짜 그것도 뭐 제안이라는게 없이 그냥
그저 무한대로 주니까 왜 달마다 나오잖아 아니 셨나 아니 으면서 땅을 해서 받아
주는가 아니 이거 왜 이렇게 우리를 잘해 주는가 응 진짜 세시 그런 걸
받아보고 못 살아 봤으니까 이런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죠 국정에서 살
충격받았던게 뭐예요 제일 충격받았던게 북한에서는 예 진짜
미국 뭐 오게 말해야 돼요 미국 남이라 그래 그 미국 사람이라고 해야지 이제 북한에서는 미국남 미국남
미국 남이 원수지 미국 남이 전쟁을 갔다고 하잖아요 근데 아니란 거예 아니라고 거기 하더라고요 미국과
한국이 짜고 전쟁을 일으켰다 북한을 친다는데 그렇게 배웠는데 김일성이가
전쟁을 일으켰다고 그때 그렇게 어 그것 랐는데 더더욱이 란 거는
김정일 김정일의 생활 응 그거 너무 충격 먹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충격
먹고 눈물이나요 왜 땅을 침이 울고 싶어요 김정일이 죽었을 때요 내가
창피 일이지만 나 심도까지 왔었어이 심도 안 됐어요 왜 심이 안 돼 너무 울어서
일이 죽었다 그래서 하늘에 위대한 우리 장님이
돌아가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요 왜 죽었어요 어떻게 살아요 나나 진짜
이해가 안 되지 근데 12월 17일 날 그렇게 눈비가 펑펑 하고 눈이
눈이 이렇게 무릎까지 올라왔는데 그때 그렇게 제일 출 때 죽었는데 그렇게 땅을 치며 울고이
진짜 심장이 모을 정도로 울고 진짜이이 심장약을 모으면서 그 이렇게
했 우리 이제 어떻게 살지 그 거지같이 살면서 이제 우리도 어떻게 살지 하더라고요 응 심각하고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가 너무 불쌍한 거예요 아버지 엄마가 단간 부라고 그랬잖아 요만큼 진짜 후마나 없이
살았는데 김시 집안을 위해서 살았어요 진짜로 하고 우리 아빠 겨양이 너무
이렇게 순수하고 항상 착한 것만 배우고 이쁘게 하고 항상 그렇게
교양을 했기 때문에 그니까 북한의 어떤 공산주의 도덕이 최상급인 줄 알고 교양을 하신 거네요 맞아 맞아요
그래가지고 김일성이 그냥 집안을 위해서 충성을 다 한 거예요 근데 북한에는 그 연봉이라는게 없다 없죠
어늘 일하고 어늘 퇴사 하면은 딱 끝나잖아요 고려진 인생 진짜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는 진짜 그 올일 때 20대 때 다 당원이 됐고 두 부 두
분이 그래 가지고 그 당에 많이 충실을 했더라고요 했는데 김정일이 그
생활을 진짜 여기서 입이다 담지 못하겠어요 왜냐면 너무 충격 먹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나는 그
읽어보고 있잖아요 웃음 저 기쁨 저가 다 그 몸뚱이라 서리에 그 책을
가지고 금정원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이거 진짜 나거 진짜 나거
이거 북한에서 나만을 할듯 듯이 나마다 북한을
헐뜯으며려고 이렇게 한 거 아니에요 하니까 한 건가 걱정한 선생님이 날
오더니 직행이요 해서 직행이요 하니까 웃더라고요 나는 심각한데 나보고 차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이 책에 살점은 붙였을
지언정이 줄거리는 진실이다 줄거리에 붙은 살은 간접적으로 약간 약간 그
예술적으로 말을 했을지는 모를지 언저 이게 진실이 아니 것은이 책을 출판할
수가 없어요 하더라고 그래가지고 세상에 그걸 위해서 맨날 올리고 내
충성의 너리 모임으로 연구실 관리 청서 그 뭐 이제는 김일성이 그 죽은
다음에는 김일성이 동상 김정일이 죽은다면 김정일이 동상 눈이어나 비가
오나 쓸고다고 청소함 아이고 그 생각하니까 이게 이게 한대 뽕 치는
거 같더라고요 김정일이 그 죽었을 때는요 제가 김일성이 죽었을 때는
살인지 살이지 그때 나이여서 그냥 어른들이 우니까 같이 동아 울고 예 김정일이
죽 때는 제가 30대 해가지고 진짜 진짜 그 심장이 모줄 정도로 울고
울면서 우리가 그때 당시 내가 판매하 된 그 우유가루 전진이 전진 우유가루
그때 당시 일러 졌어요 우유가루 전진이 전진이다 전진 우유가루
보이라고 하면서 제일 좋은 제품이에요 그 북한에서 내가 팔때 당시 버기
우유가루 1kg 25,000원에 받아다 25,000원에 판매하는 건데
그거를 25,000원에 생각도 안나요 그걸 몇 키를 팔아야 쌀을 사 먹는데 그걸 보다가 물을 꾸려서 우유 물을
타서 또 설탕을 또 풀어서 어 그 귀한 설탕을 해 가지고 그 보병
중국산 보병을 팔아요 그 그 보온병을 또 우리 집엔 두 개밖에 없어서 또 하나 두 개 또 사서네 개를 해서
배낭에지고 또 동상에 그 밤낮으로 지키는 사람들 대학생들이 지키든
예 그라 미 그걸 사정없이
울면서 상근님 그러면서 그 갖다가 또 컵에다
어 거부라고 하잖아요 거기는 컵에다가 따라서 한 잔씩 주면서 너무
고생한다고 고생한다고이 신 한 놔주고 없으면 또
와서 떡 구리고 그걸 밤새껏 나르면서 그 애더 기간 끝날 때까지 그렇게
했어요이야 그렇게 하고 그때부터 그 그냥 동상 청소 그다음에 그 모심
사업 그다음에 그 북한에 지금 생활 제일 잘한다는게 동상 청소 모심 사업에 돈을 후원하는 거지서 얼리
뛰고 내리 뛰고 장사해서 절반은 것을 다 동상 청소에 돈을내는 거죠 야
근데 그게 너무 하루 아침에 이이 바뀌니까 이이 딱 소드라고 생각
음 생각이 몽 리게 되더라고요 세상에 내가 그니까 이게 응 여기 맞는지
여기 맞는지 갈피를 못잡아요 제가 이렇게 막 이렇게 야 그랬는데도
있겠구나 하나원 내 나오더라고 그래서 하나원에서 다시 읽어봤어요 했는데 여러 책을 읽어봤는데 제일 그 기억에
나는게 그 리사리사 책이 마지막에 마지막에 그 사람이 그 더망 나왔더라고요 더망
나와서 그걸 세상에다음 책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이 사람이 그 열
이사였고 사람이 그 쓴 책은 김음 뭐 거짓말이 아닌 그게 믿어지고 그래서
하나원에서 그 책을 다시 읽어 보면서 세상에 그런데 저는 그래도 그나마
이제라도 이렇게 천국에 와서 이런 저은 나라에 와서 이런 걸 다 아
아직도 저기 있는 사람들이 너무 가고 불쌍해 더라고요 이걸 아예 모르잖아요
그렇지 그렇지 이제 특별히 이제 항해도 지역 사람들은 너무 착해 가지고 맞아요 지금도 항해도 그
농촌에서는 진짜로 너 죽으라 하면은 죽을 진 사람들도 있어요 새끼로
이렇게 매 가지고 들들들 꿀려 갈지언정 그니까 그 사람들은 알래 알 수가 없는 거예 그 그쪽으로 삐라라
좀 안 떨어져요 옛가 많이 떨어지는 걸로 아는 옛날에는 삐라가 떨어졌는데
삐라도 떨어져도 그걸 다치지 못해요음 이을 면요 삐라를 만지면
살이 쏘고 들어간다고음 맞아요 하고 그 이제 물자들이 떨어지잖아요 그
먹으면은 소소히 죽게 만들어 놨다고 이렇게 선전을 해요 괴담이 주 그냥 그러니까 하고 또 보면은 갖다 죽시
바치라고 그거를 이제 안 바칠 경우 그거를 집에다 이제 뭐 가져다 놨을
경우 근데 이렇게 이쁘게 말을 안 하죠 그걸 집에다 가져다 감춰 놨을
경우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막 이렇게 어 협박을 하지 악게 말을하는 거죠 범으로 걸 범으로 이게 이제
이게 법적 처벌을 받는다 이렇게 막 하니까 이제 보면은 갖다 주소다
이렇게 받치지 응 대부분은 보면은 뭘리 이렇게 돌아가요 이렇게 쏙
는다니까 살이 처음에는 또 모한 사람이 있나 봐요 근데 안 죽었다는 소리가 또 들어갔나 봐요 그러니까
이제는 또 서서히 죽는다고 사람이 이렇게 금방 먹어서 금방 죽는게
아니고 이제 세월이 가면서 서서 이제 석으로 병이 나서 죽는다 근데 지금
최근에는 삐라가 안 떨어져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 전복
농사를 열심히 짓고 있는 은영 씨의 꽃피는 바다 우리 은영 언이 다 아시죠 그 동생분 금미 언니가 출연을
해서 여러분 많이 보셨는데요에 얘기가 너무 길어서 진짜
그날에 처음 만났을 때 다 찍을 수가 없어서 헤어졌거든 오늘 또 어떻게 겁기 하고 왔어요 예 저번에 예 북한
스타일이라고 운정 씨가 웃기면서 널려 다길래 요번에는 저 마음을 조금
먹고 좀 그 북한식으로 말 말하면은 아 아이스 삐 삐앗스핏
연지 바르고 어찌든 어는 어떤 옷을 입고 가야 제일 이쁠까 운정 씨이다
더 쁘고 싶어서 참 기울였어요 네 요거 진짜
아주 그냥 영해 보이는 엇으로 입고 왔는데 어쨌든 제가 저번 영상에서도
또 얘기를 했지만 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우리 금미 언니를 또 만났습니다 국정원에서 언니를 처음
만난 얘기까지 들어 봤잖아요 언니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 중국에서 이제
만나 가지고 한국에 데려오고 싶어 갖고 영을 썼더라고요 맞아요 응
그때가 몇 년도 있어요 그러니까 2009년도에 만나서 중국를 내가
갔었어요 중국에서 한 벌음 동안 둘이서 만나서 지냈거든요 그니까 그때
내가 아홉살 때 헤어지고 그때 내 나이가 25시 있나 시였다 그때 만난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한 18년 17년 정도에 다시 만난 거죠 처음에 언니인
거 같지 않더라고 너무 변해 가지고 어떻게 변했던 가요 군대의 모습에서 완전히 이거는 이건 완전히 무슨
재벌가 딸이 되었나 하는게 북한은 다 제안이 있으니까 뭐
귀거리를 하나 뭐 눈을 한번 뭐 뭐 다시 뭐 째도 그래 뭐 부르지
하지라고 엄청 비판 모에 올라서고 뭐 하고 하는데 그 우리 언니가 그때 당시 모리가 길었어요 이렇게 이렇게
길고 예 파마를 했는데 북한에서도 지금은 중국 드라마를 봐요 그러니까
좀 승인된 드라마를 보는데 거기서 여자들 다 보면 파도 머리 했다는 등
무슨 그 뭐 멋진 머리 하도 머리가 웨이브 머리를 말하는 거죠 웨이브 머리를 이렇게 했는데 머리는 여기까지
뒤에 스렁 치렁 왔는데 야 그야말로 몸은이 있잖아요 개미 홀리야 어
그때는 가라지 때였어요 지금도 몸은 약한데 그때는 더 약했어요 걔가
아무래도 그때는 또 나이가 어렸으니까 그때 내가 26살이고 언니가 40
30대 중반이었습니다 딱 지금 제나이 그때 그때 만났
음 히 그 원래 언도 항상 세련되게 남이 입지 않는
옷을 좀 골라 입기는 했는데 그때는 완전히 판이하게 다르더라고 완전
재벌가에 뭐 집으로 시집을 가나 이런 느낌 하은 근데 아무래도 아홉살에
헤어졌으니까 좀 처음에는 언니의 뭐 색은 있는데 해 어 소하고 근데 그
소한 거는 생각은 순간이고 언가 막 지고 내가 막내니까 항상 나를 오고
다니 으니까 엄청 친근했어요 엄청 언니가 또 막내니까 사랑해주고 이렇게 사랑사랑 어제 어제 이렇게 해줬으니까
그 잠깐 서먹한 거는 좀 잠시 잠깐 지나가고 그다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나더라고 언니 어디 갔어 어디 갔었다가 이렇게 나타났고 그다음에 언니랑 뭐 해포도 나누고 북한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언니도 또 북한에 있던 그 친구들 어떻게 됐나 또 물어보면 이야기도 또 해주
밤 이틀 한일 잠을 못 같아 둘을고 서로 선을 냄새 맡아보면 어떻
냄새는 어가 우리 언니는 나 맡아보고 나는 우리 언니 선을 짚고 맡아보고
그 혈의 정의라는게 정말 그 뭐 물보다 피가 진하다는 말이 맞아요 딱
3일 지나니까 그다음에는 신기한 거부터 보여지죠 북한은 불이 하나
와서 암목 세상인데 이 중국에서 만났는데도 울긋불긋 하지 불 항상
불이 와 있는데이 마음이 전마 점마 불 가면 어까 야 불감 그데 그때 딱
처음 그 접해 반 거예요 한국 드라마를 그 이게 너무 눈이 돌아가고
신기한 거예요 뭘 봤어요 제목 기억나요 그 제목 기억이 안
나고이 정원이라는 사람은 아가씨는 그 재벌가의 딸이었고 그 병원을 몇개
운영하는 음 그 많은 집 자식이 들어와서
우사는 사람도 있고 없이 기술로 자기 그 실력으로 와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남자 이름을 생각이 안나요 그 아가씨가 너무 이쁘더라고요 여자가 여자한테 반할 정도로
이쁘더라고 막 그런데 그 아가씨가 무슨 솜 같은데 널러 갔어요 그
섬에는 자그만한 질려서 같은게 밖에 없어요 작은 병원 사서 배를 어지고
데글데글 지려서 우사가 하나 있고 간호사가 둘인지 있는데 그 남자가 딱 이렇게
내진을 해 보니까 그 남자가 우사다 아니고 간호사였다 그 간호사 남자가
잘생겼어 이목구비가 뚜렷한게 얼굴이 길쭉한게 어 갑자기 표정이 엄청 좋아지 다날 정도로 잘생겼어 샤
키거리 나 한게 어튼 또 얼마나 잘 입었는지 완전히 멋진 남자 멋진
여자만 나오는 거야 그 드라마에는 그래서 맹장 급속 명장이 왔다 빨리
선을 쓰지 않으면은 이제 이제 더 크게 문제가 발생해 진다고 했는데 근데 그 이제 말하는 순간에 또
기억이 나네 응 우사가이나 여자하고 약혼할 사이고 어 간호사 그
남자가이 여자하고 애착 사랑을 하는 사랑 상태인데 여자도 역시이 남자를 좋아해요 간호사를 아 삼각 관계구나
삼각 관계인데 그 우사는 기술보다도 던이 있어서 우사가
됐고
응하라고 그렇게 했더라 근데이 남자가 있잖아 그 결정을 못 내리고 책임만
따지는 거예요 그니까 시스템도 없고 설비도 없는 거야 수술할 설비도 없는 거야 그러니까 빨리 무트 싣고 나가야
되는데 밤중에 오밤 중에 새벽 12시 1시인데 그 간호사가 아침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고 그러면 이게 생명의 위험까지 온다고 하고 결정을
내려라 데 우사가 못내리고 있으니까 그 남자가 간호사인데 그 마취 하기
그래도 간신이 있어 가지고 마취를 시켜서 자기가 수술을 했는데 살려 냈어 그 여자를 아 그 내용이었어
거기 반한 거예요 야 정말 디테일하게 기억을 하네요 그거 어 완전히
기억하지 그때가 내가 12시 시까지 지금 쫙 보는데 중국집에 있는데
거기가 집이 막 울긋불긋 다니 자기네 그 부부 방이 그다음에 손님방 아들방
다 이렇게 건너가서 방이 묘하더라고요이 이렇게 소재 방에서
봤어요 그 건부 방해가 TV 있고 컴퓨터도 있고 이게 책 보는 것도
있고 이래서 거기 들어가서 보는데 우리 언니가 자꾸 나오래요 나 보고 짜증나 그래서 아 요거만 보고 요거만
보고 하는데 아니 이제 조금 며칠만 안 있으면 또 헤어져야 되겠는데 자꾸
나오라는 거 나보 냥 이런 가면 그래서 아니 나중에는 간다
언니 불 가게내 좀 버사고 내가 난리를 친 거야 성질을 낸 거예요 불
가겠다고 불가다 성질을 부리니까 딱 굳어지는 거야 리가 하더니 참
서운했었는데 그니까 우리 언니도 이제 있고 사란 거야 그니까 불 풀은
24시가 많 있는데 무슨 풀이 간다는 거야 불 안 간다는 거예요 나보고 그래서 그다음에 쪽 보니까 아 여기가
중국이나 그거 불은 안 가는나 그러면 조용 하는 우리는 못 본다고
어 생 처음 구경해본다 너무 신기하다고 지금 그러니까 근데 다
너무너무 신기했지 중국에서 몰래 잠깐 만난 건데 언니는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억이 생생하네요 야 진짜 근데 진짜 북한에 언니 올
때만 해도 전기가 더 안 들어왔어요 전기 사정이 어때요 전기 사정은 점점 더 가요 더해져요 옛날에는 전기가
오다가 안 오다가 이제 명절 공급 식으로 명절 때만 불이 또 오다가
그것마저도 이제는 아야 1년 열두달 안 오거든요 명절 공급이 언제 언제 줬어요음 1월 1일 응 그다음에 2월
16일 4월 15일 김정일이 생일 구구절 10월 10일요 정도 근데 이제는 그것도 안 죽어 그 언젠가는
또 애더 기간 때 그때 한번 또 피득 한번 주고 가고 이제가도 기간이면 김일성이 죽었을 때 예 7월 8일
그다음에 12월 17일 김정일이 죽은 날 그렇게 조금씩 더 오더니 이제는
그나마도 안 오고 아예 안 오 그러니까 어떻게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전기를 봐요 자동차 배터리 그러니까 그것도 더 있는 집은 큰 걸 사서 좀
편하게 보고 또 돈이 없는 집은 또 조간 한 배터리를 또 사면은 그서
계속 충전해야지 근데 그 또 충전이 문제잖아요 전기를 충전해야 되는데
그래서 충전한다는게 이게 이제 동상 불이 와요 동 동상과 근수 물자
생산하는 공장은 불이 와요 그니까 그 전기실에 가서 덧 충전을 해야죠 그도
또이 배터리 역량에 따라 후기에 따라 던도 다 달라요 다르 고서 그거
그것도 또이 안면이 있어야 덧 내면서도 충전을 해요 배터리로 백이
있어야 배터리를 충전해 긴가 충전을 해다가 이게 수동 발전기를 만들었어요
우리 사람들이 그러니까 어떻게를 만들었나 내 웃긴 소리 해 줄게요 정씨 그래도 사람들이
막 먹고 살기 힘들고 나가서 장사하기 힘들고 짜 악으로 살고 버티고 사는데
그 잠시 잠깐이나 나 저녁에 문화 생활로 드라마라도 함 장면 보고 사고
싶어서 이제 그거 연구하고 연구하고 연구해 내서 이제 그 북한 인민들이
만들어게 뭐냐면 자전거 거장 난 링이 있죠 나세요 생각나세요
자전거 링에 요만한 발전기를 조그만 걸 달아 가지고 자전거 이렇게 동그란
링에 사드 살창을 해서 양육가설 아을 만들어요 응 자 이으면 이렇게 응
근데 자전거는 닉만 있잖아요 그이 가운데는 행 하잖아 거기 살 살을 또 만들어 줘 가지고 여기 구멍을 뚫려서
양옆 아리 손잡이를 만들어 줘요 그렇게 하고 에바리 달파 식으로 자전거 우리 자전거 타고 다니잖아
근데이 이렇게 타는 자비는 없고 이거 자비 응 이거 발로 리지 않으면 선으로
려서이 발전기가 돌아가서 바로 연결해서 배터리 그니까를 보게끔
만들어 놨어요 예 그래서 가정마다 그런 기 있어서 그러니까 그런 거
연구 사람이 만들어서 파니까 그런 걸 사다가 지금 봐요 버는데 그러니까
충전하기도 힘드니까 그니까 그것도 충전을 못 하는 사람이 이런 걸 지금
연구에 내서 파니까 그걸 사온 거예요 사람들이 돈 진짜 이렇게 어려운 집이
그런 거 보고는 싶고 하니까 사왔는데 가족끼리 뭐 동네에 TV 없는 사람들이지 와서 바인데 이제 드라마를
보던 영화를 보면 처음에 자 시작점과 이제 그가 줄거리가 시작돼서 가운데
막 이제 폭파되는 그런 장면이 있잖아 어 그러면 이금 그니까 한 사람은
수동으로 계속 이렇게 돌려야 되는 거야 야 이거 이거 유감이네요 발을
못 보여 주는게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돌리는 거예요 를 뒤집 발전를 달다 하 생면요 계속
리는데 그 범 리는데 이제 절 결정적인 장면이 나오잖아 이제 무슨 간첩잡는 일이라든지 이혼하다 딱
킨다는 일이라든지 결정적인 장면이면 막 돌리다가이 돌리는 사람들 그게 멀
지금 보잖아 그럼 이게 리야 들어가는데
리다가서는 그 정면 빠져 들어가니까 돌리지 않으니까 이게 이게 화면이
나오다가 줄다가여 가운데 여만 해지면 이게 안 돌리니까 줄어 는단 말이야
그러면 여기서 막 대한 야 돌리라고 뭐하냐고 돌리라고 뭐 하냐고 하면
어 막 돌린다 말이야 그 코 다 지나갔지 기니까
아쉬워서 너무 재밌지 않아 진짜 이렇게 버어
그다음에는 나온게 비판 그래 가지고 이제는 중국에서 비판이라고 햇빛 응
비판 아 햇빛으로 이제 그 햇빛으로 충전한다고 해서 판 비판이라고 해
여기기는 태양광이 하나 아 맞아요 태양광 어 비판이 들어와서 그걸로
충전을 하죠 햇빛로 충전을 해서 그건 단석 안 해요 그건 안성은 안해요
왜냐면은 그건 비판을 사다가 응 자기네 지붕 위에다 올려놓고 전기를
버니까 그 배터리를 충전해서 버니까 근데 그 비판은 또 계속 도둑질해
가는 거예요 어 진짜 어떻게 그러면 지붕에서 지키면서 자야 되겠네
그러니까 낮에 있잖아 낮에 아침에 이제 해뜰 때 올려 놓고 껐고 이렇게
낮에도 수시를 그거 없어지나 버고 저녁에 그 꼼꼼하기 전에 얼동 다또
집에다 두려다 놔야지 그거를 내려 우리도 우리도 뒤판은 비판을 두 개나 잊어 먹었어요 더지 깜빡하고 저 모술
로슬 할 때 올라갔더니 벌수 없어진 거예요 지붕 꼭대기 있는데 지붕 꼭대기 있는데 또 도적놈들이 그 틈을
타서 뒷집으로 올라와 가지고 지붕을 타고 와서 지붕에서 훔쳐서 반대편으로
내리 떨어지면 모르죠 앞 앞에다 걸어 놨어도 CCTV 어 있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두 개나 잊어 먹고 세 개째 사 가지고 그거 버리는데 그렇게 하 뭐가 나왔냐면 전기가
그니까 중국에서 북한에 팔아 먹어야 될 그 물건을 많이 요구하나 봐음 배터리
선풍기가 생산된 거예요 중국에서 해서 이제 비판으로 배터리를 충전 걸고
선풍기를 찌기를 그 배터리다 집으면이 배터리를 선풍기가 돌아가는 선풍기가
나왔어 진짜 성기가 없다 상 그야말로 정말 그나마 그래도 많이 발전됐다
그고 당간부 전기 어떻게 봐요 그 사람들은 전기 주지 않나 당 간부들은 전기 주죠 하고 어 그도 급수가
있잖아요 중앙당 간부들은 간부 사택이 있잖아요 청 매고 지키고 그건 다
전기가 두 가지요 그렇지 응 그건 다 일적으로 공급이 되죠음 근데 어때요
한국에 오면은 전기는 누구나 다 똑같이 누리거나 집이고 뭐고 할 것
없이 그니까 아 감동이죠 그러니까 내가 한국에 국정원에 와서 전 를 한
3일 한 일주일은 밤에도 키고 잤던 거 같아요이 생신이 꾸미니 이게
전기가 야 꾸지 말라야 이거 전기 꾸지 말라 이러면서 전기를 켜고 잤던
거 같아요 근데에 중국에서도 전기가 안 가는 거를 그 어는 가정에 알기는
했는데 이제 한국이라 하니까 내 나라라 하니까 이게이 오늘도 통하고
그게 더 신기하더라고요
한은이 러는 이게지 왜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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