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직접 체포명령 내렸어요 딸이 탈북한 후 겪은 아버지의 충격적인 실제 상황 (강은정 & 강일규 / 풀버전)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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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정님의 유튜브 바로가기:
/ @tv-kl6yv
[강은정 & 강일규]
유튜브 [강은정TV]
✔️촬영일: 10월17일
📌 'SSID'는 전문가 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출연자에 대한 인신공격, 근거 없는 비난, 욕설, 비속어를 포함한 댓글은제한 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소통 문화 형성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관심과 시청에 감사드립니다.
⭐ 출연신청 & 제휴 및 광고문의:
ssid@dpn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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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신사임당
6 months ago
⭐강은정님의 유튜브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TV-kl6y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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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하나김-g4m
2 months ago
아버님이 대처를 잘하시고 현명하셨네요..아무쪼록 그동안의 아픔과 악몽같았던 세월 모두 꿈이었다 생각하시고
안전한 자유의 나라에서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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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f7n
5 months ago
전화도 도청하고 진짜 나쁜놈들. 감옥이 따로 없네요.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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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숙-l8b
2 months ago
잘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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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spm
2 months ago
맞습니다 대한민국 같은 한사람으로서 공감됩니다 얼마나 고생이 심하셨나요 마음이 아픞습니다 따님 정말 잘 키웠습니다 강은정님 존경스럽습니다 아버님은 남은 인생 이제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수무강하세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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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apark8938
4 months ago
엄청 지혜로우신 아버님이세요~ 존경스럽습니다!! 남은 인생 건강히 오래오래 가족분들과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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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희-o2p
2 months ago
아빠와 따님둘이서 옛일을
회상하듯 다정히 이야기하는
모습보니 참 보기좋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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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뭉치야옹
3 months ago
감사합니다 아버니.따님 훌륭하십니다 대한민국 북도 동독서독만치....우리 만나야 합니다 민족 가족은 만날수 있으니 이래 인연이랍니다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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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n9m4h
4 months ago
강은정님 가족들 어럽게 자유를 찾아오셨으니 건강하시고 행복하 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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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m바라기
3 months ago
아버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희 부모님도 일사후태에 월남하셨어요 오랜만에 우리아버지목소리 듣는것같아 눈물이 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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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돌이-s5n
2 months ago (edited)
아버님이 정말 말씀도 재미 있게 잘하시고 정확하고 진실된 말씀에 감사합니다. 진심 으로 한국에 오신것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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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b1f
3 months ago (edited)
아버님께서 참 재밌으십니다..힘들게 생활하셨는데 밝은모습 보기좋아요.꼭 건강챙기시어 자유를 맘것누리시고 오래오래 행복하셨으면 좋겠네요.고생하셨습니다. 보상받으시고 가족들과 행복한 추억만드시길 응원합니다.^효녀 따님을 두셔서 뿌듯하시겠어요.건강하세요 두분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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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표-w4u
2 months ago
장은정님강일규아버님 황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실줄을빕니다 건간하시고 형통하기를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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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g8u
2 months ago
강선생님,훌륭한,따님을,두셔서.존경합니다인간은,인간답게,살수
있는,환경을,선택해야
행복을,누릴수,있습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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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eongyoung
6 months ago
은정씨 아버님 강일규님 진짜똑똑하신것 같아요.
머리가 진짜 좋아요.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크게 되실분인데 북한에서 태어나서 고생 많이 하셨는데 그래도 늦게나마 따님덕분에 한국에 오셔서 행복하게 노후를 보내게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행복하세요.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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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송-i8q
5 months ago
강은정님이 말씀을 야물딱지게 잘하
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아버님이
말씀을 구수하게 잘하시네요. 아버님
의 언변을 많이 닮았네요. 인물도 물
려주셨어요. 잘생기셨고 예쁘세요.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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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현-b9n
4 months ago
목숨걸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쓰셨어요 축복하고 응원할께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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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onkim2970
5 months ago
강일규님, 머리가 대단하십니다,
모쪼록 건강하십시요.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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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imfineman9981
2 months ago
지인 아버지 멋진분 입니다 넘 설명을 잘 재미있어요
축하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사세요.여기는 미국이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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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태-d5m
2 months ago
아버님 넘슬기롭네요
잼나게 보아서요
대한민국 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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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우리 담당 보이더니 내 앞에 딱 나타나는데 법이 들리더라고 보이지 아바이 어떻게 내려왔나 그래 장사
내려왔다고 그러니까 그 보이시더니 아바이 나부 처자에 가서 하잖아가 그래 반병 정도 먹었는데 그때
보시더니 다시 물어보더라 장사하려고 왔다고 진짜 장벌이 왔나 그래 그래서 아 진짜 장벌이 왔다고 아 내가
아바이 왜 왔는지 아는데 아바이 거짓말 하지 말라야 야 막 그 말이 성지다 사실 내 딸만 날에 왔는데 저
날에 왔는데이 새끼가 아이고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이 끝까지 니니 마지막에 아예 정세이
지주라고 내 아바 왜 앉지 안다고 아바의 딸 만나이 왔죠 아바의 딸이 지금 남성에
[음악] 갔다 안녕하세요 강은정 TV 운영하고
있는 강은정 있니다 저번에 영상에 나왔었는데요 너무 예쁘게 봐 주시고
댓글도 정말 잘 달아 주셔서 많은 힘을 얻었고 또 좋았습니다 오늘 또
아버지와 함께 나왔는데요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강은이 아버지 강입니다
오늘또 오늘은 이렇게 우리 딸이 우리 또 가장에서 따라왔는데 이렇게 오늘
또 유튜브를 할 줄을 모르고 왔습니다 찾아 주셔서 정말 대단히 감사합니다
가족들 중 한 명이 탈북을 하면 북한에 남은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는 것으로 아는데요 보통 어떤
일들을 겪게 되나요 일단 제가 2008년 1월에 집을 나올 때
편지만 한 장 써 크 나왔거든요 뭐 나는 장군님이 싫고이 나라가 싫어서
가는게 아니다 근데 물론 그 편지가 나중에 부모님을 살리긴 했어요 근데 그때 이제 저는 사상이 빨개 가지고
진짜 그렇게 써 놓고 중국으로 탈북을 돈 볼로 했는데 결국에 팔려
다녔잖아요 그리고 나서 이제 나중에 부모님이 제 편지를 발견하시고 첫
통화를 제가 탈곡하고 나서 다음 해 2009년 10월에 아버지 했죠
2009년 그렇죠 맞아 그때 내가 딱 기억하는게 400만 원을 정확히 모았거든요 처음으로 더 보내려고 딱
전화했는데 우리 아버지 첫마디가 그니까 거기서 엄마와 아버지 차이가 나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정말 대단한
여인이에요 깨어 있어요 엄마는 아 네가 어디에가 있든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근데 아버지가 자꾸 물어보는게 엄마하고 아버지 동시 통화 있거든요 노대가 있니 그래서 내가 남 저기
한국이라고 하니까 못 알아 들으시더니 나 선에 왔어요 하니까 첫마디가 야 이놈 뱀나 너 고기가
못가 너 거기 가서 절대로 나라를 뭐 어쩌는 거 역적이 되지 말라 이러는
거예요 그 그 역적이 되지 말라는게 기자 회견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누가
나가은 거 소개한다고 기자 회견을 해요 근데 북한에서 하도 뭐 기자 회견 시키고 뭐 하고 한다니까 이제
그때부터 이제 아버지가 통화를 하다가 저랑 잡혀서 정말 저는 부모님들이
이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때부터이 가정에 이제 탈북자 한 명이 나왔잖아요 한국가게 다들 통
났으니까 그래 그때부터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엄청난 감시와 핍박을 또
받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 좀 했어요 버지 어떻게 됐는가 하게 되면은 2009년도 날짜도 잊혀지지 않아
9월 5일이야 그날 나는 직장에 갔다 와서 12시 되면은 끝난 직장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 와서 밥을 먹는다 그거요 근데 정신을 아직도 공장
기업소에서 밥먹게 주는 것이 한것도 없어요 공장에 좀 본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게 주고 하고 집이 가까운
사람들은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공작으로 다시 간단 말이야 이렇게 월급도 못 받으면서 밥을
먹으래 집에 쳐 하는데는 집에 와서 문을 쳐 까니 저쪽 방구석에 남자 한
45세 쯤 된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어 그리고 너희 엄마가 탁 문여니까
빨리 들어라 그러면서이나 그 남자가 누군지 모르니까 은정이한테 서식이 왔다는 거야 그래 이분이 그 서식을
깨지고 왔대 아 고맙다고 그런데 그분이 9월 어 그니까 9월 7일 날 무산 딸한테 서시고 한데 딸을 만나
보겠나 하더라고 아 만나 본다고 만나봐야 된다고 그러니까 그러면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서 9월 7일 날 무산에서 만나자고 하더라고 한경국도 무산 무산 그니 우리 나는 그때
량강도 대응단 우배 있었는데이 무산고 대단하고 거리가 180 이예요 거리가
그렇게 멀어요 근데 북한에는 뭐 여기 대한민국은 180년이가 뭐 집이지 옆집 아니고서 차 고저 두 시간이면
휙 닿는데 북한은 그렇지 못해요 제비로 가야 되는데 9월 5일 날
그분한테 만난다 약속 다 하고 집사람한테 빨리 점심 식사 시키라 했는데 우리 그분이 딱 한 10분도
안 있어어 딱 그전 만났던 약속만 하고 난 밥 안 먹 안 먹어도 된다고 그래서 난 가겠다고 나가어 그리고
그다음엔 점심도 안 먹고 갔는데 우리 9월 6일 날 아침에 떠 났단 말이야 무산으로 그 하루 종일 그 그 차집
가야 되는데서 우리 집사람하고 나 들이 무산으로 출발했지 9월 6일 날
무산에 도착해서 그 우리 그 대기 집이라고 덧 내고 자는 집이 있어요
그 아는 친구가 있는데 무산에 그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무산 역에 나가는데 무산 역은 아직도 북한
욕은 다 그래요 면으로 긴 장대 우자가 나무로 한 장대 우자가 다 이렇게 다 들려 있어요 그리고 가운데
또 우자가 이렇게 넣고 계속 그렇게 했는데 거기 우자의 정 도어 있는데 아 그때 물어봤어 우리 운종가 지금
어디 있나 그러니까 중국 청도 있다고 하더라고 중국 청도 있다 그래서 아 잘 있니까 잘 있대 근데 우리 운종가
집에 따님이 돈도 보내 갔다고 하더라 그게 목적이 예 그래서 알겠다고 그
돈을 받기 위해서 듣고네 소식을 듣기 위해서도 12시에서 12시 30분 사이에 태양상이라고 했어 김 이단
김성 당신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다 하는 거 나 피세 글 쓴 거데 그
앞에서 만나자고 하더라고 그렇게 약속을 하고서 우리자 자 누워서 또 너 만날 생각을 저 환상을 하고
있는데 돈받을 환상을 근데 눈을 감고 저게 환상을 하고데를 채 눈을 번
까니 아니 원래다 딱 내 앞에 담당 보이 지더니 딱서 있는 거야 어때
당시 막 서람이 싸 가더라고 야가 이거 왜 내려왔냐 아 내 앞에 우리 담당 보이더니 내 앞에 딱 나타났는데
법이 질리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벌다 일어나서 보시던 동신 어게 내려왔어요니까 자기 무슨 부장 싱
그름을 내려왔 때 보위 부장 대단군 보위 부장이 신부를 내려왔다 그래서 보이지 아바이 어떻게 내려왔나 그래
그때 당신 내 나이가 50만 쯤 되고이 버지 도는 35 살인가여
정도밖에 안 됐어요 파한 젊은 사람인데 장사 내려왔다고 그러니까 그
보시더니 아 장사 왔어요 하더니 아바 나고 저기 가서 술한잔 할까요 그러더라고 그때가 아시가
넘었는데 아 이건 12시에 딸을 만나야 되는데 이거 보도는 술을 먹자고 하지 거부하기도 좀 미안하고
그래서 우물쭈물하다가 빠지더니 아 가서 술한잔 합시다 또 그 단불도 하길래 할 수 없어 그럼 술한잔
갑시다 난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랬지 계산 못해요 그 보 보이더니
또 술 사 달라고 또 그런 줄 알고 술한잔 나보고 내라는 줄 알고 나
저리 아야 아니 돈이 없다고 그랬지 그니까 아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가자고 그래서 그다음에 그 시장에
나가는데 무산 시장 말고도 무산 무산 족 앞에는 음식 장사들이 그 쫙 한
100m 그서 양옆에 그서 쫙 앉아 있어 개인 장사 음식 장사꾼들이 요하는 밥상 하나 놓고 밖에 주에
가서 연탄 두 세 개 피워 놓고 그걸로 뭐 끓여도 주고 국도 끓여
주고 한는데 거기 갔더니 어머니는 여기서 식사하세요 하더라고 그 우리
집사람은 거기 이거 식탁이 쫙 많은데 다 개인장 사니까 그 앞에서 뭐 두부
한 모 돼지고기 한 접시에 밥한 그기 이게 사주 아만이 나고 저자에 가서 한잖아 그래 그 우리 집사람은 여기다
음식을 쏴주고 나고 둘 이야기하 갔다
그거야참지 뭐 두부 두마에 돼지고기에 뭐이 술 한 벽에 뭐 사더라고 그래서
술을 한 병을 들려서 다 먹었지 또 한 병 또 사 난 지금 거저 야이
새끼가 이거 왜 내려가이고 지금이 심속 서 있었는데데
또 술 한명을 또 사 아 이거 12시 되면 늘 만해야 되겠는데 그래서 한 병 먹고 한 두 병째 한 반 병 정도
먹었는데 그때 버지도 다시 물어보더라 아방이 요게 무산에 왜 왔나 나 장사
하려 왔다고 장 벌려 왔다고 진짜 장벌이 왔나 그래 그래서 아 진짜 장벌이 왔다고 아봐 내가 아바이 왜
왔는지 아는데 아바이 고짓말 하지 말라는 거야 야 막 그 말이 성지다이 새끼가 사시데 딸만 날에 왔는데 저
날에 왔는데이 새끼가 아이고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같 기도 하고 이상아 막 그저 지금 가슴이 조서
앉아 있는데 아바이 나 장사에 왔다고 끝까지 니 마지막에 아예 정세이
지더라고 아바 내 아바 왜 한지 안다고 아바 장사에 한게 아니라고 아바 딸 만나에 왔죠 딱 찍 들라고
야 그 순간에 진짜 이거 딸 만나에 전화를 통화를 하려 왔는데 아 이거
진짜를 야가 찍찍 찍어 되더라고 딸만 왔지 하더라 딱 물이 되도 아니라구
나 딸만 아 안 왔다고 나 잠 버려 왔다고 끝까지 아바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아바이 그러다면 나야 색
파에게 주고 들려 되는데 아바이 딸 만나려 거 돼 거짓말 하나 아니 내가
무슨 거짓말이 나 딸 만 날에 왔다고 그러니까 아바이가 딸 만나이 우리 다 안다 뭐하나 그러니까 아바니 딸이
지금 어디 간지 않아 모른다고 그 저 평남도청에 딸이 지금 남에 갔다고 딸 만나려 한
거 아닌가 그들 아니 이제 오제 어제 그저 만해도 연락오는 중국 청도 있다
그랬는데 아 이거 보도는 남수 손에 갔다는 거야 아 그래서 야이 새끼가 이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거
모르겠다 버지도 동제 그걸 어떻게 하는 거 우리 딸이 남에 가는지 어디 가는지 그러니까 그때 말을 하더
아바의 딸이 남성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게 해 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건 그때 당시 전화에 도청이 됐다는 거야 네가 우리 딸이 북한
무산군고 전화하는 거 그걸 말해 주더라고 근데 그때당시 당시는 국가 보위부가 아 북한 국경 연선의 큰
도시들 까니 자 신호주 만포 해산 무산 회령이 입자에 보청기를 다
설치하고 있었단 말이야 근데 우리는 그걸 모르지데 그럼 부산에 설치된
더쳐 기 내가 그 브로커 전라 하는게 그게 다 떨쳐야 됐다 그거예요 그래서
보위부가 알았단 말이야 국가 보위부는 그때 당시 상급이니 그 도청 자료를
무산군 보에도 안 하려고 한국도 더 보에도 안 할래요 그 도청자 직접
중앙 평양 국가 보임으로 원래 보관 선단 말이야 그렇게 쌓는데는 그게
국가 보에서 자 우리 이런 감 도청을 했다 하니까 그다음에 주소는 그뭐 다
말했거든 그 아버지 어머니 만나게 하려면 주설 대줘야 되잖아요 아버지 이름 엄마 이름 대단군 뭐 운 몇반
이거 다 알려 줬단 말이야 그니까 그게 다 도청이 됐으니 그 도청 된 자료를 국가 안부에 보고를 했지
그러니까 국가 안전부 양강도 보로 전화가 내려왔다 말이야 량강도 대단
후에 이런 사람이 사는가 확인하라 그러니까 그 국가 보에서 도보로 그
통지서가 내니 도보에서 대단 보위를 또 전화했다 말이야는 보다 아는데
그니까 그다음에 거기서 이런 사람이 있다 하니까 그다음에 그게 다시 더 보위를 통해서 국가전 보로 다 보고
올라갔다면이다 한다 하니까 다시 국가보위 위에서 더 보이로 명령이 떨어 생긴 뭐니까 거지 그 강일규
딸이 남조선에 갔는데 그 딸이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 갔다고 한다 도보다
명령을 뚫고 단 말이야 만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브로커를 연락을 무조건 잡으라 이렇게 명령이 하달
됐단 말이야 그러면서 그때 어떤 명령이 떨어지는가 보이더니 말을 김정일이 테지 보고가
되가지고 김정일이가 그게 난 모르지 보이지 더니 말한다 거야 김정일이가
우리 이대한 장군 님 김정일 동지께서 무조건 체포하는 명록이 떨어졌다는
거야 야 이거 완전 이러 명령인데 큰일이죠 더 보위부는 이걸 잡아야
된다 그거야참지 결 라고는 그런데 왜냐면
한국이랑 연결되요 그거를 더 중앙 보위부에서 그거를 보고를 받고 대응단
보위부가 그래도 스스 감치 싸고 우리를 항상 감시하고 있던 차이지요
그 찰나인데 연락원 잡으려고 이집에 반드시 무산에서 연원이 온다 하는 걸
알고 완전히 잠복해이 감신을 하고 있었는데 날이 바로 12시 나니까이
보 연락원도 다 밥먹으러 간 거 같아 점심 시간에 그 연락원 밥먹을 기간 사이 연락원 왔다 갔으니까 연락관이
왔다 가는 걸 못 봤다 그거요 아 하늘이 도왔다 아버지 그다음엔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그럼 몰랐지 그래서
우린 6일날 출발하지 나선 부산에 근데 보이시더니 우리 집에 항상 감시하고 있었는데 감시자들 터 보고
받던게 그집 감 치네 없다 지금서 우리 집에 당 급이 달려 내려왔지
내려와서 뭔가이 나고 우리 집사람은 없고 우리 장모가 살아 있는데 장모가 그때 86가 됐는데 힘에 걸려서
아무것도 몰라요 그니 그 장모한테 물어보니 난 몰라 난 몰라 그
모른다는 소리밖에 사실 모르니까들을 소리가 없다
그거야말로 한테도 절대 그런 말 안 해요 집사람하고 우리 처지하는 친형제가 나네요 그래도 그거 비밀에
딱 지키고 비밀 루소를 안 한다고 친 형제가 아니도 무선에 장벌 간다
이렇게 말을 했단 말이 그러니까 너 엄마가 너 엄마한테 우리 7일 날
8일 날이면 오니까이 너 엄마한테 밥 좀 해 주라 그 부탁하고 왔단 말이
그러니까 그런데는 보더니 우리 행철 모르니까 우리 초진의 집으로 갔지 저
초지 테 가서 살살 꼬 있지 아 내가 지금 아저씨하고를 좀 꼭 만나야
되겠는데 집에 가니까 없더라데 어머니한테 물어보니까 어디 가는지 모른다고 하더라 모른다고 하더라
아저씨하고 언니를 꼭 만나야 되겠는데 어디 가는지 모르나 그 우리 처지라는 건 용문을 모르니까 언니하고 아저씨
좀 무산에 장부에 가는데요 그래서 보위부가 출천 아 무산으로 갔구나 하는 거 알았단 말이야 그래서 6일
날 우리가 떠난 다음에 그 뒤로 보이지도 단을 내려왔다 무산으로 그 내려와서 7일 날 우리 절에서 잡았다
그거요 버시 잡아서 거기서 지금 신문을 하지 그 말 한다 그야 그런데는 보시더니 일날 술한잔 먹고
하는 말이 뭡니까 그거 이야기를 쭉 하고서 우리 장군님의 병원이 지켜야 되겠는데 관철해야 되겠는데 우리
윤락을 꼭 잡아야 되겠는데 아바 연락은 좀 참대 방송해 달라는 거야 이제 완전 드러난 상태다 말이야 예
그래서 그다음 거기서 안돼 가서 우기다가 안되 와서 내가 맞다 나 딸만 하래 왔다음 맞지요 맞다고 토로
놨지 그때 뭐 더 우게 안 돼 그거는 그래서 맞다 하니까 그러면 아방이 연락을 잡 돼서 협조해 달라 그
연락을 잡는데는 우리 없이는 못 잡는단 말이야 누군지 모르니까 그 연락원 그 보 보이지 더니 그 연락을
잠들 협조해 달라니까 협제 주 갔다 그랬지 그러니 꼭 좀 해 달라고 하더니 책을 꺼내 쓰기 시작해 어디서
장소는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 무산 거의 저저 태양상 앞에서 12세
12세 반사에 만나기로 했다 이름 하났어 이름 뭐 주소 하나 주소 모른다 연락관이 이런
주소 절대 안 알려줘요 그 보이도 보 수준이에요 버이브 그건 알아요 연락원 그이 우리한테 자기 주소 성명 이름
안 돼 준다는 건 알아 그니까 그 뭐 돈 묻지않아 그다음엔 나이는 몇 살때다 뭐했는가 한 45살 쯤 다
보다 특징이 뭐인가 자 키는 얼마나 얼마가 키다면 뭐이 뚱뚱한가 날씬
한가 버터가 물어봐 키는 큰가 중 키가 작은 키가 물어보고 뭐면
뚱뚱한가 날씬한가 뚱뚱한가 다 물어보고 아 그래서 키는 한 한 1m
한 65점 되고 몸은 좀 통통한 편이다 다 써 그다음에 특징을 물어봐
그 사람의 특징이 뭐인가 그 특징이라는 건 뭐야 그러니까 얼굴이 동그 한가 개수한가 그다음에 머리는
어떻게 하고 다니는가 뭐 다 털어놨죠 그죠 시간 장소 생김새 뭐 이거 다
이야기했다 라고 뭐면 다부지 사람이 한두 명이야
그게 뭐 무산 땅에이 인구 한 만이라 하게 되면은 그때 당시 무산 인구에
10만으로 알고 있었는데 진짜 만인지 모르겠는데 10만 가운데 남자들 문산
인구 한 절반 여자고 절반 남자 한 5만 명 중에서 그 태격 같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 몇천 명 몇만 명 만 명
이상 되겠는데 그 누군지 몰라 그거는 그다음 책을 탁 덮더니 나는 뭐 보시도 하고 협조 왔다고 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제 연락 장소로 나가지 연락을 만날 장소로 11시 한
30분인가 40분 그 정도 돼서 먼저 나가서 연락 장소에 야 나갔는데 벌써
보시던 저자에 와 있어 딱 지키고 있어 어 그다음에이 하고 있는데 한참
앉아보니까 저자에 버전이 자이고 그게 삼 거리야 거리가 거리가 이렇게
이렇게 삼거리인데요 삼거리 보지도 일장 마은는 대이 별 한 별 별
대할다는 장교대 여기를 만하면 장교 대기하고 있거나 체발 딱 거기 움직이질 않아 아 저 새끼 체포조
망라된 사람이구나 그리고 또 여자에 사버 그리는데 농님 뭐 이거 전 그
농사꾼들 뚱 그한 이런 모자 쓰고 있잖아요 북한인 그 대패 대패질 나무
대패 밥으로 그 모자를 만들어서 북한에 눈이 여기는 건 밀집 그런 거 하잖아 근데 그걸로 만드는 모사를
수서 그 사람 장사도 안 하는데이 하고 가만한 자 있 근데 아버지 대단한게 그게 다 보여요 누가 누구이
다른 사람들 다 움직이고 장사하는데 그 한 곳에 다 들 있으니까 알리지 뭐 우 대단한 어 지금이 신경에 권두
권두 소수니까 아 새 사람은 리더라고 그 나머지는 알리지는데 몇 명이 더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저 세 사람들이 우리 연락을 체포하기 한 체포 조의
막나 성원 들이구나 한걸 느꼈단 말이야 그런데 그날 내가 또 그 전에
무산에서 보이시하고 이야기할 때 체포 하는 것 방조하다 다 말하고 마지막에
뭘 말했는가 아 보시던 동지 나 이거 오늘 우리 딸한테 돈을 받기로 했는데
그 돈을 좀 받은 다음에 체포하면 어떤가 돈을 좀 받은 다음면 체포해 달라 그랬지 그러면서 내가 그 돈을
받으면은 보여지던 통지한 짭짤하게 인사하겠다 그러니까 돈을 주겠다
소리를 했단 말이요 돈을 주겠 잘 인사를 하겠습니다고 돈을 을 받은 다음에 체포시 체포 합시다 그래야
나도 살 수 있지 않나 그러니까 그리고 내 버지도 자자리 인사 갔다고 했으니까 자기도 그 돈 받으면 돈을
챙겨 지잖아 그래서 그다면 하 그러니까 한 30초 이상 가만히서
요라고 더는 얼마나 보내겠어요 탁 물어봐 그어 그다 거짓 말했지만
달러를 2만 달러를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을 했지만 돈 얼마 보낸 것도 모르는데 사실은 달러를
2만 달러면 북한이 대단해요 그때 달러 한 장에 한 70만 원 70만
원 할 때 100달러에도 70만 80만 할 때요 어마어마한 곳 그때 당시는 2만
달러를 고짓말 보내 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 새끼가 했더니 2만 달러
하더니 자기 돈이 역심 났던 거 같아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아바이 아바이
요구대로 돈을 받은 다음에 체포하겠다 하기로 하자 근데 아마 철저하게 우리
방조 잘아 다 반시 잡아야 된다 하도라 해 알겠습니다 그렇게하고 해단
말이야 그 해져서 12시간 11시간 반쯤 돼서 연락 장소는 세곳에 이렇게
있어 그런데 그때 생각이 뭔가 야 이거 보여주더니 약속을 지키게 안지키
건 문제야 의심이 드는게 야간 이거 진짜 나 돈을 바꿔서 체포 하겠는지
연락을 보자마자 돈 받기 전에 체포하지 그건데 믿음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다음에 야 저 시든 내가 검토를 한번 해야 되겠다이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그때가 12시 전에야 담비 때 하늘 첫고해 들고 옆에
사람이 때 가서 불은 내게 있지 뭐 어 일부러 나 불이 없는데 불 전부
타자고 말을 고르지 그 나이탈 꺼내 줘 아 그럼 그때 체포하지 안하는지 보어 그래서 담배를 담배를 피면서
내가 위에 말을 걸지 모른 사람이지만 말을 하면서 조금 한 2 3분
있었는데 딱 집게만 보고 체포를 안해 그래서 야 이거 보이더니 약속을
지키네 이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시계 보니까 시계가 12시 좋냐 이거
12시에서 12시 30분 사이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는 무조건
열원이 접수하게는데 이거 12시 전에 만나기 때문에 야가 체포를 하지 않지
않는가 연원이 아니라는 걸 알고 그 12시에서 12시 30분 사이는 무조건 포야 되는데 그건 12시 전에
만난 거 아니야 그래서 12시가 지나서 다시 한번 들 또들로 갔지
12시 한 5분쯤 된 거 같아 그때 그런데 그 옆에 북한이 이렇게 종이를
이렇게 말아서 이렇게 꼬깔 어 꼬깔이이 꼬깔을 만들잖아 요렇게 그서
여기다 해바라기로 여기서 파는 거 있는데 그거 한 봉 제울 뭐
500원인가 1 천원인가 뭐 잘 그 가격을 몰라서 그렇게 그래서 그걸 하나 샀지 뭐 장상 사서 그 옆에 그
의자도 없어 무슨 그 세멘트 그 무슨 그 있는데 거기 거기 앉아서 패티
놓으면서 저쪽에 사람은 지금 이어 하고 있지 뭐 모르지 뭐 이거 뭐 상지 아저씨요 하니까 돌리다 해봐라이
잡수세요 그랬 이전 12시가 넘무 12시 경이 되니까 이제 이제 잡는
거는 진짜 약속 안 지키는거다 어 약속을 이제 하는 건 약속을 지키는거다 이제는 내가 저자를 만난
거로 되지않아 연락오는이 12시가 지났기 때문에 그래서 그분한테 그러니까 그분 척 보더니 북한 사람들
그때 당시 배가 고파서 허를 길 텐데 그래서 아무거 뭐하면 제일 반가운게 그거예요 해바라 뭐니까 다 떨더니
척하더니 야 이거 저 왔습니다 하더니 들서 해방에 씨을 까먹지 그러면서
말을 하지 이런 말처럼 말 세포 안 하더라고 야여 보이시더니 약속을
지키나 어 오케이 응 보이시더니 제포 안 하기 때문에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확인했 말이야 보이시더니 약속을 지키는 진짜나 돈을 받은 다음에 체포하려고 하는구나 그걸 알고게다면
그 생발 실을 까먹으면서 저 앉 나 연락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살피고 있죠 그 저 있데 연락에 저작에서 한
50m 밖에서 천천히 골라와 고와 어떻이야 딱 세놈 세 명이 지금 딱
체포 체포서 맞아 움직이지 않아 끝까지도 그 새 사람은 연락원 욕
모르지 뭐 지금 천천히 걸어와 연락원 테 마주 가지 뭐 천천히 마주 가는데
열라고 나오고 나오고 오게 살짝 싹 스치면서 지할 때 내뒤로 한 20m
뒤를 따르세요 그래 하더라고 아니 라고니 그 보지들은 그 우리 스치면서
이렇게 소리 싹 어기면서 한 말을 듣지도 못하고 모른단 말이야 그래서
난 또 한 그 말을 듣고 한 10m 더 쑥 지나갔다 가서 그다음에 쑥
돌아서서 응 연락은 뒤를 따라가기 시작하는데 보지들은 야는 연락원
누군지도 몰라 그 우리집 사람은 너만을 다 만나신 거 안다 그거요
서기다면 나한테 오더라고 저 연락은 뒤로 한 2 30m 떨어져 따르자 그렇지 알겠어 따르시오 100m 점
나가서 저 뒤를 돌아보니까 세사람 뒤 다르더라고 그 세 사람 지어져야
아지가 정확히 봤네 어 바이브 성원들이 세 사람이야 그 세 사람이 다르더라고 엄마보고 좀 더 천천히
가자 해체해서 연락은 하고 우리 사이가 한 50m 이상 어 근데 그
가운데 끼워서 가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지 근데이 보시던 그이이 체포조
우리가 내가 락원을 접선했다 건 알아 아는데 지금 누구를 누가 따 누구를
따라가는지 몰라 그 가운데 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연락원이 누군지 몰라 그래서 그다음에 쭉 가다 가서
그 거기 그게 어디거 하게 되면 지도상 놓고 보게 되면요 무산 여기서
산 남산 시장으로 나가다가 음 무산 그 성리로 나가는 도어가 있어 근데
그 성리로 착 나가다 다리를 착 건너 다리를 건너기 전에 싹 어서 덜기
전에 여기 두만강 그런데 두만강 기술계 뭐 있는 거 하게 되면 무산군
야회 경기장이이 덜로 만든 그 우자 돼야 거기 무산 거 아예 경기장이
거기서 실성 다리 착고 서게 되면은 그 옛날에 90년 동가 그때 거기
한번 시장을 만드는 적이 중국 사람 들 나올 때 근데 그 시장 앞에는 쫙
벼랑이 한 50m 한 30m 50m 되 벼랑이 쫙 돌려 맞게 있어 그 그
앞에는 한 천평 되는 옥수수 파티야 연락하니이 옥수수 바티 있게 칠성이
다리고 벼랑이고 이게 앞에 옥서스 밭인데여 끝에 와서 바이 앉 차서
기다리고 있어 결고 보이 우리 딸은 몰라 탁 앉혀서 우리 오길 기다려
그래서 첫 가까이 가니까 이쪽으로 갑시다 하더 그 옥수스 왔더 휙 들어가더라고 그래서 우리도 너하고 너
엄마하고 나하고 둘이 휙 따라 들어갔지 아니 그 제 옥수스 키가 니 한 길도 한 두메 정도 되는데 거
빼곡이시면 옥수 북한은 옥수수 포기 포기 사기가 30cm 30cm 요게
그래서요 정도밖에 안 돼요 포기 포기 사이가 그 반 이랑이이 70cm 그
배가은 옥수수 밭에 들어가는데 소에서 어떻게 따라잡아 아마 사냥개가 있으면
이 냄새 막고 죽여는데 이건 발자국도 잘 안 안 나타나 그 뭐 눈이 왔어
뭐가 왔어 쑥 들어갔지 들어가니까 이다면 그 벼랑이 쫙 이렇게는데 한쪽
옆으로 험이 쪽인데 굴로 장마처럼 비가 빗물이 쏟아져 내려 것이 아데
그 비 물은 없어 그 경사가 급해 고기로 올라가자는 거 아 근데 그근데
그 여자들이 뭐 잘 올라가 엄마는 못 올라가지 자리니 연락은 앞에서 손
먹잡 끌고 나는 뒤에서 밀 가면서 한 50m 올라가서 어 벼랑 구대
그러니까 쫙 올라가니까 자 그자 환 내려다 보시 저 딱 앞에 놓으니 무산
거 야외 경기장 있고이 건 거 기술계는 두만강 르고 그 중국 땅에는
경이 그냥 다 보였네 어 중국 땅에는 그 정각 같은 거 뭐 사각 기둥 세고
그 기지 렇게 거 있다는거 정각이다 나 그걸 그런 거 그게 한 도서에 돼
거 다 보이고 한 내려다 보이죠 근데 요쪽 끝에 옥수 밭 끝에 보이지는
하나소 있고 두 명의 애 끝에 가서 딱 지키고 있더라고다면 우리가 터라서 내가 내려다 니 시도 쫙 올려다
보더라고 나를 어 소름돋다 소위가 다 알고 있으면 나야데 연락하는 영말 나
근데 연락원 전화이 탁는데 따다다다 남선 전데 30전 천에 연결이데 자
그렇게 빨리 되더라고 기다리고 연결됐어요 전화받으세요 딸 딸님이 하더라고 전화길 탁쳐 전화받았는데
뭐뭐 처음에 뭐이 웃슨 부담 나와 너어디 그내 거기서 확인했지 너지
어디 있니 하니까 남쪽에 남 안에 떡 내와야대 그래서 그때 그때 당시
생각이 야 이것도 도청되고 그래서 그다 너한테 야
고기는 왜 간너 어 남성에 가서도 절대 우리 장군님과 나라를 배반 일을
하지 말라 그 도청 될까 봐 그만 해 아버지 상 그리고 그다음에 연락은
독촉에 빨리 전화하라고 그러면서 너하고 네가 그때 그러잖아 아버지
내가 돈을 내일 보내겠네 돈을 받으면은 돈 받았다는 확인 전화를 꼭
하세요 그래 어 알겠어 하고 그면 너한테 전화하게 좋지 근데
너도 이게 전화를 해 그런데 전화하는 도중에 난 지금 쫙 내려다보지
내려다보 이거 연락은 이거 어떻게 살려야 되겠네 일라니 아고 이저 미행 붙었다고 말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내가 이제 왜 그걸 해 말 못 해주나 연락원한테 내가 연락원한테 그날이 자
우리들 보니 우리 지금 감시하고 지금 자네가 다 포자다 이걸 알려 주잖아요
그럼 보 그 연락하니 후에 그런 다 다른 일을 하다가 또 잡혀서 검문
속에서 그때 내가 살아난 것은이 은정희 아버지가 다다 알려줬기 때문에
내가 돈겠다 근데 아버지 그 어떻게 그 풀 그렇게 다 내다 봐 그런 속에서 그 그정 서름 돋는다 아버지
그래서 그거를 말 못해주고 왔더라고 앞으로 이거 안나를 위해서
여기 하나 있고이자 끝에 있지이자 칠성로 내려가는 거 경기장을 싹 지나서 칠성리 다리를 탁 건너 서고
거기서이 벼랑이 이거 다리 다 돌은 쫙 칠성리 쪽으로 나가 여기서 회
고어 들더니 빨간 얻어 버가 여기서 한대 쫙 하더니 회 고어 들더니 그 두 사람이 데 와서 딱 얻어 봐
한데서 체포 조가 친구당 변전 체포조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겠는데
각 곳이 체포조 있었을 거야 막 딱 서더니 말미마다 하더니 딱 우리 쪽을
원리다 보더라고 전화 더 청들은 거 아니야 몰가서 두던지 자전 먹겠지
모르는데 고순 인간한테 연락오는데 딱 센트 만 줬지 등치만 살리 만준 거요 아저 연락은 저 아래 빨간 오다 봐요
한대 어 우리 쪽을 올리다 보인데요 탁 하니까 연락은 그때야 탁 내려다
보니 아봐 우리 지금 이거 도청 전화 도청 돼요 우리 장소 탈러 놨어요
전화 빨리 끊고 뜁시다 딱 하더라고 야 살렸네 연락원 살렸네 아버지 응
그래서 탄도 못 받고 그다음 연락 원이 그다음 거기서 내일 아침 10시에 무산 인민학교 앞에서
만납시다 딱 약속을 해 알겠어요 어 다시 내일 만나지 그래서 그다면 아버지 어머니 이쪽으로 가고 나는
이쪽으로가 거기서 쫙 달라졌지만 근데 거기가 바로 곧 벼랑 위에가 그게
옥수수 밭이야 다 산이 근데 거기서 칠성리 데는 오설 길이 지름길이
고객끼리 고기가 높지도 않아 얼마 50m 70m데 고기 고개가 이렇게
질러는 있는데 근데 거기서 옥수수 탁해져서 그 창 내려와 지적으로 서로
갈라지지 뭐 반도 못 받고 그 내일 아침 열심히 무산 인민 학교에서 만나자는 것만 약속하고 그래서
그다음에 내려와서 오설 길로 해서 따른 내려서 그 다시 길로 지금 다시
가고 있다고 그거 근데 한참 가는데 한 서른한 대여소 살라는 여자가 아줌마야 타날 세워 왜요 아저씨하고
같 같이 가신 사람 어떻게 됐어요 그래 이상수 없더라고 아 나는 그런
사람 없는데 아저씨 그러지 말고 솔직히 이야기하라고 아 왜 뭘 설치
아저씨 뒤에 지금 보위부가 따라 와 연락원 대박이다 감시 뒤에 감시 붙인
거야 어 열 여기다가 그러더라고 그래서 바이브가 우리 뒤를 따른다는
게야 그 여자 말이 옳단 말이야 우리 가내 우린 비행을 했다는거 맞는 소리를 하더라고 그래서 그래서 그때
설 말했지 그 아저씨는 우리 해제에서 아저씨 자를 가고 우리 이쪽으로 왔다
잡히잖아 체포 안 됐나 물어봐 그랬어 아 체포 안 됐다고 야 당이다 하더니
아저씨 빨리 가세요 하더니 그 그 여자는 그쪽으로 달리 간다
그거야참지 어기서 소위가 지금 대기하고 있어 내가 돈을 받은 다음 체포 하기로 해어 음가 해도 그
장에서 연락이 누군지 몰라서 체 못해 우리는 연락원 연락원 앞으로 가고
나는 우린 또 러간 뒤로 한 50m 뒤 따라가지 우리 뒤로 또이 보이지도 소위가 뒤로 따른다 거고요 돌리다
아니 딱 같이 오는게 아니야 한 기자들 미씩 떨어져서 야들도 뒤 따르더라 그런데 그 보여지던 뒤를 또
우리 라원이 연원에 또 또 미을 안는 거야지 진짜 재밌다 하다 아버지 어
완전히 우리 나 다시 듣는데 너무 쫄깃하네 그러니까 라고는 우리의 뒤를
또 감시를 붙어 준거다
그거야말로 또 보브 뒤에는 그 연락원 성원이 또
미행하고 이렇게 됐더라고 그다음에 연락원 살렸네
어쨌든 열라고 살 살렸지 돈도 못 받았지 그리고 그다음에 뭐 할 수 없지만 그다음에 오히려 나 장마당에
시장에 가서 연락을 지금 기다리고 있 보지도 기다려 내가 한 시간 만내 한
두 시간이 있으니까 보시더니 그 우지나 어리 찬으로 헤매 거 같아 예
우리가 만난 자는 장 약속은 없었으니까니까 시장 쪽으로 걸어 오더라고 혼자서 와 둘은 어디다 숨겨
놓고 오는지 나한테 나타나는 거 딱 혼자 나타나 그 그지 아버 시던 동치
이건 뭐 어떻게 된 거야 이런 무슨 그렇게 하나 아버지가 습했는데
아 통해 비행하려면 똑바로 와야지 그럼 무슨 미행을 그렇게 하나 어 그
라고니 비행하는 거 다 알고이 그 빨간 어드바 뭔가 그거 어더 바이가
나타나서 우리 시 장소 틀 드러났다고 뛰자 그래서 나 돈도 못 받고 해주고
말았다 그렇지 보이지도 난 좋지요
지금 제가 잘못해서 지금 제포 못된 거 만들어 놨다 그거요 우리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더 멋있다 어 그 그 그렇게 만들어놨지이는 보이지도 할
소리가 없지만 뭐라고 하겠어 지금 저희거 빨간도 봐이 때문에 미행이 드러났다는 거 사실인데 그리고서는
그다 보이더니 그 사람 무조건 잘해야 된다 그 맞단 말이야 그 김종인이 장군님의 방침이 아버지 무슨 장군님이
아직도 아니 아 그 당시죠 명령이 떨어지는데 그 안 잡으면 안 되잖아
그래서 그때로부터 그서 무산 서 뺑뺑 다더라다고 남산장 그다음에 허국장
[웃음]
삼봉장례식장 으면 못 잡는 거야 그 그렇잖아요 북한이 무슨 CCTV 있어
뭐 카메라가 있어 북한이라는 거니 대한민국 같은 CCTV 탁 보면서 아
여기 누구 어떤 사람 같다는 거 다 잡아내는데 북한은 그런게 없다 그거야참지 뭐 7일 날이 그다음에
8일 날이야 나가지 마 8일 날 또 나오래 그 또 나가서 자고서 어 그
보이지 더니 보시도 어디서 자는지 모르겠다 파일란 만났던 부산장 남산장 호곡장 삼공장 철도장
자기 어디고 저 철산 어 철산지 올라갔어요 어 철산지 올라갔 돼서
그날 고리가 꽤 되거든요 힘들게 개고생 시키네 그냥 그 출산까지 올라왔 출산까지 그 또 그 그 뭐야
그 통근차 통근 들 차단에 그거 타고 출산에 가서도 또 한 반 낮을 뱅뱅
돌면서 출산 장이라는 건 다 돌아보고 와서 8일 날 그렇게 돌아왔어 그다음 99절 9월 9일인데 9월 9월
9일은 북한 조선 공학 창군 구절 기념이 아 이거 그날은 또 술한잔
틀고 돈 바닥 해지고 와서 집에 올라가면 술한잔 잘 먹으라고 생각했는데 아 그 잘 명절 날도
떠돌지 그 그날도 그 따라만 당기면서 밥은 점심 지거 더라고요 또
돌아다녔어 또 10일 날 또 돌아서 11일 날 또 돌더니 그리고 아버지
연락 장소에 안 나갔고 일부러 다음날 만나자고 했다며 연락원 그거 안 나가 안 나갔지 그 연원이 나타나죠 도
않아 거기 왜 나타나 아 여자 다 들어갔는데 그 그렇지 아 그렇지 그렇지 만네 우리 뒤에 바이브가
행했다는 거 다거 여자가 알잖아요 다 연락이 됐데 그 장소에 나타날 거면
안 나타나지 어 그래 12일 날 아침에는 올라가자고 하더라고 멋자
갔다는 거 알겠는게 그래서 그 무산 거 대형 단적으로 오게 되면 무산 후배에서 한 리 정도 와 거기 바로
저 수원지 소소야 국정 경비대 초소가 있는데 그걸 수원지 처소 수원지 처소에 거게 수원지 불 수을 뭐 땅
벌 부산 우배 어 공급하 그래서 그 수원지 하는 거 같아 그래서 그 수원지 쳐서
수원지 쳐서 우측에는 사는데 거기는 사 살구 밭 과일 바디 근데 그
좌측에는 우측에는 거 두만강이고 어 그래서 거기까지 가는 거기서 차
타고서 그다면 찾아와서 그 대단 옷까지 올라가지 옷까지 올라가는데 보이더니 엄마하고 내 공민증 다 빼서
어디 봐 못하게 그 빼앗기다 부장 방으로 들어가 보인 부장 방이 들간
보인 부장 제자야 벌건 줄 준의 별 디를 박은 놈이야 대단히 높지 뭐
보인 부장이 두줄에 그걸 태령이라고 하는 거요 참 북한은 서인은 한 줄이고 중 중
중인은 두 줄이야 그고 장성공 들는 줄이 없어 왕별 하날 두 알 세
이렇게 해서이 두 줄에 별 디어를 박간 대조 거기다 이제 하만 박으면
장송이 되는게 서장 별 왕별 하나를 박을 사람이야 자 우 오게 다
이야기지이 보위부가 미행을 잘못했으니 이렇게 됐다 놓쳤다 그러니까이
보부상이 한심하지 그냥 보이시던 그 후에 때게 영 먹었대 왜 미행 그렇게
했나 아버지한테 당한 거죠 근데 보 부장한테 돈소리 절대 안 했어 그 보도 지켜줘야지 또 그 보이지도 어게
되는지 몰라서 이거 국가 바이브가 우리 방송 다 보잖아 다 봤지 이제는 번지도고 블랙리스트 걸려 더 보고
있잖아 지금 나 그거 다 알고 있어 우리 우리 대한민국의 탈북민들 유튜브 하는 거 다 보고 있어
지금음 근데 그 전번 내 그 방송했는데 그 보시던 뭐게 살아 있는지 뭐했는지 모르고 가서 내
보시던 잡자 건 아닌 거고 그래서 그기다 내가 보 부장한테 이야기했지만
그 이렇게 돼서 미행을 잘못해서 체포 말했다 위 부장님 그래 마지막
그 연락을 잡아야 되겠는데 부장도 그렇잖아 김정일이 명령 지켜야 되겠는데 관철해야 되는데 관철 뭐다
어떻게 돼 지켜야 되겠습니까 나한테 이걸 그걸 잡아야 되겠는데 강덕모 생각이 어떤가 그 연락에 올 거
같은가 안 올 것 같은가이 보위부가 날 또 형해 먹고야 내가 살아 나잖아
그래서 라원이 올 것 같다 그랬어요 부장한테 그랬지만 내 생각에도 연락하니 다시 올 거 같아 사실은 는
다시 안 와 그 연는 그위로 안 왔어요 그 연락오는 다시 안 와요 그래서 올 것 같다니까 보위 부장도
제 생각에는 올 것 같대 그때 오면 어떻해 그때 오면 무조건 철저히 그저
연락 붙으면서 체포 하게끔 도와주겠다 부장 좀 그러면 꼭 좀 그렇게 하자
어떻게서나 잡자 하더라고 그때 당시 북한에서 우리 전화하는 사람들은이
탈북자들은 알기 때문에 그건 다 잡아 거고 연락을 학교에서
더니어요 지금도 같아요 연락원 잡기 위해서 대한민국하면 연결해 주는 그 연락원
잡기 해서 형편없이 애를 쓰고 있어요 지금도 그래서 부장이 그 연락원 잡자면 나를 살려 줘야 된다 거야 날
잡아 없으면 이거 연락원 못 잡아 그래 나를 살려주고 우리 집에 찾아오는 연락원 다 잡으 계획이었다
그거야말로 내 번에 되면서 딸이 어떻게 돼서 갔나 그래 그래서 뭐 쭉
다 얘기했지 뭐 야간이 갔는데 우리는 3개월 후에이 편지를 써놓고 와서
3개월 후에 그 편지를 발견하고 중국에 간 거 한다 그 편지 보위부 갖다 줬어요 그러니까이 보위 부장이
그 편지 있서 있다고 그니까 가지래 그다 보위 부장 제차를 딱 태워서
보이지도 한명 딱 내 옆에 앉혀서 보내더라고 부장 차타 우리 집에 왔지 와서 집에 들어가는데 보시도 다 따
따라 들어와 다까 지키 서서 봐요 옷장을 들치고 그다 편지를 딱 찾아서
편지를 찾았다 그러니까 올라가서 올라가서 보위 부장한테 편지를 내보냈지만 보위 부장이 편지 짜
보더니 뭐 아무 뭐 나쁜 소리는 없어 거기 제가 장군님이 싫어서 가는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싫어서 가는게 아니라 난 진짜 그랬으니까 그렇게 써 놨어요 그렇게 돼서 그래서 버에서
나오고 보브는 그다음에 그때부터 우리 집서 그래서 계속 감시해 그죠 양옆
앞집 뒷집 민반장 다 감 다 감시 그리고 심지어 우리 집 앞에는
우리는여 도로고 도어 옆에 집이 있고 우리 그 집 뒤에 집이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 도로까지 한 10m 나가 감고
마 마주 쪽에 딱 장사꾼 여자가 있어 그 여자는 우리 집을 항상 감시하는
사탕과자 요만한 거 파는 거 같지만 우리 집을 감시하는 보브 스파이다
[음악]
했네요 아버지 그 도청 한번 된다면은 우리 가정은 진짜이 아 진짜 살
살얼음을 그렇지 진짜 조심스 조심스 감시 속에 2중 3중 그서 몇기의
감시 속에 정히 예 그래요 북한은 그래서 북한이 오늘까지 안망하는
이유가 이렇게 감시 사회이기 때문에 쿠테타가 이런 걸 성공을 못해요 인간까지 가까지 걸 제일 싫어하는게
북이에요 가까워요 뭘 해도 하잖아 예 그 인간 인간끼리 가깝게 등을지
지게끔 하게해서 생활 통화하는 것을 그래서 만들어 놓거다 그 거야 서로 감시하게 서로 내가 너 비판하지 네가
기분 속아서 나쁘지 나쁘지 또 사장님이 나를 비판하면 내가 기분
좋게서 나쁘지 나쁘게 본다고요 그러니까 서로 친구가 될 수 없고 서로 증오심을 가지게끔 하고
오직 뭉치는 거는 김서 김정일이 들에만 그거예요 가장 잔인하고인 그리고 북한
스파이들이 솔직히 말해서 다섯 명은 한 다섯명 중에 한 명은 스파이야
와이브 그래서 북한이 입주 주의해야 돼요 입만 주의하는게 아니라 행동
주의하고 입 잘 올려야 되고 그다음에 그 중년 식의 얼굴 표정 눈 표정 싹
다 봐요 예 그니까 예를 들면 뭐 김일성이가 죽은 그 이제 달에 우리가
슬픈 마음을 가져야 되는데 뭐 술을 먹는다던가 옷을 너무 화려하게 는다든가 웃고 떠들고 뭐 친구 술
모임 한다 이러면 이제 걸리는 거예 이게 사람 살 세상이에요 이게 만약에 김정일이가 죽었을 때 그 모임장소에서
한번 살짝 웃었다 해도서 그건 여시 잘 돼서 나 진짜 한 번만 웃어도 저
새끼 왜 웃어 야 지금 우리 장군님 소고 하셨는데 저 새끼 웃어 저새끼
시찰 대상 딱 체크해 놔요 그때부터 감시해 그것뿐 아니야 눈빛 한번이
눈빛 동이 점이 슬픈 눈빛이야 되겠는데 좀 기쁜 눈빛만 차 봐도
얼굴 표정 눈빛 몸가짐 행동 오어 싹다 감시해 그래서 아버지 항상 땅만
보고 다녔나 보다 어떤 그 요지도 안 잡히려고 그렇다고 해서 말 안 하고
행동 잘한다고 해서 또 그것도 아니야 그 말도 안 하고 행동도 안 해도 또
너무 의심스러운 자라 봐 자 끝냈다 열받아요 그래서 저
북한에서 살아간다는 거니 참 그 일반 당원들이나 성분 터 좋은 사람들이니
좀 나 그 나같 성분이 제일 나쁜 사람들이니 진짜이 조심스러운 항상
사을 사장을 걷는이 생활하는게 북한이야 나 지금 내가 탈북을 너무
잘한 거 같아 아버지 다은 후 중국으로 넘어 오시게
된 이야기를 해 주세요 와 근데 저는이 얘기를 지금 유튜브 첫 창기
때 아버지한테 듣고 벌써 5년 됐어요 거의가 그리고 다시 듣는데 너무
짜릿하고 심장 떨리고 참고 위기 속에서 아버지가 잘 헤쳐 나가셨나
우리 아버지 너무 감사하다 생각이 들고요 그 뒤에 20일 읽다가 그
우리 집에 갔던 연락원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한국으로 와 가지고 한다는 얘기가 전 이제 갑자기 연락이 끊겼
아아 돈 보내 주면 이제 그 받았다는 걸 다음날 확인하려고 하고 제가 돈 보내는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아버지
어머니 쌀밥에 거기 꿈만 먹고 사시라고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데려오는 문제는 차차로 이제 그런
꿈을 갖고 있었는데 다음 날에 연락이 안 하는 거예요 그니까 제가 먼저 못 해요 저쪽은 전화기가 꼬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20일이 지나서 저 그 사이에 지금 별 생각 다 한 거죠 잡혔구나 끝내는 잡혔구나 생각을 해서
안 그런 연락 안 할 일이 없잖아요 근데 연락이 와서 한다는 얘기가 잡혔대 그리고 자기가 뒤로 알아봤는데
아버지 엄마가 보위에 체퍼 돼서 올라갔네요 근데 얘기 들어 보니까 올라간 것까지 맞아요 한단 얘기가
아버지 어머니가 지금 이게 한국이라는게 밝혀져서 돌아가신 거
같대요 그리고 언니 오빠는 도망쳐 나가는데 행방 불명 됐대요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제가 그때 돌아가셨구나고 100% 확신했던 이유가 뭐냐면 아까 초반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집은 적대 계급이고 할아버지가 강원도 춘천 출신이신데 북한 정권에 의한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수영성 하셨어요 그러니까 100% 죽였겠나 그 후손이
또 한국을 가서 지금 이러고 있으니까 그때 이제 저는 뭐도 모르고 자살을 하려고 예 했었죠 그 뒤로 브로커를
두 번이나 떠번 했어요 정확히 알고 싶어서 근데 똑같은 단만 돌아오고
돈만 받아 간 거예요 저한테 그다음에 나 이거 어떻게 살지 하고 술지 먹고 죽으려고 했었는데 그날에 마침 한국
언니가 전화와 가지고 진짜 앞에서 이렇게 수면을 먹으려고 했어요 근데
전화 별 소리가 울리는 거예 그때 폴더 폰이었다 이리리 이서 받았더니 우정아 뭐해 고기 먹으라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제가 그 외롭고 힘들었던 마음에 고기 목으로 와라는 그 따뜻한 말이 엄청 나도 모르게
위로가 됐나 봐요 그 내려놓고 진짜 고기먹으러 갔어요 그리고 언니한테 한 마디 들었어요 은정아 제가 이제
얘기했지 언니나 수면제 딱 먹으려고 하는 순간에 언니가 왔다 전화가 그러니까 부모님은 그렇게 돌아가셨어
부모의 마음은 어떤 건줄 아니 네가 잘 살길 바해 근데 너 왜 부모 죽
두 번 죽이려고 그래 네가 이렇게 해서 죽어서 아버지 엄마 만나면 얼마나 슬퍼 하시겠냐이 말에 엄청
울었어요 그리고 집에까지 와서 그때부터 때 400만 원 모았던 거 보내지도 못하고 재책 감에 쓰지도
못하고 정말 라면 계란 라면 계란만 먹으면서 취업 장려금도 받고해서 이제
4천만 원 먹은 거예요 2010년 이제 12월이 되니까 언니
오빠를 찾고 싶어지는 거예요 돈 보내서 설날에 떡이라도 좀 만들어 먹으라고 그래서 찾았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던 거예요 그리고 이제 데려오려고 약속을 했는데 이미
그때도 이제 조심스럽게 연락을 했죠 해가지고 딱 통화를 했는데 저 언니 오빠 온 줄 알았어요 근데 갑자기
우리 엄마 목소 내 엄마 엄마니까 우리 엄마가 벌써 선수 치는 거예요 야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 야 뭐 개
워라 이모가 어쩌 하면서 아 이게 그때 도청했다 니 이유가 있구나 해서
이제 이모 저 있는데 안을 내 하니까 야 난가 가어가 갔어 하면서 그때부터
이제 탈북 구출 작전이 시작이 됐는데 우리 언니는 저를 찾겠다고 일주일
전에 넘어갔는데 저 중국 어디 농촌에 저번에 얘기했잖아요 한국돈은 천만
원에 팔려 갔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언니를 샀어요 수소문해서 살 방법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언니를 려면 그래서
한국 도착 시키고 아버지 엄마 자니까 엄마하고 오빠는 오겠다는데 우리
귀하신 아버님께서 아버지가 말씀하세요 내 그때 생각하면은 뭐 시겠다는
거예요 뭐 못 가는 길이 안가 같다 그렇지뭐 저는 그때 당시 다른 거 다 빼고 뭐 길기 때문에 요것만 이것만
이야기하자 난 설지 만서 그때 당시 한국에 올려고 안 했어요 그때 당시는 김일성이 주체
사상으로 완전 이 무장된 사람이어서 완전히 사상은 진짜 빨간 사상이
그때만해도 진짜 뼈속까지 새발 같아 마 골수까지 새빨게 지으니까 그렇게
내가 김성의 사상으로 완전히 부장된 대서 아마 나는 북한의 저선 로동
당원들 다도 내가 더 머리 사상 김소의 사상 더 완전히 부장 됐겠어
성분은 그렇게 나쁘고 개촌 대로 받으면 살아서도이 난 그렇게 완전
내가 그 무장 대서 내가 그게 된 원인은 우리 아버지 때문이야 저희 아버지가 원래 저희 아버지는 강원도
춘천이 고양이 강원도 춘천이 저희 고향은 개성시대 우리 아버지가 고향은
강원도
[음악] 춘천이지더원 끝나면서 개성 시가 북한으로 이관
됐단 말이에요 전쟁 전에는 그 개성이 한 대한민국 땅이었으나 거기서 살았고
전쟁 끝나고도 아버지는 개성에서 계속 살았단 말이야 그러다 나니니 북한 김일성이가 개성시에서 이엄 전 분자로
생각되는 사람들을 북쪽으로 싹 올려보내고 그다음에 북쪽에서 좀 사상이 좋은 사람들은 개성으로 내려
보냈단 말이 그래서 인구 결함을 시켰지 그러다 나니까 우리 아버지가 거기서 저 이원 분자로 북한
김일성이가 딱 찍어 놓고 우리를 평안 남대 맹산 추방 시켰다고 해
1959년도 내가 다섯 살 때 59년도 맹산 당으로 추방돼서 우리
아버지는 1963년도에 내가 아홉살 때 1963년도에 정치범 수용서 어
잡혀가서 체포돼 가서 청진시 성태 구역 수성 정치 교과서에가 있었어
거기서 거기 간 다음에 지금까지 영원히 서식 모르죠 그렇게 돼서 거의 63년 도야
그것도 내가 아홉살 때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내가 가은 천대와 멸시 압박
오감을 받으면서 참 비참하고 처참한 생활을 했지요 인간다운 생각을 못
했지 그럴 때 나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우리 아버지를 원망했어요 아버지는 왜 뭐 무슨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에 왜 욕이 됐나 난 아버지 때문에 나를이 세상에 만들어 놨나이
세상에 아버지가 나를 만들어 놓지 않았으면 내가 이런 가은 천대와 멸시를 안 받고 이런 비참한 생활
이런 처참한 생활을 하지 않지 않겠는가 아버지 때문에 나는 이렇게 지금이 인간의 다운 생활을 못 하고
있다 아버지를 이렇게 원망하면서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역적 자가 안 돼
갔다 반역자가 안 돼 갔다 나는 김일성 이단 우리 수령님 김일성 통지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고 김일성 동지를 끝까지 따르는 충성 분자가 되겠다 나는 그때 그런 결심을
했었어요 그래서 하도 천대받고 사니까 그런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안
오갔다고 한 거야 그런데 내가 지금 생각하게 되면은 내가 그때 김일성이 사사를 완전 부장 있던게 잘한 거
같아 내가 그 사상을 무장 안 했으면은 북한 땅에서 어느새 어느지도 새도 모르게 우리 아버지처럼 체포되고
사형장에 가서 총알을 맞고이 세상이 없어진지 아마 오래 것이야 내가 하도
김소의 사상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고 그 끝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이 대한민국에 와서
행복을 들리게 된다고 나는 생각해요 근데 왜 안 오려고 하셔 어 예음
그래서 안 오려고 했던거 그런데 아버지 뜻대로 되나 안 되지 근데
얘가 오라는 거야 난 안 간다 김성 사상은 꽉 무장했기 때문에 안 간다 너마 또 가지 안 간다 그런데 다
숨겨 했어 아들한테도 하고 온 우리 집사람한테 숨겨서 가라 너도 가고
아들 너도 가고 엄마도 가라 난 안 거 같다 나 끝까지 보태지 그러다
가서 자전 그러던 과정에 나는 저저 남쪽에 안으려고 결심을 하고 살았으니까 그러다 가서 얘가 돈을
준다는 소리에 돈에 홀딱 속아서 오게 된 거예 근데 그때는 우리 전화를
안가 갔다니까 우리 집사람이 야고 작전을 찾지 나는 그걸 모르죠 너 아버지가 죽어도 안가 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네가 돈을 좀 주겠다고 해서 두만강은 넘게 하라 그다음에 이렇게 작전을 하자 그렇게 작전을 평근 난건
모르고 돈을 주 줄었다 그래서 돈 받으 조만간 건들게 그 얘가 또 미라이나 조나 통까지 했어요 직접
두망 가만 너 뭐라 아버지 내가 이전 길에 가는거 여기서 비행 기롱이 두 시간이
내 경까지 가겠다 그 나서 아버지 얼굴 마막 겸 아버지한테 돈도 좀
드리겠다 하 좋다 그러면 내가 나도 너를 볼겸 너한테 돈을 받으러 나갈게
하고 제가 결심하고 우리 마누 가자 그래서 두만강을 넘었어요 야 그때 두만강을 넘었는데 아니 두만강을
넘었는데 내가 그 지금 생각하면 고기가이 아 두만강을 넘은 간 곳이 중국 씨인지 화인지 화현 숭구 아천
저녁 한 9시나 한 절식 경에 두만강을 넘었는데 저 브로크 전화번호 다 주지 않았어음 그래서 그
전화번호로 우리 아들이 전화를 했어요 우리 지금 두만강을 넘었다 얘가 우리 노에서 전화 번을 줬다고 거기다
전화하라고 전화 거기다 전화하면 하니까 넘어 나서 넘었다 하니니 우리가 이제 곧 떠 나겠는데 지금
있는 것이 어딘가 물어봐 브로커가 중국이이고 아 너어 왔데 아 이게 우리가 있는 장소를 아아 밤 10시가
이전 넘었는데 우리 여기 그 장소를 모르겠다 하니까 브로커가 아 막 난
처야 하더라고 그럼 우리가 어디로가 가야 되나 그렇잖아요 아 중국 활용시 하던 본탕 선구가 하던 돌탕 어디로
가야 된다는 거야 목적지를 딱 찍어 줘야 브로커가 오잖아요 우리 모르겠다
하니까이 부르고 난 쳐야 하더라고 자지는 알겠다 우리는 모르겠다 여기가 이치를 모르겠다 이치를 되라는데 못
해졌지 그리고 조금 있었는데 한 20분 있었는데 아이이 어떻게 이거 알려 줄 것인가 생각하고 있데 머리
피트도 그러더라고 도로에 우리가 있는 표시를 하자 근데 거기 옆에 보니까 그때가 아동 천에 학교가 하나니 내가
지금 지도로 찍으려면 찍 찍어 그 학교가 아직도 있더라고 아동천국 승선과 아동천국 있더라고 그
학교가 지금도 빈 학교야 그때 당시 공부 안 하고 피 학교가 비어 돼서 근데 그 학교에가 있었는데 보니까
박수 이만한게 한 두 개가 있어 네만 하고 만하고 띠도 패니까 이만해 그게
두 개야 야 저걸로 돌을 표시하자 하고서 그거 박스를 뜯어서 그 돌을에 나가지 간니
그 그때 사월 한 20일 날이니 물이 엉덩에 모였는데 울지 않아서 사 사름
약간 같더라고 사람을 하고서 박스네 개를 두 개를 담가서 먹다 담가서
내니까 박스가 엄청
무겁더라고요 아마 이상 되고 문에 적이니까 북한에서 걸
지이라이프 놨 차가 싱 올라가고 지나갔는데 한나 날리지 않아 딱 정이
물에 젖어서 딱 세면 포장이 딱 들어 붙었으니까 근데 그 그 도로가 바로 승선 구에서 그 장이야 선구 앞에
북한 대응되는 건 삼장이서 만 말하면 돼 아버지 어 거기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딱 하나야 근데 그기
포장 도로인데 기 도로는 중앙선도 없어 그서 막 서로 왔다갔다 서로 오기는 거야 그거한테 딱 엎어 놓고
지금 브로한 전화했지만 지금 우리 있는 위치는 모르겠는데 아 승선 구에서 백도수산 쪽으로 향하는 도로가
딱 하나니까 그 도로를 타고 백도수산 쪽으로 향하라 그러면 그 도로 가운데
정이 지함을 두 장을 물에 적셔서 버럭 한 가운데 붙어 나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우리는 이치다 알려줘서 그
알았다 하더라고 브로커가 그때 그 브로커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요
우리 만났어요 예 만났는데 학교에서 지금 지키고 보고 학교에서 한 100m지 한 100 50m 밖에 안
돼 도로까지 학교에서 쫙 지키고 본데 또 뜨물 뜨문 거 도로에 나가서니까
지하은 박수는 절대 날리지 않고 딱 고자리 있더라고 수많은 차들이 다 싱싱 지나가이 한식경 됐나 야 그때
얼마나 추웠던지 자 가서 승소자 승용차 두대가 쫙 켜 나도로 켜고
올라오더라고요 올라오더니 딱 그 앞에 박수 앞에 다와서 우린 지금 지켜보고 있지 앞 짜랑 올래 우리 지금 종이
지암 있는데 여기 장소에 도착했는데 여기가 맞나 우리 뭐 다 보고 맞다
그럼 빨리 나와라 그땐 도했는데대 나가죠 뛰어나가는데 벌써 성차 두 대는 빼 돌래 벌써 돌려
놨어 다 그 차에 가자면서 얘부터 봤지 앞차에 가서니까 얘가 없어 뒷차에 또 보니까 없어 그 브로 우리
운정이 놓게 된다 두만강까지 나온다 그랬는데 어떻게 일이 있어서 못 나왔다니까 연길 가야 가면 맞는다니까
연길 가자니까 뭐 두만강 넘은거 돈이 필요한데 뭐디 가어 그래서 연길로 또
향했죠 그 연길이 가까이 없어 그래서 브로커한 왜 없나 아 운동이 좀
다른데 있는데 내 이제 곧대로 다 어 오가 기다렸지 그 부럽고 왔어 잎살
뭐 김치 계란 기름 부생 하나 쌀도 뭐 2만원 자루로 하나 놓고서 속
밥에 먹으래 그때 연기에 도착하니 원히 밝아서 그 그날이 바로 4월
20일 새벽이지 뭐 아저 우리 우리가 잡은 집은 층이야 늘 대비로 온다는 거야 그더 브로커가 텔레비를 턱
들어나 텔레비 보니까 중국 텔레비가격 텔레비 kbs
sbs 그다 MBC 이거 다 나오더라고 근데 그걸 텔레비 틀었는데 아 텔레비 보니까 신기 남소 텔레비
처음 보니까 와 신기해 그래서 지금 늘 기다리고 있는데 안 와 브로커도
안 나타나 그때부터 텔레 어 텔비만 켜놓고 먹을 거 같다고 다 놓고서 나타나지도 않아
하룻밤 지나서 그다 그날 하룻밤 작으니까 21일이야 예 20일날 또 자번 20일날 척 되니까 아 난 전
북한에 먹고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왜 이제 북한의 아들 집사람 처 나
소위가 동시에 없어졌다가 나만 나타나게 되면은 보위부가 심문할 거 아니야 행철 될 데가 없어 중국이
같았다고 하게 되면 그건 무조건이고 북한 땅에 어디 같았다는 거 알려 줘야 되잖아 그래야 보위부가 가서
현재 확인을 하지아 내가 거짓말해도 현재 확인해 내가 고기 안 갔는데 어떻게 돼 거기 없었는데 간난 무족건
뭐 어게 될지 모르지고 죽을지 살지 모르니까 그 난 죽는다고 봐 그래 이전 북한 땅에 못 가겠구나 하는 거
거기서 결심하고 이전은 내 중국 땅에서 살겠다 중국에서 사는데 어디서 살아야 될까 사람이 많고 복잡한 보한
도시에 가서 살까 상하에 가서 살까 베이지가 살을 아니면 시리가 살을이
생각을 해어 근데 베이징에 가면은 북한 그 평양 수도가 얼마나 단속이
어 그래서 베이징은 가고 싶지 않더라고 베이징 단속이 셀 것 같더라고 그래서 사실은 상하로 가서
살려고서 큰 도시고 사람이 많고 복잡한데 복잡한데 가야 내가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오히려 시골에 사람 쪽은 시골 가는 것보다도 그 그 말은
어 그래서 그다음에 상하이 쯤 가서 살 살리라 하고 결심하고 있었는데 텔레비를 쫙 계속 보고 되니까 그때
바로 얘가 이거 빨간 사상을 물법 기에서 심리 교육이
들어가 그땐 그런 걸 몰랐데 지금 보면 심리 교육을 했지요 텔레비 한
대로 밖 없었어요 텔레비 한대로 심리 교육을 하죠 지금 나난 심리 교육을 받는 중이지 모르지 못 모르고 모르고
받는 중이죠 텔레비를 한 열흘쯤 보니까 북한이 손전 하던 거 하고
다른데 저 남에는 고지가 많고 오린 아이들이 깡통을 차고 밥 구고리
다니고 담배 팔고 신문 팔이 하고이 구두 답게 한다는데 한국 텔레비 그런게 전혀 없어 보도 시간에니다
보니 내가 관찰을 하지마 다 보면 도로고 저 승용차 화물차 보서 돌아가
꽉 쳐서 달리고 저 무슨 차가 저렇게 많아 난 그때 거기 차선 선 2선
3선 4선 이렇게 했잖아 일자 뒤를 앞어 나가 차는 뒤만 빨았고 브레이크
저 앞에서 마주는 차 라이터를 켜가 하얀 차들이 거전 줄을 서서서
계속는데 그게 통 중보 시간이야 그거 보면 니 차도 많다 그리고 사람들
보면니다이 혈색이 좋고살이다 하고 얼굴색이 좋고 남자들 배가 다
나오고 옷도 잘 입고 그다음 거리를 보니까이 고충 아파트가 짝 소 있고
잘 써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뉴스든 뭐의 나오는가 무슨 자살했다는 거
나오고 자 북한에서는 저런 거 절대 속이는데
한마디도 안 하는게 저건데 어디 오에서 뭐 뭐 굶어 주고 사람이
그렇게 많아서도 안 내보내어 굶어 죽었다는 말도 안 해 굶어 죽은 그래도 굶어 죽도 행복한
나라라고 선전하는게 북한이야 세상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 북한이라고이 그렇게 굶어 죽는데도
굶어 죽는다 소리 안해 한마디도 해 근데이 대한민국이 뭐 단화는 거 나오지 않나 아 그다음 느 건물이
불이 붙는데 기서 구은 연기 는데 그 허방 차하고 물을 쫙쫙 부서 불 하
아니 저런 걸다 파 뉴스를 내 번내 들라고 아 저기 저 뉴스가 보면이 야
저거 사실만 뉴스를 보도를 하구나 하는 걸 느껴서 아 자살했다는 거 그
자살했다는 거 그거 가게 되면 뭐 나라 망신 아니야 그런데 북한은 그걸 나라 망신으로 생각하는데이 대한민국은
자살한 거 다 내보내 주지 불붙는 거 다 방영시 주지 화면으로 직접이 그
거짓말 같지 않더라고 그런 과정에이 새빨간 물이 천점 빠지기 시작하더라고
물에 볼개 지더라고 빨간지 빨간물이 빠지기 시작해 그 내
심리 교에 내 말리 들어간 거야 뉴스에서 전철 11분이 늦었는데 아침 출근시간 아야이 출근길에 11분이 전
연착이 되어 출근하는 분들한테 지장을 줘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더라고
철도부 무슨 간부가 나왔어 아니 무슨 저런 나라야 저거 북한은 열자가 한
달 벌 봐도 그런 막 나던데 더대 11분 늦 선 거 가지고 인민들 테
그까 국민들 지은 인민들 테 사제를 해 야 저 북한이고 완전히 북한이이
고짓말 했다는게 느껴지더라고 그 북한하고
남선하이테크 하나도 없고 북한이 거짓말을 했구나 하는 걸 알게 돼 거
뉴스를 아 저거 진짜 진짜를 보도 하는구나 한는 거를 느껴서 대한민국
주민들한테 국민들한테 사주하는 건 참 신기하더라고요 한 번도 못 봤는데 나
보도는 그래서 계속 봐 보도 시간이 벌서 보도만 봐 나 그때 영화이 동양
민혁 어 그 드라마 그 풍랑 속는지 폭풍 속는지
다 시 딱 뉴는 다 봐 원한 보도에서 그때 김정일 시대야 북한 당원이
인민들이 굶어 죽던 병들어 죽던 나 인민들을 생각은 안 하고 선군
정치라고 하면서 군대만 목이 살린다 그래서이 우리 대한민국 침략이 그러니
야망만 부리고 있다는 거야 야식만 부리고 있다는 거야 그 보도를 듣고 나니까 대한민국이 보도하는게 옳은
소리라고 나는 그때 당시 북한 저 손군 정치 했어 거기 어 이게 고저
손군 정치라고 한 걸 알았지이 그렇게 손군 정치가 나쁜 줄은 몰랐어 그런데
대한민국의 보도 뉴스를 보고 나니니 해가 되더라고 맞다 대한민국이 정확한
보도를 하노라 북한 당국은 선군 정치를 김정인의 선군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군대에만 목 읽고 쌀 주고
하지 북한 인민들은 병들어 죽고 굶어 주고도 상관하지 않는게 절대 인민들을
돌보지 않는게 맞 하는 걸 그 뉴스를 보고 알아서 야 그다음에는 김희
김정일이가 우리 우리를 속였구나 그때 속았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 아버지가
우셨어요 전화와서 저한테 그걸 보면서 분 아 내가 지금까지 57년 동안
김일성이 김정희한테 서가 살았구나 하는 걸 알게 됐고 김일성이 김정희한테 지금까지 충성을 하면서
살아 사 곳이 분더 속아서 분화 사랑이 난는 설서 김 한테 진짜
충성을 다했어요 사상은 나쁘지만으니 아 출신 성분이 나쁘지만 어 출신
성분이 나쁘지만 충성은 다해서 그럼 94년도에 김성희가 죽고 어 90년도
말게 김정일이가 그 권한의 행군이 김정일이가 이런 걸 내놔서 광폭
정치라는 걸 내놔서 광폭 정치는 성분 터대 따지지 않고 당의 충실하고
장군님께 충실하면 절대 죄를 묻지 않고 자기의 마 그이 대학도 갈 수
있고 군대도 갈 수 있고이 간부도 할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런게
광복 정치라는 걸 내 놨더라고 그서 그 광복 정치 아 이거 참이 좋은
정치네트워크 게 진짜 일을 열심히 해서 당 이땅 하려고 아 진짜 일을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 나니까 도당 간부가 내려왔더니 참 강동문 일을
이렇게 너무 잘하는 줄 몰랐다고 그게 일을이 참 수령 장군님께 충성을
다해서 고맙다고 앞으로 일을 더 잘하자는게 어 알겠습니다 일을 더 잘하겠습니다 했지 그러면서 마지막에
뭔 말이 뭔가 뭐이 하한 하픈 이야기가 없나 그 좀 이야기 하니까 우리가 저 풀어 주겠다는 거야 더지도
하니까 음 나는 한가지 서이 있다고 그니까 뭔가 그래 나는 저선 로던
당원이 되고 싶다고 그어 야 그랬더니 나는이 걔 충성을다면 당원이 될 수
있대 그런데 당이 입당 할 수 있나 아 입당 할 수 있대 그럼 저이 저선 로동 당원이 되는 것이 나의 서원이
좀 입당을 좀 하해 달라 나 수 이전 김정일 장군께 충수 올라가겠다 그랬어
그러니까 안 갔대 올라가서 그렇게 되도록이 토 갔대 그거만 미 일을
열심히도 더잘 더 잘하지요 죽을 때 살 때 다 가지 나는 진짜 위험한
일만 해서 힘든 일만 하고 누구도 못하는 위험한 일 힘든 일만 해서 그
일을 했는데 1년이 가도 서식이 2년이 가도 서시고 3년이 가도 서식이 없어 입 당이 입당하게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데 야 이거 무슨 광폭 정치 거짓말이라 그나
거짓말이라는 것까지는 알아서 그러면서 사상 그래도 변하지 않고 새발 해서
있따 와서 한국 텔레비를 보니까 그때 야 소가 살라는게 오울 하더라고 내가
그것도 모르고 충성을 다해서 당에 입당하고 입당 하겠다고 그렇게 이험한
일 험한일 죽은 일 진짜 다 일을 열심히 했는데 입당 하나 안시켜주고
내가 서가 살았구나 한거를 그때 그 선군 정치에 대해서 그 뉴스 보드를
보고 내가 가 살았다는 걸 알고 그때 남성으로 가겠다 하고 결심한 거예요
중국에서 살려고 했다 가서 대한민국에 가겠다는 거 근데 그 전에 가겠다 결심하기 전에 얘한테 다 물어봤지 그
뉴스에 나오는 그 내용들이 진짜 맞냐 하니까 다 맞대 대한민국을 오 결심을 하고서 맞죠 출발했죠 우리 아버지는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오셔 가지고 나이는 좀 있으셔서 오셨잖아요
그때 신살이 그렇지 그렇지만 한국에선 그나이가 청춘이지만 이미 우리
아버지는 다 고장 나서 오시고 예 지금 많이 한 20년은 회춘 하신 거
같아요 그래도 너무 긍정적으로 너무 열심히 잘 사시고 앞으로도 뭐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일밖에 없죠 내가 지금 와서 쭉 생각해 보면은
내가 심리전에 너한테 교육을 먹고 새빨간 물이 볼고스럽게 빠 뻘은 물
빨간물 빠지고 볼고 스한 물 다 빠지고 이전 물은 언제 된 거예이는
완전 자본주 사상 북한이 말하는 고문 사상 색감을 물러 완전히 무장되어 내
민주주의 사상이지만 그걸 고은 사상이라 알잖아 그 난 까맣 고은게
아니라 새까맣게 이런 내 머리가 색감 빨 같은게 이제 색감이지 선나 내
머리가 그렇게 되고 내가 지금 생각하게 되면은 심리전에 중요해 난
심리전에 난 심리전에이 사상이 바뀐 사람이야 이에 의해서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그 우리 탈북민들이 박상 하기를 빌려서 많은 탈북민들이 전단이
되나 그다음 우리 저 분계 연선에 대북 방송하지 않아 맞아 이거 큰
타격을 줘 그지 이게 이게 작게 봐서 저는 가족을 변화시켰지만 북한은
나라를 상대로 저 당국을 상대로 하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면 북한의 우선 방송이 북한의 군인들의
이거 빨간 머리를 지금 거하게 뽑아내고 있어 대북 방송을 그래서
대북 방송이 중요해 그리고 대한민국 그 탈북민 박상하 필 전단지 뿌리는
거 있지 그다음에 USB 들어가는 거 있지 이거는 북한 인민들 테 빨간
사상을 뽑아내 그래서 북한 사람들을 북한의 인민 군대나 북한의 주민들이나
지금 누을 튀어 주는 거야 세상을 알게끔 지금 다하면 북한 인민들이
깨어나야 돼 지금 깨어나기 시작했어이는 북한 민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고 봐요
그래서 이거 계속 전단지 보내고 대북 방송하고 USB 뒤를 보내서 북한
사람들이 세계를 알고 북한 정권이 어떻다는 악날한 정권이라는 건 북한
인민들이 깨달게 끔 해 주는게 바로 이거 심리전이 난는 이거는 반드시
해야 된다고 봐 그니까 악랄해 저렇게 악랄한 집단이 없잖아요 이제 내가 보면은 이거 우리 대한민국이 리전
하게 되면요 38분 개선해요 대북방 내죠대 그 방송이 어디까지 영향는
첫째 몇십만 명이 되니 북한 인민군대 사상을 변화시켜 김정일이가 김정일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상을 변화시키는게 대북 방상 인민 군대들이 그다음에 그
주변에 주민들이 그다음 거기 강원도와 어 황해남도 황해북도
개성시 여기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켜요 그다음 저 북쪽에서는 평북도 자강도
량강도 한국도 이거 국정 연선을 통해서 또 변화시켜지고 예 그렇게
되면은 북한에 여덟 개 더해 평안 남도하이텍
[음악]
직접 못 되지 그 나머지는 다 돼 심리전은 여섯개 돈는 다 될 수 있는
것이 그래서는 앞으로이 심리전이 북한은 핵을 지다고 하지만은 우리는 핵이 없잖아요 우리는 심리전을 해야
돼 그게 제일 무서운게 북한 주민들이 깨어나는 거 이거 제일 무서워하는게
김정은이 김성 김정일이 김정은이이 대체 북한 인민들이 깨어나는 거 제일
무서워해요 그래서이 심리 방송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북한에서 보내셨던 어린시절 경제적 어려움 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아버님의 유년 시절 북한의 모습과 은정님의 어린 시절 북한의 모습이 어떻게 달랐나요
아무래도 그 아버지가 사셨던 시대와 제가 이제 어
태어나서부터 살았던 시기가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아버지 어린 시절은
정말 우리 아버지는 불쌍해요 천대만사 갖고
입니다 저희 어린 시절과 우리 운정의 어린 시절 그때 차이점이 대단히
큽니다 저희 어린 시절은 그죠 그때는 정말이 아 어디도이 변변한 옷이
없었습니다 면옷 면천 그렇지 않으면은 배적 산모 어 그런 거 하얀 어 하얀
어 그런 거 입고 다녔고 그다음 또 신발은 검정 고무신 나오 월린 시절은
50년 대죠 아버지 60년대 초반 60년대 초반 50년대는 건 너무 어려서 그때는 생각이 안 는 안 나는
거고 60년대만 해도 배천이라는 그걸로 옷을 입고다는 사람이고 검정
고무신 넓적 거신이 그랬어 북한에서는 그 고은 색이야 그리고 여자들이 전
잘 사는 여자들은 흰코 고무신 그요 앞에 이렇게 뼈
주서 이렇게 차올라 거서 여자 신간이 백신 하얀 고무신이 그게 좀 잘 사는
사람들은 그런 거 신고 다녔고 그래서 그리고 우리 학교 내가 60 3년 가
년도가 그때 여기를 말하는 초등생 지금이 그때 인민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는데 그때만 해도 책가방게 없어서 모두가 책가방이 없고 책
보라고 있었어 보 이만한 건데 거기다가 채굴이 예 이렇게 싸고
이렇게 벌 이렇게 말아 마지막에 빈 빈치 옷 빈 옷 빈 침이 그걸 특
채워 가서 항상 이렇게 유자은 남자은 이렇게 이렇게 독립운동 영화에서
어 어 메구 다녔어 배그 다니다가 그다음에 그리고 그때는 그 다 학교가
뭔 사람 뭔 아이들은 도시라고 싸 가지고 다니는데 북한에선 거는 벤토라 해 벤토는 그서 뭐 쌀밥은 없고 노란
옥수수밥 거기다가이 된 한쪽 구속에 한쪽 모서리에 그거 된장 한숟갈 밥
한 숟갈 떠내고 그다 된장 한숟갈 그서 싸 가지고 다니 다니는데 그것도
책 책하고 같이 매 욕에 예 들
말아서 그 미고 가면은 그 장물이 나오면은 학습장애 너트에이 된 장물이
누 이렇게 배고 그어 그리고 그 벤들 이렇게 매고 여기 매고 가다 가서
오게 돼서이 빈 침이 그 풀려나게 되면은 도시락이 벤토가 락 떨어져서
토끼가 다 뚜껑이 다서 밥에 산사람 다 없 날아 나고 그러다가 그게 한
60 한 67년부터 니 책가방이 나 오고 운동화가 나오고 그다음에
여자들은 편리 화라고 있어 손으로 거 편리 화라고 거기 나오고 그러면서
고무신이 점점 사라지면서면 천신으로 나오기 시작했어
그러면서 그러다 가서 너 당신 그때 당신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신 집진 씻고다는 사람들 봤어요 집으로
여군 집신 어 그거 내가 그거 난 집진을 신을 못 봤는데 그렇게 신고
다니는 거 어르신들이 있더라고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검으 시니까 집
다 없어지고 그다음에 운동화 편리와 동화라고 그게 동화라는 거 여기서는
지금 그게 동화라는 여기는 안전하여 질은 하늘과 땅 차이죠 어 질은 정말
따르 쪽대 쪽대 쪽대 말이 이거 일본 말인지이 지하족 아니면 쪽대 로동하는
말은 없어 지하족이라고 해서 다 북한은 로동하는 말이 없어요 지하족
쪽대 그 대한민국은 지금 와서 보니까 로동 할 때면 안전화 다 신고 북
거의 그런 안전화가 전혀 없어요 안전화가 아마 북한으로 가게 되면은 아마 그 까만
구두약을 먹여 가지고 아마 인민군이 아마 군화로 다 신을 거야 그지 엄청
좋아요 대한민국 안전화가 북한에 그 인민군대 가시는 군화 다 더 좋아요
즐기고 튼튼하고 우리 아버지 또 출신 성분도 안 좋으셔서 적대 계급이라고
제가 예전에 얘기했었잖아 북한에서 제일 출신 성분을 안 좋게 보는 우리
아버 아버지 고향이 우리 아버지 아버지 저희에겐 친할아버지 고향이 강원도 춘천이 그러니까 그때 엄청난
박해 많이 받았어요 내가 지금 여기 대한민국 와서 보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국가 북한 공산 국가 간의이 차이점을 보면은 그걸 제가 듣기는
건데 북한에는 저 공산 국가들은 인간의 사별이 있어요 인간의 계급으로
정해 놨죠 예 그런데 민주주 허가는 여기는 인간의 차별이 없더라고
없잖아요 예 북한에는 성분 토대를 갈라요 제일 새빨간 기본 계급 중간
계급 그다음엔 적대 적대 계급 이렇게 세 개로 나누는데 거기다 계급도
그렇게 나눠서 그 계급에 의해서 사람이 그 차이가 있고 그다음에는 또
간부에 의해서 뭐 중앙당 간부 더당 간부이 군당 간부 기당 간부 그다음에
보위원 안전부 안전원 여기를 말하면 국정원과 경찰이 사이의 그 인간
차별이 대단히 많아요 그런데 북한은 그런데 대한민국은 인간 차별이 전혀
없어요 내가 뭘 하든 성 터대 보는 거 있나 본인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 대한민국 무슨 간부라 해서 전대 받고 이런 거들 맨날 영 먹잖아 수 나는 여기 한국에
와서 뭐이 다른 거 뭐데 많이 봤지만이 경찰들 그 난 북한의 안전원
들하고 대한민국의 경찰들 하고 대비해 보면은 대한민국은 경찰이 이딱 그저
보통 서민들과 같아요 또 경찰의 불쌍해 너무 청한 국민들한테 경찰들이
우리 기준으로는 그래 진짜 그 국민들한테이 봉사를 한 경찰이지
국민들을 무슨이 박대 하거나 전대하거나 그렇지 않아요 근데 북한은 여기 대한민국에서는 경찰이라 하원이
안전원 그이 그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 그저 잡아서 그죠 그
짐 뒤지고 경진 배낭 검열하고 그다음에 증명서 검열하고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야 술 내 나면 술 내놔야 돼 담배 내 나면 달저 북한 경찰이 전쟁 일어나면 제일 만 먼저
맞아 죽어요 악마요 북한에 담배가 없으면 지나가는 사람 하나 잡으면 돼요 그 뭐 이렇쿵 저렇쿵 깔지
거리죠 것도 그 사람 아 잘못된지 좀 보내 달라고 사정하면서 그러면서 주머
탁 뒤지면서 아 이거 담배가 없네 그럼 부 내 하면 오니 담배한 거 사오라는 거죠 그 단속 받은 사람이
탁 그 시장에 달려가서 나 쪽 좀 갔다 오겠다고서 달려가서 시장에서
담배한이 고양 담배 한 두 세가 또는 한 보로 이렇게 사다가 받치지 하면
그때는 내보내 주고 더한 거 같은 그 담배면세 새끼 한 하루는 행복하게
먹일 수 있는 돈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 아버지와 저의 어린 시설 차이를 모르셨잖아요 반동의 자식 뭐
이렇게 해서 딱지가 붙어서 왔지만 그 저희 시대에는 는 이제 저 고무신은
안 거 차이밖에 없어요 고무신은 안 신었지만 배적 삶은 안 입고 다녔지만
늘 배고파 가지고 권한 행 건 시작이 될 때가 이제 아홉 살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근데 저는 지금도 기억이 나는게 엄마하고 언니하고 오빠하고 양광도
외가 집으로 이제 식양 구하러 갔을 때 신할머니고 저 아버지 셋시 맹산
남았어요 그때 아버지는 식양 구하러 가신다고 나가셨는데 보름에서 거의 뭐
한 달을 이렇게 진짜 아버지도 어쩔 수 없으니까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하시다 조금 얻어 갖고 오고
이러실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이제 아버지가 없을 때 할머니하고 제가 사이를 굶었어요 그러니까 먹지 못해
갖고 여기를 말은 허기져 북한에선 그거를 초기 만났다고 그래요 그래서
둘 다 쓰러져 있는데 진짜 곧 죽음의 문턱을 이제 갈까 말까 하는 그
레드라인에 딱 있었던 거예요 골든 타임에 아버지가 옥수수를 한 배랑 빌려 갖고 들어오신 거예요 그때
아버지가 운전 아 어머니 하면서 그때 이제 아버지가 우리 발견 안 했으면 할머니하고 저는 아마 저 세상에 있을
거예요 아버지 세대도 저의 세대에도 배고픔은 늘 있었던 거 같고 자유도
없었고 세뇌는 똑같이 받았고 그렇죠 아버지 예 그래서 북한의 아들과
아버지 자녀와이 부모 관계가 별 결핍이 없어요 왠지 아세요 발전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 오니까 부모 자식 간에도 정치기 하면 안 돼요 그리고 뭐 여기 뭐 mg 세대
베이비붐 세대 뭐 많이 나눠져 가지고 뭐 굉장 하더라고요 근데 북한의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말하면 곧 하늘이 말하는 것처럼 그냥 따라요 그런게
있어요 그 싸움도 거의 없고 문화적 자유도 거의 없고 그래서 우리 젊은 세대나 우리 아버지나 한국에서 제일
말이 잘 통하는 세대가 60대 이후 이상부터 맞죠 아버지 예 나이오
시절에는 무신의 책가방이 없어서 배천 입고 다니고 고무신 신고 다니고 뭐야
이거 저 집신 신고 다니고 책가방이 없어서 모자에서 책을 들들들 말아서
가지고 다녔지 그러나 그때 당시는 배는 부르게 못 먹었어 그러나 배는
또 걸지 않아서 어 그때가 김일성 시대인데 60년대 초기에 협동 농장에는 분 배제가 나와서 1년에고
뭐 너는 몇킬 너는 몇킬 아이는 뭐 다가서는 1년에 70 10k 유천은
뭐 90km 중학생은 뭐 100kg 이렇게 오르는 뭐 하루에 뭐 700g
이렇게 그게 나왔는데 그래서 그렇게 하면서 그거 그때 당시 불함수 포장 됐어요 그래서 배는 걸치 않았어
그러나 딱 함수에서 량이 더도 안 주고 말 작기도 안 좋기 때문에 배는
부르지 않고 배도 걸지 않게 살았는데 딱 말 잘들을 정도만 준 거예요 먹고
싶은 걸 먹은게 아니라 너 주는 거만 먹어 먹은 거예요 얘네 시대에는 는 우리 운정의 시대에는 책가방도 나오고
그다음에 신발도 저 검정 고무신도 다 사라지고 그다음에도 뭐 테트론 어시아
뭐 나이롱 어시아 나오고 북한도 그때는 경 발전은 조금 발전이
있었다고 봐야죠 근데 나오면 뭐예요 공급이 안 되는 그런데 대신 우리 시
세대는 배는 안 걸었지만 얘네 시대는 그때부터 배가 걸시 시작하고 국 죽기
시작했다 말이 어떻게 하다가 식량 공급이 어려워졌네요 제 문제죠 내 생각에는 그게 언제부터가 하게 되면요
1980년도에 이거 뭐야 저저 대한민국에 수행가 났는데 우리 남선이가 남선이 지금이 텔레비 많이
나왔어요 신문에 나오고서 텔레비를 나고서 매일 저녁 그만 보도했어요
텔레비를 보면은 80년대 그 남선 인민들이 지금이 수혜로이 잠겨서 군
줄이고 헐 먹고이 먹을게 없어서 그러는데 우리 북한이 이대한 수련 김일성 동
그 다들은 사랑을 위해서 남선이 쌀을 보 보낸다는 거 그때 쌀이 오만 속
톤이 아니고 나 쌀이 한 속이 아직도 몇인지 모르겠어 그때 쌀을 김일성이가
쌀을 오만석 보냈어요 그리고 세멘트 보내고 그다음 의약품은 뭘 보낸지 모르겠는데 약품 보내고 그다음 촌
촌도 보냈어요 내 내네 개는 기억이나요 쌀쌀 오만석 세 멘트는 몇
톤 천은 몇 미다 의약품은 뭘 뭘 보내지 그거는 몰라 전 그렇게 보냈어요 그때가 전두한 대통령 때요
그때 그 북한에서 지원 물자들을 싣고 계속으로 오는데 그때 당시 소련이
소련에 그 자들 신형 지르라고 했어 예 그서 그 차로 다 그서 개성으로
판문점으로 이동하는 거 다 텔레비 나오고 그랬는데 거기 수등 좀 밑바닥은 안 났지만 거기서부터 경제가
어려지기 시작한 거야 만석이면 많은 거 같아 내 생각 한 속이 80km
잘나 그 한 속은 킬을 모 5만 속을 보냈었어 그리고 그고 대한민국에서는
월드컵 축구 경기를 했는데 북한에는 텔레비를 하나도 안 해버렸어 그 서문도 안 냈어이 그게 어떻게 섬을
났는지이 대한민국이 뭐 그때 뭐 뭐 3등을 했다던가 뭐 참 그렇게 섬을
났대 북한에서 니 월드컵 3일 월드컵 말하는 거 같아요 축구 경기 맞다
그게 서문 나고 그다음에는 거기서 그 대한민국 사로마 속에 뭐 이거 주면서 북한이 조금 권한에 시작했는데
대한민국에서 팔팔 올림픽 한다 하니까 김일성이가 대한민국에 뒤지고 싶지 않다
그거야말로 뭐 세계 13차 청년 축전을 89년도에 했단 말이야 89년
세계 그 축전을 하려니까 돈이 자금이 모자라고 뭐 하지요 그때 바로
북한에서 무슨 일했으니까 19845 년쯤 된 거 같아 그때
골동품이 시작되기 시작했어 그니 북한이 자금은 없지 뭐 공 뭘
팔아먹을 건 없지 하니까 무슨 주당 이야 무슨 대남 일락서야 무슨 뭐는
뭐 무역부 뭐 하여튼 걸 통통 수집하 느라고 형편 없었어요 그거 외국에
팔아서 자은 마은 하라고 어 그걸 팔아서 그 1차에 니 그걸 외국에
파는게 아니라 그거 그때 보니까 그걸 남쪽으로 판다고 남선 그때 대한민국에서 문화재라고
해가지고 문화제 못는 거도 못는 지금도 얼마나 그지 그걸 번대 깬
거만 그래서 남쪽에 파고 근데 그때 당시 그 골통이 대단히 비싸대 뭐
몇십만 몇백만 달러씩 받았다고 하더라고 북한에서는 그 그때 당시 그 북한 중앙당 그 연락 서라고 그 연락
서라게 뭔가 대한민국의 간첩들네 파견하는 파견한 그 숨어 있는 간첩들
있잖아 잠복 간첩들 그 월급을 줘야 되겠는데 돈을 줘야 되는데 그 공작
자금도 줘야 되겠는데 북한이 돈이 없다고요 그래서 중앙당 간부들이 중앙당 연락 서에서는 그 꼴통을
수집에 가지고 북한에서는 예를들어 한 10만 원에 사게 주고 남쪽이다 파견된 간첩들 테 골동품으로 준다
그거야말로 공작 자금을 하고 생활비 하라 그래서 그때 당시 북한이 돈이
그렇게 없었 대서 그래서 그 골동품을 대한민국에는 간첩들 테 그게 넘게
되면 간첩들은 그게 씨 북한에서 10만 원에 샀지만 뭐 몇십만 달러씩 받았대 간첩들이 재벌이 됐겠네요 쌍놈
간첩 그랬대 진짜 그리고 그다음에가 없다 그 전 어떻게해서 전 13차
축선 해서 89년대 했는데 그때 당시 소문이 어떻게 나는가 올림픽 경기는
돈을 버는 장사고 우리 북한 1차는 돈을 버리는 장사다 손해 보는 장사다
이렇게 소문 났어 수민 사이에 어 북한 내배 다 소문이 그렇게 나어 그렇게 소문 나서 그다음엔 보니까
대한민국의 올림픽은 돈을 보는 그는을 쓰는 어 쓰는 돈을 하는
전이었다 그거 세기 13차 축전이 끝나고 완전히 알거지가 됐지 그래서
가난의 길로 들어갔군요 그때부터 80년대 말기부터 배급이 끊기 시작한
거야 김책 1992년도에 김책 씨 성단 언천 양소가 있어 거기 갔는데
8월 달에 갔는데 그때 당시 김책 씨에서는 동자들 배 못 져서 뭘
줬는가 세상에 과일 배구를 하더라고 배를 배급으로 줘요 배를고 사데
있으면 배급을 하더라고 근데 그 배가 익지도 않아서 먹지도 못하 땅땅한
건데 근데 그것을 아 보니까이 김책시 쌀이 없으니까 배를 칼로네 개를
하나를 여하한 걸네 등분해서 그거를 가마이다 내고 사카리 있지 뭐지 사서
그걸 어 그걸 해서 그걸 삼더라도 아고 딱딱게 손만 먹으니까
그걸 삶 삶으면 좀 문문 지잖아요 거기다 당분 사카린을 뿌려가지고 설탕은 없으니까 그렇게 해서 하더라고
그러다가 그다음에 김일성이가 그다음에 90년대부터는 배급이 끊기기 시작하고
인민들은 배급이 못 가고 간부들 테면 배급이 간다 그 거야 그러다가 김일성이가 94년도에 죽고 94년도에
7월 8일 일인가 죽었지 죽고 9 다음에 95년도 그래서 1월 달
부터도 1월달 어 모나가 죽기 시작하는데 김선이 죽고 6개월도 되기 전에 제가 아홉살이 6개월 6개월
되기도 전에 사람들이 그 무대를 굶어 죽기 시작하더라고 그리고 92년도
92년도 93년도 그때는 벌써 서련이 붕괴되고 동그 아파가 사회주 국가들이
다 붕괴됐을 때란 말이야 서련이 없어지고 러시아로 생겨나고 그다음 저자 로니아 뭐 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체스코 솔로비 스코이 나라들이 몽땅다 사 주의를 다 보릴 때고 그럴 때다
그래서 그전에 김일성이 살았을 때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있어서 서로 사회주의 국가들끼리 무역은 없어서
서로 도와주고 그래서 그러면서 살았다는데 사회지 국가가 동그 아파 사회지 국가가 싹 무너지니까 북한이
어디 가서 더움을 받겠어 더움을지 받지 못하지 그러다 나니니 그 전대는
뭐 애로 가으 러시아 가서도 쌀 종 공짜로 가져오고 루마니아 가서도 쌀
종 공짜로 가져오고 이랬 던데 그게 없어졌단 말이야 그때부터 그저 타주의 국가들이 멍당 무너지니까 어디 와서
방전을 못 받고 하니까 그다음에 북한이 무너지기 시작했 그래서 오늘날까지 온 거예요 근데 반대로
우리 대한민국은 88 올림픽에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더라고요 그래 갖고
완전 이게 상한선을 탔잖아 그래서 이제는 뭐 문화부터 시작해서 군사력
경제 12시안에 들어갔잖아요 제 놀라운 거 같아 그때 당시 대한민국의
올림픽은 올림픽에서 돈을 벌 다는 것보다도 대한민국 올림픽이 내 여기이
한국이 와서 되는데 그때 150개 국가가 참가 했대 그게 올림픽을
이렇게 자본주의 국가 민주주의 국가 공산주의 국가 이렇게 다 보인
올림픽을 대한민국 한 번밖에 없대 그때 당시 어 서련 뭐 로머 저 동굴
아빠이고 사회주 국가들 다 하고 민주주의 자본주 국가도 다 오고 그때
당시 그 8팔 올림픽이 세계 공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다 모인
것은 팔팔 올림픽이었다 하더라고 그때가 롯 그러면서 각국 대표단들이 선수단 오다니까 우리 대한민국의
번영을 알게 되고 그다음 거기서부터 서로 나라 나라 사이에 외교도 하고이
경제 협력도 하고 그렇게 되면서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그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렇게 와서 10대 강로이 진국으로
어섰다에가 음 마지막으로 신사임당 구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네 오늘 이렇게 핫 채널에 아버지와 함께 나왔는데요 이런 경우는
처음인 거 같아요 저는 뭐 앉아 있다만 가는데 다시 한번 이렇게 우리
아버지에게 들어 주셔서 감사하고요 어 더 궁금하시면 강은정 TV 좋아요
구독해 주세요 아버지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n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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