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애 1부]북한 시골사람이 농촌길도 도로포장이 된걸보고 의식이 깨어났다!
강은정TV
273K subscribers
Subscribed
3.2K
Share
Download
Clip
Save
53,747 views Dec 10, 2024 #강은정 #강사 #가수
간증, 강의, 공연, 강은정TV 출연 문의:
kang22tv@gmail.com
#강은정#한국#가족#가수#강사#MC
Transcript
Follow along using the transcript.
Show transcript
강은정TV
273K subscribers
Videos
About
강은정의 인스타그램
59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Add a comment...
@야무영웅
4 months ago
저희 어머니 양손에 저랑 동생 손잡고 등에는 막내동생 업고 외갓집 갈 버스 기다리고 있으면 저 멀리 뽀얀 먼지 날리며 낡은 버스가 오던 기억이 생생해요. 경부고속도로 만든분이 계산을해보니 1989년이면 전국토가 포장도로가 될것이다 하셨는데 1992년에 전국토 포장도로가 되었네요. 버스저기온다! 어머니의 손짓에 저멀리보니 산신령 주변의 연기처럼 먼지나던 그 80년대가 영상보다보니 갑자기 떠오릅니다 ㅋ
26
Reply
2 replies
@방랑자-t8c
4 months ago
김 정애님 잘오셨습니다 북한도하루빨리 주민들이깨우쳐서 모두가 자유를위해 싸워야합니다 안타까운일들이 많을텐데 김씨일가를 쓰러트리는것이 최우선되야합니다 김정애님 항상건강하시고 좋은일만 많으시길 기원합니다
13
Reply
@정푸름-y9j
4 months ago
김 정애님 응원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파이팅
16
Reply
@이기선-u5b
1 month ago
잘오셨습니다 🎉🎉🎉🎉🎉❤
3
Reply
@아름다운나라-b6q
4 months ago
"우리는 하나다"
걸어서 금강산 ~~~~
걸어서 평양 ~~~~
걸어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그 날을 위하여 ~~~~
남녘과 북녘이 하나가 되고
휴전선이 붕괴되어 자유통일대한민국이
되는 그 날까지
강은정님 화이팅
☆한민족은 하나다☆
6
Reply
@나오미-o7p
4 months ago
입으로 말하기도 힘들고 참혹한 일을 당하셨네요 ㅠㅠ
북한은 강도집단 맞아요 ㅜ
그런데 자유대한민국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북한 김정은이를 찬양하는 인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픕니다ㅠㅠ
19
Reply
@코스모스-i1p
4 months ago
은정씨! 대한민국에서사시는 대부분의탈북민들께서 처참한 일들을많이겪고당하고 오신분들이많으신데ᆢ정애씨도만만치않네요! 은정씨 정애씨의 첫스토리잘들었어요, 앞으로의스토리도기대하면서ᆢ즐건저녁시간되셔요
3
Reply
@강윤호-p1i
4 months ago
강은정씨 순산하세요
11
Reply
@palebluedot7243
1 month ago
평북 대광군 생화학 공장...
1
Reply
@meaewosika2280
4 months ago
아버님의 러시아 월급은 모두 김씨 인마이 파켓 했지요 지금 용병들것도 같은거죠.
4
Reply
1 reply
@강윤호-p1i
4 months ago
세뇌교육이 무서운 겁니다
10
Reply
@김종원-f4j
4 months ago
정애님 수태 방갑쏘야~~
8
Reply
@02loveu_G
4 months ago
볼때마다 분노가 치밉니다! 만주로 돈벌로간 북한여성들은 하나같이 인신매매 당했다는 것이!
5
Reply
1 reply
@최호균-v8b
4 months ago
행복 하시라요
6
Reply
@김종원-f4j
4 months ago
인육을 먹었다니 믿어지지가 않고 끔찍하오야~~
6
Reply
1 reply
@바람이분다-f7n
4 months ago
북한 너무 무서워요…ㅠㅠ 사람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처참합니다…저런 지옥이 아직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ㅠㅠ
Reply
@wlsrhkd5868
4 months ago
대광군? 대관군이네요.
게다가 대관군은 1952년 12월 북한 행정구역 개편 때 종래의 삭주군 남동부에 위치한
남서면·외남면·량산면 및 수풍면의 일부가 분할 신설 되었다네요.
이렇게 되면 실향민들은 통일 돼도 고향 찾아가기 힘들겠다.
1
Reply
@홍봉근
4 months ago
80년대 일본 농촌 논길 포장된거보고 놀랐는데 ㆍ90년대 종반( ?) 부터 우리나라도 포장 시작했습니다
1
Reply
@바다사랑-x1z
4 months ago
쩝!!!!--::탈북민들 영상이야기를 들으면 울분이 차오릅니다!!!!--::저또한 지하실 월셋방출신인데 남들은 지하실살았다니 빈곤하게 살았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생각해보면 그때 지하실 살때가 행복했었던시절이었죠!!!^^--::그전집이 한옥집 푸세식화장실이었는데 냄새가지독해서 단일분도 못견딜정도였었는데 그래서 친구들 놀러오면 차마 그곳으로 못보내서 옆집주인집이 그나마 푸세식이도 좀크서 환기도 잘돼서 냄새도 적으니 그곳으로 보낸 아픈기억이 있습니다!!!^^--::그래서 지하실로이사와서 현관문옆 화장실 쪼그리는건 똑같지만 줄잡아당기니 물내려가서 금방사라지는 마법(??^^--::)을보니 얼마나 행복하던지!!!^^--::아직도 그기억이생생합니다!!!^^--::한번은어머니께서돈벌어서 석유보일러에 넣을기름한통사시고 쌀한가마 샀다는 소릴들으니 마음이 푸근해지는!!!^^--::그렇게 살은추억이 있습니다!!!^^--::그렇게 없이살아도 탈북민들 소릴들으면제가 그때행복했었구나 싶습니다!!!!--::쳐죽일 김씨족속들 때문에 불쌍한 우리 북한주민들생각하면 안타까워서 눈물이납니다!!!!--::조금만기다리시면이제 곧통일될겁니다!!!^^--::더이상 미뤄질수없는 하늘의 역사가 곧이뤄질것입니다!!!!조금만기다리시면 우리민족의소원이 이루어질겁니다!!!
우리의소원은통일!!^^
Reply
@프리미엄강찬
4 months ago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쪽잠과 죄기밥을 먹고, 인민들에게는 빵으로 월급을 주면서 지상천국을 만들어가고 있네요.
1
Reply
Transcript
처음에는 저 남자놈들이 처음에는 뭐
우리 저 북한에서 들었던 됐던 그대로
저건 다 보여주기 시기야 이렇게 하고
이제 아니라고 하면서 봤는데 야 저
해도 저기는 야 다 세 세면 포장
도어다 어 잘 사네 그리고 그니까
무슨 집구석 어소리 그렇게 붙어서 살
것이지 응 한국 간다고 나대다가
그렇게 잡히냐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거 한
거예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은정의 은정 있니다네 계속해서 새로운
초대 손님들이 올 때마다 관심 가지고
봐 주시고 댓글도 남겨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로운 초대손님 또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본인 소개해 주세요 탈북인
김정회입니다 어 평안북도 대관군
오남매 중 둘째 달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도
대한민국에 왔고요 지금은 저 인천에
살고 있습니다 아 아 예 반갑습니다
우리
김정해 선생님은 진짜 또 많은 일들을
겪으셨다고 북한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셨어요 북한에서 저희 아빠부터
소개해야 되겠지 저희 아버지는대
대관군 있는 공장에 다녔어요 무이
생목이 그러다 보니까 굉장히 이제
생명에 좀 위험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나오려고 했었는데
못 나오잖아요 북한이라는 나라는
자유가 없으니까네 자유도 없고 나올
자유도 없고 당해 배치해 준 대로
거기에 이제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한
10년 정도 제가 12살 때인가 그때
이제 어 아버지가 갑자기 러시아로
가겠다고 그러더라고요 왜냐면 그 해학
공장에서 나와야 되는데 나올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러시아를가 한 3년
동안 가서 있는 동안에 저희는 이제
또 이사를 오게 되었죠 저희 아빠가
82년도 갔으니까 30대 아마 초반에
갔을 거예요 근데 이제 3년만 3년
후에 왔는데 할아버지가 됐더라고요
엄마나 군대에 와서 그 상황들
이야기하는데 제가 볼 때 12살 아버
12살에 갔다가 아버지가 다시 귀국
하셨는데 그때 어릴 때 들었던 그
아버지 러시아 생활은 너무 기가
막혔어요 너무 배가 고파 우리는
생각에 해외 가면 전 배는 부른 줄
알잖아요 너무 배가 고팠고 너무
추웠고 밖에 나가서 춤 탁 뱉으면
구자리 어려서 어려움이 떨어진대요
그렇게 추운 데서 있었다 하더라고요
저는 최고 여기 와서 알았어요 노동
착지 했다는 것을 3년 만에 몰랐죠
러시아 빵을 한 세 박스 정도 가져
왔더라고요 달달한 빵이 있어요 근데
저의 그래도 그나마 어 시골에서는
그게 빵이 러시아 빵이 귀하니까 막
저를 엄청 부러워 했었거든요 근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어 근데 이제 기
어 간식이었는데 그 월급으로 받은
거예요 3년만 3년 동안 다 모았다가
이제 월급으로 받은 거 빵을 가지고
오고 더는 이원도 무일푼으로 그냥
착취를 당한 거죠 야 세상에 아니
그럼 그 아버지께서 화학 공장에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거기서 무기를
생산한 건가요 제가 어릴 때라 이제
어 디테일하게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거기 거기 그 회사 다니면 오래 못
산다고 계속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생명에 대한 이게 좀 위험이 있었던가
봐요 그래서 이제 그 나오기 위해서
러시아 가기 전에 이제 진단서가 또
아프다고 진단서도 계속 뛰었고 이렇게
했나 봐요 그래도 이제 군데 나오지
못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제 구
결단을 한 거죠 근데 거기 러시아는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것이었어
아버지가 말하는게 매일 죽었대요 그
일하던 노동자들이 죽고 시체를 이게
냉동을 이렇게 시키나 봐요 그 거기는
그렇게 춥대요 그래서 그때 그 시체
볼 때마다 나도 언젠간 이렇게 죽겠고
나는 그 공포 공장에서 다닐 때랑 그
다닐 때는 이제 뭐 생명에 대한 이제
생 항 무기니까 사람을 죽이는
무기니까 그거에 대한 위험이 있었는데
러시아 가니까 그 시체가 또 눈
앞에서 그렇게 보여지고 하니까 항상
아버지 우리 아빠는 불안했던 것
같아요 어떤 해외 소식을들은 건
없었나요 듣고 와서 전해주신 그
저희가이 밖에 나가 말을 할까 봐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저희 엄마한테는
이제 속지 딱 가면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아 그래도 러시아 거기 갔는데
그래도 몰래 이렇게 도망이 로스에서
도망치기만 하면 그래도 그 여기하고
좀 다르게 자유롭게게 배고 배부르게
먹을 수도 있고 어떻게 좀 자유롭게
살 수도 있었대요 근데 저희 아빠
같은 경우는 자녀가 아 다시아 그게
저희 엄마 있잖아 그러니까 저 도망칠
수도 없고 그러니까 저희 엄마는 계속
이게 들 때마다 더 그니까 아버지 3
동안 러시아에 가서 그니까 그 러시아
작업 현장에 갇혀 있긴 했지만
북한보다 낫다는 서식은 들었나 보니까
저희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찾아온 아버지가 너무 감사했다 봐요
아 근데 자녀를 많이
나오셨네 다섯 명 저 다섯 명이 저
언니 한 명 있고 밑에 이제 남동생
세 명인데 근데 지금 봄이 많지
않아요 왜냐면 저는 탈북을 했고 저희
큰 남동생은 감옥에서 죽었어요 그리고
막내 남동생은 정치범 생에서
끌려갔어요 만 그래 낳기는 다섯 명
났지만 저희 엄마랑 지금 현재는
자녀들 북한에 두 명 있어요 언니랑
왜 정치범 갔어요 와서 서식을 들었죠
들었는데 그쪽 부분에서 일하던 분을
통해서 들었는데 제가 북한 때 정치범
수용서 하면 어 반동 분자라고 알고
있었어요 근데 여기 와서 보니까 반동
분자는 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반동
북한에서는
반동분자 기독교인들이 반동 분자인 어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반동분자 가
있 젊은 남자들을 젊은 여자들 이제
부류를 해가지 분리를 해가지고 어
생체 실험로 생 항목이
생채지 그리고 이게 드러났어요
그러니까 그 아무리 가서 그렇게
보완해서 송치 그래서 이제 저희 남
막내 남동생 끌려갈 때 사진도 다가
가져가 더요 저희 엄마랑 이제 막내
남동생 있었는데 사진도 다 어가면서
얘는 알 수 있는 너 권리가 없다
얘는 이미 이미 간첩에게 간첩 유명
있었다더라 간첩 명음
음간 서을 없을거 그 다 가을 것
같아요 근데 이제 그래서 그런가 봐요
생체 수험을 이제 데려가야 되는데
이게 비밀이 드러나면 이제 가족들에
대해서 이게 이게 드러날 수 있으니까
여기 와서 어떡해 들었는데 참 너무
힘든 얘기가 이렇게 있을 줄
몰랐거든요 근데이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어요 북한이 소위 죄인이라고 어간
사람들 를 그렇게 다룬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거든요 저희 막내 남동생
나이가
30대였던 어떻해 나이 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어쨌든 근데 그
나라는 저거는 나라가 아니죠 나라라고
하면 안 돼요 저거는 집단 있잖아요
강도 집단 그지 사이이 그러면 어떻게
탈부 하게 되신 거예요 98년도
김일성이 죽고 그때부터 권한의 행군이
시작되
있잖아요 처참 하더라고요 저희 가족들
중에도 이제 많은 어 사망이 있었어요
제 그전에는 죽은 사람 좀 궁금하기도
했어요 아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런게 좀 궁금하게 했었는데음
권한의 행군 때 이제 딱 그 길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죽었다는 거예요 파리가 날라다니고
구데기가 막이 눈도 파먹고 막 이렇게
벌벌벌 기어다니는데이 죽지 않고는
사람이 살아 있다면 그렇게 구데기가
파먹을 수 없잖아요 그니까 그걸 딱
보는 순간에 끔찍 하더라고요 아
사람이 저렇게 죽어 있네 사람이
죽으면 저렇게 되네 나도 언젠가는 내
얼굴에서 저렇게 구더기가 기어다니지
않을까 음 너무나도 처참하고 하니까이
땅을고 싶더라고요 우리가 북한에서
세뇌교육 당했을 때는 내 산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그까 그 나라가
제일로 좋다는데 그 나라에서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예 탈북을
하게 되었죠 중국으로 처음에는 덤
벌러 왔죠 왜냐면 이별이라고 상상을
못 했으니까 덤 벌어 가지고 나가야지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중국에서 또
다른 권한의 길이었지만
처음에 건너가는데 거기 위험하니까 딱
그분이 추천으로 안쪽으로 갔는데 버스
타고 또 버스 타고 버스 타고 가는데
심신 산거에 가는 거 그런데 이제 한
남자가 저를 이제 마중을 왔더라고요
그래서 가게 된 것이 앞에 봐도
산이고 옆에 봐도 산이고 뒤에 봐도
사내고 깊숙한 상권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돈 주고
이제 사왔기 때문에 말을 딱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이게
물건도 안 아니고 돈을 주고 사왔다고
하니까 막 중국에 가서 돈 을 벌게
해주겠다고 손을 낮은 사람이 팔았다는
거죠 어 팔려 갔어요데 다른 거는
모르겠는데 너무 이제 저를 막 차별을
하는 거요 응 간에서 그 거지 같은
나라에서 왔다가 그 소리를 딱 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의가 살아
있으니까 야 막 이러면서 막
싸웠거든요 너네는 근데 이제 제가
그가 팔려서 간 집이 초갓 집이었어요
저는 그래도 권한이 행군 전에는 조금
저 북한에서는 그래도 뭐 벽돌집 이런
데서 살았었거든요 불 때는 집이긴
하지만 아빠 또 어에서 청진에서
살았으니까 진짜 아빠 말이
아파트지네 고통스러워요음 정말이
아파트 충인데 총까지 올라가는데 기
어 여기 대한민국에는 다 런 불이
있잖아요 저 복도마다 예 자동 자동
불이 있죠 어 센서 있지 근데 저기는
없어요 그런 불이 그 올라가 낮에는
그런 데로 올라갈 수 있어요 근데
밤에는 뭐 내려 내려 먹다 근데 밤에
또 내려올 일도 크게 없어지 왜냐면
화장실 말하면 거기서 폭도가
화장실이 막나가면 막 냄새 막 악치
냄새 나고 아침에 눈을 딱 떠서
보면은이 계단마다 다 똥오줌이 그리고
저희는 이제 석탄을 뗐 그든 그러니까
오줌까지 석탄을 석탄 올라갈 때도
짐이고 내려올 때도 짐이에요 올라갈
때는 석탄이 내려올 때는 제가
내려오는데 그 재를 밤 중에 사람들이
내려오기 싫으니까 계단 에다 저락
뿌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 계단이 뭐
재 투성에 오점 투성에 똥 투성에
그런 그런 말이 아파트지 그런 그런
데서 살았어요음 그래도 아파트는
아파트지 근데 나중에 이제 중국에
오니까 농촌 시골에 팔려 가는데
초가집 이더라고 안에 이제 막 이런
천정의 이런 뭐 기둥 이런 나무도 막
부동성 성 보이고 거지 같은
나라에서면 야 너 집에 더 커지다
막이 막 소리지르고 싸웠거든요 중국에
넘어와서는 북한이 잘못된 건 알았어요
그전까지 좌회 나가기 전까지 몰랐어요
진짜요 응 저는 다 아니라고 부인을
했어요 미제와 남자성 게도 당들이 응
유원 비을 퍼뜨리는 거라고 나쁜
놈들이 우리나라 조선민주 이민
공화국을 어 말살하려고 그렇게 유원
비인도 퍼뜨리다 했어요 그러니까
웃더라고요 그 한국 그 중국 사람들
웃으면서 기 막히지 그런데 이제
나중에 그렇게 진짜 굶어 주고 굶어
주고 가는 사람들 그렇게 방치했는데도
말 불구하고 나는 여기 중국에 왔는데
이제 그 조선적 동네 가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러는 거예요 아유 쟤네는
그렇게 못 산다며 어 배고파서 나무
껍질도 먹는 다에 또 그리고 애도
사람도 막 잡아 먹었다며 근 이게 현
었어요 제가 탈북하기 전에 그 소문을
들었어요 어떤 소문이 있었냐면
할아버지를 잡았대요 그니까 안전
안전에서 잡아갔는데 그 집을 딱
들어가니까 하고 그 옷장도 있잖아요
막 속은 냄새는 나는데 이게 이게
아무리 디젤도 찾지 못했는데 그
옷장이 별로 보니까 이렇게 또 벽에서
이만큼 한 한미 정도 띄어져 있더래요
그 또 옷장 뒤에 봤는데 마대가
이렇게 있는데 거기 사람 뼈 들이요
여자들이 여자들이 많이 행방을
다녔잖아요 떠난 장사를 말하죠 응
보다리 장사 그 보다리 배낭에 이제
팔 것들 메고 다니고 그기는 또
교통도 없고 하니까 다 걸어다녀야
되잖아요 그래서 걸어다니다가 이제
날이 어슬어슬 하면 어떤 할아버지가
그 아바이가 딱 그 나와는데 아이고
이제 날이 저물었는데 저 집에서 좀
자고 가지 이렇게서 유인해 꽃 꽃해
가지고 자기 집에 들고 들어간대요
그래 가지고 이제 그 집에 그이
그분들이 이제 보다를 다 빼서 밥을
또 해준대요 해서 기 배불 인데요
그리고 그 우리 저저 북한에 그 농이
하잖아요 수술 피곤한데이 한잔하고 저
푹 자 그리고 아침에 내가 아침에도
밥해 주겠 으니까 먹고 길 눈히 먹고
떠나라고 그 그 그럼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넘어가지 그리고 이제 술
한잔 먹고 팍 이렇게 자잖아요 근데
그 술에다 맛 그런 거 약을 탔대
그래서 이제 사람 주에서 그렇게 했다
하더라고 그 많은 사람들 어쨌냐
하니까 돼지고기를 속여서 들
팔기도하고 자기도 먹었다고 그래서
그러다가 이제 의원이 거해도 한국
드라마 이게 채널이 들어는 거예요 안
하려고 그래서 이제 딱 봤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 영화가 너무
재밌더라고요 제목이 뭐예요 욕망이
바아 아 바로 나오시는 영망 너무
그지 딱 드라마로 보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처음에는 저 남조선 놈들이
처음에는 뭐 우리 저 북한에서 들었던
세뇌 됐던 그대로 아 저건 다
보여주기 식이야 이렇게 하고 이제
아니라고 하면서 봤는데 범위에서 계속
그 드라마가 너무 재밌고 그리고 이제
한국 그 채널이 들어다 보니까
드라마도 있고 예음 도 있고 이런게
많았어요 다양하게 책 뭐 매 시간마다
다했잖아요 드라마 나오는 시간 있고
뉴스 나오는 시간 있고 또 다양하게
보면서 아 이게 뭔가 북한에서 배던
거하고 다루네 얘는 어떤게 나왔어요
어 제가 저 꽃 챙기고 탈북민 하나
있 탈북민 여자 혜영 응 노래를 엄청
그때 당시 잘해 가지고 최초 탈북민
연예인이 됐을 거예요 맞아요 막 그거
이제 그 그분이 이제 막 그 예능을
하면서 다니 거 너무 부럽다 시골도
다니고 뭐 어디도 다니고 그서음 그걸
보면서 야 저 농촌에도 저기는 야 다
세면 세면도 포장 도어다 어 잘 사네
그리고 한 같았으면 반 정자를 치고
당할 만한데 저 요사는 저게 TV
텔레비 나온다 야 막 부러웠죠 데다가
이제 그 드라마에 나오는데 여자들이
여자들이 삶이 너무 부러운 거예요 좀
번건인 이제 그 남전 엽이 그런게
있다 보니까 근데 남만의 여자를
보니까 너무 더더고 너무 당당한
거예요 막 어 남자들이 애도 막 안고
다니고 가방도 재주고
그기는 드라마에 오는 그 그 주인공은
굉장한 부자였는데 불 여자한테서 기도
맞고 막 이러더라고 그래서 저
여자는어야 나보다도 더 못생겼는데 어
저렇게 당당하게 사는 나도 좀 저
여자처럼 살고 싶다 이제 요런 마음에
생 차츰차츰 생기면서 아 나도 한번
남조선에 가고 싶다 이렇게 이제 그런
그때는 이제 한국이라 보다는 우리
북한에서는 하도 남자 선이라고
들어가지고 그렇게 생각을 하신 거군요
그니까 남만의 문화가 너무 이제
좋더라고 남만의 그리고 그리고 이제
목소리 자체가 이게 포드 잖아요
아니야 막 이러고 자기야 막 이런게
너무 이제 너무 보드럽고 마음이 막
막 이게 살랑살랑하고 막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어 나도 저 남조선에 가고
싶다 이렇게 이제 그때부터 이제 그래
한국 드라마가 열어 살렸네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마음에 그렇게 갈망이
있으니까 또 그렇게 서원이
이제 저는 시이다 보니까 뭐 얘기를
해요 근데 바티 좀 너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도시에서 이제 기 돈벌
라오는 분들이 있었어요 근데 그분
중에 한 분이 딱 그런 거예요 아 제
저는 그때 20대 후반이었던 아
이렇게 젊은게 얘게 농촌에서 어떻게
고생하냐고 그러면서 막 그런 거 어
한국에 가면 이러 한국에 가면 집도
주고 돈도 주고 어 이렇게 국적도
준다는데 한국에 갈 것이지 막 이러는
거 마 난 침 남조선에 가고 싶어는데
어떻게 하면 가요 했더니 그분 이 딱
이렇게 연락 연결을 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어느 날 전화로 어
어디 어디로 나오 해가지고 갔어요
용길의 이제 그 옷 약속 장에서
버스에서 내리라 거기 딱 내렸어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좋은 브로커가
아니라 나쁜 브로커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 딱 갔는데 사
퉁퉁한 사복 한 어떤 남자가 톡 오는
거예요 그니까 조 날로는 완전 이제
할아버지였던 젊은 좀 젊은 사람이 온
거예요 그래서 나를 딱 보더니 자기랑
나랑 같이 가기 이러는 거예 그래서
어머야 아 나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왜 같이 가요 더니 신분적 딱 보여
주는게 공안국 신분 쪽 딱 보여주는
거야 사복을 했더라고요 사복을 거고
경찰복을 입었더라면 제가 막 도망치지
있었는데 도망치지도 못했거든요 그 딱
잡혔죠 거기서 아니 난 잘못한 거
없는데 왜 가야 돼 왜 왜 가요
하니까 아니 몇 가지 물어보고 보내
줄게 이러는 거예 그 아니 나 누구를
기다려야 된다고요 막 거기서 막 서리
질렀거든 그러니까 아니 같이 가자는데
아이 씨 뭐 머르 줄 아냐고 이러면서
이제 저을 닦고 토바 딱대 가지고
이제 가는 거예요 신능 파서로 그래서
그때 이제 아 끝났구나 하고
그때서부터 울었어요 막 울면 불면
막이 다리 바지 가랭이 딱 잡고 나를
좀 내놔 달라고 내놔 달라고 막
그러면 울었어요 그랬는데 그 그
사람이 딱 그러더라고 그러니까 무슨
집구석에서 어소리 그렇게 붙어서 살
것이지 응 한국 간다고 나대다가
그렇게 잡히냐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거 한 거예요 그 그렇더라고요 흥한
구리 써 있어 연길에 흥 서랑 구류장
있거든요 연기를 잡혔으면 그 연 문을
우리 그 그 강제 국성 시키잖아요
근데 도문 나가기 전에 어 연기를
구류장에 한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
그때는 이제 솔직히 제가 아기
있었거든요 덜 금방진 한 기 있었어요
그 이제 다시는 나는 그 애를 버지
못한다는 생각에 막 눈앞에 캄캄한 거
그냥 눈물밖에 안 나왔어요 그때 이제
그 구류장에 이제 하루 새끼 뭐
옥수수 빵 같은 거랑 주더라고요 근데
그거 너무 넘길 생각도 안 나 다지는
애를 못 보니까
데 거기 같이 잡힌 그 연길에 있는
그 저선 언니들이 몇이 있었어요 근데
그분들이 물어보는 거예 야 그래 너는
어찌다 잡혔네 그래 처음에는 말마다
계속 울기만 하다가 한 이제 이틀
지나서 그분들이 계속 물어 내 계속
오니까 어찌니 막서 그러는 거예요 나
여기 아기도 있는데 나 다시 아기 못
봅니다 못 봅니다 이러니까 왜 나
저기 북한 나가면 우리 아기도 못 봅
너도 탈복 자야 이게 어떤 할아버지
저 한국 보내 준다고 해서 전화받고
왔는데 아 그 그 아바이를 막 욕하는
거예요 그 아바이가 전문 정문
상습적으로 그 아바는 그렇게 탈북
자들만 알면 신고를 해 가지고 포상을
받는 할아버지가
있더라고지 않어 그래서 그 언니들이
그러 신고해 가지고 그돈 몇 분 받아
가지고 얼마나 잘 살겠다고 제 딸
같은 거 이렇게 신고 하냐고 막
그러면서 그러더라고요 아 그래서 잡혀
나갔어요 그래 강제 복성 당했죠
l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