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6, 2025

[김혜성 풀영상] 집도 없던 앞집 고아 언니를 한국에서 만난뒤 깜짝놀랐어요… 완전히 뒤바뀐 인생



[김혜성 풀영상] 집도 없던 앞집 고아 언니를 한국에서 만난뒤 깜짝놀랐어요… 완전히 뒤바뀐 인생

강은정TV
273K subscribers

Subscribed

8.1K


Share

Download

Clip

Save

174,083 views  Oct 7, 2024  #강은정 #강사 #가수
간증, 강의, 공연, 강은정TV 출연 문의: 
kang22tv@gmail.com

#강은정#한국#가족#가수#강사#MC
Transcript
Follow along using the transcript.


Show transcript

강은정TV
273K subscribers
Videos
About

강은정의 인스타그램
328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Add a comment...

@혼의후예
6 months ago (edited)
눈물 없이 들을수가 없는 사연이 너무 구구절절하네요. 왜 옛날 어른들이 신파극이나 드라마 보면서 그리도 눈물 흘렸는지 몰랐었는데 좀 살아보니 사연들이 들리네요. 625 세대가 아니라면 저런 사연을 가진 한국인들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ㅠㅠ.ㅠㅠ

105



Reply


@바람이분다-f7n
6 months ago
눈물없이 들을 수 없네요 …혜성씨 고생 많이 하셨네요. 참 자랑스러운 엄마세요. 힘내시고 따님과 행복하세요

54



Reply


1 reply

@또벤-j5q
6 months ago (edited)
지금까지 인터뷰중에 제일 슬픔의눈물,감동의눈물을 많이 흘렸네요!
감동했습니다!

71



Reply


@パクトンハン
6 months ago
눈물나네요 따님과 행복하게 사세요.

85



Reply


@레나짱-t7l
6 months ago
두분 한국에서 북한에서 못이룬 하시고싶은 일들 다 이루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51



Reply


@혼의후예
6 months ago
자꾸 보다가 보니까 자꾸 댓글 쓰네요. 한국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려 있고 실제로 가족과도 사이가 안좋습니다. 그러지만 저분처럼 심리 치료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고 그런 용기가 있는 분들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네요. 그저 저분같은 분조차 저렇게 이겨나가시는데 더 큰 사연이 있는 한국분들이 얼마나 될까 싶네요. 저도 사실은 우울하지만 감히 우울하다고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여기처럼 북한분들 사연 들으면서 힐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38



Reply


1 reply

@kkulchaek
6 months ago
우리 애기도 6살때 국정원 조사때 그안의 어린이집에서 아침9시~오후5시까지 잘 케어주고 거기서 한국적응 다하고 나왔어요

25


Reply


@김명희-n1d
6 months ago
북한에서와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성공했으니  북한땅 변화시키는일에 앞장서주셔서 노예된 북한주민  속히 해방되길  힘써주세요  홧팅

72



Reply


@min-cn4nu
6 months ago
이제는 충분히 행복해야할 자격이 있고 행복은 멋진 당신의 모습입니다.

62


Reply


@dandy-bm8ny
6 months ago
인륜을 져버릴뻔한 인고의 7년동안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지금의  혜성님은 과거의  험난했던 흔적은 찾아볼수 없으니 참으로 슬기롭게 잘 이겨내셨습니다!

27



Reply


@JJBS-z8y
6 months ago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혜성씨 항상 행복하시고 응원합니다

38


Reply


@아름다운나라-b6q
6 months ago
"우리는 하나다"
걸어서 금강산 ~~~~
걸어서 평양 ~~~~
걸어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그 날을 
위하여 ~~~~
남녘과 북녘이 하나가 되고 있어 
휴전선이 붕괴되어 자유통일대한민국이 
되는 그 날까지 
강은정님 화이팅 
☆한민족은 하나다☆

19



Reply


@ilchulkim9
6 months ago
나 지금까지 80이 넘게 살면서 아기 탯줄을 잇발로 짤른 기록은  처음 들었네요 앞으로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속에서 사시길 바랍니다

7


Reply


@김종원-i6w
6 months ago
김혜성님
태국 감옥에서 맞은 새해 설날 한국  대사관에서 보내  준 쌀밥 외 반찬 네가지
된장국 김치가 
북한에서  거들떠도 보지 않든 사람 대접 않든 북한에 비해 뭔가 소속감 을 갖게 해준 감동  
그 진솔한 표현 100%공감을 갖계 합니다
인간 백정 만도 못한 친구 오빠 
검은 옷의 트라우마 이야기를 듣고 밝은 옷으로 갈아 입고 나온 국정원 직원의 배려 등등 고마움의 마음 듣는 입장에서도 감동 입니다
내 나라 대한민국 국정원 직원들 구독자로서도 고마운 긍지를 갖게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해주는 강은정님 댕큐!

11


Reply


@이종만-j3v
6 months ago
인육을 먹고 내장을 팔고...
믿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듣고 있으니 눈물만 나네요

15


Reply


1 reply

@독고다이-d1y
6 months ago
시간가는줄 모르고 잘봤습니다.말씀을 조리있게 잘하시네요..^^

68



Reply


@soul-ws7np
6 months ago
한국 소설가 현진건  소설에 배가 너무고파서 아기가 닭으로보여서
삶아먹었다는이야기가  있어습니다
배고프면 보이는거 없습니다
참 눈물없이 볼수없네요
한땅에서자란친구동생을 팔다니. 슬프네요
얼마나힘들면
우울증이심하면 심리치료에   
최면치료까지받으시고 우울증회복되서 아이를 사랑할수 있는  마음을주셧네요 아기와 행복하세요

7


Reply


@朴景英
6 months ago
한국대사관에서 마음을 쓰주셨군요 정말 고마웠겠습니다 역시 잊지못하셨겠습니다  눈물나네요  이제부터는 남한이라는말쓰지말고 
한국 또는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시기바랍니다 남한이라는말 쓰지마세요

11


Reply


@j.b.r.m8321
6 months ago
다 필요없고 지금부터라도 행복하게 열심히 사시면 됩니다.
우리 모두 행복합시다~

25


Reply


@작은거인-v5m
6 months ago
은정씨 한동네 살던분 만나서 반갑겠네요
대홍단 동창회?
해봐요 재미있겠네요
응원 합니다

19


Reply


1 reply
    
Transcript


[음악]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은정
텔레비전의 은정 있니다 오늘 또 새로운 초대 손님을 모셨는데요
자기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양천구청에서 지금 임기재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고요 어 한국의 원지는 거의 2009년에 한국에 왔습니다네
아유 온 얼굴이 아주 예쁘시네요 고맙습니다 예 이름이 어떻게 돼요
김혜 합니다네 반갑습니다 우리 혜성 언니로 말하면 또 저랑
대홍단 한 동네에 살았어요 맞아요 정말 너무 반갑네요 나도 나는 처음에
진짜 뭐 알아보겠더라 저를요 그지 우리 그게 20년 넘었으니까 내가
떠나는데 그때 자기는 진짜 학생이었죠 그 아 맞아요 아 그때는 똘망똘망
하면서 조금 좀 내성적이 었잖아 심하고 근데 진짜 뭐 알아보겠더라 성격도 많이 변한 것 같고
진짜 뭐하라 했어 그래요 한국에 와서 진짜 많이 변화한 거 같아요 어때요 고향 사람 여기서
만나면 너무 반갑지 반갑죠 너무 반갑지 대형 단에서 온 사람 엄청
많아요 동창에 좀 열어야 되겠어요 그거 해하다 예 너무 좋고요 진짜 또
대한민국에 와서 지금 와 공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니까 또 얼마나 열심히
살았 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 열심히 살았죠 근데 또 구하지 않게
또 운도 따라 줬으니까 했겠죠 누군가 나한테 푸시를 해 주는 그 기운이
조금 나한테 더 있었으니까 예 될 수 있었죠 그래요 나는 솔직히 자기
엄마인데 너무 미안한게 나는 솔직히 대홍단 사람들한테 미안한게 없어
오히려 증거 원망 고양이라고 하지만 어떤 때는 내가 어떤 생각하냐면
북한에서 그런 말 하잖아 고향 버렸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있잖아 그 난 그 사람들하고 그런 말해 내가 버렸어
너네가 버렸지 너네가 우리를 버렸잖아 나 살겠다고 그만큼 노력을 했는데
너네가 우리 버렸잖아 이렇게 말을 했거든 근데 오직 한 사람이 미안하다
하면 자기 엄마야 우리 엄마 그렇지 우리 엄마한테 왜 미안해요 나하고
자기 엄마 자기 언니하고 나 사고 자꾸 많이 쳤어 장사한다 치고 어데 사고 쳐 놓고 그걸 자기 엄마가 음이
뒷정리를 다했잖아 그렇지 솔직히 건강하지도 못했어 허리가 아파서 맞아
그 허리를 붙들고 다니면서 우리 사고 쳐놓은 걸 뒷정리 해 주고 그거를 해
준다고 그 그 모기를 또 북한은 차나 있어 다 걸어다 다 걸어 다녔잖아
아우 엄마 얘기하니까 돈물 날려고 그러네 어 한 번 걸으면 몇 시일을 런 그거를 홀리 히친 히친 하면서
그리고가 생각 제일 미안한게 자기 엄마야 솔직히 응 제일 미안해 우 엄마 우리 엄마 참 좋았지 북한에서도
사람이 없어 그렇게 그런 사람 없어 그러니까 고생은 제일 많이 하고
맞아요 그대 지금 대한민국이 와서 우리 엄마 잘 살고 있어 언니음 다행이다 응 한번 만나야지 그래 꼭
만나야지 북한에서 언니 무슨 일 했지 언니 북한에서 제일 처음에 전공을
농대를 해서 수의사를 했잖아 축산에서 수의사를 하다가 돼지한테 한번 빠기는
사고하면서 예 다시 못하겠다고 다가지 다고 그 아빠가 안겠다서 공장으로
피복 공장으로 피복 공장으로 려서 그때 피부 공장에 다 때지음 그래요
축산에서 일을 했으면 고기 같은 거는 좀 많이 먹었겠네 돼지 농장이 아이
어떻해 물론 대단 일반 주민에 비해서는 썩은 죽은
돼지고기는 먹었겠지 진짜 근데이 죽은 돼지 거기가 그냥 죽은 돼지 거기는
아니야 얌전 그냥 죽지 않았고 어 어떻게 죽 전염병으로 죽은 거지 어
전염병으로 죽으면 그걸 다 먹 먹잖아 북한은 그렇지 근데이 원칙은 북한도
이제 방력 원칙이라는게 있어서 얘를 땅에다 묻어 땅에다 묻어서 이제
매립을 하는 거죠 근데 이게 매립지가 목장이 이제 한 개 목장이 동이 일곱
개 여덟 개 동이 돼 애들을 갈려는 근데 여기가 일곱 개 여덟 개 동이
되는데이 이 매립지가 목장에서 멀리 제 한국은 아마 그럴 거예요 멀리
떨어진 몇킬 떨어진 것에 이제 매립을 하고 완전 매립해지는게 원칙인데
북한은 그게 아니고 목장의 뒷마당에 매립을 하는 거예요 얘를 그 전염병이
돼지를 그렇지 부지 그니까이 그렇게 하니까 낮에는 매립하고 저녁엔 본래
가서 개를 파오는 거지 파다가 없잖아요 배고프니까 그거를 우리는
합식 생활 하니까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에 다리면 다리를 뚝 잘라가지고 가서 그
집에서 려주는 거지 려서 이제 같이 먹고 이렇게 한 그런 돼지고기를
먹었던 거죠 세상에 맛이 은가요 썩은 냄새가 살짝 나지 얘가
이제 전염병이다 보니까 어쨌든 얘들을 땅에 묻어 댔기 때문에 완전히 썩고
있는 물건들과 같이 묻으니까 그 살맞다 살맞다이 썩은 냄새가 살짝
그나요 그래도 고기가 귀 그렇지 배고프고 귀하니까 먹고 거지 아프지
앓지 않았어 먹고 난 후에 어 이게 예 전염병이 사람한테 아지 옮겨 가요
가요 그러니까 살 썩는 거는 안 오는데 뭐가 하냐면 아무리 꾸려도
그렇죠 그러니까 살 돼지 발족이 썩는 부분은 외상하다이 연결되니까 사람이
살은 썩지 않아요 근데 얘들이 돼지가 이제에 기침으로 죽는 돼지들이 있어요
기침으로 죽는다던가 폐 로 자꾸 알다가 뭐 사람을 한
파라티 돼지 그요 파라티 걸리 경우들이 있죠 그래서 살아 그 죽은
돼지를 아무리 꾸려도 그 병근이 사람한테 와서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어 아유 그래요 참 나 한국에
오니까 너무 좋더라 고기를 맨날 먹잖아 맞아요 나는 솔직히 처음에 한국에 왔는데 대주 고기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근데 비쌀까 봐 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들어갔다가 저기 돈이
비싸면 차마 나오기가 창피 세상 쪽팔린 거잖 그래서 안 들어가고
바깥에 그냥 몇 번을 안 싸고 다녔어요 다가 아는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거기 사러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언니 그거 비싼데 사지 마 사지 마 우리 그냥 아무거나 먹자 비싸게 뭘 비싸 세상 싼게 얘다
알더라고 돼지 고기하고 닭고기가 세상 싸대 풀보다 더 싸 대요 그 세상에
풀보다 더 싼게 채소보다 더 싸대 그래서 창피하지만 따라간 거예요
서으로 저마저 마면 연이 돈 없다면 내가 이거 돈을 어떻게 보충하니 어 거기가 북한처럼 생각하고
고기값이 그랬는데 어머 돈이 남더라고 완전 많이 남았어요 그래서 엄마나 이렇게 쌀
수가 있어 했더니 야이 집은 비싼거다음 나는 싸다고 생각을 했는데
언니는 비싼 거래요 그래 와 진짜 그다음부터 배짱이 생겨서 어떻하면
돼지고 사람 가는 거죠 맞아요 더라고 아 진짜 너무 좋은게 고기를 또
여기는 무슨 뭐 부위별로 다 있잖아 맞아요 맞아요 와 참 우리 북한에
있을 때 무슨 1km 사다 먹으면 많이 먹는 거고
그렇지 응 한 달에 거의 한 번도 거기 먹는 날이 없었죠 없었죠 그리고
뭐 김일성 생일 김성일 생일 때 선심수 듯이 조금씩 주잖아요 온통
비개 비계통 이만 있는 거 그니까 그거라도 제대로 줬으면 그러게 어
한국에 오니까 또 좋은게 거기를 막 냉동시켜 놓고 먹잖아 맞아음 점매
와서 나는 북한처럼 생각하고 응 없으면 이때 안 사면 없어질까
봐 나 왜 이렇게 웃기지이 얘기가 딸만 돌 달면서 고기를 냉장고 냉동실
꽉 채워놓은 거예요 언니가 근데
그때 회사에서 처음에 나와서 통역을 좀 일을 하면서 했는데 그 회사 사람이 와서 보더니 아니이 집은 무슨
돼지골 이렇게 무슨 뭘 식당을 차려 엄 생길 때 사야지 돼지고기 계속
생기는데 그건 계속 사둘 거야 그래서 언니가 그러더라고 야 대지인
냉동시키지 마 째끔 째끔 그때그때 신선한 걸 먹는 거지 이거 뭐 하는
거야 생길 때 사야지 북한처럼 생각했구나 그 그지 그때 못 사면
나는 못 사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러니까 야 참 그렇게 웃기고 그래서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어 가지고
언니가 얼굴이 좋아졌나 보다 그런가 봐요 예 북한에서도 워낙 예쁘고 막
상글 상글 하고 언니 얼굴은 딱 웃는 꽃잎 같았어요 지금도 딱 그런데
얼굴이 이렇게 살이 이렇게 올랐고 좀 뭐라고 해야 될까 근심 걱정이 없어
편안해 보여서 좋네요 그때 언니가 길거리를 이렇게
혼자서 그때 이렇게 머리 푹 숙이고 지나다닐 때는 굉 굉장히 그 짜지
동복 패딩 물 입고 그래도 힐은 신구 다니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보면서 좀
마음이 짠하고 이랬었는데 그때랑 지금 모습은 완전히 뭐 하늘과 땅 차이네요
그때는 아마 내가 대형당 골목을 다 누인 것 같아 사람 만나는게 너무
싫고 너무 사람 만나는게 싫어서 이쪽 골목에서 아는 사람 나오면 저쪽 골목이 저쪽 골목에서 아는 사람
나오면 이쪽 골목 아이고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실고 어느 정도였냐면
그 어쩌다 이제제 명절 날이랑 작은아버지 집이랑 같 가잖아 그럼 친척 집이랑 가면 얘기하기도 싫은
거야 그니까 그 한쪽 구속 작은 아버지 집 친척들 집 그 한쪽 구속에서 나오기가 싫어서 왜 말하기가
싫었어 몰라 그냥 싫은 거야 그러니까 아빠 엄마 돌아가시고 어 증 같은게
나보다 그니까 그 돌아가신 다음에 모든게 다 싫은 거예요 다 싫고 말
걸치는 것도 싫고 그래 그랬을 거 같아 부모님이 하루
아침에 돌아가셨는데 누가 그렇게 하 부모님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어
모르지 아버지는 어쨌든 진짜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퇴근 오니까 배 시체가 있더라고요 아침에 분명히 나를
직장 앞에까지 바해 줬는데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오니까 이렇게 시체가 앞에 있더라니까 뭐 무슨 뭐 뭘 잘못
먹었다던 뭐 급한 병 아마 한국좀 하면 살았겠지 그렇가 있니까 바로
앰스 와서 러가서 하면 근데 북한은 한국처럼 뭐 앰뷸런스가 있어 뭐
119가 있어 그래요 꽃사람 요만한 왕진가방 하나든 의사인데 그것도 또
얼마나 빌고 빌고 데리고 와요 그니까 아마 한국이었다면 지금 생각하면
한국에 와서 제일 했던 부분이 아 우리 아버지 엄마 여기였다 살았는데
아 맞아 그게 여기 하면 우리 아버지 엄마가 안 죽었는데 그렇지 정말
불러그 그 앰뷸런스 사람을 급하게 막 하잖아 그 그게 너무 부럽고 한번은
운전하고 가다가 뒤에서 앰뷸런스가 오는데 그 사람 오니까 나는 뒤에서
앰뷸런스가 오니까 처음에 그게 지금도 제게 감동인 부분이 그
바쁘게 가던 차들이 그 앰블런스 소리 한데 양쪽 길를 다 주잖아 그렇지 그
차는 아무리 비싼
스한 길 다저 내잖아 그 북한같은 도도 못나지 그거 그거 이제 그
환경을 한국에서 운전하면서 접할 때마다 아버지 생각 계속 나게 그지 야 여기 있다면 살렸는데 저
앰뷸런스가 있다면 지금 그랬다면
살았겠지 북한 사람들은 너무 무지하게 죽어가 불쌍 죽지 말아야 사람이 주고
가고 있어 아마 저승사자가이 사람들은 왜 왔냐 했을 수도 있어 그렇잖아이
사람들은 명이 아직 나 맞는데 왜 왔냐 그뭐 왜 왔어 그뭐 급하게
알아서 굶어 죽었어 얼어 죽었어 아유 그러면 그런
참 그렇게 살다가 언니 어떻게 중국으로 오게 된 거예요 아는 사람이
중국쪽에음 그 돈벌러 가지 근데 그때 당신은 가자 가자 해놓고 못 가고
있다가 어 5월 달에 연락이 온 거지 가자 중국에 가자 그래서 6월 1일
날에 가는데 내가 근데 중국에 가서 뭐래요 했더니 고사리 거 그래 고사리를
나스를 건 나스를 밴대 나는 나스를 된다니까 나 문제는 내가 고사리도 못
봤지 살아있는 고사리를 못 봤던 거지 말린 고사리 먹는 고사리는 봤는데서
있는 고사리를 못 봤거든 어 거의 알았습니까서 있 를 몰라서 근데 난
고사이 모르는데 아까 몰라도 된대 파티라고 이게 고사이 파티다 하면
낫지 해서 배면 된다는 거 그 돈을 번다 그렇지 한 달만 보면 그때 중국돈 4,000원을 번대 근데
중국돈 4,000원이 그때 당시 화폐개혁 전에 25대 1이 었거든요
돈 1,000원이면 중 중국돈 1,000원이면 이쪽에 북한 돈이
25,000 원이어음 그러니까 계산을 4,000원이 10만 돈을 10만 원 북한돈 10만 원을 보 음 아
이참 쉽네 진짜을 그랬던 거지 그렇게 하고 6월
1일 날 넘자 그래서 결심하고 6월 1일 날 강을
건 계소 아는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중국을 왔군요 와서는 어떻게 됐어요
왔는데 중국을 건너게 되는데 처음에 모였지 아 중국의 가자고 모였는데
색들이 말들이 아닌 거야 이게 분명히 나보고는 돈벌러 간다고 했는데음
17살짜리 아가씨하고음 나하고 나하고 다섯 살
위인 언니하고 그다음에 배가 하나름 되는 임산부 아줌마 그 임산부
아줌마가 나를 판 거지 넘은 것이 어디 있냐면 그 무포고 무봉 사이
그쪽으로 이제 넘었는데 수불이 너무 많으니까 하늘이 안 올려다 봐요 그쪽엔 아 나무가
이렇게 굵은 니까 그 깜깜한 밤에 우리가 5시 6월 1일 날 넘었는데
그렇게 하고 가니까 깜깜한 데다가 수풀이 하늘이 안 올려다 보니까 그 어두워지는게 정말 빨리
어두워져음 그 앞을 모르고 그냥 앞에 사람만 보고 따라가다가 삭정이
따닥따닥 밟은 거지 근데 그 그 삭정이 반피는 소리 경비대가 매복하고
있다가 경비대 우리를 못 본 거지 일단은 정이가 따다닥 따다닥 발 니까
아 이거 탈북하는 애들이다 도감이다 생각하고 서라 하고 총을 쏘기 시작한
거지 어마 언니는 가는데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그렇지 그렇지 그니까 얘들은 우리한테 직접 못 봤으니까
저주는 나 눈먼 청을 쏜 거지 그냥 막 갈기는 그나 엄마나 어떡해네 한
두 명쯤 돼 잠 먹 쳐서 두 명 정도가 되는데 그러니까 총을 써니까 죽으라고 뛰는 거지 아 세상 하고
뛰다가 어쨌든 뭐 이리 그르고 저리 그르고 해서 어쨌든 다 살았어 다 살아서 먹고 응 두만강까지 왔는데
나하고 다섯 살 위인가 된다는 언니는 잘못하면 죽을 뻔 했더라고 배낭을 매고 있었는데 타나리 쑥 들어가면 그
뒤에 맨 그 불룩한 배낭 쑥쑥 치고 들어가서 배낭 안면은 너덜너덜 다
떨어지고 잔둥 man 붙어 있는 거지 야 세상에 그 배낭 없었으면 언니가
죽었지 그다음에 나는 신발이 어디 떨어져 나가는지 없이 한쪽 신발만 신고 있고 어이구야 그리고 저쪽
아줌마는 엄청 긁힌 제로 그 임산 버마가 긁힌 채로 두만강에 모인 거예요 근데 또
그때가 장마 처리했어요 넘어야 되는데 나는 키가 작으니까 어떻게 넘어 그러니까 손 잡고 이제 넘는데 길이로
못 넘어는 거지 이제 가재처럼 옆으로 가는 거지 게걸음 가도 직선 못 가고
옆으로 옆으로 이렇게 손잡고 이렇게 늘어져서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어쨌든 넘었는데 쫓기다 보니까 길을
잃은 거예요 아이 원래 가야 될 브로커가 우리 여길로 가야 되겠다 했는데 적히고 막 해서 모인 장서가
길하고 완전 떨어진 다른 곳에 있다 보니까 길을 못 찾은 거예요 어
그래서 온밤 한 이틀을 그 산속에서 헤맸어요 아이고 산속에서 헤매다가
했는데 그 임산 바줌마 있었잖아요 이게 진통이 시작하는 거예요 아이고야 이거 어 죽겠다
죽겠는데 중국 산속에서 그렇지 그래서 와 이게 난감한 거잖아요이 진통이
오는 상황이 그 언니가 세살 네살 위에 있던 그 언니가 아기를 한번 나본 경험이
있으니까음 그 언니가 아기를 받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남자들 보고 가서
망 보라 하고 아줌마 끌고 우리 여자들은 저쪽 숲속으로 들어간 거지 근데 나도 이수나 마나 한 애고
부들부들 떨기 만하고 여기 17살 짜리는 더 생인 거 더 모르는 거지 그러니까 그냥 그 언니가 그 다 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 언 그렇지 그 언니가 이제 아기를
받았는데 울 울잖아 아기가 나오자마자 웅이 하고 울잖아요 그 울면 또 큰일
나잖아 울음 소리 나면 안 되죠 그지 그러니까 웅에 하고 오니까 야 하고
이렇게 엎어 놨어요 울지 말라고 그 죽으면 어떡해 근데 목숨이 즐기더라
안 죽더라고 그러니까 이거 죽는 것도 이렇게 떠받들어주는 몰라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욕을 하겠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프고 그런 것도 어
그냥 또 받들어 줘요 아프지 진짜 막 구르는 애들은 옛날에 어르신들이 뭐 개똥 밭에 르라고 개똥이라 주고
목숨이 즐겨 지라 그말 맞는 거 같아요 아 진짜 안 죽어음 이렇게 훌
엎어 놓을까 낑낑 거리다가 또 다시 바로 했어요 그 젊은 애가 위에 옷을
벗고 애를 거기다 싸고음 그다음에 태주를 끊어야 되는데 태주를 어떻게 끊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그 언니가 이빨로 이렇게 해서 이렇게 그
피비린내 나는 이제 이빨 이제 물어서 째끔 째끔 째끔 해서 뚝 끊어 놓는
거 그 언니 대단해 난 지금 생각에도 그 언니 되게 존경스러워 어머 그니까
어쨌든 그 언니가 그렇게 해서 대단하 아기를 안고 그 남자들이 배낭 안에 아기를 넣은
거예요 그 제일 나이 먹은 남자가 자기 배낭에 아기를 넣고 우리 삼모
부축하며 가는 거죠 우리 거기서 음 산 절할 상황이 뭐요 빨리 가서
눕혀야 되니까음 그러니까 그냥 그 상황에 그냥 우리 여자들은 속옷을
쭉쭉 생리대에서 피 나오는 거 생리대처럼 쓰고 아기는 암호 옷에다 싸서 넣고 또 그런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한 6시간을 걸어서 새벽에 그 아지트에 도착을 한 거지 아까 나온
아기는 아마치 그 아줌마가 아기를 완전히 중국에다 두고 가려고 결심하고
온 거예요 생각이 아니고 아 팔고 가려고 온 거지 자기 자식을 낳아서
중국에 팔고 넘어가려고 그지 고사리 없는데 했더니 이게 다 고살리 아아
난 분명 풀인데이 사람들 이게 다 고살리 완저 사람을 다어 보고 진짜 어디 응 어디요 했더니 그 언니가
나보 그 거야 혜성아 너는 모 자라냐 아니면 모자라 척 하냐 응 왜 했더니
너 집에 못가 왜 못가 그 하지마 너 너 받고 돈 받고 갔어 그는 어떻게
가는 거야 번 거지이 아줌마가 내 돈 받고 가는 거 번 거지 그 언니만 판 거야 다 파는 거지 그럼 그 언니도
자기가 팔려온 걸 안 거예요 그 언니는 남편이 그렇게 때렸다 술만 마시고 때리고 하니까 찾아가서 나
중국에 보내 달라 해서 따라나서 스러 왔으니까 의견이 없고 언니는 모르고 왔으니까 불만인 거고 그렇지 그다음에
그 17살짜리 애도 모르고 그게 남자 세 명이었 아아 그중에 두 명은이
여자의 오빠 친구인 거지 예 오빠 친구들이 얘를 중국에 덤 벌러 간다
해놓고 또 팔란 파란 거지 아이고야 이게 무슨 짓이야 그래서 모르잖아
그니까 모르는 애들이 난리가 났을 거 아니에요 안 팔리겠다 그 근데 그때 당시 나는 또 좀 괜찮길 돼 29이
그래도 뭐 그 땅에서 살아봤고 뭐 쓴맛 단맛 다 봤으니까이 17살짜리
애는 얼마나 불쌍한 정도 알아 그니까 아버지 엄마 얘가
아버지가 아버지 그 못 보고 잘랐대 그니까 아버지 죽은 다음에 얘를 낳았는데 엄마 혼자서 온 위를
키웠다는 거야 근데 엄마 혼자서 오 키 키우면서 아마 그 집이 가성 환경이 나빴나 봐 베가에서 그러니까
그 키우면서 아 그 친구도 배감 아가씨에요 너무 고생을 하니까 오빠가 고생을 하다가 이제
엄마가 병이 걸려서 죽게 되니까 오빠가 그 배감 적에는 귀밀리 되지
않아요 감자도 안 되고 그니까 쌀 쌀을 엄마한테 먹이고 싶은데 쌓아놓고
하니까 농장 밭에 가서 기밀을 한 더 사발 되게 흩었던 둑지 했구나 응 그게 제가
돼서 직력 4년을 먹고 간 거예요 야 참 근데 엄마는 모르지 내 아들이 그
쌀을 훑다가 직력 간다는 거 모른 거예요 그냥 사경을 헤매고 있고 그러니까 그때 당시 얘한테이 오빠
친구가 찾아온 거예요 중국에 가서 네가 한 달만라고 하면 엄마 병도 거칠 수 있고 돈을 줘서 오빠를
빼내올 수 있다 이렇게 한 거예요 아 꼬셨 그나 셨지 그니까 얘가 물적 모르는 애니까 따라 나셨는데 17살
그 산골 배 가면 산골이 아아 얼마 순수했습니다 어느 정도 순생 남자하고 손도 못 잡고 분 분이십니다 근데이
남자이 오빠들은 응 거기에 남자를 이미 정해두고 갔거든 얘 돈을 미리
그 전에 와서 받고 간 거예요 아 새끼 그리고 그 돈을 미리 써버린 거예요 아 그렇게 하고 그 돈을
썼으니까 빛으로 예를 데리고 온 거예요 근데 남자 손도 보 잡아보는 애를 남자여자 단독으로 탄 비닐
텐트를 채워 놓고 그 안에다 들 밀린 거예요 어 이거 최악이구나 그럼 아기가 가만히 있겠어요 뛰쳐 나가지
뛰쳐 나왔지 남자애는 팬티 바람에 쫓아 나오고 그러면이 오빠 친구들은
자기 동 친구 동생을 다시 그피 텐트에 밀어넣어 그럼 얘 또 쫓아 나와 이건 진짜 사람이 아니고 있지
짐승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야나 우리 새끼들이 더 나쁘구나 중국도 는 그렇다 치자 근데 새끼들이 더 나쁘네
그렇 그다음에 이게 이렇게 되고 그다음에 그 상황에서 나도 이제 내가 팔렸다 걸 알게 되니까 가겠다고 난리
쳤을 거 아니야 우리는 안 팔리겠다 하니까 몽둥이를 그 불가 산막이
보니까 나무 몽둥이가 있을 거 아니야 불 소식이 그거를 들고 이제 때린
거야 열일곱살짜리 나하고 둘 다 이친 놈이나서 있는 상태에서이
다리 전갱이 이렇게 내리 쳤으니까 아래 전갱이가 맞았으니까 푹 거꾸러 질 거 아니에요 아 언니도 맞았구나
그렇지 북한 도로 가겠다고 난리난리 쳤으니까 그까 견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보기 싫은 거지 북한도 가겠다 하는 애들 뭐가 좋겠어 근데 17살짜리 애도 말 안 듣지 안 들으니까 때리기
시작하는데 그 한 대만 치면 되는데 남자네 명이 어 그러니까 우린 데서
간 세 명하고 이쪽에 남자 한 명네 명이 사각으로 서서 축구 공에는 거지 이쪽 차고 저쪽 차이 완전 악마
새끼들이나 그렇지 그렇게 해서 한참 때리고 나니까 막 고 나니까 나도 까무 치고 계속 까친 거지 어 거기서
우리가 그냥 죽기를 하면 자기 손해 보는 거잖아 빨리 팔아 쳐야 되는 거야 야 물건만 못 하구나 그렇지
그러니까 급한 거야 그래서 17살 짜리에 맞고 나니까 아 이거 내가
여기서 안 되겠구나 하고 포기를 하고 그 남자한테 가만히 있은 거고 포기를
해서 자 한는데 해달라 대로 하는 거고 그래서 그전 중국 남자한테 갔구나 그지 그다음에 나하고 그
언니는 둘이 팔려서 들어오고 야 나는 최악의 얘기를 듣는
거 같아 지금 언 나는 그래서 중국 사람 원망 증거 별로 안네 더 나빠
진짜 더 나쁘네 세상에 우리 시청자분들 어떻게 분노가 막 뿜뿜뿜뿜 올라오시게 지금 아 이게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맞아 그래서 언니는 그렇게 해서 어디로 팔려 간 거예요
나는 팔려서 길림으로 그러니까 길림 하전 이라는데 팔려 들어가는데 남자는
어땠어요 남자는 그래도 뭐음 좋게 이렇게 버장 다 해서 말하면 착하고
어 있는대로 말하면 바보고 어 아 그렇게 팔려 들어갔지가 그래서 그렇게
몇 년 살았어요 중국에서 7년 살았지 그럼 애 나왔겠지요 그지 지금 우리
애가 그 애지 아 애들이 한 두 달 정도 되니까 조금 기미가
늦춰져음 믿었나 그래서 응 믿어 조금 아 얘가 이제 말도 뭐 따라고
에 이제 내일 도망쳐야지 경찰서 찾아가야지 하던 입도 하는 거야
아이고 그다음 아 망했구나 그다음에 입덧을 하니까 포기가 돼 나는 알잖아
내가 북한에 가도 부모가 없잖아 근데 얘를 임신한 상태로 북한 들어가면 얘
죽여야 되는 거잖아 그렇지 근데 얘를 죽이면서까지 내가 북한 들어가서 가연 가치가 있을까 그래 들어갈 만한
가치는 그때는 없어 그래서 아 내가 얘까지 죽이면서 들어가
연기는 안 나고 그래서 살자 포기하고 그다음부터는음 진짜 온갖 농사 돼지
목이고 닭 기르고 온갖 난리 다 주지 그래서 거의 한 7년에 어때 자식
나오니까 이쁘지 안 이뻐 솔직한 심정 말하면 어떻게 보면 내가이 사람한테
팔려 갖고 가서 원하지 않은 성관계를 했어 내 발목을 걸음걸음 잡는 애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그래서 내가를 를 낳고 키우면서 우리 애 아빠 보고도 뭐라고 했냐면 내가 얘를
낳았으니까음 엄마는 할게 응 엄마는 하겠는데 나한테서 사랑은 말하지 마
그때는 언니가 그만한 마음에 여유도 없었던 거죠 1% 없었던 거죠 그다음에 한국에
와서음 한국에 와서 내가 그 힘들고 하면서 심리상담 받고 뭐 모든 걸
하면서 그때 애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 거지 아 그때 애를 들여다보게 되고 보니까
우리 애가 나하고 똑같은 그니까 내가 건드려만 넣면 울 것 같은 울음
덩어리였다 men 우리 애가 똑같은 거야 컨트롤 c 컨트롤를 해 놨어
아이고야구나 그냥 그렇지 그 감정까지도 그대로 가서 얘한테는 그게
엄마의 그게 다 전달이 되나까 그지 그지 너무너무 싫은 거야 그니까 얘가
울어도 싫고 막 뛰어놀아도 싫고 나가서 다른
애를 때리고 들어와도 싫고 울고 들어와도 싫은 거야 어쨌든 싫은 거야 그러니까 순간순간 손이 나가고 때리고
한 거야음 그러니까 우리 애도 초등학교 때까지 무지 맞았어 그래서 그 내 그 감정 다 들어가다 보니까
근데 한국에 와서 심리 그걸 하면서 이거 하다가 보니까 애 감정이 보이고
아 내만 억울한게 아니고 애도 억울하지 내 인생만 비참한게
아니더라고음 네 우리 애가 더 억울한 거지 사실은 걔가면 나오고 싶다 그럴수 나았어 그렇지 그럼 나지나 말
것이지 나기까지 해놓고 그다음에 애하고 이제 얘기를 하고 그때 사과를
했어 그때 처음 사과했어 애한테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뭐래가 애가
펑펑으로 한 한 시간을 우나 엄마가 미안하다 하고 하니까 한 한 시간
울더라고 야 그렇게 하면서 아마 지금 나와줬다
야 그러니까 이게 한국에 이게 치유가 너무 잘 돼 있죠 진짜 엄청 나
중국에서 그대로 살았으면 내 딸 먹을 잘랐다가 아 그걸 했을 것 같아 그때 그
감정대로 그대로 살았다면 아마 쳤을 것 같아 어디에 가서 이거 상담
받았어요 그때는 하나 센터에서 그까 하나원을 나올 때 우울 중 최고
수치라고 나왔거든 언가 받아 가지고 병원에서 그 한화원
심리 그 병원에서 진단서가 우울 중 최고 수치로 나가서 심리 상담 받아야 될 대상이라고 하나 센터에 벌써 이게
한 거야 그러니까 하나 센터에서 심리 치료를 하는데 감정이 동 가지니까
이렇게 하고 앉는데 알고 있어요 그건 나도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라고 방법
가르 져요 나는 그 감정 나도 알고 있다 방법을 대주세요 아 그니까 이게
말이 조금도 안 먹혀 언가음 그러다가 마지막에이 사람이 전무 안
되니까 우리 최면 치료하자더라고 어 그래 최면 치료를 했지 서울에 올라와서 세면 치료하면서 그 사람이
뭐라 하냐면 난이 마음 이해야 된다 너 잘못한 거 아니다 아 무
그러니까이 안에 모든 나를 원망하던 감정들 있잖아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그 억울함 있었잖아 난네 마음 알아둔다 아이고네 마음 된다 하면서
이제 지키는게 잊혀지지 않는게 가슴에다서 놓고 혜성아 너는 최선의
선택을 했어 너 잘못이 아니야 하는데 그 말을 하는데
있잖아 눈물이 두주 나오는 거 있지 그니까 그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정말
알아줬으면 나 힘듭니다 하는 말을 하고 싶은데 없는
거잖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면치 네 번을 했어
어 그까 나보다 더 한 사람 있어 아 이게 뭐 그게 있잖아 내려다 보라고
놀리다 보지 말고 내려다 보라 하는 마음 그러면서 고쳐 나갔지 그래서 아이랑 먹해졌을때
지금은 형제같이 정말 한국의 의료도
좋고 교육도 잘돼 있지만이 심리 치약이에요 이거 정말 탑인 거 같아
이거는 북한 주민들한테는 없어서는 안 될 치료해 이제
보니까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이제 중국에서 그렇게 자식도 원망하고 응
농사도 하고 그렇게 살다가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된 거예요음 그렇게
살다가음 나하고 같이 갔던 언니가 있었지음 그 언니가 잡혀 들어갔어
북성 돼 들어간 거지 근데 그 북성 된 원인이 중국의 북경 올림픽 때 예 음 잡혀 들어가는 죄명이
뭔가면음 그 북한 간첩이야 근데 문제는이 언니가 팔려
들어간 남자가 도박만 하는 남자거든 도박만 해서이 언니는 아침 새벽 시에
나와서 저녁에 8시까지만 짓는 사람이 무슨 간첩을래 그러니까 그냥 그냥 북한
여자 싫다는 거지 어쨌든 우리 올림픽의 지장스님 거지
잡혀 들어가고 나니까 거기 나더라고 그때가 몇 년 되 있어요 그게 2008년이 이연이가 그다음에 잡혀
들어가고 나니까 무섭더라고음 그리고 잡혀 들어갔다고 하니까 그 바깥에서 그 북한 중국의
그 구급차 삑삑 소리 나는 차하고 경찰차 소리가 갔거든음 그니까 그
소리만 나도 무서운 거야 나 잡으로 오러 갔고 그래서 이제 길 가다가도 저 앞에 경찰이 보이면 주춤하게 되는
거 못 가는 거지 아이 애 손목 자고 가다가도 경찰이 보면 주춤해 못 가고 골목으로 들어가고음 그러다가 안
되겠더라고 이렇게 못 살겠다 가자음 그래서 나섰지 나섰는데 뭐 어디 가서
갑자기 한국 가는 선이라는게 나는 또 그렇다 해서 이제 인맥 폭이 넓은 것도 못 됐어 그지 언니는 한국에
대한 정보도 없었던 거 같은데 그 아예 없었지 워낙 시이다 보니까 그지 아예 없었어 전차에 우리 동네 아는
사람이 그 그 집 할머니가음 이제 나를 보고 북한인사
아닌가 해 그런 무서워서 아니라고 그랬는데 그 그집 딸이 한번 길에서 만났는데 언니
나 해룡이 고향이다 이러는 거야 그다음에 어 나 대단합니다 하니까 어니 왜 여기 있는 거하고 한국에
가지 한국에 어떻게가 한국 가면 다 잡아 주이지 않을까 어머이 그러지 말라고 자기 외삼촌이 한국에 와
있다는 거야 그렇게 살기가 좋대 그래서 자기 외삼촌이 자기들 데리려
사람 보내는데 자기는 못 간대 엄마가 열려 하셔서 응 엄마를 혼자 보내기가
그런 거야 그래서 그럼 나가 갈게 그럼 언니가 우리 엄마 같이가 이랬지
어 그래서 내가 그랬지 어 그럼 갈게 했는데 어떻게 그 있는 그대로 말하면
그 나는 그 엄마가 나를 데리고 왔다 볼 수가 있어 생각에는 말은 내가
엄마를 모시고 올게 했는데 나는 내가 키가 잡고 애들 애가 오리고 하니까
내 하나 몸도 가누지 못하고 히친 친한데 그 할머니가 가 북한 사에서
그 힘든 사에서 그 억척스럽게 살아 오셨으니까 그 억척스러운 기운으로
나를 다 우리 애를 짐을 키워야 주고 애를 키워야 주고 한 거지 언니
아기까지 데리고 떠났구나 그렇지 그때 신랑에 뭐 못 가게 한다던가 반대는 없었어 마침 신랑이 집에 없었어 그도
망치도 나왔어요 그렇지 신랑이 우리는 이제 길림에 한 1년 나와 있었다
했잖아 그러니까 길림에 나와서 신랑이 저 뭐데 민으로 일 가 있었어 광동
쪽에 그 나 혼자 애가를 키우고 있었지 그러니까 애를 두고 내가
중국을 떠날 때 애 아빠한테 문자 남겼지 문자 나 이요 이래 해서 중국을가 한국을 간다 어 1년만
기다려 달라 1년 있다 꼭 데리러 오겠다 그고 핸드폰 하나 사 놓고
거기다 문자 남기고 두고 왜냐면 미리 문자 남기면이 사람이 바로 나지아 그러니까 집에다 핸드폰 하나 세
핸드폰 사 놓고 거기다 문 남겨서 두고 애 들리고 개 결심에서 출발까지 딱
3일밖에 안 걸렸어 아 그렇게 하고 어떻게 이일이 좀 이제 풀리는 건가요 그지 아 그까 운이 좋게 한 그
떠나서 터 그 쭉쭉쭉쭉 태국 감옥까지 아무일 없이 들어가고 인천 공원까지
무사해 들어왔 어 아유 어 참 그어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나는네 참 정말 살면서 잊혀지지 못하는 음식이 딱 두
번 있는데 한번은 태국수 영서에서 양력설 보냈는데 우리는 감옥이 그 양력설 뭐
어떻게 보낼 수가 없잖아 그렇죠 또 북한 사람들한테 서은 또 특별하잖아 떡 먹고 지이 먹는 날고 그 아무리
가난해도 서은 세지 않아 근데 어쨌든 감옥이나 마 이거 내일 설이네 이렇게
생각하고 했는데 설날 아침에 한국 대사관에서 어 어 음식이 왔는데
있잖아 나 그때 진짜 울었어 진짜 그 밥 반찬 또 된장국
물까지 개개인이 세트가 왔는데 있잖아 그때 느낌이 아 누군가 보살펴
주는구나 그 소속감 있잖아 아 그 중국에서 7년을 헤맬
때 한 명도들도 안 봐주잖아 그렇지 먹던 말던 그 굶어 죽어도
굶어 죽어도 우리는 누가 심지어 북한에서도 굶어 죽었을 때들도 안 봤잖아 뭐지 있어야 거지 근데 그 그
설날 솔직히 한국 대상 관에서 모른다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었어 그렇잖아
근데 그 설날 설날 되면은 고향 생각이랑 엄청나잖아 부모 생각 근데
그 설날 아침에 있잖아 이밥에 된장국에 반찬네
가지인가 돼 돼지고기 생선 이렇게 네 가지 성편 그것도 이렇게 한 번에이
이렇게 온게 개인당 포장이 한 사람당 포장이 제일 그리운게 김치 된장국이
아아 그 김치 된장국에 심지어 물까지 한국 물이야 아이고 근데 그게
너무너무 고마운 거야 그 그 그 그 밥이 그니까 배가 고파서 밥이 아니라
그 먹고 싶었던 된장국 중국에서 살면서 된장은 사실
정말 접하지 못하잖아 음화 음식문화가 다르니까 음식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 한국 김치 된장은 정말 정말 그 있거든 나 8년만에 먹어 본 8년만에
먹어 본 우리 민족의 습 그 김치 된장 국인 거지 와 근데 진짜 눈물
나더라고 진짜 눈물 나서 그 그 제일 기억에 남는 그
음식이 어 정말 감동의 음식 최고의 음식이었나 정말 맛은 어땠어요 그걸
내가 8년 만에 8년 만에 먹는 음식이다 보니까 엄마나 맞다 우리
조선 김치가 이렇지 어 우리 조선 된장국 이렇게 고수하지 어 진짜
구수하고 그 된장 그 김치 맛이 정말 정말 좋아음 그래 생선 거기 다 안
보이는구나 지금 쌀밥도 안 보이고 어 그지 봐봐 쌀밥 밥은 중국에서도
쌀밥을 먹었단 말이야 중국에서도 생선 돼지고 먹었어 근데 유독 나는 한족 들하고
살았고 기 했기 때문에음 김치 된장국에는 너무너무
구리 거야 아 그리고 그 된장국이 진짜 고향에서 먹던 그 구수한
된장만음 그 중국도 물론 된장을 해요 우리 고향에서 먹는 된장국은 깨끗하지
아 뭐 씹히는게 없이 지지버 이게 없잖아 깨끗한 된장 맛에 김치 그
상큼한 그리고 밥이 금방 포온 밥처럼 따뜻해 된장 그 이게 찬것도 차지도
않아 따끈따끈한 그걸 그대로 가져왔어 이런 얘기들을 때마다 정말
대한민국에 감사하고이 나라를 사랑하고이 나라에서 정말 우리가 모든
걸 받쳐야 되겠다는 그런 각오가 돼 이게 정말 우리가 한민족이라고 누가
우리를 이렇게 보살펴 주겠어 모른다해도 끝이지 북한도 우리를 버 난 그래 나 안 버렸어 너네가
버렸잖아 내가 그렇게 살겠다고 바둥바둥 할 때 너네가 나한테 딱 집 하나 붙이고 두 개 붙이고 꼭꼭 눌러
놨잖아 그렇지 솔직히 북한에서 누가 우리
그때 94년도 이때 굶어죽는 사람 얼마나 많았어 누구 들여다 봐줬어 맞아요
절대로 안 맞았어 우리 산에서 철이라고 우 동갑이 있었어요
그 집에 아버지가 식량 구하러 갔다가 걸어가다가 길거리에 쓰러져서 굶어
죽었어 시체를 가져온 거야 와서 동네 사람들이 나름대로 작업 반에서 쌀 모
500g 제사상 밥이라도 노라고 가져갔는데 사람이 배가 고프니까 어느
정도 인성이 망가지면 인처리 어렸어 우리 다 인철이 아버지 죽었대 이러고
밖에서 이렇게 울면서 이러고 보는데이 이라 애는 우는게 아니라 시선이
쌀밥에가 있는 거야 저거 언제 먹을 수 있을까 사람이 그렇게 되더라 맞아
맞아 맞아 그리고 먹지 못하면 짐승보다도 못하게 변한다니 그게 진짜
그렇게 하고 그것도 초기니까 쌀이라도 지원해 주지 자꾸 자꾸 죽으면 어우
나도 먹 먹고 살는데 뭘 떠 줘야 되는거고 정말 언니 대응단는 사람도
잡아 먹었잖아 그래도 그 집 가옥 갔잖아 맞 그래 사람도 잡아먹었다 안 믿어 안 믿어 그 우리 그 제약사
뒤에잖아 청진에서 장사 들어 아 그 그 여자를 얼마나 깨끗하게 그거 살을
그렇게 깨끗하고도 바꿀 수가 그 충격이었지 아마 우리 구독자님들 아마 안 믿으실 수도 있는데 그 사람
거기를 먹고 또 그 거기를 먹고 한개 추방돼 가고 맞아 그 모르고 그걸 또 잡아 가지고
돼지고기처럼에서 팔았거든요 그 고기를 또 먹고 내장은 돼지간 소관이라 하고
술안주를 써 먹고 얼마나 그 아 우리 지금 어느 세계 얘기를 하는 거야 지금 난 말하면서도 충격이다 나도
지금 진짜 그러면 그 개고생 끝에 대한민국으로
대한민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딱 갔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어 비행기를 처음
타 보잖아 뜬 거만 봤지 그지 요만한 거 어 비행기를 처음 타 보잖아
그러니까 떨리지 그렇게 하고음 걱정이 비행기 안에서 신발을 벗어야 되냐
말아야 되냐가 걱정이 있고 첫 번째 두 번째는 근데 짐검사 할 때이 물을
몽땅 그 크림 로션 한 액체 용을 몽땅 버리라 하잖아 그니까 엄마 이걸
왜 버려야 되지 우리 진짜 가는 건 맞아 비행이 타기 전까지는 그런 거지 근데 그 아까운 걸 왜 버리라 그러는
거야 그렇지 입이 한 발 나오지 근데 어쨌든 가한다고 하니까 한마디라도
하면 안 되는 거잖아 말 잘 들어야지 잘 들어야지 그래서 다 하고 일단은 티켓 받고 요건 받고 이제 타는데
비행기 갈수록 거기서 신발 벗어야 되냐 말아야 되냐 하고 가는데 어쨌든
지켜보자 운좋게 나는 첫 번째가 아니고 한 마지막 끝쪽으로 내 차례가
된 거서 가는데 앞에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 보고 나도 벗자 생각을 한 거지 앞에 사람 벗으면 나도
벗자 근데 앞에 사람 한 명이 보더라고 국한 사람 그렇지 세상
근데 그 열차 승모 신을래 어 여기는 벗는데 아니래 어 너무 깨끗하니까
한국 그 비행기였다 아니에요 그지 [웃음]
아시아나지상직 근데 조금 있다가 저쪽에 보니까 다른
애가 방바닥이 안어
후사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아 있다고 그기도 편하다고 그 그까 가고 오는 사람들이
일어나라 할 거 아니야 어 그니까 일어나서 어 여기 편한데 하면서 다시 의자에 앉았어 아야 어떡하면 좋아
세상에 화장실 가는데 신발 보고 갔다 오고 그 진짜 있었거든 걔 지금 화성에서 살고 있어 그 집 딸이 조금
있다가 엄마 왜 신발 보셨어 화장실 갔다 와야 되겠는데 신발벗고 갔다오고 왜 했더니까까 먹었대 어 너무 좋아서
이게 가랑이 너무 하고 촉감도 좋은 거잖아 그러니까
의자에 앉아서 이제 발바닥으로 거기를 장난하고 너무 좋으니까 그 느낌이
너무 좋으니까 그렇게 하고 화장실 갔는데 집에서 맨발로 있던 느낌에서
갔다오 그럴 만도 하다 어니 그 지금 비행기 안에서 얘기가 너무
재밌는데 그 기내식은 안 주던가 기내식이 나오지 기내식이 나오는데 그
밥이 나왔어 기내식 밥이 나왔는데 그거는 어떻가요 처음 비행기를 탔으니까 어지럽지않아
밥맛이 안 들어는 거지 휘친 히 지나고 그리고 그 기내식이 저녁에
잠잘 때 나오니까 최고 졸릴 때 나온 밥이니까 어쨌든 먹은
거지 자 그렇게 해서 이제 인성 공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어떻가요 이제
우리 탈 때 그 말을 하잖아 한국 들 다 내려도 움직이지 마세요 그대로 앉아 계세요잖아 그러니까 걱정이 나지
처음 한국이라 하는데 내가 가고 싶어 온 모든 걸음이 가야 되겠다 이게
아닌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서 왔기 때문에 기자들이 있으면 어떻게 할까
무섭단 말이야 진짜 무섭 기자가 원니 신경 안 써 근데 그때는 그게 느낌이
막 기자들이 와서 사진 찍으면 어떡게 하네 그까 아 야 안경 쓰고 모자 싹
따 내려라 날리고 났지 기 애들끼리 난 미치겠다 진짜 그렇지 이만큼
선글라스 쓰고 모자 이까지 내리고 생 난리를 하면지 야 정말 그렇게 하고데
가보니까 어머 조용해 기자 하나도 없어 그리고 한국 사람들도 이제
우리하고 따로 내 보내더라 그렇지 근데 저쪽에 보니까 나오니까 이제
시꺼먼 옷을 입은 사람 이렇게 삥 둘러져 있어 무섭더라고 솔직히 왜냐하면 그러다가 그 사람들이
걱정마세요 우리가 선생님들 보호합니다 이렇게 근데 아 우리가 조금 있더니 울기 시작해 어 그 왜 그러니까
화장실 가고 싶대 응 그니까 여기서 화장실 문이 보여 그래서 저기 있잖아
가면 되지까 못 간대 무섭대 그 왜 못 간대 할까 사람들이 저서 못 가겠대 아 저 사람들 왜 했더니
까만옷 입은 사람들이 우리 잡으러 왔대 아 그니까 그때 아마 세상이
우리를 보호한다고 국정원에서 나와 있는 사람들이 옷이 이제 잠 복고 모다 보니까 검색 검은색 옷을 입은
거야 전투복을 입고 나온 거지 검은색 전투을 예 그니까 우리 애가 무서워서 거기를 못 가는 거야 근데 중국 경찰
전투복이 검은 색이거든요음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경찰 중국에서 내가 몇 번 쫓기고
애들 몇 번 쫓겨 봤으니까 그 검은색에 대한 트라우마가 많이 있어 그래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래 같이 그 사람들한테 가서 정말 미안한데 우리 애가 화장실을 가야 되겠는데 여를 여기 조금만 좀 열어
주세요 왜 그래 우리 애가 검은색에 지금 민감합니다 그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하니까 얼마 저였으면 못
가겠다고 하니까 여기 조금만 좀 해주면 안 될까요 하니까 그 사람이 알겠습니다 하더니 응 길을이 이만큼
열어라 하면서 하더라고 그래서 근데 조금 있다가고 어떤 여자분이 오더라고
응 잠깐만요 하더니 잠깐만 기다려 달래 그래서 기다렸지 근데 그
여자분이 다른 옷을 입고 나와 어 애가 겁을 안 먹겠고 다른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가 같이 가지음 애가 다른 옷을 입으니까 그 밝은색 옷을 입었어
파란색 밝은 옷을 입고 나오니까 애가 절절 절절 따라가는 거니까 너무
고마운게 그 하나까지도 그 애들 심리를 걱정해서는
그 마음 야 디테일이 장나라 응 그 솔직히 우리들 같으면 까라 욕 할 거
아니야 근데 그 길을 터 주기만 해도 됐었던 말이야 그렇잖아 근데 그렇게 하고 자기들이
걱정되면 뒤에서 따라와서 지켜서 있어도 되는데 그렇지 가서 옷을
바꿔입고 나와서 애 손목 잡고 화장실에 가서 동 하고 옷을 입혀 가지고 데려 나오는 거야 어 눈물
난다 세상에 그 여직원이 응데 엄마들은 그런게 있잖아 나한데는
어떻게 해도 되지만 내 자식한테 가는 그 정은 백배로도 고마운 거
있잖아 너무너무 고마운 거야 그게 아 맞아요 그렇게 하고 우가 하면 국정원
어린이 집에서 애들 봐죠 아 국정원에도 어린이 집 있어요 몰랐어요
나도 몰랐어 모르다가 내가 신문 들어가고 하면 이제 신문 받으러 들어가잖아 신문 받으러 들어가면 애
일주일간 단 독방에 들어가잖아 그럼 나는 애가 있으니까 애를 데리고 들어간단 말이야 그럼 애를 데리고
들어가면 나는 심문 받으러 나가면 응 애를 데리고 선생님들이 와서 데리고
가는구나 응 그래서 국정은 그 어린이 집 안에서 놀라 애가 물론면 애한테
뭐든 물어보고 뭐든 물어보고 하겠지 그렇지만 내가 그 독방에 애를 데리고
갔을 때 느낌과 애가 저기서 널 때 느끼면 나는 다르잖아 난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목정은 어린이 집 있다는 거 그까 집문 끝나고 응 조사 조사 하루
아침여 시에 가서 12시 1시에 가서 6시 이렇게 나왔는데 6시에 조사
끝나고 가면서 아기 데로 가자는 거야 그래서 나는 우리 애가 나처럼 이런 이런데 앉아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요만 난 문틈을 이렇게 들리다 고했는데 그 어린이처럼 그 벌어 벌
풀이랑 있는 그 안에서 미끄럼틀이랑 다 있어 아 거기서 놀고 있는 거야
세상 밝게 놀고 있어 아기가 어내 애가어야 그리고 거기서 선생님들하고
뭐 장난하고 그 벌 풀 놀고 하는데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게 정말 고마워
아 국정원에 어린이 집이 있다는 거는 진짜 상상도 못 했어요 저도
진짜 그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참 해주더라 감사하네 참 국정원 안에
생활은 어땠어요 국정 원안의 생활은 물론 뭐 들어가면 뒤에서 철컥 나올
때 뭐 철이 그 소리가 있지 그렇지만 나는 그래도 적길 때보다 중국에서의
생각보다 너무 편하고 맞아 그리고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제일 좋은게
한국이 물이 좋구나 를
하는데 이렇게 하면 국정이 너무 좋아 보여서 근데워 아니 좋은 걸 좋다고
얘기해야지 근데 샤워을 하고 하는데 처음에 들어올 때는 몽땅 꼬실 거실 해서 들어오잖아 근데 한 일주일
들으면 얼굴이 반들반들 해서 그래서 여기 벗겨지는게 느낌이 와 얼굴들이 진짜 어 그래서 한국에 물이 좋다
한국에 물 좋은 건 우리애도 말해 지금 우리 애가 중국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데도 어 엄마 여기는 물이 세서
아 이게 피부가 거칠어지고이 느낌이 있어 그니까 기호 물 이게음 자기가
나는구나 아 국정은 선생님 너무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정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국정은 하이팅 어 진짜야 이거 자동으로
나오네 너무 감사하다 애한테 신경 써줬던 거부터 시작해서 너무너무
고맙다 그래 그래서 이렇게 피부가 어 어 강이 나시네요
생합니다 생필품이랑 이런거 들으니까 맞아 봐봐 사실 중국에 앞만 살았어도
그런 거 언제 써 받겠어요 그니까 들어올 때 나는 솔직히 중국에서 들어오면서도 그래도 못 입고 떠났다고
안 했거든 중국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름 유행 따라 갖고 옷을 데었다 생각을 했거든 그왜 중국 스타일이지
어 진짜 중국 근데 그건 중국에서 봤을 때 내 다입었다 했는데 한국에 들어오면 이렇게 싹 벗기자 아 이거
다 하잖아를 싹 그지 그냥 근데 와
그 생리대까지 아 생리대까지 주잖아 생리대 너무 포근해 언니 생리대까지
이걸 다 주고 그다음에 그 신발 양말 그 디테일까지 심지어는 그 바디워시
몽땅 다 주잖아 그렇지 그까 애들한테 뭐 몇 개 세트 갈아입을 옷까지
계산을 해서 주고 응 너무너무 고맙지 그 세금이 진짜이 이 세금 대단한
돈이 들겠구나 참 참 고맙다 저 북한
땅에서는 천년을 살아도 아 꿈도 목 걸리를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현실로
누리고 있잖아요 정말 감사하다 그럼 국정원에서 어디 이렇게 견학 같은
것도 나가잖아요 어 나갔지 어디 나갔어요 언니네 때는 우리는 어디 나갔더냐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중국집을 갔던 거 같아 나는 육산 빌딩 쪽으로 왔었어 한국을 갔는데 서울을 와서
산하고 이제 경복 쪽을 이렇게 돌았어 경복궁을 갔다가 육산 빌딩에서 정심을
먹었는데 예 너무 높은 거야 이렇게 내려다 보니까 발끝에
짜릿짜릿해 그리고 막 이렇게 비 싸는데 밥이 나오는데 요만한게 나오는 거야 어어
엄 이걸 가지고 어떻게 배불림 먹으라고 이렇게 봤 다
만네 이걸 가지고 어떻게 먹으라고 했는데 이게 가고 또 와 응 이거 돈 떠
내놔 가지가지로내는 줄 알았거나 그지 그지 아 이거 돈 떠 내놔 이렇게
하고 하는데 그러다 마지막에 술잔도 너무 멋있고 유리 술잔 솔직히 그거 그 와인잔 어 술도 술도 이렇게 완잔
물잔이 와인잔으로 나왔어 근데 그 와인잔은 북한에서 보면 진짜 잘 싸는 집 그런 어 난
잘사는 집에서도 번 거 같 잘 싸는 지금 마나 님들만 쓸 수 있는 그런 그래요음네
[음악] 기름 와자 안에 쫙 나오지 그것도 세트 어 단계별로 나오고 와 멋있다
멋있다 하고 했는데 어 근데 이제 밥 다 먹고 보스 타고가 근데 호수가
너무 멋있는 거야 그래 여기 어딥니까 했던게 서울이 그래서 그때까지 몰랐어
몰랐지 태어나니까 따라 갔구나 따라갔지 여기 경복궁입니다 하고 하니까 경복궁을 갖고 나는 경복궁이
어딘지도 모르지 경복궁이 하니까 궁이 어떤 곳인 줄도 모르고 따라갔고가
보니까 어떻든가요 그때 우리가 갔을 때는 벚꽃이 정말
만개했을 때 아 진짜 예쁠 때 들어갔거든 그래서 이제 벚꽃이 다
폈는데 진짜 멋졌어 그하고 경복궁 보고 이렇게 했는데 여기 어딘가니까
서울이라 엄마나 서울에도 받아 있습니다
그 뭘 봤길래 그랬더니
한강이 이거 바다 아닙니다 이주는 거야 엄마나 한강을 바다로 본 거예
그렇지 엄마 돌겠다 진짜 엄머나 서울에도 바다 있습니다 했더니 아닙니다 이래 그 이거 바다 아
아니고 뭡니까 이게 한강이라 한강은 우리 학교 때 배우잖아 오대강 어
대한민국 오대강 조선의 오대강 거기 한강이 들어가지 그렇지 응 그 한강은 배웠으니까 엄머나 이게
한강입니다 근데 나는 강을 암강 두망 강보다 작을 줄
알았거든 근데 우리 암강 두만강이 한강 절반 대나마 하잖아 안 되지 좁은데 더 좁아요 근데 이게 한
강이래 어 엄머나 이게 한강이 놓 그 다이 쫙 있고 얼마나 멋있어 얼마나
커 넓고 세상에 바다로 착각할 만 하겠다 그래서 북한에서 바다를 봤어야
알지 못 봤지 그렇지 아니야 박이야 봤지 근데 근데 어쨌든 이게 너무 넓은 거야음
이게 바 바다 뒷목이나 잔잔했다 철썩철썩 안 하고 잔잔하니 아 여기가
바다 위쪽이나 아 귀엽다 어 우리도 우리 두만강 암가
위쪽은 강 윗목은 좁지않아 적고 이제 이게 되니까 그 나는 아 이게 바다
윗목 이라든가 그렇구나 했는데 한 강이래 야 와 멋있더라 잘 끓여 놨지
깨끗하고 진짜 물이 깨끗하고 강 높지 물이 잔잔하지 맞아 사람들도 고기
옆에서 이렇게 놀고 와 멋있더라 진짜 멋있더라 진 천국이 따로 없어 정말로
그래서 한강을 한강을 받아라 하고 엉가 망신 있다고 말이나 말지 그 선생님 무섭겠다 서으로 나 그
선생님만 웃었 줄 알아 그거 다 웃었지 지들도 몰랐음 해가지고 내가 먼저 떼 가지고 언니 덕분에
알았으면서 웃었나 웃지 아 웃음을 선사했으면 졌네요 그지 아 그렇게
해서 이제 국정원 잘 줘서 맞췄네요 제가 하나원을 나와서음
하나원에서 어땠어요 화원에서는 뭐가 있어면 컴퓨터 자격증 하고 자동차
원전 면에서 가지 기 있잖아 그래서 나가면 이거 꼭 해야 된대 나가면 돈
내고 해야 된대 돈 낸다는 건 또 못 하잖아 그래서 돈 내기 아까워서 안잖아 진짜 저녁에 가서 하고 그래서
컴퓨터 자격증 따고 운전면 필기 따고 시험 칠 때는 책을 한 글자도 안
보고 필기 시험 보러 갔어 그래요 그지 근데 그까 뭐 뭐 모르 사람
냥냥 머리 좋아서 제 머리 좋아서 머리 좋은게 아니고 한국 시험 문제는 북한에 대비 치면 참 쉽다 객관식이
아아 응 찍으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그리고 북한은 김일성 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인용하고 해야 되잖아 그 말씀 걸거 다 못 외우 아아 근데 여기는 그 말씀 안 외워도
응 가식에 듣기전 공산주의 도덕에 봐봐 골목에 들어가면 차를 천천히
가는 건 공산주의 도덕이 아아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맞는 말 도덕적인 맞는 말이 제거를 한
거지 뭐 이런데 갈 때는 천천히 가세요 뭐 어른들이 할 때는 어떻기
가면이 더덕으로 맞는 말만 체크를 해서 턱걸이를을 한 거지 그래서 응
그래서 아 대한민국 시험 보기도 참 쉽다 북한의 제 이거 다 써야 되잖아
두 장 세 장 얼마나 그거 진하게 써야 돼 머리 진하게 근데 여기는 체크만 하면 답이
나오니까 참 쉽다 그래서 그렇게 잘 따고 어디로
집을 배정받은 거예요 대구를 받아가지 어 그래서 애하고 같이 으면서 직업
훈련을 했 직업 훈련을 그 어 제품용 모델링 과정이라고 디자인
과정이요 그거를 배우고 그 끝난 다음에 그때 마침 또 하나 센터에서
공공 기간에 고용 센터에서 북한 이탈주민 특별채용이 있는데 한번 해 보지
않겠냐 그래서 처음에는 거기나 안 가겠다고 했지음 떨어지면 무슨 창피 가고 안
가겠다니까 그 대구 하나 센터에 있는 사람이 면접까지 데리고
왔어 나 계기가 안 가겠다고 하니까 내가 면접장까지 갈게요 면접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줄게요 그분 너무 감사 아네 어 거기서 마지막 끝까지 지켜서
같이 해서 합격이 되니까 그분이 나보다 더더 더 반가워 하는 거 있지
자 그래 합격이 됐어요 아 그때부터 아마대 그 대한민국에서 공공 기관
길을 던 거지 그래서 오늘날 공무원까지 되신 거군요 아유 또
축하드립니다 고맙 정말 우리 부부터 쭉 들어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람 지금 못 받고 살아오던 사람이 대한민국에 와서
마음도 치유가 되고 자신감도 얻고 이제 어엿한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공 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가 면접을 첫 번째
면접보고 두 번째 면접 볼 때 그 면접 질문이 어떤 질문이 왔냐면
대한민국 공공기관에서 일래 보니까 어떻습니까 하는 질문이 나왔어 그래서
내가 내가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말이어요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참 갑도 없습니다 그
말을 왜 아니 북한은 행정 경영 위원의 지도원 쯤 하면 모든 권력 다
잡았다고 공무원 그렇지 직권 남영이 엄청나지 근데 여기는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굽신굽신 해야 되는게 있잖아 응 상상도 못 해서 국민이
왕이라서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참 값 수 없습니다 그까 보더라고 왜 그러서
그 구설 했더니 마 웃 어 대한민국은 그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해야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국민을 돕는 사람이지 그말을 하더라고 일을 하면서도 느낀 부분이음 물론
공무원들의 부분이 다 뭐 100% 다 좋은 사람음 그럴 수는 없겠죠 일을
하다가 보면 뭐 어떤 사람들은 그 너도 갈 거잖아 내가 북한 사람이니까
너도 여기서 일하다가 힘들면 북한에 들어갈 거잖아 아 그런 얘기가 있을
수 있지 하도 많이 가니까 그렇지 그렇게 하고 이제 너 할 줄 아는게 뭐야 총쏘는 걸까 밖에 모르지 이런
말 그런 인식이 있군요 있어요 예 그래서 정말 많이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러다가 그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 할 줄 아는게 뭐야 할 때는 좀 민 같이
일하는 동현데도 그렇게 얘기를 하 대놓고 응 대놓고 그래서 옆에 동료들이 저 사람 민원 넣으세요
가만놔두면 안 됩니다 근데 나는 그래요 아니나 안 넣겠습니다 저 사람한테 민어 넣으면 응 나는 사람
잡는다는 딱지나 붙을 거 아닌가 그렇잖아요 그렇게 하고 저 말은 내가
북한 떠날 때부터 평생 내가 짊어지고 가야 될지 아닌가 떠난 것 맞고 그지
내가 여기서 사는 한 내가 각오해야 될 말이고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포기하면
제가 안 됐다 제가 적응 못 했다가 되지만 우리 북한의 탈 주민이
포기하면 북한사람 북한 사람이 저렇다음 북한 사람이 적응 못한다가
을지 3만명 넘는 북한이탈 좀 평할 거 아니냐 견디겠다고 견뎌 보겠습니다
그니까 알겠다고 그다 마지막에 끝날 때 그 인사 발령 나서 다른데 가고
할 때 그 말했지 팀장 님저 소원했습니다 어 그 얘기했던 사람이 팀장이었습니다 그까 그분이 자기는음
마음이 이렇게 나쁜게 아니라 나는 느낌대로 이분이 말을 하는게 이분은
성격이 직선적이라서 적이라서 생각을 감추지 않았을 뿐이고 베었을 뿐이고
다른 분들도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다만 이분은 배었고 다른 분들은 뱉지 않았을
뿐이라는 사이만 있을 거지음 미안하다 나는 원래 마음이 그런 사람은 아니다음 알고 있습니다 근데
소원했습니다 그 말 하고 왔지 근데 그래서 진짜 아 내가 여기서 참
힘들겠구나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일러다 보면 또 반대로 정은 사도
있죠 아다 양구에 왔 내가 양구에서여여 발급을 했어 하고
있는데여 발급을 할 때 내가 한번 사고를 진짜 큰 사고를 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음력설 전날
어떤 민원이 여권 정의장 모자에서 정장 추가하러 왔는데 근데 내가 그날 감기약을 먹고
나간 거예요 며칠 전에 인사발령이 생기면서 여권 발급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거지 그래서 이제 사람들이 신규 로 오다 보니까 나한테 막 물어보는데 나는 약을
먹었고 하니까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그 사람의 여건을 정리장 mas 추가하면
될 걸 예 구멍을 뚫어 버린 거예요 아 근데 이게 구멍을 뚫으면이 여건이
해산되는 거예요 뭐 사용 못해요음 근데이 사람은 1월 2일 날에 이걸 가지고
나가야 되는 사람이거든요 아 태국인과 비행사 조종 시험을 가야 되는 사람이에요 거기 조종 시험에 가족이
다 같이 간다 하고 겸사 가서 가족 동반 여행이라고 가족 티켓까지 끊어놓은 사람 여건을 내가 고장 내놓
거예요 아 아주 제대로 사고 쳤네 그지 해결은 잘됐어요네 우리 팀장이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어음 당황하지
말자 가만히 있어고 바로 외교부에 전화해서 우리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오늘 저녁
5시까지는 여건 해 줄 수 있는 거 아닐 가능한데 당신들 그렇게 하겠으면
행정 평가에서 나쁜 점수 맞을고 각오하고 하세요 근데 정 점수에서
나쁜 점수 맞는다는 거는 공무원들이 보너스가 없어진다는 소리거든요 그니까 근데 우리 팀장이 하겠습니다음
그다음에 내가 바들바들 떨고 있을 거 아니야 근데 그때까지 자기들 해결책 세우기 전까지는 나를 뒤에서
뽑더라고요 맞 주세요 서지 말라고 아네 욕을 다 먹으니까 자기들 해결적
딱 찾고 그다음 민원 옷에 오라 하고 날 오라 해서 지금 이러 이러한
사고에서 해결책은이었습니다이 사람이 지금이 상태인데 그니까 그다음 날 보고도
사과해음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사과 하니까 민원이 처음에는 그 와이프가
난리를 쳤거든요 팀장이 제가 갑니다음 제가 책임지고 같이 갔다 옵니다
이렇게 된 거니까 팀장이 나서니까 저쪽 사람들이 말을 못 하고 한 부도
더 못 하는 분 못한 거예요 사분들이 너무 고맙지 잘해줬네요 그다음에 가서
여건 딱 주고 우리 둘 다 벌써 두도 한자지 다 그지 다리가 풀린 거예요
렸 그 우리 팀장님도 고생했다 너 진짜 고생했다 어 너무 미안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근데 그때 어떻게 되냐면 공무원들은 행정
착오 지을 때이 착오를 대비하는 보험을 가게해 행정 보험이 있어요
근데 그 보험 신청까지 하면 점수가 완전 바닥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팀장이 물어보는 거예요 해성이 어떻게 할까 저거 범무 할까 그래 아니요 제가 사비로 내겠습니까 사비로
하겠습니다 그니까 괜찮겠어 아니 제가 비 하겠습니다 사비로 해도 10만
원밖에 안 되는 거예요 제가 사비로 하겠습니다 그까 그럼 네가 사비로 해 그래서 내가 사비로 하고 공문으로
해서 떨었지 떨은 다음에 뒤에서 팀장하고 우리가 직원들이 돈을 모아서
네가 삽비 네가 힘든데 혼자 애큐 얼마나 힘든데 네가
삽비 하냐 팀에서 팀 비로 자기들이 돈을 모아서 이거 설인데 이거 가지
가서 아기랑 같이 설 잘 보내 아이고야 너무너무 고마운 거지 그
어디가나 좋은 사람 또 이렇게 좀 마음을 히게 하는 사람 다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우리가 탓하지 말고 언니가 참 대처를 잘하신 거 같아요음
좋은 사람들 어떻게 보면 좋은 사람들이 더 많지 아 그렇지 사람 사는데 다
똑같으니까 그러면 그 한국의 공무원을 일하면서 대한민국 떤 정책 시스템을
보면서 느낀게 있어요 어때요 북한과 대비했을 때 한국 정책 시스템이음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나는 한국 정책 시스템 어떤 사람들은 뭐 어떤 부분에
못하다 못하다 잘돼 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그래요 돼 있다 그리고 뭐
관광이라면 서울시 강광 내가 내돈 날고 가야 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근데 서울시 관광 홈페이지에 갔을 때
다문화 가족음 탈주민 이런 부분에 몇 % 할인이 됩니다 옷을 어떤 방법으로
왔을 때 또 돈 싸게 들어갑니다 단체가 왔을 때 돈 어떻게 해든 살
수 있는 방법 다했구나 다 했어요 그리고 내가 뭐 가정이 힘들다 내가
일하다가 병원비 없다 근데 나 병원비 없는데 병원 돈 해서 이만큼 500만
원 병원비 없다 정부에 이게 긴급 의료비 생활비 지원이 다 있어요 긴급
우려 비지원 긴급 생활 비지원 심지어는 사회 복지가 잘돼 있어서 서
사회 복지 사례 관리가 있어요 사례 관리 담당이 되면 그 사람한테 사례 관리 비용으로 50만 원 또
나가고 디테일까지 다 있고 이제 내가 조금만 관심을 가져서 검색을
하고 법적으로 법제처에 들어가면 법이 디테일까지 돼 있고음 그냥 나는 그래
우리 북한 이탈 주민들한테 법 받았다 모르겠습니다 하지 말고 찾아봐라
찾아봐라 매 지자체마다 매 주민 센터마다 다 있다 예 참 북한이랑
시스템이 비교도 안 되네 비교 안 돼요 진짜 비교도 안 돼요 아 참 이게 놀랐다 아이는 지금 어떻게 잘
지내고 있어요 응 우리 아이는 중국에 가서 공부하다 보니까 어 유학 갔어요네 유학을 가다 보니까 한국
신분으로 유학 간 거네 어떻해요 차이가 완전 다른 거예요 중국에서 살 때는 얘는 얘
신분은 바보 아빠의 북한 여자 사이에 나온 얘밖에 안 돼요 아 얘는 한국의
신분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학교 자체가 레벨이 다른 거예요 아 세상에 그니까
우리 애가 만일 중국에서 살았다면 시내도 아닌 아주 아주 농촌에 학교를
다녀야 되는데 지금가 있는 학교는 중국 애들이 못 가는 국제학교인
거예요 아 외국인 국적 가진 애들만 들어가다 보니까 중국에 또 한국 지금
난리 났잖아요 그지 그러니까 한국인으로 들어가서 거기 다니고 나니까 사람들 다 지나가면 엄 엄마
쟤 한국인이다 봄 바닥은 중국인 거죠 근데 한국 사람이라는 그것만 가지고도
어 친구 그 핸드폰 위체 위젯 친구 하자 하고 팔가 많구나 그지 사람들이
와서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 사람들은 다 이렇게 예뻐요 한국 사람들 다 이렇게 전지 않아요 그까 애가 으쓱한
거지 대한민국의 힘이 크네 그렇죠 무지무지 크지 야 죠
그 경찰이 무서워서 숨어 다니고 화장실도 못 가도 애가 이제는 그
중국에서 그래 대한민국 국적에 학생으로 당당하게
공부하면서 지금 너무 멋있다 딸이 뭐래요 저테 우리애 엄마한테 고마워
하지 않아요 너무 고마워하고 그리고 우리 애가 그래 북 자기는 한국 사람이라고 북한 중국 사람이라면
불쾌해 어 아 그래 그 말하지 국이야 이래 어 그래서 그 걔네 걔네
친척들이 걔네 아빠는 사망하고 없고 어 아빠 신랑 돌아가셨어 신랑
돌아가고 걔네 친척들이 지금 너무 큰 엄마요 검어요 다 있잖아요 그러면
어우 예 우리 중국에 가면 불쾌해서 나 한국인데음 딱 잘라버리는구나 그렇게
하고 뭐한 줄래요 친척들이랑 좀 가깝게 하지만 저 사람들이 우리한테 왜 저렇게 가까운 줄 알아 왜 그
엄마 우리가 옛날처럼가 하게 살고 우리가 만일 한국에 안 가고 여기서
살았다면 저 사람들 우리를 예쁘게 봤을까 아 한국에 좀 데려다 달라고
아 달아 이려고 어 아주 똑똑하네요 그래도 네가 그건 내색하지
마 그냥 좋게 예예 하고 넘어가면 되지 뭘 그렇게 딱 깨놓고 그러겠냐
그리고 요청도 못 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 엄마 저 사람들 안돼 저 사람들이 우리 뭐 옛날처럼 아무것도
없이 하면 절대로 우리를 안 해줘어 그말을 할 때는 참 야 참 대한민국에
한 마디 해 주세요 인생을 바꿨잖아요 그렇지 금씩 이제 강의를 학교 통일
강의를 나가고 하는데 아 학생들한테 항상 하는 말 그래요 예 대한민국께서
태어난 것 자체가 복이다 너네들 행운이다음 북한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고 싶어서 떠난 사람 한 명도 없고음 탈북자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스스로 버린 사람 한 명도 없다 못 가게 못 살게 막 빠지러 내
몰았고 만일 북한 사람들 한국과 같은 사회가
있었다면음 멋지 않게 잘 열심히 살았을거다음 그러니까 너네가 태어난
행운은 너네 노력이 아닌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너네가 부모를 잘 만났고 땅을 잘 만났고 국가를 잘 만나서
여기서 태어났을 뿐이고 그건 너네들 행운일 뿐이지 너네들 노력이 아닌
거예요 그 노력이 아닌 행운을 가든 거 가지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뭐 우리나라 어떻고 하는 평가 함부로 하지 마 잘했다 너네가
사는 나라 세상에서 대기다음 나는 그래요 지금이 순간
대한민국 귀중하게 여기고 어 나라의 사랑을 강조해 줬군요 너네가 너네가
가진 행운을 당연한게 받아들이지 말고 당연한 것처럼 권리처럼 생각하지 마
지켜야 되는 건 의문 거지 권리가 아니 어이 라가 려야 리만 찾지 말고
지켜야 될 의도 같이해야 된다 아 뼈 있는 말이다 반응이 어때요 아이들
그렇게 말 선생들이 아 맞습니다 선생님음 대한민국도 너무 소중한
나라니까 이나라가 잘못되면 안 되니까 우리 어디가 없잖아 갈 데가 없어
그렇지 잘 지켜야지 잘 지켜야지 오늘 귀한 얘기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도
오랜만에 얘기 다 해서 고맙고 야 정말 긴 스토리의 여정이었습니다
예 여러분 이렇게 강은정 텔레비전에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을
초대해서 솔직하게 이렇게 얘기를 다 듣고 있습니다 오늘 또 귀한 얘기 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앞으로 통일 되면은 저대 북한으로 올라가서 공무원 좀
하시면서 북한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멋진 리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네 꼭 그렇게 되겠습니다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