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30, 2020

04 "다시보는 남북의 생활방식" 14 -종교생활 이수경 기자



"다시보는 남북의 생활방식" 14 -종교생활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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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남북의 생활방식" 14 -종교생활 이수경 기자


다음은 저희 자유아시아 방송 한국말 방송이 매주 한번씩 연속기획으로 보내드리고 있는 "다시보는 남북한 생활방식"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 열 네번째 시간으로 남한과 북한의 종교생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에 이수경기잡니다.

한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종교적 신앙과 의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토속신앙은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면서 늘 한민족의 생활과 함께 했으며, 아울러 주위의 다른 민족들과 접촉하는 가운데 그들로부터 새로운 외래 종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기도 했습니다. 현재 남한에는 국교가 없고 모든 남한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99년 남한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한국의 종교현황"에 따르면 남한 국민 100명중 54명꼴로 종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 됐습니다. 종교 인구로는 불교가 약 천만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으로 기독교가 약 8백만명, 그리고 천주교가 약 2백만명이 분포돼 있으며 이밖에도 남한에는 유교, 원불교, 통일교등 다양한 종교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수치는 지난 10년전에 비해 10%나 늘어난 것으로 종교인들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남한의 종교인들은 사찰이나 교회, 성당을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 외에도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 장애인이나 고아원, 양로원등을 설립해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등 남한 사회의 문화 복지 사업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지난 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했을 당시에도 가장 먼저 북한을 돕기 시작한 것이 남한의 종교 단체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규모로 북한주민들을 돕고 있는 것은 남한의 기독교계 단체들로 지난 95년 북한이 큰물 피해를 입은 이후 지난해 4월까지 남한 기독교 대북 지원단체들이 북한에 제공한 인도적 지원 규모는 대략 900억원 미화로 약8500만 달러에 이릅니다. 지난 8년동안 북한에 식량과 의료품등을 꾸준히 지원해온 남한의 기독교계 대북 지원단체인 굿네이버스의 이일하 목사는 북한 주민들을 돕는 것은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는 기독교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일하): 실제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줄때 예수의 이름으로 주는 것이 복음의 한 방법입니다. 북한에 왜 왔느냐? 왜 도와주느냐 그렇게 물어볼 때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 어려움을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찾아왔을 뿐이다 하고 기도를 통해서 표명을 하지요.

한편, 북한도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최근 북한 당국은 북한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천도교등 4개의 종교 단체에서 약 4만명의 종교인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북한에 진정한 종교의 자유는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남한에 입국해 현재 탈북자들의 선교단체인 고향선교회를 이끌고 있는 탈북자 황기석씨는 북한의 종교 기관들은 북한이 외국의 종교 단체들에게 지원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써 이용되는 선전용일 뿐 남한에서처럼 진실된 신앙 활동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황기석): 나도 평양에 있었지만 평양에 종교란 것이 칠골과 봉수 교회가 있었는데 이것은 선전용이란 말입니다. 실제 자유 활동은 못하고 외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보여주기 위한 것이였단 말입니다. 원래 북한에 믿던 사람들은 북한이 종교인들을 핍박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포기하게 됩니다. 종교는 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면 정치범 수용소에 가서 잘못되는 것이니까...

또 지난해 남한에 입국한 올해 쉰 여섯의 탈북자 김난희(가명)씨는 남한에 와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서야 그동안 북한당국이 종교를 나쁘다고 말했던 것이 거짓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아직도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말만을 신처럼 믿으며 속아 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난희): 저도 50년 이전에는 엄마 따라 교회 다니던 기억이 나는데 50년 이후에는 교회 같은 곳만 가면 붙들어 갔습니다. 거기서는 종교에 대해서 몰랐는데 제가 남한에 도착하니까 여기서도 대학 나오고 지식인들도 많은데 종교를 운영한다는 것은 인민생활에 살아나가는데 이롭기 때문에 운영하지 해를 준다면 운영 안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자마자 교회에 나갔습니다.

다만 김난희씨는 북한 생활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최근 북한주민들 사이에서는 점을 본다거나 푸닥거리를 하는 일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은 자녀가 아프다거나 집안에 불상사가 있고 직장생활에 곤경을 겪을 때 그 해결책을 이같은 미신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 만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난희) 옛날에는 결혼식 약혼식 한다 하면 모 보는 것이 없었는데 최근에는 궁합을 봅니다. 그리고 가만가만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보는 것이 있습니다.

한편, 남한의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박신호 목사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만해도 남한보다 북한에 종교인들이 많았고 종교활동도 더 활발했었습니다. 당시 북한에는 약 150만명의 천도교, 40만명의 불도교, 20만명의 기독교, 그리고 약 6만명의 천주교도등 모두 약 200만명의 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김일성 유일사상 체제 확립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모든 종교인들를 탄압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국가 이념인 김일성 주체 사상은 현재 북한 사회에서 그 어떤 종교보다도 강력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목사는 북한 당국의 철저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북한내 지하교회들의 종교활동은 당국의 눈을 피해 계속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합니다.

(박신호): 95년도부터 식량난이 심해 지면서 탈북자를 통해서 지하교회 실상들이 들어나고 탈북자들이 또 신생 지하교회의 성도가 되고 선교사들이 북한과 접경지역에 많이 들어가면서 지하교회의 영적인 부흥과 숫자적으로도 늘어나서 지금은 북한의 지하교도들이 한 10만명정도 되지 않을까 봅니다. 먼 장래에는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바라보고 지금 영적으로 재 무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박신호 목사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의 종교 탄압 실상들이 이미 국제 사회에 공개됐기 때문에,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종교의 자유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금까지 다시보는 남북의 생활방식, 오늘은 남북한 주민들의 종교 생활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RFA 이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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