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30, 2020

[07 북한 장애인 특집 (1) - 설 자리 없는 북한 장애인



북한 장애인 특집 (1) - 설 자리 없는 북한 장애인
북한 장애인 특집 (1) - 설 자리 없는 북한 장애인

2007-11-22


k112207ne-jn.mp3



Error loading: "https://korview.rfaweb.org/korean/in_focus/nk_handicapped_ppl-20071122.html/k112207ne-jn.mp3"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국가는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호하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야 합니다. 특히 신체의 일부가 불편한 장애인들이라면 국가는 이들의 인권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북한 장애인의 현실은 어떤지 RFA 특별 보도를 세 차례에 걸쳐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북한 내 장애인의 현실을 짚어봅니다.
방송듣기
Download story audio

북한에서 장애인으로 살다가 탈북한 김충원씨(가명) 1993년 북한에서 핵 저장시설을 짓던 작업을 하다 포탄오발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습니다. 당시 영예군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그 때부터 희망은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김충원(가명): 나도 용이군인인데,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유공자로서 발전성의 제한이 있어요. 당간부라든가, 교사라든가, 대중앞에서 나서서 일을 못하게 돼 있어요. 장애인들은... 희망도 포기해야 되죠..

김충원(가명)씨는 신의주의 "용이군인 경제대학"에서 3년 간 공부했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결국 남한행을 결정했습니다. 북한에서 살던 당시 옆집에 장애인이 있었다는 탈북자 김진희씨도 북한에서 장애인들은 소외의 대상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김진희: 장애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정부에서 관심이 없으니까 저희도 별로...

북한의 장애인들은 사회적 외면과 정부의 통제 속에서 설자리를 잃어 왔다고 탈북자들과 남한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입을 모읍니다.

2003년 6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는 북한 최초의 장애인 관련 법률인 "장애자보호법" 을 채택하고 장애인의 인격과 사회,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건강한 공민과 똑같이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장애인" 이 아닌 "장애자" 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여전히 북한 장애인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006년 북한을 방문했던 남한 대구대학교 재활공학과 권혁철 교수입니다.

권혁철: 일단 장애를 보는 시각 자체가 틀리죠. 북한 같은 경우에는 장애자라고 사용하고 있거든요.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에 대한 인권이나 충분치 않다는 예측이 되는 거구요..

북한 장애인을 돕고 있는 세계 밀알 연합회 정택정 부회장도 장애자라는 표현 자체가 신체 장애인들을 무시하는 표현이라고 설명합니다.

정택정: 남한에서는 장애자라는 말도 안 좋게 생각해서 "자" 자는 한문으로 하면 놈 "자"이기 때문에 이제는 장애인으로 통용을 하죠. 북한은 장애인이라는 말 조차도 몰랐어요. 불구자라는 말을 쓰더라구요.. 말조차도 북한에서는 그런 말을 그대로 쓰죠. 미치광이라든지.. 일단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의식 자체가 장애인을 무시한다든지 하찮게 여기는 그 사고가 그대로 있는 거죠.

장애인의 인격이 존중되지 못하다 보니 거주나 교육 등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장애인은 아예 대학을 가지 못하는 등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거주지역도 당국의 통제를 받는 등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탈북자 김진희씨와 김충원(가명)씨 입니다.

김진희: 북한에서 장애인은 대학에 못 가요. 옆집에서 살고 계셨던 남자 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기 안 좋은 모습으로 다니다가 더 농촌 같은 곳으로 추방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모습도 있었고, 정신 지체 장애인들은 별로 보지도 못했고, 철저히 가족의 보호와 통제 하에 있었죠. .

김충원: 나쁜 점이라고 하게 되면 정부정책에서 보면 장애인들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 장애라는 이유로 대중 앞에 나서면 웃음거리가 된다고 해서 나설 수 없고, 국가가 정해주는 직업만 가져야 된 다는 거죠. 특별한 혜택이나 보조가 없어요. 정책적으로 정해놨을 따름이지. 정책상 대우는 좋은데 경제가 다 무너지다 보니까 생활하니까 엄청 힘들어요. 용이군인들도. 밥줄이 다 끊길 정도지.

현재 북한 장애인에 대한 통계조차 정확히 집계되지 않은 상태. 이같은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은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이어지고, 장애인들의 사회참여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활교육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합니다.

2003년 장애자보호법이 통과되고 5개월 뒤 휠체어 등 장애인 보조품을 전달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세계 밀알연합회 정택정 부회장의 설명입니다.

정택정: 평양의학대학병원에 가서 부원장을 만나서 부원장 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때에 시각장애인용 시계와 지팡이를 가져갔는데, 샘플을 보여줬잖아요. 그런데 "(부원장이) 지팡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는 거에요. 그래서 "지팡이가 아니고 시각장애인이 쓰는 물건입니다." 이러니까 그 분이 그 것을 잘 몰라요. 평양 병원의학대학 병원의 부원장인데...그래서 질문을 했죠. "여기서는 병원에서는 시각장애인으로 판명이 되면 어떻게 합니까?" 집으로 돌려보내죠. 재활의학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2003년 장애자 보호법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장애자에 대한 당국의 무관심과 차별정책으로 장애인은 아직도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택정: 남한이라 미국 같은 곳에는 장애인에 대한 복지나 배려, 혜택이 많이 있잖아요. 그런데 북쪽에서는 그런 것을 생각할 힘이라든지 경제적인 능력을 떠나서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을 배려해야 되고 심을 가져서 도와 주와 하는 교육이 안돼 있는 그런 상태죠. .

RFA 특별 보도 북한 장애인 두 번째 시간에는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개선을 알아봅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