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1, 2020

15 장애 탈북자, 오슬로서 북 인권 고발



장애 탈북자, 오슬로서 북 인권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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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탈북자, 오슬로서 북 인권 고발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5-06-02




제7회 노르웨이 오슬로자유포럼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이라며 탈출할 때 사용한 목발을 치켜들고 북한인권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는 지성호 씨.
사진-오슬로자유포럼 웹사이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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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모든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갖고 태어납니다. 인권의 개념은 시대, 나라, 사회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인권의 소중함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단어가 아무리 많이 사용된다고 해도 삶에서 인권이 바로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이 이룩되려면 말뿐만 아니라 인권을 보호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행동이 따라야합니다. 장명화가 진행하는 주간 프로그램 '인권, 인권, 인권'은 인권 존중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 각처의 인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노르웨이에서 북한 인권을 고발한 지성호 씨의 증언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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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호) 지난 70년 동안 김 씨 집안은 북한 주민들을 속여 왔습니다. 친구들이 죽어가는 동안에도 북한식 사회주의가 세계에서 최고라고 학교 선생님들은 거짓을 가르쳤습니다.

장애인 탈북자 지성호 씨가 최근 노르웨이에서 열린 국제 인권행사 ‘오슬로자유포럼’에서 북한인권 참상을 고발하는 장면입니다. 오슬로자유포럼은 미국의 인권단체인 ‘인권재단’이 주관하는 행사로 2009년 시작돼 올해로 7번째입니다.

지 씨는 북한 김 씨 일가의 대표적인 거짓말로 이미 붕괴된 식량 배급제를 숨긴 것과 이 기간에 특정 지역에는 아예 식량을 배급하지 않은 점을 꼽았습니다. 지 씨는 함경북도 회령 탄광마을 출신입니다.

(지성호) 김정일은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을 압박하면서 곧 식량이 제공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후에야 북한 식량 배급체제가 붕괴된 것을 알게 되었고 가장 가난한 지역에는 식량을 일부러 배급하지 않을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굶어죽은 사람은 적게는 23만 명에서 많게는 3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1995~1997년에 300만 명이 굶어죽었다고 말했고,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1990년대에 백만 명에 가까운 북한 주민이 아사했다고 했습니다. 한국 통계청은 북한이 199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간 식량난으로 61만 명의 인구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지 씨 역시 이렇게 굶어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고, 오슬로자유포럼에 참석한 300여명의 인권운동가들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던 중 먹을 것을 구하러 나섰던 지 씨는 기차에서 석탄을 훔쳐 파는 일을 하다가 열차에서 떨어져 왼쪽 팔과 다리를 잃게 됐다고 울먹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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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호) 16살 되던 1996년 3월 이른 아침, 달리는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열차에는 60톤의 석탄이 실려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몰래 열차에 올라타 석탄을 퍼 담은 많은 사람이 있었고 눈과 이빨을 제외하고 사람들의 몸은 석탄 가루와 땀으로 검은색이었습니다. 며칠간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어지러웠고 다음 역에서 내리려할 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두 철로 사이에 누워있었고 왼쪽 다리로는 열차가 지나갔습니다.

지 씨는 당시 병원으로 실려가 수혈이나 진통제도 없이 다리와 팔을 잘라내던 끔찍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동생들이 구해 온 음식으로 버티던 지 씨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공안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지 씨는 특히 장애인이란 이유로 자신을 더 가혹하게 다루는 북한에 환멸을 느껴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지성호) 경찰은 ‘너 같은 병신이 중국 땅으로 넘어가서 구걸한 것은 공화국의 수치’라고 했습니다. 다리가 없는 제가 중국에 가서 구걸한 것이 나라와 수령의 이미지를 망쳤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구해온 쌀을 압수당했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저와 같이 잡힌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심한 고문을 당했고 저는 그것이 마음에 큰 상처가 됐습니다.

지 씨는 어렵사리 목발 하나에 의지해 남동생과 함께 중국과 라오스, 미얀마, 태국에 이르는 1만 km의 대장정에 나섰다고 말했습니다. 지 씨는 결국 2006년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다른 사람이 이런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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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호) 자유 대한민국에 도착해서 북한의 장애인과 북한 인권의 대변자가 돼야 한다는 책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작은 사무실에 친구들과 함께 ‘나우’를 창립하고 지난 4년간 저와 같았던 어린아이, 장애인, 여성 등을 중국을 통해 탈북 시켰습니다. 그 수는 100명을 넘습니다.

지 씨는 계속해서 북한 주민의 자유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지성호) 오늘 죽음의 위기에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것이 제가 1만km를 의지했던 목발입니다. 이 목발을 제가 포기하지 않고 자유를 찾아온 상징이기도 하지만, 돌아가신 제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마지막 유품입니다. 북한의 자유를 위해서, 제가 선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북한을 위해서 함께 해줄 때 북한 주민에게 자유가 깃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동참해주세요. (박수)

한 주간 들어온 인권 관련 소식입니다.

-- 중국 당국이 최근 기소한 유명 인권변호사 푸즈창 씨에게 민족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근거로 민족감정 선동 등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국 베이징 인민검찰원 제2분원은 "푸즈창이 작년 3월 윈난성 쿤밍 철도역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에 대한 의견을 인터넷의 여러 계정에 게시하는 등 2012년 1월∼작년 5월 사이 민족 간 불화를 싹트게 했다"며 푸즈창 씨에게 민족감정 선동 혐의를 적용했다고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기소장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푸즈창 씨는 작년 3월 신장위구르자치구 분리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여겨진 테러가 발생한 후 왕러취안 전 신장자치구 당서기의 강경노선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했습니다. 푸즈창 씨의 변호인 상바오쥔 씨는 푸즈창이 2∼3개월 내에 재판을 받을 예정이며 최고 징역 8년 형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국제 인권단체들의 반대에도 일부 모친들이 3년 터울 이상으로 자녀들의 생산을 조정할 수 있게 하는 새 인구법에 서명했다고 국영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산아제한 보건법이란 이름의 이 법안은 반무슬림 강경파 불교승의 압력 하에 미얀마 정부가 제정한 것으로 지난달 의회를 통과해 대통령 인준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동안 국제 인권단체가 여성뿐 아니라 소수민족과 타 종교에 대한 인권탄압을 우려해 반대해왔던 법입니다. 불교국가이면서 4년 전 독재를 벗어나 민주화된 미얀마는 뿌리 깊은 소수 무슬림에 대한 증오가 표현의 자유를 타고 표면화되기 시작했고 특히 로힝야 무슬림에 대한 탄압과 폭행으로 이어져 이들을 동남아시아 해상을 배를 타고 떠도는 난민으로 만들었습니다.

‘인권, 인권, 인권’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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